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적 공간?

 

물리학과 심리학은 서로 반대가 된다. 글자 그대로 풀이를 하면 물리학(物理學)은 세상 만물의 이치를 연구하는 학문이고, 심리학(心理學)은 마음의 이치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물리학은 형체가 있는 사물들의 연구이다. 객관적인 연구를 할 수 있다 고로 그 물건을 눈으로 보고, 만지고, 측정하고, 비교하고, 5감각을 동원해서 원하는 방법으로 관찰하고 데이트화(수학화) 할 수 있다. 심리학은 형체가 없는 학문이다. 주관적인 학문이다.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고 오로지 5감각으로 느낄 수 있다. 이것을 수학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이 발표 되면서 심리과학이 등장했다는 것은 이미 앞선 글들에서 여러 번 밝혔다.

심리(心理)라는 말 그 자체도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상상적인 것인데 상상 속에 또 공간이 필요하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심리적 공간이라는 말은 정신분석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인간에게 심리적 공간이 필수적이다, 이것이 확보되어지지 않으면 치명적인 붕괴로써 정신장애들로 연결된다는 것을 논의하면서 인간이 심리적 공간이 필요한가? 라는 것을 소개하고자 한다.

의학의 등장은 그리스 시대에 히포크라테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그래서 히포크라테스가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심리과학이 등장한 것은 1879년에 등장(독일의 생리학자인 분트)한 것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심리학의 역사가 140년 밖에 되지 않는다. 특별히 정신분석학은 1895년에 등장(오스트리아의 신경학자인 프로이트)한 것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124년 밖에 되지 않는다.

심리학이 공부하기가 어렵다는 것은 심리학의 용어들이 추상적인 용어들이어서 이해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것도 한가지 이유이다. 어떤 마음의 현상을 설명하는데 그것에 대한 적당한 용어가 없기 때문에 새로운 신조어들이 등장하게 되면서 그 용어들을 설명하고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말이다. 프로이트가 마음의 현상을 물리, 화학, 수학적으로 설명을 하면서 인간의 마음이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병이 들게 되는가? 이 병든 마음을 어떻게 치료하는가? 라는 것을 밝히고 치료를 하게 된 것이 정신분석학이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마음을 설명하면서 그리스 신화에서 많은 인용을 했다. 나르시즘이라는 말은 그리스 신화의 나르시우스의 이야기에서 따온 것이다. 나르시즘이라는 용어는 정신분석을 공부하는 사람에게 그리고 정신분석적으로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용어이다. 학자들의 나르시즘에 대한 연구들도 다양하다. 프로이트는 제 1 차 나르시즘과 제 2차 나르시즘이라는 용어를 사용을 했다. 1 차 나르시즘은 인간의 출생의 최초의 시점에 해당된다. 2차 나르시즘은 병적인 것으로 치명적인 정신장애로 프로이트는 정신분석에서 이것은 치료할 수 없으니 치료에서 금기로써 천명을 했다. 물론 이후에 많은 정신분석가들에 의해서 나르시즘 장애에 대한 프로이트의 이론을 응용해서 지금은 나르시즘 장애들이 치료되어지고 있다. 여기에서는 나르시즘에 대한 설명은 이 글의 범위를 넘어가기 때문에 다음의 글에서 다루게 될 것이다. 오디프스 콤플렉스 라는 말은 그리스 시대 3 사람의 대표적인 비극작가인 소포클레스의 작품인 오디프스 왕의 이야기에서 프로이트가 따온 것이다. 프로이트의 대명사가 오디프스 콤플렉스 이다. 이것이 없다면 정신분석이라는 학문 자체가 성립되어지지 않는다)(Ellenberger, 1970: 주㈜: 참고)(더 상세한 오디프스 콤플렉스에 대해서 알고 싶은 사람은 다음의 글에 들어가보라).

이러한 현상은 인간의 마음을 설명하는데 적당한 용어가 필요하기 때문에 생겨난 현상이다. 정신분석은 프로이트가 독일어로 쓴 글이다. 그런데 이것을 영어로 번역을 하면서 영국의 정신분석가인 제임스 스트라치(James Strachey)가 독일어로 쓴 자아(Ich)와 원초자아(Itch)라는 말이 영어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실적 자아(ego)로 그리고 원초자아(Id)로 신조어를 만들었다는 것은 이미 여러 차례 밝혔다. 이것이 정신분석에서 독일어로 쓴 정신분석이 영어의 원본이 되어버린 것이다. 독일어의 정신분석 원본은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다. 독일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유태인 학문으로 말살시켰기 때문에 지금은 독일에서 정신분석을 연구하려고 하는 사람은 영어의 정신분석을 독일어로 거꾸로 번역해서 사용하고 있다(Ernest Jones, 1953, 1955, 1957: 주㈜: 참고).

더 붙여서 심리적 현실? 그리고 이마고(imago)? 라는 용어 역시 마찬가지로 정신분석가들에 의해서 사용된 신조어들이다. 심리적 현상과 심리적 공간은 완전히 다르다. 심리적 공간은 이후에 상세하게 이 글에서 다루게 된다 그러나 심리적 현실은 간단하게 설명을 하면 어머니 혹은 아버지는 여러 명의 자녀들을 다 같이 차별이 없이 사랑한다고 말을 한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자녀들은 부모님이 자신을 형제들과 똑 같이 사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느끼지 않는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서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 30대 초반의 A군은 특별히 어머니가 그를 3명의 여동생들과 차별을 해서 여동생들에게는 사랑을 제공했는데 그에게는 미움과 처벌의 대상이 되었다고 분개했다. 그는 고교 시절에 야간 자율학습을 하고 집에 귀가 할 때 잠을 자고 있는 어머니를 어떻게 살해할 것인가? 타월로 질식, 목을 졸라서, 약물로, 칼로 등등으로 6개월 동안 어머니를 어떻게 살해할 것인가? 라고 계획을 했다가 수능을 치고 나서 그 생각은 사라지게 되었다. 대학 졸업 후에 그는 자살을 결심하고 실행을 하려고 할 시점에서 우연히 서점에서 치료자가 쓴 저서인 ”(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을 보고 나서 그가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받게 된 젊은이였다. 그가 초등학교 6학년 때 그의 어머니가 혹시 계모가 아닌가? 라고 의심을 해서 호적등본을 떼어보았으나 친모로 확인을 했다고 했다. 여기에서 치료를 받으러 온 A군의 현재의 마음을 심리적 현실이라고 부른다. 정신분석가들이 그 환자의 심리적 현실을 모른다면 심리치료 자체가 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아니고 그 환자의 심리적 현실을 파악하는 것이 정신분석가들의 제 1 차적 의무가 아닌가?  그런데 이마고(imago)라는 말은 심리적 현실과 똑 같은 말로써 사용되는데 학자들마다 그 용어를 즐겨 사용하는 사람들이 다르다.

정신분석에서 이마고 라는 말은 필수적인 용어이다. 이 말은 융(Jung)이 스위스의 시인인 칼 스피텔러(Carl Spitteler)(1919년에 노벨상 수상)의 소설의 제목에서 따온 말로써 심리적 현실과 같은 용어로 이후에 정신분석가들의 전용어가 되었다. 이후에 심리적 현실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면서 이 용어는 주로 대명사로 사용되어지게 된다. 정신분석가들이 그들의 소식지로 이마고 라는 잡지를 발행하게 되었고 이후에 영국의 정신분석학자들이 정신분석 전용 출판사를 이마고라는 이름으로 운영하게 된다. 정신분석에서 이마고 하는 말이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가? 하는 것이 이 용어의 사용이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서 정신분석에서 이마고 라는 말은 그 환자의 심리적 현실을 의미하게 된다(Holmes, 1995: 주㈜: 참고).

대상관계 이론의 창시자인 멜라니 크레인(Melanie Klein)이 신조어로 사용해서 지금은 정신분석의 전문용어가 된 투사 동일시(projective identification)라는 용어는 프랑스의 작가인 줄리안 그린(Julian Green)의 소설 안에서 내가 만약에 너라면이라는 글에서 따온 신조어로써 사용되어지게 되었다. 투사라는 말은 정신분석에서 처음부터 사용을 했다. 투사는 자신의 마음을 다른 사람 탓으로 전가하는 것을 말한다. 자신의 마음을 영화처럼 화면에 투사해서 보는 것을 말한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단점을 자신이 보는 것이 고통스럽기 때문에 현실적 자아(ego)가 그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 자신의 결함이 아니고 다른 사람의 결함으로 다른 사람 한데서 자신의 결함을 보기 때문에 고통을 조금은 감소시킬 수 있다는 말에서 등장하게 되었다. 그런데 크레인은 친밀관계에서 자신의 결함을 상대방의 마음 속에 투사를 하고 그 투사를 받은 그 대상은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수용해서 사용하는 것을 지칭하게 된 것이다. 즉 한 사람은 그렇게 하라고 무의식적으로 요구를 하고(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상대방은 그것을 수용해서 그렇게 원하는 대로 무의식적으로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Ogden, 1982, 1986, 1989, 1994,1997, 2001, 2005: 주㈜: 참고).

옛날 우리 조상들이 사용했던 이심전심(以心傳心)과 유사하다. 마음은 서로 말을 하지 않고서도 무의식적으로 마음으로 통한다. 이 말은 정신분석가들 혹은 다른 심리학자들이 사용하는 공모(共謀)에 해당한다. 서로 무의식적으로 합의로써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말로써 서로 짜고 하는 것이 아니다). 투사 동일시는 엄마와 아기관계 혹은 부부관계 혹은 연인관계를 설명하는데 필수적인 전문용어이다.

자아 심리학의 창설자인 코호트(Kohut)는 엄마와 아기의 하나된 마음을 너와나의 하나된 마음(selfobject)라는 말을 사용하게 되었다(Wolf, 1988: 주㈜: 참고). (self)라는 말과 너(object)라는 말이 서로 붙어있는 용어로써 이 용어는 영어사전에 나오지 않지만 정신분석에서는 필수적인 용어이다. 엄마의 마음의 반사가 아기의 마음 속에 비쳐져서 아기는 그것을 자신의 마음으로 수용하게 된다. 이것을 거울반사라고 부른다. 그것을 마가레트 몰러(Margaret Mahler, 1976: 주㈜: 참고)가 생물학적인 용어인 공생(symbiotic)이라는 말로써 사용을 해서 출생 직후에 엄마와 아기의 하나된 관계로써 사용하게 되었다(Mahler, 1975: 주㈜: 참고). 그러나 지금은 코호트의 용어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

같은 정신분석학자라고 해도 사용하는 전문용어들이 다르기 때문에 정신분석을 공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이야기가 이해가 될 것이다. 심리적 현실과 이마고는 같은 내용의 용어이고 투사 동일시와 공모가 유사하고 그리고 너와나의 하나됨(selfobject)과 공생은 같은 의미이지만 사용을 하는 학자들에 따라서 다르게 사용하고 있다는 말이다. 고로 학자들은 정신분석에는 매뉴얼이 없다고 말을 한다. 학자들마다 자신의 전문 용어를 사용하는 것에다 그들의 치료 기법들이 똑 같은 것이 거의 없고 독자적으로 자신의 치료 기법들을 사용하기 때문에 정신분석을 우리나라의 무형문화제의 장인(匠人)들에 비유된다. 정신분석이 예술에 비유가 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이유이다(정신 분석의 예술을 보라, Ogden, 2005: 주㈜: 참고).

신경증 치료 이론으로 등장하게 된 프로이트의 이론이 수정되고 보완되어져서 응용으로 정신증 장애들(조현병, 편집증, 조울증 등)에게 사용되어지게 됨으로써 고전적 정신분석이론들이 응용 정신분석 쪽으로 확대가 되어지면서 정신분석가들 사이에서 학파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최초의 학파는 프로이트를 계승한 프로이트의 막내 딸인 안나 프로이트(Anna Freud)가 현실적 자아에 치료의 초점을 맞추고 그리고 헤인즈 하트만(Heinz Hartmann) ego의 방어 이론을 강조하면서 여기에 에릭슨(Erikson)이 합세를 해서 ego 심리학이 등장하게 된다.  그 다음에 등장한 이론이 어린이들에게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메라니 크레인이 놀이치료를 등장시켜서 편집증-자아분열 이론으로 ego의 등장 과정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설명을 한 새로운 이론이 바로 대상관계 이론이다. 프로이트가 나치의 박해로써 추방됨으로써 영국에 정착하게 되면서 안나 프로이트와 메라니 크레인 이론이 서로 충동하게 되어 갈등으로 등장하게 된다. 프로이트의 정통파를 따르는 분석가들과 신경증 치료보다 심각한 정신증 치료에 적합한 이론으로 등장한 대상관계 이론을 따르는 분석가들 사이에 갈등은 1944년에 여성 정신분석가인 실비아 페인(Sylvia Payne)이 중재자로 나서서 두 사람 사이에 화해로써 신사협정을 약속 했지만 결국은 두 학파는 서로 분열하게 된다. 결국 영국의 정신분석 학회는 3개로 분열 되었다. 안나 프로이트를 따르는 정통파와 크레인을 따르는(비용, 로젠필트, 세갈 등) 국제 정신분석학회와 어느 쪽도 따르지 않는 독립학파(위니코트, 볼비, 벨린트)로 분열되었다. 그들의 전문 용어들도 많이 달랐다, 제자들의 교육기관인 정신분석 학교도 달라지게 되었다 그들은 1학년 때는 자신들의 이론을 교육하고 2학년 때는 상대방의 학파들의 이론을 교육하고 3학년 때는 통합적으로 공부를 하는 쪽으로 분열되었고 논문집도 정신분석학 논문집과 국제정신분석학 논문 집으로 나누어졌다(Segal, 1989 ; Holmes, 1995: 주㈜: 참고).

프로이트가 창설한 정신분석은 이제 프로이트가 1주일에 5회로 1 회기당 40-50분으로 사용해서 최하 3회 이상, 최고 5회까지를 카우치에 누워서 치료를 하는 정신분석가들을 정통파 정신분석, 현실적 자아를 강조하는 ego 심리학, 크레인의 대상관계 이론, 프로이트의 생물학적인 이론에서 벗어나서 사회적, 대인관계를 강조하는 신프로이트(neo-Freudian)학파의 대표자인 하리 스틱 셀리버(Harry Stack Sullivan)대인관계 정신분석, 그리고 코호트가 창설한 자아 심리학5개의 정신분석으로 진화하게 되었다. 어느 한쪽의 정신분석학이 치료 효과가 좋다는 것이 아니고 각 학파마다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정신분석에서는 어느 한 학파가 우세하지 않는다. 정신분석가들이 어느 쪽으로 치료 기법을 선호하는가? 에 따라서 자신이 좋아하는 기법을 주로 사용하게 된다는 말이다. 인간 마음의 치료가 그만큼 복잡하고 다양하다는 뜻이 아닌가? 이미 여러 번 소개를 한 것처럼 마음을 치료하는 분야가 정신분석학만 있는 것이 아니다, 행동치료, 인지 치료, 인지-행동치료, 가족 치료, 최면 치료, 게스탈트 치료 등등으로 많은 치료 기법들을 공부를 해야 한다. 그 만큼 심리치료의 분야가 방대하고 공부를 해야 할 내용이 많다는 것은 인간의 마음이 다양하고 다양한 치료 기법들이 동원되어 치료되어지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다시 심리적 공간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혼자서 고립으로 살 수가 없다는 것은 의미 초등학교 시절에 배운 것이다. 그런데 인간과 인간 관계 즉 사람과 관계를 할 때 최소한 두 사람이 관계를 하게 된다. 부부 관계, 연인관계, 친밀한 친구 관계가 그것이다. 이러한 관계에서 사람들이 서로 가깝게 될 때 그 가까움의 정도가 얼마나 되어야 하는가? 라는 것에 대한 관심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친한 친구, 연인, 부부 관계에서 최소한 두 사람의 관계는 서로 얼마나 가까워야 하는가? 라는 어려운 문제이다.

우리 조상들은 옛날부터 결혼을 하게 되면 부부는 일심동체(一心同體)라는 말로써 표현을 했다. 두 사람이 결혼을 하면 몸과 마음이 서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라는 말이 아닌가?  말이나 용어들은 그것을 학습하게 되면 인간의 마음은 그 용어가 약속한 그대로 따르게 된다. 생각한 대로 행동하게 된다는 말이다. 이것이 위에서 설명한 왜 정신분석학적인 용어들이 신조어로 등장하게 되었는가? 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아닌가? 그 용어를 이해하게 되면서 정신분석가들을 그것을 치료에서 사용하고 실천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일심동체라는 말은 옛날에 우리 조상들이 부부 사이에 관계를 표현하거나 연인관계를 표현할 때 사용했던 낱말이다. 이 용어가 의미하는 것은 조선시대와 그 이전의 농경시대에 사용되어진 용어로써 지금은 이것이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

결혼을 해서 부부관계를 일심동체라는 용어로써 사용을 했기 때문에 과거에 조건시대에는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하면 서로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두 사람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라고 생각하고 행동하게 된 것이다. A라는 남성과 B라는 여성이 어른이 되어 결혼을 할 때 A라는 남편과 B라는 부인은 그들의 어린 시절에 성장과 발달의 과정이 다르다는 인식은 옛날에는 크게 작용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농경시대였기 때문에 농사를 짓는 것이 유사했고 사회가 단순했고 이웃끼리 모여 살았기 때문에 그리고 그 용어가 의미하는 것처럼 모두가 그것을 따라서 실천을 했기 때문에 부부문제는 크게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후기 산업 시대로 과거의 농경시대와는 완전이 달라졌다. 일심동체의 잘못된 개념을 고수하고 있으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가?의 이야기가 학자들의 연구에 따라서 아래에서 소개되어지게 된다.

