사랑처럼 보이면서도 사랑이 아닌 것?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은 서양이나 동양이나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이 사람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주제라는 것을 부인할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남자와 여자의 사랑의 이야기는 고대 그리스 시대나 지금 현재 오늘날의 이야기에서나 내용에서는 별로 변한 것이 없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도 500년 전에 조선 중종 때의 개성 3절로 이름난 황진이가 연모한 조선조의 성리학의 대가인 화담 서경덕 선생님을 연모한 사랑의 시조가 있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 춘풍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정든 님이 오시는 날에 구비구비 펴리라. 이 시에서 일년 중에서도 가장 긴 동짓달의 겨울 밤에 홀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연인의 기다림과 그리움이 구구절절이 가슴에 와 닫는다. 긴 밤을 혼자서 그리워하면서 사모하는 그 기다림은 정작 정든 님이 와서 그 동안에 쌓인 애타는 서운함을 전할 때 화살 같이 빨리 지나가는 짧은 시간을 보상 받고 싶다는 연모의 정이 가슴 속에 깊이 느껴지게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황진이의 두 번째 시조 역시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외로움을 표현한 시조이다. 마음이 여린 후니 하는 일이 다 여리다, 만중운산에 어느 님이 오리오 마는, 지는 잎 부는 사람에 행여 긴가 하로라. 깊은 첩첩산중에 누가 찾아올까 하고 마음을 접고 있지만 마음의 한쪽 구석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애타게 그리워하면서 기다리고 있는 그 마음이 떨어지는 가량 잎 낙엽 소리와 바람 소리에도 혹시나 님이 오는 소리가 아닌가? 하고 창문 쪽으로 눈을 돌리면서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연인의 마음이 깊게 스며져 베어 나온다.

이 시와 오늘 날 현대 사회에서 사랑의 마음을 노래한 시와 한번 비교를 해 보자. 치료자(필자)는 사랑의 노래를 이렇게 잘 묘사한 시는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랑의 노래이다. 이 시는 사랑의 테마라는 제목의 노래로 오래 전부터 불러져 온 노래이다. 사랑! 그것은 정년 그리움, 노을 빛처럼 타는가, 가슴 가득히 설레는 바램, 잠들지 않는 물결, 사랑! 그것은 오랜 기다림, 강물과 같이 흘러, 마음 가득히 넘치는 기쁨, 멈추지 않는 행복, 사랑! 그것은 정녕 외로움! 채울 수 없는 바다, 아침 햇살에 빛나는 꽃잎, 남 몰래 타는 촛불, 사랑! 원하지 않아도 찾아오네, 사랑! 보내지 않아도 떠나가네, 사랑! 혼자서는 이룰 수 없는 오-오 사랑이여!(주㈜: 이 노래는 제목이 사랑의 테마로써 박인수와 이수용이 부르는 노래를 유튜브에서 직접 들어 보고 감상할 수 있음).

사랑이 비극을 불러 온 이야기는 언제든지 존재한다. 그리스의 신화에 나오는 트로이 전쟁은 바로 한 연인에 의해서 촉발된 사랑의 비극 이야기가 아닌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인 헬레네(Helen)를 두고 그리스의 도시 국가들의 왕들이 침을 삼켰다. 정작 헬레네는 어느 남자들도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할 수 없이 스파르타의 왕인 미넬라우스(Menelaus)에게 시집을 갔다. 그러나 2%의 부족함이 항상 남아 있던 차에 트로이의 왕자인 파리스(Paris)에게 첫 눈에 반해서 헬레네는 남편과 자식과 왕관을 버리고 파리스와 사랑의 도피를 감행한다. 메넬라우스는 형님인 미케네의 왕인 아가메몬에게 호소를 해서 그리스의 연합군이 형성되고 이후에 그리스와 트로이는 10년 동안 전쟁으로 일진일퇴를 거듭하다가 드디어 나무로 만든 말인 목마로 트로이가 멸망하게 된다. 트로이의 목마는 영화로 연극으로 수없이 공연되어지고 있는 남녀의 사랑의 이야기가 아닌가?(2018, 12, 9, 위키피아).

정신분석에서 자주 거론되는 또 하나의 사랑의 이야기가 있다. 그리스의 3대 비극 작가인 유리피테스의 작품으로 메디아(Medea)의 이야기이다. 이아손(Jason)은 황금 양털(Golden fleece)(주㈜: 날개가 달린 금으로 된 양털 옷: 권력과 왕권의 상징: 위키피아)을 찾아오면 왕위를 물러 주겠다는 아버지의 말에 야만족의 손에 강탈당한 황금 양털을 찾아서 아르곤호를 타고 영웅들과 함께 콜치스(Colchis)로 떠난다, 콜치스 왕의 딸인 메디아가 이아손을 보고 한눈에 반해서 그가 그녀와 결혼을 해서 백연회로를 한다고 약속을 한다면 그 황금의 양털을 탈취하는데 도와주겠다고 언약을 맹세 받았다. 그녀는 연인을 위해서 아버지를 배신하고 황금 양털을 훔쳐서 추적해 오는 오빠를 죽이고 연인과 함께 사랑의 도주를 감행한다. 그녀의 마술의 덕분으로 수 많은 장애물들을 물리치고 드디어 이아손은 메디아와 함께 귀국을 한다. 그러나 이아손은 메디아와 언약을 저버리고 이방인과 결혼을 하지 못한다는 그리스의 법을 핑계로 콜린스의 딸과 결혼을 하게 된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목숨을 걸고 사랑을 했던 남편에 대한 배신감으로 메디아는 이아손의 결혼 식 날에 신부에게 거절할 수 없는 유혹적인 아름다운 옷을 선물하게 된다. 그 옷을 입은 신부는 그 옷에 묻은 독약에 의해서 몸이 녹아 흘러내리면서 죽게 된다. 그것으로 복수는 끝나지 않았다. 메디아는 자신의 전부를 바친 남편에 대한 배신감으로 이아손과 결혼으로 자신의 배속에서 낳은 두 명의 자식을 죽이게 된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자신의 아들들에게 하는 이야기가 정신분석가들에 의해서 자주 인용이 된다. “생명을 준 것도 나이니 생명을 가두어가는 것도 내가 되어야 마땅하다. 살아서 다른 사람의 손에서 고통을 당하는 것 보다 내 손에서 고통을 당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메디아는 사랑의 배신에 대한 복수의 화신으로 대표되는 사람이다(Shengold, 1999: 주㈜: 참고).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우리 나라의 속담이 이미 기원전 700년 전에 그리스의 신화에서 등장한 것이 아닌가?  하버드 대학의 범죄 정신분석가로써 40년 동안 감옥의 죄수들을 연구하고 치료를 한 길리건(Gilligan, 1996: 주㈜: 참고)은 신화와 전설은 우리의 마음 속에서 나오는 무의식의 메시지이다 라고 노트하고 있다. 메디아의 이야기는 지금도 우리 일상에서 곳곳에서 언론과 TV의 사건과 사고에서 보도되고 있다. 지난 17 '살려달라' 애원하는  자녀와 함께 아파트 14층에서 투신 자살한 30 주부 손모씨 사건의 여파가 아직도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인천시 xxx  1700만 원짜리 전세 아파트에 살던 주부가 실직한 남편이 가출한  3000만원의 카드  독촉에 시달리다 생활고를 비관근처 고층 아파트 14 계단에서 일곱  첫딸과 다섯  아들을 먼저 떨어뜨린   살배기 막내를 끌어안고 투신 자살했다(2003, 7, 22 JTBC 보도를 여성중앙에서 인용).

겉으로 보면 행복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뒷면을 들여다 보면 비극과 복수와 처벌한 싸움들이 자리하고 있다. 사랑을 이야기하고 노래를 하고 정의를 하는 사람들은 시인, 예술가, 작가들, 그리고 철학자들이다. 대신에 사랑으로 인하여 결과한 아픔을 치료하고 분석하고 연구를 하는 사람들은 심리학자들 그 중에서도 특별히 정신분석가들이다. 분석가들은 사랑의 박탈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받은 학대를 그리고 사랑 이라는 이름의 과잉보호의 고통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치료하고 연구하는 전문가들이 아닌가?

프로이트는 이미 100년 전에 사랑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고 공언을 했다. 그리스의 신화에 나오는 나르시우스의 이야기를 인용하면서 나르시즘적인 사람은 사랑을 할 수가 없다고 노트를 했다. 나르시우스의 이야기는 여러 차례 기술을 했다. 여기에서 간단하게 인용을 하고자 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시우스(Narcissus)의 이야기는 자신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요정의 사랑을 거부하고 자신의 세계를 떠나기를 거부하다 결국 꽃이 되었다는 인물이다(김종만, 1999, (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 pp431-432에서 인용).

숲의 요정 헤리오프(Heriope)의 아들 나르시우스는 16세 때 실연당한 남녀들이 우글거리는 숲 속을 지나가다가 요정인 에코(Echo)의 눈에 띈다. 에코는 제우스의 부인인 헤라의 노여움으로 처벌을 받아서 목소리를 잃고 남의 목소리를 흉내만 내는 요정이다. 헤라는 남편 제우스가 첩을 둔 것을 알고 그 첩을 붙잡아서 처벌하려고 할 때 에코의 말 솜씨에 매료되어 이야기를 나누다가 첩이 달아난 것을 뒤늦게 알게 된다. 그러나 에코의 속임수로 첩이 달아난 것으로 생각해서 노발대발해서 에코의 목소리를 없애버린 것이다.

나르시우스가 숲 속에서 길을 잃고 근처에 누구 없어요?”라고 도움을 요청하자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나르시우스를 뒤쫓아가던 에코가 근처에라며 나르시우스를 포옹하려고 할 때 나리스우스는 당신이 나와 함께 하는 것보다 내가 죽은 편이 낫다라며 냉담하게 거절하고 달아난다. 그러자 에코는 나와 함께를 외치며 애통해 한다. 나르시우스는 사라졌고 에코는 일생을 나르시우스를 따라다니면서 끝내 사랑을 얻지 못하고 목소리만 남긴다.

또 다른 작품인 오비드(Ovid)에서는 나르시우를 끝까지 연모한 아메니우스가 나르시우스의 단검을 빼어들어 나르시우스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사랑을 주지 않으면 자살하겠다고 위협을 한다. 그러나 나르시우스는 냉담한 태도에 실망하고 분노하여 신에게 복수를 외치면서 자살을 한다. 아르테미스가 이 탄원을 듣고 사랑을 부인하는 나르시우스를 사랑하게 만들겠다고 맹세를 한다. 어는 날 숲 속을 헤매다가 목인 마른 나르시우스가 거울처럼 맑은 샘물을 발견하고 물을 마시려다 물 속에 비친 아름다운 소년을 사랑하여 껴 안고 키스를 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모습임을 알고 그 모습에 도취되어 떠날 줄 모른다. 그가 가슴을 단검으로 찌르고 피를 흘리며 죽어갈 때 에코는 나르시우스 옆에서 그의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인 ! !”만 연발하면서 안타까워한다.

자신을 가지고 싶어 하는 애통함이 자신을 파괴시켰지만 자신의 또 다른 자아가 자신에게 남아 있음을 알고 그 고통을 즐거워했다라고 신화를 옮긴 작가는 더 붙였다(Chessik, 1985). 그의 피가 땅을 적시고 그곳에 흰 꽃이 피어났다. 그 꽃을 나르시우스의 이름을 따서 나르시우스의 꽃이라고 불렀다. 이 꽃은 우리 말로 아편 꽃으로 불린다. 아편 꽃의 꽃말인 잠, 죽음, 평화는 이 꽃이 마약성, 중독성이 있음을 말해준다.

자심의 아름다움에 취한 옹고집적인 자만, 다른 사람에 대한 거만한 행동, 비공감적인 적대감, 자신의 또 다른 자아에 대한 일차적 몰두 등이 나르시우스의 특징이다. 거울에 비친 자아의 또 다른 면은 항상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간에 자신에게 충실히 남아 있다.

나르시우스의 이름을 따서 사랑을 할 수 없는 사람의 성격적 특징을 나르시즘 성격장애라고 부른다. 프로이트는 나르시즘 성격은 전이가 형성되어지지 않기 때문에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노트를 했다. 그러나 시카고 대학과 시카고 정신분석학교의 교수인 코호트(Kohut)가 나르시즘 성격장애를 치료하는 기법을 고안을 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을 수정하고 보완을 해서 자아 치료 이론을 고안을 했다. 그의 자아 심리학은 정신분석의 한 갈래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더구나 최근에 여러 개의 자아의 의인화들이 등장한 할리우드의 영화 인사이드 이웃이후에 특별히 각광을 받고 있다. 나르시즘 성격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곳에서 많이 다루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따로 다루지 않기로 한다.

