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는 조현병(정신분열증)

 

 치료자(필자)는 지금까지 블로그에서 조현병에 대해서 13개의 글을 썼다(2015, 1, 26 - 2019, 8, 31). 그 중에서 2017 9 10일에 쓴 조현병을 정신분석으로 완치한 경험이 있습니까?가 지금까지 2,352명으로 최다의 조회수를 기록한 것으로 그리고 2019 3 31일에 쓴 환각과 환청 분석이 지금까지 2,286명으로 두 번째 조회수를 기록한 것으로 보고 되었다(치료자의 블로그의 네이버 통계 수치).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조현병 환자 혹은 그 가족들이 조현병에 대한 궁금증을 보여주는 것으로 유추된다. 역동적 정신의학의 경우에는 환자와 치료사가 카우치에 눕거나 혹은 의자에 서로 마주보고 앉아서 분석상담을 진행하는 시간이 최소 40, 50분에서 최대 2시간(치료자의 경우에), 3시간(특별한 경우에 치료자가 이용)으로 그들의 과거의 역사들 즉 양육의 과정, 발달 단계의 과정, 심리적 상처와 갈등관계, 의사소통, 감정 표현, 대인관계 등의 분석이 이루어지면서 최소 6개월 이상(치료자의 경우)의 치료과정이 진행이 되면서 조현병이 어떻게 시작되고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어떻게 문제가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결을 해 나갈 것이라는 것에 대한 정보들이 치료를 받는 사람과 치료사 사이에서 서로 나누어지게 되면서 조현병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에 대처하고 자아의 결함들이 수정되고 새로 배우고 이해되어져 가는 것이 정신분석 심리치료이다라는 것은 이미 여러 번 밝혔다.

 그런데 신경정신과 의사 선생님들은 환자와 대면 시간이 2분에서 3분 혹은 최대가 5분을 넘어가지 않는 것으로 치료자 한데서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 신경정신과 의사의 약물 치료를 받다가 불만족해서 치료자에게 온 사람들의 입을 빌려서 치료자가 알게 된 것이다. 그들은 조현병에 대한 원인과 설명에 대한 이야기를 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들은 약물을 처방해서 부작용 혹은 약물 적절한 양과 처방의 효과 등에 대해서 간단하게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으로 알고 있다. 고로 환자 본인이나 가족구성원들이 조현병으로 진단을 받게 되면 궁금증이 생기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조현병을 비롯해서 모든 정신장애들을 가진 사람들의 특징이 그들의 장애의 이름을 듣게 되면 그 장애가 왜, 어떻게, 무엇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에 대한 의문과 궁금증을 가지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자신의 장애에 대한 진단을 받게 되면 그 장애에 대한 불안이 엄습하면서 그 장애가 얼마나 심각한지, 치료가 가능한지? 치료에 시간과 비용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등에 대한 의구심과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이게 되고 그 결과 그 장애에 대한 이해와 치료의 가능성 등을 알게 되면 불안이 조금은 완화 되기 때문이다. 쉽게 치료가 된다는 장애들은 안심을 하게 되는 반면에 치료가 어렵다거나 효과가 미진한 장애들의 경우에는 계속해서 심리학 서적, 정신의학 서적, 그리고 인터넷으로 동료들과 지인들로부터 자신의 장애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을 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더욱 더 문제가 확대되는 경우도 있다.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의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치료자는 그들에게 정신의학, 심리학 서적을 보면 도움이 되기 보다 오히려 문제가 커진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되도록 책으로 인터넷으로 장애에 대한 지식을 접하지 말도록 조언을 한다. 그 이유는 전문 서적마다 이론이 천차만별이고 치료사들 역시 다양하기 때문에 더욱 더 혼란이 가중된다는 것을 지적을 한다. 치료자는 치료자 한데서 치료를 받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치료자의 저서”(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 1999)를 보거나 치료자의 인터넷 홈 페이지(21개의 정신장애들의 치료 이론들과 치료 사례들의 소개)를 보는 것은 도움이 되지만 다른 사람들의 책이나 글을 보면 치료자와 다르게 치료를 하거나 혹은 치료의 이론과 초점이 달라지게 되면 어느 쪽이 올바른 것인가? 라고 혼란스럽게 된다는 것을 이야기를 해 준다. 가장 현명한 것은 장애를 가진 사람은 빨리 전문가를 찾아서 자신이 동의 하거나 이해가 가는 치료사에게 치료를 빨리 받은 것이 최선이다. 서적으로 인터넷의 지식으로 자신의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프로이트가 지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을 지식화 방어기재로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 그 이유이다. 지적인 이해는 불안의 완화에는 약간은 도움이 되지만 일시적인 것으로 시간만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정신분석 심리치료는 자아 결함을 고치고 수정하고 감정을 표현하고 대인관계를 새로 배우는 과정은 책 하나만을 통해서 이루어지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치료자 한데서 조현병으로 치료를 받는 22세의 한 대학생은 치료자와 분석상담을 하면서 인터넷에서 검색한 결과 조현병은 2가지 종류로써 양성 조현병과 음성 조현병으로 나누어지고 양성 조현병은 환청, 환각이 있는 조현병 이고 음성 조현병은 환각과 환청이 없는 조현병이라고 알고 있다는 말에 치료자가 깜짝 놀랬다. 어디에서 그러한 정보를 얻었느냐 라는 질문에 인터넷 검색에서 알게 되었다고 했다. 잘못된 거짓 정보들이 사람들을 더욱 더 혼란하게 하고 생각들을 왜곡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치료자가 조현병에 대해서 최근에 5권의 저서들을 연구하고 치료에 응용하게 된 정보를 나누고자 한다. 치료자의 글을 읽는 사람들은 치료자의 글에서 많은 부분들이 다른 제목의 블로그의 글들과 중복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치료자의 글을 읽는 사람들이 치료자의 모든 글을 순서대로 읽는 사람들 보다 주로 한번에 한 개 혹은 2개의 글을 읽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그 주체를 흐름을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앞의 글에서 설명한 내용들이 다시 반복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먼저 최근에 5권의 조현병 저서들을 읽고 연구를 해서 과거에 치료자가 몰랐던 새로운 조현병에 대한 정보가 기존의 정보에 첨가되어 소개가 될 것이다. 이 저서들의 저자들은 뉴욕의 정신분석학교 교수들로 그리고 미국의 저명한 대학교의 교수들로서 평생 동안 조현병의 연구와 치료를 해온 세계적인 석학들이다.

첫 번째로 뉴욕의 한 초등학교 교사로써 조현병 진단을 받고 5번이나 정신병원에 입원한 기혼 여성을 5년 동안 정신분석 치료를 통해서 회복 시킨 스트린(Herbert Strean, 1990; 주㈜: 참고)이 쓴 절단된 영혼: 정신분열증(조현병) 환자의 마음을 치료하기 위한 한 정신분석가의 영웅적 투쟁이라는 저서이다. 그는 보스톤 대학에서 임상 사회복지학 그리고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에서 임상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가지고 정신분석학교를 졸업하고 개인분석 이후에 정신분석가가 된 사람으로 평생 동안 뉴욕에서 조현병을 치료한 경험으로 20여권의 저서를 가진 연구자이자 분석가이다.

두 번째로 뉴욕의 로체스터 의과대학 부설 정신병원의 치료 국장인 베른헤임(Kayla Bernheim, 1979: 주㈜: 참고)이 쓴 저서로 정신분열증(조현병): 증세들, 원인들, 치료들이다.

세 번째는 하버드 대학 졸업 후에 독일의 베를린 프레트릭 윌헬름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다시 뉴욕의 컬럼비아 의과대학에서 신경생리학을 전공한 스포트니츠(Hyman Spotnidz, 1976, 2004: 주㈜:참고)가 쓴  오디팔이전의 심리치료: 정신분열증(조현병)과 심한 성격장애그리고 또 다른 한 개의 저서인 정신분열증(조현병) 환자의 현대적 정신분석”(2004)이다.

네 번째로 예일 의과대학의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가로 그리고 가족 치료사로써 세계적인 명성을 가지고 있는 데오도어 리즈(Theodor Lidz, 1985: 주㈜: 참고)로서 그가 쓴 정신분열증(조현병)과 가족이다. 그는 예일 의과대학부설 정신병원에 입원한 17명의 중, 상류층 조현병 환자들의 부모와 형제들을 7년 동안 연구를 한 결과들을 발표한 논문들을 모은 저서이다. 그는 환자들의 부모의 부부관계, 환자와 아버지 관계 환자와 어머니 관계, 환자와 형제들 관계, 부모들의 친가 가족들의 정신병 역사들을 철저하게 분석해서 조현병의 핵심 원인이 환자의 어린시절에 부모님의 양육과 사회환경적인 스트레스가 주범이라는 것을 환자들의 치료 혹은 연구들로써 입증한 사람이다.

 위의 4명의 전문가들의 연구와 치료에 대한 새로운 정보들이 아래의 글들에서 소개가 될 것이다. 먼저 미국에서 조현병의 연구와 치료에 대한 약간의 역사적 지식이 필요하다. 조현병의 연구와 치료가 왜 정신분석가들에 의해서 처음으로 시작되었는가? 하는 것은 아래에서 소개되어질 것이다.  

 정신분석학은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독일어로 빈)에서 프로이트가 독일어로 쓴 신경증 치료 이론이다. 독일어의 정신분석학을 영어로 번역을 해서 영국과 미국으로 그리고 지금은 영어권 즉 영국과 미국이 전 세계에서 정신분석의 멕카와 메디나(핵심 중심지역)가 되었고 정신분석의 영어판이 원본이 되어버린 것은 여러 번 소개를 했다. 이러한 공로의 첫 번째 핵심 장본인이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영국의 신경과 의사 출신으로 40년 동안 프로이트를 동행하고 프로이트가 나치에 감금되었을 때 프로이트 구명운동을 해서 영국으로 탈출시킨 사람인 어네스트 존(Ernest Jones)이 있고 또 다른 한 사람은 미국에서 처음으로 독일어 정신분석을 영어로 번역해서 소개를 하고 뉴욕에서 첫 정신분석 학회를 조직하고 미국에 정신분석을 이식 시킨 장본인으로 미국의 정신과의사인 아브라함 브릴(Abraham Brill)이 있다(Ernest Jones, 1953, 1955, 1957; Ellenberger, 1970: 주㈜: 참고).

첫 번째 장본인인 어네스트 존은 조현병에 대한 연구와 관심으로 스위스의 쥬리히에 대학정신병원인 부르고졸리(Burgholzli)를 방문했을 때 그곳에서 치료 국장으로 있는 융(Jung)을 통해서 프로이트를 만나게 된다. 융은 이미 꿈 해석(1900) 이후에 프로이트와 서신을 교환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신분석에 매혹되어 있었다. 융은 1907, 2월에 프로이트와 만나게 되고 정신분석학회 회원이 된다, 그들의 첫 만남에서 3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면서 프로이트는 융을 후계자로 점을 찍게 된다.

아브라함 브릴은 부르고졸리 정신병원에서 조발성 치매(조현병의 첫 이름)를 연구하고 치료를 하고 있던 도중에 어네스트 존이 그 병원을 방문하게 되면서 두 사람이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그곳에서는 독일의 정신과 의사인 칼 아브라함(Karl Abraham)이 조현병을 연구를 하고 있었다. 이들의 만남이 이후에 정신분석의 확대에 주춧돌이 된다. 1907. 12월에 칼 아브라함이 정신분석학회에 가압하게 되고 그 다음 해인 1908년 봄에 어네스트 존과 브릴이 정신분석학회의 회원이 된다.

아브라함 브릴은 오스트리아 태생으로 빈손으로 미국에 이민을 가서 뉴욕대학과 뉴욕 컬럼비아 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스위스의 부르고졸리 대학정신 병원에서 조발성 치매 환자들의 치료하고 연구를 하고 있다가 1908년에 프로이트를 만나게 된다. 브릴은 5년 동안 프로이트 밑에서 정신분석학을 공부한 후에 뉴욕으로 돌아와서 1911,2, 20일에 20명의 회원들과 함께 뉴욕정신분석 학회를 설립하고 회장이 되었다. 고로 미국에서 최초로 정신분석학이 소개된 것은 바로 브릴에 의해서였다. 브릴이 컬림비아 대학 교수로 정신분석을 강의하면서 뉴욕 지역을 맡게 됨으로써 어네스트 존은 같은 해 1911, 5, 9일에 볼티모어에서 24명의 회원으로 학회를 조직하고 그 다음에 보스톤에서 학회를 조직 그리고 나서 워싱턴 학회를 그 다음으로 캐나다 토론토 대학에서 정신분석학의 강의하고 정신분석학회를 조직하게 된다. 브릴과 어네스트 존이 미국을 양분해서 뉴욕 지역은 브릴이 맡아서 그리고 뉴욕 지역 밖에서는 존이 정신분석의 씨앗을 뿌리게 된 것이다.

1909, 12월에 프로이트가 마사츄세츠주의 웨체스트에 있는 클라크 대학의 총장인 스탠리 홀(Stanly Hall)(미국에서 심리학 박사 1)이 클라크 대학 20주년 기념일에 융(Jung)과 함께 초대를 받아서 죠지 워싱톤 호에 승선해서 6일 만에 뉴욕에 도착했을 때 아브라함 브릴이 프로이트 일행 3(프로이트가 제자인 항가리 정신분석학회 회장인 샌도르 프랜치를 대동)를 마중을 나와 있었다. 그가 프로이트 일행을 모시고 2 3일로 뉴욕의 관광을 안내를 했다. 첫 날은 뉴욕의 센트랄 파크 공원 그리고 둘 째 날에는 어네스트 존과 합류해서 뉴욕의 메트로폴리탄의 박물관(프로이트가 골동품에 취미)을 그리고 그 당시에 처음으로 등장한 영화를 관람을 했다. 그 날 밤 기차를 타고 보스톤으로 행할 때 브릴과 존이 동석을 했다.

