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원

  

 정신증(편집증, 조울증, 조현병)을 가진 사람들과 정신병원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치료자에게 6개월 이상 분석 치료를 받은 14명의 정신증을 가진 사람들(3명이 조울증, 11명이 정신분열증(조현병) 가운데서 단 1명을 제외하고 모두가 정신병원에 입원을 한 사람들이었다. 병원에 입원을 하지 않는 1명의 조현병을 가진 사람은 진단 1개월 만에 치료자에게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게 됨으로써 병원 입원을 피할 수 있었다. 그들은 최하 1개월에서 최고 6개월로 평균 3개월(과거에는 대부분의 조현병 환자의 입원)의 병원 입원의 경험에다 최고 10년 동안 조현병을 앓고 있었던 사람이 2명으로 30대의 청년과 50대의 부인은 그 기간 동안에 3개월씩 3번의 병원 입원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역동적인 심리치료를 하는 정신건강 전문가들은(약물 치료가 아닌 1시간의 상담치료가 핵심) 주로 사무실 치료로써 통원치료를 하기 때문에 약물과 정신병원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역동적 정신의학의 전문가들은 정신병원 안에서 상주하면서 치료를 하는 경우가 적다(최근에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 고로 대부분이 치료의 과정에서 상태가 심각한 경우에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면 치료는 중단된다. 일정기간 병원에 입원한 후에 약물로 안정을 얻게 되면 퇴원해서 다시 통원 치료를 재개하는 경우에는 그들로부터 병원에 입원해서 경험한 이야기들을 통해서 정신병원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치료자는 2년간의 인턴 기간을 제외하면 병원 안에서 상주하면서 치료를 한 경험이 없다).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연구하고 치료를 하는 사람으로써 약물과 정신병원에 직접적 관계를 하고 있지 않다고 해서 약물과 정신병원을 무시할 수는 없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늘 정신과 악물과 병원 입원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실태를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은 치료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정신병원에 입원은 위기를 넘기는데 도움을 주지만 딱지(병명)가 붙음으로써 그리고 병원 안에서 입원 기간 동안에 상처를 받는 경우가(입원한 동료들, 병원의 스텝들로부터) 많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금까지 역동적 정신의학의 전문가로써 신경을 쓰지 않았던 정신병원에 대한 장단점과 정신병원이 어떻게 시작되고 발달해 왔는가? 그리고 현대적 정신병원과 현대적 정신과 치료의 역사적인 진화와 발달 과정을 많은 전문가들의 연구와 치료를 통한 그들의 저서들을 참고로 그리고 치료자 한데서 병원에 입원한 사람들의 경험을 통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정신병원에 대한 이야기를 논의해 보고자 한다.

인간의 역사는 정신병의 역사와 맞물려 있다. 한 가족 내에서 정신적인 문제를 가진 사람의 행동들이 과격해지면 갈등으로 연결되고 그리고 이웃과 주변 사람들에게 해로움을 줄 수 있는 수준으로 위험이 높아지게 되면서 가족구성원들의 고통이 증폭되어지게 된다. 그 가족구성원들이 문제를 가진 사람의 행동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면 결국은 외부의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그 결과 문제를 가진 사람은 결국 가족으로부터 분리시키고 격리와 감금으로 연결된다. 여기에서 정신병원이 등장하게 된다. 현대적 정신병원이 등장한 것은 17세기로 정신병원의 역사는 길지 않다(Elizur & Minuchin, 1992: 주㈜: 참고).

정신병원과 관계 없이 가족 혹은 그 개인에게 짐이 되는 경우에는 비상수단으로 그 고통을 제거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인간과 동물은 고통을 피하고 즐거움을 찾는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상식이 아닌가?(프로이트의 즐거움 이론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에피쿠로스의 쾌락 이론에서 나온 것이다).

인간의 역사를 통해서 원하지 않는 출산, 양육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태어난 아기들은 내다버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정신분석학의 단골인 프로이트의 오디프스 콤플렉스의 주인공인 오디프스(Oedipus)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원하지 않는 자식을 내다버린 장애인의 이야기이다. 그리스의 테베라는 나라에 예언자(신탁을 받는)가 왕 한데서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가 커서 아버지를 죽일 것이다 라는 예언에 놀란 왕비가 태어난 아들을 하인에서 시켜서 내다 버리고 죽이라고 명령을 했다. 그 하인은 아이를 죽일 수가 없어서 칼로 아기의 발을 찔러서 산속에다 버리고 왔다. 마침 그 산속을 지나가던 목동이 칼에 찔린 아기를 발견하고 그 아기를 데리고 그 지역의 자식이 없는 부유한 사람의 집 문 앞에다 놓아두었다, 마침 자식이 없는 그 집 주인이 그를 친 자식으로 잘 양육을 해서 그가 청년이 되었다. 그 청년이 자신이 성인이 되면 아버지를 죽일 것이다 라는 예언자의 말에 놀래서 집을 나와서 모험의 길을 떠나게 된다. 그가 여행의 도중에서 스핑크스의 수수깨끼를 풀면 사망한 테베의 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오디프스가 스핑크스의 수수깨끼에 도전을 하게 된다. 만약에 풀지 못하면 죽음을 당한다는 것을 알고 용감하게 도전을 하게 되었다.

스핑크스의 수수깨끼는 바로 처음에는 4개의 발로 걷다가 그리고 2개의 발로 마지막으로 3개의 발로 걷는 것이 무엇인가?” 라는 문제였고 오디프스가 그것을 인간이라고 대답을 해서 스핑크스를 이기고 테베에 왕이 될 수 있었다. 인간은 출생 직후에 4개의 손과 발로 기어 다니고 어른이 되면 두 발로 걸어 다니고 그리고 노년이 되면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것을 오디프스가 알고 있었다. 오디프스 라는 이름은 그리스어로 발이 퉁퉁 부은 사람의 뜻이다(Shengold, 1991, 2000: 주㈜: 참고).

유사한 이야기는 모세의 영화 속에서도 볼 수 있다. 모세는 유태인의 아들로 태어나게 된다. 그 당시에 유태인들을 노예로 다스리고 있던 이집트의 왕(람세스)은 유태인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태어나는 유태인들을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려서 유태인 부모가 아이가 태어나자 할 수 없이 그 아기를 갈대로 만든 포대기 둥지를 만들어서 나일강의 물 위에 띄어 보낸다. 마침 나일강에서 이집트의 공주가 목욕을 하다가 아기가 둥지에 떠 내려오는 것을 자식으로 거두어서 왕궁에서 자라나게 되고 모세(물에서 태어난 아기)라는 이름으로 성장해서 이집트의 왕의 자리를 두고 경쟁하게 된다. 그의 출생이의 비밀이 알려지게 되고 그는 자신의 동족인 유태인들을 이끌고 이집트에서 쫓겨나게 되는 것이 성서의 출애굽기에 나오는 모세의 이야기가 아닌가? (엑소더스(Exodus), 모세, 십계 등의 영화의 이야기들)(2020. 위키피아).

인간의 역사에서 원하지 않는 자식들은 내다버리는 이야기들이 역사적으로 기록된 된 시점이 17세기 후반에서 프랑스에서 공식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그 당시에 프랑스에서 원하지 않는 자식들은 주로 성당, 수녀원 혹은 자식이 없는 사람들의 집 문 앞에 내다버렸다. 대부분의 그들이 죽었지만 그 중에서도 몇몇은 살아 남았다. 이들을 우리나라 말로 업둥이(집 문 앞에 버려지는 아이- 다음 백과)라고 부른다. 이러한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되면서 17세기 프랑스의 가톨릭의 대주교였던 성 빈센트 드폴(St. Vincent DePul)이 구제책을 강구하라는 지시를 내리게 되었다(드폴 주교는 평생 동안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헌신과 공헌으로 사망 후에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성자(Saint)의 칭호를 받았다). 이렇게 해서 등장한 아이디어가 문 앞에 버려진 아기의 사망을 줄이기 위해서 회전판을 만들어서 성당, 수도원 문 앞에 놓아두게 되었다. 회전판 위에 아기를 싼 포대기를 올려 놓으면 회전판이 돌면서 문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부모는 명예를 지킬 수 있고 비밀이 보장되었다. 이렇게 해서 구제된 어린이들이 1740년에 프랑스 전국에서 3, 150명이었고 44년 후에 1784년에는 40,000이나 되었고 그리고 50년 후인 1833년에는 131,000이나 되었다(Elizur & Minuchin, 1992).

원하지 않는 어린이, 골치 아픈 자식들을 포기하거나 자식들을 학대하는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는 20세기에 뉴욕에서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1980년대 뉴욕의 법률 구조 협회의 소속으로 뉴욕의 위탁양육 감독을 맡고 있는 인간자원 행정국에서 버려지는 어린이들을 입양할 영구 가족을 찾지 못해서 3개월 동안에 1,000명의 어린이들이 5-6회로 양육 기관을 이동하고 있다는 뉴욕 타임즈의 보도를 펜실바니아 의과대학의 가족 치료 학자인 미뉴친(Minuchin)은 그의 저서인 정신병원이 만들어내는 미침이라는 저서에서 인용을 했다. 주로 미혼모 출산, 이혼으로 인한 가족의 붕괴로 버려지는 자녀들, 부모로부터 신체적, 감정적인 학대를 받는 어린이들, 약물 중독의 엄마로부터 학대 받는 어린이의 구조로써 국가에서 자녀들을 인수하는 비율이 점점 늘어나면서 그들을 안전하게 수용하고 양육할 수 있는 문제가 사회적인 문제로 그리고 국가적인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Elizur & Minuchin, 1992).

이러한 이야기들은 문서화 되고 언론들을 통해서 보도된 자료들이라는 점에서 눈에 띄지만 우리들의 주변에서 원하지 않는 아기의 입양들, 미혼모가 신생아를 걸거리에 버려 사망(2019, 4, 3. 다음 뉴스)등이 자주 보고가 되고 있는 현실이 아닌가? 우리나라 안에서도 준비되지 않은 어린 부부가 아이를 학대방임하고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범죄는 끊이지 않고 있다최근에 한 일간신문에 보도된 자료에 의하면 금태섭 더불어 민주당 의원실이 경찰청을 통해서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7년까지 최근10년간 발생한 영아 살해, 유기 사건은 1,188건이다(2019, 6, 10. 서울신문).

치료자에게 6개월 동안 치료를 받았던 30대의 심한 우울증을 가진 한 여성은 그녀가 8년 전에 20대 초반에 남자 친구와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를 남자 친구가 도망가버리고 책임을 지지 않는 바람에 양육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외국으로 입양을 보낸 미밀 이야기를 하면서 죄의식에서 고통을 받고 있었다. 40대의 한 남자는 그가 치료사에게 불안증과 우울증으로 1년 동안 치료를 받으면서 그가 수년 전에 부인의 조기 출산으로 태어난 아기를 산속에 내다버리고 오면서 그 아기가 우는 울음 소리가 지금도 귀가에 들린다고 호소를 했다. 아기를 버리는 부모들 역시 고통의 죄의식 속에서 평생동안 괴로움에서 시달려야 한다.

이제 정신과적인 사람들의 이야기로 되돌아가서 가족이 컨트롤할 수 없는 가족 구성원들을 책임을 맡게 된 정신병원의 이야기로 되돌아가 보자.

현대적인 종합병원이 등장하게 된 것은 1656년에 프랑스의 루이 14세의 명령으로 프랑스가 공식적으로 병원을 설립하게 된 것에서 시작된다. 이렇게 해서 설립된 병원이 바로 프랑스에서 가장 큰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큰 종합병원으로 역사에서 등장하게 되는 살페트리에(Salpetriere) 병원이다. 원래 살페트리에라는 말은 폭약, 폭탄을 만들던 공장이 있는 지역 이름이었다. 프랑스 말로 살페트리에는 화약, 폭약(gunpowder)의 뜻이다(2020, 2, 1: 위키피아). 살페트리에 병원은 1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병원으로 주로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여성들, 매춘부, 간질병 환자들 그리고 히스테리아 환자(귀신들린 환자들), 부랑아, 죄수들의 수용소였다. 그 당시에 치료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감금하게 된 감옥과 유사했다(Ellenberger, 1970: 주㈜: 참고).

이 병원은 45개의 건물들과 거리, 광장, 정원들과 그리고 고틱풍의 아름다운 성당을 가진 한 개의 소도시를 이루고 있었다. 이곳은 프랑스 혁명의 진원지의 하나로 그리고 현대적 정신병원 그리고 현대적 정신치료가 시작된 역사적인 곳이다. 프랑스 혁명 3년 후1792 9월의 폭동으로 당시에 수용 중이던 1만 명의 환자들과 3백병의 죄수들이 폭동으로 뛰쳐나가고 그 중에서 25명의 미친 여성환자들이 학살을 당한 대참사가 일어난 곳으로 유명하다(2020, 2. 1. 위키피아).