여기에서는 사랑이라는 모습의 가면을 쓰고 있지만 정작 사랑이 아닌 또 다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바로 편집증 이라는 정신과적인 전문 용어로 등장하는데 일반인들에게는 의처증의부증이라는 말로 이야기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흔히 우리는 과거에 배우자를 선택할 때 사랑하는 배우자를 위해서 목숨을 바칠 수 있는 배우자를 최고의 배우자로 인정을 했다. 얼마 전에 한 TV’프로그램에서 부인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테스트를 해 보는 장면들이 있었다. 12시가 지나가는 시각에 갑자기 남편을 호출하는 부인들의 요구에 군소리 없이 즐겁게 달려가서 부응을 하는 남편들을 최고의 남편으로 점수를 준다는 이야기였다. 즉 남편들이 부인을 위해서 목숨을 바칠 수 있다는 각오를 가진 사람을 최고의 남편으로 인정을 한다는 테스트였다.

사실은 배우자를 위해서 목숨을 바칠 사람은 없겠지만 죽는 시늉을 하는 사람이라면 일생을 맡겨도 되겠다고 종종 노래를 불렀다. 지금의 60대 혹은 70대 이상의 노년들이 젊은 시절에 늘 애창을 했던 고인이 된 최희준의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라는 노래가 그것이다.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 히스테리가 이만저만, 데이트에 좀 늦게 가면, 하루 종일 말도 한해 왓 셀 아이두(What shall I do?의 우리말),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 강짜 새암(시샘)이 이만저만, 젊은 여자와 인사만 해도, 누구냐고 꼬치꼬치 오 헬프 미(Oh! Help me), 우 우우우, 우우우 라라라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 서비스가 이만 저만, 춥지 않으냐? 뭘 먹겠느냐? 털어 주고 닦아 주고 오 탱규(oh! Thank you), ! ! 올드미스 우리 애인 넘버원, 넘버원(number 1)(주㈜: 이 노래는 인터넷에서 최희준의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를 입력하면 유투브에서 들을 수 있음). 이 노래의 가사를 보면 데이트에 지각을 하면 하루 종일 말을 하지 않고 토라져서 삐치는 성질 부리기, 젊은 여성과 인사를 해도 누구냐?라고 꼬치꼬치 캐 물어 보는 것, 무엇을 먹겠느냐 라고 보채는 모습, 춥다고 걱정하면서 꼼꼼하게 신경을 써 보살펴주는 주도 면밀함 그리고 먼지를 털어 주고 신발을 닦아주는 연인을 최고의 연인 이라고 갈망하는 것을 노래로 부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조선시대 양반집 아들인 이도령과 천인 신분의 기생인 춘향이의 애달픈 사랑 이야기를 최고의 러브 스토리로 우리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이야기는 정작 춘향이와 이도령이 어떻게 살았는지?는 이야기가 없다. 정신분석가들이 다루는 이야기들은 이상적으로 보이는 이런 사랑의 이야기들이 정작 결혼을 해서 함께 살면서 일어나는 실제 현실적인 삶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아닌가?

이제 겉으로 보이는 것은 이상적인 사랑이지만 그것은 사랑으로 포장된 이야기라는 것을 사랑을 해 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이상적인 사랑 타령으로 보이고 들린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 겉으로는 사랑이지만 사랑이 아닌 사랑의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이들은 바로 양의 탈을 쓴 늑대의 이야기로 사랑을 하고 있거나 사랑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이러한 거짓 사랑을 구분하고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분석가들은 강조하고 있다.

프로이트가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사랑할 수 있고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의 경구는 100년이 지난 지금에 그의 말의 진가가 백일하에 드러나고 있다는 것을 보면서 프로이트의 천재가 인정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것을 지적하면서 이 이야기를 시작해 보기로 한다. 어떤 사랑이 참 자랑이고 어떤 사랑이 거짓 사랑인지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은 타고 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과 만나서 대인관계를 많이 해 볼수록 참 사랑과 거짓 사랑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배양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자아의 능력이다. 치료자는 부산의 부경대학(과거의 수산대학)에서 20년간 강의를 하면서 대학 1학년들이 이성친구가 없는 것은 이해를 하지만 대학 2학년 이상의 학생들이 이성 친구를 가지지 않고 있는 사람은 대인관계를 한번쯤 의심해보아야 한다 라고 늘 이야기를 해 왔다.

사랑을 해 보지 못하고 사랑을 갈구 하다가 우연히 그 파트너가 매일 같이 찾아와서 창문 밖에서 세레나데를 부르고 밖에서 기다리면서 꽃과 꽃 다발로 구애를 하고 선물 공세를 보내고 연인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을 쓰고 관심을 가져주면서 일일이 따라다니면서 보호를 자청하는 연인이 있다면 그 사람이 천생 연분으로 최고의 배우자 감이라고 앞뒤를 가리지 않고 결혼을 해버리는 사람들이 결혼을 하고 함께 살아가면서 그것이 거짓 사랑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지만 이미 빠져나올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러한 남녀의 사랑의 이야기는 이미 200년 전에 독일의 철학자인 헤겔(Hegel)이 주인과 노예 관계로써 잘 설명을 하고 있다. 인간관계에서 너와 나의 관계의 친밀감을 이야기를 할 때 친밀감을 가장 많이 나누는 사람들이 가장 가까운 사람이 아닌가? 남녀의 관계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이 연인 관계가 아닌가! 개인적인 사적인 비밀을 가진 많이 나누는 관계가 바로 친밀관계가 아닌가?  최근에 유행어는 공감(共感)이라는 말은 감정을 같이 나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서로 같이 감정을 함께 나누는 공유를 하는 것이 아닌가? 정신분석에서는 공감이라는 말 대신에 공명(共鳴)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물리학의 용어로써 발굽 자석을 물에 담근 후에 두 개를 양쪽에 세우고 한쪽을 망치로 울리면 물방울들이 소리의 힘에 의해서 퉁겨 나가서 서로 같이 울리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있다. 소리의 반사가 상대방 한데 전달되어 같이 울리는 것을 말한다. 공감, 공명, 친밀감 등을 많이 나누는 관계가 바로 가장 친한 친구의 관계이고 이 관계에서 가장 가까운 남녀가 연인이 되고 그리고 결혼을 해서 함께 살게 되는 것이 아닌가?

여기에서 남자와 여자는 각각의 자신의 자아를 가지고 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귄다는 것은 두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작자의 자아가 서로 관계를 하는 것이 아닌가?  자아가 서로 가장 가까울수록 친한 관계가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계속해서 너무 가까워지면 서로의 자아가 찰떡같이 붙어버리게 되면 한 개의 자아가 된다. 두 개의 자아가 거리감이 없어지면 한 개의 자아가 되는 것이 아닌가? 고로 한 개의 자아는 화학에서처럼 인간은 두 개의 물질이 한 개로 합성이 되면서 전혀 다른 새로운 물질로 화합물이 되든지 혹은 혼합물이 될 수는 없다. 인간은 서로 통합해서 두 사람이 한 사람으로 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서로가 가까워져서 한 개로 통합된다는 말은 한 사람의 자아가 소멸하고 다른 한 사람의 자아가 좌지우지 하는 것이 되어버리게 된다. 그렇다면 한 사람의 자아는 존재하는데 다른 한 사람의 자아는 소멸하게 된다. 헤겔은 200년 전에 이것을 지적을 했다. 인간관계에서 너와 나의 관계가 한 사람의 자아가 소멸하고 다른 사람의 자아가 좌지우지 하게 되면 그것은 바로 주인과 노예의 관계가 된다. 주인은 노예의 모든 삶을 컨트롤하고 의식주를 제공을 한다. 대신에 노예는 먹고 사는 것은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자유가 없다. 주인의 의사, 주인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로봇이 되어야 한다. 흔히 사람들은 주는 것을 배부르고 먹고 울타리 속에서 갇혀 자유가 없이 사는 삶을 배부른 돼지에 비율을 한다. 걱정과 근심과 염려가 없이 다른 사람에게 완전히 의존을 하는 사람들이 바로 자신의 자아를 포기하고 완전히 상대방에게 의존하게 되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두말 할 것도 없이 그러한 생활은 노예의 생활이 된다.

과거에 우리의 부모들은 결혼을 일심동체(一心同體)라고 이야기를 했다. 몸과 마음이 서로 하나가 되는 것들 말한다. 이것을 잘못 해석해서 내 마음과 너의 마음이 두 개가 하나로 된다는 인식 때문에 결혼이 지옥이 되는 것을 많이 본다.

 조선시대에는 이()씨의 성을 가진 여성이 김()씨 성을 가진 남성의 집에 시집을 갔을 때 그 시집살이는 벙어리 3, 장님 3년 그리고 귀머거리 3년으로 시집살이를 한다는 이야기는 바로 결혼 후에 이씨 성을 가진 여성이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의 집에 시집을 가면 이씨가 김씨가 되는데 10년이 걸린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자신의 자아를 버리고 다른 사람의 자아로 동화를 해서 남편의 자아로 따라가는 데는 10년이 걸린다고 했다. 이씨 집에서 성장한 여성이 김씨 집안의 생각과 사고와 스타일로 완전히 동화가 되는 것이 바로 시집살이였다. 고초당초 맵다지만 시집살이 보다 더 메우라 라고 노래를 했던 우리의 어머니들의 이야기이다. 호되게 시집살이를 한 시어머니는 자신의 며느리에게 자신이 받는 시집살이의 고통보다 더 심한 고통을 가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이것은 바로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이야기가 아닌가? 상처의 피해자들은 어른이 되어서 그 상처의 가해자가 된다. 신체적 폭력과 섹스적인 폭력의 피해자들은 어른이 되어서 그 폭력의 가해자가 된다는 것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상식으로 인식되어져 있다. 정신분석에서는 이것을 공격자 동일시로써 설명하고 있다. 자신이 어린 시절에 약하기 때문에 피해를 당했다고 생각해서 자신이 강자가 되면 폭력을 피할 수 있다는 자아의 보호적인 방어로써 설명을 하고 있다.

여기에서 그렇다면 너와 나의 자아 사이에 얼마나 거리감을 두어야 하는가? 이것을 두고 과거에 우리 부모님들은 부부 관계를 가깝고도 먼 당신이라고 표현을 했다. 너무 가까우면 한 사람의 자아가 위협을 당하게 된다. 한 사람의 자아가 위협을 당하게 되면 질식을 느끼게 된다. 숨이 막히는, 가슴이 답답하고 호흡을 하기 어려운 상황을 유추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쉼을 쉴 수 없는 관계는 바로 자유가 없는 노예 같은 관계가 아닌가? 고로 너와 나 사이에는 거리감이 필요하다. 거리감이 얼마나 되어야 최고 접합한 관계인가? 이것을 물리학적으로 말을 할 수가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 서로 너무 거리가 멀어지면 남남이 되어버린다. 부부 사이에 거리감이 너무 멀어지게 되면 서로에게 무관심하게 되고 서로 멀리하게 되면 같은 집에 살아도 남남처럼 의미 없는 관계가 되어버리게 된다.

부부 문제를 치료 하면서 이러한 관계들을 많이 본다. 이러한 관계를 감정적으로 이혼한 부부라고 부른다. 서로 갈등을 막기 위해서 거리감을 두고 서로의 간섭을 차단하려는 시도들이 아닌가?