브릴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된다. 브릴이 뉴욕의 정신분석학회 회장이 되고 나서 국제정신분석학회에 참가하게 되면서 유럽의 학회들과 마찰을 빚게 된다. 유럽의 학파들 즉 비엔나 학회, 베를린 학회, 문헨학회, 항가리 학회, 스위스 학회, 네절란드 학회, 러시아 학회 등등의 학회에서는 프로이트의 의견을 수용을 해서 정신분석가가 의과대학을 졸업하지 않아도 정신분석 학교를 졸업하고 수련을 받아서 정신분석가로 활동 하도록 허용해주었다. 의대출신이 아닌 사람이 정신분석가가 된 사람들이 유럽 전체 분석가의 40%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폭넓게 정신분석학이 개방이 되었다 그들 중에 유명한 사람이 바로 에릭슨(자아 주체성이론), 멜라니 크레인(대상관계 이론의 창시자), 프로이트의 딸 안나 프로이트 등이 의과대학 출신이 아닌 대표적인 분석가이다.

그런데 브릴이 제동을 걸게 되었다. 미국은 유럽학파들과 달리 브릴이 생리학과 병리학을 공부하지 않는 사람들은 정신분석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회칙을 통과시킨 것이었다. 프로이트는 각 지역 학파들의 의견을 우선시해서 간섭하지 않았다. 이후에 심리학과 출신인 데오도어 레익(아래에서 설명)이 미국에 이민을 와서 정신분석 학교를 세우고 제자들의 양성과 분석 치료를 하면서 뉴욕 학파들을 법정에 고소를 해서 1950년대 이후에는 미국 내에서 의대 출신이 아닌 심리학과 사회복지학 그리고 5년 이상 정신병원에 근무한 간호사들에게도 정신분석학교의 입학이 허용되었다. 그 전통은 지금도 뉴욕의과대학과 컬럼비아 의과대학의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들에게 정신분석과 심리치료를 위한 박사 후 프로그램으로 미국 내에서 종합대학 안에서 정신분석 학교가 운영되고 있는 유일한 대학들이다. 다시 미국에 정신분석가들이 대거 유입되게 된 동기의 이야기로 되돌아 가 보자.

1933, 4,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점령하게 되면서 독일 내에서 외국인들의 의학분야에 취업금지 명령이 내려지면서 그리고 1934년부터 시작된 독일 내의 유태인 말살의 분위기 때문에 유럽의 정신분석가들(대부분의 정신분석가들이 유태인들: 정신분석학회의 멤버 중에서 유태인이 아닌 사람이 단지 3명으로 영국의 어네스트 존과 스위스의 신부인 오스카 피스터(Oska Pfister) 그리고 미국의 오베르도르프(C. R.Oberndorf)이다)유럽의 대탈출이 시작되면서 대거 정신분석가들이 미국으로 탈출을 했다. 독일에서 의과대학 졸업 후에 여성 분석가가 된 카렌 호르니(Karen Horney), 비엔나 대학의 심리학 박사인 데오도어 레익(Theodor Reik)이 뉴욕으로 이민을 갔다. 레익은 프로이트 밑에서 정시분석학을 공부하고 나서 독일에서 정신분석 치료소 개업했다가 의사가 아닌 심리학자가 치료를 한다고 고소를 당했으나 프로이트의 열렬한 지지로 빠져 나왔다. 그 후에 나치 박해로 미국의 뉴욕으로 이민을 갔다. 한스 샤크(Hanns Sache)가 보스톤으로 그리고 프랜츠 알렉산더(Franz Alexander, 1987: 주㈜: 참고)가 시카고에서 정신분석학교를 세우고 이후에 남 캘리포니아 정신분석학교를 설립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미국 내에서 어떻게 정신분석학이 펼쳐지게 되었는가? 하는 역사의 요약이다. 미국에서 제일 먼저 정신분석학교가 세워지고 정신분석이 소개된 곳이 바로 뉴욕으로 지금도 미국 전역에서 뉴욕이 정신분석의 핵심 메카역할을 하고 있다.

위의 정신분석가들이 미국에서 제 1 세대 정신분석가들이라고 불린다. 2 세대 정신분석가들이 위의 5개의 저서들 속에서 소개된 분석가들이다. 스포트니츠는 1938년에 뉴욕 주립정신병원에서 1950년까지 12년 동안 조현병 치료에 전염을 했다. 1976년에 뉴욕 주립대학 이사진들이 스포트니츠에게 뉴욕에서 정신분석학교를 좀더 많이 설립을 해서 정신장애들을 치료해 달라는 허락을 받아서 스포트니츠가 뉴욕에서 4군데 정신분석학교를 세우고 그리고 보스톤, 필라델피아, 콜로라도, 남 플로리다에서 각각 정신분석학교를 세우고 분석가를 양성하게 되었을 때 그가 교과서로 사용한 책이 바로 오디팔이전의 심리치료: 정신분열증(조현병)이라는 저서이다. 그리고 2004년에 새로 집필한 정신분열증(조현병)의 현대적 정신분석: 이론과 기법의 저서로써 치료자가 그의 이 2권의 저서를 읽고 조현병에 대한 새롭게 얻은 지식을 소개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제 조현병의 이야기로 되돌아가 보자. 조현병의 최초의 이름은 조발성 치매라는 이름으로 정신의학계에 등장하게 된다. 1853년에 프랑스의 정신과 의사인 베네틱 모넬(Benedicte A. Morel)이 조발성 치매(demence precode)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이 신조어가 43년 후인 1896년에 독일의 정신과 의사인 에밀 크레펠린(Emil Kreapelin)이 이 용어를 받아 들어서 조발성 치매(dementia praecox)라는 이름으로 젊은이들 한데서 발생하는 뇌의 질병으로 세상에 널리 알리게 된 것이었다(치료자는 크레펠린이 조발성 치매를 신조어를 만든 장본인으로 오해). 크레펠린이 정신의학계에 이 질병이 뇌의 단일 질병이라는 것을 공포해서 세상에 알리게 된 것과 조발성 치매와 조울증은 다른 질병으로 구분을 한 공로를 차지하게 되었다(Spotnidz, 1976, 2004).

조현병은 다시 새로운 진화를 거치게 된다. 1911년에 스위스의 쥬리히에 대학정신병원인 부르고졸리의 4대 총장인 유진 블루러(Eugen Bleuler) 15년 동안 조발성 치매를 연구한 후에 조발성 치매는 잘못된 이름으로 정신분열증(schizophrenia)이라는 용어로써 대체 시켰다. 그리스어로 schizo는 분열, 쪼갬의 뜻이고 phren는 마음, 정신 그리고 ia는 병(illness)이라는 용어들의 합성어로 정신분열증이 드디어 등장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2011년에 대한의사협회에서 대한정신분열병 학회의 권유를 받아들여서 조현병으로 국회에서 통과 되었다(위키백과 참조, 2019, 9, 1).

블루러는 30년 동안 부르고졸리의 총장으로 재직 중에 조현병의 연구에 평생을 바친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는 조현병이 단일한 질병이 아니다라고 천명을 했다. 그는 융(Jung)을 통해서 프로이트를 알게 되었고 두 사람은 정신분석학회에 가입을 하게 된다. 블루러는 그의 병원의 스텝들에게 3년 동안 정신분석을 숙지하도록 열풍을 일으켰다. 그는 정신분열증이 치료될 수 있는 질병으로 확신을 심어 주었다. 그러나 정신분석이 조현병의 치료에 한계점에 도달하게 되면서 실망을 했다. 프로이트는 이미 정신분석을 신경증 치료에 국한 시킬 것을 천명을 했다. 블루러는 정신분석학회를 탈퇴를 했다. 프로이트의 독선적인 학문적 태도에 비판을 하기도 했지만 프로이트를 노벨상 후보로 추천한 유일한 사람이다. 그는 정신의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프로이트 라는 이름을 접하지 않고서는 정신의학을 공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조현병에 대한 최초의 연구는 정신분석가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1908년에 찰스부르그에서 하루 동안 열린 제 1 회 국제 정신분석학회 총회(42명의 회원이 참가)에서 제출된 2편의 논문이 조현병에 대한 연구 논문이었다.

첫 번째가 융(Jung)이 쓴 조발성 치매에 대한 연구그리고 두 번째가 칼 아브라함이 쓴 조발성 치매에 대한 정신분석학적인 연구였다. 융은 조발성 치매는 뇌의 심리적 독극물에 의한 생리학적인 원인으로 발표를 했다. 융은 프로이트의 심리학적인 원인에 대한 조언을 거부하고 뇌의 질병으로 기울어졌다. 이후에 조현병 환자들을 치료를 했지만 결국은 포기를 했다. 그는 정신과 의사로써 출발을 했지만 종교, 신화, 전설 등의 심리학적인 연구로 방향을 바꾸었다.

반면에 아브라함은 프로이트의 조언을 수용을 해서 오디팔이전의 단계에서 발생한 심리적인 질병으로 보았다. 조현병 환자는 외부 대상과 관계를 할 수 있는 능력의 파괴 그리고 대상으로 향하는 리비도가 ego 안으로 철수해서 나르시즘 전이를 만든 것이라고 노트를 했다. 이후에 아브라함의 연구는 그 바통이 후배들 분석가들에 의해서 이어지게 된다. 프로이트가 신경증 치료에 국한 시킨 정신분석학은 제자들에 의해서 수정 변경을 거치면서 조현병의 치료에 응용되어지면서 좋은 치료 사례들이 발표가 이어지게 된다.

파울 페트론(Paul Federn)이 프로이트의 긍정적 전이를 바탕으로 조현병 환자를 치료를 한 사례를 발표 하면서 환자가 분석되어질 수 없는 것이 아니고 분석가의 접근을 할 수 없게 만드는 그리고 분석가와 관계를 창조할 수 없는 장애물 때문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어서 허만 넘버그(Herman Number) 1921년에 긴장성 조현병(아래에서 세부적 설명)에 대한 연구 논문을 학회에 제출을 했다. 그는 공격적인 충동을 막기 위한 방어를 강조를 했다. 또한 그레고리 질버그Gregory Zilboorg, 1931)가 편집증 조현병(아래에서 설명) 여성 환자를 치료를 한 사례를 발표를 했다. 5세의 나이에 경험한 심한 좌절이 적대적 충동으로 인한 목 졸린 감정이 대상에 파괴적 충동을 막기 위해서 자아 쪽으로 향하는 것으로 표면화 된 것으로 보고를 했다. 같은 해에 이베 핸드릭(Ives Hendrick, 1931)이 조현병 여성환자를 분석해서 사랑을 받지 못한 공격적 충동에 미성숙한 ego가 감당을 하지 못해서 대상으로 향하는 분노적 충동을 박는 철벽방어로 사회적 고립으로 장벽을 만들어서 내면 세계로 철회한 것으로 보고를 했다. 이어서 영국의 정신과 의사로서 정신분석가가 된 허버트 로젠필드(Herbert Rosenfeld, 1945)가 조현병 여성을 치료한 사례를 출판을 했다. 그는 대상들로부터 감정철회는 엄마의 유방, 엄마의 몸 전체의 구순기 새디즘적 공격 때문에 ego 새디즘이 대상의 보복 공격을 막기 위해서 내면의 자아로 향한다는 이론으로 보고를 했다.

위의 정신분석가들이 조현병을 치료를 한 것은 개별적인 개인적 치료를 한 반면에 미국에서 정신병원에서 그 병원 전체가 조현병의 정신분석 치료를 시작한 것이 1910년에 메릴랜드주의 체스트낫 롯지(Chestnut Lodge) 정신병원에서 시작되었다. 신프로이트 학파의 대표이자 대인관계 정신분석학의 창설자인 하리 스틱 셀리번(Harry Stack Sullivan), 독일의 정신과 의사로 여성 분석가가 된 프리다 프롬-레이크만(Fried Fromm-Reichmann), 예일의대 정신과 교수이나 정신분석가인 토마서 맥글라산(Thomas McGlashan), 하버드 의과대학의 졸업 후에 정신분석가로써 14년 동안 이 병원에서 조현병 환자를 치료한 하놀드 실(Harold Searles) 그리고 스텐포드 의과대학 졸업 후에 와싱턴 정신분석 학교에서 대인관계 정신분석가 된 오토 윌(Otto Will)이 함께 약물 없이 조현병 환자들의 입원 치료를 시작을 했다. 그들의 치료 결과들이 언론과 TV 그리고 영화(프롬레이크만의 사례가 영화)를 통해서 알려지게 되면서 조현병이 약물의 사용 없이도 치료가 가능하다는 인식이 미국인들 사이에서 널리 펴지게 되었다.

이 시점에서 미국의 정신의학의 발전에 대부적 역할을 한 사람이 스위스에서 정신과 의사로 미국에 이민을 혼 아돌프 메이어(Adolf Meyer)이다. 그는 1927, 1928년 미국 정신의학회 회장을 역임을 했다.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 있는 좁 홉킨스 의과대학 첫 정신과 학과장으로써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학생들에게 소개를 했다. 그는 조현병을 뇌의 질병으로 보지 않았다. 조현병이 뇌의 질병이라는 것을 거부하고 기질적인 요인과 환경적인 요인의 상호작용으로 보았다. 그의 이러한 주장이 정신의학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드디어 1952년에 미국정신의학회의 주관으로 미국 전역의 유명한 정신과 의사들 정신분석가들과 치료 심리학자들이 모여서 정신의학의 전문 용어의 통일과 정신장애에 대한 진단과 통계적인 지침서인 DSM-Ⅰ이 탄생하게 된다. 여기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아돌프 메이어였다. 그는 DSM-Ⅰ의 분류에서 조현병의 이름을 반응행동 조현병 혹은 조현병 반응행동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기질과 환경적인 스트레스양육의 과정, 부모의 상실, 심리적 상처, 직업 상실, 학대와 갈등 등의 원인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반응행동 조현병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었다(Spotnidz, 1976, 2004).