이 병원이 설립 된지 200년 후에 가르코트(Charcot)(1825-1893)가 히스테리아 환자(빙의 환자)를 최면으로 치료를 한 세계적인 장소로 둔갑하게 된다. 정신분석을 탄생시킨 프로이트가 이곳에서 6개월을 해외 유학으로 정신분석 이론의 출발점이 된 곳이고 해리장애(귀신들린 현상)의 원인을 규명해낸 피에르 장(Pierre Janet) 9년 동안 이 병원의 실험실에서 연구와 치료를 한 곳이고 미국의 심리학의 아버지인 윌리암 제임즈가(William James)가 방문한 곳이고, 조발성 치매 라는 신조어를 처음으로 만든 프랑스의 정신과 의사인 베레틱 모렐(Benetic Morel), 신경학자 뚤레(뚤레 장애-틱장애의 한 종류), 프랑스의 정신분석가인 라깡 등이 거쳐간 병원으로 유명하다(Ellenberger, 1970).

이 병원이 현대적인 정신병원으로 등장하게 되는 계기는 이 병원의 설립 100년 후인 18세기 말에 이 병원의 주치의로 등장하게 된 필립 파이넬(Philippe Pinel)(1745-1826)에 의해서 정신병 환자의 인본주의적인 치료 개혁운동이 시작된 곳이다. 그는 정신병 환자의 해방자로써 이름이 주어졌다. 그가 이 병원에 주치의로 부임하면서 그 병원에 감금되어있는 환자들의 치료로 도덕 치료를 창안했다. 이 개혁 운동으로써 현대적인 정신과 치료가 등장하게 된다(Karon, 1981:주㈜: 참고).

정신병은 고대와 중세에는 귀신들린 빙의 현상으로 보았다. 나쁜 영혼인 악령, 귀신들이 떠 돌아다니다가 건강한 사람의 몸을 빌려 들어와서 안주하게 되면서 정신혼란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았다. 고로 그들의 치료는 그 사람의 몸 안에서 안주하는 약령들을 쫓아내기 위해서 굿을 하는 엑소시즘(exorcism) 즉 퇴마의식이 유행을 했다.

여기에다 귀신이 안주하는 그 사람에게 고통을 가해서 그 귀신이 그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 그 안주하고 있는 사람의 몸에서 빠져 나와 도망을 가도록 하기 위해서 가시로 찌르거나 두들겨 패거나 몽둥이로 때리거나 고문을 해서 그 영혼이 고통 속에서 견디지 못하고 도망을 가도록 하는 것이 그 당시의 치료법이었다. 발짝 증세를 일으키면 그 사람을 때리고 고통을 가해서 수시간 동안 발짝으로 에너지가 고갈되어 힘이 빠지게 되면 귀신이 빠져 나갔다고 본 것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가면서 다시 발짝을 하는 재발의 경우에는 쇠사슬 혹은 족쇄로 묶어두거나 혹은 손과 발을 묶어두는 것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중세의 치료법이었지만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귀신을 쫓는다 20대 딸에게 식용소다를 다량 먹여 중독 증세로 숨지게 한 혐의로 어머니와 승려, 무속인 등 3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울산지검은 학대치사 혐의로 A(52세 여), 승려 B(58), 무속인 C(55세 여) 3명을 최근에 불구속 기도를 했다고 30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2017 A씨는 딸 D(23)씨의 건강이 좋지 않는 문제를 무속인 C씨와 상의했고, 이에 C씨는 경남의 한 사찰 승려인 B씨를 소개를 했다. A씨는 같은 해 12 30일에 딸을 사찰로 데려갔고 B씨 등과 함께 치료를 시작을 했다. 처음에 나흘 가량은 딸의 가슴과 등을 손바닥으로 때리거나 부항 시술을 하는 등 행위가 이어졌다. 동시에 귀신을 쫓는데 효과가 있다면서 식용 소다를 물에 따서 D씨에게 먹였다. 그런데도 별 차도가 없자 이후에는 가루 형태의 소다를 아예 숟가락으로 떠서 먹였다. 체력이 떨어진 데다 고통을 호소하던 D씨는 사찰에 간지 열흘 만인 2018 1 8일에 끝내 숨졌다(2019, 4, 30. 연합뉴스).

정신병에 대한 이러한 미신적인 이야기들이 과학적인 접근으로 시도를 하게 된 것은 18세기 말에 필립 파이넬이 등장하면서 그들을 쇠사슬에서 풀어주게 하고 인간적으로 따뜻하게 해주고 그들과 대화를 하는 현대적인 정신과 치료가 시작되었다. 이것은 도덕 치료라고 부른다(Bernheim, 1979: 주㈜: 참고).

 도덕 치료의 핵심은 먼저 정신병 환자들의 구속을 풀어주는 것이다. 첫 번째로 족쇄를 풀고 해방시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치료를 해 줄 수 없다면 더 이상 해를 가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동냥을 주지 못하면 쪽박을 깨지 말라는 것이다. 세 번째는 사례의 연구였다. 환자는 치료사로부터 주의 관심을 받게 되고 그리고 치료사는 환자의 역사를 통해서 환자의 정신병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파이넬의 제자인 그의 조수 에스퀘놀(Esquirol)에 의해서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현대적인 정신의학에 조직적인 강의가 시작 되었다. 파이넬의 청동 동상이 살페트리에 세워지게 되었다. 역동적 정신의학의 역사가들은 현대적인 정신과적 치료가 여기에서 시작되었다고 노트를 하고 있다(Karon, 1981: 주㈜: 참고). 파이넬의 정신병에 대한 도덕적 치료 운동은 프랑스 전역으로 영국으로, 스코틀랜드, 그리고 미국으로 펴져 나갔다(아래에서 첨부한 그 당시에 정신병원 안에서 환자들의 실제 상황(프란스시코 고야의 그림)과 파이넬이 환자들을 치료하는 성자의 모습의 그림을 보라).

 1796년에 영국의 윌리암 튜크(William Tuke)가 그의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의 치료기법으로 도덕 운동의 일환으로 차 마시기 기법을 도입을 했다. 엄격한 퀘에이크(Quaker) 교도인 튜크는 사업가로서 성공을 했다. 그가 1751년에 런던의 성 루가(St. Luke) 정신병원을 방문을 했을 때 환자들이 병원 안에서 감금되고 쇠사슬로 벽에 묶여 있는 것을 보고 나서 퀘에이크 신도들을 위한 정신병원을 설립을 실천에 옮기기 되었다. 그 당시에 정신병원은 미친 사람의 수용소(lunatic asylum: 구시대의 정신병원 이름)으로 호칭이 되었다. 그는 환자들이 심한 경우에 쇠사슬로 벽에 묶여 있는 사람들을 목격하고 환자들에 대한 잔인성은 바로 그 당시에 치료 기법의 부재가 원인임을 깨닫고 요크 도시에 요크의 은퇴의 집(York Retreat)이라는 이름으로 정신병원을 설립했다. 그곳에 입원한 환자들에게는 제한 없이 구속이 없는 자유로운 출입을 허용하는 영국에서 첫 정신과 치료로써 도덕치료가 확대 실시 되었다(2020, 2, 1. 위키피아).

그는 그것을 차 마시기 치료법으로 이름을 붙였다. 환자들은 정장 차림의 신사 숙녀 복을 입고 차를 마시는 사교 행위의 파티에 참가하게 했다. 그들이 차 마시기 행사를 통해서 정상적으로 사교 활동을 통과가 되면 퇴원을 시켰다. 그는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이 귀족들의 사교 생활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로써 그들에게 그러한 경험을 하도록 도와준다는 명목이었다 그런데 그의 차 마시기 치료 기법은 오늘날 대인관계 기술의 훈련으로 연결되어질 수 있다. 병원에 입원한 정신분열증 환자들의 정신분석 치료를 처음으로 시도한 미국의 정신과 의사인 하리 스틱 셀리번(Harry Stack Sullivan) 1930년대에 정신분열증의 핵심 문제는 뇌의 질병이 아니고. 정신분열증의 핵심은 사회적 적응의 문제로 인한 대인관계의사소통의 결함이라는 주장으로써 대인관계 정신분석학을 창조한 사람이다. 그 시점과 비교를 하면 정신병 치료에서 대인관계와 의사소통의 시도는 200년 전에 시작된 차 마시기 운동에서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도덕적 운동은 퇴원 비율이 80%로써 치료의 효과로 인정을 받음으로써 정신병 환자들에게 신비의 치료기법으로 등장을 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것들은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200명 이상의 환자들이 거주하는 병원에서는 모든 환자들에게 따뜻하게 안아주고 인간적으로 대우해주는 치료기법은 실시하기가 어렵다는 점 그리고 게으름뱅이, 도벽, 종교 광신자들에게 적용이 제외 되었다. 여기에 특별한 기법으로 요원들을 훈련 시킬 필요가 없다는 점 그리고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는 점 때문에 효과적인 요원 양성을 않았다는 것이 단점이었다. 환자들을 보다 인간적으로 따뜻하게 대우해주는 것이 전부라는 것 때문에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닫히게 된 것이었다. 더 붙여서 통계학과 조직적인 추적 연구가 부재했던 시절에 그냥 외형적으로 마음이 안정되어 퇴원을 하지만 이후에 재발해서 다시 재입원하는 것은 무시되어졌다. 고로 제 1 세대로써 도덕적 운동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Karon, 1981).

도덕적 치료의 한계점 때문에 쇠퇴하게 된 현대적 정신치료는 이번에는 정신병원이 병원 주변의 농장을 운영하는 것으로 활기를 띄게 되었다. 마사츄세트주의 주립병원 원장인 플레니 얼(Pliny Earie)이 독일의 한 정신병원에서 환자들에게 농장에서 일을 하도록 하는 교육과 노동 치료기법을 도입을 했다. 환자들에게 규칙적으로 노동일을 하도록 하면서 그 수입으로 재정적인 문제까지 해결하는 방법에서 국가와 지역 사회가 일석이조를 얻을 수 있게 되면서 미국 전역으로 펴져 나갔다(Karon, 1981). 노동자의 노동은 한편으로 타당한 이유가 되었다. 정신병원에서 입원한 환자들은 사회에 복귀하기 위해서는 일자리를 필요로 한다. 직업을 가지기 위해서는 특정한 기술이 필요하다. 대부분이 환자들이 사회에 부적응 환자로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가질 수 없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그리고 고립 속에서 이중고의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아닌가?

정신병원에서 노동을 하는 기술을 배우는 것은 사회에 나가서 적응을 도와줄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미국에서 정신병원들이 농장을 가지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한때 이러한 치료 기법과 병원 운영은 인기가 있었지만 역시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기 마련으로 사회와 시대적 흐름을 무시할 수가 없다는 점에서 한 때의 유형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즉 농업이 쇠퇴하고 공장의 노동자들이 우세하게 되면서 농사일에서 배운 기술은 환영을 받지 못했다. 그리고 여기에서 환자들의 노동력의 착취라는 학대 문제가 등장하게 되면서 인기가 시들해지고 자체 없이 사라지게 되었다.

이제 정신병원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서 논의해 보자. 장점으로는 가족들의 고통과 환자에 대한 가족 구성원들의 컨트롤 부족을 그 환자를 병원에 입원시킴으로써 즉각적으로 해결해준다. 그리고 이웃 사람들에 대한 위협을 제거해준다는 점에서 또한 재발로 인한 잦은 병원의 입원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더 붙여서 급성 증세로부터 안정(입원은 약물 치료가 동반한다)을 얻어서 퇴원 후에 심리치료실에 걸어 들어오게 해 줌으로써 심리치료를 안정되게 지속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점에서 장점으로 꼽힌다.

그런데 정신병원의 입원은 장점 보다 단점이 더 많다는 것이 역동적 정신의학자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그것은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가족들과 분리시켜서 고립되게 만든다는 점이다. 더욱 더 나아가서 지역사회에 대한 위험 때문에(이웃이나 길거리에서 다른 사람들을 해코지하는 묻지마 폭력) 지역 사회로부터 고립시키는 것이 아닌가?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사회에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아닌가? 그들을 사회에서 고립을 시키면 시킬수록 더욱 더 고립으로 가지 마련이다. 1930년에 프로이트의 제 1 세대 제자로써 비엔나 의과대학을 졸업한 정신과의사로써 프로이트 밑에서 정신분석학을 공부한 헤인즈 하트만(Heinz Hartmann)은 정신증 환자들(조현병)은 뇌의 질병이 아니고 사회생활의 적응부진으로 생긴 정신적인 장애로 보았다. 그는 환자들을 고립시켜서 감금할 것이 아니고 그들에게 사회적인 적응의 결함을 분석으로 밝혀내고 그들의 결함을 수정하고 사회적응 기술을 배우도록 도와주어서 사회에 빨리 복귀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정신분석의 치료의 핵심이라고 주장을 했다. 그는 프로이트의 제 1 세대 제자들이 원초자아 심리학으로 어린시절의 양육의 과정에서 생물학적인 욕구 불만족으로 인한 상처로 그 욕구가 성장과 발달이 중지된 고착이론과 심리적인 상처의 고통을 억압해서 망각을 통해서 무의식 속에 밀어 넣어서 무의식 속에 갇혀 있는 그 상처들을 의식으로 끌어 올려서 기억하게 하고 그 증세들의 원인을 깨닫게 해서 스스로 그 상처를 컨트롤 하도록 도와주는 원초자아 중심의 심리학 ego 중심 심리학으로 전환하게 한 개척자의 한 사람이다.