옛날에 양반 가문에서는 각 가문의 전통과 방식이 약간씩 달랐다. 그 가문의 전통들이 대물림으로 전달되어져 왔다 그래서 xx 집 가문의 후손 혹은 xx 집의 전통은 제사와 결혼 등의 순서가 가문마다 약간씩 다른 것을 그들의 전통으로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러나 농사를 짓고 살던 시대에는 농경 생활은 우리 조상들이 주장한 것처럼 농사는 천하의 근본이라는 말처럼(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也) 계절에 따른 농사의 기법은 거의 비슷했다. 결혼도 부모님의 소개로 서로 맞선을 보고 결혼을 했다. 연애라는 말 즉 서로 좋아해서 결혼을 한다는 말은 존재하지 않았다. 부모의 권유로 혹은 심한 경우에는 강압으로 결혼을 했다. 결혼은 거의 이웃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끼리 가족들의 소개로 이웃들의 소개로 남녀가 서로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한 후에 B라는 박씨 가문의 여성이 A라는 김씨 가문의 남성의 집에 시집을 가게 되면 박씨 가문의 어린 시절의 관습과 행동 양식을 버리고 김씨 가문의 관심과 전통을 따라가야 한다 고로 여기에서 시집살이 라는 전문 용어가 등장하게 된 것이 아닌가? 우리 조상들이 시집살이를 벙어리 3, 장님 3, 귀머거리 3으로 도합 약 10년으로 표현을 했다(정확하게 9년이지만). 이 고통은 우리 어머니들이 시집살이를 고초당초 맵다지만 시집살이보다 더 매우랴! 라고 표현을 했다. 아무리 고추가 맵다고 해도 시집살이보다 덜하다는 표현으로 얼마나 결혼 후의 생활이 고된 생활이었는지를 표현을 한 말이 아닌가? 여기에 대한 연구들은 이미 서양에서도 수 많은 학자들이 부부 사이에 관계, 부모와 자식 사이에 관계, 연인들 사이에 관계에 대한 연구들이 이어지면서 갈등과 고통으로 인해서 마음의 병이 들게 된 사람들을 연구하면서 치료의 기법으로 등장하게 된다는 것을 지금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TV에서 혹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말로써 잉꼬부부라는 말에서 우리는 흔히 우리 부부는 갈등이 없습니다. 천생연분으로 우리는 서로 마음이 일심동체가 되어 서로 싸우고 다투는 일이 없습니다.”라고 표현을 하는 부부들을 많이 보면서 우리는 그들을 부러워하고 그들을 존경해 온 것이 사실이 아닌가? 그런데 만약에 그렇다면 어린 시절에 성장 과정이 전혀 다른 두 사람이 결혼을 해서 갈등이 없는 부부, 부부싸움이 없는 화기애애한 부부라고 자랑을 하는 그 부부는 한 사람의 자아가 없다는 뜻이 아닌가?  사람들은 각각 자신의 마음 즉 자아를 가지고 있다. 두 사람이 결혼을 하게 되면 두 개의 자아가 서로 관계를 하게 된다, 그런데 갈등이 없는 관계가 가능하게 되는 것은 한 사람의 자아는 존재하는데 다른 한 사람의 자아가 존재하지 않을 때 가능하게 된다는 말이 아닌가?

이것을 증명하는 말이 시집살이 10년이 말을 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박씨 집에서 성장한 여성은 결혼 후에 김씨 집의 관습과 풍습과 행동과 사고 스타일을 그대로 닮아서 몸과 마음이 하나된 일심동체가 되는데 10년이 걸렸고 두 개의 자아가 하나로 되었기 때문에 남편과 부인이 서로 마음이 일치되고 갈등이 없어지게 된 것이다(없어진 것보다 참고 억압하고 복종한 것). 여기에서 등장한 말들이 삼종지도(三從之道)와 칠거지악(七去之惡)이라는 용어들이다. 여성은 결혼 전에 아버지를 따라고, 결혼 후에 남편을 따르고, 남편이 죽고 나면, 아들을 따라가야 한다(열녀전). 여성이 조심해야 하는 7개의 악행이 칠거지악이다. 이러한 용어들을 통해서 옛날 조선시대와 그 이전에는 조상들의 가르침을 따르면서 삶을 유지했기 때문에 그렇게 심각한 정신장애들은 드물었다. 갈등을 일으키는 소지를 차단했기 때문이었다. 그 대신에 여성들은 부창부수(부인은 남편의 말에 복종), 여필종부(여성은 남편을 따라야), 남존여비(남자는 존중, 여성은 천박), 개가금지(여성의 재혼금지) 등으로 여성들은 목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2019, 7, 15, 다음백과). 속으로 억압하고 참고 살아왔다. 그런데 단순한 농경시대에서 복잡한 산업 사회로 옮겨오면서 억압받은 여성들이 마음의 병이 되어 정신병으로 등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미 다른 글에서 여러 번 소개가 된 것은 중세시대로부터 등장하게 된 빙의 즉 귀신들린 사람의 이야기는 대부분이 여성들이었다. 14-17세기에 유럽을 휩쓴 마녀 사냥의 이야기는 귀신에 들린 사람을 마녀로, 악마, 악령으로 그들을 불태워 죽였다. 영혼이 전염되는 것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화형식으로 처형을 했다. 유럽에서 10만 명의 마녀들이 처형을 당했다. 여성들이 결혼 후에 남편들에게 고통을 당한 심리적 상처들은 가르코트의 최면 치료에서 최면에 걸려서 어린 시절에 강간, 폭력, 학대의 상처들이 입으로 터져 나오면서 심리적 상처 이론이 등장하게 된 것이 아닌가?  프로이트가 이것을 눈으로 보고 그들의 마음의 상처를 물리, 화학, 생물과 수학으로 설명을 하게 된 것이 정신분석이 아닌가?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 혹은 그 이전에 이러한 행동의 지침들이 자녀들에게 교육되어지고 그리고 행동의 지침으로서 전통으로 이어져왔기 때문에 여성들의 고귀한 희생으로써 사회가 안정되고 지금까지 유지되어져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제 농경시대의 가르침은 산업 사회에서는 통하지 않게 되었다. 양육과 바뀌고 남녀의 평등, 급변하는 사회 등에서 정신이상자들이 속출하게 된 것이다.

다시 두 사람관계, 연인관계의 이야기로 되돌아가보자. 300년 전에 독일의 철학자인 헤겔이 두 사람관계를 연구하게 되었다. 그는 주인과 노예 관계라는 이론으로 인간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두 사람의 자아가 서로 친밀하게 될 때 가까울수록 우리는 서로 친하게 된다고 알려져 있다. 친밀한 관계는 서로 속내를 틀어 놓고 이야기를 할 때 서로 비밀이 없이 서로 소통을 하게 되면 될수록 서로 가까운 관계가 된다는 것을 상식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얼마나 가까워야 하는가?의 문제가 다시 등장하게 된다. 두 사람의 자아가 서로 가까워지면 질수록 친밀한 관계로써 좋은 관계 이다 그런데 계속해서 가까워지면 두 개의 자아는 하나로 합쳐지게 된다. 고로 한 개의 자아가 된다. 이것은 어느 한쪽의 자아가 다른 한쪽에 흡수되어서 하나로 변하게 된다는 말이 아닌가? 고로 한 사람의 자아는 소멸되고 한 사람의 자아만 남게 된다는 것이다.

두 사람관계의 이러한 연구는 물리학자들의 연구에서도 등장하게 된다. 19세기의 분트(심리과학의 창설자)의 스승인 최초의 물리심리학자인, 구스타브 페크너(Gustave Fechner)가 실험 물리학자로써 시작했다가 심리물리학자가 된다(더욱 더 상세한 것은 다음의 블로그에 들어가보라). 그는 두 개의 지점을 계속해서 가까이 하는 실험을 하면서 실험 대상자가 더 이상 두 개의 점으로 구분을 할 수 없는 한계점을 수학적으로 계산해 냈다. 예를 들어서 한 실험 대상자에게 컴퍼스의 두 개의 침으로 피부에 감각을 구분하게 하면서 계속해서 두 개의 침의 거리를 좁혀나가게 되면 두 개의 침이 닿는 지점이 결국은 구분을 하지 못하게 되는 한 개의 지점이라고 말을 하게 되는 그 직전의 지점을 감각의 한계점으로 트레쉬홀드(threshold)라는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이 용어가 인간 관계에서 두 사람의 거리가 친밀감으로써 사용을 설명하는 용어가 되었다. 두 사람이 두 사람으로 느껴지지 않고 한 사람으로 느껴질 때 그것은 한 사람의 자아가 사라지는 것이다. 즉 한 사람의 자아는 상실되는 것이다. 자아가 존재하지 않으면 죽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죽은 사람은 자아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부부 관계, 연인 관계에서 서로 너무 가까워져서 한 사람의 자아가 사라지는 관계를 헤겔은 주인과 노예관계로써 표현을 했다. 주인은 자아가 있지만 노예는 자아가 없다. 노예는 주인의 명령에 복종하고 주인의 의사와 행동에 따라가야 한다 고로 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대신에 노예는 먹고 입고 생존을 주인으로부터 보장받는 것이다. 이것을 한 마디로 배부른 돼지라고 부른다. 걱정, 근심, 염려, 불안이 없고 먹는 것만 해결되면 O.K.라는 사람과 같다. 그러나 그 주인은 언젠가는 죽게 된다, 그 주인의 사망 이후에는 노예는 또 다른 사람에게 팔려가서 생계를 보장받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을 철학자 니체는 노예가 자신이 노예라는 것을 잊어버린 노예가 가장 불쌍한 노예이다라고 표현을 했다. 인간이 자유가 없다는 것은 바로 죽음과 동일시했다. 미국의 독립전쟁에서 프랑스 혁명에 이르기까지 자유가 없으면 죽음을 달라라고 외쳤던 구호들을 보라.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로 노예 생활을 한 것을 독립을 외치면서 죽음을 불사했던 페트릭 핸리(Patrick Henry)의 말은 이후에 프랑스 혁명의 촉진 시키는 구호가 되었다.

인간에게 자유는 고귀한 것이다. 자유롭게 사는 삶이 값진 삶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자아를 저당 잡히고 자유를 자신의 생계비의 저당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바로 주인과 노예의 관계가 아닌가? 19세기 문학에서도 작품 속에서 자유에 대한 갈망은 알퐁스 도오테의 작품(그의 대표작인 마지막 수업은 국어 교과서에 소개된 작품)이 풍차간 소식에 나오는 스갱 아저씨 집의 염소이야기에서 잘 묘사되어져 있다. 블랑게뜨 염소는 스갱 아저씨 집에서 먹는 것과 잠자는 것의 어려움이 없이 살았다 그러나 자유가 없었다. 항상 보호를 받고 사는 것이 싫어져 염증이 나자 산 속으로 도망을 치게 된다. 동료들이 산속으로 가면 늑대의 밥이 될 수 있다고 경고를 했지만 그는 그러나 자유가 있지 않는가? 라고 반문하면서 산 속으로 자유를 찾아서 도망을 친다. 결국은 늑대에게 잡혀 먹혔지만 그는 자유에 대한 갈망과 자유를 맛보고 죽은 것에 후회를 하지 않는 이야기가 바로 인간의 자유에 대한 갈망을 묘사한 것이 아닌가?

 치료자는 부부 치료에서 이 이론으로 부부 갈등을 해결하는데 많이 이용을 하고 있고 그리고 자아 치료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치료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이 문제는 부모와 자녀 관계에서 자아의 성장과 발달에서 더욱 더 세부적으로 논의되어질 것이다.

 정신분석은 물리학에서 많은 이론을 차용해서 사용하고 있다. 너와 나의 관계는 물리학에서 양장과 전자의 이론을 도입을 했다. 물질의 최초의 기본인 원자 안에는 양자와 전자와 중성자가 있다는 것은 중학교 시절에 물리학 교과서에서 배웠다. 그런데 양자와 중성자와 전자는 절대로 하나가 되지 않는다. 만약에 두 개가 합쳐지게 되면 다른 물질로 변질 되어버리거나 그 물질의 존재는 사라지게 된다. 양자와 전자는 각자가 자신의 괘도를 벗어나지 않고 자신만의 괘도를 돌고 있다. 이것이 바로 두 사람의 인간이 가까워진다고 해서 자신의 자아를 보존하지 않고 자아를 포기하게 되면 자신은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자신의 자아를 보존하면서 상대방의 자아와 관계를 해나가는 것이 인간관계의 기초적인 심리학의 원리이다.

 치료자는 지금까지 위의 원리를 응용해서 사람들이 자아를 일으켜 세우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개선하는데 이용해왔는데 여기에서 정신분석가 혹은 심리학자들의 이야기를 소개를 해서 철학자들의 이야기에서 심리학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가운데서 심리적 공간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이다.

 인간은 출생 직후에는 자아가 없다. 즉 마음이 없다. 그냥 욕구만 가지고 태어난다. 5 감각적 욕구이다 이것을 프로이트가 원초자아(Id)라고 불렀다. 원초자아는 본능으로 가지고 태어난다. 이 원초자아가 엄마와 관계에서 점차적으로 진화하게 된다. 엄마의 마음이 바로 너와나의 하나됨, 거울 반사로써 아기의 마음에 비쳐지고 아기는 엄마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지각하게 된다. 외부에서 주는 욕구만족의 기억이 뇌에 새겨지고 이후에는 그 욕구만족을 주는 사람인 엄마 쪽으로 향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엄마의 눈, 얼굴을 인식하는 쪽으로 발달하게 된다. 여기에서 거울반사는 너와나의 하나됨(selfobject)로써 공생이라는 용어로 표현이 된다는 것은 이미 소개를 했다. 그런데 위에서 너와 나의 하나된 관계에서 나를 잃어버리면 너의 노예가 된다는 말은 서로 모순이 되는 것이 아닌가? 인간 출생 직후에 최초의 관계는 너와나의 하나된 관계이다 그런데 이후에 이 관계가 너와나의 하나된 관계가 아닌 친밀한 관계에서는 내가 없어지면 나는 너의 자아에 합병이 되고 나는 자유를 잃게 된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

 너와 나의 하나됨은 출생 직후에서 7개월-9개월 까지는 정상이다. 그러나 그 이후에 내 자아가 자라나게 되면서 내 자아가 중심이 되는 양육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아는 생후 7개월-9개월쯤에 엄마의 얼굴을 알아보게 된다. 즉 낯을 가리게 된다. 엄마의 이미지가 아기의 마음 속에서 새겨지게 되고 아기는 엄마와 다른 사람의 얼굴을 구분하게 된다. 여기에서 아기는 엄마를 찾게 된다. 엄마가 없으면 불안하고 두려워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분리불안이다. 정신장애에서 제일 먼저 등장하는 것이 바로 분리불안이다. 엄마의 존재는 아기에서 안식처가 된다. 안전함(외부로부터) 그리고 안정(내면심리적인)을 얻게 되고 아기는 엄마에 의해서 존재 감각을 인식하게 된다.

 프로이트는 1-3세 사이에 현실적 자아인 ego가 나타난다고 가설화 했다. 아기는 점점 엄마와 아기가 한 사람이 아니고 분리된 실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즉 내, , 내가 라는 말들이 등장하게 된다. 엄마가 먹여주는 것 대신에 내가 먹겠다. 내가 하겠다 라고 숟가락 사용을 배우게 된다. 혼자서 밥을 먹으려고 하는 것에서 내, , 내가가 등장하게 된다. 엄마의 몸으로부터 빠져 나와서 뒤집기, 일어서서 걷기 등으로 걸음마를 배우게 된다. 그리고 주변 환경들을 탐색하기 시작한다. 1-3세 까지를 프로이트는 항문기라고 불렀다. 대소변 훈련으로 내가 몸을 컨트롤하는 것을 배우게 되면서 신체적 욕구들을 자아라는 심리적 도구로써 대신하기 시작한다. 언어를 배우게 되면서 자신의 욕구들을 말로써 표현을 하게 되면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을 점차적으로 습득하게 된다. 이 단계는 이미 수없이 기술을 했다.

