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로운 미침(광기)

 

정신병이라는 딱지가 붙는다는 것은 그 가족들뿐만 아니라 그 개인에게 치명적이다 라는 것은 널리 잘 알려져 있다. 그 가족 구성원들 중에서 한 자녀가 이상한 소리를 듣는다거나 혹은 이상한 것이 보인다든가 혹은 누가 자신을 미행하고 자신을 도청하고 감시를 한다는 말을 하는 경우에 그 가족은 구성원들에게 함구령을 내린다. 절대로 그러한 이야기를 혹은 그러한 행동을 이웃 사람들이 알게 해서는 안 된다. 만약에 이웃들이 이러한 것을 알게 되면 우리 가족은 이상한 가족으로 감시, 기피를 당하는 대상이 될 수 있다. 심각하면 경찰에 이야기를 해서 무서운 가족으로 신고할 수 있다고 조심해야 한다고 전체 가족 구성원들에게 신신당부를 하게 된다. 더욱 더 심각한 경우에는 증세를 가진 그 가족 구성원은 부모님에게 조차도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된다. 만약에 부모님이 그 자녀가 그러한 이상한 증세들을 가진 것을 알게 되면 정신병원에 끌려가게 되고 잘못하면 정신병원에 갇히게 된다. 심각한 경우에는 폐쇄병동(자살 혹은 타인에게 위험의 경우에 철창 병실)에 갇히게 된다. 자유가 없고 구속복장으로 구금된다, 강제로 약물을 투입 받게 된다 라는 두려움 때문에 입을 닫아버리게 된다. 그 결과는 정상인으로 보이려고 하는 엄청난 고통을 받게 된다. 영화 죠크의 주인공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노트에 비뚤어지게 갈겨쓴 노트에서 정신장애자들의 가장 큰 고통은 자신이 정상인으로 보이려고 하는 노력이라고 한 말이 이것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일상에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병사(病死)라는 말은 병들어 사망하는 것이다. 인간이 늙어서 마지막에 병이 들어 죽는 즉 생자필멸(生者必滅)이 말하는 것처럼 살아있는 모든 생물들은 마지막에 병들어 죽게 된다. 나이 많아서 병이 들어 사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제 막 피어나는 꽃 봉오리와 같은 10, 20, 30대의 젊은 청소년들이 사회에 발을 디디기 직전에 정신병에 걸려서 가족관계가 어렵고, 사회생활이 어렵고 결혼 생활이 어려워지게 된다. 잘못 하면 평생동안 정신병원의 신세를 진다면 얼마나 억울하고 통탄할 일인가?

그러나 그 질병(정신병)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성공하고 출제하고 유명인이 되도록 한 원동력이 되었다면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정신병이 그 사람을 도와주어서 유명인사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 블로그의 주제이다. 역동적 정신의학을 창조한 사람들프로이트(Freud), (Jung), 에들러(Adler), 에릭(Erikson) 그리고 미국의 심리학의 아버지 윌리암 제임즈(William James) 등이 젊은 시절에 크고 작은 정신장애 환자였다. 이제 그들의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을 실험실에서 측정을 해서 세상을 놀라게 한 공로로 심리과학의 창조자로 인정받은 라이프지그(Leipzig) 대학의 분트가 1879년에 심리과학을 창설했다는 것은 여러 차례 밝혔다. 그의 스승인 같은 대학의 실험물리학 교수인 구스타스 페크너(Gustave Fechner)가 그 첫 번째 주인공이다.

그는 교수가 되기 이전에 학생들에게 백과 사전으로 통했고 조교 때는 그의 강의를 들어보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청교도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서 신학을 전공했다가 의학으로 의사가 되었다가 다시 의학을 포기하고 실험물리학 박사가 되었다. 1833년에 32세의 나이로 모교의 실험 물리학 교수가 되었으나 6년 만에 너무 학문에 몰두한 나머지 에너지 소진으로 교수직에서 물러났다. 그 후 검은 천으로 창문을 가리고 얼굴에 마스크를 쓰고 3년 동안 두문불출로 은둔 생활을 보냈다. 색깔과 빛의 관계를 연구하다가 동공을 크게 다쳐서 시각 이상으로 건강염려증을 얻었고 그리고 우울증이 되었다. 먹지도 않고 배고픔을 느끼지 못한 체 건강이 날로 악화되어져 갔다. 어느 날 친척 중 한 사람이 특별한 음식을 만들어서 페크너에게 억지로 먹였고 페크너는 그것을 먹은 후부터 건강을 회복해갔다. 페크너는 3년 만에 처음으로 세상 밖으로 나오면서 세상이 너무 아름답다라고 첫 마디를 꺼냈다고 한다(김종만, 1999, (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 p. 622).

페크너는 몸과 마음의 관계를 수학적으로 연구하기 시작을 했다. 10년 동안 수학적으로 계산을 해서 ∆R 분의 R K라는 공식을 만들어냈다. 신체감각()과 지각(느낌)의 관계를 수학적으로 계산해 낸 것이다. 신체감각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때 지각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공식을 만들어냈다. 그는 그의 실험과정을 심리물리학이라는 이름으로 출판을 했다. 그는 그것을 몸과 마음의 공식으로 그의 스승의 공로로 웨버(Weber)의 법칙으로 이름을 붙였다. 이 공식은 지금도 감각과 지각 심리학에서 사용되어지고 있다. 분트는 그의 스승인 페크너의 실험실 연구를 계승해서 심리학 교과서를 출판하고 심리학을 과학으로 격상시켰다.  분트는 그의 스승에 대한 자서전에서 페크너가 조울증 환자였을 것이라고 추측을 했다. 페크너의 논문들 즉 쾌락의 원리, 안정과 반복의 원리, 위트와 조크는 프로이트의 즐거움의 원리를 넘어서, 반복의 원리, 위트와 무의식으로 출간되었다. 프로이트의 의식, 전의식, 무의식, 즐거움과 불쾌감의 원리, 계수의 원리 등의 정신분석학 용어들은 페크너로부터 따온 것이었다. 무의식의 역사: 역동적 정신의학의 진화와 역사를 쓴 정신분석가인 엘렌버그(Ellenberger, 1970)는 페크너가 없었다면 정신분석이 태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김종만, 1999년 나, p. 623).

페크너가 앓았던 그 정신병은 오늘날 조울증으로 보고 있다(Ellenberger, 1970: 주㈜: 참고). 그가 앓았던 조울증은 그 당시에는 이름도 모르는 이상한 정신병이었다. 조울증이 조발성 치매로(정신분열증의 첫 이름)부터 학문적으로 분리해서 등장한 것이 1897년에 독일의 정신과 의사인 에밀 크레펠린(Emil Kraepelin)이 아닌가? 조울증이 정신의학계에 공식적으로 등장하기 64년 전에 페크너는 조울증에 걸렸다가 스스로 그 질병을 극복했다. 조울증 때문에 그는 철저한 실험물리학자에서 심리학자로 바뀌었고 그의 공로는 심리물리학이라는 저서로 출판되었다. 그것이 그의 수제자인 분트로 하여금 심리과학을 창설하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조울증이 그의 이름을 만고에 남게 해서 지금도 심리과학의 탄생에 3대로 이어진 공헌을 인정받게 된 것이다(3대에 걸친 심리과학의 탄생을 블로그에서 보라).

프로이트가 두 번째 주인공이다. 그는 3살 때 그가 태어난 모라비아(지금의 체코로 그 당시에 오스트리아-항가리 제국의 영토)에서 비엔나(오스트리아의 수도)로 이사를 할 때 그가 비행기에서 불을 내 뿜는(제트 비행기)을 보고 지옥에서 불타는 영혼이라고 불렀다(프로이트는 유태인으로 어린시절에 철저한 종교 교육) 그것 때문에 기차 공포증을 가지고 있었다(그 당시에 여객기가 등장하기 이전). 기차의 화통에서 불이 뿜어져 나오는 것으로 전이가 된 것 때문에 기차 공포증이 있었다. 이후에 그는 의과대학 졸업 후에 신경증 연구를 하면서 그의 꿈을 통한 자아-분석을 통해서 기차 공포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Ernest Jones 1953년 프로이트의 업적과 생애 p. 143). 그는 수십 년 동안 기차 공포증에 시달렸다 그리고 그가 그 공포증을 해결한 이후에도 기차여행에서 가벼운 불안으로 남았다 (Ernest Jones, 1953, 1955, 1957: 주㈜: 참고).

칼 구스타브 융(Carl Gustave Jung)이 세 번째 주인공이다. 융은 청교도 목사였던 아버지의 장남으로 스위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시골의 교회에 목사였고 인근에 정신병원이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교회의 신도들이 정신병원의 입원환자 가족들이 많았다 그리고 융의 학교 친구들이 정신병원 입원 환자들의 가족의 자녀들이 많았다(융이 의과대학에서 정신과의사에 영향).

 그는 프로이트가 19살 때 그리고 에들러가 4살 때 때어났다. 그는 역동적 정신의학의 막내동이였다. 그는 중학교 시절에 한 동료로부터 배신자로 낙인이 찍혀 구타를 당해서 넘어져서 잠깐 동안 졸도로 기절했다. 그는 오랫동안 그 가해자를 무의식적으로 두려워하고 피했다. 그 이후에 한번씩 발작 증세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동료들을 두려워해서 초등학교 시절부터 특별하게 내성적인 성격으로 고립되어 혼자서 주로 생활을 했다(오늘 날 대인공포증). 그 사건 다음부터 의식을 상실 했을 때마다 그는 학교에 가는 것을 피했다. 혹은 그의 숙제조차 하는 것을 피했다. 6개월 동안 그는 학교를 피했다. 그리고 방황으로 돌아 다녔다. 그리고 시골을 돌아다니면서 백일몽을 계속했다. 그 의사들은 수수께끼로 보았다. 그의 의사 중에 한 사람은 그의 증세를 간질병이라고 말을 했다. 그 다음에 어느 날 융은 그의 아버지가 한 방문을 한 친구에게 그의 아들의 미래에 대해서 그의 관심을 표현을 하는 것을 넌지시 들었다. 그 소년은 갑자기 삶의 심각한 문제임을 인식을 했다. 더구나 그는 그 스스로를 그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준비를 해야 했다. 그 날부터 그는 기절 졸도를 억제하려고 노력을 했다. 그리고 그의 학업을 재개했다. 그 에피소드는 어떻게 어린 시절의 기절, 졸도가 시작되었는가? 를 밝히고 있다. 알드레 지이드(융의 어린시절의 전기작가)는 그의 전체 삶에서 어린시절에 신경증과 유사한 상처에 의해서 왜 삶이 망가졌는지? 성인기와 대조해서 노트를 했다.

융은 자신의 발짝 증세를 스스로 꿈을 분석하면서 치유를 했다. 그가 1913년에 프로이트와 결별 이후에 6년 동안(1913-1919) 두문불출하고 자신의 꿈을 그림으로 그려서 분석을 하면서 발짝 증세를 스스로 치유를 했다. 이 기간 동안에 심사숙고와 경험을 바탕으로 융은 1921년에 성격의 유형 즉 외향적 성격내향적 성격을 바탕으로 4가지 성격유형을 고안해냈다. 내향성과 외향성은 서로 반대가 아니고 서로 보상적이다. 내향성 안에서 생각하는-내향성 느끼는 -내향성 그리고 생각하는-외향성 느끼는-외향성으로 분류를 했다.

그가 세상 밖으로 나오면서 발표한 성격의 유형은 융이 어린시절의 학교 공포증으로 심각한 내향적인 성격의 문제들을 스스로 연구한 결과가 가 아닌가? 그리고 그는 꿈을 분석하면서 무의식 세계의 여행으로 들어갈 때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은 현실에 발을 디디고 있어야 무의식에 잡아먹히지 않음을 강조하고 있다. 융은 어린시절의 경험을 통해서 이후에 그의 치료기법에서 환자를 현실로 돌아오게 하는 기법이 그의 치료의 핵심이 되었다. (Jung)은 그의 자서전에서 그의 내면 생활의 이벤트을 강조를 했다. 꿈들, 백일몽들, 상상들, 그리고 직관들 등이다 그것들이 바로 그의 어린시절의 경험과 고통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Ellenberger의 무의식의 세계 저서, 융의 삶과 업적 부분 제 8 p. 46, 그리고 제 9 p. 13).

알프레드 에들러(Alfred Adler)가 세 번째 주인공이다. 그는 프로이트 보다 14살 아래였다. 프로이트의 아버지는 유태인 양모상인 있었고 에들러의 아버지는 유태인 곡물상인이었다. 둘 다 비엔나에서 자라났다. 둘 다 비엔나 의과대학을 졸업을 했다. 프로이트는 신경과 의사로 정신분석가가 되어 , 상류층 환자들을 대부분 치료를 했다. 에들러는 일반의사로써 치료를 하다가 프로이트의 꿈 해석에 매료되어 신문에 프로이트의 꿈 분석을 극찬하는 글을 쓰게 된 것이 서로 만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의견 차이로 정신분석학회를 1911년에 탈퇴하고 스스로 역동적 심리학을 개척해 나갔다. 그는 주로, 하류층의 환자들을 치료를 했다.

그는 태어날 때 6명의 자녀들 중에서 둘 째 아들로 꼽추로 장애인으로 태어난다. 그는 어머니가 차가운 냉정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많은 고통을 받았다고 스스로 노트하고 있다. 프로이트가 40대의 아버지가 첫 번째 부인의 사망으로 20대 초반의 어머니와 결혼을 했을 때 전처에서 이미 결혼한 아들이 있었고 그리고 17세의 둘째 아들이 있었다. 프로이트는 어머니의 장남으로 태어나서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 하면서 그의 이복 형님인 17세의 필립과 21세의 어머니 관계에서 바로 오디프스 콤플렉스의 이론이 등장하게 된 것은 그의 전기를 쓴 영국의 신경과 의사인 어네스트 존(Ernest Jones, 1953)의 글에서 노트되어져 있다.

반면에 에들러는 가족들과 생활에서 제대로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가정 밖에서 친구들과 어울여 놀았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그의 이러한 어린시절에 동료들과 어울림의 도움은 이후에 그가 프로이트와 결별하고 독자적으로 개인심리학의 개발을 이론화 했을 때 오디프스 콤플렉스보다 어린시절의 동료들과 관계를 강조했다. 그는 스스로 신체적 장애를 연구를 해서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서 보상책으로 주의관심이 열등기관에 집중된다. 그것을 보상하기 위해서 다른 노력의 개발에 에너지 투자가 바로 그 열등감을 보상받으려고 하는 인간의 욕구라고 지칭하고 열등감 컴플레스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에들러가 개인심리학으로 독립을 했을 때 제 1 차 세계 대전으로 패배한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에서는 빈곤으로 고아들로 그리고 도벽, 강도, 절도 등의 어린이들과 비행청소년 문제들이 심각했다. 에들러가 교사들을 위한 컨설팅, 의학-교육 컨설팅, 유치원들과 실험 연구 모임을 조직해서 학급에서 다루기 어려운 학생들을 도와주기 시작했다. 범죄, 도벽, 강박증 등에 대한 연구의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에들러의 최초의 논문은 사회-의학의 기초가 되었다 사회환경이 인간을 병들게 한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는 한 공장 안에서 직공들의 열악한 환경에 어둡고, 습기차고, 전염병에 취약해서 폐결핵, 정맥출혈, 위장과 대장 질병, 꾸부린 자세의 장기간 노동이 루마치스 관절염, 척추만곡, 발목 무감각 등을 생산하게 된다고 주장하면서 사회적 환경의 개선, 노동시간 제한을 위한 노동법 제정, 실업 보험, 기숙사 제공 등을 제시했다. 그 당시에 의학의 학문이 사회적 질병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1897년의 그의 첫 논문은 프로이트에게 합류하기 이전에 의사로써 10년 동안 봉제공장의 노동자들을 관찰해서 쓴 논문이었다)(Ellenberger, 8 , 에들러의 삶과 업적, p. 58).

그는 변태성욕 즉 페티시즘, 노출증을 남성다움의 항의로 보았다. 아버지의 동일시 거부로 남성상이 부족해서 그것을 보상받기 위해서 남성다움의 과시로써 분노를 표현하는 것으로 보았다. 섹스 생활에 의심과 실천할 수 없는 두려움이 깔려 있다고 보았다. 남성다움의 부족함을 어머니를 상징하는 여성들에게 보여줌으로써 그들의 존경과 찬사를 얻으려고 하는 열등감의 표시로 보았다(여성들의 비명소리에 오르가슴을 느낀다, 여성에 복수).

그는 나치가 유태인 학대를 시작하기 이전에 1932년에 일찍 미국으로 망명을 했다. 그는 컬럼비아대학과 롱 아일랜드 의과대학에서 강의를 했다 프로이트가 환자를 카우치에 눕게 한 것과 대조적으로 에들러는 환자와 마주보고 앉아서 대등한 관계로써 치료를 했다. 에들러의 인간 본능의 공격의 개념은 이후에 프로이트가 에들러의 공격 개념을 흡수해서 인간의 2대 본능인 리비도(사랑)와 죽음 본능(공격, 파괴 본능)으로 이론화 했다. 에들러의 개인심리학의 그의 이론은 미국에 신프로이트 학파인 셀리번, 에릭 프롬, 카렌 호르니 등에게 영향을 미쳤다. 에들러는 심리학에 사회적 환경을 중요시하는 사회학을 그리고 대인관계 특별히 어린시절에 동료들 관계를 강조하는 사회심리학의 원조가 되었다. 프로이트의 학회에서 탈퇴 이후에 그는 개인적인 연구를 통해서 교사들을 그룹으로 만나서 학교의 학생들의 심리적인 문제에 결정적인 도움을 제공하게 되면서 학교 심리학의 원조가 되었고 이후에 가족치료의 탄생에 공헌하게 된다(Ellenberger의 역동적 정신의학의 역사에서 에들러(Adler)편 제 8 , p. 49).

에들러의 열등감 극복이라는 이론은 그의 꼽추라는 장애에서 그리고 어린시절에 동료과 관계에서 도움은 어린이들의 발달에 사회성의 강조로 이어졌다. 그는 어린이들을 처벌보다 격려로 자신감의 회복에 초점을 강조했다. 신경증 환자를 책임 회피로, 자아의 방어를 사용해서 핑계로 사회생활을 회피한 속임수를 사용하는 사람으로 보았다. 그는 교육과 가르침을 통해서 심리치료를 통해서 환자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고 변화시켜야 한다는 이론으로 빛나게 되었다.

에릭 에릭슨(Erik Erikson)이 네 번째 주인공 이다. 에릭슨은 사생아로 태어났다. 에릭슨의 어머니 컬라라(Karla)는 덴막 출신의 부유한 유태인 가문의 여성으로 한 주식 사업가와 결혼 이후에 그와 결별하고 얼마 후에 에릭슨을 임신해서 독일로 건너와서 정착하면서 간호사가 되었다. 그녀는 에릭슨을 치료해주던 유태인 소아과 의사와 재혼을 했다. 에릭슨은 그 소아과 의사에 의해서 입양되었고 그의 성을 따서 함브르그(Homberger) 에틱이라는 이름이 불러지게 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에릭슨의 친아버지가 누구인가? 를 알려주지 않았다. 그는 사춘기 시절에 자신의 출생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자신이 누구인가?에 빠져서 심각한 우울증으로 보드라인 성격장애로 심각한 청소년기를 보냈다고 스스로 노트하고 있다(2020,11, 7, 위키백과).

25세가 되던 시점에서 비엔나에서 프로이트가 신경증 치료의 세계적인 대가가 되었고 전 세계에서 부유층 부인들이 치료를 받으러 비엔나로 몰려오게 되면서 그녀들이 데리고 온 자녀들을 위한 초등학교가 생겨나게 되었다. 최초의 초등학교는 40명의 소그룹이었다. 그 학교에 교사로 있던 친구가 에릭슨이 그림 그리기에 소질이 있었기 때문에 보조 교사로 초대한 것이었다. 에릭슨은 그 학교에서 이후에 정식 교사 자격증을 땄고 교사로 있으면서 이후에 정신분석학교에 입학을 허용 받아서 졸업하고 안나 프로이트 밑에서 4년간 분석치료를 받고 소아정신분석과 청소년 정신분석 자격증을 얻어서 미국으로 가서 하버드 대학에 종신 교수가 되었다. 그가 성씨를 바꾼 것은 미국에 와서 에일 대학에서 강의를 할 때 자신의 양부의 성()을 자신이 스스로 만든 에릭슨(Erikson)으로 성씨로 바꾸었다(2020, 11, 7. 위키피아).

청소년 시기에 정신증에 가까운 보드라인 성격장애로 우울하게 보냈던 에릭슨이 자신의 핵심 문제였던 주체성 문제에 몰두해서 내가 누구인가? 라는 문제에 몰입한 연구를 통해서 주체성(identity) 이론을 확립한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된 것이다.