그는 사회적응에서 실패한 사람들이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로 보았다 특별히 가장 장애가 심각한 사람이 정신증 환자로 보았다. ego의 기능의 부진, 다시 말해서 ego적응기능, 학습 기능, 조정기능, 방어기능, 충동억제 기능 그리고 선택하고 결정하고 판단을 내리는 기능들의 부조화와 과거의 상처 경험들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 삶에서 경험한 기억들의 자아의 쪼갬으로 결과한 통합의 부족을 찾아내서 그것을 수정하고 새로 배우는 자아 통합의 기법을 고안을 해서 ego 심리학으로 발전을 시킨 사람이다. 하트만 이론의 등장과 프로이트의 막내 딸인 안나 프로이트(Anna Freud)1937년에 쓴 ego와 방어기재 저서의 등장으로 원초자아의 심리학에서 ego 심리학이라는 새로운 정신분석의 한 이론이 등장하게 된다. 여기에 합세한 사람이 바로 에릭슨이다. 고로 하트만, 안나 프로이트와 그리고 에릭슨은 ego 심리학의 개척자가 된다. Ego 심리학 이론은 이후에 대상관계와 자아 심리학을 탄생 시키는 원동력이 된다(Greenberg & Mitchell, 1983, Horner, 1991: 주㈜: 참고).

정신분석가들이 주장하는 것은 환자를 고립시켜서 사회로부터 단절은 사회에 복귀를 더욱 더 어렵게 하기 때문에 만약에 할 수 없이 입원이 불가피하다면 최대한 입원 기간을 줄이라고 조언을 한다. 최근에 병원의 입원을 최소화를 주장하면서 최하 1주일의 입원에서 적어도 1달 이하의 입원을 시키는 것이 최고 적합하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예일 대학의 정신과의사이자 정신분석가들이 병원입원 정신분석 치료의 기법(Selzer et al, 1989: 주㈜: 참고)을 내 놓았다 그리고 미시건 주립 대학의 정신분열증 치료 프로젝트에서 카론(Karon, 1981) 34명의 정신분열증 환자들의 치료 프로젝트를 내 놓았다. 여기에 캐나다의 토론토 의과 대학의 정신과의사이자 정신분석가들(Seeman & Greben, 1990: 주㈜: 참고)이 정신분열증의 사무실 치료에서 정신병원에 입원한 의사들과 통원 치료를 하는 정신분석가들과 협력으로 치료 프로젝트를 개발한 그들의 저서 정신분열증의 사무실 치료에서 최소의 약물 사용과 병원 입원의 최소화를 주장하고 있다(이들의 상세한 치료는 아래에서 소상하게 기술된다).

여기에 첨가되는 것이 병원에 입원은 반드시 약물이 따라오게 된다. 약물의 거부는 주사를 통한 강제로 약물의 투입으로 이어진다. 더욱 더 가족구성원들 그리고 병원에서 근무하는 스텝들(정신과 의사, 심리치료사가 아닌 나머지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 즉 행정가들 혹은 환자들의 도우미들)은 환자가 그들의 말을 잘 듣고 고분고분 하는 것을 선호한다. 학교 교사들도 마찬가지다. 착하고 말을 잘 듣고 그들의 말을 잘 따르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그런데 착한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정신장애자들은 어린시절에 부모님으로부터 착한 자녀로 부모님의 말을 잘 듣고 잘 따르는 의존적인 사람들로써 자아가 약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지시, 명령에 길들여진 사람들로써 권위자들의 비위, 눈치, 부응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말에 따르지 않으면 처벌과 불이익 때문에 그러한 것에 어린시절부터 길들려 져서 자아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가족상황들 안에서 학교 안에서 그리고 병원 안에서 상황들은 항상 유사하다. 말을 잘 듣고 지시대로 잘 수행을 하고 질서를 유지하고 규칙을 잘 지키는 것이 첫 번째가 아닌가? 여기에 불응하면 처벌과 불이익이 따라오는 것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자아가 없는 사람들로 비록 자아가 있지만 그것을 표현하는데 어려움과 결함을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으로 신경증을 가진 사람들 보다 정신증을 가진 사람들이 자아의 능력이 거의 없는 복종적이고 의존적인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이 권위. 지시, 명령에 반항하고 도전하고 더욱더 나아가서 거꾸로 하는 청개구리의 행동들은 바로 자아를 스스로 컨트롤하려고 하는 무의식적인 지각에서 나오는 것으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아를 컨트롤하고 세상에 적응해 나가기 위해서는 자아가 살아 있어야, 자아의 힘이 강해야 홀로서기가 가능한 것이 아닌가? 자아를 되찾기 위해서 몸부림 치는 사람들이 가장 취약한 부분의 사람들이 정신증을 가진 사람들이다.

한가지 예로써 오늘날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저학년 중학년 그리고 고학년과, 중학교, 고등학교의 어린이들을 보라, 그들이 부모의 불안 때문에 다양한 학원들, 학습지 등에서 찌들 린 어린이들로써 하루의 정규학업 이외에도 7개 혹은 8개의 과외를 받고 있는 어린이들의 삶을 보라. 그들에게 자유의지가 있는가? 그들이 하기 좋아서 하는 것이 몇 개나 되는가? 부모는 돈을 많이 벌어서 자녀들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을 다 해주고 싶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정작 이웃이 동료 학부모가 자녀들에게 다양한 학원에 보내는 것을 보면서 내 자식도 뒤떨어지면 안 된다는 부모의 불안 심리가 자녀들의 의지와 의사를 무시하고 무조건 너의 앞날을 위해서 너의 행복을 위해서 너를 위해서 이렇게 한다고 강조하는 부모님의 지시, 명령, 강압을 보라, 부모님의 말을 잘 듣는 자녀들은 착한 자녀가 된다. 그런데 자녀들은 어린시절부터 자신의 능력에 짐이 되는 부담감에서 짓눌려 있다는 것은 말로써 표현을 할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이 바로 증세들이 아닌가? 신체적인 불평들 즉 아토피, 천식, 두통, 복통, 소화기 불평 그리고 동료들과 갈등으로 따돌림과 폭력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어린이들이 바로 그들의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는 도움을 위한 울음을 울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부모님과 학교 선생님도 그리고 결국은 마지막 정착지인 정신병원에서 조차도 스텝들도 그들의 내면의 마음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외형적인 현상만 보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행동을 문제 행동으로 만 본다는 것이다. 컨트롤에서 벗어나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스스로 컨트롤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말로써 표현하지 못하고 행동으로 표현하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반항적이고 도전적이고 그리고 청개구리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그러나 이러한 행동에는 반드시 더욱 더 많은 약물이 투여되어진다. 내면의 자아의 힘과 자아의 능력을 고양시키는 것이 아니고 약물로써 그들의 행동을 컨트롤해서 말을 잘 듣도록 하기 위해서 외부의 도움(약물)으로 그들을 길들이게 하고 착하게 하도록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과도한 약물은 반드시 부작용이 따르게 마련이다. 이러한 부작용들이 바로 파킨슨병이다. 원래 파킨슨병은 뇌의 유전적인 질병(미국의 세계적 권투 선수인 무하마드 알리: 1996년 미국 애틀랜타 올림픽의 성화봉송 최종 주자, 파킨슨병의 환자)으로 밝혀졌다. 1817년에 영국의 의사인 제임즈 파킨슨이 진행성 마비에 대한 6 개의 사례 연구 논문으로 등장을 했다. 이 뇌의 진행성 마비는 이후에 1868년에 가르코트(Charcot)의 연구로 이어져서 1881년에 가르코트가 뇌의 진행성 마비를 파킨슨 질병으로 명명을 한 것에서 출발하게 되었다(2020, 2, 8. 위키피아).

파킨슨병은 행동의 느림, 납작한 감정(무표정), 운동 느림증으로 손과 발이 말을 잘 듣지 않는 것(운동심리 지연증), 좌불안석(가만히 앉아 있지 못함), 얼굴, , , , 턱에 비자발적 수축(뻣뻣해짐), 목의 경련, 무동증 등이 특징이다. 파킨슨병은 뇌의 도파민의 과소로 인해서 생기는 병으로 밝혀졌다. 약물은 도파민을 증가(조현병은 도파민 과다가 원인으로 항정신증 약물은 모두가 도파민을 감소시키는 약물들) 시키는 L-도파약물이 사용된다. 그런데 정신증 약물들의 과다는 파킨슨병의 증세들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약물 부작용 즉 약물 후유증이 파킨슨병이다. 감정이 납작해짐, 행동 지연증, 3()의 증세로 무의지, 무동기, 무기력의 현상이 따라온다.

치료자에게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 B부인은 그녀의 70대 초반의 아버지가 2년 전에 요양원에 입원을 해서 보내고 있다고 했다. 그는 정신과적인 문제로 가족들이 컨트롤할 수 없기 때문에 요양원에서 보내게 되었다. 그는 오래 전부터 정신과 약물을 복용해왔었다. B 부인의 막내 동생으로 간호사인 여동생이 아버지의 요양원 인근에 살면서 아버지를 병문안을 하면서 아버지가 너무 과도한 약물을 복용한다고 불평을 한 것을 B부인을 통해서 들었다. 그런데 최근에 아버지가 식사를 하는데 식판 위의 음식을 한쪽의 방향의 음식만 먹는다는 것 그리고 스푼으로 음식을 떠서 입으로 가져가는데 입 속에 넣지 못한다는 것 등을 호소하는 말을 듣고 틀림없이 약물 과대로 인한 파킨슨병이라고 조언을 해 주었다. 결국은 보호자가 아버지를 과거에 입원한 적이 있는 종합 병원에서 종합 신체 검진 결과 생리적으로 이상이 없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아버지의 약물 과다에 문제가 있는 것 같으니 요양원과 의논해서 약물을 줄이라고 조언을 받았다. 요양원에서는 약물의 축소가 아버지의 행동과다로 요양원 주변의 이웃환자들의 방을 기웃거린다는 이유로 약물을 다시 원위치 시키게 되고 또 아버지가 행동이 축소되어 무기력해지면 다시 약물을 줄이는 방법으로 반복하고 있다고 불평을 했다. 최근에 아버지는 기저귀를 차고 다니고 그리고 스푼으로 밥을 입으로 떠 넣지 못하고 요양사들이 아버지에게 밥을 떠 먹여준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치료자는 B부인에게 가족 구성원이나 상담사로 하여금 아버지를 1주일에 1회씩 이야기를 하도록 해서 말로써 내면의 긴장을 풀어주고 약물을 줄이고 활동이 증가하면 이것을 운동으로 에너지를 방출하는 쪽으로 도와주면 아버지의 고통을 줄일 수 있다고 조언을 해주었다.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 28세의 A군은 조현병으로 발병 1개월 만에 치료자를 찾아와서 약물을 복용하면서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 그는 지방의 한 대학병원에서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데 약물을 8알씩 복용을 하고 있다고 했다. A군은 항정신증 약물을 복용하기 이전에는 홀쭉이였으나 약물 복용 이후에는 비만이 되었다고 이야기를 했다. 항정신증 약물의 부작용에는 몸무게가 늘어난다는 부작용이 따라온다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A군은 조만간에 대학의 복귀로 서울에 오게 되면 지정 병원을 서울의 병원으로 바꿀 것이라고 해서 약물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어질 것으로 보인다.

치료자에서 3년 전에 6개월 동안 심리치료를 받았던 대학 2학년의 휴학생인 C군이 중학교 3학년 때 어느 날 한 친한 친구들과 불편한 관계가 의식되어지면서 돌 아이가 된다는 느낌 때문에 인근의 신경정신과를 찾았고 심리검사 결과 과도한 불안장애로 약물 처방을 받았다. 그는 약물을 복용하다가 효과가 없다는 것을 느끼고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xxx 종합병원의 신경정신과 과장(C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능한 의사를 찾아갔다고 스스로 고백)을 방문해서 자신의 증세를 호소하고 심리검사 결과 하루에 4알씩 아침과 저녁으로 약물 복용을 처방 받았다. 그는 7년 동안 그 약물을 복용하면서 40%의 효과(C군의 표현)를 유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군복무 이후에 대학에 복학 하면서 증세가 심각해져서 약물을 계속 복용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99%의 자아가 작용하지 않게 되었다(C군의 표현)했다.

그는 기존의 병원에서 이번에는 그 병원과 쌍벽을 이루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xxx 병원에 신경정신과 과장을 방문에서 7년 동안의 약물 치료가 효과가 없다고 호소를 했다. 그 신경정신과 과장의 비슷한 약물처방으로 몇 개월 동안 약물 치료를 받았으나 불만족으로 심리치료를 직접 해줄 수 없는지?를 물어 보았고 그 정신과 의사는 그 병원 안에서 운영하고 있는 1시간 동안 스트레스를 치료하고 있는 정신과의사를 소개해 주었다. 그곳에 가서 1시간 동안 심리상담 치료를 받고 나서 그 신경정신과 과장님에게 스트레스 치료를 하고 있는 30대 초반의 의사에 대해서 물어 볼 결과 그가 레지던트라는 말에 경험이 없는 사람으로 실망하고 다시 그 신경정신과의사에게 직접 상담 치료를 요청했을 때 그는 상담치료가 아닌 약물 치료를 하는 사람으로 그 병원에서 근무하다가 개업의사로 심리상담치료를 겸업하고 있는 xxx 신경정신과 의원을 소개를 해 주었다.