 여기에서 출생 직후에 엄마에 의존으로 엄마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안정된 엄마의 품인 엄마 중심의 유아가 3-5세의 오디팔 단계와 6-12세까지 잠재기를 거치면서 그리고 13-19세까지 사춘기 단계(프로이트의 성기기)를 거치면서 내가 중심이 되는 자아가 중심이 내는 내가 내 삶의 주인공이 되는 자아가 중심의 세계로 탈바꿈을 하는 이러한 과정에서 생기는 장애물들로 인해서 모든 정신과적인 장애들이 발생한다는 이론이 바로 정신분석학이다. 다시 말해서 태어나면서 자아가 없는 아기의 자아가 어떻게 엄마의 자아로부터 아기의 자아로 발달하고 그리고 그 엄마 중심의 아기의 자아가 이 세상에서 아기 중심의 자아로써 너와 나의 관계에서 자아()를 잃어버리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쌍방 관계를 하도록 양육되어질 때 가장 건강한 자아를 가진 건강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이 과정은 복잡하다. 이것은 프로이트에서 시작해서 지금까지 140년 동안 정신분석가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을 연구하고 마음을 실체로써 자아라는 공식으로 의인화 시켜서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왜곡과 간섭과 자아의 자치심이 훼손되는 과정들이 바로 각 정신장애들의 등장으로 그리고 이 잘못된 관계 즉 왜곡된 관계, 배우지 못한 결함적인 관계 그리고 잘못 배운 관계 등으로 잘못 생각하고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잘못된 관계를 하는 것에서 정신적인 고통과 장애들이 따라오게 된다는 것이 정신분석의 이론들이고 그리고 그것을 수정하고 고치는 치료의 기법들이 나타나게 된다.

 프로이트가 구순기(0-1), 항문기(1-3), 오디팔기(3-5), 잠재기(6-12), 성기기(13-19) 5단계의 발달 과정은 섹스심리학의 발달과정이라는 것은 이미 여러 차례 소개를 했다. 여기에서 프로이트 이론의 맹점인 사회적, 문화적인 관계가 첨부되어 프로이트의 이론이 확대되어지는 진화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에릭슨의 8단계 이론이다. 에릭슨은 프로이트의 5단계를 고수하지 않고 독자적인 이론을 펼치게 된다. 0-1세를 구순기 대신에 믿음(trust) (vs) 불신(distrust)으로 표현을 했다. 에릭슨은 자아의 발달 과정을 기술한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가 바로 신뢰관계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떠나서 살 수가 없다는 말을 앞에서 언급이 되었다. 에릭슨은 인간관계의 기본은 엄마와 아기 관계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천명한 것이다. 엄마가 아기에게 너와나의 하나된 거울 반사는 아기의 마음에 반사되어 아기의 자아의 씨앗이 된다. 건강한 부부 관계에서 자식을 소망할 때 태어난 아기는 엄마, 아빠의 기대대로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 된다. 이것이 7개월-9개월의 엄마의 얼굴을 인식하게 되면서 엄마가 아닌 낯선 사람에게 불안을 느끼고 주변의 낯선 환경에 대한 불안,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다시 말해서 생후 1년 동안에 엄마는 아기에게 심리적 안전함과 안정을 제공해서 아기가 엄마를 신뢰하는 마음이 이후에 성장해서 세상을 신뢰하고 대인관계에서 믿음의 씨앗이 된다는 것이다. 엄마에 대한 불신은 사람들을 신뢰하지 않고 의심을 하게 되는 씨앗이 된다(7세 이전에 엄마의 이혼, 별거, 사망은 아기에서 치명적). 에릭슨은 엄마와 아기의 관계에서 이 1 단계에서 엄마는 아기의 옆에서 아기에게 불안, 두려움을 심어주지 않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농경시대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기는 엄마의 품에서 모유를 먹고 엄마 품 속에서 자라나고 그리고 엄마의 등에 업혀서 다녔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학화 되면서 아기는 엄마의 모유가 아닌 우유병으로 엄마의 등이 아닌 유모차로 그리고 승용차 안에서 안전의자로 바뀌게 되면서 아기의 분리불안이 강하게 되면서 옆에는 언제나 엄마가 있는 것이 아니다 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에릭슨은 그의 저서인 어린이와 사회(1950: 주㈜: )에서 대인관계의 최초의 신뢰 관계는 바로 아기와 엄마의 관계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아기가 엄마 품, 엄마 무릎에서 내려와서 놀 때 옆에 엄마가 없어도 아기는 항상 옆에 엄마가 있다는 것을 마음 속에 가지고 혼자서 혹은 형제 혹은 동료들과 놀게 된다. 그 때 아기가 외부의 위험 혹은 관계에서 갈등으로 불안해지면 엄마! 라고 엄마를 부를 때 언제든지 엄마가 빨리 아기에서 달려와서 아기의 요청에 응해주게 될 때 엄마에 대한 신뢰가 형성된다고 기술하고 있다. 아기의 마음 속에는 엄마는 언제든지 내 옆에 있다. 엄마가 아기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엄마를 부르면 즉각 엄마는 달려온다는 확신이 바로 신뢰감, 믿음(trust)이다. 이 믿음은 이후에 성인이 되어서 환경의 어려움, 관계의 어려움은 마음 속에 새겨진 그 믿음, 신뢰감으로 다른 사람을 믿게 되고 다른 사람과 안정된 관계를 하게 된다는 것을 노트하고 있다.

 인간의 마음 속에 새겨진 엄마의 이미지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학자들의 연구는 이후에 엄마와 아기에게 집중적인 연구로 이어지게 된다. UCLA의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이나 정신분석가인 랄프 그린슨(Ralph Greenson, 1967, 1978: 주㈜: 참고)은 컬럼비아 대학을 졸업하고 스위스에서 의과대학을 끝내고 프로이트의 초반기 제자인 윌헬름 스타켈(Wilhelm Stekel)에 의해서 분석 치료를 받고 이후에 유명한 정신분석가인 오토 페니첼(Otto Fenchel)에 의해서 분석치료를 받고 정신분석가가 되었다(2019, 7, 14, 위키피아). 그는 엄마라는 말은 유아가 최초에 하는 말로써 엄마라는 말의 어원을 탐색을 한 결과 그리스어(meter), 로마어(mater), 그리고 영국(mother), 프랑스(mere), 독일(mutter), 스페인과 이태리(madre), 앗시리아(umma). 히브리어(em)로써 엄마라는 말이 세계적으로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비슷하다고 기술을 했다. 입을 다물었다고 입술을 떼면 음마, 엄마가 된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어른이 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넘어지거나 다칠 때 우리는 어마나!, 어마야!, 오매!”등의 낱말들은 엄마!를 부르는 말이 아닌가? 위기 시에 우리는 항상 엄마! 를 찾고 있다는 것이다. 출생 시에 엄마를 그리고 죽을 때, 위기 때 우리는 엄마!를 찾으면서 우리 자신의 보호를 요청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에릭슨의 두 번째 단계는 1-3세의 프로이트의 항문기 단계이다. 에릭슨은 항문기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자치심(autonomy) (vs) 의심(doubt), 수치심(shame)으로 표현을 했다. 즉 아기가 세상을 마음대로 탐색하는데 아기가 주도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기는 뒤집고 기고 서고 걸음마를 배우면서 이 세상에 대한 탐색이 시작된다. 온 세상이 살아있는 생물체로 보이고 호기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아기에게 이 세상은 신기한 세상이 되는 것이다. 만지고 굴리고 밀어보고 던지고 찢고 부시고 마음대로 환경을 조작하게 되는데 이 단계에서 엄마와 아기의 싸움이 시작된다. 이 단계에서 프로이트는 대소변 훈련으로 자아(ego)가 등장해서 몸을 컨트롤하는 것을 자아가 마음대로 컨트롤하는 것으로 진화하는 것을 기술을 했다. 그런데 에릭슨은 대인관계에서 주변상황을 컨트롤할 때 내가 스스로 주도적으로 하려고 하는 ego의 자치심을 강조한 것이다. 스스로 주도적으로 환경을 내가 마음대로 컨트롤 할 때 자신감이 생기고 자아 감각이 자라나게 된다고 보았다 그러한 과정에서 장애물이 등장하게 되면 의심, 불안, 두려움으로 세상을 탐색하게 되는데 움츠리게 된다. 성인이 되어서 세상을 마음대로 탐색하려고 하는 사람과 세상이 두려워서 불안해서 기피하는 사람이 1-3세에서 자아의 형성과정으로 설명을 한 것이다.

 에릭슨의 이론이 프로이트의 이론과 반대가 되는 것은 아니다. 프로이트는 1-3세는 그 시점에서 인간의 본능, 욕구의 기본이 되는 대소변 훈련과 신체, 몸의 컨트롤을 ego가 대신하게 되면서 내가 내 몸의 주인이 된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에릭슨은 대인관계에서 내, , 내가 주도적이 되는 씨앗이 여기에서 시작되면서 이후에 사춘기를 통과하면서 내가 세상의 주인이 된다는 것으로 연결 시킨 것이다. 어느 한쪽이 맞고 틀린 것이 아니고 둘 다 맞다 즉 프로이트는 내, , 내가 몸의 주인이 되는 것을 강조한 것이고 에릭슨은 사회적인 관계 즉 대인관계에서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주인이 되는 것으로 서로 강조점이 다른 것일 뿐 어느 한쪽이 맞고 틀린 것은 아니라고 본다. 두 개의 이론은 둘 다 필요하다. 단지 에릭슨은 시대적 발달에 따른 대인관계와 사회성에 강조점을 둔 것이다.

 에릭슨의 세 번째 단계는 3-5세의 프로이트의 오디팔 단계로써 프로이트는 남녀의 성별의 구분과 섹스 욕구의 표면화와 어린이는 서로 반대성의 부모와 경쟁관계가 5세 경에 마무리가 되어 동성의 부모를 동일시하게 된다. 대신에 에릭슨은 주도권(initiative) (vs) 죄의식(guilt)으로 구분을 했다. 이 시점에서 선과 악, , 잘못을 알게 되고 부모의 간섭과 장애물들이 내가 잘 못했다 내 잘못이라는 죄의식이 등장하게 된다. 칭찬을 받고 감정적 지원을 받는 어린이는 당당하게 자기 주장을 하게 되지만 지나친 부모의 간섭과 처벌은 내 잘못으로 다른 사람 앞에 나서지 않게 된다. 다시 말해서 내가 옳다, 내가 맞다 라고 자기 주도적인 것은 항문기 때 내가 마음대로 환경을 컨트롤하는 연장 선상에서 그 다음 단계로 내가 하는 것에서 계속해서 밀고 나가게 되어 내가 옳다 내가 맞다 라는 자기 주장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반대는 나는 항상 잘못되었다. 나는 틀렸다, 내가 잘못했다가 된다. 이 단계에서 죄의식으로 내가 잘못하고 있다는 비난, 처벌에 약해지게 된다.

 에릭슨의 4번째 단계는 6-12세로 프로이트의 잠재기에 해당된다. 프로이트는 섹스에 대한 관심은 무의식 속으로 들어가고 그리고 동료들과 어울리면서 학습 쪽으로 리비도(섹스 에너지)가 흘러가서 배우는 것에 몰두하게 된다고 보았다. 이 시기가 유치원과 초등학교 시절로 동성의 동료들과 잘 어울리면서 학습의 기본적인 것을 배우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에릭슨은 이 단계를 부지런함(industry) (vs) 열등감(inferiority)으로 열심히 공부를 하고 배우는 것에 몰두 하는 것으로 그리고 동료들과 경쟁에서 자신감이 없어지게 되면 내가 다른 사람보다 못하다는 열등감이 형성되는 시기로써 동료들과 비교해서 능력이 떨어지게 된다는 인식은 자아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게 되고 동료들로부터 멀어지는 계기가 된다고 보았다.

 에릭슨의 5 번째 단계는 13-19세로 청소년기가 된다. 프로이트는 섹스의 욕구가 정상 쾌도에 올라서게 대면서 이성 부모에 섹스 욕구가 근친상간의 욕구를 자극해서 놀래서 어머니를 닮은 여성으로 아버지를 닮은 남성으로 향하게 되면서 가족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넘어서 사회로 나가서 부모와 독립된 생활을 하게 되는 발달이 어린이가 어른이 되었기 때문에 발달 때 끝나는 것으로 보았다. 에릭슨은 주체성 형성(identity formation)과 주체성 혼란(role confusion)으로 분류를 했다. 내가 삶의 주인이 되고 내가 삶을 살아가는 주체가 되는데 이 단계에서 장애물에 걸린 젊은이들은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에 혼란 속에 빠지게 된다,

 에릭슨의 6 번째 단계는 친밀감 대(vs) 고립으로 이성 친구와 친밀한 관계를 형성해서 연인관계로 그리고 결혼으로 연결 되어 그 다음 단계인 출산과 사회적인 참여가 활발하게 되는 생산성 대 정체 그리고 마지막 단계로 통합 대 절망으로 삶의 과정의 통합으로 자신의 삶을 마무리하는 단계가 되는데 반대로 삶이 실패로 느껴지게 되면 절망과 우울함으로 연결 된다고 구분을 했다. 두 사람의 인간의 삶의 과정에 대한 가설들은 프로이트는 농경시대에서 산업사회의 초반기로 어머니가 일터에 나가기 이전에 어머니가 살림을 맡아서 그리고 아버지가 직장으로 일을 해서 가족의 생계를 담당하는 시기에서 나온 이론이다 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프로이트가 사망한 1939년은 제 2 차 대전 발발 1주일 전이었다.

 에릭슨의 발달 이론은 제 2 차 세계 대전 발발 이후에 남자들이 전쟁터에 나간 그 일자리를 여성들이 메우게 되면서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본격화 된 것과 관계가 있다는 것은 여러 번 지적을 했다. 과학의 급속한 발달과 산업사회의 급부상으로 맞벌이가 대세가 되고 프로이트의 신경증 치료는 약효가 떨어지면서 새로운 장애가 등장 한 것이 1938(경계선 장애 보드라인 장애)으로 프로이트 사망 1년 전에 이미 신경증 치료의 한계점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에릭슨은 이미 이러한 사회적 현상을 간파하고 대인관계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인디언들과 함께 생활 하면서 농경시대의 삶과 산업사회의 삶을 비교해서 그는 15년 동안 대인관계에 대한 연구의 결실로 1950년에 어린이에게 사회성이 얼마나 중요하고 사회성이 어떻게 길러지는가?를 이론화 한 것이어서 정신분석가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여기에서 메라니 크레인의 유아-엄마 관계는 이미 영국에서 씨앗이 뿌려져 자라라고 있었다. 즉 관계의 시작은 엄마의 유방에서 시작된다 유아의 탐색의 최초는 유방에서 시작되고 그리고 그 다음에 엄마의 눈, , 입의 탐색으로 이어지고 그리고 그것이 통합되어 엄마라는 얼굴의 인식으로 그리고 엄마 품에서 엄마 등에 업혀 다니고 엄마의 유방을 빨고 만지고 탐색으로 이어지면서 엄마의 몸의 탐색으로 엄마를 두려워하지 않고 그 다음 단계인 주변 환경의 탐색으로 이어지게 된다1-3살 사이에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탐색으로 이어진다고 기술을 하고 있다.

여기에서 엄마와 아기의 초반기 관계가 이후의 대인관계의 뿌리가 된다는 이론이 전 세계로 확대되어져 가면서 프로이트의 3세-5세의 강조가 이제는 0-3세로 바뀌게 된다. 프로이트는 어른의 신경증 치료에서 기억으로 어린 시절인 3-5세까지의 기억을 회상으로 연결시켰다. 꿈으로 그 이전의 어린 시절의 기억을 찾아낼 수 있었다. 이러한 프로이트의 남근기 이론은 가부장적인 아버지 중심 이론(빅토리아 시대의 남성우월주의는 로마 시대의 남성우월주의 사상의 연장으로 보고 있다. 영국의 법은 로마법을 따랐다)에서 크레인의 어머니의 중심으로 바뀌게 된다. 프로이트의 한 사람 심리학이 엄마-아기 관계의 두 사람 심리학으로 강조점이 바뀌게 되는 것은 시대적 산물로 보고 있다.

사회가 급격한 발달로 인해서 인간의 심리적인 강조점이 쌍방 관계로 바뀌게 된다. 생물학적인 이론이 사회학적인 문화적인 강조점으로 바뀌게 된다는 말이다. 크레인과 에릭슨은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본다. 이후에 정신분석가들은 코호트, 위니코트, 비용 등의 정신분석학의 대가들에 의해서 어린 시절에 양육 환경으로 초점이 모아지게 된 것이다. 이것을 실험실에서 4명의 유아들을 직접 실험관찰로써 실험실에서 프로이트의 이론이 증명되어지는 연구가 1950년 대에 시작해서 15년간의 연구 끝에 1976년에 뉴욕의 소아정신분석가로서 어린이 정신증과 어린이 정신분열증의 치료에 공헌한 마가레트 몰러(Margeret Mahler, 1976: 주㈜: 참고)가 출판한 저서 인간 유아의 마음의 탄생에서 그 실험들이 프로이트와 에릭슨의 정신분석 이론이 증명되어진 것이다.