 섹스는 부부 관계의 바로미터 즉 부부 관계를 측정하는 측정자로 불린다. 부부 사이에 갈등이나 분규 혹은 서로 마음을 다치게 되면 같은 침대에 자면서도 서로 거리감을 두고 잠을 자게 된다. 신체 접촉, 피부 접촉을 피하게 된다. 이것은 파트너에 대한 분노를 섹스의 거부, 신체 접촉의 거부로써 무언으로 항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심하면 부부가 한 침대에서 잠을 자지 않고 한 사람은 침대에서 다른 한 사람은 거실에서 더욱 더 심하면 한 사람은 안방에서 다른 사람은 건너방에서 그리고 더욱 더 심하면 한 사람은 집 밖에서 들어오지 않는 것이 아닌가? 부부 사이에 너무 거리가 멀어지면 남남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영국의 정신분석학자로써 대상관계 이론의 창설자의 한 사람인 컨튜립(Guntrip)은 가깝고도 먼 당신을 한마디로 친밀관계에서 나를 잃지 않고 자치심에서 너를 잃지 않는 관계라고 표현을 했다. 명언으로 분석가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친밀한 관계에서 한쪽의 자아가 소멸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대방의 친밀감을 인정해주어야 한다. 자치심, 독립심에서는 너를 잃지 않아야 한다. 너를 잃어버리면 남남이 된다는 말이 아닌가? 우리 조상들이 가깝지만 그러나 멀게 느껴지는 것이 부부관계라는 말이 그 속에 많은 뜻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국의 정신분석 학자인 위니코트(Winnicott)개인의 자아는 사적인 공간이 필요하다고 말을 한다. 자아가 숨을 쉴 공간을 침범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만약에 우리가 이러한 자아의 공간을 침범을 당한다면 우리는 질식을 느끼고 노예가 됨을 느낀다는 말이다. 고로 자아가 자유를 느끼고 자치심을 발휘할 수 있는 이 사적은 공간이 침해를 받게 되면 그 사람은 자아가 병들게 된다는 것이 정신분석의 핵심이다.

뉴욕 의과대학의 소아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인 마가렛트 몰러(Margaret Mahler, 1967: 주㈜: 참고)1950년에 뉴욕의 맨허탄에 마운트 시아니 병원과 협력으로 마스트 어린이 연구소를 세우고 5명의 유아들과 그들의 엄마들을 같이 생활을 하도록 집을 제공하고 엄마들과 아기들의 상호관계를 연구를 했다. 15년 동안 이 연구를 한 후에 1967년에 인간 유아의 마음의 탄생이라는 책에서 출생 직후에 인간은 생리학적으로 탄생을 하지만 심리적인 탄생은 몇 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특별히 출생 직후에는 엄마의 자아가 아기에게 반사되어져서 하나로 느껴져야 한다는 엄마와 아기의 하나된 관계에 대한 정신분석가들의 이론을 실험으로 증명을 했다. 출생 직후에 아기는 자아가 없다. 고로 엄마의 반사된 마음이 아기에게 반사되고 아기의 욕구가 엄마의 마음에서 반사되어지면서 엄마와 아기는 하나된 자아가 된다. 4개월-5개월부터 엄마의 품에서 분리되어져 나오는 단계가 시작되면서 아기는 엄마로부터 조금씩 분리되어져 나오게 된다. 엄마의 품에서 무릎으로 엄마의 몸으로부터 방바닥으로 분리되어져서 점점 자아가 조금씩 분리 개인화 단계로 진화되어가면서 걸음마를 배우고 엄마로부터 조금씩 멀어지게 된다. 9개월에서 16개월 사이에서 점점 아기의 자아는 분리되어 자치적으로 발전되어져 가야 한다. 엄마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마음 속에 새겨진 엄마의 이미지로부터 달램을 얻어서 아기는 어린이로 그리고 청소년으로 그리고 청년으로 성장과 발달을 한다. 즉 자아는 나이에 걸맞게 성장과 발달을 해야 한다. 여기에는 자아의 심리적인 사적인 공간이 필수적이라는 말이다.

몰러는 그녀의 연구에서 출생 초기의 너와 나의 하나된 관계는 정상이지만 그 이후에는 아기의 자아는 점점 분리와 개인화의 단계로 발전되어져서 나이에 걸맞게 자아의 자치심과 분리가 개발되어지도록 부모가 지원을 해야 한다는 것에서 자아의 공간이 확보되어져 가야 한다는 것을 실험실에서 증명을 했다. 정신분석가들은 이것을 자아의 창의적 공간이라고 부른다. 다른 사람들이 침해할 수 없는 개인적인 공간이 바로 노예 관계에서 자아가 벗어날 수 있는 개인적인 사적인 공간이 필수적이라는 이야기이다. 예를 들어서 엄마가 초등학교 1학년의 어린이의 신발 끈을 돌보아주는 어머니는 정상적인 어머니이다. 그런데 초등학교 6학년의 소년의 신발끈을 매어주는 어머니는 아들의 자치심을 묵살하고 아들의 자아의 창의적 사적인 공간을 침해하고 있는 것으로 정신분석에서는 이것을 어린이의 자치심에 대한 모독으로 해석한다. 정신분석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너는 성장을 하지 말고 어린이로 남아 있어라”, 엄마인 내가 모든 것을 다 해줄 것이니 너는 어린이로 남아 있어라 라고 무의식적으로 말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을 한다. 엄마는 어린이가 자신의 자아를 마음대로 하려고 하면 불안하기 때문에 자녀가 스스로 하려고 하는 것을 막아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자녀들이 성장을 해서 어른이 된다고 해도 그는 어른이 되었어도 그의 자아는 어린 시절의 시점에서의 성장이 멈추어버린 사람이 된다. 고로 평생 동안 다른 사람에게 의존을 해야 한다. 자신의 자아를 포기하고 파트너의 노예가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이러한 청소년들이 점점 어른이 되어가면서 심각한 심리적인 문제를 가지게 된다고 이구동성으로 지적을 하고 있다. 치료는 이러한 사람들이 자아를 개발하도록 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진다. 고로 정신분석은 증세 자체를 다루는 것이 아니고 자아를 다루는 것이다라는 것이 이해가 될 것이다.

최근에 신문에 보도된 한 개의 기사를 소개하고자 한다. 경남 양산경찰서는 22 굿을 해야 건강이 좋아진다고 속여 굿값 등으로 13억여원을 받아 챙긴 혐의(사기) 무속인 A(47·여)씨를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2009 1 감기 몸살 증세가  낫지 않아 찾아온 B(42·여)씨에게 “몸안에 혹이 있는데 악화돼 죽을  있다굿을 해야 낫는다”면서 돈을 받고 부산시 기장군  굿터에서 굿을  주는  2016 3월까지 86차례에 걸쳐 굿값·기도비 명목으로 12 5000여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2018, 5, 22, 서울신문). 또 한 개의 사건 사고의 소식으로 강서구에서 점집을 운영하는 A씨는 남편의 사업 문제로 찾아온 B씨를 "낙태한 쌍둥이의 혼을 계속 위로해주지 않으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속여 2011 1월부터 2015 12월까지 133차례 씻김굿을 해주고 총 56천만여 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2018, 8, 16, 연합뉴스). 이러한 피해자들은 심리적으로 의존적이고 불안해서 항상 의존적인 사람으로부터 지시, 지도에 의존해 있는 사람들이다. 어떤 사람들은 장거리 여행을 가는데 어떤 신발을 신어야 하는지?를 일일이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다는 이야기를 인터넷에서 본 경험이 있다. 사람은 항상 어떤 결정을 내릴 때 갈등이 생 긴다.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 한 젊은이는 그가 13만원짜리 물건을 사는데 이것을 사야 할지, 사지 말아야 할지를 결정하는데 6개월이 걸렸다고 실토를 했다. 살려고 하니 혹시 가짜가 아닌가? 사기를 당하는 것이 아닌가? 라고 불안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지 않으려고 하면 꼭 사고 싶은데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다 가지고 있는데 자신만 가지지 못하고 있는 것에서 또 갈등이 생긴다고 했다. 고로 사려고 해도 불안 그리고 사지 않으려고 해도 불안한 갈등 감정 때문에 이렇게 하려고 하다가 저렇게 하려고 하다가 를 망설이면서 늘 안절부절 못하는 사람들을 수 없이 많이 보고 경험을 했다. 이러한 문제는 어린 시절에 부모님이 자녀의 자치심을 길러주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부모님에게 의존 결과가 아닌가?  이 젊은이는  자신의 성장이 중지된 자아를 개발하면서 스스로 혼자가 결정하고 판단하고 선택하는 자아로 재성장을 하도록 도와주는 치료를 받고 있다. 다시 자아 문제로 되돌아가 보자.

이러한 사적인 공간 즉 자아의 개인적인 사적인 공간의 필요성을 이미 약 80전에 시로써 노래를 한 우리 나라의 시인이 있다. 바로 김소월이다. 소월의 이 시는 중학교 교과서에 소개되어져 있다. 그의 대표적인 시 진달래꽃이다. 아래의 글은 치료자의 결혼과 가족과 치료의 저서에서 인용한 것이다(김종만, 2003, 결혼과 가족과 치료).

김소월의 본명은 김정식이고 32살에 자살한 서정 시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고 1924년에 나온 그의 대표작인 "진달래 꽃"은 교과서에 실리고 있는 그의 대표작이다(인터넷: 브리테니카 백과 사전, 2014, 7, 21). 그의 "진달래 꽃" 이라는 시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그의 진달래 꽃이라는 시를 인용하고자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남녀노소(男女老少) 할 것 없이 즐겨 읊고 있는 김소월의 시 진달래 꽃은 지고지순(至高至純)한 사랑을 노래한 시로 유명하다. 시인 박시교(1986)소월(素月)만큼 인구에 회자되는 시인은 일찍이 없을 것이다. 한국 사람이면 소월의 시 한 편쯤은 외어야 하고 진달래 꽃, 산유화, 먼 후일 엄마야 누나야 초혼 등의 작품들--—”에서 소월 시를 민요적 율조를 담은 민중시로 평가하고 있다(글방 문고, 작품 해설, 1986).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 약산, 진달래 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은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글방 문고, 011, 진달래 꽃에서 인용).

 위의 시에서 우리가 지금까지 배워왔고 알고 있는 것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보기 싫어서 떠날 때에는 고이 보내 드리겠다, 진달래 꽃을 따가 뿌려드리겠다, 죽어도 눈물을 흘리지 않을 것이다"라는 의미를 거꾸로 역설적으로 해석을 해서 실제로는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 드리고 싶지 않다"라고 해석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해석을 하고 있다는 증거로써 문학 평론가인 이어령은 소월의 진달래 꽃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학교에서 이 시는 이별가로 가르쳐 왔다. 그러나 이 시의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의 시제는 모두 미래형이다. 화자는 가정적(가상적) 체험을 통해 이별의 슬픔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고한 사랑의 기쁨을 노래하는 것이다. 이처럼 시의 이중적이고 아이러니한 의미를 파악하게 되면 사물의 의미나 느낌을 흑백으로 재단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알게 된다. 시의 공화국에서 흑백 사이의 회색은 기회주의의 상징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고 삶의 체험을 깊게 하는 이상향이다. 반대의 일치, 아이러니 시적 구조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소월의 시 읽기는 흑백논리의 가시철망을 끊고 무한한 상상의 벌판으로 나가도록 하는 강철 가위였다. 소월의 시에서 보여주는 반대의 일치, 즉 극한의 부정을 통해 긍정을 이끌어내는 역설을 소크라테스가 마신 독약의 이름에 빗대 햄록효과로 부르고자 한다, ---이하 중략(이어령의 은퇴 강연, 중앙일보 2001 9 8라고 해석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지고지순(至高至純)(1. 더할 나위 없이 높고 순결하다, 2. 더할 나위 없기 높고 순수함: 어학사전, 2014, 7,21)한 사랑을 노래한 것은 더 이상 거론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역설적이라는 점에서 필자는 반대한다. 그 이유로써 김소월의 시는 직설적인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유독 진달래 꽃이라는 시에서 거꾸로 역설적으로 시를 써서 의미를 거꾸로 된 반대로 해석한다는 것에 대해서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자 한다.

 그 이유는 김소월의 시를 보면 1960대에 정신분석 학자인 건츄립(Guntrip)의 참 사랑의 의미를 해석한 "친밀감에서 나를 잃지 않고 자치심, 독립심에서 너를 잃지 않는 사랑"의 의미와 일치 한다는 점이다. 즉 김소월의 시를 직설적으로 해석하면 그 해석이 참 사랑의 의미와 일치된다는 점이다.

 진실된 사랑 즉 지고지순(至高至純)한 사랑이라는 말은 최고의 사랑, 높고 순결한 사랑으로 누구나 지고지순 한 사랑을 하기를 원한다. 그런데 내가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내(A라고 가칭보다 더 많이 그리고 더욱 더 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해줄 수 있는 B라는 사람에게로 가고 싶어 한다면 그리고 나인 A보다 내 사랑하는 사람이 B 한데서 더욱 더 행복해진다는 것을 확신한다면 B에게로 보내주는 것이 지고지순 한 사랑이 아니겠는가! 내가 내 사랑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 보다 내 사랑하는 사람이 B 한데서 더욱 더 많은 행복을 누릴 수 있다면 기꺼이 나는 즐겁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드리겠다고 노래를 한 것이 바로 김소월의 진달래 꽃의 의미가 아닌가!