그 신경정신과 의사에게 시간당 20만원씩 지불하고 4개월의 심리치료를 받았다. 약물을 4알씩 복용을 하면서 1 주일에 1 50분으로 4개월의 치료를 받았으나 99%의 자아가 작동하지 않는 결과는 변함이 없었다. 그는 실망으로 치료를 중단하고 이번에는 인터넷에서 정신분석치료를 찾아보다가 xxx 정신분석치료사를 찾아가서 1시간 동안 받아 보고 나서 4개월 치료를 받았던 심리치료와 정신분석 치료가 별로 다른 점이 없이 그냥 1시간 동안 자신의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 것이 서로 비슷한 것에 불만족(C군 자신의 표현)해서 다시 인터넷에서 발견한 치료자의 홈페이지에 실린 치료 사례들을 보고 치료사에게 전화를 한 것이었다.

그 전화의 내용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을 했다. 선생님의 홈 페이지에서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한다는 것을 알고 전화를 걸었습니다. 나는 약물 치료를 7년 동안 받아 보았고 그리고 심리상담 치료도 여러 번 받아 보았는데 선생님은 치료경험이 얼마나 되며 다른 사람들이 하는 심리상담 치료와 어떻게 다릅니까? 라고 질문을 했다. 치료자는 35년 동안의 치료 경험과 학력을 소개하면서 6개월 이하의 치료를 수용하지 않는다는 것과 증세의 등장 시점에서 전후좌우의 관계들을 분석하고 그리고 어린시절의 발달 단계(부모의 양육의 과정)에서 통과해야 할 발달의 과업들과 그리고 유치원 시절, , , 고교 시절의 동료들과 관계들 그리고 현재의 상황에서 감정의 전달방식, 문제의 해결 방법 그리고 의사소통의 방법들을 분석해서 결함을 수정하고 새로 배우는 과정으로 대인관계와 의사소통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을 설명을 하면서 의심스럽거나 신뢰가 부족하면 2시간 컨설팅을 받아보고 나서 최종 결정을 하면 되다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C군은 2시간 컨설팅을 받고 나서 흡족해 하면서 6개월의 치료 계약을 하고 치료를 받게 되었다. 그는 6개월 치료 후에 80%의 자아 작동(C군의 표현)으로 일단 안정권에 들었으나 근본적으로 자아를 고치고 수정하는 데는 더욱 더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를 해서 치료자가 C군의 부모님을 모시고 소상하게 C군의 문제점을 이야기를 해주었으나 어머니는 C군의 여동생한대도 똑 같이 투자가 필요하다면서 한 자녀에게만 불평등한 투자를 할 수 없다고 더 이상의 치료를 거부 했다.. C군은 혼자서 아르바이트로 치료를 계속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치료를 종결을 했다.

 여기에서 C군의 경우를 소상하게 소개한 것은 4알씩 약물을 8년 동안 복용을 한 것이 C군의 자아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약물의 복용은 그 약물 그 자체가 자아의 기능을 저절로 개선해주지 않는다는 것과 그리고 약물의 장기복용은 약물이 내구성으로  초반기 약물의 효과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약물을 점점 증가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술을 마실 때 점점 알코올의 도구가 높아져야 초반기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다시 정신병원의 이야기로 되돌아 가보자, 환자들이 늘어나면서 입원 환자들의 증가로 정신병원은 점점 비대해지고 규모가 커지게 되면서 위와 같은 정신병원의 단점들이 하나씩 쌓여가면서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불평들이 쌓이게 되었다. 이러한 불평들이 모여서 20세기에 이르게 되면서 현대적 정신병원에서 새로운 바람이 불어 닥치게 된다. 1960 년대에 민권운동으로 소수인들 즉 페미니스트들, 흑인들, 빈곤층과 동성애자들이 개인의 인권 보호와 권리를 주장하는 운동이 일어나게 되면서 현대적 정신병원의 역사에서 ()정신병원의 운동, ()정신병원 운동(deinstitutionalization)이 등장하게 된다.

탈정신병원 운동의 촉매 작용으로 세 개의 사건이 등장하게 된다. 첫 번째는 작가 켄 켄세이(Ken Kensey)이가 쓴 소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사람이었다. 켄세이는 캘리포니아 몬로팍에 있는 대형 정신병원에서 야간 스텝으로 근무하면서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들과 많은 대화를 가졌다 그리고 정신병원의 내부 치료 과정과 입원 환자들의 실태와 상황들을 잘 알고 있었다. 이후에 미국 육군성에서 마약에 대한 실험 프로젝트인 MK 특별 프로그램에 참가해서 마약과 환각제 등과 정신과 약물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었다.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그는 오리곤주()의 한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1959년에 그의 작품을(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 탈고를 했고 1960년에 소설로 출판을 했다(쿠쿠는 뻐꾸기라는 말로 미국에서 정신병 환자의 속어로 네스트는 둥지로써 쿠쿠의 네스트는 정신병원의 의미하는 속어). 이것이 폭풍적인 인기로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이 소설은 1963년에 커그 다글러스의 주연으로 브로드웨이의 연극 무대공연으로 그리고 1975년에 포멘 감독에 의해서 영화로 만들어졌고 아카데미 5개 부분을 수상을 했다(주연에 잭 니콜슨). 주인공은 반사회적 성격장애로 상습범인 맥머피가 교도소보다 정신병원이 편하다는 것을 알고 심리검사에서 거짓으로 정신분열증 환자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그는 병원에서 환자들을 선동해서 주말에는 술과 노래와 파티 등으로 입원 환자들의 리더가 되고 정신병원의 부조리와 감금과 강압과 복종에 저항하게 된다. 간호사로 그 병원의 매니저인 라쳇과 힘겨루기를 하게 된다. 병원의 무질서와 혼란과 불복종에 분노한 라쳇은 처음에는 맥버피를 달래다가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게 된다. 즉 멕머피가 모르고 있는 것은 바로 정신과 의사의 최종 허락으로 퇴원 허락 사인이 없으면 그 정신병원에서 퇴원할 수 없다는 것으로 영구적으로 정신병원에서 감금된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맥머피는 교도소에 가면 몇 년의 형기를 끝내면 사회로 복귀할 수 있지만 정신병원의 입원은 퇴원해도 좋다는 정신과의사의 허락이 있어야 퇴원이 가능하다는 것을 그때야 깨닫게 된다. 더구나 간호사 라쳇은 신체적인 힘과 폭력으로 맞서는 맥머피와 싸움에서 그를 컨트롤 하기 위해서 드디어 정신과 치료에서 마지막 무기인 전기 쇼크 치료. 인슐린 쇼크 치료와 그리고 뇌의 전두엽 절제 수술로써 결국은 그는 정신과 의사에게 반항하고 저항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식물인간으로 변하게 된다. 평소에 이러한 병원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맥머피의 친한 친구가 된 인디언 거인 추장 환자인, 브롬덴은 벙어리와 귀머거리 행세를 하면서 병원의 룰에 순종하게 된다. 멕머피가 결국은 자신이 빠져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브롬덴에게 자신의 영혼이라도 병원에서 나가게 해 달라고 간청을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식물 인간이 된 맥머피를 베개로 입을 막아서 죽이고 그는 병원의 담을 넘어서 탈출하는 것으로 영화의 막이 내려진다.

이 영화가 정신병원의 입원과정인간의 마음과 그리고 정신병원에서 핵심 치료기법인 행동주의 심리치료에 대한 비판 그리고 인본주의의 입장에서 개인의 존재가치의 존중을 그리고 있다. 이 영화는 타임즈(TIME) 사가 1923- 2004년까지 영어 소설의 100대 우수작품으로 그리고 영국의 BBC 방송사에서 2003년에 200개의 사랑 받는 최우수 소설들의 하나로 선정되었다(2020, 2. 8. 위키피아).

두 번째 촉매제가 된 사건은 1973년에 로젠한(Rosenhan, 1973)이 정상인이 정신병원에 입원을 했을 때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가? 다시 말해서 정신병원의 실제 현상을 실험 논문으로 증명한 사건이다. 그는 8명의 건강한 피실험자(스스로 지원을 한 정상인) 12개의 정신병원에 분산해서 입원을 하도록 했다. 심리검사에서 거짓으로 정신분열증(조현병) 환자로 둔갑 시켜서 입원을 하게 한 것이었다. 그런데 입원 후에 그들이 실험 참가인으로 정상인으로 입원을 했으니 퇴원시켜달라고 정신과 의사에게 호소를 했지만 한 사람을 제외한 7명은 오히려 더욱 더 증세가 심각환 환자로 약물을 복용하게 하고 주사로 강제로 약물을 투여했다. 결국은 빠져 나올 수가 없게 되면서 변호사를 고용을 해서 퇴원하게 한 실험 논문을 발표했다. 병원에 한번 입원을 하면 퇴원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것? 그리고 정상인과 정신증 환자(조현병)환자의 구분을 정신과 의사들이 제대로 구분할 수 없다는 실험적인 증거로써 유명하게 된 논문이었다(Elizur & Minuchin, 1992).

세 번째가 쥬디 쳄를린(Judy Chamberlin) 사건이다. 그녀는 결혼 후에 유산으로 우울증에 걸려서 정신과 의사의 조언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그 이후에 그녀는 그녀의 의지와 무관하게 6개의 병원으로 끌려 다니면서 경험한 병원 내에서 강압, 강제 약물 복용과 감금에 대한 글을 써서 1960년대의 정신병원의 실태를 고발을 했다. 이후에 그녀는 정신병원 환자의 해방 운동에 참가하고 정신병원에서 살아남는 사람을 위한 운동의 리더가 된다. 정신병원은 먹고, 마시고 그리고 잠자는 것에 대한 컨트롤을 강압적으로 당하는 총체적 감옥으로 표현을 했다. 인간 접촉은 단절되고 환자는 자신의 행동을 컨트롤하지 못하게 강압 당하게 된다. 자아는 결국은 자신을 믿을 수 없게 되고, 결정할 수 없게 되고 복종적이 되어 자아가 말살 된다. 동료들과 가족구성원들로부터 고립되고 딱지가 붙여져서 이상한 사람으로 피함을 당하게 된다. 거부감을 심어주어서 점점 그들과 멀어지게 된다. 그녀는 1978년에 그녀의 저서 내 자신에 대해서”: 정신건강에 대안으로 환자 자신의 컨트롤이라는 책을 출판하고 사회운동가, 대중 연설, 교육가가 되었다.

이러한 운동의 영향으로 탈 정신병원의 운동이 어떻게 전개가 되는가? 하는 현대적인 정신병원의 치료의 역사로 되돌아가 보자.

()정신병원이 조직적으로 일어난 불씨를 제공한 사람은 영국의 정신과의사. 정신분석가로 그리고 실존 철학자로 유명한 라잉(R. D. Laing)이다. 그가 1968년에 영국의 킹즈 홀(King’s Hall)에서 변화와 전환이라는 연설로써 탈()정신병원을 선포를 했다. 그는 정신분열증을 새로운 마음”(metanoia)이라는 그리스어의 이름을 붙이고 정신분열증이라는 이름 자체가 딱지가 되어 사람을 구속하게 된다고 혹평을 했다. 이 병을 통해서 사람은 자신의 자아 발견을 위한 새로운 길을 발견해야 한다. 미침은 성장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신경정신과 의사들이 사용하는 약물과 강압은 그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게 만드는 수단으로 약물은 자아를 고양시키는데 방해가 된다. 그의 이러한 주장과 탈정신병원에 대한 선전포고는 많은 지식인들과 1960년대의 젊은이들에게 우상이 되었다. 그의 운동은 유럽과 미국으로 확대되어 번져갔다.

이태리에서 탈정신병원 운동이 정치인들과 합세해서 의회에서 법률로 통과 시키는 운동으로 확대되었다. 이태리 북부지역에서 800병동으로 가장 큰 정신병원의 주치의였던 정신과의사, 신경학자로 이름난 프랑코 바사갈리아(Franco Basaglia)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이 체인과 감금 그리고 구속이라는 감옥과 같은 현상에 충격을 받아서 현대적인 정신과 치료의 개혁자로 등장하게 된다. 그는 라잉의 탈정신병원 운동의 지지자로써 정신병원의 해체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을 했다. 1968-1974년 사이에 그는 이태리 기독 민주당과 공산당 연합의 자문의원으로 정치적인 힘을 빌려서 의회에서 법률로 1975 5월에 정신병원을 해체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정신병원의 설립 중단과 대규모 환자들의 석방과 해방으로 입원한 환자들을 집으로 되돌려 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신병원에서 집으로 돌아간 환자들은 가족들과 분규와 갈등으로 거리로 내몰리는 처지가 되었다. 지역사회에서 그들을 수용할 충분한 준비 부족과 심리치료의 미비 등이 문제점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미국에서는 탈정신병원의 운동이 어떻게 전개 되어갔는가?를 요약해 보자. 1950년대부터 등장하게 된 신경안정제 약물들의 도움으로 정신병원에서 입원한 환자들의 약물의 도움으로 많은 사람들이 퇴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1955년에 뉴욕시에서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이 93,00명에서 1987년에 19,000명으로 감소가 되었다. 여기에는 탈정신병원의 운동이 한몫을 한 이유도 있었다. 영국의 정신과의사이자 정신분석가인 라잉의 철학은 미국에서 정신과 의사들과 정신분석학자들의 호응을 얻게 된다. 대표적인 사람이 사회학자로 사회심리학자로 사회정신의학의 대표주자인 어빙 고프만(Evings Goffman)이 있다. 그는 영국의 라잉을 주장을 받아 들어서 정신과 의사와 환자가 수직관계, 지시와 명령을 주고 받는 관계가 아닌 대등 관계로 서로 상호작용으로 서로가 서로를 통해서 배움의 치료를 강조를 했다.