몰러는 프로이트와 에릭슨과 다르게 구분을 했다. 출생 직후에 제 1 차 나르시즘 상황에서 그 다음 단계인 엄마와 아기의 하나된 관계에서 그리고 9개월에서 1 6개월의 시점에서 엄마의 얼굴을 구분하면서 엄마와 분리되어져 있다는 분리-개인화로 분류를 했다. 이 시점에서 아기는 엄마와 분리된 사람임을 인식하게 되고 자아가 엄마와 다르다는 구분으로 그 다음 단계인 환경 탐색으로 이어지는데 아기는 엄마의 몸의 탐색에서 주변환경의 탐색으로 이어지면서 마음대로 주변 환경을 탐색하다가 장애물에 걸리게 되면 엄마를 찾고 부르게 된다. 이 시점에서 엄마가 째 빨리 달려가서 아기를 달래주어야 한다. 몰러는 이것을 감정의 재충전이라고 불렀다. 이 시점에서 엄마는 아기에게 베이스 캠프(예를 들면 에베레트산 등정에서 지원 본부)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아이가 불안, 두려움에 흽싸이면 엄마를 찾아오고 엄마는 아기의 불안, 두려움을 흡수해서(달래주고 안아주고 쓰다듬어 주어서) 감정을 풀어주고 지원해주어서 아기는 다시 환경 탐색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 잘 통과한 어린이는 어른이 되어서 세상의 탐색에 두려움, 불안이 없이 마음대로 세상을 활보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장애물에 걸려서 통과하지 못한 어린이는 주변 환경을 두려워하고 불안해서 위축으로 내면의 세계로 들어가버린다는 것을 실험으로 밝혀냈다,

이러한 구분화 과정을 통과하면서 애매기 단계를 거치게 된다 1.5-3세 정도의 기간에 아기는 엄마에게 혼자서 하겠다고 주장을 하면서 하다가 잘 되지 않으면 엄마에게 매달리고 엄마가 대신해 달라고 한다. 이러한 금방 자신이 하려고 엄마를 밀어 냈다가 잘 되지 않으니까? 엄마를 부르는 아기의 행동은 금방 이랬다 저랬다 왔다 갔다는 반복할 때 엄마가 이것을 수백 번, 수천 번을 참고 지원을 해주어야 한다. 신경증적인 엄마 혹은 맞벌이 엄마들은 시간이 없다 고로 이러한 것에 짜증을 내고 처벌을 하게 될 때 아기는 좌절을 참고 견디면서 과업을 성취하는 즐거움을 박탈 당하게 된다. 이 장애물을 통과하지 못한 어린이들은 조그만 좌절에 참을 수 없고 조그만 분노에 폭발해서 감정이 천국에서 지옥으로 엄마의 지원이 있을 때는 엄마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엄마로 엄마의 처벌은 엄마가 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악마로 감정이 천국에서 지옥으로 왔다 갔다는 경계선 장애의 특징이 여기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메라니 크레인은 좀 더 세부적으로 ego의 발달 과정과 성장의 과정을 구분화 했다. 아기는 너와 나의 구분이 되는 시점(1세정도)에서 주변 환경의 탐색에서 모든 물건들이 생명 가진 살아 있는 물건으로 인식하게 된다. 의자에 부딪치면 아기는 의자를 가리키면서 그것이 나를 해코지 한 것으로 울면서 엄마에게 하소연을 한다. 엄마는 그 걸상을 때리면서 걸상을 야단을 친다. 아기는 울음 달래고 안정을 회복한다. 크레인은 어린이의 상상들을 놀이로써 분석해서 아기들이 마음이 모든 잘못을 다른 사물, 사람의 탓으로 돌리면서 자신의 탓이 아니라고 호소를 한다. 이것을 투사라고 불렀다. 내 잘못이 아닌 다른 것의 잘못으로 아기는 자신의 자아를 보호하는 것이다, 즉 유아기에는 사물이 분열되어 쪼갬으로 모든 외부이 주는 고통을 투사해서 자아를 무의식적으로 보호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것은 이후에 발달 학자들에 의해서 실험으로 증명이 되었다. 아기는 출생 시에 엄마의 눈으로 코로 입으로 향하지만 각각을 분리되어진 쪼갬으로 지각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3개월 시점이 되면 눈, . , 귀의 얼굴이 통합되어 생명체와 무생물의 구분이 이루어지고 7개월-9개월에 엄마의 얼굴을 구분하는 쪽으로 발달하게 된다. 이후에 주변 상황들을 모두 쪼개서 투사를 해서 모든 잘못은 아기 자신이 잘못한 것이 아니고 다른 대상들이 잘못해서 아기에게 해코지 한 것으로 인식되면서 아기는 모든 것을 투사를 해서 자신의 잘못이 없는 대상의 잘못으로 투사를 하게 되는데 이것이 3세 정도가 되면서 그 분열된 통합들이 더 성숙한 자아의 발달로 이어진다고 이론화 했다.

크레인은 이것을 편집증-자아분열 단계로 이론화 했다. 이 단계를 통과하면서 아기의 분열된 지각들이 하나로 통합되어지면서 아기의 ego는 더욱더 강해지고 힘을 얻게 된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서 3세 이전에 아기는 엄마가 100% 좋은 엄마와 100% 나쁜 엄마로 두 사람의 엄마로 본다. 엄마의 지원을 받아서 마음대로 자신의 과업이 잘 이루어지면 아기는 우리 엄마는 이 세상에서 최고의 엄마로 100% 좋은 엄마가 되고 좌절과 장애물과 분노로 이어지면 엄마는 100% 나쁜 마귀엄마로 인식되어 서로 구분이 되어 두 사람으로 인식되다가 이후에 통합이 되면 3-5세의 기간 동안에 엄마는 두 사람이 아닌 한 사람으로 사랑을 주는 엄마와 처벌을 하는 엄마는 한 사람임을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편집증-자아분열의 ego 관계를 통과해서 자아가 힘을 얻게 되면 엄마로부터 떨어져 나와서 내가 혼자서 하는 힘을 얻게 되는데 이것을 우울한 유형으로 구분을 했다. 엄마와 분리되어 떨어져나 와서 혼자서 자신감으로 세상을 탐색하게 되는 것으로 보았다. 여기에서 장애물에 걸리게 되면 멜랑꼴리아 즉 조울증의 장애로 연결된다고 가설화 했다. 조울증은 우울증과 조증이 교대로 나타난다. 우울증은 모든 것이 마음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자신감의 결여로 절망의 상황이 아닌가? 그런데 조증은 반대로 이세상에서 최고가 되고 과대망상적이 되는 것은 우울한 단계 이전의 단계로 퇴행을 해서 편집증-자아분열의 ego 상황으로 퇴행한 것이 교대로 나타나는 것으로 이론화 했다. 크레인의 이러한 ego 발달의 과정의 세분화는 이후에 정신분석가들에 의해서 정신분열증(조현병), 편집증, 조울증의 치료로 가는 길을 열어 놓게 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크레인의 이론은 최근에 1990년 이후에 뇌신경-영상학에 의해서 뇌의 컴퓨터 실험을 통해서 뇌 신경 세포들은 모두가 세분화 되어 분리되어서 정보를 모아서 서로 잘 통합되어져서 한 개로 통합되어진다는 것이 밝혀졌다. 예를 들어서 듣는 신경과 말을 하는 신경은 따로따로 구분이 되어있다. 그런데 이것이 잘 통합되어져서 듣고 말하는 것이 두 개로 보이는 것이 아닌 하나로 소통이 된다는 것이다. 모든 뇌 세포들은 세분화로 미세하게 모두가 다른 정보 회로들이 하나로 통합되어지셔 한 개로 보이는 것이다. 이것은 뇌가 좌뇌와 우뇌로 두 개이고 세로로 보면 파충류의 뇌, 포유동물의 뇌, 고등동물의 뇌로 3층의 3개로 진화된 뇌인데 두 개로 혹은 세 개로 보이지 않고 하나의 마음 하나의 뇌로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크레인은 자아의 발달 과정에서 이러한 장애물을 통과하지 못하고 원시적인 형태로 남아 있는 사람들이 바로 편집증 환자들(모든 것을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는 의심증 환자) 그리고 자아가 들쭉 날쭉으로 여러 개로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 그리고 자아분열과 정신분열증 환자들은 이 단계에서 상처로 장애물을 통과하지 못한 사람들로 보았다.

이제 정신분석학자들의 다양한 이론을 요약한 것을 바탕으로 해서 심리적 공간의 설명으로 들어가보기로 한다.

부모들은 유아기와 관계에서 아기와 너와나의 하나됨으로 아기의 모든 것을 일일이 옆에서 보살펴주고 지원해주고 도와주는 것은 발달의 최초의 단계이다. 그런데 아기가 엄마와 분리된 단계를 거치면서 엄마와 다른 사람이고 분리된 사람이라는 인식이 확고하게 된 시점에서는 즉 항문기, 그리고 자치심의 기간인 1-3세 기간에는 엄마가 아기의 주도권을 존중하고 아가가 마음대로 하도록 지원해주어야 하는데 맞벌이로 일하는 엄마들 혹은 전업 주부로써 양육을 전담하는 신경증을 가진 엄마들은 출생 직후 3개월 정도가 되면 직장으로 복귀해서 아기들을 유아원, 영아원에 맡기게 된다. 1세 이후가 되면서 주변 환경의 탐색의 기간에 영아원에서 보모가 7-8명의 어린이들을 돌보아주기 되면서 아기는 조용하게 장난감으로 노는 것을 선호하게 된다. 아기가 주변 환경을 어질거나 망가뜨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게 된다. 간섭하고 통제하는 쪽으로 양육이 되기 쉽다는 말이다. 전업 주부인 경우에도 신경증적인 엄마들을 아기가 다칠까 봐 심리적으로 불안해서 아기를 간섭하고 환경 탐색을 막아버리는 것을 볼 수 있다. 깨끗하게 청소되고 정리정돈이 잘 된 집안에서 아기가 마음대로 어질러 놓거나 더럽히거나 금방 깨끗하게 갈아 입힌 옷들이 새로 갈아 입히는 것은 엄마에게 고통이고 고역이 된다. 이 시점에서 아기는 자신이 마음대로 하려고 하는 자아 주도와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하라고 하는 엄마의 통제와 간섭이 충돌하는 것이다. 엄마와 아기의 싸움은 반드시 엄마가 이기는 것은 아니다, 아기는 성질부리기, 데굴데굴 구르기, 오줌과 똥으로 공격을 한다. 엄마가 처벌로써 위협을 하게 되면 그 다음 단계로 아기는 주도권은 엄마에게로 넘어가고 아기는 주변 환경의 탐색에 수동적이 된다. 3-5세의 단계에서는 아기의 자아는 자신감을 잃게 되고 죄의식에 사로잡히게 된다. 모든 잘못들은 아기에게도 돌아가고 엄마, 아빠는 전지전능하게 보이게 된다, 여기에서 어린이는 부모가 보호해주지 못하는 자아를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서 과대과장, 나르시즘, 과대망상 등으로 너무 일찍 조숙한 사람이 된다. 엄마, 아빠가 아기의 잘못으로 처벌, 평가절하가 따라오면 자아는 죄의식으로 내가 나쁜 사람, 내가 잘못한 행동으로 모든 것이 내 잘못이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위기를 스스로 막기 위해서 자아를 보호하려고 하는 원시적 자아 보호막으로 갑옷이 만들어지게 된다. 이 자아 보호막인 갑옷은 이후에 마음의 성장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된다.

좀 더 구체적으로 현실적인 문제와 연결해보자. 현실적인 문제라는 것은 오늘 날 우리 사회의 유아 양육에 비추어서 세분화 시켜서 설명을 해 보도록 하자. 즉 맞벌이, 조부모와 친척들에게 맡겨진 유아들, 유아원, 영아원에 보내지게 된 유아들, 유치원, 초등학교 시점에서부터 시작되는 학습들 예를 들어서 학습지 공부, 피아노 학원, 미술 학원, 태권도 학원 등등으로 점점 학습에 대한 과중 된 부담에서 시달리고 있는 지금 현재의 어린이들의 양육에서 생기는 문제들에 대한 이야기로 되돌려 보자.

첫 번째는 부부 관계가 원만한 맞벌이 부부의 경우이다. 유아는 조부모(친 혹은 외가의 조부모)에게 혹은 중년의 아주머니 혹은 영아원, 유아원에 맡겨지는 경우에 해당된다. 엄마와 아빠는 직장 생활에서 귀가하면 직장에서 밀린 일을 집에서 보충하는 것, 집안일, 식사 준비 등으로 충분한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 양육자들은 자연스럽게 아기의 먹고 입고 대소변 그리고 위험한 환경에서 보호(질병)에 초점이 맞추어지게 된다. 토요일, 일요일에도 부부는 각자가 밀린 직장 일, 가정 일들에 시달리면서 아기와 신체적 접촉이 줄어들게 된다. 먹고, 입고, 대소변 훈련과 같은 외부적 환경에 신경을 쓰게 된다. 아기에게는 경제적으로 충분한 지원으로 부족함이 없이 아기가 원하는 것을 제공해준다. 최고의 분유, 이유식, 최고의 기저귀, 최고의 장난감, 유모차 등등으로 아기는 부모와 대화를 가지는 시간보다 혼자 장난감으로, TV의 어린이 프로그램 등에서 혼자서 놀이를 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게 된다. 3-5세 정도가 되면 아기는 어린이로 성장을 해서 충분한 의사소통으로 부모와 대화를 할 수 있다. 이 시점에서 아기는 선과 악, 좋은 것, 나쁜 것을 구분하게 되면서 부모가 무엇을 어떻게 행동하면 좋아하고 어떻게 행동하면 싫어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연스럽게 부모의 눈치, 비위를 맞추게 된다. 집안 일과 직장 생활에 쪼들린 엄마는 어린이들의 대화를 일일이 들어주고 지원해주고 표현하는 것을 경청하는 대신에 대화가 지시적이 되어 어린이 중심의 수평적인 대화가 아니고 부모님 중심의 수직적 대화가 된다. 지시, 명령적이 되고 어린이는 순종적, 부응적이 된다. 유치원,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자녀들 귀가 후에 하루 일과들을 부모 특별히 엄마에게 그들의 생각, 느낌, 상상, 사고, 지각, 감각을 일일이 미주알고주알 표현하고 지원하는 쪽으로 보다는 특별한 사고가 없었는지? 위험한 일은 없었는지? 등을 체크해서 무사안일 주의로 흘러가게 된다. 즉 부모는 어린이들이 갈등을 일으키는 것을 싫어하게 된다. 자녀들은 어떻게 갈등을 해결하는지?를 배우지 못하게 된다. 동료들과 갈등이 생기면 피하고 참고 억압하는 쪽으로 연결되기가 쉽다. 혼자서 하는 놀이들은 사적인 자아를 성장시키는 쪽으로 연결되어지는 확률은 점점 낮아지게 된다.

30대의 A군은 부모님의 맞벌이로 할머니 한데서 양육을 받았다. 할머니는 A군의 집으로 와서 같이 생활 하면서 A군을 양육을 도와주었다. A군은 어린시절부터 총명해서 부모님의 말을 잘 듣고 동료들과 잘 어울리면서 큰 문제가 없이 자라났다. A군은 유치원, 학교 시절에는 공부도 잘하고 선생님들의 사랑을 받았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에서 A군이 상사들과 갈등에서 힘들어했다. 상사들의 갑 질에서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에 대기업에서 5년간 직장 생활을 하다가 그만 두고 몇몇 다른 직장으로 이동을 하다가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받게 되었다. A군은 지나치게 순종적이고 상사에게 No라고 말을 하지 못하는 자기 주장이 없는 사람으로 밝혀졌다. 그는 갈등을 피하고 분노를 참고 견디는 쪽으로 성장을 하면서 내면에 억압되어진 분노, 충동, 적대감정이 한계선을 넘어가면서 폭발로 이어진다는 것을 분석으로 밝혀내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도록 하는 치료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갈등을 피하지 말고 직면해서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억압하지 말고 행동으로 표현하지 말고 말로써 표현을 하는 치료를 6개월 동안 받은 후에 A군은 새로운 직장을 구해서 지금은 잘 적응해 나가고 있다.

두 번째는 갈등적인 부부 관계의 경우이다. 먼저 아버지가 어머니를 좌지우지 하는 가정에서 자라는 어린이들의 경우이다. 이러한 경우에 어머니는 신경증을 가지는 것이 보통이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말에 순종하지 않으면 폭력과 폭언이 따라오게 된다. 남편에 대한 분노가 누적이 되면 될수록 어머니는 사보다지를 하게 된다. 겉으로 복종하는 체 하지만 속으로는 남편의 일에 협조하지 않고 반대를 하면서 부부 관계는 더욱 더 악화되어간다.

이러한 가족 환경에서 자라나는 어린이들은 눈치, 코치로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읽는 데는 천재적이 된다. 감정을 말로써 표현하는 것이 아니고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을 배우게 된다. 부모의 갈등들이 상처를 주는 충격적인 사건이 되면 어린이들은 감정이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감정을 억압하고 숨기고 표현을 두려워하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배우게 된다.