또 한 사람은 정신분석가가 아니면서 세계적인 심리학자가 된 미국의 심리학의 아버지 윌리암 제임즈(William James)가 다섯 번째 주인공이다. 그는 에릭슨(1968. 주㈜: 참고)이 쓴 주체성의 위기라는 저서에서 그의 청년기에 방황했던 내용을 주체성 유예라는 이름으로 장기간 주체성의 형성 이전에 혼란한 기간으로 이름을 붙이면서 소상하게 소개를 했다. 제임즈는 하버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를 포기 했다. 삶에서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방황을 했다고 스스로 노트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멜랑꼴리아의 심각한 정신증에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심각했다고 스스로 밝혔다. 그는 10년 동안 전 세계로 방황하면서 생활을 했다. 그가 아마존 폭포에서 그리고 유럽으로 영국으로 독일로 10년 동안 떠돌이로 돌아다니면서 수 많은 명사들, 프로이트와 융과 그리고 영국의 휴글 젝슨(자아를 최초로 신조어를 만든 신경학자)등과 만나고 그들로부터 조언과 친교를 가졌다.

그는 자신의 꿈을 스스로 꿈을 분석하고 노트한 기록들을 에릭슨에 의해서 밝혀지면서 10년 동안 불안과 우울증으로 시달리다가 마침내 자신의 방향을 잡고 주체성을 형성해서(에릭슨의 주체성 유예의 대표적인 사람) 그가 경험한 심리적인 내용들의 연구에 몰두해서 인간의 내면 세계를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이후에 하버드 대학에서 최초로 심리학을 강의를 하는 심리학의 개척자가 되었다. 그가 연구한 심리학이 1890년에 심리학의 원리로 출판되면서 유럽의 지식인들을 놀라게 해서 세계적인 명사가 되었다.

정신의학에서는 심각한 정신병 때문에 파괴되어 폐인이 된 것이 아니고 위의 인물들처럼 거꾸로 오히려 건강한 유명 인사가 된 사람들을 가리켜 창의적 질병이라고 부른다. 질병이 거꾸로 그 사람의 창의성을 개발하게 된 동기가 된 것을 말한다, 우리가 말하는 전화위복이고 그리고 새옹지마가 즉 화가 복이 된 것이다.

새옹지마는 세상만사 새옹지마라는 중국의 진나라 시대 고사에서 유래된 사자성어이다. 간단하게 이야기를 요약하면 한나라 시대의 서책인 회남자 편에 인간훈 이라는 내용에서 진 나라 시대에 어느 마을에 한 노인의 말()이 도망을 갔다. 사람들이 재물을 잃어버려서 불행을 당했다고 위로를 했는데 그 말이 다른 말 한 마리를 데리고 와서 행운이 되었고 부러워했다. 그 노인의 아들 새옹이라는 젊은이가 이번에는 어느 날 말을 타고 놀다가 말에서 떨어져서 다리를 부러뜨렸다. 그 결과로 이번에는 절름발이 장애인이 된 것이었다. 사람들은 새옹이가 말 때문에 절름발이 신세가 되었다고 불쌍하다고 동정을 했다. 그런데 그 시점에서 진시왕의 만리장성의 축조 명령이 내려지고 모든 젊은이들과 어른들은 노인들과 병약한자들을 제외하고 만리장성 축조 동원령이 내려졌다. 다행히도 새옹이는 장애인이었기 때문에 피할 수가 있었다. 여기에서 새옹지마 라는 동양의 사자성어가 생겨나게 되었다(2020, 11, 7 위키백과). 화가 불행이 될 수도 있지만 불행이 행운이 될 수도 있다. 유사한 용어로 호사다마가 있다. 좋은 일에서 불행이 생길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동양의 사자성어처럼 가만히 있으면 화가 복이 된다는 뜻이 아니다. 화를 복으로 만들 수 있는 노력이 반드시 따라와야 한다는 전제가 붙어있다.

창의적 질병이라는 말을 신조어로 사용한 사람이 프로이트의 제 1 세대 정신분석가들 중에 한 사람이 오토 랭크(Otto Rank)이다. 랭크는 프로이트의 5인 위원회의 멤버 중에 한 사람으로 나이가 가장 어렸다. 그는 프로이트의 최측근으로 프로이트 집에서 집사로 그리고 20년간 프로이트로의 정신분석학회의 재무담당이었고 유일하게 프로이트로부터 봉급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는 고교 졸업으로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들과 신분의 차이로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총명한 재능을 가진 사람으로 에네스트 존(Ernest Jones)이 노트하고 있다. 정신분석학의 핵심 용어 중에 하나인 쪼갬, 분열(splitting)이라는 용어는 랭크의 신조어였다. 프로이트의 3-5세의 오디프스 콤플렉스에 유사한 출산의 고통을 논문으로 발표를 했으나 무시당했다 이후에 조울증의 증세로 고통을 받으면서 정신분석 논물의 출판 문제로 어네스트 존과 심한 갈등으로 불화가 생겼다 프로이트가 처음에 랭크의 편을 들면서 존을 비난했으나 존이 해명을 하면서 프로이트와 관계가 복원 되었다고 존이 노트하고 있다(Ernest Jones, 1955, 2 p 58).

랭크는 프로이트 곁을 떠났다 존은 프로이트의 삶과 전기에서 랭크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노트를 했다. 프로이트의 곁을 떠난 후에 존의 랭크의 소식은 더 이상 등장하지 않았다(Ernest Jones, 1955, 주㈜: 참고). 랭크는 이후에 비엔나 대학을 인문학부를 졸업하고 프랑스로 가서 독자적으로 정신분석을 개척해 나간 것으로 나타났다(2020,11, 7, 위키피아).

그는 프랑스 솔본 대학에서 강의를 했다 그 이후에 미국으로 건너가서 독자적으로 개척의 길을 선택을 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과 다른 길을 걸어간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프로이트가 과거의 상처를 중요시한 것에서 반대로 지금 현재를 중요시했다. 그는 프로이트의 무의식 이론은 수용을 했다. 그는 무의식을 창의성의 보물 창고로 기술했다. 신경증은 창의성을 상실한 사람으로 정의를 했다. 정신병을 무의식 속에 숨어 있는 그 개인의 창의성으로 연결하도록 하는 치료 기법으로 발전시켰다. 그의 저서 의지 치료(Will therapy)는 미국의 심리치료사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의 영향을 받는 사람 등 중에서 대표적인 사람이 실존주의 정신분석가인 스텐포드 대학 석좌교수인 롤로 메이(Rollo May, 1950, 1953, 주㈜: 참고) 그리고 상담심리학의 개척자가 된 칼 로져스(Carl Rogers)가 있다. 그들은 오토 랭크로부터 지금 현재와 창의성 개발에서 자신들의 인본주의 심리치료상담심리학을 개척했다고 노트하고 있다. 또 한 사람으로 지금 현재의 감정표현을 강조한 게스탈트 심리치료를 개척한 피츠 펄(Fritz Perls)이 있다. 랭크는 철저하게 정신분석가들로부터 외면을 당했다. 그에게 분석 치료와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정신분석학교에서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새로운 아이디어들로써 하버드대학, 예일 대학, 그리고 펜실바니아 대학에서 강의를 했다.

랭크는 분리와 개인화의 끝없는 반복을 강조했다. 출생시에 엄마의 자궁으로부터 분리 그리고 엄마의 품에서 분리 그리고 사춘기 가족으로부터 분리로서 마지막에 죽음으로부터 분리를 지적을 했다. 분리는 새로운 것의 통합이 첨가되어 성장으로 연결된다. 통합은 새로운 분리로 그리고 새로운 분리는 개체의 통합과 창의성으로 성장이 이루어진다. 신경증은 분리 불안과 개인화의 두려움 때문에 내면의 모체로부터 분리를 거부한 것으로 보았다. 랭크의 지금 현재의 강조분리와 개인화 그리고 오디팔 이전의 단계들 0세-3세의 강조는 이후에 대상관계이론가들 크레인과 페비안의 논문들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랭크로부터 영향을 받는 또 한 사람이 있다. 그는 위스콘신 의과대학에서 교수이자, 가족 치료학자인 칼 휘티커(Karl Whitaker, 1982: 주㈜: 참고)이다. 그는 뉴욕의 시라쿠스 의과대학 졸업 후에 다시 그 대학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로 정신의학과 심리학 박사를 가진 사람으로 오토랭크의 의지 치료정신분석접목 시켜서 가족 치료학을 탄생시킨 개척자들 중에 한 사람이다.

가족 치료학은 정신분석학을 공부한 정신과 의사들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신경증 치료에 국한 된 것에서 정신분열증의 치료로 확대시키기 위해서 개척한 사람들로써 정신분석적인 기법을 변형시켜서 가족들을 치료하면서 그들의 논문들이 서로 유사하다는 것을 그들의 이론을 공유하면서 생겨난 것이 1950년에 시작된 가족치료의 기원이 된다(Bowen, 1985: 주㈜: 참고). 그들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정신과의사이자 정신분석가인 예일 의과대학의 데오도어 리즈(Theodore Lidz, 1980, 주㈜: 참고), 죠지와싱턴 의과대학의 머리 보웬(Murry, Bowen, 1985), 국립정신건강 연구소의 정신과의사인 단 잭슨(Don D. Jackson) 그리고 위스콘신 의과대학의 정신과 교수인 칼 휘티커(Karl Whitaker)가 그들이었다. 그들은 1957 5월에 미국정신의학회의 한 개의 분과로써 가족치료학회가 탄생하게 된다 그들이 정신분열증 환자의 치료를 위한 새로운 치료이론과 방법으로 등장하게 된다(Bowen의 가족치료의 이론과 실제, 1985년을 보라).

대부분의 정신분석가들이 프로이트의 경고를 무시하고 정신분석학을 수정하고 개조하고 변경을 해서 걸어다니는 정신분열증 혹은 정신분열증 환자(조현병)들을 치료한 사람들이다 즉 그들이 신경증 치료에서 정신증 치료로 확대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가족 치료사들은 정신분열증 치료(조현병)에서 신경증 치료로 하향한 사람들이다. 정신장애 치료는 일반 의사들처럼 한 분야만 치료를 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서 소아과 의사들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주로 치료를 한다. 그러나 정신장애를 치료사인 역동적 심리치료사들은 우울증을 한가지만 평생 치료하는 것이 아니다. 정신증을 치료하는 치료사들은 우울증, 불안증, 강박증을 치료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정신의학이 칼로 무우를 자르듯이 한 분야가 다른 분야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고 서로 연결되어져 있다는 것과 정신장애자 들은 우울증, 불안증, 강박증, 성격장애 들을 대부분 조금씩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로 연결이 되어져 있다는 점등이 일반 의사들과 다른 점이다.

휘티커는 랭크의 이론을 가족 치료에 접목시켰다. 그는 정신분석에서 강조하는 분석을 한걸음 더 나아가서 분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분석에서 통합으로(랭크의 분리와 통합) 그리고 깨달음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경험(지금 현재의 강조)으로 확대 시켰다. 정신의학에서 정신병이라는 전문 용어는 주로 정신병(mental illness), 정신이상(insane), 미침(madness)으로 사용한다. 그런데 미친사람의 명사로써 crazy, 혹은 crazier가 사용된다. 네이버 영어사전에서 crazy는 미침 crazier는 미친사람으로 번역되어져 있다. 치료자(필자)는 미친 사람의 어감이 불편함 때문에 돌 아이로 번역해서 사용해왔다.

그런데 휘티거는 그의 저서 칼 휘티커의 심리치료의 진화; 심리에서 조직까지라는 책에서 미친 사람의 3가지 유형으로 구분을 했다. 첫 번째가 미침으로 내 몰리는 사(driven crazy), 두 번째로 미쳐가고 있는 사람(going crazy) 그리고 세 번째로 미친행동을 하는 사람(acting crazy)으로 구분을 했다. 이들의 동기를 친밀감으로 보았다. 첫 번째는 친밀감을 갈구하는 사람으로 그들의 친밀감 갈구가 고통을 유발해서 가족구성원들로부터 정신병원으로 쫓겨난 사람으로 보았다. 두 번째는 정신병원에서 친밀감을 위해서 투쟁을 하는 사람들로 보았다. 세 번째는 친밀감을 포기하고 도망친 사람으로써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정신병원에서 정신병에 적응한 사람들로 보았다.

친밀감의 원천을 휘티커는 0-2세 사이에 엄마와 아기 관계에서 친밀감이 형성되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관계에서 불편함 때문에 친밀감의 회피와 거부를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정신분열증 환자이다 라고 정의를 했다. 치료에서는 그들이 다시 퇴행을 해서 0-2세로 되돌아가서 엄마와 아기 관계를 더욱더 재연해서 극단적으로 퇴행상태로 되돌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치료사는 몇 배의 엄마역할을 해서 친밀감을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 그의 치료의 핵심이었다.

치료자(필자)는 정신병원 안에서 입원해 있는 환자들을 치료를 하는 사람이 아니다. 통원 치료의 과정에서 어떻게 진밀감을 회복시키는가? 하는 것이 필자의 심리치료의 핵심이다.

지금까지 역동적 정신의학의 개척자들이 자신의 정신병에 파괴되어 붕괴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자신의 장애를 창의적인 질병으로 바꾸어서 세계적인 명사가 된 사람들이 된 것이 아닌가? 그들이 정신병을 앓고 있을 때는 정신병에 대한 치료약물이 없었다(정신증의 약물 등장은 1950년 이후), 치료 이론들이 없었다. 그들이 스스로 그 증세들을 경험하고 스스로 탐구하고 스스로 분석해서 그들의 경험 과정을 쓴 것이 바로 역동적 정신의학이 된 것이 아닌가?

그들의 공통점이 무엇인가?를 찾아보자. 그들은 정신병을 미침으로 거부하고 그리고 몰아 내려고 한 것이 아니고 정신장애를 수용하고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친구로써 어떤 상황에서 그들이 미쳐가고 어떤 상황에서 완화되고, 어떤 상황에서 그들을 컨트롤 할 수 있는가?를 스스로 연구하고 기록하고 분석해서 자신의 친구로써 만들어낸 것을 스스로 기록하고 보고한 것이 그들의 심리학이 된 것이 아닌가?

융과 랭크는 불치병을 거부하고 몰아내고 제거하려고 하지 말고 자신의 친구로 수용하고 인정하고 평생 동반자로 함께 살아갈 것을 강조를 했다. 필자는 그들의 치료 기법은 최근에 심리치료사들이 이것을 치료에 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치료자(필자)는 미국에서 10년 동안 심리치료학을 공부하고 귀국을 했을 때 건강검진에서 당뇨병으로 진단받고 나서 망연자실 했다. 인터넷에서 당뇨병이 무엇인가?  검색해서 알게 된 것은 당뇨병은 불치병이다(완치 약물이 없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한 의사가(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조언을 한 것이 눈에 띄었다. 질병은 반드시 인간을 파괴시키고 해로움을 주는 것은 아니다. 질병이 오히려 사람을 더욱 더 건강하게 도움을 줄 수 있다. 그 질병에 대해서 본질을 잘 알고, 약물을 규칙적으로 복용하면서,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고 그리고 영양분 공급을 하면 오히려 건강을 증진시키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것이다. 필자는 정신의학을 공부하면서 많은 전문가들이 한자어의 위기(危機)는 위험(crisis)과 기회(opportunity)의 합성어라는 것을 인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기회 속에는 위험이 있고 위험 속에는 기회가 있다 즉 새옹지마, 전화위복, 호사다마가 아닌가!

치료자는 그 때부터 아침과 저녁으로 약물을 규칙적으로 복용하고 그리고 매일 같이 운동을 1시간씩 하고 그리고 영양식으로 영양분을 충분히 보충하면서 30년 동안 당뇨병을 친구로써 수용해서 함께 정상적인 혈당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융과 랭크가 역동적 정신의학의 심리치료에서 불치병을 적으로 싸우는 것보다 오히려 친구로써 수용하고 그들을 컨트롤하는 법을 배우라고 한 그들의 기법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부터 위에서 언급한 역동적 정신의학의 선구자들의 공통점이 무엇인가?를 중심으로 어떻게 그들을 심리치료의 과정에서 치료에 응용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역동적 정신의학을 창설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질병을 적으로 보고 거부하고 제거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이 글의 서두에서 필자는 정신병의 꼬리표가 붙으면 치명적이어서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고 숨기고 감추려고 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을 지적을 했다. 사람들이 내 약점을 알게 되면 나를 나쁜 사람으로 피하고 거부하고 도망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정상인으로 보이려고 안간힘을 쓴다는 것이다.

정상인으로 보이기 위해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게 된다. 정상인을 sane라고 부른다. 정신이상, 미침을 insane로 부른다. Sane의 어원은 라틴어로 sanus 로 이 말은 건강하다는 뜻으로 그리고 insane는 건강하지 않다는 뜻으로 미침이 의미가 아니라 정신이 건강하지 않다는 의미로 불합리함을 강조한다(오토 랭크의 정의)(Whitaker, 1982 참고). 휘티커는 정신이 불합리한 사람을 약물과 입원으로 치료를 하는 것은 근본적인 치료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증세를 억압하고 감금해서 정상인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은 수용과 인정에 반대가 되는 것이 아닌? 약물로써 증세의 제거는 수용이 아니고 거부이다, 입원은 강압적으로 인간의 행동을 컨트롤하기 위함이 아닌가? (환자의 의지로 컨트롤하는 것이 아니다, 랭크의 의지 치료).

정신분열증 환자들(조현병) 공통점이 나는 미치지 않았다, 나는 정신이상이 아니다 라고 자신의 증세와 행동을 부인하는 것이다. 고로 그들은 치료를 거부한다. 치료를 거부하는 것뿐만 아니라 치료사에게 오는 것 자체를 거부하고 자신의 정신적인 이상함을 부인한다. 가장 심각한 정신병(조현병)을 가진 사람이 거꾸로 가장 자신이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모순이 여기에 숨겨져 있다. 모든 질병들이 자신이 질병을 수용하고 인정하는 것에서 치료가 시작된다. 자신의 몸에서 이상함을 느끼고 그것을 의심하고 그리고 수용하기 때문에 그 자신이 스스로 의사를 찾는 것이 아닌가? 의사를 찾음으로써 치료가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여기에서 옛날 우리 조상들이 병은 소문을 내야 고칠 수 있다고 했다. 다른 사람에게 내가 xx 병을 가지고 있다고 해야 병에 대한 정보와 명의를 소개받을 수 있다는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숨어있다. 이러한 자기 수용과 치료의 과정이 진화된 것이 125년의 세월이 흘러갔다(프로이트가 최초로 신경증 환자들을 치료를 했던 1895년부터 2020년까지 125).

정신건강 의학과(신경정신과의 개칭) 선생님들은 약물 처방으로 치료가 끝난다. 환자가 약물을 정상적으로 잘 복용하고 있는가? 그리고 부작용은 없는가? 그 약물이 그 환자에게 적당한가? 를 체크하는 것이 그들의 핵심이다. 그들은 3-5분 정도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보통이다. 반면에 역동적 정신의학은 보통 50분으로 1시간 동안 치료를 하는 치료사와 치료를 받는 사람 사이에 이야기를 하는 대화 치료가 핵심이다. 정신증 약물(정신분열증(조현병), 조울증 그리고 편집증) 1950년부터 등장해서 2020년까지 약 70년의 세월이 흘러가면서 약 28 종류의 정신증 약물이 개발되어져 있다(Bernheim, 1979: 주㈜: 참고) 역동적 정신의학에서는 약물이 아닌 대화 치료가 핵심이다. 대화치료가 125년 동안 어떻게 진화되어 왔는가?를 먼저 살펴보기로 하자.

1895년에 히스테리아에 대한 연구들이라는 저서에서 브로이어(Breuer)가 안나 오(Anna O)라는 여성을 최면으로 그리고 프로이트가 4명의 환자를 치료하면서 2명은 최면으로 그리고 나머지 두 명은 최면에 걸리기 않았기 때문에 최면과 유사한 방법으로 카우치에 누워서 눈을 감고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을 이야기를 하라고 하는 자유연상의 등장으로 역동적 정신의학이 탄생하게 된다는 것은 여러 차례 밝혔다. 프로이트가 자유연상을 사용한 것은 최면에 걸리지 않는 사람을 최면과 유사한 방법으로 자신의 생각, 느낌, 상상을 이야기를 하도록 함으로써 어린시절에 받은 상처를 찾아가는 방법이었다. 최면에서 어린시절의 상처를 밝혀내어 그것을 그 환자가 깨달음으로써 그 상처의 원인을 알고 그것을 다룸으로써 증세를 제거할 수 있다는 최면학의 핵심은 브로이어(Breuer)가 최면의 핵심은 카타르시스라고 정의한 것에서 그 시점에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즉 그 오리지널 상처를 등장시켜서 그것을 다룸으로써 그 상처에 고착되어진 느낌과 감정과 분노, 미움들을 토해내는 카타르시스의 방법으로 그 장애에서 해방되어져 그 증세가 제거된다는 것은 프로이트의 스승인 브로이어가 안나 오(Anna O)의 치료 과정에서 증세의 제거를 프로이트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최면에 걸리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서 프로이트가 사용한 기법은 카우치와 자유연상이 바로 정신분석의 탄생으로 기록되어져 있다.