15년 후인 1968년에 뉴욕 의과대학 정신과 학과장, 로버트 캔크로(Robert Cancro)가 주도적인 역할을 한 DSM-Ⅱ가 등장하게 된다. 그는 조현병의 꼬리표인 반응행동이라는 말을 떼고 대신에 조현병 질병 혹은 조현병 장애라는 이름을 붙였다(우리나라의 정신분열 학회의 명칭에 영향). 그리고 단일 종류가 아닌 다양한 조현병의 공식적인 이름이 등장하게 된다. 첫 번째가 구분이 되지 않는 만성 조현병이다. 만성이라는 낱말은 진단이 이루어지기 오래 전에 등장한 것으로 이미 오랜 기간이 지나갔다는 뜻이다. 가장 흔한 조현병으로 대부분이 병원의 입원을 요한다. 두 번째가 편집증 조현병으로 편집증 증세의 특징인 FBI, CIA 가 미행을 한다. 머리 속에서 강제로 소리가 들린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자신을 바보라고 손가락질 한다. 이성에 의해서 수정이 어려운 잘 통합된 거짓 아이디어들로 이루어져 있다. 특징이 다른 사람들이 그를 해코지 하기 위해서 음모를 꾸미고 있다. 방 안에 혹은 주변에 도청장치가 숨겨져 있다고 믿고 있다. 세 번째가 긴장성 혹은 균열성 조현병으로 신체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특별한 자세를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움직일 수가 없고, 움직일 의지가 없다. 종종 말이 없는 벙어리이다. 한 환자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지구가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두 손을 머리 위에 올리고 지구를 떠 받들고 있는 자세를 보이면서 하루 종일 그러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네 번째가 사춘기형 조현병으로 헤베프레니아(Hebephrenia)라고 불린다. 헤베라는 말은 제우스의 막내 딸 헤베가 사춘기가 되면서 이상하게 행동을 보이게 된 것을 신조어로 만든 것이다. 사춘기형 조현병은 극단적으로 어린이 같은, 어리석고 유치한, 부적당한 행동에 적용되어진다. 거울을 쳐다 보고 낄낄거리고 그리고 코너를 훔쳐보면서 낯선 사람들에게 제멋대로 혼을 흔들거나 피식거리면서 웃는다. 긴장성 조현병 혹은 사춘기형 조현병의 진단은 1900년 초반기에 흔했다. 그리나 약물의 발달로 오늘날은 거의 드물다(Bernheim, 1979). 다섯 번째가 단순 조현병이다. 증세가 점진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눈에 띄게 보이지 않는다. 화려한 증세는 없지만 대인관계의 철회가 특징이다. 대부분이 진단되어지지 않고 지나간다. 가족구성원의 죽음, 일자리 상실, 연인, 친한 친구와 결별 등의 특별한 상처 이벤트 이후에 잘 등장한다. 여섯 번째가 분열형-감정장애이다. 조현병과 조울증의 합병으로 조현병을 가진 사람이 조울증 증세를 우세하게 보이는 경우에 해당된다.

12년 후에 1980년에 대대적으로 정리가 되어 분류의 체계가 잡힌 DSM-Ⅲ가 등장한다. 이 시점에서 조현병은 조직 해체(disorganized) 조현병 으로 사춘기형 조현병의 이름이 바뀌게 된다. 두 번째가 편집증(paranoid) 조현병으로 그리고 세 번째는 긴장성(catatonic) 조현병은 변동이 없다. 네 번째는 구분화 되지 않는 조현병은 변동이 없다. 다섯 번째로 단순 조현병은 잔존형(residual) 조현병으로 이름이 바뀌게 된다. 여섯 번째가 분열혈-감정장애는 변동이 없다.

14년 후에 1994년에 DSM-Ⅳ가 등장하면서 큰 변동은 없다. 여섯 번째로 유사조현병으로 1주일이상 6월 이하의 조현병에 대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일곱 번째로 망상 장애가 첨가되었다. 과대망상, 박해망상, 에로틱 망상(TV 배우, 유명인이 자신의 연인, 배우자라고 주장), 질투망상(의처증, 의부증), 신체화 망상(몸에서 썩은 냄새가 난다, 예를 들어서 24세의 여성이 항문에서 냄새가 난다, 몸 안에서 벌레가 기어 다닌다. 뇌가 썩어간다). 망상증들은 그 망상 한가지만 가지는 것이 특징이다.

19년 후에 2013년에 DSM-Ⅴ에서는 위의 세부 분류들을 제거해버렸다. 너무 복잡한 구분이 세부구분을 해주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복잡한 이름을 모두 조현병이라는 이름으로써 그냥 통일이 되었다. 세부 분류들 사이에 타당성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 때문이었다(2919, 9 1, 위키피아 참고). 분열증-감정장애와 유사조현병은 유지되고 있다. 1개월 이하는 간단한 정신증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1950년 대에 뉴욕의과대학 교수이자 정신분석가인 실바 아르에티(Silbano Arieti, 1955: 주㈜: 참고)1955년에 출판한 정신분열증(조현병)의 해석이라는 책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는 그 책으로 1975년에 미국에서 국립 저술상을 수상하게 된다. 조현병 연구에 바이블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게 되었다. 치료자 역시 조현병의 공부를 하면서 제일 먼저 접하게 된 책이다. 그는 그 책의 저술에서 미국에서 처음으로 조현병의 사무실 치료를 시작을 했다. 그의 제자 그룹이 바로 컬럼비아 의과 대학의 마이켈 스톤(Michael Stone, 1983: 주㈜: 참고)을 포함한 연구그룹이다. 그들이 정신분열증(조현병): 분석적/치료적 접근이라는 저술을 했다. 이들에 의해서 걸어 다니는 조현병은 입원 치료가 아닌 통원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이 보편화 되기 시작한 것이다.

조현병 치료에 획기적인 치료 기법이 도입되기 시작한 것은 그 시점에서였다. 독일에서 여성으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정신과 의사가 된 폴라 헤이만(Paula Heimann)이 정신분석학교를 졸업한 데오도어 레익(의사가 아닌 사람이 정신분석가가 된 참고)에 의해서 개인분석을 받은 후에 정신분석가가 되었다 그 이후에 영국으로 망명(독일의 유태인 박해)해서 멜라니 크레인(대상관계 이론의 창설자, 의사출신이 아닌)의 비서로써 활동을 했다. 그녀가 1949년에 스위스의 쥬리히에서 열린 국제 정신분석학 총회에 제출한 반전이(countertransference), 역전이의 논문이었다. 그 다음해인 1950년에 그녀는 반전이의 논물을 출판을 했다. 그녀는 환자의 무의식의 탐색에 중요한 도구로써 환자가 분석가의 평가에 대한 분석가 자신의 감정반응으로써 정의를 했다. 환자에 대한 분석가의 반응행동이다. 반전이는 이미 프로이트가 1910년에 언급을 했다. 그는 반전이는 분석 치료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되도록 피해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이것이 헤이만에 의해서 치료적인 장애물이 거꾸로 분석 치료에 결정적인 도우미가 될 수 있다는 논문이 등장한 것이었다. 이 반전이에 대한 갈등 때문에 크레인과 헤어지게 되고 비서직을 사임하고 그녀는 안나 프로이트 학파과 크레인 학파의 분열에서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는 독립 학파가 되었다. 크레인은 반전이를 치료의 과정으로 보았기 때문에 그녀의 반전이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듬해 1951년에 영국의 여성 분석가인 마가레트 리틀(Margret Little)이 반전이와 그것에 대한 환자의 반응이라는 논문으로 반전이는 분석가 자신의 문제점을 반사로 보여주는 거울이라고 주장을 하면서 반전이를 피하고 도망갈 것이 아니고 반전이를 수용해서 치료의 도구로 삼아야 한다는 이론이 이후부터 분석가들로부터 쏟아져 나오기 시작을 했다. 정신분석 치료에서 가장 어려운 걸림돌이 거꾸로 가장 치료에 효과적인 기법으로 등장을 하면서 조현병의 치료에 획기적인 치료 기법으로 등장하면서 치료가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1938년부터 주립정신병원에서 조현병 환자들을 치료를 하기 시작한 스포트니츠(Spotnidz)는 반전이를 환자에 의해서 끄집어내어진, 유도되어진 분석가의 감정 반응으로 정의를 했다. 그는 분석가 자신으로부터 자연스럽게 표현되어지는 감정반응이 아니고 환자와 분석가의 쌍방 관계에 의해서 환자가 분석가의 취약점을 자극해서 분석가의 분노, 적대감정, 짜증, 화가 유도되어 끄집어내어진 분석가의 감정반응이 반전이라고 본 것이다. 고로 분석가는 자신의 약점을 숨기지 말고 그것을 인정하고 수용해야 그 때부터 치료가 다시 힘을 얻게 된다고 치료사들에게 경고를 했다. 조현병 환자는 지능의 문제가 아니다(머리가 나쁜 것이 아니다), 귀신처럼 치료사의 약점을 감지하고 감각을 해서 그것을 도발하게 된다는 것을 지적을 했다. 치료사는 자신의 어린시절의 약점과 단점에 자극을 받게 되면 그것을 방어하려고 급급해지기 때문에 자신의 취약점을 숨기기 위해서 조현병 환자에게 투사를 해서 조현병 환자는 치료될 수 없다고 치료를 거부하게 된다는 것을 강조를 했다. 스포트니츠는 조현병 환자가 치료에서 제외된 것은 환자가 관계의 능력을 만들어 갈 수 있는 능력의 부재 때문이 아니고 치료사가 환자를 다룰 능력이 없기 때문에 환자를 거부하면서 생긴 문제라고 꼬집었다. 고로 치료사는 조현병 환자를 치료할 자신감이 먼저 확립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어떤 조현병 환자라고 치료할 수 있다는 확신이 이심전심으로 환자에게 반사되어질 때 환자는 분석가를 신뢰하게 될 수 있다고 지적을 했다.

그의 이러한 치료 기법은 적중했다. 조현병의 치료효과가 표면화 하게 되면서 많은 치료사들이 그의 치료 기법을 학습하게 된 것이 조현병의 치료에 좋은 결과들로 연결되었다.

이제 조현병에 대한 원인의 논쟁을 잠깐 들여다보기로 하자. 조현병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되어진다. 유전이냐 혹은 환경이냐 하는 문제로 귀결이 된다. 여기에 대한 획기적인 한 개의 역사적인 이벤트가 등장하게 된다. 그것이 제니안(Genians) 가족이다. 제니안이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무서운 탄생의 뜻으로 그 이벤트에 별칭으로 정신과의사들에 의해서 붙여진 대명사가 되었다. 제니안 가족이 낳은 4명의 일란성 쌍생아 자매들이 청소년기와 성인 초기(24)에 모두가 조현병 환자가 된 것이었다. 4명의 일란성 쌍둥이가 살아남는 것과 그리고 모두가 조현병이 된다는 것은 15억만 분의 1의 확률이라는 것이다(Bernheim, 1979: (: 참고). 그들은 17분 안에 모두가 태어났다. 그들 중에 3명은 사춘기를 통과하면서 적어도 한번 이상은 정신병원에 입원을 했다. 이것을 알게 된 미국 국립정신건강 연구소(미국에는 국립이 없다, 유일한 기관)의 스텝들이(정신과의사, 정신분석가, 치료심리학자, 임상사회복지학자) 제나인 가정에 의뢰를 해서 4명의 자녀들을 연구소부설 정신병원에 입원을 시키고 그들의 성장과 과정과 가족관계, 부모들의 친인척 관계들에 대한 자료를 3년 동안 모아서 분석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 가족의 아버지는 경직되고 짜증적이고 의심이 많은 감정철회적인 사람으로 가족들과 관계에서 말이 별로 없는 사람으로 실직상황(일을 하지 못함)이 많았다. 어머니는 심한 신경증적인 여성으로 딸들을 과잉 보호를 했다. 아버지의 친가의 9명의 형제들은 아무도 잘 조정된 건강한 사람이 없고 거의 대부분이 정신과적인 장애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장남은 학습 부진으로 무역업을 배우는데 실패를 했다. 그는 13살 된 딸과 함께 침대에서 같이 잠을 자는 것에 스텝들이 대경실색을 했다. 둘째는 결혼을 하지 않는 술주정뱅이, 거칠고 분노의 폭발이 잦았다. 그 다음 한 아들은 길거리를 방황하면서 누가 자신을 미행하고 있다고 울고 다니는 것에 가족들이 모두 정신이상으로 보고 있었다. 막내였던 아버지는 폭력적이고 주먹으로 자녀들을 컨트롤 했다.

어머니의 형제들은 정신과적인 어려움들은 드물었지만 어머니가 결혼 전에 3년 동안 심한 신경증으로 치료를 받은 여성이었다. 그녀는 4명의 일란성 쌍둥이 자매를 두 그룹으로 나누어서 착한 자매와 나쁜 자매로 구분을 했다. 두 명의 딸이 자위행위를 하는 것 때문에 행실이 나쁜 자녀로 낙인을 찍었다. 두 자매(H양과 I)는 심한 자위행위 때문에 11살 때 의사의 조언으로 할레(남자의 포경수술과 유사)를 받고 나서 30일 동안 두 손을 묶어 놓기도 했으나 결국은 실패를 했다. 아버지는 20세가 된 딸이 직장 생활을 할 때 점심시간에는 집에 와서 4명의 자매들이 같이 식사를 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어머니는 딸들이 학교생활을 하면서 4명이 똑 같은 옷들을 입게 하고, 같이 다니게 하고 다른 동료들과 접근을 막았기 때문에 딸들은 학교에서 친구들과 고립이 되었다. 딸들의 어린시절에 친구들이 집에 오는 것을 막고 그리고 친구들 집에 가는 것을 금지시켰다. 사춘기가 되면서 이성에 대한 관심을 차단시키고 소년들과 데이트를 막았다. 딸들의 독립된 자치적인 활동을 철저하게 막았고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생활하도록 했다. 막내딸인 H양은 옷차림이 이상하고 대중 앞에서는 특별히 혼란했다. I양은 멍한 표정으로 자신을 돌볼 능력이 없었다. N양은 가족모임에서 아버지를 피해 다녔다. 아버지와 눈맞추기를 하지 않았다.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M양은 4명 중에서 가장 사랑을 많이 받았고 덜 혼란했다. 그녀가 가족 중에서 마지막으로 일자리를 잃고 나서 붕괴로 자신을 돌 볼 능력을 상실했다. 국립정신건강 연구소에서 3년 동안 치료 결과 M양은 결혼을 해서 남편과 함께 살고 있었고 N양은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파트 타임으로 무용교사로 있었다. H양과 I양은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제나인 가족들에 대한 학자들의 의견은 대체로 두 가지고 나누어졌다. 가족구성원들의 정신장애가 대물림 된다는 것에 대한 의견이었다. 아버지의 친가 가족의 정신장애가 제나인 가족의 자녀들에게 나타난 것을 유전주의 학자들은 유전이라고 주장을 했다. 반면에 환경주의 학자들은 자녀들의 양육과 관계스타일 때문이라고 주장을 했다. 유전학자들은 부모님의 신경증들이 자녀들에게는 더 심한 정신과적인 결함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유전적이라고 주장을 했다. 부모의 문제가 자식들에게 이어진 것은 유전이라고 주장한다, 대신에 환경론자들은 부모들의 문제가 자녀들에게 더욱 더 심각하게 나타난 것은 부모들의 행동 패턴들을 자녀들이 배운 것이다. 가족구성원들과의 상호작용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후자는 엄격하게 말해서 유전적인 것은 유전인자에 의해서 전달되어야 하는데 조현병의 유전인자가 발견되었다는 것은 학계에 아직도 보고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예를 들어서 백인과 흑인이 결혼을 하면 언젠가는 흑인이 태어난다는 것을 막을 수 없는 유전인자에 의해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부모의 잘못된 생각들, 느낌들 그리고 행동들은 자녀들이 배웠기 때문에 만약에 그들의 왜곡된 생각들과 행동들이 수정이 되어 새로 배우게 되면 대물림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두 의견의 조정으로 유전적인 기질과 환경적은 요소들이 서로 상호작용으로 조현병이 발생한다고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예를 들어서 잠두중독증(favism)은 빈혈, 복부 통증, 열병을 동반하는 질병으로 그 원인은 잠두콩을 먹지 않으면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유전적 기질을 타고 났다고 해서 환경적으로 그 요소를 자극하는 외부의 영향을 막는다면 발생을 피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죠지타운 의과대학의 정신과 의사로, 정신분석가로 활동을 하다가 가족치료사가 된 뉴욕의 조현병의 치료의 대가인 보웬(Murray Bowen)은 조현병을 3대에 걸친 가족의 대물림으로 보았다. 1 세대는 신경증의 부모 그리고 제 2세대는 좀더 심각한 자아장애(성격, 인격장애)로 그리고 제 3 세대인 손자 세대에서는 조현병으로 등장한다고 이론화 했다. 부모의 결함들이 수정되지 않고 계속해서 다음 세대로 전달이 되면서 심각하게 변하게 되면서 마지막으로 조현병으로 결과 한다고 주장을 했다.