B군은 24세의 젊은이로 심한 불안증과 대인공포증으로 하루에 아침에 한번 저녁에 한번 5알의 약물로 현상유지를 하는 청년으로 아버지가 치료자의 홈 페이지를 보고 아들인 B군을 치료에 이첩한 한 청년이었다. 그의 어린시절의 양육의 분석에서 그가 초등학교 3학년 시점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로 갈등을 일으키면서 아버지가 칼로 어머니를 찌르는 위협적인 사건을 보았다, 그 순간에 그는 어머니를 보호하기 위해서 아버지의 다리를 붙잡고 울면서 착한 어린이가 될 것이니 엄마를 용서해달라고 빌었던 사건을 회고를 했다. 아버지가 칼로 어머니를 위협하는 사건은 그 이후에도 여러 번 있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라난 B군은 감정을 표현을 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부모님의 갈등에서 여러 번 아버지의 폭력을 경험한 B군은 그러나 중학교 시절까지는 큰 문제가 없었다. 중학교 시절에 반에서 2, 3등으로 공부를 잘 했고 중학교 3학년 때는 전교에서 20등 이내로 외고 진학을 목표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외고에 실패하면서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한 B군은 학교 공부에 흥미를 상실했다. 그는 학교의 선생님들을 실력이 없는 사람으로 동료들은 공부에 관심이 없는 어중이떠중이로 생각해서 아예 공부를 하지 않게 되었다. 그는 고교 시절에는 아예 공부에 관심을 끊어버렸다고 실토를 했다. 고교 졸업 후에 대학에 합격을 했지만 이름이 없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대학이라고 대학을 포기했다. 아버지의 권유로 xxx 컴퓨터 학원에서 특별한 기술을 배우려고 6개월 등록을 하고 공부를 하다가 그만 포기를 했다. 아버지는 아들의 재능을 알고 있었던 아버지가 대입 공부를 다시 하도록 지원을 하기 위해서 1년 후에 B군을 기숙사 입시 학원에 입학시켜주었다. 그 학원에서 1달을 넘기지 못하고 자퇴하고 나서 심한 불안증과 우울증을 개발을 했다. 그는 군에 입대를 해서 8개월간 복무를 하다가 부적응자로 집으로 귀가해서 대체 복무로 공익요원으로 있다가 아버지의 소개로 치료자를 찾아와서 분석 심리치료를 받게 되었다.

그는 중학교 시절부터 동료들과 관계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공부에 올인 함으로써 견딜 수가 있었다. 그러나 고입에 실패는 학습의 열정을 갈아 먹어버렸기 때문에 내면에 잠재해 있던 동료들과 관계가 표면으로 드러나게 되어 동료들을 피하면서 1학년을 보내면서 더 이상 견딜 수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2 학년 때는 7-8명의 한 그룹에 소속을 해서 대인관계를 개선하기로 결심을 하고 열심히 그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공부에는 관심을 꺼버렸지만 2학년 때는 그런대로 보낼 수 있었다. 3이 되면서 반이 바뀌면서 7명의 동료 그룹이 같이 모이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B군은 동료들이 자신을 챙겨주지 않는다는 배신감에서 그들과 단절이 그의 핵심 문제를 확대 시켰다. 그가 고교 졸업 이후에 기숙사 생활에서 실패한 직후에 그의 문제가 표면으로 드러나게 된 것이었다.

분석의 과정에서 B군은 감정을 두려워해서 표현을 하지 못하고 내면에 억압한 것이 긴장 방출로 연결되어지지 못한 것이다(단절된 대인관계 때문에 긴장의 방출이 차단).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좌지우지 하는 가족 환경에서 어머니를 복종시키기 위해서 아버지가 칼로 어머니를 위협한 사건에서 감정의 두려움의 억압으로 연결되었다는 것과 친구관계의 단절로써 어떻게 동료들과 관계를 해 나아야 하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고등학교와 졸업 후에 사회생활 군대생활에서 점점 더 생활이 복잡해지는 과정에 적응의 어려움이 증세로 등장하게 된 것이었다. B군은 1 6개월 동안 분석 치료를 받으면서 감정을 표현하고 대인관계를 어떻게 하느냐? 를 치료 회기 시간에 새로 배우면서 약물을 소지하고 다니면서 모든 불안과 긴장과 갈등을 약물로써 순간적으로 넘기는 관계에서 약물의 복용을 중단하고 자아의 힘으로 대처하는 것으로 진행되어갔다. 대인관계의 갈등 해결이 좋아지고 있다고 확신을 한 B군 자신은 좀 더 치료를 받고 싶다는 소망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치료 비용을 지원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치료가 중단된 안타까운 사례였다.

세 번째로 부부 사이에서 어머니가 좌지우지 하는 가족 생활에서 어린이들의 양육이다. 이 경우에 아버지는 무능한 사람으로 낙인이 찍혀 있기 때문에 어머니는 아버지를 자연스럽게 거세시키게 된다. 양육과 가족들의 경제가 어머니의 손에 달려 있는 경우가 흔하다. 쥐꼬리 만한 봉급에서 혹은 일을 하지 않고 무위도식 하는 가정에서 아버지의 영역은 좁아지게 된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라나는 어린이들은 아버지를 동일시하지 않게 된다. 무시당하고, 안정을 받지 못한 아버지는 자주 술을 마시고 알코올 중독이 되거나 혹은 술로써 술 주사, 술 주정으로 가족들을 괴롭히거나, 한번씩 폭력으로 맞서게 된다. 이러한 폭력은 아버지를 더욱 더 설 자리를 잃게 만들게 된다.

C군은 30세의 청년으로 대학을 졸업한 후에 치료자에게 분석 치료를 받게 되었다. 그는 집에서 일을 받아와서 처리에 주는 프리렌스 직업(직장 생활이 아니고 집에서 자유롭게 일을 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핵심 문제는 동료들과 친밀관계의 어려움 때문에 대인관계가 어렵다는 것을 호소를 했다. 그의 핵심 호소는 그가 하고 있는 이 직업을 왜 그가 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정작 무슨 일을 해야 할 것인지? 왜 일을 해야 하는지?를 모르겠다고 했다. 양육의 과정에서 어머니가 양육과 경제를 전담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직장에서 일을 한 적이 거의 없다고 했다. 아버지는 중학교를 자퇴한 사람으로 자신의 아버지(C군의 할아버지)의 강압과 처벌에 끝없이 반항아로 그리고 문제아로 성장한 것이 밝혀졌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관계가 거의 없었다.집에 오면 서로 대화가 거의 없었다. 아버지는 C군이 어린시절에 가출로 집에 없는 경우가 많았다. 아버지는 C군이 고교, 대학 시절에 노숙인이 되어서 방황 하면서 지내다가 50대 초반에 치매로 길을 잃어버리는 장애인으로 지금은 요양병원에 입원 중이라고 했다. C군의 분석에서 어머니는 하나뿐인 아들에 희망을 걸고 유치원 시절부터 아낌없는 지원을 해 주었다. 그러나 어머니 역시 C군과 대화가 거의 없었다. 물론 벙어리가 아니기 때문에 서로 주고 받는 이야기가 없다는 것이 아니고 내면의 느낌과 감정과 생각과 상상들을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하는 사적이 대화가 거의 없었다는 말이다.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어머니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학습지를 받아서 하도록 했다. 피아노 레슨을 받게 했다. 과외 학습을 하게 했다. 그리고 토, 일요일에는 주변의 박물관, 도석관, 전시관 등등으로 C군을 데리고 현장 학습을 하도록 했다. 어머니는 유일하게 아들을 위해서 삶의 희망으로 투자를 한 것이었다. 그런데 치료자가 분석으로 밝혀낸 것은 학습지들, 과외들 그리고 현장 견학들을 하면서 어머니가 아들의 손을 잡고 다니면서도 서로 대화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박물관, 도서관, 전시관 등을 다녀왔지만 서로 나누는 대화가 없었다.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 것 나누는 이야기가 없었기 때문에 C군은 왜 내가 이러한 것을 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어머니는 다른 어린이들이 하고 있기 때문에 내 자식도 해야 한다. 내 자식도 남의 자식에 뒤떨어져서는 안 된다 라는 생각 때문에 어려운 가정 환경 속에서도 전액 투자를 한 것이었다. 그런데 C군은 이것이 지루함으로 스트레스로 하기 싫은 것을 해야만 하는 억압으로 느껴져서 할 수 없이 형식 적으로 학습을 한 것이었다. 즉 하는 일이 나를 위해서 한 것이 아니고(물론 어머니는 아들 C를 위해서 한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엄마의 불안한 욕구를 위해서 한 것이 아닌가?라는 것이 분석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그러한 표현 자체를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C군은 자신의 느낌과 생각과 감정들을 표현하는 것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있는 가족 생활은 서로가 말이 없었다. 냉전으로 질식적인 분위기였다. C군은 중학생이 되면서 고등학교학생이 되면서 아버지에게 무능한 아버지, 일을 하지 않고 술로 세월을 보내는 아버지에게 반항을 했던 몇 개의 이벤트를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는 C군에게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받은 학대와 폭력 때문에 그 분노에 갇혀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폐인이 된 것이 분석으로 밝혀졌다. C군은 아버지에 대한 분노 역시 억압되어 한계점을 넘어가서 자신의 자아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네 번째는 부부 사이에 갈등이 평행선으로 치닫는 경우의 가정에서 자라난 어린이들의 경우이다. 40대 초반의 D양은 미혼으로 심한 우울증으로 매일 같이 흘러 내리는 눈물 때문에 치료자를 찾아오게 되었다. 그녀는 결혼 후에 그녀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 같은 가족을 대물림 하기 싫어서 결혼 생활을 포기했다고 털어 놓았다. 아버지는 우리나라의 최고의 명문 대학을 나와서 고교 교사로 재직하고 있고 그리고 어머니는 최고의 명문 대학에서 간호학을 전공해서 간호사로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부모님의 부부 싸움은 누가 이기고 지는 것이 아니고 평행선을 그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부부싸움을 그칠 날이 없었다. 한 사람도 지는 사람이 없이 똑 같았다고 회고를 했다. 밥상이 날아가고 벽에 콩나물 국이 틔어서 콩나물이 붙어있는 것을 보면서 자라났다고 했다. 그렇다고 두 사람은 이혼을 한 것은 아니었다. D양은 감정을 위험한 것으로 억압한 것으로 밝혀졌다. 부모님에 대한 분노는 직접 표현되어지지 못하고 내면에 억압되어 내 자아를 공격한 것이었다. 부모님에 대한 좋은 감정은 흘러가지만 부모님에게 효도하고 부모님을 존경해야 한다는 어린시절의 가르침이 부모님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억제하고 억압한 것으로 연결되었다.

다섯 번째는 아버지가 좌지우지 하는 가족 관계로써 아버지가 음주 혹은 알코올 중독으로 어머니를 폭력을 행사한 경우의 자녀들의 성장이다. E씨는 30대 중반으로 유명한 외국인 기업에서 과장으로 있는 사람으로 치료자를 찾아와서 분석 치료를 요청을 했다. 그의 아버지는 지방의 이름 있는 대학의 학도호국단장(박정희 대통령 시간에 대학의 학생 회장)으로 가족구성원들은 출세할 것이라고 기대가 컸다고 했다. 어머니는 은행장을 한 아버지가 은퇴 후에 농장을 경험하는 집안의 장녀로 결혼을 할 때에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결혼을 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한 친구와 동업자로 지방의 대 도시에서 건축사업을 하다가 부도가 나면서 친구의 고소로 6개월 감옥생활을 한 이후에 모든 것이 내리막길이 되었다. 그 이후에 아버지는 시시한 작은 소매업은 무시했다. 어머니가 지원해주는 조그만 일들을 모두가 실패를 했다. 아버지는 일을 하지 않고 술로 세월을 보냈다. 어머니가 생활 전선에 뛰어들면서 E씨는 외할머니 집에 보내졌다.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면서 부모님 집으로 되돌아왔다. 어머니는 아침 일찍 보험업 혹은 화장품을 팔기 위해서 나갔다. E군은 초등학교 입학식에도 혼자 갔다고 회고를 했다. 학교에 입학 하고 나서 다른 동료들은 글자를 일고 쓰고 나서 입학을 했는데 그는 한글을 모르고 입학한 유일한 학생이었다. 그의 초등학교 시절은 재난이었다. 아버지는 밤 늦게 술에 만취되어 집에 들어와서 불평하는 어머니를 몽둥이로 때렸다. 초등학교 1학년 때 E씨가 미술 시간에 준비물(공작 만들기, 미술 준비물)을 사야 하기 때문에 돈이 필요하다고 말을 했을 때 출근을 하려고 하던 엄마가 호통을 쳤다. 엄마가 돈을 벌러 나아야 하는데 너는 엄마가 얼마나 힘들게 돈을 벌어서 너희들(3살 아래의 남동생)을 양육하고 있는지? 알고 있느냐? 라고 충격적인 말을 듣고 나서 그 이후에 그는 지금까지 엄마에게 돈을 이야기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치료자와 약 1 6개월의 분석 치료 과정을 통해서 한 개의 이벤트를 이야기를 했다. 어느 날 그가 근무하고 있는 새내기 후배의 입사 환영회 후에 새내기 여사원이 늦은 환영회 때문에 교통이 끊어져서 택시를 타고 가야 하는데 비용을 빌려 달라고 해서 3만원을 빌려주고 나서 그 후배 새내기가 이후에 3만원을 갚지 않는 것 때문에 혼자서 노심초사한 이벤트를 다루면서 돈에 대한 심각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새내기 신입 여사원에게 3만원을 돌려달라고 하면 째째한, 소심한 과장으로 낙인 찍을 것을 두려워해서 말을 하지 못한다고 고백을 했다. 그렇다고 과장의 후한 선심으로 잊어 버리려고 하니 마음 속에서 치밀어 올라오는 분노 때문에 고통스럽다고 하소연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3년 전에 결혼해서 3살 된 딸이 있었다. 그의 대기업의 봉급은 처가 집에서 사업으로 빌려준 돈 때문에 6년 째 돈을 받지 못해서(사업의 부도) 그의 봉급에서 3분의 1이 차압을 당하고 있었다. 그 이외에도 금전적인 문제들의 단초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엄마로부터 돈에 대한 처벌이 상처가 된 것이 밝혀진 것이었다.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가 새벽에 술에 취해서 어머니와 싸우는 것에 분노해서 야구 방망이로 아버지를 구타하려고 했던 사건을 이야기를 했다. 그는 부모님의 부부 싸움에 놀래서 남동생과 함께 집을 나와서 길모퉁이에서 날이 밝을 때까지 빈 라면 박스를 뒤집어 쓰고 새우잠을 잔 이벤트들을 이야기를 했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은 지옥이었다고 회고를 했다. 미술 시간만 되면 준비물을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에 선생님에게 처벌을 받았다고 했다. 선생님이 왜 준비물을 가져오지 않았느냐? 라고 물을 때마다 그는 잊어버렸기 때문에 준비를 하지 못했다고 거짓 말을 해야 했다고 고백을 했다. 어머니가 돈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돈이 없어서 준비물을 구입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그 시절에는 학교 입학 전에 가족 환경 조사서를 제출을 했다. 그 조사서에는 아버지는 대졸, 어머니는 고졸로써 잘 사는 집안으로 인식이 되어있었기 때문에 치맛바람이 한창이던 그 시절에 선생님은 부모님이 학교를 찾아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E씨는 미움의 대상이었다. 고로 그는 미술 시간만 되면 게으름뱅이로 낙인이 찍혀서 벌을 서야 했다고 하소연을 했다. 그는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을 했다. 공부를 잘해서 고교 시절에는 반장을 했다. 서울의 SKY 대학에 진학을 해서 동료들의 부러움을 샀다. 그런데 입학 후에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그 시절에 군사정권의 타도를 외치던 학생 데모가 한창이었던 시절로 그는 합창부에 들어가서 데모하는 학생들을 격려하는 시위투쟁 노래를 불러주는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동료들 앞에서 혼자서 노래를 부르다가 막혀서 망신을 당한 것에서 대인관계의 어려움이 표현화되었다. 그는 동료들과 친밀관계를 할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그룹으로 토론회 혹은 발표회에서 동료들 앞에서 나가서 발표를 하는 것을 피하고 자료들을 챙겨주는 쪽으로 졸업을 할 수는 있었다. 특별히 대학 3학년 때 중국에 6개월 연수를 가서 학원에 등록을 하고 첫 날만 출석을 하고 6개월 동안 방 안에서 생활했다고 고백을 했다. 대학 1학년 여름방학에 어머니와 갈등 속에서 술로 세월을 보낸 아버지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연락을 받고 달려 갔지만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했다고 통곡을 했다. 지방에서 서울의 SKY대학에 입학한 것을 자랑스럽게 칭찬을 하면서 아버지와 함께 대학 입학식에 참석을 하고 하숙집을 구해주고 갔던 아버지에 대한 죄의식은 분노로 억압되어져서 그 분노의 방출이 치료의 과정에서 다루어지게 된 것은 물론이다.

그는 대기업에 입사 후에 6년의 시간이 흘러가면서 사장의 특명으로 100여명의 사원이 모인 자리에서 연구 내용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모든 준비를 철저하게 준비를 했지만 발표하는 그 순간에 머리 속이 하얗게 변해서 아무 말고 못하고 내려온 치명적인 상처 때문에 치료자를 찾아온 것이었다. 1 6개월 동안 분석 치료에서 어머니가 16세 대 6.25 전쟁으로 인한 폭격으로 사망했고 아버지의 재혼으로 계모 밑에서 어머니가 성장을 해서 분노의 표현이 억압되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어머니는 자신이 분노를 표현하지 못하는 대신에 아버지를 통해서 분노를 대신 표현하도록 한 것이 분석결과 밝혀졌다. 이것이 바로 투사 동일시 혹은 공모로써 무의식적으로 감정을 상대방을 통해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어머니는 아버지의 무능력으로, 가정에 대한 경제적인 부담을 말로써 직접적으로 표현을 하지 못하고 대신에 아버지의 분노를 자극해서 아버지가 어머니의 분노를 대신해서 표현을 하도록 한 것이 두 사람의 분노의 표현의 배출구가 된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자녀들이 상처를 입은 것이었다. E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서 취업으로 결혼을 할 수 있었지만 그의 남동생은 중학교 자퇴로써 어려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여섯 번째는 조부모가 좌지우지 하는 가족들의 자녀들이 경우이다. 할머니 혹은 할아버지가 아버지 혹은 어머니를 좌지우지 하는 경우로써 부모님은 조부모의 지시, 명령, 강압에 저항할 수가 없는 경우이다. 이 경우에 대부분이 전통적인 가정으로 부모님에게 효도하고 부모님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는 농경시대의 사고 방식이 좌우하는 가정이 많다.