프로이트는 신경증 환자의 근원을 어린시절에 상처가 기억 속에서 사라져서(무의식 속에 억압) 그 환자는 그것을 모른다. 환자가 하는 말들을 분석으로 연결시켜서 환자가 말을 하는 말 속에서 핵심 실마리들을 찾아가서 그 오리지널 상처를 찾아서 그것을 환자가 깨닫고 그 상처로부터 해방시킨다는 것이 최초의 정신분석의 핵심이었다. 여기에서 프로이트의 의식, 전의식, 무의식이라는 마음의 위계 이론이 등장한다 그리고 무의식의 왕도로써 꿈들의 분석, 말의 실수들 등을 이용해서 무의식의 세계를 탐색하는 핵심 기법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프로이트는 끊임없이 연구를 통해서 정신분석을 확대시키고 개선해 나갔다. 1905년에 섹스에 대한 3개의 논문에서 프로이트가 유아성욕 이론을 발표하면서 프로이트는 최면학의 기법을 포기하고 섹스 욕구이론으로 진화를 했다. 인간이 태어날 때 본능적으로 욕구들을 가지고 태어난다, 식욕과 성욕이 바로 그것이다. 이 욕구 이론은 발달 단계를 거치면서 구순기(0-1)입과 입술이 중심이 되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핵심이 된다 그리고 항문기(1-3)대소변 훈련으로 내 몸을 컨트롤 하고 그리고 걸음마로 주변환경의 탐색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오디팔기(3-5세로) 섹스 욕구의 등장남자와 여자의 구분, 엄마에게 밀착과 아버지의 등장으로 전지전능해 보이는 아버지의 거세불안 때문에 아버지처럼 강한 사람이 되겠다라는 동일시를 통해서 잘, 잘못, 즉 선과 악의 구분으로 양심의 발달로 이어지면서 그 다음 단계인 잠재기(6-12)(학동기로 동료들과 어울리면서 섹스 욕구가 내면으로 억압) 그리고 사춘기(13-19)를 통해서 섹스 욕구의 재등장근친상간에 놀래서 엄마를 포기(여성은 아빠를 포기)하고 엄마(아빠)를 닮은 여성(남성)으로 방향이 바뀌게 되어 가정의 울타리를 넘어가서 세상 밖으로 향하게 되고 결혼으로 독립된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이론으로 발전하게 된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발달 단계를 통과할 때 욕구가 충분히 충족되어지느냐? 충족되어지지 않느냐? 가 정신건강의 핵심으로 보았다. 욕구불만족이 신경증의 원인으로 보았다. 욕구의 흥망성쇠가 정신병리학의 근원이다 가 된 것이다.

그런데 1923년에 프로이트가 발표한 논문인ego와 원초자아가 등장하면서 새로운 이론으로 진화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마음의 구조이론이다. 타고 나는 원초자아(본능의 욕구들) 그리고 3-5세의 초자아(선과 악의 구분)이다 그런데 마음의 3두 마차(몸을 끌고 가는 세 마리의 말(마음)) 중에 ego 1-3(항문기) 사이에 등장해서 법적인 성인이 되는 19(선거권)까지 약 20년이 걸린다 라는 것에서 ego의 기능으로 치료의 초점이 바뀌게 된다.

여기에서 프로이트의 제자들이 프로이트의 이론과 기법들을 개조하고 새로운 이론으로 개척하면서 대화 치료(talking cure)자유연상과 무의식의 탐색은 많은 진화를 거치게 된다. 프로이트의 제 1 세대 제자인 비엔나 의과대학의 정신과의사인 헤인즈 하트만(Heinz Hartmann)이 프로이트의 독일어 the das Ich를 영어로 번역을 하면서 self로 번역을 했다. 이것은 프로이트의 독일어 정신분석을 영어로 번역한 영국인 제임즈 스트라취(James Strachy) the das Ichego로 신조어 번역한 것과 혼란을 일으켰다. Ego와 self는 둘 다 자아로 번역이 된다. 하트만이 self는 전체 성격을 대표하는 (self)(대상)(object)라는 말로 구분을 했다. 그리고 그는 ego를 마음의 3두 마차의 ego는 자아의 행정기능으로 정의를 했다 그는 더 붙여서 자아 이미지상(self representation)대상 이미지상(object representation)을 신조어로 만들어냈다. 그는 항문기 단계에서 ego가 등장(1.5세 때 어린이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자신을 알아 본다는 하버드 대학의 소아정신분석가인 브레즐턴(Brazelton)의 실험참고) 해서 법적인 성인이 되는 19세까지의 19년간의 기간의 ego의 기능을 세분화 해서 통합기능, 학습기능, 방어기능, 조정, 적응 기능, 선택과 판단 기능 등으로 환자가 19년 동안에 발달과정을 거치면서 부모의 보조 ego의 도움으로 이러한 ego의 기능이 어떻게 진화를 해나가면서 기능부진으로 결과 했는가? 를 분석으로 밝혀내고 이것을 수정하고 교정하는 ego의 개선에 초점을 맞춘 ego 심리학을 창설하는 기초를 세웠다. 1938년에 안나 프로이트의 ego 9개의 방어기제의 출판과 에릭슨의 어린이와 사회(1950)사회문화적인 요소의 중요성이 통합되어 ego 심리학이 치료의 핵심으로 등장하게 된다. 프로이트의 초기 욕구 이론인 원초자아의 강조에서 ego심리학의 ego의 강조로 치료의 초점이 바뀌게 된다. 무의식의 탐색의 초점에서 의식의 확대로, 상처 경험의 치유를 통한 통합적인 경험으로  ego의 확대로 이어졌다.

이 시점에서 멜라니 크레인(Melanie Klein)의 등장하게 된다. 그녀는 프로이트의 제자들의 핵심 5인방의 수제자인 항가리 정신분석학회 회장인 센도르 프레치(Sandor Ferenczi)한데서 13년 동안 개인분석과 치료를 받았다, 그녀가 놀이 치료로써 소아정신분석의 개척자가 되었다. 1920년에 국제정신분석학 총회에서 프로이트와 독일의 정신분석학회 회장인 칼 아브라함을 만나게 되었고 아브라함의 초대로 항가리에서 독일로 건너가서 그에게 3년 동안 개인분석을 받으면서 공부를 하게 되었으나 아브라함의 사망으로 중단되었다. 그녀는 영국의 신경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인 어네스트 존의 초대로 1926년에 영국에 건너가서 그녀의 소아정신분석학을 소개하고 지원을 받게 된다. 그녀는 프렌치로부터 입사(프렌치의 신조어), 내면세계와 전이와 반전이, 두 사람관계(엄마와 아기) 그리고 아브라함으로부터 구순기 새디즘(이빨의 등장으로 물어뜯는) 그리고 항문기 새디즘(오줌과 똥으로 공격) 멜랑꼴리아의 연구(심한 우울증에 대한 연구는 1911년에 아브라함이 프로이트보다 먼저 연구 논문을 제출 했다 여기에서 자극으로 프로이트의 유명한 애도와 맬랑꼴리아의 논문이 1918년에 등장한다(Arieti, 1978: 주㈜: 참고) 그리고 부정적 반전이 등을 흡수해서 어린이 정신증 환자들을 치료하기 시작을 했다(Segal, 1979, 2004, 주㈜: ).

꿈분석 대신에 놀이를 통해서 상징적인 의미들을 해석을 했다. 어린이들이 상상력이 풍부해서 놀이를 통해서 그들의 분노, 적대감정의 중요성 그리고 구분기 새디즘과 항문기 새디즘을 응용해서 분노, 적대감정을 방출시키는 치료 기법을 개발해 나갔다. 크레인은 프로이트의 3-5세의 오디프스 콤플렉스의 중심이 어린이들 한데서는 부적당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어린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엄마와 아기 관계 즉 두 사람 관계이고 엄마의 유방에서 욕구 만족이 이후의 정신병리학에 핵심으로 보았다. 유아의 마음 속에서 제일 먼저 등장하는 것이 엄마의 이미지상(대상 이미지)자아 이미지상으로 진화된다는 것을 발표를 했다.

Ego의 등장은 1-3세 이전에 등장한다. 엄마의 이미지상인 대상인 젖꼭지가 그 대상 이미지의 오리지널이 된다. 그녀는 유아들의 관찰들을 통해서 유아가 걸음마를 할 때 세상의 모든 사물들이 생명체인 범신론으로 의자에 부딪치면 의자가 자신을 해코지 한 것으로 엄마에게 울면서 하소연할 때 엄마가 그 의자를 처벌하면서 아기를 달래준다는 엄마와 어린이들의 관찰을 통해서 이론화했다. 초반기 유아들은 모든 것을 자신의 잘못이 아닌 상대방의 잘못으로 돌린다편집증적인 방어가 최초가 된다. 이것을 편집성 유형으로 신조어를 사용을 했다.

같인 시기에 영국의 에딘버러에서 정신과 의사인 페비안(Fairbairn)이 정신분석을 독자적으로 연구하기 시작을 했다 그는 걸어다니는 정신분열증 환자(schizoid)을 치료하면서 프로이트가 1917년에 페티시즘(부츠, 브라자, 고무신과 같은 물건에 섹스 욕구를 느끼는 변태성욕)의 원인을 ego가 분열되어 쪼개져서 전이된 것의 쪼갬 이론을 그리고 프로이트의 제 1 세대 제자인 파올 페드론(Paul Federn)이 정신분열증 환자의 치료에 도전해서 내가 아닌 사람으로 느끼는 이인증(depersonalization), ego 상황들(ego가 여러 개로 분열되어 서로 칸막이가 된 상화)이라는 신조어로서 빙의 현상을 성공적으로 치료한 논문들(그의 이론으로 빙의 현상의 치료를 발전시킨 사람이 몬타나 의과대학의 Watkins 부부(Watkins & Watkins, 1997: 주㈜: 참고) ego 상황치료의 저서가 있다)을 통해서 그들의 이론을 수용해서 걸어다니는 정신분열 환자의 치료에 도전을 했다. 그는 이들의 쪼갬, 분열, 이인증들을 수용을 해서 자아분열 환자들은 그들의 자아가 분열되어 자아(self)의 기능이 약화되어 세상에 대응해나갈 능력의 부족으로 내면의 세계로 자폐적으로 철수한 사람들이 자아분열 환자로 보았다. 그는 출생시 유아는 욕구만족과 긴장방출을 제공하는 대상으로 향하게 된다는 프로이트의 이론과 반대로 유아는 출생시에 엄마라는 대상으로 향하게 된다. 그는 프로이트의 욕구의 흥망성쇠가 정신병리학의 원인이 아니고 대상의 흥망성쇠가 정신병리학의 원인이라고 주장을 했다.

그의 자아분열 이론을 크레인이 수용을 해서 편집성-자아분열 유형(paranoid-schizoid position)으로 명명을 하고 이것으로 대상관계 이론이 태어나게 된다(position은 네이버에서 위치, 자리, 입장으로 번역되어져 있으나 컨버크(Kernberg)의 대상관계와 치료적 정신분석(1976; 주㈜: 참고)ego의 기능의 정도로 그리고 스타드터(Stadter는 대상관계 단기 치료에서(1996: 주㈜: 참고) 유형(modes)으로 그리고 타트맨(Tattman)은 대상과 자아에서 대상관계의 스타일로 번역하고 있다). 편집성-자아분열 유형의 특징이 부분대상들로 자아가 통합되어져 있지않고 분열된 자아들로써 모든 것들을 다른 사람들의 탓으로 돌리는 자아의 유형을 말한다. 유아기에는 이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이것이 성인의 경우에 통합되어지지 않고 남아 있는 증세들이 바로 편집증 장애와 자아분열, 정신분열증 환자들이고 그들의 치료 이론으로 발전하게 된다. 크레인은 그 다음 단계로 우울한 유형(depressive position)을 거치면서 통합된 대상인 엄마의 얼굴을 인식하고 낯선 사람에 대한 불안분리불안의 등장으로 엄마의 그림자로 엄마를 잃어버린다는 불안, 두려움 그리고 버림받음에 대한 두려움과 처벌의 유형으로 이것이 멜랑꼴리아(심한 우울증)와 조울증의 치료의 길을 열어놓게 되었다.

최근의 컴퓨터의 등장으로 출생시에 부분대상으로 지각된다는 것은 눈, , , 귀가 신생아들에 의해서 부분적으로 지각된다는 것이 실험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3개월-4개월의 시점에서 뇌량(좌뇌와 우뇌의 연결다리)이 기능을 발휘하게 되면서 양쪽 눈의 초점이 맞춰져서 입체감각으로 어린이가 인간의 얼굴을 전체로 인식(100일 사진)해서 인간으로 향하게 된다 그리고 7개월-9개월 때 엄마의 얼굴을 인식하고 엄마에게 매달리게 된다는 것은 바로 뇌의 신경세포들이 미세한 부분들의 정보전달이 통합으로 보고듣는 것의 일치로 보이게 된다. 이것은 뇌졸중 환자의 치료에서 환자들이 말을 들을 수 있지만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 혹은 그 거꾸로 가 그들이다(실어증들을 프로이트가 이미 그의 레지던트 시절에 실어증 연구인 감각실어증과 운동실어증으로 치료한 블로그를 보라).

여기에서 자유연상과 무의식의 탐색에서 상처의 원인을 찾는 초반기 기법이 ego 심리학과 대상관계의 등장으로 그 환자의 발달의 역사의 배경의 이해와 그리고 행동의 이해대화 치료의 초점이 이동을 하게 된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 환자와 대화에서 상상을 이야기하고 분석하고 발달의 단계를 찾는 대화 치료가 과학이 될 수 있는가? 라는 비판에서 컴퓨터의 등장으로 환자의 뇌의 뇌파(EEG)의 측정, 호흡 측정, 심장의 박동, 그리고 근육의 긴장도의 측정 등을 통해서 카우치에서 자유연상으로 대화를 할 때 가장 안정된, 가장 편안한 마음의 상황이 된다는 것이 밝혀지게 되었다. 정신분석이 과학으로 한걸음 가깝게 하게 되었다. 자유연상의 대화의 방식이 마음의 긴장을 풀어내는데 최고 적합한 지름길이라는 것이 밝혀지게 된 것이다.

이 시점에서 정신분석으로 정신분열증 환자들의 치료에 도전은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일련의 분석가들이 프로이트의 신경증 이론을 수정 보완해서 정신증의 치료 이론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이 안정을 얻어서 개선되어 주말에 외박으로 집에 다녀오고 나면 폭발로써 증세가 악화된다는 것에 대한 학자들의 연구가 시작되었다. 1950년대에 머리 보웬(Murry Bowen)이 국립정신건강연구소(NIMH) 그리고 죠지타운 의과대학 입원 병동 안에서 정신분열증 환자의 가족 구성원들을 모두 함께 입원을 시켜서 그들을 2년 혹은 3년 동안 치료를 하면서 그들의 24시간의 가족관계의 상호작용을 분석을 했다(Bowen, 1985). 그는 그 연구 결과로 가족구성원들 사이에 감정 관계가 정신병리학의 근원이 된다는 이론을 내 놓았다.

비슷한 시점에서 예일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가 인 데오도어 리즈(Theodore Lidz, 1980)가 예일대학 정신병원에서 정신분열증 환자의 가족 17 가구 구성원들(남자 정신분열증 환자 9명과 여자 정신분열증 환자 8) 7년 동안 연구했다. 그들의 연구에서 가족구성원들 사이에 상호관계정신병리학의 핵심 원인의 하나로 등장하게 된다.

비슷한 시점에서 캘리포니아 팔로 알토(Palo Alto)에 정신건강 연구소에서 정신과의사인 단 잭슨(Don Jackson)과 베이트슨(Bateson), 위클랜드(Weakland) 그리고 헬리(Haley)의 연구팀이 정신분열증 환자가족을 연구를 했다. 정신분열증 환자와 가족 구성원들을 병원의 병동에서 함께 생활 하면서 그들의 상호작용들을 분석한 결과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이중구속, 이중속박(double bind) 이론을 발표를 했다. 이들은 그들이 개인적으로 연구를 하다가 그들이 하는 가족 연구가 서로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것이 1957 5월에 정신의학회의 가족 치료 분과로 독립하면서 가족치료로 탄생 하게 된다.

 대화 치료 안에서 대화는 서로 말을 주고 받는 것이다. 그들의 대화의 스타일에서 서로 모순이 밝혀지게 된 것이다. 구두어와 비구두어(표정어) 사이에 모순이다. 정신분열증 환자들은 구두어보다 표정어 즉 비구두어인 몸짓, 제스처, 얼굴 표정, 목소리의 톤 그리고 말씨의 구사 등에서 의사소통을 한다는 것이 밝혀지게 되었다. 구두어와 비구두어의 의사소통의 비율이 구두어가 30% 그리고 비구두어가 70%로 소통을 한다는 것과 비구두어인 표정어가 구두어와 불일치 되는 경우에는 비구두어가 좌지우지 하게 된다는 것들을 밝혀냈다. 정신분열증 환자들의 부모와 자녀들 사이에서 의사소통이 모순에 걸리게 되면서 자녀들은 대화를 피하고 내면의 세계 속으로 철수해버린다는 커뮤니케이션 이론으로 대화치료에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된다.

 정신증 환자들과 심한 성격장애자들은 자유연상의 어려움 때문에 환자와 치료사 사이에 치료 관계가 형성되어지기 어렵다는 프로이트의 경고를 수정보완 해서 카우치 보다 서로 마주보고 앉아서 환자로 하여금 이야기를 하도록 유도해서 대화를 이어가도록 하는 대화 기법으로 수정 보완을 했다. 즉 환가의 과거의 발달 단계 그리고 가족의 배경의 역사(3세대 분석-보웬(Bowen) 그리고 의사소통의 모순 분석(웨인(Wynne) 그리고 ego의 영역의 침범자치심 등의 분석으로 진화하게 된다. 여기에서 정신분석가로써 UCLA 의과대학의 정신과의사이자 정신분석가인 그린슨(Greenson, 1978, 1998: 주㈜: 참고)작업동맹(working alliance)과 보스톤 정신분석학교의 교수였던 제트젤(Zetzel, 1979)치료동맹(therapeutic alliance)이라는 용어들이 등장함으로써 분석가와 분석을 받는 사람들이 신뢰 관계가 대화치료의 핵심으로 등장하게 된다. 

 이어서 이번에는 커뮤니케이션의 이중구속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쌍방 관계가 대화 치료에서 핵심으로 등장하게 된다. 상호주관 혹은 3의 분석이라는 용어들이 등장하게 된다. 샌프란시스코 의과대학의 정신과의사 이자 정신분서긴 오가덴(Ogden, 2001: 주㈜: 참고)은 치료를 받는 사람과 치료를 하는 사람은 이심전심으로 서로의 마음이 전달되어 개개인의 마음의 상황과는 완전히 다른 서로 일치되는 제 3의 공간이 형성된다. 분석가는 이 제 3의 공간 속에서 환자로부터 느끼는 자아의 관찰과 환자의 자아에서 서로 공통점의 연결로 치료를 하는 쪽으로 진화를 했다.

 대화 치료의 진화는 계속된다. 이번에는 치료를 하는 사람의 마음의 건강이 환자의 치료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쪽으로 흘러갔다. 그래서 치료를 하는 사람 혹은 분석가는 자신의 문제를 먼저 치료를 받아야 한다, 자신의 약점이 환자에게 얽히게 되면 치료에 진전이 없는 제자리 걸음 그리고 부정적 반전이에 대상이 된다는 전이와 반전이의 문제가 진화 되면서 치료자 자신의 문제를 스승에게 혹은 다른 치료사로부터 분석을 받아서 자아 결함이 수정되어져야 환자가 분석가의 마음의 모델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쪽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이번에는 환자가 분석 시간에 말을 많이 할수록 환자가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가하게 되면 치료의 확률이 놓아진다 고로 대화 치료 시간에는 환자가 70% 혹은 80%로 대화를 하도록 하고 분석가 혹은 치료사는 20% 정도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 환자의 치료비율의 증가로 이어진다는 쪽으로 발전하게 되었다(Whitaker, 1983).

 지금까지 125년의 대화 치료의 진화를 살펴보았다. 이제 환자와 치료사가 서로 마주보고 앉아서 어떻게 하면 환자가 마음의 문을 열고 자신의 과거의 상처들과 고통들을 치료사에게 이야기를 하게 되는 가장 좋은 지름길이 무엇인가?를 탐색해보자.