진실된 사랑 즉 참 사랑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해석이 나온 것이 1960년대로 사랑에 대한 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에서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김소월이 이 시를 쓴 시기가 1920년대로써 이미 사랑의 핵심을 꿰뚫어 본 것이 40년이나 앞선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934년에 자살한(박시교, 1986, 글방 문고. 작품해설) 천재 시인은 이미 사랑의 본질을 알고 있었고 우리가 지금까지 역설적으로 해석한 시점에서 본다면 80년을 앞서 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사랑에 대한 학자들의 연구들을 한번 살펴보고자 한다. 필자가 31년 동안 연구한 것을 바탕으로 학자들은 사랑을 어떻게 설명을 하고 있는가?를 한번 살펴 보고자 한다.

 사랑은 D(deficit) 사랑과 B(benevolent)사랑으로 나누는 학자들도 있다. D 사랑이라는 것은 결함적인 사랑, 나쁜 사랑을 의미하고 B 사랑이 하는 것은 은혜로운 사랑, 좋은 사랑의 영어의 첫 글자를 딴 것이다(Stevens-Long & Cobb, 1983: 주㈜: 참고).

 D 사랑이라는 것은 소유적인 사랑이다. 상대를 내 소유물로 착각을 하게 되면 사랑은 그 대상을 질식시킨다. 그 대상은 내 소유물이 되고 나의 노예가 된다는 것은 이미 앞 장에서 설명을 했다. 내가 가질 수 있는 내 물건으로 사랑을 착각하게 되면 그 사랑은 사랑이 아니고 그 소유자의 개인적인 물건이 되어 버리게 된다. 나 이외의 어떤 사람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가질 수 없다, 내 물건은 나만이 소유할 수 있고 그 누구도 나 이외에는 소유할 수 없다는 생각이 어떤 결과를 가져 오는지 그 예를 한 가기 소개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서 필자가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 무렵에 한 우리나라의 신문에 다음과 같은 사건의 기사가 난 것을 보았다. 1980년대에 xx 시에서 미스 진으로 선발된 U양이 그녀의 연인이었던 K군으로부터 살해를 당한 것이었다. 살해의 이유는 U양이 지방의 도시인 xx 시에서 미스 진으로 당선되어 전국 대회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던 차에 그의 연인이었던 xx 대학의 K군을 U양이 더 이상 그를 만나주지 않게 되자 앙심을 품고 U양을 어떤 회사에게 미스 진에 당선된 U양에게 줄 선물이 있다고 속여서 U양을 불러 내어서 xxx 해변가에서 서로 말다툼을 하다가 물에 빠뜨려 살인을 한 것이었다.

 K군과 U양은 서로 연인 사이었으나 미스 진에 당선 된 U양이 더 이상 연인 관계의 결별을 선언하고 만나주지 않은 것에 대한 분노에서 나온 복수심으로 U양을 살해한 것이었다는 신문의 뉴스는 K군이 U양을 사랑하게 되면서 K군 자신의 소유물로써 착각을 한 것이 틀림없었다. K군은 U양을 사랑하기 때문에 K군을 제외한 다른 어떤 누구도 U양을 가질 수가 없다는 착각으로 U양을 살인을 해서 결국은 무의식적으로는 U양을 영구적인 K군의 소유물로 만든 것이 아닌가!

 위의 예 이외에서뿐만 아니고 살인 사건 중에서 가장 많은 원한 관계의 살인 사건들은 치정관계의 살인 사건으로 보고 있다. 또 한 부부 사이거나 혹은 연인 사이었던 사람들이 서로 헤어지게 되면 끝까지 따라가서 해코지를 하는 것들을 수 없이 많이 보아왔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소유물이라는 잘못된 인식에서 나온 결과가 아닌가!

이제 이 이야기의 본질로 들어가 보자 1991년에 개봉된 미국 영화인 적과 동침에서 여자 주인공인 로라(줄리아 로버츠)가 의처증 증세는 보이는 남편 마틴(페트릭 버겐)과의 결혼 생활을 그리고 있다.

영화 적과의 동침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 로라의 남편은 의처증 증세를 보인다. 로라의 남편인 마틴은 증권회사의 이사로 있는 돈 많은 하이트 칼라로 해변가에 고급 저택을 가지고 있다. 로라는 해변가를 산책하다가 이웃 집에 사는 정신과 의사와 인사를 몇 마디 한 것을 남편이 보고 그 남자와 어떤 관계이냐고 무자비한 구타를 당한다. 지나가는 이성을 처다 보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의심을 받고 실토를 하라고 폭행을 당하기 일수다. 로라는 늘 집 안에 갇혀 있어야 했다. 남편은 부인의 생각은 아랑곳하지 않고 부인을 폭행한 뒤에 섹스를 가지고 부인의 의사는 물어보지도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옷을 사 입히고 섹스를 가진다. 부인을 물건 취급을 하는데 싫증이 난 로라는 탈출을 준비하고 몰래 수영을 배우기 시작한다. 요트 놀이를 하다가 폭풍을 만나자 로라는 물에 빠진 것을 가장하여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로라는 다른 고장으로 이사를 가서 이름을 사라로 바꾸고 벤이라는 연극 전공 교수를 만나면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과거의 악몽에서 조금씩 벗어나서 즐거운 삶으로 회복되어가고 있었다. 여기에서도 마틴의 병적인 집착에서 오는 편집증 사랑이 로라를 질식하게 만들었고 벤의 참 사랑에 의해서 로라는 정상인으로 회복되어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사랑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사랑이 사람을 살릴 수도 있음을 볼 수 있다. 부인이 물에 빠져 죽은 줄 알고 장례식까지 성대하게 치르고 슬퍼했던 남편은 어느 날 부인의 친구로부터 받은 한 통의 전화로 부인이 몰래 수영을 배웠고 변기통에 버린 반지를 찾아내고 부인이 탈출한 것을 알게 된다. 끝내 부인을 추적하여 부인을 자신의 소유를 만들려고 시도 하다가 끝내 부인의 총에 숨을 거둔다. 남편은 우리는 영원이 하나, 당신 없이는 살 수가 없어, 아무도 우리를 떼어 놓지 못해 등의 표현을 통해서 자신의 열렬한 사랑을 부인에게 전해서 부인을 회유하려고 하지만 이미 때가 늦었다(김종만, 결혼과 가족과 치료, p90-p97, 2003).

적과 동침은 글자가 의미하는 그대로 한 침대에 자면서도 서로 원수처럼 지낸다는 의미를 가진 부부를 빗대어 한 표현이다. 적과의 동침에 여자 주인공으로 나오는 로라는 겉으로는 행복한 결혼처럼 보인다. 남편인 마틴은 주식를 거래하는 대 기업의 이사로서 해변가에 별장을 가지고 있을 만큼 돈이 풍족하고 로라는 해변가에 있는 집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이 부부의 내면을 들여다 보면 남편인 마틴의 의처증 증세로 로라는 행복한 것이 아니고 마치 감옥소에서 생활하는 것처럼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 결혼식이 이후에 3년 몇 개월 며칠이라는 날짜를 계산하고 있는 것을 보면 결혼 생활의 감옥을 느낄 수 있다. 혼자서 크다란 대궐 같은 집에 갇혀지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이웃에 사는 정신과 의사와 해변에서 잠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남편이 보고 그 남자가 누구냐? 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집의 거실은 물론이고 샤워장에 수건이 반 듯하게 걸려 있어야 하고 찬장에 통조림의 상표가 가지런하게 진열되지 않으면 폭력이 따라 온다. 남편의 이러한 성격은 의처증에다 강박증까지 가진 것으로 보면 이상적인 남자처럼 보이는 정신적인 환자(편집증, 의처증)이다.

 로라는 이러한 생활에 지쳐서 이제 이혼을 결심했으나 남편은 절대로 이혼은 안 된다고 말한다. 남편의 동료들 파티에 동부인으로 참석해서 옆에 서 있는 남자를 쳐다보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집에 와서 폭행을 당해야 하고 그 후에 죄의식에서 부인에게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옷과 꽃다발을 사주면서 자신의 잘못을 비는 것에서 로라의 생활이 어떤지를 짐작할 수 있다.

 로라는 더 이상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죽음을 가장한 탈출을 준비한다. 남편 몰래 수영을 배워서 요트 놀이 중에 폭풍우를 만나고 물에 빠진 것으로 과장해서 헤엄쳐 나와서 먼 다른 조그만 도시에 가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다. 그 곳에 익숙해지고 새로운 남자 친구인 벤을 만나서 사랑이 싹이 틀 무렵에 남편은 부인의 친구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고 부인이 수영을 배웠다는 것을 알고 화장실 변기통에서 로라가 폭풍우가 치는 밤에 수영으로 헤엄쳐 나와서 집에서 옷을 갈아입고 결혼 반지를 변기통 속에 넣어서 물로 흘려내려 버리고 평소에 준비해 둔 옷과 돈을 가방에 넣어서 탈출할 때 변기통 속에 결혼 반지가 물에 흘러가지 않고 무거워서 그대로 변기통 안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남편인 마틴은 로라의 배신감에 치를 떨면서 로라를 백방으로 찾기 시작한다.

 여기에서 의처증 즉 정신 의학적 용어로 편집증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한 곳에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끝까지 매달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마틴은 사설 탐정에 돈을 주고 로라를 찾도록 의례를 하지만 효과가 미미하자 결국 혼자서 모든 일을 제쳐놓고 찾아서 나서게 되고 로라의 엄마가 양로원을 옮긴 것을 알고 찾아가서 딸이 얼마 전에 왔다 갔다는 것을 확인하고 결국 로라가 있는 곳을 찾아내고 로라의 방에 숨어들어가 로라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다가 로라를 만나서 다시 옛날로 돌아갈 것을 권유하다 로라의 총에 맞아 숨을 거두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여기에서 편집증 환자의 특징 그리고 편집증 환자와의 결혼 생활이 어떠한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정신분석적인 관점에서는 이 영화를 볼 때 편집증의 집착과 로라가 남편의 억압으로부터 탈출해서 다른 남자와 사귀게 될 때 유사한 상황 즉 새로 사귄 남자 친구 벤이 로라와 키스를 하려고 할 때 로라는 과거의 남편의 상처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키스에 깜짝 놀라게 되어 키스를 거부하는 행동을 보이게 된다. 로라가 완전히 마틴으로부터 탈출해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할 때에도 찬장에 가지런히 놓은 통조림 깡통들을 보고 깜짝 놀라거나 타월이 가지런히 놓인 것을 보고 불안해서 부들부들 떠는 모습 등은 과거의 상처가 치료되지 않고 남아 있는 한 우리는 과거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새로 사귄 남자 사랑하는 남자 친구와의 친밀관계에서 거부감으로 두 사람의 사이가 어색해진다든지, 사람들을 기피하고 혼자서 고립해서 살아가려고 한다든지, 한적한 시골 소도시로 이사하는 것 등도 과거의 상처와 관계가 있다. 지나가는 낯선 사람이 남편 마틴과 닮은 것을 보고 깜짝 놀라는 장면 등도 로라의 과거의 상처가 이후의 생활에 영향을 얼마나 미치는가? 등을 말해주고 있다.

 이 영화는 우리 주변에 흔히 일어나고 있는 부부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겉으로는 남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는 호화로운 주택과 풍요로운 생활 환경 등도 마음의 평화가 없으면 감옥처럼 되어 버린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외형적이고 물질적인 것은 인간을 편리하게 만들어줄 수 있을지 몰라도 정작 중요한 것은 마음이 편안한가? 즐거운가? 하는 것임을 말해준다.

로라는 복종과 운명에 순종하는 여성이 아닌 자신의 삶을 찾을 줄 아는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문제에 부딪치면 스스로 문제 해결을 할 줄 아는 여성으로 물질과 돈에 만족해서 자신의 자유를 저당 잡히고 남편의 인형으로 살아가기를 거부하는 참된 용기를 가진 여성으로 평가된다. 프로이트는 100년 전에 남편과 부인의 부부 관계가 이러한 관계가 병적이다 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스칸디나비아의 세계적인 작가인 입센의 작품인 인형의 집에서 주인공 로라는 내가 아버지 한데서 Yes맨으로 성장을 하면서 결혼으로 당신을 만났지만 당신 한데서마저도 나는 노예처럼 살고 싶지 않기 때문에 나는 당신을 버리고 떠납니다 라는 유명한 문구에 감동을 받았다고 노트되어지고 있다. 입센은 또 다른 작품에서 영혼의 살인이라는 말을 최초로 사용한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Shengold, 1989, 1999:주㈜: 참고).