30세의 F군은 부모님의 맞벌이로 친 조부모 특별히 할머니가 F군을 주로 양육을 했다. 대화는 수직적이고 F군은 말을 잘 듣는 착한 어린이로 성장을 했다. 4살 때 여동생이 태어나면서 할머니는 두 명의 손자들을 키울 수 없다고 부모님에게 분가를 명령했다. 할 수 없이 어머니는 F군을 유아원에 보냈다. F군을 유아원에서 순하고 착한 어린이로 통했다. 아버지는 사업 차 저녁 늦게 1시 혹은 2시에 귀가를 했다. 어머니는 저녁 6시경에 귀가해서 두 명의 자녀들을 양육을 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이전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F군이 초등학교 3학년 시점에서 돈을 훔치기 시작했다. 한 번, 두 번상습적이 되어갔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F군의 도벽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강력한 손 버릇 고치기를 강조하면서 F군에게 처벌이 가해졌다. F군이 홈 플러스 에서 장난감을 훔친 것을 부모가 알고 아버지가 A군을 파출소에 데리고 가서 계속하면 유치장에 집어 넣겠다고 위협을 했다. F군의 도벽을 중학교까지 계속 되었다. F군은 공부는 입학 때부터 관심이 없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의 사업이 잘 되어서 아버지가 2층 집을 지어서 조부모와 부모님과 자녀들이 한 집에서 같이 살게 되었다. F군이 중학교 3학년 때 할아버지 지갑에서 7만원을 훔쳤다가 할아버지에게 발각이 된 후에 할아버지는 아버지에게 강력하게 손자의 도벽의 습관을 질책을 했고 아버지가 F군을 데리고 강가에 가서 A군의 손과 발을 묶고 같이 죽자고 F군의 목을 조인 사건으로 확대 되었다.

 30세가 된 F군은 조현병(정신분열증)으로 1달간 정신병원 입원 후에 1년 동안 심리치료와 3개월의 특별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받고 나서 2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다가 재발해서 치료자에게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게 되었다. F군은 TV와 대화를 하고 쌍욕설로 혼자서 이야기를 하는 이상한 증세들을 가지고 있었다. 분석 치료가 시작되면서 그의 과거의 어린 시절의 양육이 분석으로 드러나면서 F군이 초등학교 3 학년 시점부터 시작된 도벽은 부모님 한데서 훔친 돈으로 친구들에게 나누어주면서 대인관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아 보호였다는 것이 분석에서 밝혀냈다.

F군의 할아버지는 지방에서 재력가로 지역 유지로 소문난 유명인으로 전통적인 유교적인 집안에서 할머니의 보살핌으로 성장을 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조부모는 농경시대의 사고 방식으로 자녀를 양육을 했다. 대소변을 갈아주고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수직적인 대화 스타일로 어떻게 동료들과 관계를 해야 하는지?를 배우지 못한 것이다.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는 순둥이로, 착한 어린이로, 동료들과 관계가 중심이 되는 학교 생활에서 부응적인 어린이로 성장을 했다. 동료들과 어떻게 대인관계를 해야 하는지?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것으로 분석결과 밝혀졌다. 치료자에게 1년 동안 분석 치료를 받으면서 F군은 머리가 명석한 두뇌 회전이 빠른 청년으로 감정을 말로써 표현하는 기술에 결함으로 내면에 쌓인 분노가 충동적 행동으로 흘러간 것이 드러나면서 내면의 억압된 분노들을 행동이 아닌 말로써 표현하는 대화 훈련으로 사적인 자아의 개발이 시작되었다. 1년간 치료를 받고 나서 조현병적인 충동들은 완전히 사라졌다.

 일곱 번째로 할머니가 좌지우지 하는 집안에서 성장한 손자로써 그가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해서 자녀들이 5살과 3살이 된 시점에서 30대 후반이 된 G씨가 치료자에게 공황장애로 치료를 요청을 했다. 그는 신경정신과 약물 치료와 한의사의 치료에서 효과를 보지 못하고 최면 치료를 받다가 그만 두고 인터넷에서 치료자의 홈 페이지를 보고 치료를 요청한 것이었다. G씨의 양육 과정의 분석에서 할머니가 핵심 인물로 떠 올랐다. G씨는 할머니를 훌륭한 사람으로 존경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농사를 짓는 사람으로 늘 할머니와 충돌을 했다. 아버지는 술과 도박으로 할머니와 갈등을 빚었다. 그런데 분석의 과정에서 할머니가 자녀들을 자신의 말에 복종하지 않으면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것을 밝혀낼 수 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첫 결혼에서 자녀 출산으로 사망한 후에 재혼으로 아버지와 결혼을 했기 때문에 할머니로부터 혹독한 시집살이를 했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난청으로 장애인이라는 딱지 때문에 시어머니에게 복종적이었다. 고로 고부 갈등은 없었다. G씨가 기억을 하는 한 개의 사건은 아버지가 집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키워왔던 소를 소 시장에 가서 팔아오게 되었다. 아버지가 소를 팔아서 그 돈을 가지고 G 씨의 할머니에게 드렸을 때 할머니는 소를 너무 싼 값에 팔았다고 노발대발 해서 다시 소 값을 물어 주고 소를 찾아오게 했다. 이미 소를 팔아서 끝난 문제를 결국은 아버지가 소를 팔았던 사람에게 찾아가서 자초지종을 이야기를 하고 소 값을 되돌려서 소를 찾아온 사건을 이야기를 하면서 아버지의 도박, 술에 찌든 행동은 아버지의 어머니에 대한 반항이고 도전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아버지는 자신의 어머니의 강압적인 손아귀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서 발버둥으로 합법적인 방법을 찾지 못하고 어머니가 가장 싫어하는 술과 도박으로 어머니를 보복한 것으로 드러났다. 아버지는 결국 40대 충 반에 암으로 사망을 했다. G씨는 초등학교 4학년 시쯤부터 시골에서 겨울철은 농한기이기 때문에 여가 시간이 많은 계절일 때 아버지가 이웃 동네로 돌아다니면서 도박을 하는 것을 찾아내서 아버지를 집으로 데리고 오기 위해서 할머니가 G씨를 깨워서 밤새도록 이 동네 저 동네로 돌아다니면서 아버지를 찾아 다녔던 기억을 회상을 했다.

 공황장애의 핵심은 G씨가 초등학교 5학년 때 할아버지가 암에 걸려서 2년 동안 고통을 받게 되면서 시골이어서 의료에 대한 무지 때문에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죽을 때까지 방치해 두었다. 진통제로써 고통을 줄이는 것을 잘 몰랐기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는 G(3명의 아들 중에서 G씨가 대학을 졸업한 유일한 자녀)를 할아버지 방에서 같이 잠을 하게 하고 정작 할머니 자신은 빠졌다. 2년 동안 할아버지의 신음 소리와 고통을 옆에서 듣고 있으면서 G씨는 할아버지를 도와줄 방법이 없었다. 그는 마음 속으로 하느님에게 할아버지의 고통을 G씨가 대신 아프게 해 달라고 늘 빌고 빌었던 과거의 상처들이 분석의 과정에서 드러나게 되었다. 그 사건들 뿐만 아니고 할머니는 자신의 마음대로 가족 구성원들이 따르지 않으면 그냥 두고 보지 않았다. 끝까지 찾아나서 그녀의 말에 복종하도록 강압을 하고 처벌을 했다는 것이 하나씩 밝혀지면서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과 어머니의 시집살이로 고통(G씨는 어머니가 할머니 밑에서 식모처럼 일하고 자신의 영역을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 그리고 할아버지의 고통과 죽음에 대한 상처들이 16개월 동안의 분석 치료 과정을 통해서 다루어졌다. 치료가 끝난 2년 후에 그는 재발이 없이 잘 지내고 있다는 안부 메일을 보냈다. 그는 그 메일에서 선생님은 나의 5년 동안의 죽음의 그림자인 공장 장애로부터 나를 해방시켜준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명의입니다.”라는 메일을 보내왔었다.

 여덟 번째는 유사한 패턴으로 외할머니의 좌지우지하는 경향 때문에 부모님이 과도하게 처벌을 받게 되면서 그 환경에서 성장한 30대 초반의 직장인 남성이 치료자에게 6개월 동안 불안장애로 심리치료를 받고 나서 5년 후에 그의 어머니가 정신분열증(조현병)으로 10년 동안 고통에 시달리는 것을 치료해 달라는 의뢰를 받고 그녀를 6개월 동안 분석치료를 하면서 외할머니 때문에 어머니가 조현병에 걸리게 된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사례들은 이후에 소개될 자아의 심리적 공간의 필요성을 설명해주는 좋은 삽화가 될 것이기 때문에 소개를 한다.

 H부인은 4살 때 아버지가 폐결핵으로 사망하는 사람에 어머니가 재혼으로 외할머니 손에 맡겨지게 되었다. 그녀는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외할머니와 함께 생활을 하면서 한번씩 외할머니가 술을 마시면 5살 때 죽은 아들을 생각하면서 통곡하는 것 이외에는 큰 어려움은 없었다. 재혼한 어머니는 새로운 남편과 사이에서 4명의 어린이들이 태어났다. H부인이 초등학교 4학년 때 재혼한 어머니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 동안 고생을 했으니 집에 와서 함께 가족들과 살자는 제안을 받고 기뻐했다. 그녀는 어머니의 집으로 왔을 때 여동생 2명과 남동생 2명의 가족과 양부인 계부와 함께 살게 되었다. 계부는 특별한 직업이 없었다. 카페 혹은 홀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으로 수입이 별로 없었다. H부인의 어머니는 글자를 모르는 사람으로 부동산 일을 했다. 그녀는 치료자에게 분석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어머니와 양부가 그녀를 학대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마음 속에서는 그러한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말을 할 수가 없었다는 것을 시인을 했다. 어머니 혼자서 부동산 일을 통해서 어머니, 계부 그리고 4명의 자녀가 생활을 해야 했기 때문에 자녀들을 양육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초등학교 4학년이 된 딸을 집으로 불러 들인 것을 그 분석의 과정에서 밝혀냈다(어머니는 그 분석 때까지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녀의 딸이 동생들을 양육하는데 도움을 주고 그리고 어머니의 심부름을 하는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에 초등학교 4학년인 그녀의 딸(H부인)를 그녀의 집으로 오게 한 사실을 그 분석의 결과로써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H부인은 바로 밑에 있는 여동생은 이미 그 때 초등학교 2학년 이었기 때문에 도움이 많이 필요하지 않았지만 나머지 3명의 동생들을 업고 안고 키웠다고 했다. 그녀는 동생들이 뒷바라지를 하면서 그들의 엄마는 바로 H 부인이라고 스스로 자평을 했다. 3번째 남동생은 자신이 크면 누나와 함께 살겠다고 자주 이야기를 할만큼 그들을 돌보아주었다. 그런데 계부와는 대화가 없었다. 계부는 그녀에게 접근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 계부는 스스로 의붓 딸과 어떻게 관계를 하는지를 몰랐던 것으로 보였다. H부인의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늘 내 말을 들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너는 좋은 곳에 결혼을 하도록 주선을 해 줄 터이니 내 말을 듣고 따라오라고 했다. H부인은 어머니를 절대적으로 신뢰를 했다. 어머니가 시키는 일들은 무조건 그것을 심사숙고 하지 않고 실행을 했다. H부인은 집안 일을 맡아서 가정 살림살이와 동생들의 양육 그리고 어머니의 심부름을 도맡아서 불평을 하지 않고 열심히 일을 했다(분석에서 밝혀진 것은 H부인의 어머니는 그것을 고려해서 H부인을 자신의 집으로 불러 들인 것).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학교의 통신표(과거의 성적표)에는 H씨의 성()씨가 보호자인 계부의 성씨와 달랐다는 것이다. H부인은 성씨를 바꾸지 않았기 때문에 계부의 성씨와 표기가 다르게 통신표에 기대가 되었다는 것 때문에 괴로워했다. H부인의 한 친한 친구가 그녀의 이름과 아버지의 성씨가 다른 것에 눈치를 채고 물어 보려고 하는 것을 스스로 피했다. 어느 날 그녀의 친한 여자 친구가 그녀의 집에 놀려 왔다가 그녀의 대문에 문패가 붙어 있는데 그녀의 성씨가 다른 것을 보고 질문을 하려고 하다가 도망을 간 이후로는 그녀와 결별을 했다. 그 이후에 H 부인은 친구를 사귈 수가 없었다고 했다. 물론 이러한 고민은 친 엄마에게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큰 문제가 없이 세월이 흘러갔다.

그녀가 대학에 갈 수 있는 실력이 되었지만 엄마는 여자가 대학을 나와서 무엇 하느냐? 시집을 잘 가야 한다는 말로써 대학 진학을 꿈을 꿀 수가 없었다. 계부는 등달아서 여자가 공부를 많이 하면 머리가 커지면 못 쓴다(佳人薄命)라는 말로 대학 진학을 생각하지 못하게 했다. H부인은 여상을 졸업하고 어떤 목재소에 취업을 해서 매월 봉급을 타서 계부에게 드렸다. 그러나 계부는 H 부인에게 용돈을 따로 주지 않았다. 이것을 알고 어머니가 계부를 욕을 하면서 따로 용돈을 주어서 생활을 했다. 2년 동안 직장 생활에서 모든 봉급은 한 푼도 떼지 않고 계부에서 드렸다. 그리고 저녁 때 6시 퇴근 시간에는 집으로 직행을 했다. 늦어지면 부모님이 걱정한다고 해서 가정생활에 충실했다. 화장품을 산다는 거슨 꿈도 꿀 수 없었고 옷 한 벌도 제대로 마음 놓고 마음대로 사 입지 못했다. 그러나 계부는 절대로 따로 H부인에게 용돈을 주지는 않았다. 그녀가 펜팔로 한 육군 소위를 알게 되었고 서로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두 사람은 부모님 몰래 몇 번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데이트를 가졌다. 그가 전역 직전에 집으로 찾아와서 어머니와 계부에서 결혼을 하겠다고 신청을 했을 때 계부가 펄쩍 뛰었다. 여자가 연애 질이냐? 라고 호되게 질책을 하면서 결혼도 하지 않은 여자가 연애를 하면 칼 맞아 죽는다! 라고 엄포를 놓았기 때문에 그와 결혼을 하겠다고 말을 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나중에 좋은 혼처를 소개해서 좋은 곳으로 시집을 보내준다는 말로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묵살을 했다. H부인은 그것이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다. 2년의 세월이 흘러 가면서 여동생이 대학생이 된 것이었다. 여동생은 대학 1학년이 되면서 연애를 했다 같은 대학에 홀 어머니 밑에서 자란 가난한 사범 대학생과 사귀면서 그의 학비를 여동생이 대납한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저녁에 11 12시가 되어서 집에 귀가하는 것에 대하서 계부도 어머니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에서 조금씩 H부인과 여동생의 편애가 눈에 보이지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드디어 어머니가 선을 보라고 했다 결혼을 해야 한다고 했다. 여자의 나이가 많아지면 결혼하기 어렵다고 해서 선을 보기로 했다. 부지런하고 정직한 청년이라고 받았다. 두 사람은 시골의 골방 안에서 첫 대면을 했을 때 부모님이 밖에서 문을 잠가버렸다. H부인은 첫 대면의 남자에게 물어볼 말이 없었다. 평소에 어머니가 모든 것을 알아서 다 준다고 이야기를 했고 그것을 믿었기 때문에 학업, 직업 혹은 좋아하는 것 등을 물어 보지 않았다. 두 사람은 밖에서 문을 잠갔기 때문에 그날 밤에 잠을 함께 하고 결혼을 하게 되었다.

결혼 후에 남편은 중학교 중퇴에다 직업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상을 나와서 직장 생활을 2년 동안 해 왔기 때문에 H부인은 어머니가 적어도 고졸 혹은 대학을 졸업한 사람을 직장이 있는 남자를 남편으로 소개를 한 것으로 생각을 했는데 어머니가 그녀에게 거짓말을 한 것을 깨닫게 된 것이었다. 직업이 없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어머니의 소개로 어머니가 부동산으로 시골의 산기슭에 헐값으로 땅을 사 준 곳에서 개척을 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그 땅은 50 50의 비율로 딸에게 줄 것이니 그 땅을 개발하도록 했다. H부인은 젖소 한 마리를 샀다. 어머니가 또 한 마리를 사 주었다. 젖 소 2마리로 시작해서 땅을 파서 개발하고 야채들을 기르고 농사를 시작했다. 몇 년이 흘러가면서 아들이 태어나고 3살의 터울로 딸이 태어났다. 2 마리의 젖소는 3마리 4마리로 점점 불어나서 10마리가 되었다. 젖소의 젖을 짜서 우유의 가공 원료로 팔았다. 삶은 그런대로 굴러 갔다. 개간을 해서 땅이 점점 넓어졌다. 그런데 어머니가 어느 날 그 젖소를 물어 보지도 않고 몇 마리를 팔겠다고 젖소 들을 데리고 가버렸다. H부인은 말을 하지 못했다. 속으로 이 젖소는 H부인의 소유인데 어머니가 마음대로 하는 것이 부당했지만 남편도 부인도 항의를 하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은 이 젖소는 어머니가 대학생인 친 딸을 위해서 등록금으로 사용한 것과 그리고 나 중에 그 농장의 절반을 H부인에게 허락을 받지 않고 팔아서 여동생의 결혼 비용으로 그리고 그녀에게 아파트를 사 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H부인은 속으로 분개 했지만 말을 하지 못했다.