역동적 정신의학자들 즉 정신분석, 가족 치료, 심리치료 쪽에서는 양육과 가족 환경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강조한다. 그 증거로써 조현병의 성공적인 심리치료의 결과들을 내세우고 있다.

다시 조현병의 특징들을 간단하게 들여다 보기로 하자. 뉴욕에서 평생동안 조현병의 치료에 헌신한 로체스트 대학병원의 치료 국장인 베른헤임(Bernheim)은 조현병의 특징을 세가지로 요약을 하고 있다. 사고 장애, 감정 문제 그리고 관계의 문제로 요약을 했다. 그는 정신분열이라는 용어에서 분열, 쪼갬(schizo)라는 말은 자아, 성격의 모든 요소들이 분열되어진 것이 아니고 생각과 느낌의 분열, 대인관계의 철회 즉 생각, 느낌행동분열로 보았다. 생각은 분노해서 화가 나는데 느낌은 낄낄거리고 웃고 있거나, 속으로는 즐거운데 행동은 분노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초상집에서 히죽히죽 웃고 있는 사람, 생일 잔치에서 울거나 슬퍼하는 사람들은 그 상황적 현실과 동떨어진 행동과 생각과 느낌이 통합되어지지 않는 사람들이 바로 조현병이다.

어린이들이 1살쯤에서 언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언어 능력이 점차로 진화를 해서 5세에서 6세 정도가 되면 점점 상징적인 내용의 용어들이 풍부하게 된다. 6-12세의 학동기(정신분석에서 잠재기)에는 언어 능력이 고차원적이고 상징어와 은유들이 많아지면서 추상적이 사고들이 활발하게 된다. 생각에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들의 사용언어와 대화는 머리 속에서 분류가 되고 조직화 되어간다. 그런데 조현병은 한곳에 주의집중이 어렵다, 주의산만해지고 생각들이 조직적이 아니고 제 각각으로 해체되어져 있다. 즉 생각들이 단절 되고 목적지향적이 아니고 안절부절 못하고 말이 앞뒤로 연결되어지지 않는다. 심한 조현병의 경우에는 비슷한 소리가 나는 단어들을 제멋대로 가져다 자신이 신조어로 만들어낸다. 고로 대화가 어렵다, 상대방이 조현병 환자의 말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이러한 언어적인 특징을 말의 짬봉, 말의 살러드(salad)라고 부른다(Arieti, 1974, 1976, 1977, 1980, 1994:주㈜: 참고). 외부의 정보들 중에서 무관한 것들을 걸러내고 말을 조직적으로 의도적으로 조화를 만드는 필터의 고장 즉 연상의 분열(결함)으로 본다.

정신과 의사들이 조현병을 간단하게 진단하는 기술로써 굴러가는 돌에 이끼가 끼지 않는다(a rolling stone gathers no moss)라는 말이 어떤 말인가?를 질문을 자주하게 된다. 이 말은 상당한 생각과 연상을 요구한다. 즉 열심히 노력하면 뜻을 이룰 수 있다 혹은 지속적으로 노력을 해야 정체되어 썩지 않고 뒤쳐지지 않고 발전할 수 있다(2019, 9, 7, 다음백과). 그런데 조현병 환자들은 이것을 해석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들은 추상, 연상에서 서로 생각들이 연결이 되지 않아서 돌에 이끼가 무엇인지? 혹은 이끼가 낀 돌은 굴러가지 않는다 등등으로 해석을 한다. 쉽게 말해서 복잡하고 어렵고 생각을 많이 하는 문장은 골치거리로 피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들을 생각하는 사고의 능력이 파괴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주의집중이 분산되어 생각을 생각하는 능력이 지리멸렬하게 된다는 것이다. 선택적 주의집중력의 파괴이다.

두 번째로 감정장애는 감정의 흐름이 파괴된다는 것이다. 감정이 너무 빨리 이동하거나 급성으로 분노, 폭발 혹은 극단적인 흥분으로 성격이 급변해서 주변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전체 감정이 납작해서 무딘 감정, 감정이 없는, 감정의 높고 낮음이 없다. 즐거움을 경험하지 못한다. 목적을 위한 동기의 상실, 고통에 무감각하다, 느낌이 파괴되어 어떻게 느끼는지? 가 작동을 중지한 것이다. 감각도 느낌도 없는 로봇처럼 무감각이 되어버린다.

세 번째 관계의 철회이다. 의사소통, 즉 커뮤니케이션의 결함으로 동료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를 모른다. 자신의 몸, 신체적인 것들에 집착을 하게 된다. 다른 사람과 함께 하면 긴장의 증가로 부자연스러움과 껄끄러움 때문에 관계를 피하게 된다. 내면의 세계로 철수해버린다. 관계를 피하게 된다. 혼자서 상상의 세계 속에서 스스로 즐거움을 찾게 된다. 과대망상 속에서 살게 되면 순간적으로 자신감이 올라가서 자신이 최고가 되고 자신이 유명 인사가 된다는 상상 속에서 자아-존경심이 상승을 하게 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거꾸로 자신감이 곤두박질하게 된다.

 영국의 외과 의사로 정신분석가가 된 윌프레드 비용(Wilfled Bion)은 대상관계 이론의 창시자인 멜라니 크레인(Melanie Klein) 밑에서 분석을 받고 정신분석가가 되어 조병현의 연구그룹(한나 세갈(Hanna Segal, 1989, 1993, 2004: 주㈜: 참고)과 허버트 로젠필드(Herbert Rosenfeld, 1987: 주㈜: 참고)와 함께)에 리더로써 뛰어들었다. 그는 조현병의 사고 장애에서 언어의 파괴를 알파 언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서 설명을 했다. 즉 어린이들이 5-6세 그리고 잠재기를 통과하면서 추상화 언어와 연상의 통합으로 선택적 주의집중력이 등장하는 사춘기에 그리고 성인 초반기에 조현병 환자가 등장하는 이유는 그들이 언어의 소통의 결함과 부진으로 복잡한 사고의 능력이 최대화 되는 사춘기 시절 즉 자아주체성, 섹스주체성, 심리적 독립, 친밀한 동료들 관계, 이성관계 그리고 미래의 청사진 등이 대거 등장하는 질풍노도의 청소년기에 그들이 이들에 대한 생각들이 연결이 파괴되어 분열되어서 스스로 그러한 복잡한 생각, 느낌과 행동을 파괴시켜서 베타 언어로 되돌아간 것으로 이론화 했다. 베타 언어는 어린이가 출생 이후에 머리 속에서 감각으로 느껴지는 붕붕거리는 소리, 시끄러움으로 지각되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소리를 말한다. 외부의 자극들이 감각기관들을 통해서 지각으로 변화되고 기억 속에서 분류되고 정리되어져서 복잡한 언어의 사고로 진화하는 것을 거꾸로 의미 없는 소리로 파괴시켜서 스스로 고통을 벋어나려고 하는 자아 보호적 본능으로 보았다.

 심한 조현병으로 병원에서 들락거리는 환자들은 감정과 생각이 없는 무감각한 살아서도 죽은 송장이 되어버린 사람들이다. 그들은 사랑과 미움과 분노, , 짜증 등의 복잡한 감정들을 대응해 나갈 수가 없다. 사랑과 미움은 정반대로 갈등적인 감정이다. 이것이 분열되어져 단절되어 있기 때문에 복잡한 감정들을 다룰 능력이 없어져버린 것이다. 대인관계의 복잡함에 너무 혼란스럽고 끊임없는 생각들이 연속해서 머리 속에서 뒤엉켜서 휴식이 없는 상태를 피하기 위해서 생각들을 억압해서 느끼고 감각하지 못하게 그냥 소음처럼 처리를 한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그의 알파 언어와 베타의 언어 조직이론은 특별히 샌프란시스코 의과대학의 토마스 오가덴(Thomas Ogden, 1982, 1986, 1989, 1994, 2001, 2005): 주㈜: 참고) 15년 이상 정신병원에 입원을 한 사람들의 특징이 무감각으로 느낌이 없는 로봇처럼 변해버린 조현병 환자를 정신분석적으로 치료를 하면서 그가 이름을 붙여서 심한 정신증 환자들을 위한 고급연구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무감각적인 환자를 다시 꺼꾸로 감각과 느낌과 생각들을 되살려 내는 과정의 치료를 해서 약물의 도움이 없이 성공적인 치료 사례를 보고하고 있다.

 다시 뉴욕의 스포트니츠(Spotnidz)의 치료 기법으로 되돌아가보자, 그는 조현병의 특징을 나르시즘 분노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는 나르시즘 전이, 나르시즘 분노라는 말로써 나르시즘을 즐겨 사용하고 있다. 나르시즘 전이는 리비도 에너지가 외부 대상으로 흘러가지 않고 자신의 자아로 흘러간 것을 말한다, 나르시즘 분노는 대상에 대한 분노가 자신의 자아로 흘러간 것을 말한다. 어린이들이 3-5세의 오디팔 단계가 되면 언어의 구사 능력이 폭발적으로 확대되어진다. 부모들이 싫어하는 것을 알게 되고 부모들의 말과 행동에 따르지 않으면 처벌이 따라온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시점에서 비밀이 등장하고 거짓말을 사용하게 된다(Mearles, 2005, 2012a, 2012b: 주㈜: 참고). 내면의 사적인 자아가 확고해지고 선과 악 즉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할 수 있게 된다. 이 시점에서 어린이들은 부모의 비위를 맞추고 자신의 내면을 숨기고 화가 나도 참을 수 있고 좌절에 견디는 힘을 습득하게 된다. 그런데 부모님과 소통에서 모순과 갈등은 서로에게 긴장과 불안을 가져온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로 부모님에게 순종하고 부응하게 되면 갈등이 줄어들고 부모님이 좋아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부모님에게 착한 자녀가 되려고 노력하게 된다. 고로 자연스럽게 자신의 자아가 목소리를 잃게 되고 순종적인 착한 어린이가 되는 것이다. 심한 경우에는 부모가 자녀들을 강압하고 처벌하고 지시, 명령적이 되면 자녀들은 자신의 목소리가 감소하고 복종적인 어린이가 된다. 여기에서 역동적 정신의학에서 강조하는 세대차이가 무시된다. 부모는 자녀가 그들의 생각과 느낌에 따라오도록 강압을 하기 때문에 자녀들은 자신들의 생각, 느낌과 행동을 독립된 인간으로 진화되어지지 못하고 부모의 생각과 느낌과 행동에 일치시켜서 갈등이 없는 순종적인 인간으로 만들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즉 부모는 너와 나의 구분에서 결함이 생긴 사람들로써 자녀들이 독립된 인격체라는 것을 무시하게 된다. 부모의 몸을 빌려서 태어났지만 자녀들의 생각, 느낌과 행동이 달라지는 것이 정상인데 부모들은 자신의 말을 잘 들고 자신의 행동을 따르는 갈등이 없는 자녀들을 선호하게 된다는 것은 부모가 자녀의 생각, 느낌, 행동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즉 너와 내가 분리된 독립된 인격체가 아니고 너와 나는 하나된 생각과 느낌과 행동이 부모와 일치되는 사람으로 양육을 하게 되면(이것은 출생 이후에 너와나의 하나된 단계인 4개월 이전의 단계에서는 정상) 자녀들은 사춘기 시점에서 동료들과 관계 그리고 청년기와 어른 초반기에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가진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독특한 자신이라는 것을 잊어버리데 된다.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게 못하고 다른 사람에 복종적이고 다른 사람에게 비위를 맞추고 다른 사람의 생각과 느낌에 따라가는 내가 없는, 자아가 없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고로 자아를 잃어버리고 방황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프로이트의 인간의 2대 본능인 삶의 본능(사랑)과 죽음 본능(파괴)이 등장하게 된다. 죽음 본능은 공격적 본능을 말한다. 뉴욕의 어린이 마스트 센터에서 출생 직후의 어린이 4명을 3년 동안 연구를 해서 인간 유아의 마음의 탄생이라는 저서를 낸 몰러(Mahler, 1975: 주㈜: 참고)는 임신중의 태아가 공격적인 행동을 하는 것으로 이것을 폭발적 분노라고 이름을 붙였다. 출생 후에 발달 단계의 과정을 거치면서 욕구 불만족은 파괴적 공격으로 변질하게 된다. 좌절에 긴장을 하게 되면 공격적인 행동으로 분노로 표면화 된다. 신생아가 대소변으로 배고픔으로 고통스러우면 울고 보채는 행동이 바로 이런 공격적인 행동이고 파괴적 행동으로 본다, 욕구 불만족의 좌절은 충동적이고 공격적으로 변질되어진다. 이러한 충동 본능은 사랑에 의해서 중화되어 좌절에 공격은 무디어지게 된다.