 먼저 위에서 언급한 역동적 정신의학의 개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강조한 정신병을 수용하고 받아들여서 자신의 적이 아닌 친구로써 그 정신병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그리고 그 병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를 밝혀내는 것으로 요약을 했다. 즉 정신병을 친구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런데 환자들 특별히 가장 심각한 정신병 환자들인 조현병(정신분열증)과 걸어다니는 정신분열증(심각한 자아분열 성격장애) 환자들은 자신이 정신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라는 부인의 방어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을 어떻게 정신병을 친구로 받아들이게 만들어내는가?가 치료사들(특별히 필자의 경우)의 첫 번째 과제가 된다.

 중증 환자들이 거부하고 수용하지 않는 것은 부끄러움과 수치심에 바탕을 둔 상처에서 기인이 되는 다른 사람과 함께 할 때 불편함, 껄끄러움이다. 사람들과 만날 때 편안하지 못하고, 누적되는 긴장으로 발생하는 고통스러움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인간과 동물은 고통을 피하고 즐거움을 찾는다라는 쾌락 이론을 수용을 했다. 한마디로 대인관계의 불편함과 부자연스러움으로 인한 고통을 피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휘티거(Whitaker)는 모든 정신장애의 핵심은 친밀관계의 거부로 보았다. 친밀관계는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불편함이 없는 편안함이다. 긴장을 유발하지 않는다. 껄끄러움이 없는 편안한 관계를 말한다. 그는 그 원인을 0-2세 사이에 엄마와 아기 관계에서 찾고 있다. 엄마가 너무 과도하게 예민해서 아기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을 쓰다 보니까 아기를 너무 간섭하고 통제하려고 하기 때문에 아기가 조심하게 되면서 아기의 긴장이 증가하게 된다고 보았다. 반대로 엄마의 얼굴을 인식하게 되면서 엄마가 항상 옆에 없기 때문에 주변 환경에 두려움으로 긴장이 유발되어 탐색을 기피하게 된 경우를 들고 있다.

출생 직후에 엄마와 아기의 하나됨은 정상이다. 아기의 모든 것에 엄마가 관심을 가지고 보호하고 관심을 가지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그런데 아기가 1-3세 사이에 엄마의 품에서 내려와서 주변 환경을 탐색하려고 할 때 엄마가 과도하게 예민하게 되면 아기는 자신의 주변 환경의 탐색에서 두려움으로 불편함이 가중되어질 수 있다(엄마는 주변의 위험 상황에 너무 예민해서 아기를 감시하고 통제).

에릭슨은 이것을 자치심 대(vs) 의심, 수치심으로 표현을 하고 있다. 자신의 몸을 마음대로 컨트롤하고 나아가서 주변 환경을 마음대로 컨트롤하는 과정에서 엄마로부터 분리되어 환경을 스스로 컨트롤하고 자신의 몸을 마음대로 컨트롤 하려는 자아의 발달의 최초의 단계로 보았다. 3-5세에는 주도권 대(vs) 죄의식의 단계로 무엇이든지 자신이 먼저 시도하려는 자아의 한층 더 발전된 단계로 보았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너무 예민한 엄마가 과도하게 어린이를 과잉보호로 주변 환경의 위험에 놀래서 아기를 간섭하고 통제하려고 하는 데서 문제가 시작된다고 보았다. 아기를 과도하게 보호하려고 할 때 아기는 주변환경을 위험으로 인식해서 움츠려 들게 된다. 7개월-9개월의 시점에서 엄마 얼굴을 인식하게 되면서 아기는 두려움, 불안과 엄마로부터 떨어져 나오는 것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이것이 분리불안이다. 엄마에 그림자로 엄마가 옆에 없으면 주변 환경에 탐색을 피하게 된다. 그 결과 환경을 두려워하게 된다(청소년이 되면서 사회 환경을 두려워하는 것으로 결과). 조현병 환자들이 친구관계와 대인관계를 피하고 혼자서 내면의 세계로 철수해서 게임에 빠져드는 것을 보라. 그들은 다른 사람과 관계가 불편하기 때문에 고통스럽기 때문에 피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에릭슨은 아기가 엄마의 품에서 내려와서 주변을 탐색할 때 엄마가 아기를 마음대로 주변환경을 탐색하도록 지원을 해 주어야 한다. 아기가 주변 환경을 탐색하다가 주변 환경에서 장애물을 만나서 울고나 놀랠 때 그 때 엄마가 항상 옆에서 아기를 달래주고 지원을 해 주어야 한다. 이것은 프로이트의 이론을 실험실에서 3년 동안 직접 관찰로써 이론화로 이끌어낸 소아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가 된 마가레트 몰러(Margaret Mahler, 1975: 주㈜: 참고)분리-개인화 기간 안에서 연습기(practice phrace)가 그 대표적이다. 아기가 주변 환경을 조작하고 컨트롤 하는 탐색기에 엄마는 옆에서 아기가 울거나 도움을 요청하면 즉시 달려가서 아기를 지원해주어야 한다. 즉 엄마가 아기에서 감정의 홈 베이스(등산에서 탐색 팀을 지원하는 원정대의 본부) 역할을 해야 한다. 아기가 주변환경에서 놀래서 엄마에게로 달려와서 감정의 지원을 얻어서 안정됨을 얻는 이후에 다시 탐색을 하는 과정을 지칭한다.

에릭슨은 특별히 이것을 요약해서 아기가 혼자서 주변 환경을 마음대로 부시고, 찢고, 뭉개고 마음대로 할 때 놀래서 울음을 울 때 언제든지 엄마가 달려가서 아기를 지원해줄 때 아기는 비록 옆에 엄마가 보이지 않지만 엄마를 부르면 언제든지 엄마가 온다는 마음 속에 엄마에 대한 확신이 바로 엄마의 신뢰, 믿음(trust)이 된다 라고 대인관계에서 첫 번째 단계신뢰, 믿음(vs) 불신으로 노트하고 있다. 엄마의 과도한 간섭과 통제는 아기의 자치심을 훼손하게 된다. 여기에서 분석가와 치료사들의 치료 경험에서 나온 특징이 엄마가 아기를 어떻게 관계를 해야 하는 것에 자신감이 없는 엄마들은 아기를 양육하면서 불편함과 부자연스러움을 느낄 때 그것은 거울 반사로써 아기의 마음 속에 심어지게 된다. 엄마가 불안해하면 아기 역시 불안하게 된다.

 과학이 발달하고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아버지의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엄마가 맞벌이로 일을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유아들은 놀이방, 유아방으로 맡겨지게 된다. 놀이방, 유아방은 아기를 돌보아주고 보살펴주는 것이 목적이지 아기를 양육하는 곳이 아니다. 엄마가 부재할 때 먹여주고, 대소변을 도와주고 위험에서 보호해서 병원에 데리고 가는 아기를 돌봐주는 곳이다. 유아방의 보모는 7-8명의 유아들을 돌보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들이 아기와 일대 일로 아기들의 마음을 안아주고 쓰다듬어주고 지원해주지 않는다. 이러한 과학 문명의 발달이 아기의 심리적인 마음의 발달에는 많은 어려움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 번 지적을 했다. 0-3세 사이에 엄마의 부재는 아기의 심리적인 마음 즉 자아의 발달에 많은 장애물을 만나게 된다. 엄마는 이것을 알고 직장에서 집에 돌아왔을 때 아기의 이러한 부재를 보상을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수없이 지적을 했다.

다시 한번 더 조현병, 자아분열적인 심한 성격장애자들이 혼자 있으려고 하고 사람들을 피하려고 하는 이러한 어려움을 어떻게 치료사가 인간을 피하지 않고 편안하게 관계를 할 수 있도록 하게 도와줄 수 있는가? 라는 것이 치료사의 핵심 문제이다 즉 환자가 친밀관계를 할 수 있도록 개발해서 도와주는 것이 아닌가?

 여기에서 세계적인 정신분석가로 널리 알려져 있는 영국의 도날드 위니코트(Donald Winnicott)의 치료기법을 간단히 소개해보도록 하자. 위니코트는 소아와 의사로써 20년 동안 병원에서 치료를 하면서 정신분석을 알게 되었고 첫 번째는 프로이트의 독일어 정신분석을 영어로 분석한 제임즈 스트라취(James Strachey)에게 13년 동안 개인분석을 받으면서 정신분석을 공부를 했다. 보통 분석가들이 4년 혹은 5년의 분석을 스승으로부터 실습으로 직접 배우게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13년 동안 배웠다는 것이 특이하다 그리고 두 번째로 그는 영국에서 여성 분석가로 등장한 조안 리비에(Joan Riviere)(영국의 여성분석가의 5인 방의 대모: 폴라 헤이만, 한나 세갈, 마가레트 리들, 수잔 이삭, 실비아 페인)로부터 분석을 받았다 그리고 그 다음에 메라니 크레인(Melanie Klein)으로부터 개인분석을 받았다. 이것으로 유추를 해보면 그는 적어도 20년 이상 정신분석가로부터 개인분석을 받았던 사람이다. 정신분석가들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정신분석의 수련 과정을 거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의 이론에서는 위의 3명의 스승들의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정신분석가들의 특징이 프로이트의 이론들과 전임자들의 이론을 수용해서 독특한 자신들의 개인적인 이론으로 개발하는 것이 전통이고 특징이다 라는 것을 뉴욕의과대학 정신과 교수이나 뉴욕 정신분석 연구와 훈련 학교의 교수인 튜트맨(Tuttman, 1981: 주㈜: 참고)은 자아와 대상의 저서에서 강조를 하면서 특별히 그가 위니코트에 대한 소상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위니코트는 어린이들을 치료하는 소아과 의사로써 그리고 소아정신분석가로써 강조한 명언이 있다. 사람들은 어린이를 대할 때 그들의 양육자인 엄마, 유모차, 우유병과 같은 것을 어린이를 기술한다 그런데 실제로 어린이의 마음을 보지 않는다. 껍데기만 보고 그 어린이를 정의를 하지만 알맹이는 정작 빠져있다. 그의 전문용어들이 정신분석에서뿐만 아니고 심리치료사들이 자주 인용하는 전문용어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대리대상(일시적 대상)(transitional object)으로 아기가 엄마의 이미지가 확실하게 인식되어지기 이전에(7개월-9개월의 엄마의 인식) 중간 단계로써 엄마의 대리물 즉 엄마의 안경, 엄마의 냄새가 나는 이불(담요), 아기곰 등에서 엄마의 이미지를 느끼고 그 물건들을 통해서 아기 자신을 달래는 물건들), 충분히 좋은 엄마(good enough mothering)(사랑은 너무 많이 주어도 혹은 너무 적게 주어도 문제가 생긴다 그런데 얼마나 많이는 정확하게 정의되어질 수가 없다 고로 충분히 좋은 양육이라는 말의 표현이 명언), 안아주기 환경(holding environment)(아기의 불안을 엄마가 흡수해서 아기를 안정시키는 것). 참 자아거짓 자아((true self, false self)(살아남기 위해서 양육자의 욕구에 부응하는 자아가 거짓 자아) 그리고 놀이치료(playing)이다. 이 용어들은 심리치료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낱말들이다. 특별히 전문가들은 어린이들이 놀이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고 지적을 한다. 엄마가 아기가 놀이를 할 때 아기는 자신이 주도적이 된다. 아기가 엄마, 아빠가 되고 엄마가 아기가 된다. 엄마는 아기가 원하는 대로 놀이를 한다, 이 때 아기는 해방이고 자유가 된다. 그리고 그 놀이를 하는 데서 즐거움이 따라온다. 엄마와 놀이는 유치원시절 혹은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 친구들과 놀이로 바뀌게 된다. 놀이를 통해서 긴장이 풀어지고 즐거움이 함께 한다. 어떤 이야기도 가능하고 인정이 된다. 그런데 오늘 날 과학문명의 발달로 놀이는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유모차가 등장하고 우유병이 등장하고 승용차의 안전벨트가 등장함으로써 아기는 엄마로부터 점점 멀어져 간다. 유아원, 영아원에 보내지고 전자오락기가 등장하면서 아기는 혼자서 장난감 조작으로 바뀌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혼자 있으면 편안해지고 함께 하면 방해를 받아서 불편하게 된다. 여기에서 이번에 치료자(필자)가 튜트맨(Tuttman)을 통해서 새롭게 알게 된 위니코트의 놀이 치료의 핵심이 있다. 그것을 소개를 하면 가장 중요한 요소로써 놀이에는 첫 번째로 긴장의 이완이 따라온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자아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위니코트의 저서인 놀이: 자아를 찾아서). 환자들의 치료에서 놀이는 대화이다, 대화의 놀이가 된다. 이 때 긴장의 이완이 초점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다음에 반드시 그냥 놀이를 하는 것이 아니고 자아의 개발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위니코트는 놀이에서 자아의 정의를 내가 살아있다.” “내가 존재하고 있라는 인식을 환자에게 심어주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을 바탕으로 치료자는 조현병 혹은 자아분열 환자를 치료를 하면서 이미 오래 전부터 2시간의 치료 회기를 가지는 것을 긴장의 방출로 사용하기 위해서이다 라는 것을 누차 반복해서 기술하고 있다. 치료자는 왜 정신분석가들이 50분으로 그리고 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가?를 분석하면서 그 핵심이 말로써 긴장을 풀어낸다는 것을 깨닫고 심리치료에서 반드시 2시간 혹은 3시간(거리가 너무 멀어서 치료실에 오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경우에는 3시간) 1회 치료 회기로 사용하고 있다. 동시에 치료의 주도권은 치료를 받는 사람이 가지고 있다. 치료자는 전체적인 치료의 윤곽은 가지고 있다. 발달 단계와 가족관계 그리고 내면의 탐구이다 그러나 치료 회기 시간에 분석을 받는 사람이 가져오는 내용 즉 화제에 초점으로 치료를 연결해 나간다. 고로 치료의 주도권은 환자가 가지고 있다.

첫 치료 회기 때 치료자는 환자에게 공통적으로 이곳은 예의범절이 없는 곳입니다. 편안하게 하세요. 말을 논리적으로 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나오는 데로 하세요. 치료사의 눈치를 보지 말아주세요. 눈을 감고 이야기를 해도 됩니다. 비스듬히 기대어(쇼파) 혹은 카우치에 누워서 해도 됩니다. 그 이유는 가장 편안함이 제 1 차적입니다.”물론 이것은 치료자가 2시간을 이끌어나갈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그 다음에 가장 중요한 치료사의 자세는 치료자가 환자의 불안에 놀래지 말아야 한다. 치료실에 오는 환자들은 우울함, 불안, 짜증, 긴장, 두려움, 공포 그리고 분노와 적대감정이 한계점을 넘어간 사람들이다 그들이 이야기 즉 환청, 환각, 살해적 분노 등에 치료사가 놀래면 그 불안은 즉각 거울반사로써 환자에게 전달이 된다. 위니코트의 안아주기 환경에서 엄마가 아기의 불안을 흡수해주는 것과 같다, 치료사는 환자의 불안을 흡수해줄 능력이 있어야 한다. 반대로 치료자의분노, 불안, 적대감정이 환자에게 꺼꾸로 흘러가는 것이 바로 반전이, 역전이가 아닌가!

치료자는 환자의 어떤 불안, 두려움, 공포를 흡수할 수 있는 자신감 즉 실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2시간 컨설팅에서 이러한 것은 환자와 치료사 사이에 상호작용을 통해서 전달이 된다. 치료자는 정신적인 어려움을 가진 자녀들이 치료실에 나오려고 하지 않는다는 문제로 호소를 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어떻게 자녀들을 치료실에 데리고 나오게 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 치료사는 이곳은 심리치료라는 간판이 없는 곳이다 고로 이웃사람들도 이러한 곳이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한다 그리고 이곳에 와서 기다리는 시간이 없다, 그리고 환자들이 서로 마주치지 않도록 시간을 10분 빠르게 운영을 한다는 말을 해준다. 문제를 가진 자녀들에게 그냥 이곳에 심리적인 어려움을 잘 들어주는 선생님이 있으니 그냥 가보자라고 편안하게 이야기를 하도록 한다, 약물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냥 이야기를 하는 곳이니 한번 그곳에 가서 그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치료를 받으러고 가지 않는다(컨설팅을 의미) 그냥 너의 이야기를 하고 그 사람이 너의 문제를 어떻게 보는가?를 한번 들어보는 것이다. 그 사람은 정신과 의사가 아니다, 약물을 처방하고 먹어라 라고 하는 사람이 아니다 라는 이야기를 하도록 한다. 고로 한번 치료사와 2시간 컨설팅을 받는 사람들의 95%가 치료 계약을 하게 된다는 것을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해준다.

치료실에서 나누는 이야기들은 환자 자신의 고통과 괴로움, 좌절, 분노, , 노여움 등을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치료자는 그냥 들어주는 것이다 여기에서 치료자가 첫 인터뷰를 시작할 때 반드시 하는 이야기가 했다. 나는 손님(환자를 지칭)의 이야기를 들을 때 눈을 잘 감고 이야기를 듣습니다. 이것을 혹시 손님의 이야기를 듣기 싫어해서 눈을 감는다 라고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 왜냐하면 내가 눈을 감는 것은 손님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리고 그것을 연결 시키는 작업을 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냥 듣는 것이 아니고 듣고 나서 서로 이야기를 연결시키기 (참가지 이자 분석가 이중 역할의 강조)(Rows, 1995: 주㈜: 참고) 위해서 입니다 라고 강조를 한다.

환자는 치료사가 중간에 피드백으로 손님의 이야기는 xxxx 해서 xxx라는 말이지요? 라고 하면 그것이 정확한 경우에는 손님은 이야기를 계속한다 그러나 그것이 정확하지 않으면 그것이 아니고 xxx 하기 때문입니다 라고 수정을 하게 된다. 이러한 관계는 1시간 30분 동안 계속된다. 나머지 30분 동안은 환자와 보호자를 모시고 함께 그 동안에 환자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를 핵심적으로 요약해서 문제의 근원을 분석해서 지적하고 앞으로 치료를 어떻게 진행할 것이다 라는 것을 이야기를 해 주면서 컨설팅이 마무리가 된다. 결과 95% 6개월 치료 계약하게 되고 치료가 시작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치료자가 환자에게 슬쩍 물어 본다. 지금까지 손님이 한 이야기와 치료자인 내가 한 이야기를 퍼센트 비율로 유추해서 몇 %를 손님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라고 물어보면 대부분이 80%는 내가(환자)하고 선생님은 약 20%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라는 말을 듣게 된다. 여기에서 핵심 포인트가 있다. 대화놀이에서는 환자가 주도권으로 이야기의 주체가 된다는 말이다.

두 번째 놀이치료 대화에서는 치료사가 환자의 배경과 정보를 알아내어서 상처의 근원과 부모와 관계를 알고 치료에 적용하는 것이 1 차 적인 목적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이것이 잘못되면 치료사가 환자의 정보를 깨는 것으로 오인되면(치료자는 분석상담 시간에 노트를 하지 않는다) 수사관처럼 변질되어지기가 쉽다. 인지행동치료에서 많이 사용하는 설문지 혹은 문답식 치료기법에서 많이 보게 된다. 행동치료는 3개월 혹은 4개월 프로그램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환자가 치료사의 리더에 따라가는 것이다. 이것이 빨리 정보를 알아 낼 수 있다는 이점이 있지만 놀이대화 치료에서는 환자가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는 것에 적당하지 않다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매 치료 회기 마다 환자는 자신의 환청, 환각, 미움과 살해적인 분노 등을 마음대로 이야기를 한다. 치료자는 어떤 내용이라고 경청한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고 환자에게는 의미가 없다고 느끼지지만 치료사에게는 핵심 실마리가 될 수 있느니 그냥 나오는 대로 이야기를 하라고 한다(자유연상).

이것이 약 10시간 정도 흘러가면서 환자는 스스로 2시간의 치료 회기에서 마음대로 이야기를 하게 되면서 긴장이 풀리고 있다는 것을 잘 모른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2시간의 치료 회기가 마치 30분 혹은 40분처럼 빨리 흘러간다는 것과 치료 이후에는 마음이 편안하고 기분이 좋다는 것을 느낄 수는 있다. 즉 내면속에 갇힌 이야기를 하게 되면 긴장이 풀리고 누적되어진 신체적 에너지(근육긴장)가 감소하고 있다는 것을 치료자가 잘 알고 있다.

이 시점에서 치료자가 슬쩍 물어본다. 지금까지 치료사와 나눈 이야기를 부모님이 몇 %를 알고 있는가? 혹은 친한 친구관계에서 몇 %를 이야기를 했는가? 고 물어 보면 부모님에게는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습니다. 친구들에게도 이러한 내면의 이야기를 한 적이 없습니다 라고 이야기를 한다. 어느 정도 문제가 조금 덜한 사람들은 어머니가 약 20% 혹은 30%를 아버지는 거의 0% 그리고 아주 친한 연인관계(신경증 환자)의 경우도 40% 혹은 50%라고 말을 한다.