진정한 행복은 자신의 마음 속에서 느끼는 것이고 행복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임을 보여주는 좋은 영화이다. 우리는 영화를 통해서 단순히 그 영화가 볼거리가 있다, 재미있다, 재미가 없다는 흥미에서 끝날 것이 아니고 그 영화 속에 들어있는 주제를 잘 음미해 봄으로써 우리는 또 하나의 삶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어떻게 사는 것이 현명한 삶인지를 깨달을 수 있게 된다면 영화를 통해서 값진 것을 얻을 수 있다(김종만, 영화 속의 주인공의 심리분석의 홈 페이지에서 인용).

위의 의처증은 영화 속의 이야기라고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영화 속의 이야기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지금도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이다. 지난 달에 강서구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이혼한 전 남편에 의해서 살해된 부인의 경우에 자녀들이 올린 탄원서에 의하면 이혼 후에 4년 동안 6번이나 이사를 하면서 피해 다녔다, 위기 때마다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끔찍한 피해를 막지 못했다---중략---25년 동안 결혼 기간 내내 남편의 폭행에 시달린 이씨는 마땅히 도움을 호소할 곳이 없었던 것이다(2018, 10, 25, MBC 이지수 기자). 또 다른 유사한 한 개의 사건을 소개하고자 한다. 경남 김해중부경찰서는 살인 혐의로 김모(21)씨에 대해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3일 밝혔다. 김씨는 전날 오전 0 30분께 김해시 한 모텔에서 애인(31)를 목 졸라 숨지게 한 혐의를 받았다. 김씨는 사건 당일 새벽 430분께 사람을 죽였다며 스스로 경찰 지구대에 찾아와 자수를 했다. 그는 함께 술을 마시다 다른 남자 한데서 애인에게 전화가 온 것 때문에 다투다 목을 졸라다라고 경찰에 진술을 했다(2018, 12,3. 연합뉴스 보도). 단지 다른 남자 한데서 전화가 왜 왔느냐?라는 것을 추궁하다가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이 아닌가? 최근에 발생한 또 다른 사건을 소개한다. 지난 10 23일에 강원 춘천에서 여자 친구의 목을 졸라 살해한 후 시신을 훼손한 20대 남성에 대해 피해자 유족이 엄벌과 신상공개를 촉구하는 국민청원 글을 올렸다. 3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너무나 사랑하는 23살 예쁜 딸이 잔인한 번의 살인행위로 차디찬 주검으로 돌아왔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넉넉지 않은 집안 형편으로 학원 한번 제대로 못 다녔지만, 딸은 학교생활에 충실한 장학생이었다”며 “대학 입학 후 4년간 용돈 한 번 받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동생 등록금과 부모 용돈까지도 살뜰히 챙기는 예쁜 딸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대기업에 입사한 딸은 결혼 후에도 계속 회사 생활을 하고 싶었지만, 가해자는 자신의 거주지와 일터인 춘천의 식당 2층 옥탑을 개조한 집에서만 신혼살림을 하기를 원했다”고 덧붙였다. 또 “딸은 직장과 거리가 멀어 걱정하던 중 서울과 춘천을 편하게 다닐 수 있는 퇴계원 쪽에 부모 도움 없이 신혼 자금 대출을 받아 신혼 집을 장만하기로 서로 결정했다”고 주장했다. 청원인은 “사건 당일 가해자는 딸에게 춘천으로 와 달라고 했지만, 딸은 회사 업무에 필요한 자격증 시험공부로 못 간다는 의사표시를 여러 차례 했다”며 “그러나 가해자의 계속된 권유에 마지못해 퇴근 후 찾아갔다가 처참히 살해당했다”고 밝혔다. 특히 “상견례 사흘 전이라 혼수, 예단 문제는 거론된 적도 없는 데 가해자의 말에 의존한 기사로 인해 제 가족과 죽은 딸은 또 한 번의 억울함과 슬픔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청원인은 “그토록 사랑한다던 여자친구를 목 졸라 살해한 것도 모자라 엽기적으로 시신을 훼손한 가해자의 범행은 누가 보아도 주도 면밀하게 계획된 잔인 무도한 범행”이라고 주장했다(2018, 10, 31, 중앙일보). 불과 몇 개월 사이에 연인 관계에서 그리고 과거의 부부 관계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은 모두가 의처증의 증세를 가진 사람의 살인으로 보인다. 위에서 적과 동침의 영화가 보여주는 것과 일치된다는 점에서 이다.

의처증(남편이 부인을 의심하는 것), 의부증(부인이 남편을 의심하는 것)은 프로이트가 1911년에 편집증(의처증, 의부증은 정신의학의 전문 용어가 아니고 일반사람들의 용어)의 원인을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호모섹스(동성애)를 숨기기 위해서 파트너에게 투사를 해서 파트너의 섹스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노트를 했다. 이후에 수 많은 분석가들이 그 증거를 찾으려고 노력을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런데 치료자가 36년 동안 편집증 즉 의처증과 의부증을 가진 사람들을 치료를 하면서 프로이트가 지적한 섹스에 대한 방어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가 있었다. 의처증과 의부증의 특징이 파트너의 섹스 문제를 거론한다는 것이다. 한 의처증 남편은 부인이 직장에서 친한 남자 동료와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을 알고 그 남자와 섹스 관계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라고 추적하고 미행하고 간섭하고 실토를 자인하라고 폭력을 행사를 했다. 그러나 그 부인은 결혼 2년이 지나가면서 그제 서야 남편의 행동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실토를 했다. 그녀는 결혼 18년 만에 이혼으로 지옥 같은 생활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이혼 시에 그녀는 위자료는 커녕, 오히려 그녀가 위자료로 5천만 원을 지불하고 탈출할 수 있었다고 토로했다. 그녀는 그러한 대가를 지불하고 탈출한 것을 행운으로 생각한다고 고백을 했다. 그녀는 생명의 위협을 느꼈기 때문에 계속해서 산다는 것을 자신의 생명을 담보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한 남편은 부인이 외출을 하는 날에서 몇 시에 누구를 만났는지? 누구와 이야기를 했는지?를 시시콜콜 따지고 질문하고 직접 전화로 그 사람과 연결해서 부인이 그 사람을 만났는지?를 확인하고 일치되지 않는 경우에는 폭력을 행사를 했다. 그러나 남편과 20년을 같이 살았지만 그것이 남편의 병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한 TV에서 부부 문제를 상담하는 것을 보고 나서 부부가 한 부부 상담자와 상담을 받게 되면서 그것이 의처증임을 알게 되었다고 실토를 했다. 의처증, 의부증을 가진 이들의 공통점이 폭력을 행사하고 나면 후회를 하면서 다음에는 절대로 폭력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각서를 쓰고 다짐을 하고 상처 난 부위에 약을 발라주거나 보약을 사와서 칙사대접을 하는 것에 속아넘어가는 것이 피해자의 특징이다.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면서도 그 다음에는 또 다시 똑 같은 폭력과 의심을 되풀이하는 것을 정신분석에서는 과거의 상처의 반복으로 지적을 한다. 또 다른 한 남편은 직장 생활을 하는 부인이 조금만 늦게 퇴근하는 경우에는 누구와 만나서 무슨 짓을 했는지?를 일일이 체크하고 심하면 뒷조사를 하고 미행을 하고 심부름 센터에 의뢰해서 뒷조사를 하게 한다는 것이다. 더욱더 특이한 공통점은 이러한 행동을 금지시키고 있는 것에 위배하면 심각한 폭력이 따라 온다는 것이었다. 이들의 특징은 그들이 항상 조사를 한 증거들 즉 파트너가 거짓말을 하거나 혹은 속이는 것을 증거로 내 세우면서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고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게 막아버린다는 것이다. 상대 파트너는 정직하게 그러한 대화를 하면 의심과 폭력과 강압 때문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인데 의처증, 의부증을 가진 편집증 환자는 그것을 거짓말을 하는 배우자의 확실한 증거로 내세우면서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편집증의 특징들은 의부증의 부인의 경우에도 남편을 의심하는 것은 공통적이라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질식을 느끼는 배우자는 이혼을 결심하게 되면 그 때부터 폭력이 따라오게 된다는 것이다. 파트너가 자신의 컨트롤을 벗어나면 자아의 해체를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죽음처럼 느껴지게 된다 고로 폭력의 악순환은 계속된다.

프로이트가 의처증, 의부증 즉 편집증은 호모섹스의 투사해서 상대방의 섹스 문제를 의심하고 질투하고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불안한 마음을 안정시키지 위해서 상대를 컨트롤 하려고 하는 것으로 볼 때 변태성욕은 섹스가 아니고 섹스라는 포장을 한 폭력이라고 정의를 한 UCLA의과대학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가인 스톨러(Stoller, 1986: 주㈜: 참고)의 경구가 생각이 난다. 변태성욕은 겉으로는 섹스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어린 시절의 섹스의 상처를 사랑이라는 포장지를 씌워서 반복하면서 그의 어린 시절의 상처를 컨트롤하고 있기 때문에 그 상처는 놀이처럼 반복해서 더 이상 상처가 아닌 즐거움으로 즐기고 있다는 것을 지적을 했다. 그러나 그 순간은 즐거움으로 자아가 쾌재를 부르지만 몇 분 후에는 죄의식과 불법으로 체포 된다는 두려움과 위협 속에서 그의 섹스 행동은 계속되는 것이다라고 노트하고 있다.

이러란 맥락에서 보면 의처증, 의부증은 변태성욕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호모섹스의 투사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무의식 속에 있는 동성애와 섹스의 두려움을 ego가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파트너에게 투사를 해서 파트너로 하여금 의심의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해서 계속해서 파트너의 이성과 관계를 지적하고 감시하고 미행하고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가 어린 시절의 상처를 현재에서 반복함으로써 그의 상처에 대한 두려움을 섹스 놀이 즉 파트너의 외도를 의심함으로써 그는 과거의 상처를 반복하면서 컨트롤을 하고 있는 것으로 즐거움으로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변태성욕적인 행동이 끝없이 계속되고 있는 것과 의처증, 의부증이 끝없이 파트너를 괴롭히고 컨트롤하고 처벌하고 통제를 하는 것에서 유사점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탈출을 선언한 상대 배우자의 선전포고는 의처증, 의부증을 가진 사람에게는 사형 선고와 같다. 고로 그는 자아의 붕괴를 참을 수가 없다. 고로 끝까지 추적해서 파트너를 굴복시키려고 회유와 설득과 폭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위에서 이혼 4년 후에 6번이나 주소지를 옮기면서 도망을 갔지만 끝내 피하지 못하고 살해당한 부인의 경우를 보라. 끝없이 추적을 해서 같이 살자고 회유하고 설득하고 컨트롤하려고 한 의처증 남편을 보라. 의처증을 가진 사람은 상대방의 외도를 의심해서 끝까지 추적하고 미행하고 뒷조사를 해서 그 자신의 의심의 불신을 파트너의 외도의 탓으로 돌린다. 그러므로 그는 파트너의 컨트롤과 폭력을 수단으로 해서 현재를 컨트롤로써 통제하면서 자신의 무의식 속에서 감추어놓고 있는 동성애의 비밀을 안전하게 숨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끝난다는 것은 그에게는 자아의 죽음을 의미한다. 고로 끝까지 추적해서 살인을 하게 되는 것이다.