그런데 반대로 이러한 분노, , 짜증, 노여움은 부모의 처벌이 따라오기 때문에 자녀들은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 억압하게 되고 그것이 내면에 축적이 되어 나르시즘 분노, 폭풍적 분노가 된다고 가설화 했다. 즉 부모에게 파괴적, 충동적 표현들은 처벌이 따라온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 어린이들은 그 처벌을 자신의 자아 쪽으로 방향을 바꾸어서 자신을 공격하게 된다 즉 자신을 처벌하고 미워하고 싫어하게 된다. 조현병 환자들의 특징이 자신을 싫어하고 자신을 미워하고 자신을 처벌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장기화 되고 과도하게 만성적이 되면 감정이 무디어지고 감각이 없는 무감각한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복잡한 생각이 골머리가 아프고 뇌 속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부정적인 생각이 뇌를 과도하게 활동하게 만들어서 뇌가 쉬지 못하는 상황(불면증)으로 그리고 24시간 잠을 잔다고 누워있어도 숙면으로 피로감을 회복할 수가 없다. 그 결과 환자는 스스로 사고들을 파괴시켜서 생각이 없는 사람으로 감정이 없는 무감각의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것의 방어가 붕괴되어지면 살인으로 그리고 자살로 나타나게 된다. 예들 들어서 한 조현병 환자가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가던 도중에 칼로 엄마를 찔렀다는 기사가 보고 되었다(2919, 9.7, 이데일리 뉴스: 포천에서 보도).

만성 조현병 혹은 심한 경계선 자아장애 환자들이 자신의 몸을 면도날로 끗거나 혹은 담뱃불로 찌지는 것은 무감각한 감정에 자극을 주어서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면도날로 끄어서 피가 흘러내리는 것 혹은 담뱃불로 찌지는 그 순간에는 고통 대신에 마음의 안정을 느낀다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스포트니츠는 조현병의 초반기에는 나르시즘 분노를 대상으로 향하는 분노가 방향을 바꾸게 해서 마음 속에 억압되어져 있는 분노, 적대감정, 노여움을 방출시키는 것을 조현병 치료에서 제 1 단계로 기술하고 있다. 조현병 환자들의 치료에서 분노를 먼저 다루어야 한다는 것은 거의 모든 정신분석가들의 공통적이 지적이다. 뉴욕의 정신분석학교 교수인 스트린(Steran) 5년 동안 5번 정신병원에 입원한 한 기혼 여성의 정신분석 치료에서 약물을 사용하지 않고 5년 동안 치료의 초반기에 그녀의 분노를 마음대로 말로써 표현하도록 한 치료의 과정을 소개한 절단된 영혼: 한 정신분열증 환자의 치료에 매진한 한 영웅적인 분석가 라는 저서에서 분노를 말로써 표현한 치료 과정을 다루고 있다. 뉴욕이 코넬 의과대학 교수이나 정신분석가인 컨버그(Kernberg, 1975, 1976, 1984, 1989, 1998, 2001, 2002: 주㈜:참고) 역시 정신증 환자의 치료에서 분노가 가장 먼저 다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치료자는 이미 모든 정신과 장애자들의 치료과정에서 가장 먼저 분노의 방출을 다룬다. 치료자는 부모에 대한 분노를 야누스의 두 얼굴 이라는 그리스 신화를 인용한다. 사랑과 미움을 하나인데 이것을 둘로 쪼개서 사랑은 부모님에게로 흘러가고 미움은 내 자아 속에 남아서 축적이 되어 결국은 내 자아를 공격해서 나를 미워하고 나를 싫어하고 나를 처벌하고 나를 비판하고 나를 비난하는 것이 바로 정신과 장애자들이다 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고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즉 부모님, 배우자 혹은 친밀한 친구들 관계에서 미움 역시 흘러가야 한다는 이론을 수용한 것이다. 대신에 분노, 미움 등 부정적 감정들은 절대로 행동으로 표현(정신분석의 전문 용어로 acting out 방어)하지 말고 말로써 표현하도록 도와준다. 조현병 환자들이 말을 사용하는 언어 능력의 미진함으로 말로써 표현하기 보다 충동적인 행동으로 표현하는 경향이 높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하고 치료의 과정에서 말로써 부정적 감정을 표현하는 훈련이 필수적으로 따라온다.

 분노를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들(acting out 방어: 감정을 말로써 표현을 하는 결함, 부진 때문에 충동적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이 쉽고, 효과가 빠르기 때문에 자아를 보호해준다)손찌검 혹은 주먹으로 폭력 사용, 말로써 상대방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언어 폭력, 삐쳐서 말을 하지 않는 것, 물어도 반응이 없는 무반응, 방문을 닫아 걸고 두문불출, 화가 날 때 물건을 집어 던지거나, 도어 문을 발로 차거나 꽝하고 닫아버리는 것, 무언으로 침묵, 꼴아보기 등등이다. 그들을 말로써 표현하는 능력의 부재임을 지적하고 언어 표현 훈련을 첨가해야 한다.

 이제 실제 조현병 치료 사례에서 사고의 분열(연상의 분열)과 그리고 사고와 감정의 분열이 어떠한가?를 삽화로 설명하고자 한다. 치료자에게 분석치료를 받고 있는 22세의 한 대학생 A군은 작년 6월 달에 치료자의 인터넷 홈페이지와 블로그 글을 접한 어머니에 의해서 치료자에게 소개가 되어 치료를 받게 되었다. 그는 대학 1학년 초반기에 동료들과 관계의 어려움 때문에 고민하고 있던 중에 우연히 한 친구의 소개로 심리검사를 무료로 해주고 심리학 강의를 해준다는 말에 참가하게 되었다고 했다. 몇 번 참가하게 되면서 하느님을 믿으면 병이 완치된다는 말에 그 단체가 xx 종교 단계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들이 무료로 도움을 준다는 말에 그들의 6개월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되었다. 2개월쯤이 되면서 이것을 부모님과 누나들이 이것을 알고 A군을 사이비 종교 단체로부터 빼냈고(그 종교 단체는 절대로 이곳에서 프로그램에 참가를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된다고 비밀을 요구) xx 인지행동치료 센트에서 치료를 받다가 불만족해서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게 되었다.

그는 환청이 하루에 수십 번씩 들린다고 했다. 그 환청이 그 사이비 종교 단체에서 빠져 나오려고 갈등을 하고 있을 때 들리기 시작했다고 했다. 어떤 환청인가? 물어 보았을 때 어휴, , 내 원 참!” 등의 한숨 쉬는 말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도 그러한 소리가 들린다고 생각을 했는데 나중에 A군의 귀에만 들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10시간의 분석 치료 과정에서 A군이 어린시절에 그의 어머니가 늘 A군을 보면서 불만족해서 하는 빈정거림이라는 것을 밝혀낼 수 있었다. 이후에 그 환청은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40시간의 분석 과정에서 A군은 어린시절 엄마로부터 화풀이 대상이 된 것을 밝혀낼 수 있었다. 시어머니와 고부 갈등으로 화가 났을 때 시도 때도 없이 A군에게 화풀이를 한 것이었다. 두 명의 누나들이 A군에게 역시 비판적으로 처벌적이었다. 4살 위의 큰누나는 늘 A군에게 부정적이고 비판적이었다. 2살 위의 둘 째 누나는 엄마가 A군에게 공부를 가르쳐주라는 위임을 받고 A군에게 학습지를 가르쳐 주면서 빨리 이해하지 못한다고 A군의 등 짝을 손으로 사정없이 때렸다고 했다.

A군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동료들과 관계가 좋지 못해서 늘 혼자였다. 초등학교 4학년 시점에서 그는 전자 오락 게임에 빠져들었다. 중학교 1학년 시점에서 그는 여러 가지 생각들 때문에 잠을 잘 수 없게 되면서 생각을 한쪽에 모으기 위해서 전자 오락에 집중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새벽 5시까지 잠을 자지 않고 전자오락을 하다가 새벽 5시 혹은 6시에 잠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8시경에 깨어나서 학교에 가야 했다. 치료자가 그렇다면 학교에 가서는 어떻게 되었느냐? 라고 물었을 때 A군은 오전에는 늘 잠만 잤다고 실토를 했다. 그렇게 해서 중 3, 3년 그리고 대학 1학년으로 그리고 지금까지 총 8년 동안을 새벽 5시에 잠을 자고 오전 8시에 깨어나서 학교에 가서 잠을 자는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도 A군은 성적은 반에서 늘 상위권을 유지를 했다.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기 이전에까지 A군은 그것이 불면증인 줄 모르고 있었다. 대학 1학년을 끝내고 휴학계를 냈다고 했다. 대학생활에서 아침에 잠을 자야 하니까? 저녁 강의를 신청했느냐? 라고 물어 보았을 때 그냥 보통의 학생처럼 낮 강의를 신청했다고 했다. 1학년 때 학점을 물어 보았을 때 2.5 정도라고 했다. 치료자는 대학의 강의실에서 오전 강의는 잠만 잤다고 했는데 성적은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학사 경고를 면했는지(2.0 이하의 학점은 학사 경고이고 3번의 학사 경고는 제적)를 물어 보았을 때 시험 1주일 전에 친한 친구로부터 세밀한 강의 노트를 빌려서 죽기살기로 공부를 한 결과라고 웃으면서 이야기를 했다. 그가 초, , 고교 시절에 학급에서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해서 서울 소재의 대학에 입학을 할 수 있었다. 전공에 대해서 물어 보았을 때 xx학과로서 인기학과였다. 그러나 그는 그 학과에 흥미가 있었기 때문에 간 것이 아니고 아버지가 직장에서 그 전공을 하면 취업이 쉬울 것이라고 해서 강압적으로 그 전공을 선택을 했는데 계속해서 전공을 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중학교 시절부터 학원 혹은 학교에서 성적이 내려가면 어머니의 처벌이 따라왔다고 했다. 어머니는 네가 원하는 대로 학원에 보내주고 그리고 참고서적 등의 모든 지원을 해 주었으니 부모님의 노고에 보답을 해야 한다고 A군의 성적이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성적이 내려가면 가족들의 식탁에서 A군의 밥을 올려놓지 않았다고 했다. A군은 자신의 방에 들어가서 언제 엄마의 마음이 풀릴지를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항의를 하면 밥값을 해라고 처벌이 따라온다고 했다. 누나들이 그것이 너무 심한 것이 아닌가? 라고 어머니에게 권유를 해도 어머니는 들은 체 만 체 했다. 그것은 A군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누나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자녀들 중에서 A군의 성적이 가장 좋았지만 어머니는 인정을 하지 않았다. 성적이 내려가면 A군은 밥상에서 밥이 없다는 것이 한번 두 번이 아니고 수 없이 지금까지 지속되어져 온 것이 분석으로 드러났다.

치료자가 A군에게 어머니의 부당한 대우 그리고 누나들의 부정적인 태도에 화가 나거나 항의를 해보지 않았느냐? 라는 질문에 A군은 아버지가 절대로 가족구성원들에게 화를 내는 것은 잘못된 것으로 참고 견디어야 한다고 했기 때문에 습관화 된 것이었다. 아버지는 어린시절에 8살 때 아버지의 아버지가 사망했고 어머니가 평생을 아들만 보면서 재혼을 하지 않고 자신만 보고 살아온 어머니에 대한 효성으로 결혼 후에 어머니는 시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시어머니에 대한 짜증과 분노를 남편의 처벌 때문에 아들 A군으로 흘러가게 된 것을 분석으로 밝혀낼 수 있었다. A군에게 부모님에게는 사랑뿐만 아니라 미움과 분노도 행동이 아닌 말로써 표현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면서 A군의 분노를 말로써 표현을 하는 치료 과정이 첨가가 되었다. 물론 어머니를 초대해서 4시간 동안 그리고 그 다음에 별도로 시간을 내서 아버지를 초대를 해서 3.5시간을 컨설팅을 통해서 부모님이 A군의 분노와 미움을 말로써 표현할 때 수용하고 인정하고 받아주어야 함을 이야기를 했던 것은 물론이다.

이 시점에서 A군은 치료를 중단 하겠다고 선포를 했다. 이유는 치료 효과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A군은 가슴 속에 억눌려 있는 불덩어리가 빨리 해소되어지지 않는다고 분기탱천 했다. 치료자는 한방에 해결되기 어려우니 치료의 과정에서 분노를 말로써 표현하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달랬지만 A군은 노발대발했다. 그는 인터넷에서 1시간 동안 전화로써 감정을 표현하는 치료(시간당 10만원)를 하는 곳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치료를 받고 싶다고 했다. 치료자는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은 틀린 것은 아니지만 A군의 핵심 문제는 대인관계에서 서로 대화를 하면서 감정을 말로써 표현하는 것이 치료의 핵심이기 때문(대인관계의 결함)에 전화 상담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해주었지만 불만족은 엄청나게 폭발을 했다. 여기에다 A군은 치료자의 홈 페이지의 치료 사례에서 고교생 이상은 부모님의 집에서 나와서 독립된 생활(부모님과 단절은 아니다)을 하면서 치료를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지적하면서 부모님 집으로부터 나오고 싶다고 했다. 치료자는 치료자에게 심리치료 계속해서 받아서 대인관계가 어느 정도 좋아져서 동료들 관계로 이동을 할 수 있는 시점에서 부모님 집에서 나와서 독립된 생활로써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자치심을 길러야 한다고 반대를 했다. 즉 부모님과 관계가 우선적으로 해결되고 난 다음의 단계로 동료들과 관계를 새로 만들어나갈 시점에서 부모님 집에서 나와서 부모님의 간섭과 지시와 과잉보호를 피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를 해 주었지만 막무가내였다. 여기에다 A군은 또 한가지를 고집을 했다. 그는 절에 들어가서 수련을 받아 보고 싶다고 했다. 조용한 절에 가서 스님들과 대화를 나누고 심신을 안정시키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을 요청했다. 치료자는 건강한 일반 사람들은 그러한 마음의 수련이 도움이 되지만 대인관계가 제대로 되지 않는 사람에게는 절에 간다고 해서 스님들과 그리고 절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관계 역시 어려움이 따라올 것이라고 반대를 했다.