치료자가 왜 그들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가? 라고 물어보면 선생님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면 친구들이 나를 싫어하고 도망을 가기 때문입니다. 나의 약점을 보면 그들이 이용하려고 하는 수많은 아픔의 경험 때문에 말을 하지 않습니다. 특별히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가? 라고 물어보면 대부분의 환자들이 어머니에게, 아버지에게 한번 이러한 이야기를 했을 때 부모님이 네가 그렇다면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모든 젊은이들이 다 그러할 것이다. 너는 지극이 정상적이디 라고 말을 하기 때문에 이야기를 해도 씨알이 먹혀 들어가지 않는. 그 부모님의 그 말은 즉시 그러한 이야기는 문제가 되지 않으니 다시는 나에게 이야기를 하지 말라 라는 경고가 아닌가? 고로 자녀들은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차단되어버리고 혼자서 끙끙거리게 된다. 부모님은 자녀들의 고통을 흡수하고 수용해서 자녀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어야 한다(위니코트의 안아주기 환경).

특별히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법과대학 1학년에서 첫 중간고사 이후에 휴학계를 내고 대학 카운슬링 센터에서 3년 동안 상담 치료를 받은 A군은 그 상담이 도움이 된 것은 분명하지만 문제 해결에는 불만족해서 치료자에게 컨설팅을 받게 되었다. 그는 초등학교 4학년의 시점에서 조울증환자인 아버지로부터 고통을 당한 어머니가 A군에게 하소연을 하기 시작해서 지금까지도 어머니는 그녀의 고통들을 아들 A군에게 하소연을 하고 있다고 털어 놓았다. 초등학교 4학년의 아들의 자아가 엄마의 고통을 들어줄 만큼 성숙하지 않았다는 것을 명약관화한 이야기가 아닌가? A군은 어머니의 그러한 고통을 들어주지만 해결책을 찾지 못해서 항상 엄마에게 미안했다고 털어 놓았다. 엄마가 자녀의 고민과 고통을 들어주고 흡수해주어야 하는데 거꾸로 엄마가 아들에게 스트레스를 뒤 짚어 씌운 것이 아닌가?  이러한 현상은 이미 수십 년간 정신분열증(조현병)치료에 평생을 바친 유명한 분석가들이 입을 통해서 환자가 스스로 가족의 십자가를 짊어진 부모 문제의 보호자 혹은 속죄양의 역할 하고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하버드 의과대학을 졸업한 정신과 의사로 40년 동안 밤나무골 병원(체스트낫 롯지)에서 약물을 사용하지 않고 조현병 환자들을 치료한 미국의 제 1 세대 분석가인 하돌드 실(Harold Searles)의 저서(Searles, 1977, 1979, 주㈜: 참고).

치료가 진행되면서 위니코트가 한 치료의 핵심은 자아를 찾도록(참 자아) 하는 것이다. 치료자는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하게 되면 몇 배의 잔소리가 따라오기 때문에 좋은 것이 좋다 라고 해서 대화를 피해버린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그것은 일시적으로 편안함을 가져올 수 있지만, 행동으로 표현하지 말고 말로써 표현하지 않으면 대화의 기술을 배울 수가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즉 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를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해야 한다.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합니까? 라고 물었을 때 치료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하게 된다.

 이미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심각한 정신장애를 가진 환자들이 0-2세의 기간 동안에 엄마와 불편함 때문에 피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의 시발점을 지적한 것처럼 0-2세는 언어의 표현이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유아기억 상실증 정상) 몸으로 기억되어진 것이다. 이것을 분석가들 특별히 신경증을 치료를 하는 치료사들이 어린시절의 상처를 해석으로 연결해서 환자가 깨닫게 하는 신경증 치료에서는 통하지만 보드라인(심한 성격장애)과 정신증 환자들은 깨달음으로 얻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신체 언어로 기억되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고로 깨달음보다 한걸음 나아가서 경험으로 직접 입력시켜주어야 한다(휘티거의 깨달음보다 경험의 강조). 고로 치료자는 환자에게 직접 몸으로 경험하고 그것을 말로써 표현하도록 감정의 이입을 경험하게 하도록 해야 한다. 몸으로 경험 즉 신체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것들을 다루게 된다. 아토피, 비염, 천식, 본태성 고혈압, 긴장성 두통과 편두통, 소화성 장애들(위궤양, 과민성 대장염) 등이 그들이다(Weiner, 1977, 주㈜: 참고). 이것을 분석으로 다루어서 밝혀낸다. 그리고 그 시점에서 관계에서 입은 상처를 치료 회기에서 재연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것을 표현하도록 훈련을 시킨다. 이것이 커뮤니케이션 훈련이다.

 치료자는 환자가 치료자의 감정적인 지적을 직접 경험으로 몸으로 느끼고 말로써 표현하도록 따라오도록 한다.

 어머니! 지금까지 내가 어머니에게 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중간에서 가로막지 마시고 끝까지 듣고 나서 나중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도록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그냥 끝까지 내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내가 어머니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누구에게 이야기를 하겠습니까? 내 이야기를 들어주셔야 내 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치료사 선생님이 강조했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나서 이야기를 시작하도록 한다. 이것이 바로 자아의 목소리이다. 내 목소리를 내도록 하는 것이다. 자아치료의 핵심은 자아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내 의견과 내 생각과 내 느낌이 나이다. 이것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것은 그리고 부모님과 내 생각이 다른 것은 정상적이다. 이것은 내가 이 세상에서 유일하다는 증거이다. 내 생각과 느낌과 가치관과는 다른 사람들과 달라야 한. 이것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치료자는 여러번 언급을 한 것처럼 치료 심리학을 전공하지 위해서 10년 동안 준비를 해서(10개년 계획)35살 미국에 유학을 가서 미국에서 대학 1학년을 새로 시작한 사람이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롱 비치)에서 필수과목인 논술쓰기, 도서관학, 그리고 토론학의 3 과목을 배우면서 정말로 삶에서 피와 살이 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 중에서 토론학은 미국이라는 사회가 전 세계의 이민자들이 모인 사회로써 그들이 미국이라는 사회 안에서 용광로)(멜팅 포트(melting pot))로써 표현을 하는 것처럼 대학 1학년 때부터 토론학을 필수과목으로 가르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과목을 배우면서 치료자가 배우고 깨닫게 된 것을 잠깐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이 과목의 수강생들은 필수과목이기 때문에 대부분 1학년, 2학년들이다. 20명의 수강생들은 6명 혹은 7명으로 조별로 나누어진다. 교수는 첫 시간에 조별과 운영 과정을 설명하면서 이 과목은 필기시험으로 점수를 제공하지 않는다, 대신에 직접 학생들 앞에서 1개조 6명이 반반씩 나누어서 토론을 하게 된다 그 결과 나머지 그 토론을 경청한 학생들의 질문으로 그 토론이 끝나고 즉시 교수가 각각의 학생들에게 점수를 제공한다. 이러한 토론을 적어도 각 조(그룹) 3회 혹은 4회를 경험하게 된다.

 치료자의 첫 번째 토론이 경험이다. 교수가 제공한 질문은 창조론과 진화론이 토론이었다. 물론 토론이 1주일 전에 교수가 두 주제에 대한 참고 문헌들을 제공한다. 그 참고 문헌들을 적어도 다 읽어보고 토론에 참여하라고 한 것이었다. 치료자는 우리나라에서 배운 대로 적당하게 다른 동료들의 주장에 나도 동의를 합니다. 찬성합니다. 혹은 반대 합니다 라는 말로써(영어구사력의 빈곤도 한 개가 원인) 적당하게 넘어갈 줄 알았다(우리나라의 대학에서 조별 학습은 단체로 점수를 받기 때문에 잘하는 몇몇 사람들이 과제를 도맡아서 하지만 점수는 그 그룹이 같이 받는다) 그런데 토론이 끝나고 나서 교수가 나에게 채점판을 제공한 것은 0점으로 점수가 나왔다. 깜짝 놀래서 교수님 나에게는 왜 점수가 없습니까? 라고 물었을 때 그 교수가 자네는 토론을 하지 않았다. 자네의 주장이 없었다, 남의 주장에 따라간 것이 아닌가? 그것은 토론이 아니다치료자는 그 때서야 깨닫게 되었다. 말이 되든지 안되든지(영어 구사력)간이 죽기 살기로 참고문헌을 읽고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 다음 토론 그룹에서는 교수가 제공한 참고문헌을 찬성파와 반대파의 참고 문헌을 전부 읽고 토론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 때 교수는 나를 지적하면서 자네가 제일 토론을 잘했다고 칭찬해주었다.

여기에서 내가 배운 것은 가치 문제는 정답이 없다(수학은 반드시 답이 있다)는 것이다. 어떤 것을 주장을 해도 그것은 내 생각과 느낌과 상상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고로 자기 주장을 해야 한다.

여기에서 배운 깨달음을 나는 이후에 치료시간에 환자들에게 이야기를 해주면서 대화를 피하지 말고 참가하도록 하는 훈련을 시키게 된다. 물론 이러한 자기 주장 훈련(assertive training)이라는 치료 기술들이 행동학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환자들은 대부분이 동료들과 이야기를 할 때 그들의 주제에 대해서 내가 모르기 때문에 참가할 수 없습니다 라고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그냥 말이 없이 참가해서 불편함과 긴장의 누적으로 2시간 이상 버틸 수가 없다 심하면 졸도, 기절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속감이 없어지고 그리고 외로움으로 외톨이가 되면서 피하게 되고 혼자 있게 됨으로써 편안하게 된다 이것에 게임들이 함께해서 외로움을 피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대화 훈련을 하면서 환자로 하여금 자아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바로 내 자아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고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상대방에게 알리는 것이 바탕에 깔려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 이러한 시점에서 환자들이 부모님과 대화 그리고 동료들과 대화 그리고 사람들과 관계에 조금씩 참가해야 하는 이유를 이해하게 되면서 커뮤니케이션의 훈련에 가속도가 붙게 된다.

여기에서 강조점은 치료실에서 치료자와 환자의 대화가 그 다음 단계로 그 이야기의 대상이 되는 상대방(그것이 어머니로부터 시작해서 아버지로 그리고 형제들로 그리고 나아가서 친구들과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로 일반화 과정으로 연결시킨다 라는 점이다. 이러한 것이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치료가 10회 혹은 20회 혹은 30회로 진행되면서 그 동안에 치료실에서 치료사와 환자가 나눈 이야기들을 이러한 방식으로 대화로서 전달하는 훈련이 포함되어져 있다.

치료자는 30회 정도 치료 회기가 지나갈 때쯤에 환자에게 넌지시 물어본다. 나와 치료를 하면서 약 20시간 혹은 30시간을 거치면서 치료자와 편안함을 느끼는가? 혹은 불편함으로 껄끄러움과 부자연스러움을 느끼는가? 라고 물어 보면 대부분이 선생님과 이야기할 때는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편안합니다 라고 이야기를 한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편안하다고 생각이 됩니까? 라고 물어 본다 그러한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하는 환자들에게 치료자인 나는 손님(환자를 지칭)에게 약물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내가 손님과 2시간 동안에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라고 물어보면 환자들은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이야기가 어떤 것입니까? 라고 물어 보면 즉각 환자들은 선생님 한데서 내 고통과 비밀과 억울함을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치료자는 이 시점에서 환자에게 내 고통과 내 수치심과 내 비밀을 이야기를 하면 내가 지금까지 꼭꼭 마음 속에 숨겨놓은 비밀들을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치료자 앞에서는 숨길 필요가 없기 때문에 마음이 편안한 것이 아닙니까? 마음 속에 숨길 것이 많으면 조심을 해야 하기 때문에 나는 긴장하고 그리고 예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왜냐하면 내가 조심하지 않으면 실수를 하게 되고 그리고 내 약점이 들어나게 되면 내가 무시당하고 부끄럽고 수치스럽기 때문에 내가 항상 매사에 조심하고 예민하게 되기 때문에 나는 늘 긴장 속에서 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아인슈타인의 에너지 이론으로 E=MC제곱으로 우리의 몸뚱이는 에너지이고 감정과 마음이 에너지이기 때문에 예민함과 긴장은 근육의 긴장을 들어올리게 되고 결국은 면역 기능을 감소시키게 되면서 몸이 스트레스가 과도하다고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이 아토피(습진), 비염, 천식, 위와 장의 소화기 장애, 고혈압 그리고 두통 등이 그 증거입니다. 이러한 증세들은 약으로 효과가 별로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것을 심리신체 장애 혹은 심인성질환이 라고 부르는 것입니다(Wilson & Mintz, 1989, 심리신체 질병의 증세들을 보라: 주㈜: 참고).

이러한 치료의 과정을 거치면서 환자는 처음에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비밀, 단점을 이야기를 하면 기절초풍에서 기겁을 하게 되는 것으로부터 조금씩 치료자의 의견을 수용하고 따라오게 된다. 치료자는 에릭슨(Erikson, 1968: 주㈜: 참고)이 그의 저서 주체성의 위기에서 미국의 남부지역인 미시시피강의 인근 요크나파타파에서 남부의 전형적인 남부의 문학으로 소설, 단편, 극작품. . 수필을 썼던 윌리암 포커너(William Faulkner)(1949년에 노벨 문학상)의 작품인 음향과 분노(the Sound and Fury)(1929)(신경증과 정신이상으로 고통과 자살을 그려낸 한 가족의 이야기 - 의식의 흐름의 기법(미국의 심리학의 아버지 윌리암 제임즈의 의식의 정의와 그의 동생인 헨리 제임즈의 소설 기법이 의식의 흐름)(필자는 영문학의 전공에서 심리학 전공 참고)를 쓴 사람으로 그가 한 유명한 명언 완전히 미친 사람도 없고 완전히 정상적인 사람도 없다라는 말에서 인간은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고 모두가 비슷한 심리적인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지만 정상인 사람으로 보이려고 애를 쓰는 것일 뿐 내면으로 들어가 보면 모두가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를 해 준다

 친하다 라는 말 즉 친밀감(intimacy)은 바로 편안하고 긴장이 없고 불편함이 없는 관계를 의미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친밀한 사람들과 내면의 깊숙한 이야기를 나눌 때 그리고 내가 비밀이 없어 서로 상대방을 비밀을 많이 알수록 우리는 친한 친구라고 말을 하고 있지 않는가? 내 자신의 비밀을 많이 밝힐수록 치료자 앞에서처럼 마음이 편안하고 긴장이 풀리고 그리고 불편함이 줄어들어가서 편안하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또 한가지는 환자들이 위와 같은 상처를 받은 그 자극이 있다. 어떤 에피소드가 있다. 그 상처 때문에 그 다음부터 그것을 피하고 도망을 간다는 것이다. 환자는 그것에 놀래서 겁을 집어먹은 것이다. 컨트롤 능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자아가 그것을 감당할 능력에 결함이 생긴 것이다 고로 피하게 된다(페비안의 자아분열의 핵심 참고). 여기에서 치료의 핵심 포인트가 한가지 더 강조되어진다 즉 직면(confrontation)이다(Adler, 1973: 심리치료 안에서 직면을 보라: 주㈜: 참고). 피하지 말고 그것에 대면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한번에 하는 것은 아니다 피하는 것의 심층에는 상처로 인한 수치심과 모욕감이 숨어있다 분석으로 그것을 찾아내서 계속해서 다루게 되면 감각이 무디어진다. 그것에 무감각하게 된다. 이것을 행동학에서는 감각박탈이라고 부른다. 감각에 계속 노출이 되면 그 감각에 두려움이 없어지게 된다. 환자가 치료실 안에서 하는 이야기들은 모두가 환자의 과정의 상처받음 마음 들이다. 그것을 지금까지 부모님에게조차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들이 아닌가?

여기에서 정신분석가 혹은 심리치료사가 아니면서 자신의 상처받은 문제를 피하다가 결국은 그것으로 한 사람은 편집증 정신분열증(조현병)에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조울증과 조현병을 두 개를 함께 가진 분열형감정장애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결국은 치료를 받아서 그 문제를 피하지 않고 그 문제에 직면해서 빠져 나온 세계적인 인물이 두 사람이 있다 그들의 삶은 영화로 만들어져서 우리나라에서도 상연된 영화가 바로 아름다운 마음의 주인공 존 내시(John Nash)와 호주의 천재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헬프캇(David Helpgott)의 이야기이다.

아름다운 마음의 영화(2001) 속에서 존 내시는 수학의 천재로써 프린스턴 대학에 한센군과 함께 무시험 공동 장학생으로 입학한 대학생이었다. 두 경쟁자로써 내시는 한센군과 장기게임에서 패배한 벌칙으로 그는 인근의 바(bar)에 있는 한 아름다움 여학생에게 말을 걸어보라는 제의에 용감하게 그 여학생에게 데이트를 신청하면서 말을 잘못했다가여학생으로부터 뺨을 얻어맞게 된다. 물론 그 모욕감이 편집증 정신분열증의 원인이 된 것이 아니었다. 그 영화는 그가 대학생일 때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어린시절의 상처의 근원은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점점 동료들과 소외로 혼자서 생활하면서 상상 속의 인물로 외로움과 소외감을 피하기(정신분석학에서는 이것을 백일몽) 위해서 환각 속에 빠지게 된다. 그의 이상적인 친구인 허만을 만들어내면서 그와 생활하게 된다 또 한 국방성의 파셔 라는 인물의 지시를 받아서 잡지들과 신문들 속에서 러시아 비밀 핵무기 첩보의 암호를 풀어내라고 하는 시지를 받게 된다. 점점 그 비밀암호를 풀기 위한 몰입 속으로 빠져들어가면서 편집증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물론 이것들은 모두가 그가 편집증 정신분열증의 환각임이 밝혀지게 된다. 실제 그의 전기를 쓴 컬럼비아 대학이 언론학 교수인 실비아 나사르(Nasar)의 저서인 아름다운 마음에서는 영화와 다르게 그는 호모섹스(동성애)를 그리고 편집증 정신분열증으로 1940년대(정신증 약물의 등장 이전) 정신병원에 입원해서 전기 쇼크 치료와 그리고 인슐린 쇼크치료를 받았다고 노트되어져 있다(2020, 11, 21, 위키피아). 그는 이후에 등장한 약물들과 정신과 치료의 도움으로 회복되면서 그의 청년기 때 여학생과 데이트에서 뺨을 얻어맞으면서 경쟁자인 동료인 한센군과 논쟁을 했던 핵심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어떻게 관계를 풀어서 성공으로 향하느냐? 에 직면해서 드디어 게임이론으로 연결될 수 있다 이것은 심리역동학의 개념을 도입한 노동 문제 갈등들의 해결에 이바지하게 된 공로로 그는 1994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게 된다.

내시의 삶은 영화로뿐만 아니라 미국의 PBS 공영방송에서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서 방영을 했다. 그 때 그 제목이 화려한 미침(A Brilliant Madness)의 제목으로 소상하게 내시의 삶을 재 조명했다. 치료자가 그 제목인 화려한 미침을 이름을 바꾸어서 명예로운 미침(광기)로 제목을 바꾼 것이다(2020, 11,21, 위키피아).