코프만과 함께 반()정신의학 학자로 등장한 사람이 바로 토마스 사이자(Thomas Szasz)이다. 그는 정신과의사, 정신분석가로써 뉴욕주립 스톤리 브룩 의과대학의 교수로써 정신병을 신체적 질병으로 보는, 뇌의 질병에 반대를 했다. 정신병을 삶의 과정에서 생기는 은유로 보았다. 조현병이 MRI, PET에서 정상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법원에서 강제로 치료와 감호를 명령하는 것에 반대를 했다, 자발적인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것을 강조했다. 1961년의 그의 저서인 정신병의 신화에서 인간의 행동의 기초원리를 기술한 그의 저서는 정신과 의학도들에게 교과서가 되었다. 그는 정신병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의 부정적 효과를 역설을 했다. 그의 저서로써 미침의 제조공장(1970)에서 인간은 자신의 몸과 마음의 주인으로 자아를 그리고 폭력으로부터 자유외부의 힘으로부터 자신을 컨트롤할 수 있는 힘을 강조함으로써 민권운동의 뿌리가 되었다.

이러한 운동과 학자들의 이론적인 뒷받침과 실제 운동을 통해서 미국의 의회에서 정신건강보건법을 1946년에 통과시켰고 그 결과로 국립정신건강 연구소(NIMH)가 설립되었다. 미국에서 유일한 국립이라는 말이 붙게 된 이 연구소는 정신건강 분야를 개발하기 위한 지원을 하는 국립재단으로 27개의 병원 건물들과 센터들로 구성된 미국의 건강과 사회복지국의 직속의 연구 기관이다(2020, 2, 15, 위키피아).

케네디 행정부가 정신장애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주정부에 지원을 하게 된다 케네디 대통령은 그녀의 여동생인 로즈메리 양이 23세 때 정신병원에 입원을 해서 전두엽절제 수술로 정신적인 장애인이 된 것 때문에 정신장애인들에게 관심이 많았다. 그의 노력으로 1963년에 지역사회 정신보건법이 통과 되었다. 이 법률이 탈정신병원으로 지역사회로 돌아간 환자들이 가족구성원들과 마찰로 인한 재발을 막기 위해서 정신병원과 가정의 가운데에서 일부는 병원으로 그리고 일부는 자유로운 집의 양쪽의 역할을 하는 하프웨이 하우(halfway house)의 활성화가 인기를 띄게 되었다(2020, 2, 15, 위키피아).

각 주에서 운영되고 있는 사설 하프웨이 하우스는 각 주가 장애인 연금으로 지원하는 개인 연금에서 일부 용돈을 제외하고 하프웨이 하우스의 운영자가 그 돈을 받아서 주거, 일상생활, 치료와 돌봄을 제공하는 것이다. 치료자가 2년 동안 인턴십으로 근무를 했던 하프웨이 하우스는 3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지상 4층의 목조 건물(L.A.지역은 지진 때문에 목조건물) 1개의 방에 최소 2인 최대 4인이 거주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곳에서 낮 프로그램으로 상담치료와 레크리에이션 치료와 그리고 환자들이 즐길 수 있는 오락시절 등이 갖추어져 있다. 그곳에서 아침, 점심, 저녁 식사와 약물들을 제공하고 세탁물을 수거해서 빨래와 주거를 돌보아준다. 주기적으로 일반 의사와 정신과 의사가 와서 개개인의 신체적 질병들과 그리고 정신적인 장애들을 관리해준다. 하프웨이 하우스에서 재발하면 큰 정신병원으로 보내주고 대형 정신병원에서 완화되어 퇴원한 환자들이 이곳에서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지역사회의 정신건강 지원들이 모든 환자들을 다 돌보아주는 것은 아니다. 정신병원에서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간 환자들은 가족들과 불화로 거리로 내 쫓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집 없는 사람으로 길거리에서 떠 돌아다니는 노숙자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1980년대 미국에서 집 없는 사람으로 길거리에서 노숙을 하는 사람들이 최소 30만 명에서 최대 200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들의 최소 3분의 1 혹은 최대 절반 이상이 정신장애자로 밝혀졌다. 그들이 가족들과 갈등에서 길거리로 노숙인으로 살아가게 된 사람들이다(Elizer & Minuchin, 1992).

 탈정신병원의 운동의 부산물로써 등장한 것이 노숙인들로 집 없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된 것이다.  길거리에서 노숙자가 늘어나게 되면서 드디어 사회적 문제로 등장하게 되었다. 1987, 9월에 뉴욕에서 집 없는 거리의 노숙자들을 위한 프로젝트가 대대적으로 실시 되었다. 정신과의사 1, 간호사 1명 그리고 사회복지사 1명이 한 개의 팀으로 조직되어 거리의 노숙자들을 병원의 응급실에 입원을 시키고 그리고 정신과 치료를 실시 하는 프로젝트였다. 노숙자들은 길거리에서 구걸, 방뇨, 욕설과 시비, 불결함과 개인 위생 등을 구호로 내 세우고 그들을 소탕하는 작전이 뉴욕시장의 이름으로 실시가 되었다. 결국은 이 프로젝트가 민권운동과 부딪치게 된 것이었다.

길거리에 노숙자였던 조이스 브라운(Joyce Brwon)이라는 이혼녀인 부인이 뉴욕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었다. 그녀는 정신병자가 아니기 때문에 병원 입원으로 정신과 약물이 필요 없고 그녀의 문제는 단지 집이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주장을 했다. 대신에 그녀의 가족들과 뉴욕시는 그녀가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서로 원고와 피고로 맞붙게 되었다. 뉴욕시를 대신하는 변호사들과 정신과 의사들 대(vs) 노숙자를 대신하는 민권변호사와 정신과의사들의 싸움이 된 것이다. 법원의 판결은 브라운의 승리로 노숙자의 의지에 반대해서 강제로 입원을 시키고 약물을 투여하는 것을 불법으로 그녀에게는 쉼터에서 거주하도록 하는 결말로 정리가 되었다(Elizer & Minuchin, 1992).

 위와 같은 문제들의 해결책의 일환으로 1980년에 들어서면서 미국 내에서 저명한 의과대학들의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가들이 조현병에 대한 치료의 용감한 새로운 도전들의 연구 결과들이 등장하게 된다.

 정신분석가들은 통원 치료로 개인 환자를 일대 일로 치료를 주로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정신증 환자들 특별히 조현병 환자들의 증가에 속수무책이었다. 정신분석학이 소수 개인 치료라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병원에 입원한 다수들에게 확대시키자 라는 역동적정신의학자들의 도전이었다. 병원의 입원 환자들과 통원 치료 환자들의 통합 치료의 실험들이 등장하게 된다.

신경정신과 의사들은 약물 치료를 고수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정신분열증(조현병)은 뇌의 질병이기 때문에 심리치료는 별 효과가 없다고 주장을 한다. 반면에 역동적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조현병의 약물이 ego의 기능과 대인관계의 기능을 저절로 해결해주지 않기 때문에 약물의 복용은 병원 입원을 장기화, 약물에 의존하게 만든다고 반대를 한다. 여기에서 선택적 절충을 해서 양쪽의 장점들을 통합해서 늘어나는 환자들을 대응해 나가기 위해서 실험적인 도전을 한 학자들의 그들의 실험 치료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가 미시간 주립 대학의 정신분열증 환자의 치료 프로젝트이다. 1950년대까지는 정신분열증은 뇌의 질병 즉 유전과 생리학적인 질병으로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 우세했다. 그런데 이미 1930년대 정신분석가들의 정신분열증 환자의 치료 효과들이 보고 되면서 희망의 씨앗을 심어주었다. 그들이 바로 체스트낫 롯지에서 셀리번(Sullivan)과 프롬-레이크만(From-Reichamnn)의 치료 팀들이다(상세한 것은 조현병과 심리치료를 보라). 이러한 개척자들의 정신에 고무된 카론(Karon, 1981)은 뉴욕의 컬럼비아 의과대학 졸업 후에 뉴욕의 정신분석 학교를 졸업하고 10년 동안 청소년 갱생학교(비행청소년들의 학교)에서 사춘기에 시작되는 조현병 환자들을 정신분석으로 치료를 해서 성공적인 결과를 얻으면서 정신분열증의 심리치료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이것을 정신병원에 만성으로 장기 입원을 한 조현병 환자들의 치료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미시간 주립 의과대학의 교수로써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NIMH)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아서 만성 정신분열증 환자의 치료를 실시하게 되었다.

 미시간 주의 자동차의 도시인 디트로이트 주립병원에 1년에 1 5천명의 환자들이 응급실에 실려왔다 그 중에서 5천명이 입원을 했다. 그들 중에서 확실한 정신분열증 환자를 그들의 실험과 독립된 심리검사전문가를 통해서 엄격한 심리검사를 통해서 정신병원 입원 3개월 전에 증세가 시작된 사람들, 정신병원에 입원한 경력이 있는 환자들, 그리고 전기쇼크, 인슐린 쇼크를 받지 않는 환자들(전기 쇼크, 인슐린 쇼크의 결과로 뇌의 손상을 제외), 그리고 알코올과 마약중독자가 아닌 환자들이 선택이 되었다. 순수한 만성 정신분열증 환자를 34명의 선발을 해서 20개월 동안 1주일에 평균 1 50분간의 치료 회기로써 그들을 3 그룹으로 나누어 실험 치료를 실시를 했다.

첫 번째 그룹은 10년 이상 조현병 치료의 경력을 가진 9명의 역동적 정신건강 전문가들로 구성된 치료 팀으로 10명의 조현병 환자들을 약물 치료가 아닌 순수한 심리치료를 수행을 했다. 두 번째 그룹은 역동적 정신건강 전문가들에게 슈퍼비젼을 받는 무경험 전문가(의과대학 레지던트들와 심리치료 대학원 인턴들)12명으로 구성된 치료 팀으로 심리치료와 약물 치료의 병행 그룹으로 12명의 환자들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세 번째 그룹은 12명의 환자들로 구성된 심리치료가 없는 순수한 약물 치료 그룹으로 나누어서 20개월 동안 치료를 한 연구 결과와 치료 종결 이후에 2년 동안 추적 연구를 통해서 치료의 결과 보고서를 1981년에 정신분열증 환자의 심리치료라는 저서를 통해서 출판을 했다.

 그들은 치료 종결 시점에서 시간-언어 테스트와 대인관계 테스트 그리고 지능검사지 등의 다양한 치료 테스트 등을 통해서 환자들의 증세의 증가와 감소를 철저하게 검진을 했다. 치료 6개월의 시점에서는 약물 치료가 아닌 순수한 정신분열증 환자의 치료는 효과가 거의 없었다(조현병의 심리치료는 6개월 이상의 치료가 필요). 반면에 가장 효과가 좋은 사람들은 세 번째 그룹의 신경정신과 의사를 통한 약물 치료 그룹이었다. 특별히 두 번째 그룹인 역동적 정신건강 전문가에게 슈퍼비전을 받는 무경험 심리치료사들의 그룹은 병원에 재입원하는 환자의 숫자가 가장 많았다(33%가 병원입원). 심리치료의 효과는 치료 1년이 지나가면서 나타나기 시작을 했다. 2년 치료의 결과 가장 치료 효과가 높은 치료 그룹은 순수한 심리치료를 받은 첫 번째 그룹이었다. 그리고 가장 효과가 적은 그룹이 순수한 약물 치료를 받은 그룹이었다. 2년 후에 추적연구 결과는 약물치료만 받은 세 번째 그룹의 환자들은 재발로 다시 정신병원에 75%가 입원을 했고 병원에 입원 기간이 99.8일 이었다. 심리치료와 약물 치료를 병행한 두 번째 환자 그룹에서 환자들이 93.5일의 병원 입원을 했다. 대조적으로 순수한 심리치료를 한 첫 번째 그룹의 재입원 기간이7.2 이었다.

 카론(Karon)은 전문가의 슈퍼비젼을 받은 무경험 심리치료사들의 정신분열증 환자의 치료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노트를 했다. 특별히 그는 그의 저서에서 심리치료실 안에서 두 사람이 마주보고 앉아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해서 심리치료를 하는 것은 아니다 라고 노트를 했다. 즉 조현병의 치료에는 조현병에 대한 이론과 지식과 충분한 경험이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를 했다.