이 시점에서 A군은 치료자에게 분노가 커지면서 치료에 의욕을 상실해 가는 것을 치료자가 알고 여기에서 심리치료를 중단하고 다음에 언제든지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받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면 그 때 치료를 재개하기로 했다. 당장 부모님으로부터 치료자에게 A군의 치료 중단에 대한 SOS가 연달아 왔다. 치료자는 A군의 의사를 존중해서 자신이 원하는데도 지원해주어서(자아의 성장을 위해서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을 지원) 그가 스스로 깨닫는 시점이 올 것이라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 이후에 10개월 세월이 흘렀다. 2019 8월에 A군 한데서 전화가 왔다. 심리치료를 재개하겠다고 했다. 치료자와 A군의 심리치료가 다시 재개 되었을 때 치료자는 그 동안 어떻게 지냈는가? 라고 물어 보았을 때 A군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했다.

 A군은 xx 절에서 알바생을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절에 찾아가서 머물게 되었다. 절에서는 식당에서 도우미로 그리고 청소원으로 일을 하면서 약간의 보수를 받는 일자리였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결국 1주일 만에 그만두게 되었다고 했다. 그 이유는 사람들과 관계가 어려워서 불안하고 심장이 뛰는 바람에 계속할 수 없어서 포기를 했다고 했다. 그 다음에는 이번에는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해서 독립된 생활을 하기로 하고 먼 지방의 대도시에서 원룸을 구해서 집을 나왔다고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머물면서 1시간에 10만원의 비용을 내고 전화로 감정치료를 받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도 몇 번의 치료 회기 이후에 그만 두었다고 했다.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집에서 나와서 독립된 원룸 생활의 1달쯤이 되면서 A군이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정신혼란의 상황이 되어버린 것을 깨닫게 되었다. 머리가 터질 것 같고 공황장애가 올 것 같고 잡다한 생각으로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었기 때문에 아무 일도 하지 않고 24시간 잠을 자도 잠을 잘 수 없었다고 했다. 부모님에게 연락을 해서 스스로 정신병원에 입원을 요청을 했다. 병원에서 2개월 동안 입원 후에 퇴원을 해서 약물로 치료를 받으면서 (저녁에 1알의 조현병 약물) 1달 가량 지내다가 다시 1달 동안 정신병원에 스스로 입원을 자청을 했다. 1달 후에 퇴원을 해서 저녁에 조현병 약물 1알과 우울증 약물 1알 그리고 수면제 1알을 복용하면서 안정을 찾고 나서 치료자를 찾아오게 된 것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치료자는 10개월 전에 A군이 치료 중단을 이야기를 할 때 A군에게 전화 상담의 단점 그리고 절에서 수행을 하게 될 때 대인관계의 문제점 그리고 독립해서 혼자 생활하게 되면 치료자의 도움으로 스스로 운동과 식사 메뉴를 짜서 건강을 챙기고 하루의 일과표를 짜서 공부 혹은 일을 하도록 하는 많은 사세한 일상의 일들을 하나씩 수행을 해 나가면 해야 하는데 무턱대고 혼자서 실행을 한 것이 결국은 실패로 끝나고 심리적인 상처만 가중 된 것을 지금에야 깨달을 수 있는가? 라고 물었을 때 치료자의 말들이 이제 무슨 뜻인지?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고 실토를 했다.

이후 계속된 치료에서 48시간(6개월의 치료 계약)이 종료 되면서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해서 다시 6개월의 치료 계약이 필요하다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치료의 종료 기간이 다가오면서 A군은 어머니에게 치료 비용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을 했을 때 어머니는 네가 벌어서 치료비용을 충당하라고 냉정하게 이야기를 했다. A군은 치료실에서 치료자에게 곧 알바를 구해서 약 절반의 치료 비용을 모아서 어머니에게 증명하면서 나머지를 지원해주도록 하겠다고 치료를 당분간 쉬면서 비용을 모아야 한다고 했다. 치료자는 어머니가 A군에게 너에게 지금까지 치료 비용과 원룸 비용 그리고 병원에 3개월 입원 비용 등으로 많은 경제적 지출이 있었기 때문에 너도 비용을 스스로 분담을 하게 되면 스스로 자립심을 기르고 독립된 자치심을 기를 수 있기때문에 아들 A군에게 어머니가 그렇게 이야기를 한 것은 일리가 있지만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A군과 대화훈련에서 의사소통을 하면서 배우게 했다.

예를 들어서 수영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때 물에 던져 넣어서 수영을 익숙하게 연습을 하라고 할 때는 그것은 가능하지만 수영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을 물어 던져서 스스로 수영을 배우라고 하면 물에 몰래서 빠져 죽게 된다는 것을 이야기를 하면서 지금 현재 A군의 대인관계의 능력이 혼자서 아르바이트를 할 능력이 되지 않기 때문에 어머니에게 치료 비용을 지원해주도록 요청해서 어느 정도 아르바이트를 할 대인관계 능력이 생길 때 그 때 아르바이트를 해서 치료 비용의 분담과 자치심을 길러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런데 A군은 몇 일 후에 갑자기 치료자에게 전화를 해서 조언을 요청을 했다. Xx 에서 아르바이트를 구해서 첫 날에 알바를 시작했는데 1시간 만에 도저히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치료자에게 조언을 요청한다고 SOS를 요청했다. 치료자는 오늘 입사를 했기 때문에 오늘 그만 둔다고 하면 메니저도 크게 화를 내지 않을 것 같으니 그만두고 다시 그 문제를 이야기를 해 보는 것이 좋겠다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 다음 치료 회기 시간에 A군이 어머니가 알바를 구해서 스스로 치료 비용을 충당해라 하는 말에 그는 인터넷에서 알바생 모집을 한다는 xxx 에 전화를 했고 그리고 그곳에서 이력서를 가지고 방문해 달라고 요청을 받고 이력서에 간단하게 주소지와 학력을 기재를 해서 찾아 갔을 때 매니저가 이력서를 보니 이웃에 살고 있고 신체적으로 건강한가? 라는 질문에 시간에 늦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라고 했을 때 내일 아침 8시까지 출근 하라고 했다. 그 다음 날 아침에 8시에 도착을 했을 때 7명의 직원들 중에서 5명이 나와서 일을 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순간에 A군은 5명의 직원들이 자신의 과거를 들려다 보는 것 같고 자신의 과거의 문제점들이 그들이 속속들이 알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엄습하면서 도저히 그곳에서 일을 할 수 없다는 생각 끝에 치료자에 SOS를 요청했고 그만두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당장 아직 출근을 하지 않는 매니저에게 전화를 해서 갑자기 사정이 생겨서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그 매니저는 별말을 하지 않고 가운을 벗어놓고 가면 된다고 해서 그곳을 나왔다고 실토를 했다.

이제 정리를 해 보자, A군의 생각과 행동 사이에는 연결이 끊어진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A군은 절에 가서 일을 하면서 수양을 하겠다고 하는 것 하나만 생각하고 그곳에서 다른 사람들과 만나고 대화를 하고 관계를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가 연결해서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그냥 일을 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일자리가 있으니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일자리를 신청한 것이다. 두 번째 전화로 1시간 동안 상담을 하면 분노의 감정을 끌어내서 감정 방출을 한다는 단순한 한가지 생각에만 몰두해서 신청을 하고 상담 치료를 받다가 포기한 것이다. 심리치료는 상담실에서 분석가와 분석을 받는 사람이 서로 만나서 얼굴을 마주 보고 말을 하는 것과 그리고 감정을 방출은 과거의 상처 이벤트들이 치료 회기에서 등장하게 되면서 그 이벤트와 연결되어진 감정이 등장하게 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부모님의 간섭과 지시에 진절머리가 나서 당장 집에서 독립해서 간섭을 벗어나고 싶다는 한가지 생각에서 원룸을 구해서 집을 나온 것이다. 혼자 살게 되면 시간표를 스스로 짜고 식사와 운동으로 몸을 보호하고 하루 일과를 짜서 공부하고 일을 하는 시간들을 고려해서 자신의 하루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부모님의 간섭으로 독립을 한다는 한가지 생각에서 행동으로 이어진 것이다. 어머니가 돈을 벌어서 경제적인 부담을 나누자 라는 말에 자신의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알바 자리를 찾아서 일을 신청하고 하루도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게 된 것을 보면서 A군의 사고는 직선적(전문용어로 직선적 사고)인 것을 볼 수 있다. 어떤 일을 할 때 그 때 어떤 것들이 함께 등장하게 된다는 연상의 연결(전문용어로 순환적 사고)이 단절된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A군은 심한 만성 조현병이 아니고 잔존형(단순) 조현병이었다. A군은 정신분석 심리치료가 시작된 1주일 만에 약물 복용을 스스로 중단을 했다. 환청은 등장한지 4개월 만에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으면서 환청의 원인 분석 이후에 사라졌다. 재발로써 병원 입원으로 약물 치료를 받기 시작한 것은 2019, 1월 달 이었기 때문에 약물 치료 이전에 환청은 더 이상 등장하지 않았다고 확인을 할 수 있었다(분석이 정확하면 약물을 사용하지 않고서도 환청, 환각은 사라진다는 증거).

그는 언어의 구사 능력에는 크게 문제가 없어 보였다. 분석가와 A군 사이에 대화는 순조롭게 잘 흘러간다는 것을 치료자가 실감을 했다. 그런데 분명히 A군은 생각과 느낌들 즉 감정들이 연결이 되지 않고 단절되어져서 부정적 감정들은 억압되어져서 A군의 가슴 속에 불덩어리처럼 누르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밝혔다. 분노의 표현은 아버지가 친모(親母)에 대한 효성 때문에 부인과 자녀들이 할머니에 대해서 짜증과 분노를 막아버렸고 그리고 특별히 A군이 가족구성원들에게 화를 내지 못하고 처벌을 한 것이 바로 그 이유이다. 여기에다 생각들의 연결들이 끊어져서 한 개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 다양한 각도에서 연결들을 해서 다가올 문제들을 미리 생각해보지 않고 그냥 단순하게 한가지 생각만해서 행동으로 실행을 할 때 매번 마다 실패를 연속하게 되면서 A군의 자아-존경심 즉 자신감은 점점 감소되어지고 A군은 자신을 무능력한 사람으로, 자아를 싫어하고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이 된 것이 바로 위에서 기술한 정신분석가들의 기술과 일맥상통하지 않는가!

치료는 이러한 연상들과 연결을 하고 그리고 대화를 통해서 과거의 기억들을 연결해서 분노, 짜증, 화의 감정을 연결시켜서 감정을 되살리고 끊어진 생각과 감정들을 복원하는 치료 작업이 바로 정신분석 심리치료이다. 물론 이러한 과정을 복원 과정을 거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이제 정리를 해 보자. 조현형 환자들이 모두가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으면 회복이 된다는 말은 아니다. 심리치료는 치료를 하는 사람과 치료를 받는 사람의 상호 신뢰관계에서 시작된다. 이것을 정신분석에서는 치료동맹, 작업 동맹이라고 부르고 일반 심리치료에서는 라포, 레포라고 부른다. 현재 조현병을 앓고 있거나 혹은 자녀들이 조현병을 앓고 있는 경우에 다음과 같은 것을 심사숙고해 보아야 한다.

첫 번째 단계로써 치료자의 정신분석 이론에 찬성하고 공감을 하는 것이 첫 번째 조건이다. 치료자의 홈 페이에서 정신분석 치료 사례들을 읽어보고 치료자의 치료의 과정과 분석적 이론이 치료를 받고자 하는 사람이 서로 의견 일치 즉 정신분석 치료 이론이 자신의 문제 해결에 확고한 도움이 된다고 인식이 될 때 치료 효과가 나타나게 된다.

두 번째 분석을 받고 있는 사람은 치료를 받아서 회복하고 싶다는 강한 의욕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정신분석 심리치료는 마술이 아니다. 치료의 과정에서 많은 고통이 따른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좌절에 참을 수 있는 능력이 길러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몇 개월 만에 회복될 것이다 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수 개월이 그리고 수년이 걸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대신에 치료에 실망해서 좌절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다른 치료 요법들을 찾아야 한다. 심리치료에서도 수 많은 치료요법들이 있다. 찾아라 그러면 구할 것이요!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는 만고에 변함이 없는 명언이다.

세 번째 가족들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조현병과 같은 심각한 정신장애는 치료 비용을 혼자의 힘으로 충당할 수가 없다. 부모님의 충분한 이해로 자녀들에게 아낌없는 투자가 동반되어야 한다.

네 번째 치료를 하는 사람은 환자의 분노의 방향을 부모님에게로 그리고 동료들에게로 외부 대상으로 돌릴 때 부모님을 적대적인 대상으로 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부모님과 관계를 단절하거나 부모님을 적으로 보기 보다 부모님을 도우미로 보도록 해야 한다. 감정은 말로써 표현을 하되, 부모님과 친밀관계를 유지되어져야 한다.

위의 4개의 조건이 치료를 하는 사람과 일치 될 때 정신장애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조현병이라고 해도 치료가 가능하고 회복이 가능하다고 감히 말씀 드리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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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참고

 아르에티(Arieti). 정신분열증의 해석(1974), 내면심리적 자아(1976), 심한 우울증과 온건한 우울증(1979), 창의성(1980), 정신분열증의 이해: 가족과 친구들을 위한 안내서(1984)

 컨버그(Kernberg). 보드라인 성격장애 치료(1999), 내면의 세계와 외부의 세계: 대상관계의 응용(1980), 전이 중심 정신분석 심리치료(1998), 보드라인 조건과 병적인 나르시즘(1975), 심한 성격장애들(1984), 대상관계 이론과 임상적 정신분석(1976)

미아레(Mearles): 놀이의 상징(2005), 친밀감과 고립(2000), 보드라인 성격장애의 해리 모델(2012),보드라인 성격장애의 대화모델(2012)

엘렌버그(Ellenberger, 1970): 무의식의 발견: 역동적 정신의학의 역사와 진화

오가덴(Ogden)의 마음의 모체(1986), 경험이 원시적인 끝지점(1986), 분석의 주체(1994), 몽상과 분석(1997), 꿈 전선에서 대화(2001), 정신분석의 예술(2005). 투사동일시와 심리치료 기법(1982).