편집증을 가진 사람들의 연구에서 정신분석가들은 공통적으로 편집증은 어린 시절에 양육자로부터 학대와 처벌을 받은 사람들로써 자신의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서 외부의 탓으로 투사를 하는 사람들이라고 밝히고 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 환경적인 탓으로 돌리는 것이 습관화 되어 모든 것을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린다는 것이다. 의처증 환자인 파트너들은 자신의 문제를 상대방 파트너의 외도의 탓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말을 절대로 듣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건강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나 충고 혹은 간접적인 경험들을 통해서 혹은 여행이나 직접적인 경험들을 통해서 우리의 자아를 항상 수정하고 고치고 보완을 해서 계속해서 자아가 성장을 해 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편집증을 가진 사람은 절대로 자신의 생각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의 선의를 악의로 해석한다. 왜 아무도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가? 왜 나는 이용을 당하는지? 왜 증세를 가지게 되었는지? 등에 예민하다, 자신의 마음 속에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감정을 투사한 것임을 모르고 있다. 그들이 모든 것을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는 것은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것이 자신을 비난하는 것 보다 더 좋기 때문이다. 편집증 환자들은 세상의 하나 하나를 의심으로 자신을 해코지 하는 것으로 본다. 자신의 자아를 세상에 맞추어서 살아 가야 하는데 세상이 그의 자아에 맞출 것을 요구한다. 최근에 영국에서 정신분석과 심리역동학을 40년 동안 연구한 호주 시드니 대학의 레셀 미아래 (Russel Meares, 2005: 주㈜: 참고)교수는 편집증을 어린 시절의 상처를 현재에서 반복하고 있는 것으로 노트를 하고 있다. 정신분석 그리고 심리치료에서는 편집증 환자들의 생각과 사고가 거의 변하지 않는다고 노트를 하고 있다. 그들은 어린 시절의 상처 받은 자아가 고착 되어서 남아있기 때문에 외부의 자극과 정보들이 자아에 입력이 되면 모두가 원시적인 자아의 원형에 입사되어져서 동화 되어버리기 때문에 그의 사고 방식은 변함이 없이 그대로 어린 시절의 패턴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현재를 과거의 반복으로 경험을 하고 있다고 본다. 이제 치료자가 정신분석 심리치료에서 편집증을 치료한 실제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치료자 한데서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 22세의 한 젊은이인 A군의 1 6개월 동안의 치료 과정에서 의처증과 비슷한 사건이 치료의 후반기에 일어난 것이었다. 그는 군대 생활에서 부적응자로 귀가 조치 되어 공익 근무요원으로 일을 하다가 그의 아버지가 치료자에게 의뢰해서 치료를 받게 되었다. 1년 정도의 치료 과정에서 그는 5년 동안 매일 같이 호주머니에 넣어 다니면서 위급할 때 입에 털어 넣었던 약물을 점점 줄여나갈 수 있었고 자아의 힘을 개척을 완전히 약물의 중단을 성공적으로 해 나가게 되면서 치료에서 좋은 결과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그의 직장에서 30대 초반의 여성 상사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치료자에게 고백을 했다.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희망이고 좋은 현상으로 칭찬을 해 주었다. 그가 좋아하는 직장의 상사는 자아가 바로 선 자신감이 있는 여성으로 인물도 예쁘고 동료들 한데서도 인기가 있고 그녀가 사귀고 있는 연인이 이미 있다고 치료자에게 소개를 했다. 그는 그녀가 좋아서 매일 같이 그녀에게 선물을 한 개씩 사가지고 전달을 했다. 값비싼 선물은 아니었지만 매일같이 초코빵 혹은 커피 혹은 장미 꽃 한 송이 혹은 사탕 한봉지 등을 전달을 했다 그런데 그녀가 싫어한다고 치료자에게 호소를 했다. 치료자는 그러한 행동은 스토커에 해당된다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것은 짝 사랑으로 오히려 그러한 행동이 상대방에게 질식을 느끼게 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 A군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녀를 위해서 목숨까지 내 놓을 수 있을 만큼 그녀를 사랑하는데 그것이 왜 나쁘냐? 라는 것이었다. 치료자는 사랑은 너무 가까이 가면 그 대상의 자치권을 침해하기 때문에 상대방은 거부감과 질식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을 해 주었지만 A군은 이해가 되지 않다고 노발대발했다. 선물은 상대방이 좋아할 때 상대방이 갈구할 때 제공해야 가치는 느끼는 것이라고 이야기를 해주면서 영어의 선물인 gift는 독일어로 독(poison)이라고 소개를 해 주었다(Shengold, 1989, 1999: 주㈜: 참고). 선물을 제공하는 사람은 자신의 욕구에 따라서 상대방의 의향에 관계 없이 자신이 사랑을 하는 열렬함만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방도 자신의 마음처럼 당연히 따라오고 좋아해줄 것이라고 오판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을 해주었다. 그는 자신이 상대방을 위해서 목숨을 바칠 수 있고 상대방을 위해서 노예가 될 수 있다고 자신의 가슴 속에 불타오르는 사랑을 받아주지 않았다고 상대방을 해코지를 하겠다고 했다. 치료자는 그러한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짝 사랑이고 동시에 스토커라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치료자는 A군의 열정을 막아야 했다. 그 시점에서 다행히도 그 여성 상사는 다른 지역으로 전근을 갔기 때문에 그녀와 관계는 일단 차단이 되었다. 그는 그 결과로 심한 우울증에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의 어린 시절의 분석 과정에서 그는 어머니로부터 사랑의 결여와 아버지와 어머니의 잦은 부부 싸움으로 따뜻한 사랑의 결여가 분석으로 이미 밝혀진 상태였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 속에서 갈구하는 엄마로부터 사랑을 연인으로부터 채우려고 한다는 것이 지적되면서 A군은 어린 시절에 박탈당한 사랑의 치료에 초점을 맞출 수가 있었다.

이제 정리를 해 보자. 의처증, 의부증을 가진 사람들은 연인과 초반기 관계에서 사랑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바칠 수 있다는 각오로 열렬하게 사랑을 표현을 한다. 매일 같이 방문해서 상대방의 호의무사를 자처한다. 옆에서 한시라고 눈의 떼지 않고 주의 관심을 퍼붓는다. 값비싼 최고의 선물 공세로 그리고 파트너가 좋아하는 것은 어떤 것이라도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고 아낌없이 헌사를 한다. 대인관계에서 경험이 많이 없는 파트너들은 상대 파트너의 이러한 사랑의 공세와 선물의 공세에 천생연분의 짝을 이제서야 찾게 되었다고 두 손을 모아서 반길 수 있다. 마침내 원하던 짝을 찾았다고 감지덕지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이미 늦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는 의식적으로 일부러 그렇게 과장해서 속임수로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배우자에 대한 행동은 그 자신은 진심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는 그것이 사랑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다. 그는 그것이 병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 그의 무의식 속에는 그의 어린 시절의 상처의 치유를 위해서 그 대상을 선택한 것이라는 것은 모른다는 것이다. 문제는 상대 파트너의 자치권을 침해해서 사적인 공간의 허용을 인정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파트너는 질식을 느끼게 된다. 고로 반항하거나 거부하거나 떠날 것이라고 경고를 하게 된다. 이 때부터 파트너 사이에 밀고 당기는 싸움이 시작된다. 파트너는 어린 시절에 늘 박해와 학대의 피해자이기 때문에 힘으로 상대를 컨트롤해야 불안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고로 그는 좌지우지 해서 파트너를 노예처럼 지배하려고 한다. 그의 말과 행동에 순수하게 따라주면 큰 문제는 없다 그러나 그것은 상대방에게 노예가 되는 것이다. 굴종적으로 복종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에서 폭력과 구타와 보복이 따르게 된다. 내가 너를 위해서 나의 모든 것을 바치고 헌신하고 희생을 했는데 너는 나를 배신하느냐? 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복수를 맹세한 메디아의 경우를 보라. 고로 이러한 사람들이 끝까지 추적해서 배신자를 살해하는 것이 바로 적과 동침에서 그리고 4년 전에 이혼한 남편이 부인을 끝까지 추적해서 살해한 사건이 바로 이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편집증 환자들이 상대방을 소유물로 생각하고 그 소유물을 마음대로 조종하지 못하면 상대방을 파괴시켜버린다. 그것을 소유하지 못할 바에는 아무도 그것을 소유하지 못하게 파괴시켜버리면 상대방은 영원히 나의 소유가 된다는 분석은 대상관계 이론의 창설자인 메나리 크레인(Melanie Klein)의 논문인 질투심과 고마움(Segal, 1979, 1993, 2003: 주㈜: 참고)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우리 나라에서도 이혼의 유책 사유의 6가지 항목 중에서 배우자의 편지, 휴대폰을 마음대로 열어보는 경우에는 이혼할 수 있다는 조건이 포함되어져 있다는 조항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것이 바로 자치권의 침해, 배우자라고 해도 개인적인 창의적인 공간이 허용되어져야 한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 아닌가? 문제는 결혼을 해서 살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결혼을 하려고 준비를 하는 사람들 그리고 연인과 사귀고 있는 사람들, 앞으로 사귀려고 하는 사람들은 의처증과 의부증의 실태를 알고 이 글을 통해서 평생의 족쇄를 예방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결혼의 부부 관계의 핵심을 족집게로 집어서 표현한 레바논 태생의 기독교 시인인 칼힐 지브란의 시를 인용하면서 이 글을 끝내고자 한다. 그대들 포도주를 마시되 한 잔에서 마시지 말지어다, 사랑의 축배를 들되 각자의 잔에서 마실지어다, 기타의 두 줄도 떨어져 있어야 아름다운 소리가 나고, 잣나무와 가문비 나무 두 그루도 서로의 그늘에서 자랄 수 없는 법, 그대들은 하나지만, 두 사람 사이에 햇볕과 바람이 항상 자유롭게 드나들게 하라(김종만, 2003, 결혼과 가족과 치료, p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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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참고: 로버트 스톨러(Stoller). 변태성욕: 미움의 에로틱함의 표현(1986), 고통과 열정(1998), 섹스의 흥분: 에로틱한 고통의 열정(1979), 쪼갬: 여성의 남성상의 치료 사례(1997). 친밀관계의 커뮤니케이션: 에로틱과 문화의 연구(1990).

           : 센골드(Shengold). 영혼의 살인: 어린 시절의 학대와 박탈 효과(1989), 영혼이 살인 재고: 심리치료에 대한 고통과 사랑과 기억(1999).

           : 세갈(Segal). 메라니 크레인(1979), 치료적인 정신분석(2004), 꿈과 상상과 예술(1993).

           : 미아래(Meares), 놀이의 은유(2005), 보드라인 성격장애의 해리 모델(2012), 친밀감과 고립(2013), 보드라인 성격장애와 대화 모델(2013)

           : 스티브 롱(Steves-Long, 1983). 청소년과 성인 초기

           : 길리간(Gilligan, 1996). 폭력

           : 몰러(Mahler, 1967). 인간 유아의 마음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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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저서들은 우리나라 말로 번역되어 치료자가 소장하고 있으니 치료자의 정신분석 홈 페이지에 전문서적 안내에 들어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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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자에게 정신분열증(조현병)으로 치료를 받은 24세의 C양의 치료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카우치에 누워서 정신분석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과 분석가

대상: 24세의 대학 휴학생 C

증세: 3년동안 정신 병원에 드나들고 있었음

연결: 인터넷의 정신분열증(조현병)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정신분열증의 치료에 대한 내용을 읽고 난 후에 치료자에게 전화로 치료를 받고 싶다고 연락이 왔음

치료 기간: 1주일에 4회로 1회에 2시간씩 1주일 동안 심리분석 치료를 받았음

치료 결과: 1주일 치료 후에 치료자에게 분노하여 치료를 중단하게 되었음. 치료 실패 사례임

치료의 과정

 치료 접촉: C양은 전화로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받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치료 비용과 치료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후에 C양은 자신은 돈이 없어서 6개월 계약을 3개월로 해 줄 수 없느냐고 했다. 심리치료에서는 최소 기간이 6개월이라고 이야기를 했으나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서 그렇다고 했다. 치료자는 심리치료에서 3개월 동안의 치료는 치료 효과가 눈에 보이지 않으니 적어도 5개월-6개월 정도 시간이 지나야 치료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치료 계약을 6개월로 한다고 설명을 했다. 그러나 C양이 자신은 계속해서 치료를 받고 싶은데 먼저 3개월로 계약을 하고 그 후에 다시 계속해서 치료를 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보챔 때문에 일단 치료를 시작해보자고 허락을 했다. C양은 약속 시간에 아버지와 함께 치료실에 나타났다. 아버지는 심리치료가 어떤 것인지 잘 몰라서 C양이 인터넷에 들어가서 치료자의 홈페이지를 발견하고 치료를 받고 싶다고 아버지에게 졸라서 찾아오게 되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C양이 정신분열증으로 3년동안 시달리면서 정신병원에 계속해서 드나들고 있다고 소개를 했다. 치료자는 처음에 C양이 정신분열증인줄 몰랐기 때문에 보통 6개월의 치료 계약 기간을 3개월로 하기로 했으나 정신분열증이면 3개월로는 효과가 없으니 6개월로 해야 한다고 했으나 아버지는 딸인 C양과 함께 막무가내로 졸랐다. 3개월 동안 치료를 받으면서 치료 비용을 마련해서 계속해서 치료를 받으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소연을 했다. 치료자는 정신분열증이면 1주일에 1회로는 다음 1주일 동안 참기 어렵다고 했으나 아버지와 딸의 요청에 그렇게 하기로 하고 3개월 동안에 1주일에 1회로 치료 계약서를 작성했다.