 두 번째 프로젝트는 뉴욕의 코넬 의과대학의 교수이자 정신분석가인 셀츠(Selzer et al, 1989)와 동료연구팀이 1960년대 코넬 의과대학에서 만성 입원 정신분열증 환자의 치료 기구를 창설해서 본격적인 연구에 뛰어들어가서 8년 동안 치료 프로그램 개발과 그리고 10년 동안 만성 정신분열증 환자들의 치료 실험을 거치면서 그들의 치료 경험을 소개한 저서를 1989년에 정신분열증을 가진 사람들이 치료라는 제목에서 부재로 치료 동맹에 초점을 맞춘 치료 모델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약물 치료를 배척할 것이 아니고 수용을 해서 여기에 그 환자의 개인적인 주관적인 세계의 탐색과 분석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셀츠(Selzer)와 동료 연구자들은 웨인버그(Weinberg, 1987)의 조현병의 뇌의 가설을 받아들였다. 조현병은 뇌의 전전두엽에 결함으로 하부회백질의 기능부진(과도한 도파민)이 중간 뇌(림빅 조직=변연계, 감정의 뇌)에 영향을 미쳐서 지각(인지)결함(조현병의 핵심이 사고장애)과 감정의 결함(감정이 납작해짐)으로 사고장애, 지각 혼란(환청, 환각)으로 등장한다고 가설화 한 이론이다. 도파민의 과대방출로 결과한 질병으로 보기 때문에 모든 항정신과 약물들은 도파민을 감소시키는 약물들이다, 이들의 약물 부작용으로 등장한 것이 파킨슨병의 증세들이다(실제 파킨슨병은 뇌의 질병으로 확인). 도파민 약물들이 파킨슨병과 유사한 증세들운동 지연증, 좌불안석, 납작한 감정, 발을 질질 끌고 다님, 안구 이상증에 더붙여서 3() 현상으로 무감각, 무동기, 무의지 등을 보이는 조현병 약물 부작용들을 철저하게 검진을 해서 항정신증 약물을 감소시켜서 심리치료를 시작하도록 치료 모델로써 소개를 하고 있다.

 그들이 환자와 치료사의 치료 동맹의 형성을 치료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강조하는 것은 정신분석 치료에 핵심이다. 조현병 환자의 심리치료는 심층의 무의식적인 갈등, 어린시절의 엄마와 아기의 관계 그리고 친밀관계의 회피, 환자의 심리적 공간의 확보(밀착으로 질식의 두려움), 대인관계와 커뮤니케이션의 개선 등을 치료의 핵심으로 지적하고 있다. 특별히 그들의 치료 모델에서 강조를 하는 것은 환청과 환각을 약물로써 억압으로 차단할 것이 아니고 환청과 환각은 심층의 갈등의 핵심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환자들의 환각과 환청 속에 들어가서 그들의 원인을 분석으로 찾아내야 한다는 것을 치료의 핵심으로 강조하고 있다. 그들은 조현병 환자의 가장 공통되는 증세인 FBI, CIA로부터 감시당한다. 미행당한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도청을 한다는 그 증세들은 어린시절에 자치권의 박탈로 강압과 억압과 지시 명령에 대한 자아의 살아남기 위한 호소로 보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환자가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고 마음대로 표현하도록 해서 자신감, 자아-존중의 고양으로 그리고 주변 환경의 컨트롤로 연결되는 자아의 성장과 발달을 다시 재개하는 치료를 강조하고 있다. 특별히 치료사는 안전과 안정된 치료 분위기 안에서 환자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을 선별을 해서 제공해야 함을 강조한다.

 세 번째는 캐나다 토론토 의과대학 교수, 정신분석가 들의 치료 연구진들이다. 그들은 영국의 왕립의과대학 출신들로 모두가 정신분석가들로 구성된 치료 팀으로 정신분열증 환자의 사무실 치료라는 저서를 통해서 그들의 치료 모델을 사무실 치료를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제공하고 있다(Seeman & Greben, 1990: 주㈜: 참고). 그들의 치료 모델은 특별히 약물치료와 심리치료의 병행으로 네트워크(Network) 치료를 강조한다. 그물망 치료로써 정신분석 심리치료의 한가지만 치료하는 것 보다 약물치료에다. 재활치료, 직업치료, 부부 카운슬링, 리클리에이션, 운동 등을 강조하고 있다. 대부분의 약물치료는 병원퇴원으로 약물 중단으로 재입원하거나 혹은 약물 하나만 의존하게 됨으로써 재발과 만성화 되는 것을 방지하고 병원에서 퇴원 이후에 심리치료를 계속하면서 아울러 지역사회에 적응능력을 기르기 위해서 재활치료사, 직업 치료사, 사회복지사 그리고 가족 치료사 등이 네트워크를 구성해서 사회에서 적응 능력을 기르도록 지속적인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들이 강조하는 것은 정신의학은 과학인 동시에, 예술로써, 생물학(신경생리학), 심리학(정신분석학, 행동 실험심리학), 그리고 사회학(가족치료학, 커뮤니케이션학) 등의 장점들을 통합해서 시너지 효과를 확대 시킬 것을 강조하고 있다. 정통파 정신분석학의 수정과 보완 쪽으로 지향하는 정신분석가들이다. 그들은 약물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특별히 약물 부작용에 철저한 체크가 필수적으로 여성 환자들의 경우에 생리중단, 산후, 임신과 수유 시에 약물들 그리고 남성 환자들의 경우에 무기력증, 여성유방증, 비만 등을 항상 체크를 하면서 약물 복용을 중단하지 말도록 강조하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의 최근의 정신병원 입원과 약물 치료에 대한 이야기로 방향을 돌려보자. 치료자는 우리나라의 정신병원에 상주하면서 치료를 한 경험은 없지만 여러 번의 병원 입원으로 퇴원 후에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는 사람들을 통해서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정신과 의사들이 병원에 입원과 정신과 약물치료 하나 만으로 정신장애자들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이 점점 확대되어져 가고 있다는 것을 치료자가 경험으로 느낄 수가 있었다.

10년 전에는 정신병원에 입원은 거의 3개월의 치료 과정을 거치는 것이 보통이었으나 지금은 1개월 혹은 입원환자의 의사의 존중으로 1주일 혹은 2주일에 퇴원을 할 수 있다는 것과 약물 치료 하나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고 재활 치료와 심리치료가 병원 안에서도 실시되어지고 있다는 것을 입원 환자들의 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20년 전에 치료자가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 시점에서 30대 초반의 한 남자 조현병 환자는 그의 아파트 앞 동에서 40대의 한 부인과 그녀의 10대의 소녀가 그가 거실에 있을 때 그를 쳐다보고 비웃고 감시하는 것을 6개월 동안 참고 견디다 못해서 그녀의 아파트에 붉은 색깔의 스프레이로 화양년의 소굴이라는 욕설을 쓰고 나서 그래도 그들의 계속된 감시에 참다 못해서 이번에는 신문지를 뭉쳐서 도어문에 불을 지르려고 하다가 이웃집의 주인에게 발각되어 경찰이 출동해서 구속되었다. 나중에 밝혀진 것은 그 아파트에는 그러한 중년 여성과 딸이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그 청년은 조현병의 환각으로 밝혀지게 되어 종합병원의 정신과에 입원을 했다. 입원 후에 약물 치료를 받으면서 3개월 동안 입원을 했다. 병원 안에서는 치료심리학자가 입원한 환자들을 7-9명 정도의 그룹치료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룹 치료에 참가를 하라고 해서 참가 했지만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룹 치료에서 개개의 참가자들은 자신의 어려움과 고민을 털어 놓고 이야기를 하게 된다. 유사한 문제들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과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혼자만이 아니다 라는 것과 소통과 친밀관계를 위해서 그룹 치료가 필수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조현병을 가진 사람들은 증세 발발 초반기에 입원을 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에 그룹 치료에는 질색을 한다. 그들이 가장 어려운 것이 대인관계가 아닌가? 고로 그들은 어떻게 대화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관계를 해야 하는지?를 먼저 습득하고 배운 이후에 그룹치료가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그 젊은이는 스스로 그룹 치료사가 고민과 갈등을 해보라고 했을 때, 나는 고민이 없습니다 .할 이야기가 없습니다 라고 말을 입을 닫아버리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고 고백을 했다. 조현병 환자들에게 그룹치료는 치료 초반기에는 효과가 없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

두 번째 조현병 환자로써 치료사에게 심리치료를 받은 30대 여성은 치료사에게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다가 재발해서 다시 정신병원에 6개월 동안 입원 후에 퇴원을 하면서 그녀의 집 주변에 있는 유명한 종합병원으로 이첩을 요구했고 이첩을 받은 대형종합 병원의 신경정신과의사로부터 아침과 저녁에 4알의 약물 치료에 더 붙여서 그 병원에서 실시하고 있는 심리치료를 받도록 권유를 받았다.

그녀가 1주일에 1 50분으로 30대 중반의 사회복지사의 그룹치료와 그리고 연속으로 두 번째는 30대 중반의 정신과 레지던트가 치료를 하는 50분의 그룹치료로 연속으로 심리치료를 받게 되었다. 1회 치료 비용은 5만원으로 두 개의 심리치료는 활인으로 8만원을 지불하고 심리치료를 받게 되었다. 그녀와 총 4명의 환자들이 그룹 치료를 받으면서 사회복지사와 레지던트 두 사람이 합동으로 같이 치료실에 들어와서 공동으로 치료를 했다. 그들의 치료과정의 내용을 듣고 나서 치료가가 대경실색을 했다. 그 치료사들은 4명의 환자들에게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게 하고 그것을 서로 이야기를 하는 대화 치료와 때때로 질문지에 문장을 완성하도록 해서 그것을 가지고 한 시간 동안 이야기를 하도록 하는 치료기법이 치료가가 보기에는 신경증 환자들에게 적당한 치료기법이지 조현병 환자들에게 적당한 치료기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녀가 3개월 동안 치료를 받다가 그만 두고 치료사에게 다시 심리치료를 재개 하게 되면서 치료자가 알게 된 것이었다.

세 번째 조현병 환자로써 1년 전에 치료자로부터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 20대 초반의 대학생 J군의 경우에는 주변의 대형종합 병원보다 거리가 먼 곳에 있는 정신병원의 신경정신과의사로부터 약물 치료를 받고 있는 것에 대한 이유를 물어 보았을 때 그는 먼 곳에 있는 그 병원에서는 약물의 최소화로 1알의 조현병 약물을 아침과 저녁에 복용한다는 말에 그곳을 선택했다고 했다. 그 신경정신과 의사는 약물은 평생동안 복용해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특별한 것은 그곳에서 약물 치료에 더 붙여서 그 신경정신과의사는 3개월에 한번씩 조현병 환자들의 가족 모임을 실시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모임에서 J군이 부모님과 함께 같이 2번을 참석을 했다고 했다. 첫 번째는 J군이 빠지고 부모님만 참석을 했으나 두 번째부터는 부모님과 같이 참석하게 되었다고 했다. J군의 첫 모임에서 환자를 포함해서 가족들이 모두 약 20명이 참석을 했는데 지정된 장소는 인근에 야산으로 J군과 나이가 비슷한 조현병 젊은이가 4명 정도였는데 다른 조현병의 사람들은 40 50대들이 있었다고 했다. 모인 환자들과 가족들은 그 장소에 모여서 단체 사진일 찍고 나서 하산을 해서 인근에 식당에서 가족 단위로 식사를 하고 헤어졌다고 했다.

J군의 두 번째 환자들의 가족들의 모임에서는 J군의 부모님이 그 장소에 가면서 인근에 살고 있는 40대 후반의 그 신경정신과 의사선생님을 모시고 아버지가 운전을 해서 그 장소에 도착을 했고 그 신경정신과의사 선생님은 먼저 올라가고 J군과 부모님은 승용차를 주차한 후에 그 장소에 도착을 했다고 했다. 그곳에서 약 10분 동안 가족들과 모여서 자유 시간을 가진 후에 단체 사진을 찍고 하산을 해서 인근에 식당에서 이번에는 조현병을 가진 사람들이 같이 테이블에 앉아서 이야기를 하도록 하면서 같이 식사를 했다고 했다.

치료자가 J군에게 같이 모인 4명의 환자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보라고 했을 때 한 학생은 20대 후반의 여학생으로 대학 2학년 때 조현병으로 그리고 30대 중반의 회사원은 직장생활을 하다가 조현병으로 직장을 그만 두고 치료를 받고 있다는 것과 또 한 사람은 30대 초반의 남자 대학생으로 조현병으로 몇 년 동안 치료를 받고 있다는 소개 소개를 했다고 했다. J군은 대학 1학년을 마치고 2년 동안 휴학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했다. 자기 소개 이외에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를 물어 보았을 때 J군은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고 했다. 그들과 약 30분 동안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다가 점심을 같이 먹고 헤어졌다고 했다.

치료자가 그들의 전화 번화를 물어 본다든지 그들에게 접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가? 라고 물어 보았을 때 J군은 그들이 서로 친밀하게 느껴지지 않고 서로 경계심으로 조심하는 것 같아서 같이 이야기를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고 실토를 했다. 치료자는 이 다음에 3개월 후에 또 그 모임에 참가할 때는 안면이 있는 젊은이들에게 의도적으로 접근을 하고 친구로써 접근을 하도록 대화 훈련과 대인관계 기술을 치료실 안에서 배울 수 있도록 준비를 갖추기로 했다.

 특별이 J군은 그 신경정신과 의사선생님을 모시고 가면서 J군이 잠을 자는 체 하고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엿듣게 되었는데 그 의사선생님이 부모님에게 하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분노했다고 털어 놓았다. 어떤 이야기에 분노했는지?를 물어 보았을 때 그 의사선생님이 J군이 약물 치료를 시작한지? 1년이 다가오는데 왜 J군은 대학에 복학하든지 혹은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 놀고 있는가? 라고 하는 말에 J군이 속으로 분개하면서 스스로 마음 속으로 정신과 의사 선생님! 내가 일을 할 수가 있고 학교에 복귀할 수 있다면 왜 내가 지금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고 있겠습니까?” 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고 했다.