베른헤임(Bernheim, 1979). 정신분열증: 증세들, 원인들, 치료들

스포트니츠(Spotnidz). 오디팔이전의 정신분석 치료: 정신분열증(조현병)과 심한 성격장애들(1976), 정신분열증(조현병) 환자의 현대적 정신분석

리즈(Lidz e tal., 1985). 정신분열증과 가족

스트린(Strean, 1990). 절단된 영혼: 한 정신분열증 여성 환자를 치료한 분석가의 영웅적 이야기

어네스트 존(Ernest Jones)의 프로이트의 삶과 업적 제 Ⅰ권(1953), 제 Ⅱ권(1955), 제 Ⅲ 권(1957)

알렉산더(Alexander, 1987). 심인성질환 의학(심리신체 의학)

세갈(Segal). 멜라니 크레인(1989). 꿈과 상상과 예술(1993), 치료적 정신분석(2004)

로젠필드(Rosenfeld, 1987). 치료적 제자리 걸음과 해석

스톤(Stone, 1983). 정신분열증: 분석 치료적 접근

몰러(Mahler, 1975). 인간유아의 심리적인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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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저서들은치료자가 우리나라 말로 번역되어져 소장하고 있으니 치료자의 정신분석 심리치료의 홈 페이지에 들어가서 전문서적 안내를 참고로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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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치료 사례는 반전이, 역전이의 실패로써 심리치료가 실패한 사례의 전형이다. 이것을 소개하는 이유는 정신분석 심리치료는 정해진 치료의 룰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 만약에 그 룰을 벗어나는 경우에는 반전이에 걸리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카우치에 누워서 정신분석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과 분석가

 

 

대상: 24세의 대학 휴학생 C

증세: 3년동안 정신 병원에 드나들고 있었음

연결: 인터넷의 정신분석 심리치료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정신분열증(조현병)의 치료에 대한 내용을 읽고 난 후에 치료자에게 전화로 치료를 받고 싶다고 연락이 왔음

치료 기간: 1주일에 4회로 1회에 2시간씩 1주일 동안 심리분석 치료를 받았음

치료 결과: 1주일 치료 후에 치료자에게 분노하여 치료를 중단하게 되었음. 치료 실패 사례임

 

치료의 과정

 치료 접촉: C양은 전화로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받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치료 비용과 치료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후에 C양은 자신은 돈이 없어서 6개월 계약을 3개월로 해 줄 수 없느냐고 했다. 심리치료에서는 최소 기간이 6개월이라고 이야기를 했으나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서 그렇다고 했다. 치료자는 심리치료에서 3개월 동안의 치료는 치료 효과가 눈에 보이지 않으니 적어도 5개월-6개월 정도 시간이 지나야 치료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치료 계약을 6개월로 한다고 설명을 했다. 그러나 C양이 자신은 계속해서 치료를 받고 싶은데 먼저 3개월로 계약을 하고 그 후에 다시 계속해서 치료를 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보챔 때문에 일단 치료를 시작해보자고 허락을 했다. C양은 약속 시간에 아버지와 함께 치료실에 나타났다. 아버지는 심리치료가 어떤 것인지 잘 몰라서 C양이 인터넷에 들어가서 치료자의 홈페이지를 발견하고 치료를 받고 싶다고 아버지에게 졸라서 찾아오게 되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C양이 정신분열증으로 3년동안 시달리면서 정신병원에 계속해서 드나들고 있다고 소개를 했다. 치료자는 처음에 C양이 정신분열증인줄 몰랐기 때문에 보통 6개월의 치료 계약 기간을 3개월로 하기로 했으나 정신분열증이면 3개월로는 효과가 없으니 6개월로 해야 한다고 했으나 아버지는 딸인 C양과 함께 막무가내로 졸랐다. 3개월 동안 치료를 받으면서 치료 비용을 마련해서 계속해서 치료를 받으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소연을 했다. 치료자는 정신분열증이면 1주일에 1회로는 다음 1주일 동안 참기 어렵다고 했으나 아버지와 딸의 요청에 그렇게 하기로 하고 3개월 동안에 1주일에 1회로 치료 계약서를 작성했다.

치료 제 1회기(Session 1) : 치료자는 C양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어떤 것이든지 좋으니 하고 싶은 이야기부터 먼저 해보라고 했다. 순서는 관계없이 논리적인 것에 신경 쓰지 말고 이야기를 해보라고 했다. C양은 어떤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면서 지금은 재활 치료 센터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재활 치료가 어떤 것인지 설명을 해보라고 했드니 약 34명의 환자들이 모여서 첫 시간에는 서로 아무나 만나서 서로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고 그 다음 시간에는 강의실에 모여서 치료를 하시는 선생님께서 대인관계 기술에 대해서 강의를 한다고 했다. 언제부터 그곳에 다니게 되었느냐고 했더니 약 3개월 정도 되었고 하루에 6시간 정도로 재활 치료를 받고 있으며 아침 10시에 가서 오후 4시까지 모여서 같이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C양에게 어떤 문제가 제일 힘이드느냐는 치료자의 물음에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있으면 무슨 이야기를 해야할지 모르겠고 다른 사람들에게 감정을 말로 잘 표현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어린시절의 성장 과정: C양은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기억이 나는 것은 엄마가 유흥업소에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보통 엄마는 새벽 1-2시 경에 집에 들어왔으며 아버지는 집에 늘 들어오지 않았고 아버지가 바람(외도)을 피운적이 있다고 했다. 엄마도 바람을 피운적이 있고 지금도 부모님은 서로 말을 잘 하지 않고 지내며 사이가 좋지 않다고 했다. 어린 시절에 2살 아래인 남동생을 C양이 늘 보살펴주었으며 중학교 3학년 때까지 남동생과 C양이 늘 같이 붙여다녔고 집에 같이 있었던 기억 박에 없다고 했다. 남동생에게 언제나 모든 것을 다 챙겨주고 돌보아주었으나 남동생에게 화풀이를 하고 언제나 남동생을 자기 마음대로 했다고 눈물을 흘렸다. C양 자신이 남동생에게 권위적이고 위압적이고 처벌적이었고 남동생이 고등학교 학생이 되면서 남동생의 신체가 사춘기를 통과하면서 커지게 되고 힘이 C양보다도 강하게 되면서 남동생이 이래라 저래라하는 C양의 말을 듣지 않게 되면서 남동생과 힘겨루기가 시작되었고 남동생을 자신의 마음대로 다루지 못하면 어떤 방법으로라도 남동생에게 화풀이를 해왔다고 했다. 남동생이 한번은 자살하고 싶다고 부모님에게 한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학교에서는 동료들과 관계가 늘 좋지 않아서 따돌림 비슷하게 괴로움을 당하고 있었고 집에서는 남동생과 신경전 때문에 늘 고통 속에 살아왔다고 했다. 남동생은 1년 전에 군 입대를 하게 되었고 부모님의 권유로 둘이 서로 말을 하지 않고 지내다가 남동생이 군 입대 직전에 화해를 하라는 부모님의 명령으로 진심이 아닌 피상적으로 작은 소리로 화해를 한 것이 후회스럽다고 눈물을 흘렸다. 어린 시절에 늘 집안에는 남동생과 자신 두 사람만이 웅크리고 부모님이 집에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던 기억이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한번은 할아버지가 집에 와서 C양과 남동생이 둘이서 있는 것을 보고 통곡하면서 울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는 과거에 공무원으로 있었으나 지금은 다른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어린 시절에 엄마와 함께 아버지가 근무하는 관청의 정문 앞에서 아버지를 기다리던 기억이 있고 한번은 아버지가 가구와 집기 등의 살림을 집안으로 가지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아버지가 다른 여자와 살림을 하다가 그 살림들을 집으로 가지고 오는 것이구나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C양은 대학 1학년 때 학교를 휴학하고 집에서 살림을 도우다가 알르바이트를 하게 되었고 그 때 편의점에서 1달 동안 일을 할 때 편의점 주인에게 일을 야무지게 잘 하지 못한다고 비난을 많이 받게 된 것에 문제가 표면화되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 일이 계기가 되어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는 시발점이 되었다고 회상을 했다. 그후에 어머니와 함께 광고 전단지를 돌리는 일을 3개월 정도 하게 되었고 그 때 어머니와 의사 소통이 잘 되었고 가장 행복했던 기간이었다고 회상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머니와도 의사 소통이 잘 안되어 엄마와 대화를 기피하고 있다고 했다.

치료 제 2회기 (Session 2): 1주일에 1회씩 2시간 치료 시간을 약속하고 갔으나 그 다음날에 1주일에 2회로 늘리고 싶다고 다음날에 오면 되지 않겠느냐고 전화 연락이왔다. 치료자는 시간을 정해서 좋다고 허락을 했다. 치료 시간에 올 때마다 아버지가 함께 동행을 한다는 것을 알 게 되었다. 왜 혼자 올 수 없느냐고 물었더니 C양은 불안해서 혼자 다닐 수가 없고 외출을 할 때는 반드시 어머니 혹은 아버지가 동행을 해야 한다고 했다. 불안으로 인한 공황 장애가 분명했다. C양은 재활 치료가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치료자에게 오겠다는 약속을 했기 때문에 약속 시간보다 약 30분 빨리 오게되었고 치료자는 C양을 치료실로 안내해서 인터넷으로 컴류터 바이러스 치료하고 있으니 5분 정도 앉아서 기다리라고 했으나 치료실에 들어오자마자 "선생님 불안해서 미치겠습니다. 저에게 안락사할 수 있는 약을 주세요."라고 치료자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면서 끝없이 위의 말을 반복했다. 치료자는 컴퓨터를 끄고 C양을 치료실에 데리고 와서 무슨일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C양은 오늘 재활 치료 시간에 34명의 환자들 가운데 아무나 서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에 40대 중반의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아저씨가 "나하고 결혼할래" "나하고 사귀어 볼래?"라는 말에 불쾌감을 느끼고 그 감정 때문에 불안 속에 빠지게 되었다고 했다. 불안하면 견디기가 힘들고 심하게 불안이 오면 손 바닥으로 팔을 내리치고 머리를 벽에다 대고 방방 박거나 딩군다고 했다. 지금 이대로는 집에 가면 또 불안에 휩싸이게 될 것이기 때문에 선생님이 저에게 어떤 조치를 취해달라고 했다. 불안 때문에 집에 갈 수 없다고 울면서 하소연을 했다. 치료자는 C양의 불안이 극도에 달해서 긴장감이 한계선에 도발해서 참을 수 없어하고 있음을 알 게 되었다. 최근에 극도의 불안 때문에 있었던 이야기를 해보라고 했다.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면 불안이 감소된다고 C양을 위로하면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라고 격려를 했다. C양은 지난 토요일에 할아버지 집에 가게 되었고 할아버지가 C양은 데리고 인근에 뒷동산으로 올라가서 C양에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하면서 잔소리를 했고 불쾌했다고 했다. 할아버지 집에 돌아와서 하루 밤을 자게 되었는데 밤에 한숨도 자지 못하고 불안 때문에 움직이지 않고 꼼짝하지 않고 그대로 날밤을 세우게 되었다고 했다. 그 후에 집에 와서 손목을 때리고 머리를 벽에다 찧고 몸을 딩굴고 했다고 했다. 그렇게 하면 불안이 조금 감소하는 것 같아서 그렇게 하고 있다고 했다. C양의 손목에는 멍든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전에 비슷한 이벤트가 있으면 이야기해 보라고 했다. C양은 2주일 전에 사촌 언니가 C양에게 시내에 나가서 맛있는 것도 사주고 외출을 하자고 해서 따라 나갔다고 불안이 오는 것 같아서 다시 집으로 되돌아오게 되었고 사촌 언니를 보내고 극도의 불안 상태에서 딩굴고 머리를 찧고 손목을 때리고 했다고 했다. 심하면 구토가 나오고 위가 쓰리고 소변이 잦아진다고 했다. 또 재활 치료 1달 쯤에 같이 치료를 받고 있던 어떤 언니와 대화 시간에 이야기를 하다가 그 언니가 C양의 등을 때리고 도망을 가는 바람에 분노해서 말을 하지 못하고 끙끙거리다가 불안이 엄습해서 다른 환자들은 모두 강당에서 대인관계 기술에 대한 강의를 듣고 있는데 C양은 강의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복도를 걸어다니다가 견딜 수가 없어서 양호실에 가서 누워있다가 정신병원의 응급실로 실려갔다고 했다. 정신병원에서 1주일간 입원한 후에 퇴원한 후에 지금까지 2개월 동안 재활 치료 센터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C양은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되었으나 집에 돌아가면 그 불안이 두려워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면서 치료자에게 어떤 마술적인 방법을 요구했다. 치료자는 C양이 대인관계가 안되기 때문에 친척이나 동료들을 만나면 긴장하게 되고 그 긴장이 참을 수 있는 한계선을 넘어가면 극도의 불안에 휩싸여 몸을 딩굴거나 손목을 때리거나 머리를 방방 찧는 행동을 한다는 것을 알 게 되었다. 또 극도로 불안에 휩싸이게 되면 C양은 부모님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안락사 시켜주세요. 안락사하는 약물을 주세요."라며 부모님에게 보챈다는 것을 알 게 되었다. C양이 위기 시에 되풀이하는 행동 패턴임을 알 게 되었다. C양은 몇 년 전에는 한 달에 한번 정도 이런 패턴이 진행되었으나 최근에는 사소한 일에도 이런 패턴이 연속되어 1주일에 한번 두 번 정도로 늘어났다고 어쩔줄 몰라 했다. 치료자는 C양에게 불안에 대한 응급 처치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서 긴장 이완 훈련을 30분 동안 하기로 하고 눈을 감고 긴장을 풀고 팔과 다리를 펴고 호흡을 천천히 들어쉬면서 마음 속에 잔잔한 호수만 생각하게 하였다. 30분 후에 C양은 긴장이 풀리고 안정을 되찾게 되었다. 이 훈련을 하면서 치료자는 C양에게 "손님은 긴장이 되면 거꾸로 하고 있습니다. 긴장이 되면 손목을 때리고 머리를 벽에다 방방 거리며 찧고 몸을 딩구는 행동은 긴장을 증폭시키는 행동입니다. 긴장이 되면 온 몸이 극도로 근육에 힘이 들어가서 참을 수 없게 됩니다. 고로 호흡을 천천히 하고 몸에 긴장을 빼고 호수를 생각하면서 조용히 앉아서 긴장 이완 훈련을 해 보세요. 오늘부터 매일 같이 치료가 끝나는 시간 30분 전에 이 긴장 이완 훈련을 할 것입니다. 극도의 긴장 때문에 불안에 휩싸이게 되는 것이므로 생리적으로 긴장이 되면 소화가 안되고 구토가 나오고 소변이 잦아집니다. 긴장을 이완하게되면 극도의 불안은 찾아오지 못하게 됩니다."라고 호흡에 맞추어서 조용히 일러주었다. 치료자는 C양에게 그 다음날에 시간을 내어 줄 터이니 치료를 받으러 오라고 했다. 극도의 긴장감에서 벗어나는 응급 초치가 시급함 때문이었다.