치료 제 1회기(Session 1) : 치료자는 C양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어떤 것이든지 좋으니 하고 싶은 이야기부터 먼저 해보라고 했다. 순서는 관계없이 논리적인 것에 신경 쓰지 말고 이야기를 해보라고 했다. C양은 어떤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면서 지금은 재활 치료 센터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재활 치료가 어떤 것인지 설명을 해보라고 했드니 약 34명의 환자들이 모여서 첫 시간에는 서로 아무나 만나서 서로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고 그 다음 시간에는 강의실에 모여서 치료를 하시는 선생님께서 대인관계 기술에 대해서 강의를 한다고 했다. 언제부터 그곳에 다니게 되었느냐고 했더니 약 3개월 정도 되었고 하루에 6시간 정도로 재활 치료를 받고 있으며 아침 10시에 가서 오후 4시까지 모여서 같이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C양에게 어떤 문제가 제일 힘이드느냐는 치료자의 물음에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있으면 무슨 이야기를 해야할지 모르겠고 다른 사람들에게 감정을 말로 잘 표현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어린시절의 성장 과정: C양은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기억이 나는 것은 엄마가 유흥업소에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보통 엄마는 새벽 1-2시 경에 집에 들어왔으며 아버지는 집에 늘 들어오지 않았고 아버지가 바람(외도)을 피운적이 있다고 했다. 엄마도 바람을 피운적이 있고 지금도 부모님은 서로 말을 잘 하지 않고 지내며 사이가 좋지 않다고 했다. 어린 시절에 2살 아래인 남동생을 C양이 늘 보살펴주었으며 중학교 3학년 때까지 남동생과 C양이 늘 같이 붙여다녔고 집에 같이 있었던 기억 박에 없다고 했다. 남동생에게 언제나 모든 것을 다 챙겨주고 돌보아주었으나 남동생에게 화풀이를 하고 언제나 남동생을 자기 마음대로 했다고 눈물을 흘렸다. C양 자신이 남동생에게 권위적이고 위압적이고 처벌적이었고 남동생이 고등학교 학생이 되면서 남동생의 신체가 사춘기를 통과하면서 커지게 되고 힘이 C양보다도 강하게 되면서 남동생이 이래라 저래라하는 C양의 말을 듣지 않게 되면서 남동생과 힘겨루기가 시작되었고 남동생을 자신의 마음대로 다루지 못하면 어떤 방법으로라도 남동생에게 화풀이를 해왔다고 했다. 남동생이 한번은 자살하고 싶다고 부모님에게 한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학교에서는 동료들과 관계가 늘 좋지 않아서 따돌림 비슷하게 괴로움을 당하고 있었고 집에서는 남동생과 신경전 때문에 늘 고통 속에 살아왔다고 했다. 남동생은 1년 전에 군 입대를 하게 되었고 부모님의 권유로 둘이 서로 말을 하지 않고 지내다가 남동생이 군 입대 직전에 화해를 하라는 부모님의 명령으로 진심이 아닌 피상적으로 작은 소리로 화해를 한 것이 후회스럽다고 눈물을 흘렸다. 어린 시절에 늘 집안에는 남동생과 자신 두 사람만이 웅크리고 부모님이 집에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던 기억이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한번은 할아버지가 집에 와서 C양과 남동생이 둘이서 있는 것을 보고 통곡하면서 울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는 과거에 공무원으로 있었으나 지금은 다른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어린 시절에 엄마와 함께 아버지가 근무하는 관청의 정문 앞에서 아버지를 기다리던 기억이 있고 한번은 아버지가 가구와 집기 등의 살림을 집안으로 가지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아버지가 다른 여자와 살림을 하다가 그 살림들을 집으로 가지고 오는 것이구나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C양은 대학 1학년 때 학교를 휴학하고 집에서 살림을 도우다가 알르바이트를 하게 되었고 그 때 편의점에서 1달 동안 일을 할 때 편의점 주인에게 일을 야무지게 잘 하지 못한다고 비난을 많이 받게 된 것에 문제가 표면화되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 일이 계기가 되어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는 시발점이 되었다고 회상을 했다. 그후에 어머니와 함께 광고 전단지를 돌리는 일을 3개월 정도 하게 되었고 그 때 어머니와 의사 소통이 잘 되었고 가장 행복했던 기간이었다고 회상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머니와도 의사 소통이 잘 안되어 엄마와 대화를 기피하고 있다고 했다.

치료 제 2회기 (Session 2): 1주일에 1회씩 2시간 치료 시간을 약속하고 갔으나 그 다음날에 1주일에 2회로 늘리고 싶다고 다음날에 오면 되지 않겠느냐고 전화 연락이왔다. 치료자는 시간을 정해서 좋다고 허락을 했다. 치료 시간에 올 때마다 아버지가 함께 동행을 한다는 것을 알 게 되었다. 왜 혼자 올 수 없느냐고 물었더니 C양은 불안해서 혼자 다닐 수가 없고 외출을 할 때는 반드시 어머니 혹은 아버지가 동행을 해야 한다고 했다. 불안으로 인한 공황 장애가 분명했다. C양은 재활 치료가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치료자에게 오겠다는 약속을 했기 때문에 약속 시간보다 약 30분 빨리 오게되었고 치료자는 C양을 치료실로 안내해서 인터넷으로 컴류터 바이러스 치료하고 있으니 5분 정도 앉아서 기다리라고 했으나 치료실에 들어오자마자 "선생님 불안해서 미치겠습니다. 저에게 안락사할 수 있는 약을 주세요."라고 치료자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면서 끝없이 위의 말을 반복했다. 치료자는 컴퓨터를 끄고 C양을 치료실에 데리고 와서 무슨일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C양은 오늘 재활 치료 시간에 34명의 환자들 가운데 아무나 서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에 40대 중반의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아저씨가 "나하고 결혼할래" "나하고 사귀어 볼래?"라는 말에 불쾌감을 느끼고 그 감정 때문에 불안 속에 빠지게 되었다고 했다. 불안하면 견디기가 힘들고 심하게 불안이 오면 손 바닥으로 팔을 내리치고 머리를 벽에다 대고 방방 박거나 딩군다고 했다. 지금 이대로는 집에 가면 또 불안에 휩싸이게 될 것이기 때문에 선생님이 저에게 어떤 조치를 취해달라고 했다. 불안 때문에 집에 갈 수 없다고 울면서 하소연을 했다.

 치료자는 C양의 불안이 극도에 달해서 긴장감이 한계선에 도발해서 참을 수 없어하고 있음을 알 게 되었다. 최근에 극도의 불안 때문에 있었던 이야기를 해보라고 했다.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면 불안이 감소된다고 C양을 위로하면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라고 격려를 했다. C양은 지난 토요일에 할아버지 집에 가게 되었고 할아버지가 C양은 데리고 인근에 뒷동산으로 올라가서 C양에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하면서 잔소리를 했고 불쾌했다고 했다. 할아버지 집에 돌아와서 하루 밤을 자게 되었는데 밤에 한숨도 자지 못하고 불안 때문에 움직이지 않고 꼼짝하지 않고 그대로 날밤을 세우게 되었다고 했다. 그 후에 집에 와서 손목을 때리고 머리를 벽에다 찧고 몸을 딩굴고 했다고 했다. 그렇게 하면 불안이 조금 감소하는 것 같아서 그렇게 하고 있다고 했다. C양의 손목에는 멍든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전에 비슷한 이벤트가 있으면 이야기해 보라고 했다. C양은 2주일 전에 사촌 언니가 C양에게 시내에 나가서 맛있는 것도 사주고 외출을 하자고 해서 따라 나갔다고 불안이 오는 것 같아서 다시 집으로 되돌아오게 되었고 사촌 언니를 보내고 극도의 불안 상태에서 딩굴고 머리를 찧고 손목을 때리고 했다고 했다. 심하면 구토가 나오고 위가 쓰리고 소변이 잦아진다고 했다. 또 재활 치료 1달 쯤에 같이 치료를 받고 있던 어떤 언니와 대화 시간에 이야기를 하다가 그 언니가 C양의 등을 때리고 도망을 가는 바람에 분노해서 말을 하지 못하고 끙끙거리다가 불안이 엄습해서 다른 환자들은 모두 강당에서 대인관계 기술에 대한 강의를 듣고 있는데 C양은 강의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복도를 걸어다니다가 견딜 수가 없어서 양호실에 가서 누워있다가 정신병원의 응급실로 실려갔다고 했다. 정신병원에서 1주일간 입원한 후에 퇴원한 후에 지금까지 2개월 동안 재활 치료 센터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C양은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되었으나 집에 돌아가면 그 불안이 두려워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면서 치료자에게 어떤 마술적인 방법을 요구했다.

 치료자는 C양이 대인관계가 안되기 때문에 친척이나 동료들을 만나면 긴장하게 되고 그 긴장이 참을 수 있는 한계선을 넘어가면 극도의 불안에 휩싸여 몸을 딩굴거나 손목을 때리거나 머리를 방방 찧는 행동을 한다는 것을 알 게 되었다. 또 극도로 불안에 휩싸이게 되면 C양은 부모님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안락사 시켜주세요. 안락사하는 약물을 주세요."라며 부모님에게 보챈다는 것을 알 게 되었다. C양이 위기 시에 되풀이하는 행동 패턴임을 알 게 되었다. C양은 몇 년 전에는 한 달에 한번 정도 이런 패턴이 진행되었으나 최근에는 사소한 일에도 이런 패턴이 연속되어 1주일에 한번 두 번 정도로 늘어났다고 어쩔줄 몰라 했다. 치료자는 C양에게 불안에 대한 응급 처치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서 긴장 이완 훈련을 30분 동안 하기로 하고 눈을 감고 긴장을 풀고 팔과 다리를 펴고 호흡을 천천히 들어쉬면서 마음 속에 잔잔한 호수만 생각하게 하였다. 30분 후에 C양은 긴장이 풀리고 안정을 되찾게 되었다. 이 훈련을 하면서 치료자는 C양에게 "손님은 긴장이 되면 거꾸로 하고 있습니다. 긴장이 되면 손목을 때리고 머리를 벽에다 방방 거리며 찧고 몸을 딩구는 행동은 긴장을 증폭시키는 행동입니다. 긴장이 되면 온 몸이 극도로 근육에 힘이 들어가서 참을 수 없게 됩니다. 고로 호흡을 천천히 하고 몸에 긴장을 빼고 호수를 생각하면서 조용히 앉아서 긴장 이완 훈련을 해 보세요. 오늘부터 매일 같이 치료가 끝나는 시간 30분 전에 이 긴장 이완 훈련을 할 것입니다. 극도의 긴장 때문에 불안에 휩싸이게 되는 것이므로 생리적으로 긴장이 되면 소화가 안되고 구토가 나오고 소변이 잦아집니다. 긴장을 이완하게되면 극도의 불안은 찾아오지 못하게 됩니다."라고 호흡에 맞추어서 조용히 일러주었다. 치료자는 C양에게 그 다음날에 시간을 내어 줄 터이니 치료를 받으러 오라고 했다. 극도의 긴장감에서 벗어나는 응급 초치가 시급함 때문이었다.

치료 제 3회기 (Session 3): 다음 날 치료 시간에 C양은 어머니와 함께 왔다고 했다. 어머니를 치료실 밖에서 기다리게 하고 C양과 분석 치료가 시작되었다. 치료자는 C양이 어떻게 정신병원에 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궁금하다고 했다. C양은 처음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된 것은 3년 전에 인터넷 채팅으로 어느 오빠를 알 게 되면서 그 오빠와 만나서 여관에 가서 성관계를 하게 되었고 그 오빠에게 자신의 문제점을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 완전히 자신의 성격과는 다른 사람의 흉내를 냈다고 했다. 어떻게 흉내를 냈느냐고 물었을 때 성격이 활발한 것처럼 보이려고 하고 자신의 대인관계 문제가 드러나지 않도록 애교를 떨고 그 오빠의 비위를 맞추려고 했다고 했다. 그 오빠가 군에 입대해서 서로 메일을 주고 받으며 지내다가 휴가를 왔을 때 만나서 3회에 걸쳐서 성관계를 했고 그 때 오빠가 옷을 선물로 사주겠다고 했을 때 극구 사양했다고 했다. 맛있는 음식을 사 주겠다고 했을 때 극구 사양했다고 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그 오빠가 돈을 쓰면 돈이 부족할 것이기 때문에 오빠를 배려해서 돈을 쓰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말로써 상세하게 그것을 표현하지 못했지만 오빠를 위해서 그런 행동을 했으나 오빠는 그 후에는 연락이 없었고 그 오빠와의 관계는 끝이났다고 했다. C양은 그 이후에 자신의 자아를 바꾸려고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행동했다고 했다. 방의 벽에 낙서를 하기도 하고 귀신이 C양을 쳐다보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고 했다. 실제로 귀신이 눈에 보였느냐는 치료자의 질문에 눈에 보이지는 않았으나 귀신이 천장에서 자신을 보고 있다는 상상이 들었다고 했다.