약물로 심리적인 안정을 찾았으니 이제 학업 혹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그 40대 중반의 신경정신과 의사선생님이 J군이 대인관계가 전혀 되지 않고 사람들을 만나서 가슴이 뛰고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도망을 간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말이다. J군은 그 이후에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두 번이나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가 그만 두었다. 첫 번째는 아르바이트 첫날에 그만 두었고 두 번째는 아르바이트 시작 2일 만에 그만두게 되었다. 즉 약물을 복용하면서 안정을 취했으니 이제 공부를 하든지 일을 해도 된다는 그 신경정신과의사가 정작 조현병의 핵심 문제가 대인관계와 의사소통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에 분기탱천하는 J군을 보면서 치료자는 그 의사선생님이 조현병 가족들과 환자들을 모아서 친목으로 서로 화합과 소통을 하려고 하는 목적은 좋은데 가족 구성원들에게는 서로 같은 문제를 가진 자녀들의 문제를 의논하고 소통을 하는 것은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정작 환자들이 모여서 어떻게 대인관계를 하고 어떻게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하는 것을 가르쳐 주면서 모임을 해야 하는데 그냥 그들을 모아서 알아서 친목활동을 하라고 하는 것을 부모님들에게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조현병 환자들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직도 모르고 있는 것이었다.

 네 번째 조현병 환자는 2년 전에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받은 30대의 젊은이 D군이다. 그는 그의 집 근처에 있는 대형 정신병원에서 약물 치료를 받으면서 그곳에서 1주일에 1회씩 2시간으로 보조 치료로써 재활 치료에 참가를 하게 되었다. J군은 하루에 1알씩 조현병 약물 치료를 받고 있는데 그는 그 병원의 신경정신과 의사선생님이 약물을 평생 동안 복용을 해야 한다는 것과 다음달부터는 약물 대신에 주사 1대로 한달 동안 약물이 없이 지낼 수 있는 치료가 시작된다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는 그 병원에 입원해 있는 2명의 30대 중반의 남자들과 40대 초반의 아주머니와 함께 그곳에서 직접 전문가 한데서 1시간은 강의를 듣고 나머지 한 시간은 재활 실습을 하는 것으로 그들에게 바리스타(커피 이름)의 제조법과 실천을 실습했다. 그 대형 병원에 장기 입원 환자들과 그리고 면회를 오는 인친척들을 위해서 운영하는 커피숍에서 알바로 일을 하도록 하는 재활 훈련 치료였다. D군은 필기시험과 실습 실기 시험에 통과하고 나서 그 다음에 실제로 그의 소도시에서 실시하는 자격시험과 실습에서 합격을 해서 정직 자격증을 땄다. 그리고 그 병원에서 운영을 하는 커피숍에서 1주일에 2시간씩 일을 하고 급료를 받으면서 일을 했다. 치료자에게 1년 동안 심리치료를 받고 나서 직업 학교에 입학을 하면서 치료가 종결 되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최소한의 약물 치료에다 재활 치료와 직업 치료 등이 복합적으로 병행을 해서 환자들이 병원의 퇴원 이후에 지역사회에 복귀를 도와주려고 하는 노력들의 증거들이 하나씩 눈에 띈다는 것은 정신의학의 발전된 모습으로 좋은 현상으로 보인다.

 다섯 번째 조현병 환자는 지금 치료사에게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 28세의 대학 4학년인 G군으로 그는 지방의 대학병원의 신경정신과의사로부터 하루에 7알씩 약물치료와 1알의 간 보호제로 8아씨 약물 복용을 하고 있다. 그 대학병원의 신경정신과 의사는 G군이 약물을 언제까지 복용해야 하는가? 라고 질문을 했을 때 그는 1년 동안 복용하고 나서 그 때가지 한번 검토해 보자 라고 했다고 털어 놓았다. 치료자는 그가 환자에게 평생동안 약물을 복용해야 한다는 말을 하게 되면 환자가 놀래서 실망할 것을 염두에 두고 1년 이라는 이야기를 한 것으로 보인다.

 특별한 것은 그 병원에서는 1주일에 1회로 약 20분 동안 전화상담(전화 상담은 심리치료사)을 통해서 약물을 잘 복용하고 있는지? 그리고 부작용은 없는지? 를 체크를 한다고 했다. 여기에다 1달에 한번씩 50분 간으로 심리치료를 병행한다고 했다. 어떤 내용을 다루고 있는지? 를 물어 보았을 때 그 심리치료사는 약물을 잘 복용하고 있는가? 그리고 운동을 하고 있는가? 수면과 식사 등을 체크를 하는데 핵심은 약물을 잘 복용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전부인 것 같았다고 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한 달에 20만원의 치료비용이 첨부가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G군은 조현병이기 때문에 국가에서 비용을 부담하게 때문에 3만원의 치료비용만 지불한다고 했다. 조현병이 아닌 다른 정신장애자들은 20만원이 치료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했다. 치료자가 만약에 G군이 20만원의 치료비용을 지불하게 된다면 그 치료를 계속해서 받을 의향이 있는가?를 물어 보았을 때 그렇다면 치료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 이유는 심리치료사가 하는 내용이 심리적인 상처들의 치료가 아니고 약물 치료를 잘 받아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어서 20만원을 주고 치료를 받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했다.

 여기에서 치료자가 느끼는 것은 병원에서 상주하면서 심리치료를 하는 심리치료 전문가들은 약물치료를 하는 정신과의사와 힘겨루기가 되기 쉽다는 것이다. 독립적으로 신경정신과 의사와 독립된 심리치료를 실시를 해서 약물의 과다를 줄이고 심리치료가 주도적으로 약물은 보조적으로 치료를 수행해 나가야 하는데 신경정신과의사의 처방에 따라야 한다는 것과 그들에게 약물의 감소를 이야기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고로 약물치료에 부속으로 심리치료가 진행되면 치료효과가 최대화 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러한 문제점들은 선진국에서 병원치료와 통원치료를 병행하는 정신건강전문가들의 입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핵심적인 문제점들은 치료에 대한 의견 차이와  전문가들 사이에 서로 힘겨루기이다. 그들은 서로의 우위를 위한 힘 거루기 때문에 일어나는 갈등을 조율하지 못하면 통합 치료가 실패하기 쉽다는 단점들을 경고하고 있다는 것을 눈여겨 볼만 하다.

 이제 치료자가 38년 동안의 심리치료의 연구와 치료를 한 경험으로 선진국의 역동적정신의학 전문가들의 치료기법들을 수용해서 치료자는 조현병을 제외한 모든 장애자들은 약물치료를 배제해서 치료를 한다. 그러나 조현병의 경우에는 약물을 허용하면서 점차로 약물을 감소시키면서 치료를 해 나간다. 치료자는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핵심으로 사용하지만 병행으로 가족치료, 인지/행동치료를 병행을 한다. 치료에서는 반드시 6개월 치료 계약으로 6개월 이하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증세의 등장 시점에서 심리적인 상처들과 촉진 요인들을 분석한다 그리고 유아기 시절부터 발달 단계를 통과 하면서 발달 과업에서 결함과 학습 부진을 다룬다. 그리고 현재의 시점에서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는가?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는가? 의사소통을 어떤 방식으로 하는가? 등을 다루면서 잘못된 부분들을 수정하고 새로 배우게 한다. 치료의 과정은 의사소통 훈련, 감정 표현 훈련이 반드시 포함을 하도록 한다.

 첫 번째 긴장의 방출로써 감정을 행동이 아닌 말로써 표현하는 훈련이 첨가되어진다. 이것은 발달 단계에서 부모의 양육의 문제들을 분석해서 관계 패턴이 분석되어진다. 치료실에서 직접 의사소통과 감정 표현의 훈련은 치료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첫 번째 어머니와 소통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그 다음에 아버지와 관계를 그리고 형제들과 관계로 이어지게 한다. 그 단계를 통과하면 그 다음에 친구들과 관계로 확대시켜 나간다. 친구들과 관계를 우선적으로 다루지 않고 부모님과 관계를 우선적으로 다루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발달의 과정에 따른 것이다. 유아기 단계에서 부모님과 관계가 이후에 유치원을 통과하게 되고 그것이 초등학교에서 동료들과 관계로 이어지는 발달의 단계를 고려한 것이다. 유치원시절까지 배우고 습득한 부모님과 대인관계가 동료들로 이어진다는 것을 감안한 것이다. 두 번째는 부모님은 핏줄이기 때문에 자녀의 치료의 도움을 위해서는 어떤 것이라고 지원해줄 수가 있다. 부모님에게 자녀의 이야기를 경청하게 만들고 이야기를 어떻게 전개해 나가는지? 어떤 이야기들을 해야 하는가?를 치료실에서 배운 것을 집에서 부모님과 직면으로 뚫고 나가야 그 다음 단계로 친구들과 관계를 뚫어낼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문제들은 연습과 실습이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치료실 안에서 대화로 이야기가 끝나는 것이 아니고 행동학의 역할 놀이를 통해서 직접 경험을 머리 속에 입력을 해야 이후에 대인관계에서 경험한 대화 기술이 사용되어질 수 있다는 것을 수많은 실제 치료에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그냥 이렇게 해야 한다가 아니고 실제로 치료실에서 치료사와 치료를 받는 사람이 역할을 거꾸로 해서 대화를 실천해서 확실한 습득을 거친 다음에 실제 생활에서 직접 부딪치면서 등장하는 문제점과 장애물들은 다시 분석되어져서 치료실에서 수정해서 끝없이 도전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특별히 치료의 과정에서 강조되는 것은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고통과 마음을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부모님이 자녀의 머리 속을 들여다 볼 수 없기 때문에 자녀의 문제를 알지 못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치료실에게 치료사에게 한 이야기들 즉 고민과 갈등과 문제점들을 집에 가서 일대 일로 어머니 혹은 아버지에게 적어도 충분한 시간을 내어 달라고 요구를 해서 적당한 시간에 이야기를 하도록 한다. 그 이야기를 통해서 부모님은 자녀의 내면 속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과 더 붙여서 자녀는 자신이 이야기를 하는 것을 통해서 의사소통 훈련을 몸소 실천하는 것을 통해서 소통 훈련이 되는 것임을 깨닫게 한다.

대화를 할 때 반드시 이야기를 듣게 만드는 훈련이 첨가 된다. 절대로 내가 하는 이야기 도중에는 신문, TV 를 보지 못하게 하고 전화를 받지 못하게 하고 이야기를 하는 중간에 끼어들지 못하고 하고 이야기가 끝나고 나면 충분이야기 시간을 드릴 터이니 그냥 끝까지 이야기를 들어 주세요 라고 경청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치료실에서 훈련으로 배우게 한다.

치료자는 치료사와 약 10시간의 치료 회기를 거치게 되면 가족구성원들 중에서 어머니와 마주 앉아서 이야기를 하는 훈련이 첨가되어진다. 치료실에서 치료사와 나눈 이야기들을 어머니에게 하도록 한다. 대도록 최하 1시간 이상을 하도록 한다(치료자는 반드시 2시간 치료 회기). 이야기를 많이 할수록 좋다는 것을 알게 만들어준다. 편안한 관계에서 마음의 안정으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는 과정이 강조된다. 부모님과 대화에서 3시간 정도 이야기가 진행되었을 때는 문제를 가진 사람의 대화 기술이 정상적인 괘도에 진입한 신호로 해석한다.

대신에 치료자는 절대로 강압을 사용하지 않는다. 행동학과 가족치료에서 많이 사용하는 과제물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리고 결정을 환자 자신이 내리고 선택하도록 도와준다. 그것은 스스로 자아 존경심과 자치심을 고양시키기 위함이다. 자아 컨트롤의 능력은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 때문이다. 대신에 치료자는 이러한 이야기를 하면서 스스로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면 하도록 한다. 그런데 언젠가를 이 과정을 뚫고 나가야 한다는 것을 더 붙인다. 그것이 내일 혹은 한달 이후에 혹은 몇 개월 이후에 혹은 몇 년이 될 수도 있겠지만 언젠가는 그것을 통과 해야 한다, 고로 빠를수록 좋다는 말을 더 붙인다. 하지 않는 것을 질책하거나 처벌하지 않는다. 왜 못하게 된 이유를 분석해서 다시 시도를 하도록 한다. 실패한 경우에는 그것을 다시 분석에서 포기하지 않고 끝없이 도전을 하도록 격려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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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참고

 카론(Karon, 1981). 정신분열증 환자의 심리치료

 스트라우스(Struass et al., 1980). 정신분열증의 심리치료

 엘렌베르그(Ellengerger, 1970). 무의식의 역사: 역동적정신의학의 진화와 역사

 에리저와 미추친(Elizer & Minuchin, 1992). 정신병원이 만들어내는 미침

 센골드(Shengold). 영혼의 살인(1991), 영혼의 살인 재방문(2000), 일상생활에서 망상(1995)

 베른헤임(Bernheim, 1979). 정신분열증: 원인들, 증세들, 치료들

 셀츠(Selzer et al., 1989). 정신분열증 환자의 심리치료

 그린베르그와 미첼(Greenberg & Michell, 1989). 정신분석학에서 대상관계 이론

 스타드트(Stadter, 1996).대상관계 단기 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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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저서들은 우리나라 말로 치료자가 번역해 놓았으니 치료자의 정신분석 심리치료 홈 페이지에 전문서적 안내에 들어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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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위의 그림은 정신병원의 실제 모습을 즐겨 그렸던 프란시스코 고야의 작품 중에 하나이다. 쇠사슬과 감금의 모습들은 치료를 하는 병원이 아니고 감옥을 연상케 한다는 것 때문에 정신병원이 비판을 받게 된다(2020, 2, 15. 위키피아).