또 한 사람은 이미 여러 번 소개를 했던 호주의 전채 피아니스트 데이비드의 삶을 영화 한 샤인(Shine)으로 1996에 영화(제프리 러시(Geoffrey Rush) 아카데미 주연 남우상)로 상영되었다. 주인공의 아버지 피터는 어린시절에 음악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피터의 아버지는 유태인 랍비(종교인이자 법률가)로써 음악을 하면 굶어 죽는다는 강압으로 절대도 음악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강압을 했다. 피터는 몰래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서 바이올린을 켜다가 아버지에게 들켜서 박살이 난다. 그의 꿈을 아들인 데이비드에게 세계에서 제일가는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되라고 강압을 했다. 아들 데이비드는 천재적인 소질로 어린이 음악 경연대회에서 1 등 상을 휩쓸었다. 아버지는 2등은 소용없다 반드시 1등을 해야 한다 그리고 세계에서 어려운 피아노 곡인 러시아의 작곡가가 쓴 라흐마니노프 제 2 을 쳐야 한다고 강압을 했다. 아들의 개인 교수를 했던 아버지는 아들의 능력에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처음에 아들의 천재성에 아들의 피아노 공부를 도와주겠다는 제의했다가 냉정하게 모욕을 주어던 로젠 피아노 선생님에게 할 수 없이 데리고 가서 그것도 레슨 비용이 없으니 무료로 지도를 부탁하게 된다. 로젠 선생님은 데이비드가 점점 피아노 실력이 늘어나서 더욱 더 피아노 공부를 더 이상 지도하기 어려워져서 더 훌륭한 공부를 하도록 유학을 권유하게 된다. 그러나 아버지는 집을 떠나서 공부를 하는 것은 절대 반대한다(유태인 집단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아버지는 아들이 눈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 없는 사람). 데이비드가 사춘기로 접어들어가면서 미국에서 피아노 교수가 데이비드를 초대를 했다. 초청장을 아버지에게 보여주었을 때 아버지는 그 초청장의 불에 집어 넣고 노발대발 하면서 아버지에게 초죽음을 당하도록 폭력을 당하게 된다. 그 이후 다시 기회가 왔다. 데이비드는 영국의 왕립음악 대학에서 장학생으로 초청을 받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것을 아버지에게 이야기하지 않고 몰래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영국에서 라흐마니노프의 연주를 전공하려고 했을 때 외팔이 지도 교수가 말리게 된다. 음악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가슴으로, 감정으로 연주하는 것이기 때문에 라흐마니노프(그 지도 교수가 시도했다가 실패한) 연주를 몰입하게 되면 결국은 미친 사람이 될 것이라고 경고를 했다. 그러나 데이비드는 나는 이미 미쳤기 때문에 이 이상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어린시절에 상처로 각인 된 것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벗어날 수 없다, 아버지의 곁을 수천 만 km로 물리적으로 떠났지만 정신적으로 아버지의 말에 항복한 것이 아닌가? 결국 그는 졸업 때 최우수 학생으로 내외 귀빈들이 모인 졸업식 장에서 졸업생 대표로써 라흐마니노프 제 2 악장을 성공적으로 연주하고 나서 그 자리에서 졸도로 기절해서 정신병원으로 실려가게 된다. 아버지는 이미 데이비드가 영국으로 떠난 후에 아들과 인연을 끊었다. 데이비드가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를 수취인 거부로 되돌아왔다. 그는 정신병원에서 입원으로 15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병원에서 입원으로 줄담배와 혼자서 중얼거리는 조울증과 정신분열증의 혼합인 분열형감정장애자가 된 외톨이였다. 데이비드의 주치의인 정신과의사는 당신은 음악으로 미쳤으니 절대로 음악을 손대서는 안 된다 음악을 하게 되면 증세가 재발하게 될 것이다라고 경고를 했다.

그는 15년 동안 음악을 피했다. 그런데 어느 날 정신병원에 교회에서 위문단이 왔다. 강당에서 음악으로 위문 공연을 할 때 피아노 연주자 옆에서 데이비드가 피아노 연주자의 악보를 정확하게 넘겨주는 것을 본 피아니스트가 당신이 음악을 잘아는 것 같은데 이름이 무엇입니까? 라고 물어 보았다. 그 때 데이비드가 나는 피아노를 잘 모르지만 조금은 압니다. 내 이름은 데이비드 핼프갓 입니다 라고 대답을 했다. 그 피아니스트는 깜짝 놀랬다 당신이 왕립음대에서 수석 졸업으로 라흐마니노프 연구를 한 그 학생입니까? 라고 물었고 데이비드가 그렇다고 대답을 했을 때 그녀가 놀랬다. 그녀는 병원의 원장에게 왜 데이비드가 아직도 15년 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는가? 라고 물었을 때 보호자가 없기 때문에 데이비드가 퇴원을 해서 돌아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라는 말을 듣고 그녀가 대신 보호자가 될 수 있겠는가? 라고 물었고 그렇다고 허락을 받아서 15년 만에 정신병원을 나오게 된다는 실화를 영화 한 것이었다. 이후에 데이비드는 그가 금기로 15년 동안 피했던 음악직면하고 점차적으로 주변의 격려와 자신감을 얻어서 회복으로 향하게 된다(더 소상한 것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의 블로그에 샤인에 대한 소상한 분석을 보세요). 심리치료는 어린시절에 금기시 된 상처를 뚫어내야 한다. 이것을 정신분석의 전문용어로 뚫고 나감(working through)이라고 부른다.

이제 직접 치료의 사례를 통해서 친밀감에서 결함을 가진 사람을 어떻게 치료를 해나가고 있는가? 를 실제 치료에서 35세의 미혼 남자의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치료자는 2020, 9월 달에 한 젊은이 B씨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는 35세의 직장 인으로써 3년 전에 6개월 동안 정신분석을 치료 받았다 그리고 또 다른 분석가로부터 7개월 동안 정신분석 치료를 받았던 사람이라고 소개를 했다. 치료자의 홈 페이지에서 사례들을 읽어보고 나서 조현병을 성공적으로 치료한 것을 알고 자신의 문제를 의뢰하게 되었다고 했다. 자신은 조현병은 아니고 사회생활을 하는데 대인관계의 어려움 때문이라고 했다. 2시간 컨설팅을 받게 되었다. 컨설팅에서 그가 아버지로부터 어린시절에 많은 어려움을 경험했기 때문에 지금도 아버지와 닮은 직장 상사를 만나서 그와 갈등 때문에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3번이나 직장을 옮겨 다녔다고 호소를 했다. 특별히 그는 여성들과 만나게 되면 2회 혹은 3회를 넘길 수가 없게 된다고 했다.

1주일에 1회씩 2시간의 분석 치료의 과정에서 조금씩 그의 친밀감의 결함이 밝혀지게 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어린시절에 골수염의 치료에서 최고 적합한 시점을 놓쳤기 때문에 장애인이 되면서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분노가 엄청났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결혼 이후에 늘 저녁 시점에서는 술로 세월을 보냈다. 아버지는 조그만 소주병(참이슬)이 아닌 대병(2 L)의 소주를 박스로 사놓고 술을 마시면 동네 사람들과 시비를 하기 일수였다. 그는 늘 아버지가 무섭고 두려웠다고 했다. 그는 어머니와 2명의 누나들과도 관계가 어렵다고 털어 놓았다. 그는 유치원 시절의 기억이 거의 없었다. 초등학교 2학년 시점에서 그는 늘 사람의 근육질에 대한 그림을 그렸다. 그가 그린 노트 3권의 그림을(그림을 잘 그리는 것에 취미가 아니고) 아버지가 그에게 한마디도 없이 학교 담임 선생님에게 가지고 가서 왜 우리 아들이 시간이 있으면 이렇게 그림 그리기에 집착하는가? 를 질문을 했다는 것을 이후에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 선생님이 어떤 대답을 했는지? 혹은 아버지가 무슨 대답을 듣고 왔는지? 를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또 한가지는 B씨는 3살 위의 누나와 1살 위의 누나와 어머니가 늘 그들이 함께 모여서 다른 사람들의 뒷담을 할 때 그는 그곳에 끼이지 못했다고 털어 놓았다 그리고 아버지와 관계의 어려움 때문에 아버지와 접근을 두려워했다. 그는 초, 중학교 시절에 묻는 말에만 대답을 했다. 가족들과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금은 이야기를 잘 하는 편이었다. 누나와 어머니가 그에게 관심을 가지고 가까이 접근을 하면 불편하다고 했다. 그래서 관심을 가지는 것이 싫어진다고 했다. 누나가 그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면 두려움이 생긴다고 했다. 어떤 두려움인가?를 물어보았을 때 B씨는 혹시 누나와 엄마가 B씨에게 섹스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 큰일 날 것이다 라고 근친상간의 두려움이 틀림없다고 했다.

10시간의 분석으로 B씨는 그가 초, 중학교 시절에 아버지가 잠이 들면 안방에 몰래 들어가서 어머니가 잠자는 옆에 몰래 붙어서 잠을 잤다고 털어 놓았다. 치료자가 어머니가 아들임을 알고 B씨는 안아주거나 포옹을 해주었는가? 라고 물었을 때 그러한 기억이 없다고 했다. 고교 1학년 때 그는 기숙사 고교에 갔기 때문에 그 이후에는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머리가 명석해서 학교에서 늘 1 2등을 했다 고교 졸업 후에는 일본 대사관에서 매년 실시하는 10명의 장학생 선발에서 합격해서 3년 동안 일본 정부의 장학금으로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한 재능있는 젊은이였다. 1년 동안은 일본어 어학 연수원에서 그리고 나머지 2년은 일본의 xx대학 공과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사람이었다. 3년 이상의 일본에 유학을 계속하게 되면 자비 부담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3년 후에 귀국해서 대학을 졸업을 했다.

그 시점에서 B씨는 일본유학 1년 차에 그의 방에서 함께 룸메이트로 있는 2명의 후배의 부모들과 그의 어머니가 유학자녀 방문 초청으로 일본에 왔었다고 했다. 그 때 한 방 안에서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후배 부모님들이 보는 앞에서 그의 엄마의 무릎에 팔베개를 하고 누워있는 것을 보고 한 후배 아버지가 청년이 된 어른이 엄마의 무릎에 머리를 베고 누운 것을 농담 삼아서 이야기를 한 것에 대해서 어머니는 아들이 막내둥이라서 귀여움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농담을 한 것을 기억을 했다. 그 때 어머니가 B씨의 얼굴을 쓰다듬어 주었는지?를 물어 보았을 때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또 한 개의 이벤트는 몇 년 전에 최근에 그가 어머니의 집을 방문을 했을 때 어머니가 설거지를 하고 있을 때 어머니 뒤에서 두 손으로 어머니를 감싸면서 어머니를 껴 앉은 것을 회상을 했다. 그 때 어머니가 뒤로 돌아서서 아들을 손으로 안아주었는지?를 물어 보았으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또 다른 한 개의 이벤트는 B씨가 일본에 2년 차 유학 생활을 하고 있을 때 둘 째 누나가 혼자서 계획을 세워서 동생이 거주하는 일본에 여행을 오게 되었다. 여행사를 통해서 여행을 온 것이 아니고 누나 혼자서 남동생이 일본에서 2년 동안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남동생의 안내로 일본 여행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B씨는 누나와 함께 있는 것이 불편하고 껄끄러워서 피했다가 마지막 하루는 할 수 없이 누나와 함께 시내 구경을 안내해주었는데 누나는 남동생에게 서운함을 이야기를 했었다고 했다.

 둘 째 누나는 지금은 결혼을 해서 자녀들과 잘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큰 누나가 결혼 후에 매형의 도박과 외도로 이혼으로 지금은 B씨와 3년 동안 함께 살다가 지난 주일에 아파트의 계약 기간이 끝나서 서로 이사를 나와서 서로 독립해서 생활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3년 동안 누나와 함께 살면서 누나와 접촉에서 불편함을 느꼈기 때문에 주로 자신의 방에서 혼자서 생활 했다고 털어 놓았다. 치료자와 15시간 정도의 치료 회기가 흘러가면서 누나와 대화를 가졌다. 누나에게 지금까지 자신의 인간관계 때문에 한 심리학 교수님에게 상담을 받고 있다고 전제를 하면서(그는 지금까지 누나에게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는 것을 비밀) 자신이 특별히 여성들과 사귀게 되면 자신이 버림받지 않으려고 피하게 된다는 말에 대해서 누나는 네가 진실로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지 진짜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네가 좋아서 그 사람에게 다가가게 된다고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털어 놓았다. 치료자는 누나가 심리적인 문제에 너무 둔감한 것을 느꼈다.

 그는 특별히 30세 때 인터넷으로 일본의 한 여성과 채팅으로 만나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일본에서 3년 동안 유학한 이야기들 그리고 가족들의 일상적인 이야기를 3개월 동안 나누었다고 했다. 2일 혹은 3일에 한번씩 그냥 직장에서 혹은 일상의 가족 생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녀는 20대 중반으로 B씨를 좋아해서 한국에 와서 만나고 싶다고 어디에 살고 있는가? 그리고 그 인근의 호텔을 이야기해 달라고 소상하게 물어보았다. 그 시점에서 B씨는 그녀가 정말로 나올 것 같아서 두려움 때문에 그녀에게 그만 사귀는 것이 좋겠다고 이야기를 하고 단절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리고 B씨는 우리나라 여성들과도 몇 년 전까지 몇 번의 데이트를 소개받아서 데이트를 했다고 했다 그런데 1회 혹은 2회가 넘어가면 그녀와 함께 있는 것이 불편해서 관계를 먼저 단절해버린다고 했다. 어차피 그녀에게 거부당할 것 같아서 먼저 그녀에게 헤어지자고 한다고 했다.

 B씨의 남자 친구 관계를 물어 보았을 때 20년 지기 남자 친구와 1달 혹은 2 달에 한번씩 만나는 친구가 몇 명 있다고 했다. 치료자가 지금까지 약 10시간이 치료 회기에서 나눈 치료자와 이야기를 그 친구들에게 몇 %를 했는가? 라고 물어 보았을 때 그는 20%정도라고 했다. 그는 그들이 만날 때 그냥 일반적인 이야기들 직장에서 지나는 이야기들 가족 이야기들 등등 가벼운 이야기만하고 깊이 있는 내면의 이야기들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그 친구도 그에게 자신의 비밀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기 때문에 그냥 그것이 일반적인 이야기로 흘러가게 되었다고 실토를 했다.

  1회 치료 회기에서 치료자는 B씨에게 치료 회기 시간에 나와 이야기를 1주일에 2시간씩(컨실팅을 포함하면 4시간) 하면서 나와 불편한 느낌을 퍼센트 즉 100%, 50%, 0% 로 불편함을 표현해 보라고 했을 때 30% 정도만 불편하다고 했다. 그는 웃으면서 선생님과 대화를 할 때 선생님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맞장구를 치면서 호응 할 때는 불편함이 0%가 된다고 했다.

 치료 초반기에 특이한 것은 치료자의 치료실에 들어올 때 B씨가 지나치게 겸손하고 예의가 발라서 깍듯이 인사를 하고 공손하게 의자(쇼파)에 앉아서 이야기를 시작할 때 그는 양쪽 다리를 가지런히 바르게 하고 두 손을 양쪽 다리 위에 모으고 올바른 자세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고 치료사가 그러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본인의 행동을 알고 있는가? 라고 물었을 때 B씨는 그러한 것은 습관적이 되어서 모른다고 했다. 치료자는 그것이 지나치게 예민하고 조심스러워서 긴장하고 있다는 증거임을 지적하면서 B씨의 긴장도가 보통사람보다 엄청나게 높다는 것을 지적을 했을 때 그가 시인을 했다.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페니스와 고환 사이에 습진(아토피)으로 3년 동안 가려워서 긁어 딱지들이 생겼다고 했다. 고교 1학년 때 피부연고(무좀)약을 바르면서 조금은 완화 되었지만 지금도 남아 있다고 했다. 이 때문에 그는 분리수거 때 마다 분리수거를 하면서 전화를 받게 되면 반드시 비누로 손을 씻고 다시 분리 후에 또 손을 씻는 결백증(강박증)이 있다고 털어 놓았다. 그리고 밤에 숙면을 하지 못하면 뒤통수가 당기고 머리가 무짓끈해서 하루 종일 머리가 쑤시는 두통이 가끔 있다고 했다. 심리신체 장애가 아직도 남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Alexander, 1945, 1947: 주㈜: 참고)

 치료자는 B씨가 엄마와 2명의 누나들로부터 관심을 받으면 껄끄럽고 불편한 것은 근친상간의 욕구 즉 누나와 어머니에게 섹스 욕구를 느끼는 것으로써 자신의 심층에 있는 친밀감의 결함을 방어하고 있다는 것을 지지적 했을 때 B씨는 깜짝 놀랬다. 그는 전임의 2 명의 분석가로부터 6개월 이상의 분석 치료를 받으면서 어린시절의 분석이 깨달음으로 이해가 되는데 즉 느낌으로 이해가 되지만 행동의 변화가 따라오지 않았기 때문에 치료가 전전이 없는 제자리걸음으로 느껴졌기 때문에 그만 두었다고 솔직하게 이야기를 했다.

 치료자는 전임 분석가는 신경증 치료 기법으로 심한 성격장애와(친밀감 결함)조현병 치료에는 어느 한계점을 넘어가면 제자리 걸음으로 치료가 정돈 상태가 된다는 것을 이야기를 해 주었다. 치료자는 어린시절에 3-5세의 오디팔 기간에 어린이들의 섹스 욕구가 표면화 되는 기간으로 그 시점에서 어린이는 발기를 느끼고 부모님의 섹스 관계를 눈치채게 된다. 그러나 정확하게 어떻게 섹스를 하는가?를 모르지만 부모님의 신체접촉을 통해서(안기고 업히고 쓰다듬어 주는 신체접촉이 바로 사랑의 전달) 사랑과 친밀감을 느끼게 되는데 이것이 사춘기에서 부모님에게 섹스 욕구가 근친상간으로 놀래서 집 밖으로 이성을 향하게 되어 집으로부터 바깥 세상으로 향하게 된다. 그런데 B씨가 누나와 엄마에게 섹스감각을 느끼는 것을 당연한 정상적인 것이다. 그러나 누나와 엄마가 B씨에게 섹스 감각을 느낀다면 그것을 병적이다. 즉 근친상간으로 향할 수 있다. B씨는 치료자의 이러한 말에 35년 동안 살아오면서 누나와 어머니에게 섹스 욕구를 느낀다는 것이 정상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섹스에 무지와 친한 친구관계가 없다는 증거).

 전임 분석가는 두 사람이 다 누나와 엄마에게 섹스적인 느낌 때문에 여성을 피하게 되는 원인이라고 진단을 했다고 실토를 했다. 치료자는 근친상간 욕구 때문에 이성을 피하는 것이 아니고 0-3세 이전에 엄마와 친밀한 관계에 결함이 근본문제임을 지적을 했다.

 이 시점에서 새로운 실마리가 한 개 등장을 했다. 어머니가 어린시절에 2살 혹은 3살 때 산사태로 그 시골 동네가 파묻혀서 몰살 당하고 살아남은 어린이들은 국가가 고아원을 설립해서 그들을 돌보아주었고 어머니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아원에서 일자리를 구해서 독립해서 나와서 살다가 20대 중반에 아버지를 소개 받아서 아버지에게 관심이 없었는데 아버지가 스토커처럼 매달리는 통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어머니는 2세 혹은 3세 때 어머니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신체 접촉을 통한 친밀감의 형성 경험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아들인 B씨에게 신체접촉의 사랑 즉 친밀감을 제공할 수 없었다 라는 가설이 설득력이 있게 된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B씨가 어머니와 아버지가 잠을 자는 안방에 아버지가 잠을 할 때 슬그머니 들어가서 어머니 옆에서 잠을 잔 것, 설거지를 하는 어머니를 뒤에서 끌어안은 것, 그리고 일본 유학 때 후배들의 부모님이 보는 앞에서 어머니 무릎에 팔베개를 한 것 등은 어린시절에 신체접촉의 욕구 불만족의 표현이 아닌가? B씨는 깜짝 놀래면서 그렇다면 똑 같은 환경에서 자란 누나들은 왜 이성관계가 정상인가?(두 명의 누나는 결혼을 했다).

 치료자는 2명의 누나와 어머니가 서로 모여 앉아서 친척들의 뒷담을 하면서 이야기를 늘 나눈 것은 불편함이 없다는 증거이고 껄끄러움이 없다는 자연스러움의 표현이 아닌가? 그래서 누나들은 친구들과 크게 어려움이 없이 이야기를 할 수 있었지만 B씨는 초, 중학교 시절에 아주 친한 친구가 없었다는 것이 그 증거이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저학년 때 방과후에 집에 오면 어머니와 미주알고주알 학교에 있었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정상인데 어머니와 누나들은 이야기를 하면서 함께 모여있는데 B씨는 불편해서 피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옆에 있는 것도 불편했기 때문에 B씨는 혼자서 외로움을 피하기 위해서 그림 그리기를 했다(그림을 그리는 만화가, 화가가 꿈이었기 때문이 아니고, 그는 지금 그림 그리기를 하지 않는다) 외로움을 피하기 위해서 초등학교 시절에 3권의 노트에 사람들의 그림을 그렸다. 이것이 바로 친밀감의 회피를 방어하는 자아 보호이다 라는 것을 지적해주었다.

 치료자는 지금 20시간으로 약 2개월 반으로 1주일에 1회씩 분석 치료를 받으면서 치료자에게 치료의 첫 시간에 20%의 불편함을 느낀다고 했는데 20년 동(20세 때 본가에서 분리되어 지금까지 혼자 살고 있다) 부모님, 어머니(아버지는 B씨가 일본에서 유학 1학년 때 사망)와 그리고 3년 동안 누나와 함께 살면서 그들에게 껄끄러움을 느껴왔는데 불과 치료사와 20시간에서 80%의 편안함을 느끼는 원인이 무엇인가? 라고 물었을 때 B씨는 웃으면서 자신의 내면의 갈등과 고통과 비밀을 이야기를 하면서 긴장이 풀리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기뻐했다.