드디어 어느 날 어머니가 이 농장이 팔렸으니 당장 떠나야 한다고 요구를 했다. 그 순간에 H부인이 분포가 폭발했다. 이 농장은 50 50의 비율로 나누기로 한 것이 아닌가? 라고 항의를 했을 때 어머니가 분기탱천하면서 부엌에서 칼을 들고 죽이겠다고 덤벼들었다. 남편이 가로 막아서 사건을 터지지 않았다, H부인의 어머니는 자신이 스스로 죽을 것이라고 하면서 뒤 산으로 올라갔다. 남편이 장모를 찾아서 따라갔다. H부인은 그날 남편과 함께 두 자녀를 데리고 10년 동안 가꾸고 일군 농장과 젖소들을 버리고 그곳을 떠났다. 그녀의 손에는 달랑 5천만 원이 쥐어져 있었다. 어머니가 그녀의 남편에게 그 농장의 대금으로 지워준 것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도시로 되돌아와서 남편은 공장에 그리고 H부인도 공장 노동자로 살아갔다. 이후에 자녀들이 대학생이 되면서 경제적인 문제로 돌려 막기를 하던 H부인이 그것이 터지게 되었다. 남편에게 경제적인 어려움들을 이야기하지 않고 혼자서 문제해결을 하다가 폭발해서 정신분열증(조현벙)으로 진단 받고 병원에 입원을 3번이나 되풀이하면서 10년을 고통 속에서 보내다가 아들의 소개로 치료자를 찾아 온 것이었다.

H부인의 위의 성장 과정은 분석치료의 과정에서 드러난 것이었다. 그녀는 그러한 억울한 삶의 과정을 25년 동안 결혼을 하면서도 남편에게도 한번도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스스로 나는 속았습니다. 나는 내 엄마에 의해서 그 집에 동생들을 양육하기 위해서 그리고 식모처럼 자신을 부리기 위해서 그 동안에 어머니의 감언이설로 짐승처럼 사육이 된 것입니다.”라고 울부짖었다. 치료는 그녀의 내면에 쌓인 목 졸린 분노의 감정을 말로써 표현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그녀의 조현병은 완화되어져 갔다. 그녀는 지금까지 친구가 한 사람도 없었다. 이웃의 친한 동료에게 그녀의 억울한 삶을 이야기를 하게 되는 빈도 수가 늘어나게 되었다. 한 사람 두 사람씩 그녀의 친구들이 생기게 되었다.

다시 심리적 공간의 이야기로 되돌아가보자. 심리적 공간의 부재는 심각한 치명적인 장애로 연결되어진다는 것을 위의 8명의 사례들이 보여주고 있다. 자아는 심리적 공간이 확보되어지지 않으면 숨을 쉴 수가 없다, 즉 질식하게 된다. 심리적 공간은 자아가 숨을 쉬는 공간으로 볼 수 있다. 자아의 심리적 공간외부의 간섭과 침투와 침범으로부터 보호되어 지는 곳이다. 자아는 그 공간 속에서 자유가 된다. 이 심리학 공간 안에서는 나는 자유가 된다, 외부의 간섭으로부터 해방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심리적인 공간이 어떻게 현대 사회에서 점점 좁아져 가고 심한 경우에는 위의 H 부인의 경우처럼 어머니의 지나친 간섭과 통제로 심리적 공간의 부재로 H부인은 어머니의 지시, 명령, 통제에 복종하고 순종적인 어른으로 성장을 해서 40대 중반의 나이에서 정신분열증(조현병)으로 발발 했는지?를 다시 재조명을 해 보자.

 0-7개월까지는 엄마와 아기의 하나된 거울반사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7개월-9개월 이후에 아기가 엄마로부터 분리된 실체라는 것을 조금씩 인식을 해 나가는 비율이 증가하는 시점인 1 6개월의 시점에서 양육자는 아기가 스스로 환경을 컨트롤하도록 지원해주면서 마음대로 세상을 탐색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에릭슨이 1-3세를 스스로 세상 만물을 컨트롤하는 실험의 기간이라는 것이 언급이 되었다. 이 단계를 통과 하면서 3-5세에는 아기가 주도하는 활동으로 진화해 나가는데 여기에서 지나친 과잉보호, 혹은 방치로써 아기는 어린이로써 지금까지 엄마 주도적인 환경으로부터 어린이가 주도적인 생활로 바뀌는데 장애물들이 등장하게 된다.

불안한 양육자는 아기를 위험에 노출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일일이 간섭하고 통제를 한다. 유아를 돌보는 양육자(조부모) 혹은 영아원, 유아원에 보내진 아기들은 보모들이 조용한 유아,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어린이들을 선호한다. 대소변과 위험과 질병이 중심이 되는 양육이 된다는 말이다. 이 시점에서 언어 능력의 개발로 인한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의 능력이 급증하면서 어린이로 변화되어가는 아기는 부모님의 말 귀를 알아 듣게 된다. 부모님이 싫어하는 행동을 하게 되면 처벌이, 불이익이 따라온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린이 중심의 대화 즉 수평적인 대화가 되지 못하고 지시, 명령, 부응을 강조하는 의사 소통이 뒤기 쉽다. 부모님의 말에 순종을 하는 어린이가 되어간다. 갈등과 문제를 일으키는 어린이들을 부모가 싫어하게 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면서 착한 어린이, 말을 잘 듣는 어린이가 되어간다. 부모가 싫어하는 행동들과 부정적인 감정들 즉 짜증, . 분노 등을 억제하고 참는 어린이들로 변하게 되기 쉽다. 여기에서 한가지 청개구리씩의 행동은 모든 것에 분노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들을 반골(反骨)로 지칭을 하는 것은 어린시절에 과도한 부모의 간섭과 통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모든 것을 거꾸로 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들은 병든 자아를 의미한다. 왜냐하면 올바른 것도 모두 부인하고 끝가지 자신의 주장을 우기는 사람들로서 상처 받은 자아를 가진 사람들이다.

 과거에는 심리치료사 혹은 정신분석가들이 이러한 현상을 부모의 과도한 과잉 보호로서 표현을 했다. 불안한 양육자들의 지나친 보호로 아기를 위험에 노출시키는 것을 예방하는 것으로 표현을 했다. 과잉 보호는 아기의 활동을 과도하게 억제하고 통제하는 것이 아닌가? 그 결과로 아기의 환경 탐색의 범위는 좁아지게 되고 그 결과 심리적인 영역은 좁아지게 된다. 반대로 학대와 박탈 역시 어린이를 위험에 노출시키기 때문에 두려움과 불안의 원인이 된다. 즉 과잉보호와 박탈은 둘 다 똑 같은 결과로 나타난다. 즉 심리적 상처는 똑 같다. 어린이의 심리적 공간은 좁아지고 환경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내면으로 위축되어버리게 된다.

그러나 최근에 자아 학자들의 좀더 구체적인 심리학적인 이야기로 들어가보자. 자아 심리학자들은 부모와 어린이의 세대 차이는 최저 20(20대에 결혼한 부모)에서 30(30대에 결혼한 부모)으로 보고 있다. 더 붙여서 위에서 언급한 마가레트 몰러의 18개월 때 분리-개인화의 단계를 소개를 했다. 부모와 분리를 인식하게 되면서 자아는 부모님의 자아로부터 분리되어 개인적인 자아 성장과 발달로 진화한다는 것으로써 개인화를 강조하고 있다. 그 개인이 어린이에서 청소년으로 그리고 어른으로 진화해 가면서 부모로부터 독립된 자아로 혼자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으로 진화해 간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부모들은 이러한 세대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모님은 자녀들에게 자신의 어린시절에 받았던 양육의 개념 속에서 벗어나기 못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위의 사례에서 조부모의 간섭은 2 세대 차이로써 40 50년의 세월이 흘러간 것이다. 과도하게 할머니, 할아버지가 자녀들을 좌지우지 하는 것은 얼마나 모순인가? 이러한 세대 차이의 무시는 당연하게 자녀들에게 갈등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 부모님들은 자녀가 자신의 말에 순종하고 따르지 않을 때 생가는 마음 속의 갈등에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갈등은 서로 모순되는 현상으로 서로 반대로써 생기는 것이 아닌가? 그 결과는 고통을 수반하게 된다. 여기에서 한가지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모순은 서로 반대가 된다. 에릭슨의 믿음과 불신, 자치심과 의심, 수치심 등은 서로가 반대되는 현상으로 이것의 통합 즉 원만한 해결은 그 개체가 더욱 더 큰 개체로 진화되어가게 된다, 반대로 그 발달 시점에서 통합의 실패는 그 자아는 그 발달의 지점에서 고착되어 장애로 등장한다는 것을 다기 한번 상기로 보기 바란다. 다시 말해서 부모님의 세대 차이의 불인정은 마음 속에서 갈등을 통합하지 못하고 서로 분리시키고 쪼개서 (방어의 쪼갬과 분열) 양쪽이 분리되어져 있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갈등의 고통을 막기 위해서, 자아가 살아남기 위해서 분리를 시킨 것이 아닌가?

삶이라는 자체가 에릭슨이 지적한 것처럼 각각의 발달 단계의 그 시점에서 서로 모순되는 두 개의 갈등이 통합의 결과로 더 큰 개체로 진화되어진다는 삶의 원리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변증법의 원리). 우리 조상들이 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삶은 고해의 바다에 비유를 했다. 조용한 바다에서 항해를 할 때 늘 순풍에 돛 단 배가 되는 것이 아니고 언제 어디에서 태풍으로 폭풍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는 말들이 아닌가? 이것은 바로 삶 그 자체가 갈등과 모순의 연속으로 피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갈등과 모순을 통합하는데 성공을 한 사람은 점점 더 자아가 힘을 얻게 되어 강해지고 더 튼튼한 자아로 진화되어가는데 그 통합에서 실패하게 되면 그 지점에서 자아는 발달이 중지되고 지연되어져서 이후에 유사한 상황을 피하게 되고 도망치게 된다. 왜냐하면 그러한 유사한 지극에 직면은 자아의 고통과 죽음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요즘 말로 하면 과도한 스트레스를 주는 자극을 피하고 도망치게 된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자극에 대처해서 실패를 경험했기 때문에 그러한 과도한 자극에 노출은 자아의 두려움과 불안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너와나의 하나됨과 자아의 심리적 공간은 서로 반대가 된다. 친밀감은 서로 가까운 사이를 말하고 자치심은 거리감을 말한다, 과도하게 가까워져서 내 심리적 공간이 없는 것은 자치적, 내가 주도가 되는 자아에 반대가 된다. 사랑과 미움을 서로 반대가 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미워하는 것은 모순으로 고통이 따라오게 된다. 이 모순의 해결은 통합으로 이어져야 그 개체가 더욱 더 큰 개체로 진화한다는 말이다.

더 붙여서 대인관계에서 서로 모순이 되면 서로의 의견의 불일치를 말한다. 의견의 불일치는 고통을 수반하기 때문에 참을 수 없게 되면 그 사람에게 순종, 부응으로 일치시키기를 강요 당하게 된다. 부모, 상사가 갈등에, 모순에 참을 수 없게 되면 강압을 하게 된다는 것은 이미 설명을 했다. 즉 부모님, 상사, 선배들의 의견에 복종을 하도록 강압하는 것은 바로 내 의견을 묵살하고 그들의 의견으로 따라오라는 것이 아닌가? 위에서 자아 심리학자들이 말을 하는 것은 내 자아의 목소리를 잃어버리지 말라, 내 심리적 공간에 다른 사람이 침범해서 내 자아를 좌지우지 하는 것을 허용해주는 안 된다 이것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다시 또 다른 모순에 직면하게 된다.

정신분석가들은 이구동성으로 특별히 하버드 대학의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인 모델(Model, 1968, 1984, 1996a, 1996b, 2006: 주㈜: 참고)여러 사람 앞에서 내 자아를 잃어버리면 안 된다. 동시에 내가 혼자 있을 때 불안해지는 지지 않아야 한다라는 유명한 말을 했다. 영국의 대상관계 이론가의 핵심 인물이자 분석 치료사인 컨튜립(Guntrip, 1993: 주㈜:참고)친밀한 관계에서 나를 잃어버리지 않아야 하고 독립심에서 너를 잃어버리지 말아야 한다라는 경구를 남겼다.

다른 사람과 의견 불일치에서 내 자아를 유지하는 것은 즉 서로 의견이 달라서 모순이 된다고 해도 서로 적이 되거나 원수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성숙한 개인은 자신의 의견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다. 즉 세대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다. 부부 사이에서도 양육의 환경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다. 고로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다. 내 생각과의 주관이 다르다고 해서 상대방을 묵살하고 억압하고 강압해서 복종하도록 만드는 것은 심리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서로 의견이 다르고 견해가 다른 사람들을 적으로 간주해서 그들과 단절하고 그들을 차단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서 부모님은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의 자녀들이 동료들과 갈등, 싸움 등으로 문제를 일으키면 자녀들에게 그들은 나쁜 어린이들이기 때문에 같이 놀지 말라고 가르치는 모순들을 보다, 그렇게 해서 자녀들은 갈등을 일으키면 부모가 와서 다 해결해 주기 때문에 모순과 갈등을 해결하는 것을 배우지 못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결국은 자녀들은 모든 문제 해결을 부모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지 않는가? 그렇게 해서 어른이 된 자녀들이 사회생활의 어려움에서 해결의 부재로 부모님에게 의존해서 캉가루족이 생겨나고 그 캉가루족이 결혼을 해서 자녀들의 양육에 어려움 때문에 부모님에게 다시 의존하는 기혼자녀들이 늘어나서 새로운 용어로 신캉가루 족이 등장하고 있다는 언론의 보도는 바로 부모님의 양육에서 생긴 문제라는 것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과 의견의 불일치 혹은 모순에도 불구하고 적으로 단절해서 그들을 피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의 의견을 존중해서 서로의 양육 환경을 인정해서 수용하고 서로 공존하는 것이 정신분석가들이 말을 하는 모순의 통합, 분열의 통합으로 한층 더 성숙한 개인으로 진화한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그런데 인간은 모든 분야 안에서 즉 세상 만물의 전문가가 될 수 없다. 만물 박사가 될 수는 없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관계를 통해서 그들의 올바른 생각과 아이디어와 사고, 느낌, 상상들을 서로 나누면서 내 것으로 수용하고 간접적으로 받아들여서 내 자아가 더욱 더 커지게 된다는 것이다. 너 때문에 내가 존재하는 것이다(엄마 때문에 아기의 존재), 네가 없으면 내가 존재할 수가 없다. 고로 우리는 너를 떠나서 살 수가 없다. 그러나 내 자아가 우선해야 한다는 모순은 이미 소상하게 이야기를 했다. 너와 나의 관계를 통해서 나는 너를 통해서 자아가 진화 되어가는 것은 틀린 것은 아니다. 공자는 3살 먹은 어린이들 한데서도 배울 것이 있다고 했다. 나와 다른 모순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적으로 관계를 단절하지 말고 그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듣고 그들의 좋은 의견과 아이디어들을 수용해서 끝없는 피드백으로 내 자아가 성장과 발달을 하는 것이다.

여러 번 소개를 한 것처럼 미국의 심리학의 아버지인 윌리엄 제임즈(William James)의식을 흐름으로 보았다. 의식은 24시간 끝없이 흘러가야 한다. 의식의 흐름의 중지는 죽음이다. 이것은 위에서 자아는 다른 사람에게 침범, 침투에서 막아야 한다. 심리적 공간이 확보되어야 한다는 것과 모순이 된다. 다른 사람과 끝임 없는 소통과 다른 사람의 의견으로부터 침투와 간섭을 막아야 하는 것을 서로 모순이 된다.

이 문제는 정신분석가들의 오랜 숙제로 남아 있었다. 이 문제를 명쾌하게 해결한 사람이 바로 1972년에 노벨 생리학상을 받는 에델만(Gerald Edelman, 2000, 2004: 주㈜: 참고)이다 라고 하버드 대학의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인 모델(Modell)이 그의 저서 사적인 자아에서 밝히고 있다. 에델만는 다윈의 진화 이론을 뇌 생리학에다 적용한 최초의 학자이다. 그는 뇌 안에 자아가 있다는 이론을 들고 나왔다. 그는 의식의 연구에서 의식은 흐름이다 라는 제임즈의 이론을 확인을 했다, 대신에 뇌 안에 의식이 있다는 말로써 뇌(자아) 는 변화가 없다. 대신에 의식은 끝없이 변화한다는 모순을 해결을 했다.