치료 제 3회기 (Session 3): 다음 날 치료 시간에 C양은 어머니와 함께 왔다고 했다. 어머니를 치료실 밖에서 기다리게 하고 C양과 분석 치료가 시작되었다. 치료자는 C양이 어떻게 정신병원에 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궁금하다고 했다. C양은 처음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된 것은 3년 전에 인터넷 채팅으로 어느 오빠를 알 게 되면서 그 오빠와 만나서 여관에 가서 성관계를 하게 되었고 그 오빠에게 자신의 문제점을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 완전히 자신의 성격과는 다른 사람의 흉내를 냈다고 했다. 어떻게 흉내를 냈느냐고 물었을 때 성격이 활발한 것처럼 보이려고 하고 자신의 대인관계 문제가 드러나지 않도록 애교를 떨고 그 오빠의 비위를 맞추려고 했다고 했다. 그 오빠가 군에 입대해서 서로 메일을 주고 받으며 지내다가 휴가를 왔을 때 만나서 3회에 걸쳐서 성관계를 했고 그 때 오빠가 옷을 선물로 사주겠다고 했을 때 극구 사양했다고 했다. 맛있는 음식을 사 주겠다고 했을 때 극구 사양했다고 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그 오빠가 돈을 쓰면 돈이 부족할 것이기 때문에 오빠를 배려해서 돈을 쓰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말로써 상세하게 그것을 표현하지 못했지만 오빠를 위해서 그런 행동을 했으나 오빠는 그 후에는 연락이 없었고 그 오빠와의 관계는 끝이났다고 했다. C양은 그 이후에 자신의 자아를 바꾸려고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행동했다고 했다. 방의 벽에 낙서를 하기도 하고 귀신이 C양을 쳐다보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고 했다. 실제로 귀신이 눈에 보였느냐는 치료자의 질문에 눈에 보이지는 않았으나 귀신이 천장에서 자신을 보고 있다는 상상이 들었다고 했다. 환청이 들리지는 않았으나 귀신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불안해서 미칠지경이었다고 했다. 칼로 벼개를 찌르고 방의 벽에 낙서를 하는 것을 보고 부모님이 인근 정신병원에 입원을 시켰고 정신분열증으로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그 후에 몇 번의 정신병원을 드나들 게 되었으나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부모님이 깨닫게 되었고 XX 대학병원 신경 정신과에 갔더니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C양은 환청이나 환각을 없고 지금은 약물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으니 대인관계 훈련을 받드시 받아서 사람들과의 관계 개선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권유를 받았고 XX 동에 있는 재활 센터에 나가게 되었다고 했다. C양은 재활 치료에 거부감을 많이 느끼고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게 되었으나 부모님은 정신과 의사 선생님의 말을 철썩 같이 믿고 있어서 어떤 일이있드라도 재활 센터에 나가야 한다고 매일 같이 그곳까지 데려다준다고 했다. 치료자는 지금까지 C양의 정보를 분석해본 결과 재활 치료가 필수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대인관계를 하는 기술을 직접 가르침을 받지 않고 그냥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라는 것은 마치 수영을 하지 못하는 사람을 물에 풍덩 집어던져 넣는 것과 같은 효과를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부모님에게 설명을 했다. 먼저 수영을 하는 방법을 알 게 한 다음에 물에 들어가도록 하는 것이 순서임을 강조하면서 대인관계가 되지 않는 사람을 다른 사람과 강제로 관계를 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C양은 더욱 긴장감을 유발하고 불안을 쌓는 것임을 알고 당분간 치료자로부터 어떻게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는가를 어느정도 익숙함을 배울 때까지 재활 치료를 당분간 중지해줄 것을 같이 온 어머니에게 부탁을 하고 아버지에게 따로 전화를 걸어서 당분간 친척을 만나는 것도 친척 집을 방문하는 것도 재활 센터의 치료 등도 중지해줄 것을 부탁했다. 어느 정도 자기 표현을 할 수 있게 되어 대화 기술을 습득하게 되면 그 때 다시 대인관계를 시도하는 것이 C양에게 도움이 되고 우선 응급 조치로써 C양의 극도의 긴장 상태에 응급 조치를 하는 것이 우선임을 이야기했다. C양의 이런 패턴은 몇 년전에 명절 때 친척 집에서 3일 정도 지내게 되었는데 그 때 나이 어린 동생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실제로는 따돌림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혼자서 따돌림을 당한 것처럼 괴로웠던 것에서 시작되었고 그 때 두번째로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고 최근에는 몇 주일 전에 사촌 언니와 나들이가 가다가 껄끄러워서 되돌아 와서 극도의 긴장에서 오는 불안증세로 자해적 자기 패배적 행동을 되풀이 했고 그 다음에 재활 센터에서 치료를 시작한지 1달 만에 어떤 언니로부터 원하지 않는 불쾌한 공격을 받고 정신병원에 1주일 입원한 것 그리고 지난 주일에 할아버지 집에서 1박하면서 잠을 자지 못해서 집에와서 극도의 긴장에 따른 신체적 불안으로 자해적이고 자기 패배적 행동을 한 등의 분석에서 이러한 조치를 취하게 된 것이었다. 치료자는 C양에게 주말인 토요일 오후에 치료 시간을 내어줄터이니 우선 극도의 긴장에서 오는 불안을 완화 시키는 응급 조치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승낙을 받았다.

치료 제 4회기 (Session 4): 치료가 시작되면서 치료자는 C양에게 목요일, 금요일에 급성 신체적 긴장에서 오는 극도의 불안 때문에 자해적 행동 패턴이 있었느냐는 치료자의 질문에 그런 행동 패턴은 없었다고 했다. 어떻게 그런 패턴을 피할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C양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지난 3회기 동안에는 공감이 잘 형성되어 진행이 잘 되었으나 오늘 치료 4회기에는 분위기가 분노와 적대감정으로 가득차 있는 것을 치료자가 감지하고 치료자에 대한 분노, 불쾌감이 있는 것 같은데 불평이나 불만이있으면 말로써 표현해보라고 했다. C양은 태도가 돌변해있었다. 이야기를 하기 싫다고 했다. 치료자는 목요일 저녁에 C양이 장문으로 메일로써 자신의 문제점등을 상세하게 보낸 것에 대답을 하지 않아 치료자가 미워졌고 금요일 새벽에 전화로써 자신이 견딜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럽다고 호소했을 때 치료자는 그 대답으로 아침에는 부모님과 산책을 가거나 저녁 때 부모님와 운동을 가는 방법으로 나들이를 하고 낮 시간에는 혼자서밖에 나갈 수 없으면 긴장을 풀고 마음을 안정 시키는 긴장 이완 훈련을 해보라고 했다. 치료자에게 언제라고 전화를 해도 되느냐는 질문에는 치료자는 대학에 강의나 다른 사람을 치료하고 있을 동안에는 치료자에게 전화를 하지 말도록 했다. 이러한 것 때문에 C양이 자신의 원하는 것을 치료자가 허용해주지 않는 것에서 오는 불만 때문에 화가 났느냐고 했드니 시인을 했다. 메일을 보내면서 치료자가 돈 때문에 치료를 하는 것 같아서 불쾌하고 돈과 관계없이 진실되게 치료를 하지 않는 것 같다고 불평을 이야기한 것이 기억이 났다. 치료자는 지난 3일 동안은 치료가 잘 진행이 되었으나 치료 4회기에는 C양의 분노, 미움이 폭발해서 치료자를 처벌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드니 그렇다고 했다. C양은 말문을 닫아 버렸다. 더 이상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치료자는 C양이 요구하는 것들을 다 들어주면 치료자 되지 않는다고 조용해 이야기를 했다. 환자는 치료 비용을 지불하고 치료자는 정해진 그 시간에 환자에게 정성을 다해서 그 시간 동안에 주의 과심을 가지고 최선을 대해서 봉사하는 것이 치료의 과정 임을 이야기했다. 치료자가 대학에 강의를 하거나 다른 환자들과 치료를 하고 있을 동안에는 C양이 원하는대로 모든 요구를 들어줄 수가 없음을 이야기했다. 치료가 끝날 시간이 되어서 치료자는 C양에게 "오늘처럼 이렇게 이야기를 하기 싫어서 침묵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치료에서 종종 발생합니다. 이러한 일은 다른 환자의 경우에는 1달에 1회 정도로 나타나서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C양의 경우에는 1주일에 1회씩 나타나면 치료 기간이 다른 사람들보다 2-3배로 기간이 늘어나기 때문에 치료 비용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만약 부모님이 그 치료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고 느껴지면 치료 초반기에 치료를 그만두는 것이 치료 비용면에서나 시간적인 면에서 효과적일 것입니다. 오늘은 시간이 다 되었으니 집에가서 다시 꼼꼼히 생각을 해보고 결정을 하세요. 만약 치료를 계속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월요일에 전화로 시간을 예약해 주세요"라고 이야기를 끝내고 그날 치료를 마감했다.

치료 실패의 원인: C양은 월요일에 전화로 치료 예약을 하지 않았다. 대신에 C양의 아버지께서 전화가 왔다. C양이 더 이상 치료를 받고 싶지 않다는 말을 했다고 했다. 치료자는 상세하게 왜 C양이 치료자에게 분노하는가의 이유를 아버지에게 설명했다. C양이 원하는대로 치료자가 들어주지 않는다는 분노 때문임을 지적했다. C양이 원할 때마다 전화를 받아 주지 않는다는 것과 C양에게 치료자는 치료 보다는 돈에 관심이 많게 느껴진다는 것 그리고 치료 시간에 맞추어서 와야하고 치료 시간이 끝나면 떠나야 하는 것이 기계처럼 느껴져서 너무 신경이 쓰인다는 것 등이었다. 후자의 경우에는  C양은 지금까지 3년 동안 집안에서 소일해서 시간 개념이 없다는 것과도 관계 있었다. C양은 정해진 치료 시간에 맞추어 오는 것이 돈과 관계되는 것같다고 치료 3회기 때 불평을 한 적이있었다. 치료 실패의 근본 원인은 치료의 룰을 위배한 것이라는 점이었다. 치료 초반기에 6개월간 치료 계약을 한다는 룰을 위배한 것 그리고 치료 비용이 3개월 분밖에 없어서 치료 기간을 3개월로 허락해준 것이 문제의 시발점임을 알 수 있었다. 치료 4회기 때 C양이 이야기를 하기를 거부했을 때 치료자의 마음 속에는 분노, 적대 감정이 느껴졌다. C양의 분노가 치료자에게 전달되어 투사 동일시로 느껴짐을 알 수 있었다. 전문 용어로 반전이를 느낄 수 있었다. 치료자는 C양을 달래고 어루만져서 이야기를 하게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 때 치료자는 만약 C양이 초반기부터 반전이를 느끼게 하면 치료 기간에 엄청나게 길어질 수 있음을 생각했다. 이미 1주일 만에 4회 치료 회기로써 총 24시간의 치료 시간 중에 이미 8시간을 사용했고 3주일 즉 한달이 안 되서 24시간이 다 사용되어 사라진다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3 주일 동안에 치료 효과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치료자는 알고 있었다. 만약 치료 효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부모님은 치료 비용은 지불했는데 치료 효과가 없다는 불평을 하게될 것이고 치료자는 원망 불평을 당하게 되어있다. 그렇다고 계속해서 치료를 받아보라고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C양은 치료를 계속하면 확실하게 치료가 될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치료자는 환자와 치료자가 서로 마음이 맞아야 즉 공감이 형성되어야 치료가 잘 진행될 수 있지만 지금처럼 분노와 미움이 겹치면 치료 기간은 몇배로 늘어난다는 것을 이야기해주었다. C양의 부모님이 치료 비용을 걱정하지 않도록 지원해준다면 반전이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른 환자들의 경우에는 반전이가 등장해도 잘 극복해나갈 수 있었지만 C양의 경우에는 치료 비용 문제가 걸려 있었다. 치료 비용을 6개월을 지불한 사람들은 1주일에 3회 정도로 6시간이나 4회로 8시간을 사용해도 적어도 2개월내지 3개월은 견딜 수 있으니 그 때는 어느 정도의 치료 효과를 느낄 수 있게 된다. C양의 경우에는 48시간 정도 즉 6개월의 치료 비용을 지불했다면 극도의 긴장으로 인한 불안에 대한 응급 조치를 할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으나 한달도 안되는 3주일 동안은 별로 효과가 나타날 것 같지 않았고 그 와중에 반전이 즉 이야기를 하기 싫어하고 말 문을 닫아 버리면 3주일의 효과도 절반으로 감소한다는 것을 치료자는 알고 있었다. C양 역시 부모님의 치료 비용 때문에 처음부터 6개월을 할 돈이 없어서 3개월만 하자고 했다. 치료자는 그 때 정신분열증이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허락을 한 것이었고 C양도 치료를 6개월까지 계속하면 부모님이 그 치료 비용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 고 있었다. 결국 치료자의 잘못된 치료 룰의 파괴와 C양이 치료자를 마음대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 다루겠다는 무의식적인 태도가 치료를 파괴 시킨 것임을 알 수 있었다. C은 자신이 부모님을 성질부리기로써 마음대로 컨트롤하고 있는 것처럼 치료자도 자신의 마음대로 컨트롤하려고 하는 부모님과의 관계 패턴이 재등장하고 있음을 모르고 있었으나 치료자는 이것을 해석하지 않았다. 이유는 치료가 이미 중단되었버렸기 때문이었다.

C양의 치료 실패 케이스는 심리치료에는 반드시 치료의 룰(rules)이 있고 그 치료의 룰(rules)을 따르지 않으면 치료는 파괴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 좋은 교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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