 그는 이 시점에서 누나가 이사를 가지 이전에 몇 번 누나와 대화를 가졌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지난 주일에는 자신의 어린시절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했다.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가?를 물어 보았을 때 어머니가 자신에게 사랑을 많이 주었는가? 궁금하다고 했을 때 어머니와 누나들은 네가 가장 엄마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았다 라고 이야기를 했다고 했다. 치료 회기 시간에 아직도 왜 어머니의 옆에서 누웠을 때 어머니의 몸을 그리고 어머니가 안아주었던 기억이 없는지?  뒤에서 어머니를 끓어 안았을 때 어머니가 뒤 돌아서서 자신을 안아준 기억이 없었는지(이 이벤트를 성인이 되고 나서 있었던 이벤트로 어린시절의 기억이 아니다)등을 물어보지 않았는가 라는 치료자가 지적에 그는 그러한 말을 하면 자신에게 결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어머니가 잠을 자지 못한다고 털어 놓았다 고로 어머니에게는 아직도 그러한 말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고백을 했다. 치료자는 어머니는 지금 60대 후반으로 놀래서 기절하지 않을 것이다 라는 것을 이야기를 하면서 왜 어머니를 지금도 보호하려고 하고 있는가?를 지적을 했다.

 그는 어머니가 아버지와 결혼 후에 아버지가 무능력해서 경제력이 없었기 때문에 부모님이 함께 조그만 가계 등을 운영하면서 어렵게 살았기 때문에 어머니가 전업 주부로 전적으로 자녀들을 양육한 것이 아니고 고아원에서 함께 자란 이모가 B군 자신을 양육했다는 말과 그리고 그가 어린시절에 자신을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 맡기고 부모님이 약 3 4일 정도로 집을 떠났기 때문에 자신이 울면서 어머니를 찾았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B씨는 지금 20회 치료 회기를 넘어가면서 조금씩 자신의 변화된 모습을 느낄 수 있다고 기뻐 했다. 과거에는 어머니와 누나들 혹은 직장에서 동료들과 선배들이 자신에게 어떤 말을 했을 때 참고 넘어갔었지만 지금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서 자신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고 있다고 기뻐했다.

 치료자는 핵심 문제를 친밀감이 원인이다 라는 것을 밝혀내면서 앞으로 그가 자신의 내면의 마음의 문을 열고 자신의 비밀을 밝히게 될 때 이성 관계에서 불편함이 감소되고 편안해지고 불편함이 없어지고 자연스럽게 대화에서 즐거움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확신을 심어주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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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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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슨과 민츠(Wilson & Mintz, 1989). 심리신체 질병의 증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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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전문가들의 서저들은 치료자가 우리나라 말로 번역해서 소장하고 있으니 치료자의 홈 페이지에서 전문서적 안내에 들어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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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의 치료 사례는 5년 전에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받은 21세의 고교 1학년 때 자퇴생으로 검정고시 후에 대입실패로 2년 동안 두문불출로 집밖에 나올 수가 없어 밤과 낮이 꺼꾸로 되어 심각한 걸어다니는 정신분열증(자아분열형 성격장애)으로 치료자이 홈 페이지를 보고 전화를 걸어서 모기만한 소리로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해서 1달 동안 전화 통화로 1시간씩 전화를 해서 집 밖으로 나오게 해서 1년 동안 심리치료를 받았다 그 후에 그는 군에 입대해서 잘 지낸다고 그의 동생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그런데 지난 주일에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에게 5년 전에 치료를 받은 사람인데 저를 알아보시겠습니까? 라고 물었다. 치료자는 목소리로써는 잘 모르겠으니 이름을 이야기해 달라고 했을 때 제가 바로 xxx 입니다 라고 해서 깜짝 놀랬다. 그는 목소리가 우렁차고 자신감에 충만해 있었다. 군대생활을 잘 마치고 지금은 대학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선생님께서 나를 치료해 분 정신분석학 쪽으로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다(그의 사례는 다음의 블로그에서 5년전에 심각한 걸어다니는 정신분열증(심각한 경계선 성격장애의 성공적 치료사례)에서 소상하게 소개되어질 것이다).

 5년 전에 B군의 첫 컨설팅의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그림 1. 오늘날 환자가 카우치에 누워서 정신분석 치료를 받는치료를 받고 있는 현대적인 모습

 

대상: 21세의 청년 B

증세: 머리에 영화 자막처럼 노래의 가사가 가 흘러가고 두통이 심하고 말을 할 때 첫 마디의 말을 하는데 4-5분이 걸린다고 호소함

접촉: 인터넷에서 치료자의 홈페이지를 보고 휴대폰으로 치료를 받고 싶다고 치료를 요청해 왔음

진단명: 강박증, 대인 공포증, 걸어다니는 정신분열증 즉 심각한 경게선 성격장애(보드라인 성격장애)

치료 기간: B군은 컨설팅 이전에 이미 휴대폰으로 몇 시간 정도의 분량으로 수시로 치료자와 휴대폰 통화를 했고 그리고 2시간 컨설팅을 받은 후에 6개월의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겠다고 요청함.

치료의 결과: 아래에서 소개가 된 B군의 치료 과정은 2시간 컨설팅 이전에 몇 시간 분량의 정보를 치료가가 정리를 한 것과 그리고 2시간 컨설팅의 분석 내용을 소개한 것이다.

 

치료의 과정

컨설팅 이전에 휴대전화로 통화를 하면서 얻은 B군에 대한 정보: 치료자의 정신분석 심리치료의 휴대폰으로 걸려온 전화 벨이 울렸으나 내담자는 한 마디 말을 하지 않고 한참 휴대폰을 3-4분 동안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 치료자는 전화를 끊지 않고 말을 할 때까지 휴대폰을 들고 기다려 주었다. 모기만한 목소리로 “인간관계를 하고 싶습니다”라는 말을 했다. 치료자는 너무 긴장해서 너무 조심하려고 하는 현상으로 직감을 하고 즉 상대방의 목소리의 톤 즉 자신의 전화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를 감지를 하면서 눈치를 보면서 전화를 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을 한 후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논리, 말의 앞 뒤, 순서 등을 고려하지 말고 나오는 대로 이야기를 해 보라고 천천히 시간을 주었다. 눈치, 비위를 맞추려는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긴장을 풀어주기 위함이었다.

한참 있다가 "심리 상담을 받고 싶습니다"라고 모기 만한 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고 나서 치료자는 치료의 비용, 위치, 그리고 어떻게 치료를 하는가?를 소상하게 이야기를 해 주고 나서 원하는 질문이 있으면 대답을 해 주겠다고 이야기를 하고 나서 토, 일요일에는 부산에서 월, , , , 금요일에는 서울에서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한다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치료자가 서울과 부산 둘 중에서 어느 쪽이 가깝는지?를 물어 보았을 때 K군은 서울이 가깝다고 했다. 지금 현재 서울에서는 강원도 강릉에서 서울까지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이 있고 강원도 원주에서 서울까지 치료를 받았던 분도 있고 그리고 전북 전주에서 서울까지 그리고 대전에서 그리고 충주, 청주에서 서울까지 치료를 받았던 분들 그리고 인천에서 6명이 치료를 받았던 분들도 있으며 서울과 경기도를 지하철이 잘 연결되어져 있어서 치료를 많이 받고 있다고 서울에서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들의 분포를 설명해주었다.

정신분석 심리치료는 신경정신과 의사들과 다르다는 것을 설명을 해주었다. 신경정신과 의사들은 면담은 2-3분으로 약물 처방을 해주는 것으로 약물을 복용하면 감기처럼 증세들이 깨끗이 사라진다면 심리치료가 필요 없지 않겠는가?를 설명하면서 심리치료는 약물을 사용하지 않고 분석으로 치료를 한다는 것 그리고 1주일에 1회로 2시간 분석 상담을 하는데 증세의 발발 시점, 그리고 특징들 그 시점에서 촉진 요인들 등에 대해서 치료자와 내담자 두 사람이 서로 마주보고 앉아서 같이 이야기를 해 나가는 과정임을 설명을 하면서 보통은 1주일에 1회로 2시간을 하지만 내담자의 사정에 따라서 1주일에 2, 3, 4회 등으로 상담 시간을 늘릴 수 있다는 것을 부연설명을 했다.

어떻게 분석 심리치료를 하는가?를 설명을 하면서 증세의 발발 시점과 촉진 요인들을 분석해 가면서 치료가 진전이 되어가면서 발달 단계에서 통과해야 할 과정을 통과를 했는지? 혹은 결함이 있는지? 등을 분석으로 밝혀내는 과정 그리고 유아기, 초등학교 저 학년, 중 학년, 고 학년,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 등을 거치면서 동료들과 관계, 심리적인 상처 그리고 사건들과 이벤트들을 분석을 하면서 대인관계에서 갈등이 생기면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가? 의사 소통을 어떤 식으로 하는가? 그리고 감정을 어떤 식으로 표현을 하는가? 등을 분석해서 결함을 찾고 고치고 새로 배우는 과정이 정신분석 심리치료의 과정임을 설명해주었다.

더 붙여서 심리치료는 1시간 당 상담료를 받는다는 것을 설명을 하고 나서 나는 매 시간마다 심리 치료 비용을 받는 것이 아니고 6개월 치료 계약을 하고 6개월 치료 비용을 미리 받는다는 것을 이야기를 했다. 그 이유는 매 시간마다 치료 비용을 받게 되면 1, 2달 정도는 잘 나오지만 치료 효과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치료를 중단 한다는 것을 강조를 하면서 치료자는 6개월 치료 기간 이하는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지적을 했다. 치료자는 6개월 동안 치료 비용을 미리 받으면서 환불은 하지 않는다고 강조를 하면서 치료의 과정을 그렇게 운영하는 이유를 설명을 했다.

치료자와 분석 상담 과정을 진행을 하면서 내담자들은 갈등이 생기는 경우에는 치료를 중단하거나 화를 내거나 짜증이 나는 경우 혹은 치료자의 대응에 불만족한 경우에는 치료를 중단해버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 임을 강조를 했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도 갈등이 생기는 것이 정상인데 치료자와 내담자 사이에서도 언제나 갈등이 생긴다는 것을 인식시키고 갈등이 생기면 말로써 표현을 하고 갈등을 피하지 않고 해결해 나가는 것을 배우도록 하기 위함 임을 강조를 했다.

더 붙여서 치료자는 6개월 치료 비용을 설명해주었다. 1주일에 1 2시간이면 1달이면 8시간이고 6개월이면 48시간으로 시간당 xxx 원으로 총 비용이 xxxx 원이라고 설명을 해주었다. 그러나 그러한 돈을 지불하고 치료 효과가 없으면 어떻게 하느냐? 사이비가 아닌가? 등으로 의심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러한 사람을 위해서 2시간 컨설팅(분석 상담-실제 상담과 컨설팅의 과정은 똑 같다)을 해 보고 나서 치료를 받을 것인지 받지 않을 것인지?를 결정하려고 할 때는 시간당 xxx 원으로 2시간 xxxx원을 받는다는 것을 별도로 이야기를 했다.

컨설팅은 아직 치료를 받겠다는 결정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당 xxx 원으로 2시간 xxx 원을 받는다는 것을 이야기하면서 48시간을 똑 같은 시간 당 비용으로 계산하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되지 때문에 50% 활인을 해서 6개월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라고 설명을 더 붙여주었다. 단 컨설팅 비용을 지불하고 나서 심리치료를 받기로 결심을 하게 되면 6개월 비용에서 컨설팅 비용을 감면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를 했다. 그 이유는 선택을 할 때 두 가지를 함께 선택할 수 가 없다는 것을 체크를 하기 위함이고 삶에서 두 가지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을 해야 할 경우에 어떻게 선택을 잘 할 수 있는가?를 배울 수 있도록 일부러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는 것을 부연으로 설명해준다.

즉 고등학교 학생이 대학을 선택을 할 때 A라는 대학은 가고 싶고 마음에 드는데 성적이 위험해서 재수를 해야 할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는 위험 부담이 생길 수 있고 대신에 B라는 대학은 실력은 충분한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A B 중에서 한 개를 선택해야 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두 개를 한꺼번에 선택할 수 없다는 것에 직면할 때 어떻게 합리적으로 선택을 후회하지 않고 선택할 수 있는가?를 체크를 해서 배우게 하는 목적이 있음을 지적을 했다.

몇몇 부모님들이 컨설팅으로 2시간을 받고 나서 자녀가 분석적인 심리치료를 받겠다고 결심을 하고 나서 부모님이 6개월 비용에서 2시간 컨설팅 비용을 삭감해 달라고 떼를 쓰다가 거부 당하자 치료를 포기하는 사례들이 몇 건이 있었다. 그들은 삶에서 어려운 선택이 있을 두 개를 한꺼번에 다를 욕심을 부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후부터 K군은 조금씩 입을 열기 시작을 했다. 나이는 21세로 부모님은 K군이 초등학교 5학년 때 이혼을 했고 K군과 1살 아래인 남동생은 할머니와 지금까지 함께 살고 있다고 했다. 아버지는 재혼을 했으나 재혼한 부인과는 자녀들이 없고 어머니는 재혼을 하기 위해서 사귀고 있는 남자친구가 있다고 했다. K군은 중학교 1학년 때까지는 반에서 3-4등을 하는 공부를 잘 하는 모범생이었으나 중학교 2학년 시절부터 공부를 포기하고 불량 학생들에 어울려서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폭주족에 되었고 담배를 피우게 되었고 PC 방에서 하루는 보내면서 학교 공부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여름 방학 때 자퇴를 하고 3개월 동안 공부를 해서 고등학교 검정 고시를 통과를 했다, 남동생은 학교에는 다니는데 짜증적이고 화를 잘 내고 문제가 많다고 했다. K군은 4년 동안 두문불출하고 집 안에만 틀어 박혀 있다고 했다. 할머니는 따라 다니면서 잔소리를 해 대고 그리고 할머니와 어머니는 성당에 나가는 사람으로 고통이나 불안하면 주 기도문을 외우면 된다고 하는 소리에 질렸다고 했다. 아버지는 한번씩 집으로 오라고 해서 집에 가면 때리거나 처벌하거나 야단만 치는 사람이라고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는 아버지는 K군에 검사(판사 검사 변호사의 직업)가 되라고 강압을 한 적도 있다고 했다. 어머니는 왜 K군과 남동생을 버리고 갔는지?에 대해서 물어 보았더니 어머니는 "너희들에게 선택권을 주지 위해서였다"라고 했다. 너희들이 어른이 되면 어머니를 찾아오면 되지 않는가?라고 하는 말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고 했다.

K군은 어제 xxx 심리 상담 클리닉에 치료를 받고 싶다고 시간 약속을 해 놓고 조금 전에 전화가 와서 증세가 어떤 것인지를 물어 왔을 때 대답을 하지 않고 어물거리는 통에 그 쪽에서 예약 취소를 했다고 분노했다.

아버지에게 용돈을 달라고 했다가 얻어 맞았다고 통곡을 했다. 그리고 초등학교 3학년, 4학년 시점에서 어머니가 학원에 가라고 강제로 끌고 가서 대인관계에서 어려움을 가지고 있던 K군에게 고통스러웠던 것을 이야기를 하면서 부모님의 학대, 처벌, 버림받음에 통곡하면서 흐느껴 울었다.’그는 과거에도 여러 번 심리치료를 받으려고 시도를 했지만 찾아가다가 간판을 붙여 놓은 위치를 찾을 수 없었다고 하소연을 했다. K군이 컨설팅 초반기에 치료자가 그의 집에 와서 치료를 해 주면 되지 않겠느냐?라고 요청을 해서 치료자는 심리치료는 내담자가 치료자에게 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밖으로 나와서 활동을 하도록 만들어주는 것도 치료의 한 면이라고 강조를 했다.

치료자는 K군은 심리치료를 받고 싶다는 강한 의지와 그리고 중학교 시절에 불량 청소년들과 한때 어울렸으나 지금은 청산하고 범죄에 연루 되어지지 않는 것이 K군의 장점이라고 칭찬을 해 주면서 심리치료는 치료를 받겠다는 강한 의지만 있다면 해결되어질 수 있다고 격려해주었다. 단지 시간이 걸린다는 것과 성격을 고치고 자아를 알아 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강조 했다.

그 다음 날도 전화 통화로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그는 명절로 어머니 집을 방문한 후에 어머니에게 치료자의 휴대 전화 번호를 눌러 주었고 어머니와 통화를 하게 되었다. 어머니에게 K군의 현재의 심리 상황 상태를 약 10분 동안 이야기를 해 주었고 2시간 컨설팅 비용이 xxx 원임을 이야기를 해 주었고 월요일 저녁 6-8시까지 2시간 컨설팅 시간 약속을 했다는 말을 전했다. 어머니에게 치료자의 홈페이지와 주소를 문자 메시지로 보내주었다.

다시 K군의 휴대 전화가 왔다. K군은 어머니가 어머니 자신이 알고 있는 심리 상담사에게 가 보라고 하면서 치료자를 사이비가 아닌가? 의심을 한다는 말을 하면서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받고 싶다고 했다. 치료자는 2시간 동안 컨설팅을 받아 보고 나서 어머니가 요구하는 심리 상담사에게 가서 한번 받아 본 후에 가장 마음에 드는 치료사를 선택하면 된다고 전해주었다.

K군은 어머니 한데 가서 방문을 했을 때 어머니가 K군을 강압을 하는 것을 느꼈다고 털어 놓았다. 어머니와 대화의 스타일이 문답식으로 묻고 답하는 것이 고작이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아들 K군에게 왜 너는 그렇게 엄마를 무서운 눈으로 쳐다 보는가?”라는 말을 했다고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자신을 버리고 집을 나가버린 어머니에게 무슨 애정이 있겠는가?라는 것을 어머니는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K군에게 용돈으로 몇 푼을 쥐어주었는데 얼마 인지?를 확인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어머니는 초등학교 1학년 때 빗자루로 K군을 때린 것을 회상을 했다. 3학년, 4학년 때 엄마, 아빠가 섹스를 하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엄마의 나체를 보았다고 했다. 어머니는 이혼 후에 지금까지 혼자 살고 있는 것 같은데 결혼을 할 남자 친구가 있는 것 같았다고 했다.

아버지는 술을 먹었을 때는 완전히 목소리와 행동이 달라지고 폭력적이 되고 아무도 컨트롤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다고 했다. 4개월-5개월 전에 아버지가 일하는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아버지가 술에 취해서 컨트롤을 할 수 없으니 빨리 오라는 말에 K군이 달려 갔을 때 아버지는 다른 곳으로 가고 없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술에 취하면 집으로 전화를 해서 욕질부질 하고 전화를 받지 않으면 집에 찾아와서 화분을 K군의 머리에 던져서 머리가 터져서 병원 응급실에 실려간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 때가 6학년 때였다고 했다. 그 후에도 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폭군으로 변해서 그를 괴롭히고 가족들을 괴롭혀서 할머니와 K군 그리고 남동생 3 사람은 중학교 2학년 때 집을 팔고 지금의 xx 동으로 이사를 왔다고 했다.

K군은 지난 주일에 남동생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졸업식에 할머니, K, 이모(집에서 일을 도와주는 할머니의 친척으로 일이 끝나면 저녁에는 집에 간다고 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남동생의 졸업식에 참가를 했다고 했다. 남동생은 xxx 경호학과에 합격해서 3월 달부터 대학생이 된다고 했다. K군이 15살 때 남동생을 때린 적이 있다고 흐느꼈다. K군은 어제 저녁 전화 통화에서 과거에 친구들을 괴롭혀서 사과를 하고 싶다고 하면서 통곡을 했다. 과거에 자신이 괴롭힌 친구들을 찾아가서 사과를 하고 싶다고 했다.

K군이 중학교 2학년부터 공부를 포기하고 폭주족에게 휩쓸려 담배를 피우고 학교를 땡땡이 쳤다고 했다. 초등학교 6학년 시점에서 담임 선생님과 갈등으로(갈등 내용을 생각이 나지 않음) 선생님 앞에서 책가방을 던져버렸다고 했다. 그러나 고등학교 학생이 되면서 그들과 손을 끊었다고 했다. 폭력, 범죄에 가담하는 것은 나쁘다고 생각이 들어서 일제 그러한 행동에 가담을 하지 않았다고 실토를 했다.

K군은 어제 선생님과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면서 통곡하고 울고 났더니 밤에 잠을 편안하게 잘 잤다고 했다. 치료자는 바로 그것이 심리치료의 증거라고 지적을 해 주었다. 실컷 이야기를 통해내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긴장이 해소되어 잠이 잘 온다는 것을 지적을 하면서 약물을 사용하지 않고서도 잠을 편안하게 잘 수 있는 것이 카타르시스 효과하고 지적을 해 주었다.

다음 날 일요일 오후 2 30분에 K군이 휴대폰으로 치료자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어제 저녁에 어머니가 여러 통의 문자 메시지와 전화를 걸어 왔는데 받지 않고 있다가 휴대폰으로 통화를 했는데 어머니는 K군의 이름을 부르면서 내가 너를 사랑해!”라고 이야기를 하는 말을 듣고 분노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랐다고 했다. K군이 어머니에게 왜 이렇게 하시는 것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어머니의 전화가 끊어졌다라고 했다. 어머니는 강압적인 말투여서 기분이 나빴다고 했다.