그림 2

현대적 정신병원과 현대적 정신치료를 시작하게 된 프랑스의 필립 파이넬(Philippe Pinel)(1745-1826)이 도덕적 치료를 보여주는 그림이다. 신사복을 입은 신사가 파이넬이고 그의 옆에 서 있는 족쇄에서 해방된 여성이 정신병 환자로써 정신병원 안에서 족쇄에서 해방된 정신병원의 내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2020, 2, 15, 위키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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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치료 사례는 조현병 환자인 G(치료 사례에서는 O) 2시간 컨설팅의 치료 내용을 소개한 것이다. 그는 2년 전에 1개월의 정신병원 입원 후에 1년 동안 심리치료(치료자가 아닌 다른 치료사)를 받았으나 불만족으로 그만 두고 다른 심리치료사에게 3개월 동안 치료를 받고 나서 치료 종결로 직장 생활을 2년 동안 하나가 다시 재발하면서 3개월 동안 치료를 한 심리치료사에게 다시 치료를 재개할 것을 요청했으나 거부를 받고 나서 다시 인터넷에서 치료자의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읽어본 어머니에 의해서 치료자에게 1년 동안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게 되었다.

카우치에 누워서 정신분석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과 분석가

대상: 돈으로 친구 문제를 해결 해온 30대의 남자 O

증세: 다른 사람들에게 기를 쏘아서 17명의 사람들과 싸우고 있다는 환청과 환각을 가진 30대의 남자

진단: 심한 우울증, 정신분열증(조현병)

연결: 정신분열증으로 치료를 받고 있으나 효과가 없는 것 같아서 인터넷에서 여동생이 치료자의 홈 페이지에서 정신분열증 환자의 치료를 보고 어머니에게 연결해서 어머니가 O군에게 이야기를 해서 컨설팅을 받게 되었음.

치료 기간: 처음에 컨설팅으로 2시간을 치료를 받아 보고 나서 치료를 받고 싶다고 결심을 하게 되었음

치료 결과: 아래의 치료 회기는 2시간 동안의 O 군의 컨설팅의 결과를 요약한 것이다.

 

치료의 과정

 치료자는 한 어머니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아들이 지방에서 한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지는 않았지만 환청과 환각으로 약물 치료를 받고 있는데 걱정이 되어 딸의 인터넷 검사를 하면서 치료자의 홈 페이지를 발견하고 연락을 하게 되었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아들과 연결해서 2시간 컨설팅을 받아 보고 싶다고 해서 화요일 12-2시에 시간을 예약하게 되었다.

 화요일 12시에 어머니와 O군이 도착을 했고 어머니를 1 30분에 아들 O군과 1시간 30분의 컨설팅의 결과를 설명해주기로 하고 어머니는 근처 까페에 기다리게 하고 아들 O군과 치료 회기가 시작되었다.

 현재의 문제점:  O군은 치료자 시작되면서 치료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 보라고 했을 때 17명의 관계된 사람들 때문에 자신이 지금 기를 쏘아서 그들과 전쟁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치료자는 O군에게 그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보라고 했을 때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직장 상사인데 그 상사와 관계에서 연결된 상상 속의 관계가 17명이라고 수정을 했다.

 O군은 지난 2년 동안 지방의 소 도시에서 직장에 다니기 시작해서 자재과에서 일을 해와다가 품질 관리과로 이동을 해서 근무를 해 오고 있는데 그의 직장 상사와 갈등으로 근무할 수가 없어서 3주일 전에 직장에 나가지 않고 집에 칩거하다가 직장에서 차장님이 어제 집에 와서 직장은 정리가 되었다고 통고를 받았다고 했다. 직장의 상사와 어떤 갈등인지를 이야기를 해 보라고 했을 때 O군은 상사가 하청 업체들의 직원 앞에서 자신을 모욕하고 비하하고 수치심을 유발해서 수치심과 모욕감을 주어서 돌 아이 상사 밑에서 근무할 수 없었서 3주일 전부터 직장에 나가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한 상사에게 어떻게 반응행동을 했는지?를 물어 보았을 때 O군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참아왔다고 했다.

 O군의 삶의 역사: O군은 지방의 소도시에서 경제적읋 넉넉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O군은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의 돈을 훔쳐서 그 돈을 모아서 친구들과 사귀는데 사용하게 되었다고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O군은 훔친 돈을 다른 곳에 쓴 것이 아니고 모아놓았는데 7만원 정도가 되어서 그 돈으로 친구들과 사귀는데 사용을 했다고 털어 놓았다. 그렇게 시작된 도벽은 점점 커져서 중학교 시절에는 40만원 정도가 되었는데 그 돈으로 친구들과 사귀는데 사용을 했다고 했다. 그는 그 이야기를 하면서 그렇게 사귄 친구들을 하나같이 다 떠나가고 남은 진실한 친구가 한 사람도 없었다고 회고를 했다.

 아버지는 경제적으로 부유해서 여러 가지 사업을 많이 했는데 보울링 장을 건설해서 운영하고 있을 때 O군이 16살 쯤에 겨울에 눈이 많이 와서 눈의 압력에 건물이 무너져서 사람은 다치지 않았으나 사업이 망하고 아버지가 과거에부터 의처증이 악화되어 어머니와 불화로 이혼을 하게 되었고 여동생은 어머니가 데리고 가고 O군은 아버지와 함께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 게 되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O군이 공부가 부실하고 그리고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의 돈을 계속해서 훔쳐서 대인관계를 한다는 것을 과거부터 알고 아들 O군의 버릇을 고치기 위해서 17세가 된 어느 날 O군에게 같이 죽자고 하면서 그에게 담배를 한 대 권유하고(O군은 중학교 시절에 담배와 술을 배웠다) 그리고 술을 한병 사가지고 와서 한 잔 부어주면서 먹으라고 했으나 O군이 먹지 않았지만 아버지를 O군의 손을 묶고(발은 묶은는지?기억이 나지 않음) O군을 넘어뜨리고 아버지가 발로 O군의 양쪽 다리에 올라타고 손으로 목을 조이지 시작을 했다. O군은 아버지에게 살려다라고 용서를 빌었다. 다시는 나쁜 짓을 하지 않고 아버지의 좋은 아들이 되겠다고 호소를 해서 그것은 끝이 났다.

 17살인 고교 1학년 때 아버지는 O군에게 중국에 유학을 권유를 했다. 같은 나이의 사촌이 중극에서 6개월 전에 고교에 다니고 있는데 O군에게 그와 함께 고등학교를 중국에서 유학을 가라고 해서 O군은 아버지의 위협으로부터 도망하기 위해서 중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고 했다. 중국에 도착을 해서 동갑 내기의 그 사촌과 어울리게 되었는데 그 사촌은 날날이가 되어 공부는 뒤전이고 여자들과 어울리고 그리고 게임과 술과 담배로 생활하는 것에 어울리게 되었고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 1학년에 퇴학을 당하고 그곳에서 1년을 머물다가 중국 유학 4년 만에 귀국했다고했다. 그 사촌은 한국에 전학을 해서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은 직장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O군은  21세 때 할아버지의 사망과 동시에 O군은 군에 입대를 해서 군복무를 하다가 중대장이 O군의 우울증에 심한 관심 병사여서 사고를 칠 확률이 높다고 4급으로 군에서 재 판정을 하고 O군을 집으로 돌려 보냈고 O군은 공익근무 요원으로 복지 회관에 장애인들과 정신이상자들을 돌보아 주는 일을 하면서 1년 정도의 공익요원 근무를 하고 군 복무를 대신하게 되었다고 했다.

 군 복무 이후에 아버지의 친구가 운영하면 헬스장에서 일을 하면서 한 친구와 함께 근무를 하다가 그 친구의 학대와 폭력을 참고 지내다가 지나가는 사람과 시비를 걸고 그들에게 기를 투사한다는 이상한 소리에 아버지가 심한 우울증과 자살 충동으로 xxx 정신병원에 입원을 시켰고 1달 동안 입원 치료를 받았다. 이후에 아버지는 그의 친구에게 O군의 월급을 대납해서 O군에게 지불하게 했다고 털어 놓았다. 그 병원에서 약물로 치료로 1개월 동안 치료를 받았으나 효과를 보지 못했는데 퇴원 후에 xx 심리상담 센터에서 1년 동안 상담 치료를 받았고 그리고 xx에서 놀이치료와 모래 치료 그리고 인형들로써 놀이 치료를 3개월-6개월 정도 치료를 받았서 어느 정도 회복이 되어 2년 전에 지금의 회사에 2년 동안 근무를 하다가 3 주일 전부터 회사에 나가지 않고 포기하게 되었고 차장님이 어제 그의 집을 방문을 해서 회사에서 퇴사로 정리가 되었다고 일어 주었다고 했다.

 현재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지? 물어 보았을 때 xx 병원에서 지난 주일에 2번 방문을 하고 약물 치료를 받고 있는데 약물의 효과가 좋은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그 병원에서 사회복지사로부터 상담 치료를 40분 동안 받았고 이번 주일 목요일에 치료를 한번더 방문해서 상담 치료를 받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상담 시간이 1시간 30분이 흘러갔고 밖에서 커피 솝에서 기다리고 있는 어머니를 오라고 해서 30분 동안 O군의 이야기를 통해서 분석한 내용들을 설명해주었다.

 컨설팅의 결과 분석: O군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돈을 훔쳐서 대인 관계를 돈으로 해결하려고 해서 이것이 중학교 시절까지 확대되어서 결과적으로 아버지가 O군의 도벽과 공부에 관심이 없고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는 나쁜 행동을 버릇을 고치려고 같이 죽자고 자살 위협으로 손을 묶고 목을 조인 것으로 근본적으로 처벌로써 아들의 버릇을 고치겠다는 잘못된 처벌로 더욱 더 우울증과 사람들의 감시 감독으로 과도한 자아 의식으로 흘러간 것으로 분석을 해 주었다.

 O군은 대인 관계거 전혀되지 않았던 것은 17살에 부모님의 이혼으로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그들과 껄끄러운 관계와 불편하고 힘들 관계로 높아진 과도한 긴장 상황이 대인관계에 악영향을 미친 것으로 어떻게 대화를 하고 어떻게 갈등 관계들을 풀어 나가야 하는지를 배우지 못한 청년으로 유아기 시절의 발달 단계들을 하나씩 재 점금에서 다시 새로 자아를 성장시키고 건강한 자아를 자라게 해야 한다는 설명을 더 붙여서 앞으로 치료 계획을 설명해주었다.

 O군이 지금 직장에서 해고되고 쉬고 있기 때문에 1주일에 2회 혹은 3회로써 치료자와 시간을 맞추면 되고 지방인 xx에서 서울의 심리치료 사무실까지 약 1시간 30분으로 시간은 크게 어렵지 않다고 했다. 치료 비용은 6개월 비용으로 xxx 원을 받는데 치료를 하는 과정은 컨설팅의 2시간과 같은 내용을 O군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심리과학과 정신의학으로 그 행동의 원인들을 분석으로 설명해주고 그 행동을 고치고 새로 배우고 그리고 상처들을 치유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해주었다.

 특별히 치료가 시작되면서 O군에게 이곳에서는 예의 범절은 따지지 않으니 편안하게 이야기를 하고 말을 거려서 하지 말고 그냥 편안하게 해서 긴장을 방출시키는 것이 목적이니 눈치, 비위를 보지 말고 편안하게 이야기를 하라고 했을 때 O군이 첫 마디가 선생님은 사람을 편안하고 하고 긴장하지 않게 하는 특별한 사람으로 그 비법을 질문을 했다. 치료자는 과고한 긴장과 불안을 감소시키기 위해서 치료자가 36년동안 정신분석을 해 온 치료자의 치료 기술이라고 설명을 해 주었다. O군은 고향에 가서 아버지와 의논하고 어머니와 의논해서 6개월의 치료 계약을 결정하겠다고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의 홈 페이지에서는 O군의 섹스의 발달 문제를 다루게 되었는데 O군은 과도한 섹스 자극으로 일찍이 섹스에 호기심과 문제가 많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유치원 시절에 점심 식사 후에 낮잠을 잘 때 옆에 누워있는 여학생들의 치마를 들추고 성기를 만지는 일이 몇 번 있었고 유치원 선생님에게 발각되어 유치원을 전학해야 했고 초등학교 6학년 때 남자 친구들에게 발기된 성기를 몇 번 보여준 적이 있고 그리고 그것을 한 여학생이 보고 충격을 받은 것같았지만 선생님에게 들키지는 않았다고 했다. 다음의 홈 페이지에 들어가 보세요.

https://blog.naver.com/psychclinic/221810065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