실제로 뇌는 출생 시에 무게가 240g으로 전체 몸무게의 2이다, 1살 때 아기의 뇌는 1100g으로 출생시의 3가 된다. 5살 때 어린이의 뇌는 1450g으로 어른 뇌의 90%에 도달하게 된다(Acrdelee & Goodwny, 2000: 주㈜: 참고). 시카고 대학의 뇌생리학자인 엘리오트(Eliot,1999: 주㈜: 참고)는 그녀의 저서 뇌 속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라는 저서에서 어린이의 뇌는 5살 때 어른 뇌의 90%, 7살 때 95% 그리고 10살 때 97%의 성장을 한다고 뇌의 연구 결과를 노트를 했다. 이것은 프로이트가 어린이의 성격의 골격은 3-5세에 거의 완성이 되는 것으로 그 이후에는 크게 변화가 없다는 말과 일치된다. 프로이트의 천재가 실험실에서 다시 한번 확인이 된 것이다.

여기에서 뇌는 자아로써 변화가 없어야 한다. 자아는 심리학적인 공간 안에서 라는 인격체의 골격으로 변화가 없지만 현실적 자아인 ego는 발달 단계에 따라서 끝없이 변화를 해야 한다는 마음의 성장 이론에 일치 된다(상세한 것은 몸은 음식을 먹고 자란다 마음은?의 글을 보라).

심리적인 공간으로 자아는 그 공간 안에서 변화가 없는 내 자신의 주대확고하게 변화지 말아야 하는 대신에 나의 현실 ego는 끝없는 외부와 소통으로 마음의 문이 열려 있어서 외부 환경과 피트백으로 끝없이 변화를 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단계에서 장애물이 등장한 것이 정신장애자들의 자아이다. 그들은 갈등이 생기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그와 갈등을 일으키고 고통을 준 사람들을 적으로 생각해서 관계를 단절하고 자신의 자아 보호적 공간 속에서 외부와 차단해서 상상 속에서 즐거움을 얻는다, 즉 자아가 살아남기 위해서 과대망상, 과대과장, 환각과 환청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Jung)은 자신의 어린 시절의 환각을 꿈을 통해서 분석하면서 유명한 경고를 했다. 자아 분석을 통해서 자신의 환각을 분석할 때 절대로 현실 위에서 현실에 발을 붙이고 분석을 해야 망상 속으로 빠지지 않는다고 충고를 했다. 외부와 단절은 너로부터 피드백을 받아서 끝없이 자아의 수정과 보완이 차단되어버리면 자신의 생각이 어디에서 잘못된 것인지를 모르고 착각 속에 빠지게 된다는 경고한 말이다.

인간의 건강한 자아의 발달과 병든 자아의 발달은 145년 동안 정신분석가들의 마음의 연구로서 밝혀진 것들이다. 그런데 일부의 사람들은 정신분석학은 병든 인간의 치료에서 나온 이론으로 건강한 심리학적인 인간의 이론이 아니다 라고 반박을 하는 사람들과 학자들이 있다(대표적인 사람들이 인본주의 심리학을 강조하고 있는 사람들).

이러한 반론에 대해서 치료자(필자)는 최근에 중국의 드라마를 보면서 영웅들의 삶의 과정을 세심하게 들어다 볼 수가 있었다. 중국 드라마들을 좋아해서 본 것이 아니고 공부와 치료를 하다가 쉬는 시간에 휴식의 일부로써 케이블 TV에서 중국 드라마들을 보게 된 것이다. 그들은 중국의 긴 역사 속에서 영웅들이 이야기들이다.

대표적인 사람이 사마의(미완의 책사 사마의: 2017, 8, 7 방영)에서 사마의의 능력을 인정한 조조가 사마의를 불렀다. 사마의는 조조의 성격을 잘 알고 그의 말에 복종하지 않으면 살아 남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자아의 심리적 공간의 침해) 짐을 실은 마차를 채찍질을 해서 스스로 자신의 두 다리를 골절시켰다. 놀랜 조조가 꾀병이 아닌가라고 직접 의원으로 하여금 침으로 검진을 했으나 골절된 것이 사실임이 밝혀진다. 사마의가 골절이 회복된 후에 조조 밑에서 마구간에 마부로 일하게 했다. 그런데 사마의의 의중을 알아챈 조비(조조의 둘 째 아들)가 사마의에게 간청해서 서로 대등한 관계에서 나라와 백성을 위해서 삼국의 통일을 해 보다는 의견의 일치로 사마의는 조비의 편에서 조비가 조조의 왕위를 계승하게 한다. 조비는 재위 8년 만에 사망을 했지만 사마의는 조비와 약속을 끝까지 지키면서 자신의 꿈을 성취를 했다. 사마의 친 동생과 부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사망의는 자신이 뜻인 삼국통일의 자아 의지를 굽히지 않고 실천을 했다. 아들 사마소가 아버지게 새로운 나라의 건설을 주장했지만 위나라의 신하로 남을 것을 아들에게 맹세를 시켰다. 사마의와 사마소는 끝가지 위나라의 신하로 남아서 삼국을 통일을 했다 사마소의 아들 사마염이 위나라를 진()나라로 새로운 나라를 세운 것은 이미 역사에 잘 알려져 있다.

사마의에 대한 정신분석적인 글을 3개의 글로써 1800년 전에 사마의는 오늘 날 정신분석가의 역할을 한 것을 소개를 했다(상세한 것은 3개의 블로그, 호소용음: 인간 사마의 분석 3, 인간 사마의 분석 2 그리고 사마의 분석 1에 들어가보라). 사마의는 심리학에 대한 책을 쓰지 않았다, 고로 심리학의 역사에 등장하지는 않는다. 그는 다른 사람에 의해서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대신에 적을 만들지 않았다. 적과 갈등을 해결하면서 더욱 더 큰 갈등들의 해결 능력을 배양을 해 나갔다. 적과 단절하지 않고 소통으로 화해하면서 자아를 키워나간 것은 위의 설명의 한 예가 될 것이다.

두 번째로 치료자는 최근에 방영을 했던 장가행(56부작으로 수려강산지장가행이라는 원제)로 우리나라의 케이블 TV (Ching)에서 방영한 후한의 광무제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나라가 유방에 의해서 건국된 이후에 200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점점 약해져서 탐관오리들의 약탈과 학정으로 곳곳에 도적들이 출몰하게 되면서 왕망에 의해서 신나라가 건설되어 100만의 군사를 확충해서 관군이 패배하는 지경에 오게 되었다. 왕족인 유수와 그의 형님인 유연이 의병들을 모집해서 40만 대군의 신나라의 왕망의 군대를 격파하면서 형님의 유연이 갑작스럽게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되면서 이것에 불안을 느낀 황제의 질투 때문에 반역 음모로 살해되는 것을 본 유수는 자신의 의지를 숨기게 된다. 그가 어린 시절부터 친구로서 결혼을 약속한 음려화의 도움으로 두 사람은 자신들의 의지를 다짐하게 되면서 절대로 황제에 복종은 하지 않는다. 대신에 유수는 황제의 말에 비위를 맞추지만 자신의 의지인 소신 즉 백성들과 나라의 부응의 꿈을 펼치기 위해서 고군분투하게 된다. 그는 스스로 변방으로 물러나서 반란군들을 토벌하는데 집중을 하면서 백성들의 신임을 얻기로 한다. 형님인 유연의 억울한 죽음을 옆에서 지켜보면 친구들과 참모들이 유수를 배신자로 낙인을 찍고 한 사람씩 떠나가게 된다. 불복하지 않는 자신의 자아에 마침내 과거의 친구들이 그의 뜻을 알고 동참하게 되면서 점점 변방의 외적의 침범들을 안정시키면서 황제는 결국 내부의 반란으로 살해되고 유수가 황제로 버턴을 이어받아서 한나라의 후반기 후한의 200년의 역사를 다시 새롭게 단단하게 다지는 역할을 하게 된다. 광무제인 유수는 절대로 자신의 심리적 공간에 다른 사람의 침범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지조를 굽히지 않았다. 그러나 반대하는 사람들을 적으로 만들어서 차단하지 않고 그들과 소통을 하면서 반대파들의 의견을 수용하고 받아들이고 끝임 없이 자아를 성장시켜 나가는 모습은 바로 오늘날 정신분석가들이 건강한 자아의 성장과 발달을 보여주는 살아 있었던 영웅들의 이야기가 아닌가?

세 번째가 지금 방영 중에 있는 중국 드라마인 62부작 호란전의 이야기(채널 차이나에서 17회방영중, 2019, 7, 27일 현재)이다. 호란은 진시황의 친 어머니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 드라마에 빠져들게 되었다. 이호란은 조나라 사람으로 아버지가 이 어사(벼슬 이름)라는 직책으로 귀족으로 행복한 삶을 살아오다가 두 번째 부인이 어머니를 독살하고 이복 동생의 질투에 희생양이 되어 호란은 노예로 팔려가게 된다. 여러 나라를 왕래하면서 장사의 귀재인 여불위가 호란의 인품을 알아 보고 나서 노예 시장에 나온 호란을 돈으로 사게 된다. 여불위가 호란에게 당신을 내가 돈으로 샀기 때문에 당신은 내 소유물이다라고 이야기를 했을 때 호란은 나는 당신이 출세를 하기를 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당신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으니 대신에 나와 동업자 관계를 맺어야 내가 당신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다는 제의를 하게 된다. 당신의 노예로써는 내가 당신의 소망을 들어줄 수가 없기 때문에 나를 동업자로써 대우해주면 내가 당신의 소망을 풀어 줄 수 있다고 제안을 해서 두 사람은 서로 언약을 하게 된다. 두 사람의 관계가 여기에서 시작된다.

조나라에서는 진나라의 왕족으로 조나라에 볼모로 와 있는 영이인이라는 왕족이 있었다. 그는 진나라의 태자인 안국공의 28명의 자녀들 중에서 한 사람으로 힘이 없고 능력이 없어서 희생양으로 조나라에 볼모로 와 있다고 스스로 이야기를 하면서 생명을 이어가고 있었다. 조나라의 하나뿐인 공주인 라는 이름을 가진 공주가 영이인의 인품에 반하게 되어 끝없는 구애와 접근으로 이인에게 접근을 한다. 영이인은 조아 공주가 원하는 것을 얻고 나면 마음대로 팽개처버리는 성격을 알고 절대로 그녀의 구애를 수용하지 않는다. 그는 그녀와 결혼을 하면 그의 자아의 심리적 영역이 파괴되어질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를 적으로 만들지 않는다. 그녀의 접근을 정중하게 공주님으로써의 예의를 지켜달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그녀를 적대시 하지 않는다. 여기에 조아 공주가 더욱 더 영이인을 좋아하게 된다.

여불위가 영이인의 인물을 알아보면서 그는 절대로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과 자신의 지조를 끝까지 지킬 사람임을 알아 보면서 호란을 소개하게 된다. 호란과 영이인은 서로가 이심전심으로 알아보고 좋아하게 된다. 성격이 서로 유사해서 서로가 절대로 다른 사람에 의해서 좌지우지 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서로 적을 만들지 않고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면서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여불위는 이것을 알고 두 사람을 소개를 해서 세 사람이 조나라를 탈출 해서 진나라로 되돌아가는 이야기들이 펼쳐지고 있다. 여기에서 호란이 죽을 고비를 수 차례 넘기면서 이 위험을 이겨 내면서 자아가 점점 통합으로 커져 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삶의 모순들 즉 갈등은 고통을 수반하지만 통합으로 가면 자아의 힘이 커지게 된다는 것을 드라마로 실감을 할 수 있었다.

호란은 궁중에서 왕과 왕후에게 복종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들의 욕구에 복종이 아닌 타협으로 그러나 자신의 지조, 소신을 굽히지 않는다. 그녀가 자신과 비슷한 성격을 가진 왕의 주치의인 여자 한의사인 은씨와 서로 도우면서 어려움을 해쳐나가는 장면에서 그녀와 나누는 대화의 한 장면이 있다. 삶에서 갈등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작은 것은 마음 속의 갈등에서 큰 것은 생과 사를 넘나드는 갈등들을 피하지 않고 극복해 나가는 것을 나는 좋아합니다. 더 붙여서 제 17회의 한 장면에서 호란이 왕후와 면담에서 왕후가 조왕의 비()로 들어가서 자녀를 낳으면 평생 부귀영화를 누린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열녀전에 나오는 말로써 여성은 아버지에게 그리고 결혼하면 남편에게 그리고 노년이 되면 아들에게 따라가야 한다는 말을 듣고 나서 이호란은 다음과 같이 말을 한다. 나는 어린 시절에 어머니로부터 여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시집을 가서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을 배워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남의 힘이 아닌 내 자신의 힘으로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말은 이 블로그에서 치료자가 강조하고 있는 내용의 말들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는 말들이어서 치료자가 제 17 회 장면에서 이 대화를 듣고 깜짝 놀랬다.

영이인은 여불위의 도움으로 진나라의 태자인 아버지 안국공의 첫 째 부인이 자식이 없는 것을 알고 여불위가 돈으로 그녀의 양자로 입적해서 진나라로 되돌아가서 왕의 자리를 물러 받게 된다, 영이인이 재위 3년 만에 병으로 사망하게 되면서 그 때 12살이었던 영정이 여불위와 호란의 도움으로 왕위를 계승하게 된다. 영정은 여불위를 상국(아버지)으로 불렀다. 이후에 영정이 영이인의 아들이 아니고 여불위의 아들이라는 소문들이 사마천의 사기에 기록되어져 있다는 것에 대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영정이 왕으로 등극 이후에 여불위는 먼 곳으로 귀양을 가서 스스로 음독 자살 함으로써 영정의 심리적 공간을 확보하게 해 주었고 영정은 자신의 심리적인 영역에서 간섭을 받지 않고 자신의 자아의 힘으로 대제국을 건설해서 진 나라의 시황제라는 영웅이 될 수 있었다.

진시황제가 여불위의 자식인지 이호란과 영이인의 구구 절절한 사랑의 결과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호란의 배속에서 나온 것 만은 틀림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이 겪은 수 많은 죽음의 고비를 해쳐나가면서 만들어진 인격들은 성숙의 과정들을 거치면서 만들어진 것은 분명하다. 오늘 날의 작가들이 그들의 말들과 행동들을 가필하고 정정을 해서 첨가한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그들의 인품과 됨됨이가 역사의 영웅들로 기록되어진 것은 사실이 아닌가?

앞의 글들에서 여러 번 밝힌 것처럼 자녀의 양육에서 농경시대로 되돌아 갈 수는 없다. 그러나 양육자는 이러한 취약점을 알고 자녀의 양육에서 보상을 해 주어야 한다는 말로서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은 한 유명한 정신분석가의 명언을 소개하면서 이 글을 끝낼까 한다.

싫어하는 것에 대해서 “No”라고 말할 수 있을 때

돌보아 달라고 요구하지 않을 때

의존을 요구 하지 않을 때

혼자 일어설 수 있을 때

권위자 앞에서 “No”라고 말을 할 수 있을 때

통합의 내면적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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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학자, 실존철학자, 사회학자

스텐포드 대학의 석좌 교수

롤로 메이(Rollo May)1953년에의 저서

 자아를 찾아서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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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참고

     엘렌버그(Ellengerger, 1970). 무의식의 발견

     에네스트 존(Ernest Jones)의 프로이트의 삶과 업적 제 Ⅰ 권(1953) 제 Ⅱ권(1955). 제 Ⅲ 권(1957)

     모델(Modell). 대상관계의 정신분석학 소개(1968), 새로운 맥락 안에서 정신분석(1984), 사적인 자아(1996), 다른 시간 다른 현실(1996), 이미지화와 의미 깊은 뇌(2006)

      미아레(Meares). 친밀감과 고립(2000), 놀이의 은유(2005), 보드라인 성격장애의 해리 모델(2012), 대화 모델과 보드라인 성격장애(2012)

      아크델리와 굳웬(Acrdelee & Goodwny, 2000). 유아의 마음

      엘리오트(Eliot, 1999). 뇌속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에델만(Edelman). 의식의 우주(2000), 하늘 보다 더 넓은 마음(2004)

      건튜립(Gruntrip,1993). 자아분열: 대상관계와 자아

      오가덴(Ogden)의 마음의 모체(1986), 경험이 원시적인 끝지점(1986), 분석의 주체(1994), 몽상과 분석(1997), 꿈 전선에서 대화(2001), 정신분석의 예술(2005). 투사동일시와 심리치료 기법(1982)

      에릭 에릭슨(Eric Erikson, 1950). 어린이와 사회

      그린슨(Greenson). 정신분석의 치료 기법과 실제 1967), 정신분석의 탐색(1978)

      울프(Wolf, 1988). 치료되는 자아. 치료적인 자아 심리학의 요소들

      몰러(Mahler, 1976). 인간 유아의 심리적 탄생

      메이(May, 1953). 자아를 찾아서

      흄(Holmes). 정신분서학 소개(1995), 안저한 기지를 찾는다: 이론과 심리치료(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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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저서들은 우리나라 말로 번역되어 소장하고 있으니 치료자정신분석 홈 페이지에 들어가서 전문서적 안내에 들어가 보세요.

카우치에 누워서 정신분석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과 분석가

 https://blog.naver.com/psychclinic/221597076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