 환청이 들리지는 않았으나 귀신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불안해서 미칠지경이었다고 했다. 칼로 벼개를 찌르고 방의 벽에 낙서를 하는 것을 보고 부모님이 인근 정신병원에 입원을 시켰고 정신분열증으로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그 후에 몇 번의 정신병원을 드나들 게 되었으나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부모님이 깨닫게 되었고 XX 대학병원 신경 정신과에 갔더니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C양은 환청이나 환각을 없고 지금은 약물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으니 대인관계 훈련을 받드시 받아서 사람들과의 관계 개선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권유를 받았고 XX 동에 있는 재활 센터에 나가게 되었다고 했다. C양은 재활 치료에 거부감을 많이 느끼고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게 되었으나 부모님은 정신과 의사 선생님의 말을 철썩 같이 믿고 있어서 어떤 일이있드라도 재활 센터에 나가야 한다고 매일 같이 그곳까지 데려다준다고 했다. 치료자는 지금까지 C양의 정보를 분석해본 결과 재활 치료가 필수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대인관계를 하는 기술을 직접 가르침을 받지 않고 그냥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라는 것은 마치 수영을 하지 못하는 사람을 물에 풍덩 집어던져 넣는 것과 같은 효과를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부모님에게 설명을 했다. 먼저 수영을 하는 방법을 알 게 한 다음에 물에 들어가도록 하는 것이 순서임을 강조하면서 대인관계가 되지 않는 사람을 다른 사람과 강제로 관계를 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C양은 더욱 긴장감을 유발하고 불안을 쌓는 것임을 알고 당분간 치료자로부터 어떻게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는가를 어느정도 익숙함을 배울 때까지 재활 치료를 당분간 중지해줄 것을 같이 온 어머니에게 부탁을 하고 아버지에게 따로 전화를 걸어서 당분간 친척을 만나는 것도 친척 집을 방문하는 것도 재활 센터의 치료 등도 중지해줄 것을 부탁했다.

 어느 정도 자기 표현을 할 수 있게 되어 대화 기술을 습득하게 되면 그 때 다시 대인관계를 시도하는 것이 C양에게 도움이 되고 우선 응급 조치로써 C양의 극도의 긴장 상태에 응급 조치를 하는 것이 우선임을 이야기했다. C양의 이런 패턴은 몇 년전에 명절 때 친척 집에서 3일 정도 지내게 되었는데 그 때 나이 어린 동생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실제로는 따돌림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혼자서 따돌림을 당한 것처럼 괴로웠던 것에서 시작되었고 그 때 두번째로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고 최근에는 몇 주일 전에 사촌 언니와 나들이가 가다가 껄끄러워서 되돌아 와서 극도의 긴장에서 오는 불안증세로 자해적 자기 패배적 행동을 되풀이 했고 그 다음에 재활 센터에서 치료를 시작한지 1달 만에 어떤 언니로부터 원하지 않는 불쾌한 공격을 받고 정신병원에 1주일 입원한 것 그리고 지난 주일에 할아버지 집에서 1박하면서 잠을 자지 못해서 집에와서 극도의 긴장에 따른 신체적 불안으로 자해적이고 자기 패배적 행동을 한 등의 분석에서 이러한 조치를 취하게 된 것이었다. 치료자는 C양에게 주말인 토요일 오후에 치료 시간을 내어줄터이니 우선 극도의 긴장에서 오는 불안을 완화 시키는 응급 조치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승낙을 받았다.

치료 제 4회기 (Session 4): 치료가 시작되면서 치료자는 C양에게 목요일, 금요일에 급성 신체적 긴장에서 오는 극도의 불안 때문에 자해적 행동 패턴이 있었느냐는 치료자의 질문에 그런 행동 패턴은 없었다고 했다. 어떻게 그런 패턴을 피할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C양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지난 3회기 동안에는 공감이 잘 형성되어 진행이 잘 되었으나 오늘 치료 4회기에는 분위기가 분노와 적대감정으로 가득차 있는 것을 치료자가 감지하고 치료자에 대한 분노, 불쾌감이 있는 것 같은데 불평이나 불만이있으면 말로써 표현해보라고 했다. C양은 태도가 돌변해있었다. 이야기를 하기 싫다고 했다. 치료자는 목요일 저녁에 C양이 장문으로 메일로써 자신의 문제점등을 상세하게 보낸 것에 대답을 하지 않아 치료자가 미워졌고 금요일 새벽에 전화로써 자신이 견딜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럽다고 호소했을 때 치료자는 그 대답으로 아침에는 부모님과 산책을 가거나 저녁 때 부모님와 운동을 가는 방법으로 나들이를 하고 낮 시간에는 혼자서밖에 나갈 수 없으면 긴장을 풀고 마음을 안정 시키는 긴장 이완 훈련을 해보라고 했다. 치료자에게 언제라고 전화를 해도 되느냐는 질문에는 치료자는 대학에 강의나 다른 사람을 치료하고 있을 동안에는 치료자에게 전화를 하지 말도록 했다. 이러한 것 때문에 C양이 자신의 원하는 것을 치료자가 허용해주지 않는 것에서 오는 불만 때문에 화가 났느냐고 했드니 시인을 했다. 메일을 보내면서 치료자가 돈 때문에 치료를 하는 것 같아서 불쾌하고 돈과 관계없이 진실되게 치료를 하지 않는 것 같다고 불평을 이야기한 것이 기억이 났다.

 치료자는 지난 3일 동안은 치료가 잘 진행이 되었으나 치료 4회기에는 C양의 분노, 미움이 폭발해서 치료자를 처벌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드니 그렇다고 했다. C양은 말문을 닫아 버렸다. 더 이상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치료자는 C양이 요구하는 것들을 다 들어주면 치료자 되지 않는다고 조용해 이야기를 했다. 환자는 치료 비용을 지불하고 치료자는 정해진 그 시간에 환자에게 정성을 다해서 그 시간 동안에 주의 과심을 가지고 최선을 대해서 봉사하는 것이 치료의 과정 임을 이야기했다. 치료자가 대학에 강의를 하거나 다른 환자들과 치료를 하고 있을 동안에는 C양이 원하는대로 모든 요구를 들어줄 수가 없음을 이야기했다. 치료가 끝날 시간이 되어서 치료자는 C양에게 "오늘처럼 이렇게 이야기를 하기 싫어서 침묵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치료에서 종종 발생합니다. 이러한 일은 다른 환자의 경우에는 1달에 1회 정도로 나타나서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C양의 경우에는 1주일에 1회씩 나타나면 치료 기간이 다른 사람들보다 2-3배로 기간이 늘어나기 때문에 치료 비용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만약 부모님이 그 치료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고 느껴지면 치료 초반기에 치료를 그만두는 것이 치료 비용면에서나 시간적인 면에서 효과적일 것입니다. 오늘은 시간이 다 되었으니 집에가서 다시 꼼꼼히 생각을 해보고 결정을 하세요. 만약 치료를 계속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월요일에 전화로 시간을 예약해 주세요"라고 이야기를 끝내고 그날 치료를 마감했다.

치료 실패의 원인: C양은 월요일에 전화로 치료 예약을 하지 않았다. 대신에 C양의 아버지께서 전화가 왔다. C양이 더 이상 치료를 받고 싶지 않다는 말을 했다고 했다. 치료자는 상세하게 왜 C양이 치료자에게 분노하는가의 이유를 아버지에게 설명했다. C양이 원하는대로 치료자가 들어주지 않는다는 분노 때문임을 지적했다. C양이 원할 때마다 전화를 받아 주지 않는다는 것과 C양에게 치료자는 치료 보다는 돈에 관심이 많게 느껴진다는 것 그리고 치료 시간에 맞추어서 와야하고 치료 시간이 끝나면 떠나야 하는 것이 기계처럼 느껴져서 너무 신경이 쓰인다는 것 등이었다. 후자의 경우에는  C양은 지금까지 3년 동안 집안에서 소일해서 시간 개념이 없다는 것과도 관계 있었다. C양은 정해진 치료 시간에 맞추어 오는 것이 돈과 관계되는 것같다고 치료 3회기 때 불평을 한 적이있었다. 치료 실패의 근본 원인은 치료의 룰을 위배한 것이라는 점이었다. 치료 초반기에 6개월간 치료 계약을 한다는 룰을 위배한 것 그리고 치료 비용이 3개월 분밖에 없어서 치료 기간을 3개월로 허락해준 것이 문제의 시발점임을 알 수 있었다. 치료 4회기 때 C양이 이야기를 하기를 거부했을 때 치료자의 마음 속에는 분노, 적대 감정이 느껴졌다. C양의 분노가 치료자에게 전달되어 투사 동일시로 느껴짐을 알 수 있었다. 전문 용어로 반전이를 느낄 수 있었다. 치료자는 C양을 달래고 어루만져서 이야기를 하게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 때 치료자는 만약 C양이 초반기부터 반전이를 느끼게 하면 치료 기간에 엄청나게 길어질 수 있음을 생각했다. 이미 1주일 만에 4회 치료 회기로써 총 24시간의 치료 시간 중에 이미 8시간을 사용했고 3주일 즉 한달이 안 되서 24시간이 다 사용되어 사라진다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3 주일 동안에 치료 효과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치료자는 알고 있었다.

 만약 치료 효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부모님은 치료 비용은 지불했는데 치료 효과가 없다는 불평을 하게될 것이고 치료자는 원망 불평을 당하게 되어있다. 그렇다고 계속해서 치료를 받아보라고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C양은 치료를 계속하면 확실하게 치료가 될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치료자는 환자와 치료자가 서로 마음이 맞아야 즉 공감이 형성되어야 치료가 잘 진행될 수 있지만 지금처럼 분노와 미움이 겹치면 치료 기간은 몇배로 늘어난다는 것을 이야기해주었다. C양의 부모님이 치료 비용을 걱정하지 않도록 지원해준다면 반전이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른 환자들의 경우에는 반전이가 등장해도 잘 극복해나갈 수 있었지만 C양의 경우에는 치료 비용 문제가 걸려 있었다. 치료 비용을 6개월을 지불한 사람들은 1주일에 3회 정도로 6시간이나 4회로 8시간을 사용해도 적어도 2개월내지 3개월은 견딜 수 있으니 그 때는 어느 정도의 치료 효과를 느낄 수 있게 된다. C양의 경우에는 48시간 정도 즉 6개월의 치료 비용을 지불했다면 극도의 긴장으로 인한 불안에 대한 응급 조치를 할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으나 한달도 안되는 3주일 동안은 별로 효과가 나타날 것 같지 않았고 그 와중에 반전이 즉 이야기를 하기 싫어하고 말 문을 닫아 버리면 3주일의 효과도 절반으로 감소한다는 것을 치료자는 알고 있었다. C양 역시 부모님의 치료 비용 때문에 처음부터 6개월을 할 돈이 없어서 3개월만 하자고 했다. 치료자는 그 때 정신분열증이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허락을 한 것이었고 C양도 치료를 6개월까지 계속하면 부모님이 그 치료 비용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 고 있었다. 결국 치료자의 잘못된 치료 룰의 파괴와 C양이 치료자를 마음대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 다루겠다는 무의식적인 태도가 치료를 파괴 시킨 것임을 알 수 있었다. C은 자신이 부모님을 성질부리기로써 마음대로 컨트롤하고 있는 것처럼 치료자도 자신의 마음대로 컨트롤하려고 하는 부모님과의 관계 패턴이 재등장하고 있음을 모르고 있었으나 치료자는 이것을 해석하지 않았다. 이유는 치료가 이미 중단되었버렸기 때문이었다.

C양의 치료 실패 케이스는 심리치료에는 반드시 치료의 룰(rules)이 있고 그 치료의 룰(rules)을 따르지 않으면 치료는 파괴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 좋은 교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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