어제 저녁 때 22살인 사촌 형이 찾아와서 K군에게 너는 대학에 가지 않을 것인지? 꿈이 없는지?” 물었지만 대답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사촌 형은 K군에게 너는 눈이 둥글고 예쁘고 얼굴이 미남이라고 칭찬을 해 주었다고 했다. 말이 없자 그는 그냥 가 버렸다고 했다.

2시간 전에 할머니가 K군에게 먹고 싶은 것이 없으냐?라고 물었을 때 고기를 먹고 싶습니다.”라고 했을 때 할머니가 그럼 고기를 먹으러 가자라고 해서 할머니와 K군이 두 사람이(남동생은 잠을 자고 있었다고 했음) 식당에 가서 고기를 주문해서 할머니가 구워주었다고 했다. K군이 된장찌개가 나오면 먹겠다고 했을 대 된장찌개가 나왔고 할머니가 K군에게 할머니의 밥을 절반 정도 더 올려주어서 먹고 왔다고 했다. 할머니에게 얼마 전에 심리치료를 받고 싶다고 했을 때 할머니는 잘 되었다 라고 칭찬을 해 주었다고 했다. 할머니에게 월요일 오후 6시에 심리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으려고 약속을 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일요일 저녁 6 30분 경에 K군의 어머니가 전화를 걸어왔다. 어머니는 K군이 2 15일 월요일 6-8시에 만난다는 것을 알고 그 이전에 어머니가 치료자를 만날 수 없는지? 혹은 8시 이후에 어머니와 만날 수 없는지?에 대해서 질문을 해 왔다. 치료자는 K군과 의논을 해서 K군이 O.K. 했을 때 가능하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 이유는 K군의 허락 하에 어머니를 만나지 않고 비밀로 만나게 되면 이후에 K군이 이것을 알게 되면 치료자를 불신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어머니는 아들인 K군에게 어머니와 함께 치료자를 만날 수 없느냐?라고물었을 때 K군이 혼자서 방문 하겠다고 어머니의 요구를 거부했고 그리고 어머니가 아는 심리 상담사에게 가 보라고 강압을 한 것을 내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치료자는 어머니에게 왜 K군 몰래 만나고 싶은지?에 대해서 질문을 했을 때 어머니는 아들 K군이 어머니에 대한 분노, 미움 그리고 원망으로 치료자에게 어머니는 나쁜 엄마로 이야기할 것인가? 하는 것에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치료가가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K군과 그의 동생인 두 명의 아들을 버리고 떠난 것은 처음에 두 명의 아들들을 데리고 엄마가 함께 살게 되었으나 경제적인 문제로 너무 열악한 환경 때문에 아들들이 아버지 한데로 돌아가겠다고 해서 돌아가버렸다고 치료자에게 어머니가 아들 두 사람을 버린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었다. 엄마의 말을 듣고 나서 아들 K군이 명절에 어머니를 방문했을 때 어머니가 아들 K군에게 나는 너에게 선택권을 준 것이다라고 한 말의 의미를 이해를 할 수 있었다. 너희들이 엄마를 버리고 아버지를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엄마는 너희들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아들에게 은근히 엄마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치료자는 치료의 대상은 엄마가 아니고 아들 K군이기 때문에 K군이 마음 속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을 우선하게 된다는 것을 이야기를 했다. 부모님의 말들은 보조 자료로써 사용한다고 했다. 그 이유는 부모는 자녀들을 자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다. 다섯 개의 손가락을 깨물어서 아프지 않는 손가락이 어디 있느냐?라고 반문을 하지만 자녀들의 머리 속에서 입력이 된 것은 어머니가 나를 버리고 떠났다는 분노, 두려움 때문에 어머니에 대한 미움을 다루게 되고 그리고 그 미움을 표현을 하게 되고 분노가 방출되고 긴장이 풀리고 자아를 바로 세워서 엄마에 대한 잘못된 미움을 왜곡되어진 미움을 사랑으로 바꾸고 고치는 과정이 정신분석 심리치료임을 강조를 했다. 치료의 초반기에는 엄마, 아빠를 사랑하라고 하게 되면 치료를 받으러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을 했다. 치료의 후반기에 분노가 빠져 나가고 의사를 잘 표현할 수 있게 되고 그리고 소통 능력이 향상되어지면 부모님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미래를 책임지도록 하는 과정이 정신분석 심리치료임을 알게 했다.

어머니는 치료자의 말 속에서 분노가 느껴진다고 했다. 심리치료사로써 내담자에게 분노를 느끼게 하는 것에 대해서 지적을 했다 치료자는 시인을 했다. 그것은 어저께 아들 K군이 어머니를 방문한 후에 아들의 눈에 증오의 빛을 보고 나서 너는 과거에는 엄마에게 그러한 눈빛이 아니었는데 지금은 엄마를 그러한 눈 빛으로 쳐다 보느냐?라고 지적을 했던 말들을 인용을 해서 K군은 엄마에게 엄청난 증오, 미움을 가지고 있고 엄마와 대화에서 문답식을 느끼고 질식을 느끼면서 되돌아 와서 치료자에게 하소연을 하면서 K군의 분노가 치료자에게 전이되어진 것이 치료자가 어머니에게 분노가 전이되어진 것을 이야기를 해 주었다.

분명히 어머니는 치료자가 홈 페이지, 주소 등을 소상하게 알려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지 말고 어머니가 잘 아는 심리 상담사에게 치료를 받도록 강압을 한 것에 대해서 지적을 했다. 아들 K군에게 양쪽 다 한번 치료를 받아 보고 나서 아들이 선택을 하도록 해야 하는데 어머니는 아들 K군에게 강압을 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을 했다.

어머니는 치료자가 시간당 15만원으로 2 시간 30만원의 치료 비용을 강조한 것에 불쾌감을 느꼈다고 했다. 치료자는 프로들은 반드시 돈 문제를 먼저 이야기를 해서 서로 오해를 불신시키는 것이 치료의 첫 번째 단계임을 이야기를 했다. 치료를 받는 사람들이 치료 비용을 알고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에서 반드시 치료비용 문제를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이 프로이고 돈 문제를 애매하게 하는 것이 아마추어 들이라고 지적을 했다.

어머니는 어떻게 하면 K군을 도와줄 수 있는가?를 물었을 땔 지금 현재로서는 아들 K군이 선택을 하도록 허용해주고 아들 K군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 말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급선무이고 필요하면 어머니가 치료 비용을 지원해주는 것이 전부라고 이야기를 했다. 컨설팅 이후에 6개월의 치료를 시작하게 되면 그 때 부모님이 원한다면 2개월-3개월의 치료 기간이 지나가면서 정보가 모이고 치료의 과정에서 분석되어진 것들을 부모님이 원할 때 초대를 해서 설명을 해주게 된다고 이야기를 했다.

 치료자는 어머니와 전화 통화 이후에 K군이 엄마가 아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내가 너를 사랑해!”라고 이야기를 했을 때 아들 K군이 왜 그런 이야기를 합니까?”라고 질문을 한 것을 지적을 하면서 어머니가 아들을 버린 것이 아닌고 엄마를 미워하고 증오하지 말라고 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을 했다. 아들 K군은 치료자를 아직 만나지 않았지만 치료자를 신뢰하고 믿고 모든 것을 소상하게 이야기를 털어 놓고 이야기를 하고 잇는 것이 바로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치료자와 내담자 사이에 신뢰 관계로써 치료자는 K군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인정해주고 감정적인 지원을 해주고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K군이 치료자를 믿고 자신의 속내를 털어 놓고 있음을 강조를 했다. 치료자는 K군에 대해서 모인 정보가 적어도 4시간 정도의 분량이 아직 만나지도 않았지만 K군으로부터 얻어진 것을 강조를 했다.

2시간 컨설팅: B군은 월요일 330분에서 5 30분으로 2시간 컨설팅을 약속을 했다. 치료자가 점심 식사를 하고 있던 오후 1시경에 누가 초인종을 누르는 소리에 놀라서 누구세요?라고 하면서 물었으나 대답이 없어서 도어 문을 열었을 때 보통 정도의 키에 핸섬한 눈에 둥글 게 생긴 한 청년이 도어문 앞에 서 있었다. 치료자가 누구세요?라고 물었지만 겸연쩍어 하면서 대답이 없어서 치료자가 눈치를 채고 오늘 치료 약속을 한 사람이냐?라고 물었을 때 그렇다고 했다. 치료자는 치료실로 안내를 하고 자리에 앉아 있게 하고 점심 식사를 재빨리 치우고 그리고 치료자가 정장 차림으로 옷을 가라입고 나서 마주 보고 앉아서 분석 상담이 시작 되었다.

치료자는 시작 직전에 "죄송하지만 2시간 상담료부터 먼저 지불해 주세요, 그것이 내 치료의 룰입니다."라고 이야기를 했을 때 B군은 호주머니에서 지갑을 끄내서 준비한 2시간 컨설팅 상담료를 지불해주었다. 휴대 전화로는 첫 마디를 끄내는데 4-5분이 걸렸지만 직면에서는 이야기를 술술 잘 했다. 어떤 이야기든지 하고 싶은 것을 이야기를 해 보라는 치료자의 지금까지 휴대폰으로 통화를 했던 어려운 이야기들을 했다.

치료자는 같이 살고 있는 할머니가 오늘 컨설팅을 받으러 온다는 것을 알고 있느냐?라는 질문에 알고 있다고 했다. 그는 7개월 전에 머리 속에 노래 가사가 영화 스크린의 자막처럼 흘러간다고 했다. 어떤 정해진 한 개의 노래 가사가 흘러가는지? 혹은 정해진 것이 없이 노래가사가 흘러가는지?를 물었을 때 정해진 것이 없다고 했다. 노래를 부르는 것을 초등학교 시절부터 좋아했다고 했다. 계속된 분석에서 치료자와 휴대폰으로 대화를 하거나 분석 상담 과정에서 이야기를 할 때는 스크린의 자막처럼 노래 가사가 흘러가지 않는데 대화가 끝나고 나면 노래 가사가 흘러가는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대화 도중에 한 주고 받은 대화의 내용이 그 자막 위에 겹쳐서 흘러간다고 했다.

어떤 내용의 가사인지 물었을 때 "네가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고 무시할 때---" "나는 내가 로봇트가 아니다---" "푸른 하늘을 처다보는 것처럼---" 등의 가사들이 영화 속의 자막처럼 지나간다고 했다.

부모님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서로 이혼을 했고 아버지는 재혼을 했으나 지금은 별거로 혼자살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어머니는 재혼은 하지 않았으나 사귀고 있는 남자 친구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지금은 4개의 방을 가진 할머니의 아파트에서 할머니가 한개, B군이 한개 그리고 남동생이 한 개를 쓰면서 같이 살고 있고 고모가 이혼을 하면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고 그리고 4개월 전에 고모네 집에서 화재가 발생해서 한 살 위의 사촌 형이 할머니 집에서 한 개의 방을 사용하면서 같이 살고 있는데 서로 대화가 별로 없다고 했다. 사촌 형과는 어린 시절에 티격태격하고 자주 다투었다고 했다.

사촌형은 3월달부터 대학의 물리 치료 학과에 다니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체육 선수들이 부상을 당했을 때 그들을 치료를 해주는 물리 치료사 대학에 입학을 했다고 털어 놓았다. 치료자는 앞으로 전망이 좋은 학과라고 칭찬을 해 주었다. 남동생은 xx 대학 경호학과 그리고 사촌 형은 xx대학 체육학과의 물리 치료 학과에 입학한 것이 과거에는 없던 특수한 학과라고 앞으로 인기가 있고 졸업 후에 취업이 잘 될 것이라고 칭찬을 해 주었다.

고모가 얼마전에 사촌형을 통해서 아버지가 술을 마시면 술 주사가 있는 것은 아버지의 어린 시절에 할머니가 양육을 잘못한 탓이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장남으로 이혼 그리고 고모는 둘째로 이혼을 했고 정신과 약물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볼 때 할머니가 가슴이 쓰리겠다고 이야기를 했을 때 할머니가 많이 속 상해 한다고 시인을 했다. 할머니에게 심리치료를 받겠다고 했을 때 할머니는 "좋겠다"라고 허락을 해주었다고 했다.

어제는 친구를 만나서 고 PC 방에서 같이 게임도 하고 그리고 술을 마시면서 B군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심리치료를 받게 되었다고 털어 놓았다고 했다. 초등학교 5학년 시절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혼으로 어린 나이에 심리적인 상처를 많이 받았을 것이라고 치료자가 지적을 했을 때 B군은 통곡을 하고 울어다. 자신이 꼼꼼히 생각을 해 보니 아버지가 술을 마시면 폭력을 행사는 것처럼 B군 자신도 동생, 할머니 그리고 학교 친구들에게 때리고 물건을 집어 던지고 폭력을 행사한 것 같아서 그들에게 사죄를 하고 싶다고 울면서 하소연을 했다.

4-5개월 전에 PC 방에 갔는데 친한 친구 옆에 B군이 싫어하는 친구가 있어서 친한 친굴의 눈을 피해서 밖으로 나왔는데 그 이후에는 그 친구로부터 연락이 오지 않고 서로가 서먹한 사이가 되어 버렸다고 했다. 그의 친구가 틀림없이 B군에 대한 뒷담을 했을 것이라고 상상을 하면서 집에 와서 남동생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남동생이 "100% 형님의 잘못이라고 사과를 해야 한다, 만약에 거꾸로 형님이 친구로부터 눈을 피했다면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라고 한 것에 분노해서 그 이후부터는 남동생과 대화를 끊어 버렸다고 했다. 치료자에게 정말로 B군 자신이 100% 잘못한 것인지?에 대해서 질문을 했을 때 치료자는 B군의 잘못이 아니라고 감정 지원을 해 주었다.

어제는 그 친구의 생일 이어서 그에게 사과를 하려고 그의 집에 찾아갔으나 그가 집에 없었기 때문에 만나지 못했는데 그 친구는 미용실에서 미용사로 일을 하고 있어서 미용실에 갔던 것 같다고 했다. 그 친구는 얼마 전에 미용사 1급 자격을 취득했다고 했다. 그 친구와 다시 화해를 하고 싶다고 했다. 치료자는 크게 싸운 것이 아니니 서로 화해를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용기를 주었다.

B군은 할머니에게 6개월 48시간의 심리치료의 비용이 xxxx 원이라고 이야기를 했더니 할머니는 신경정신과에 가서 약물 치료를 하지 않고 그러한 엄청난 치료 비용을 지불하고 심리치료를 꼭 받고 싶은지? 물었을 때 심리치료를 받고 싶다고 했을 때 알겠다고 했는데 할머니가 아버지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를 했고 아버지로부터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는데 아버지는 지금 해외 여행으로 필립핀에 있는데 내일 아들이 살고 있는 할머니 집에 가서 알아보겠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고 했다.

2시간의 컨설팅 도중에 치료자가 감정을 행동으로 표현하지 말고 말로써 표현을 하게 되면 내면에 억압된 분노, 미움, 짜증, , 적대 감정 들이 방출되고 긴장이 풀리게 된다는 것을 이야기를 했을 때 B군으 주먹을 꽉쥐고 부르르 떨면서 고함을 치고 울분을 토해내려고 노력을 했다.

컨설팅을 끝내고 치료실 문을 나서면서 B군은 선생님과 2시간 이야기를 하면서 느낀 것은 내가 집에 있을 때보다 훨씬 마음이 편하고 좋습니다. 6개월의 심리치료를 받고 싶습니다라고 인사를 하고 돌아 갔다.

이후의 휴대전화 통화에서 B군은 남동생으로 하여금 치료자에게 전화를 하도록 했고 치료자는 남동생에게 치료를 하는 곳의 위치, 그리고 치료 과정, 6개월의 치료 과정을 소상하게 설명하고 형님인 B군이 2시간 컨설팅을 했고 치료를 받고 싶으니 할머니에게 잘 이야기를 해서 형님을 도와달라고 간곡하게 당부를 했다. 남동생은 4개월-5개월 전에 형님이 그의 친구와 다툼이 있고 나서 형님에게 몇 마디 이야기를 한 것에 형님이 분노해서 그 이후부터 대화를 끊어 버렸고 그리고 자신도 고 3 학생으로 수능 시험 준비 때문에 아침에 일찍 학교에 가고 저녁 늦게 귀가했기 때문에 형님과 이야기를 할 시간이 없었다고 미안해 하면서 어떻게 형님을 도와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 질문을 했다. 치료자는 형님에게 이렇게하라 저렇게 하라라고 간섭을 하지 말고 형님의 이야기를 들어줄 것을 주문을 했다. 형님이 이야기를 많이 스스로 표현을 해야 할 것을 강조하면서 형님의 큰 문제는 말을 잘 하지 않고 뜸을 들이는 것부터 치료자 되어야 한다고 강조를 하면서 할머니에게 형님이 치료를 받고 싶어하는 간곡한 마음이 있을 때 치료를 받게 해 달라고 지원을 부탁을 했다.

 B군은 한번씩 환각 증세를 느낀다고 했다. 치료자가 어떤 환각인지 기술을 요청했을 때 한 개는 어떤 어린이가 울고 있는데 달래주려고 손을 내 밀었을 때 거부했다. 그리소 껴 안아주고 업어서 데리고 갔다. 두 번째는 백마의 기사가 말을 타고 가다가 어떤 형체가 뚜렷하지 않는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발견하고 백마에서 내려서 칼을 땅 바닥에 내려 놓고 그 사람에게도 다가가지만 그 백마의 기사는 그 사람의 마음을 정확하게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는 작년 8월 달에 쓴 일기가 있다고 했고 치료자는 그 일기장을 치료실에 가져와서 이야기를 하면 도움이 된다는 말에 몇 분 후에 B군이 그 일지장을 들고 휴대폰으로 그 일기의 내용을 이야기를 하면서 8 30일에 쓴 일기에는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없지만 예를 들어서 대통령, 혹은 예능인이 될 수는 없지만 말이다. 나는 내 자신을 받아들이고 싶다"라는 내용과 9월 달에 쓴 일기에는 "내가 너무 내 자아를 의식을 하는 것 같다. 내가 자꾸 위축이 되어지는 것 같아서 내가 나를 구속하지 말아야 하겠다"라는 내용이 있다고 소개를 해 주었다. 치료자는 B군의 문제가 시작된 시점에 작년 9월달 쯤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그 시점에서 B군의 자아가 상당히 긍정적이었음을 지적을 했다.

컨설팅 이후에 약 1주일이 지나가면서 아버지로부터 B군에게 전화가 왔는데 꼭 심리치료를 받고 싶으냐?라고 물었을 때 꼭 받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아버지는 치료 비용이 몇 백만원이 문제가 아니고 몇 천만원, 몇 억이라고 해도 네가 심리치료를 받고 싶으면 치료 비용을 지원해주게다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48시간 6개월의 치료 비용을 입금시켜주었다.

이후의 휴대 전화 통화에서 치료자가 B군에게 아버지가 치료 비용을 입금시켜준 것과 아버지가 몇 백만원, 몇 천만원, 몇 억원이라고 해도 지원을 해 주겠다고 했는데 아버지에대한 애정과 사랑과 고마움을 100%, 50%, 0%로 지금 B군의 마음 속에 가지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표현해보라고 했을 때 B군은 51%라고 대답을 했다. 아버지에 대한 분노, 미움, 갈등 들은 심각하지는 않기 때문에 쉽게 아버지와 갈등이 풀리게 될 것 같다고 희망적인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후의 통화에서 B군은 아버지와 남동생과 자신이 속초에 여름 휴가를 갔던 이야기와 그리고 아버지와 B군 그리고 B군의 친구와 함께 속초에 가서 호텔에서 부폐 음식을 먹었던 기억을 회상을 했다. 그리고 어린 시절에 아버지와 어머니와 가족들이 함께 나들이를 갔던 어린 시절을 회상을 하면서 통곡을 했다.

B군은 지금은 집에서 놀고 있으니 분석 치료를 시작하게 되면 일주일에 3회로 하겠다고 결심을 하고 시간 약속을 월요일 12시에서-2시까지로 했다. 치료자는 지난 주일에 컨설팅처럼 일찍 오게 되면 반드기 도착 전에 미리 문자 메시지를 보내 달라고 했다. 그러나 10분 전에 도착을 하게 되면 그냥 치료실로 들어오라고 했다. 치료자는 항상 10-20분 전에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치료자는 B군이 정신분석 심리치료가 정식으로 시작되지 않았는데고 불구하고 수 많은 휴대전화 통화를 통해서 B군 자신의 내면의 이야기들을 치료자에게 털어 놓고 그리고 언제든지 휴대 전화로 자신의 심경을 고백하고 밝히는 것을 보면서 B군이 치료자를 절대적으로 신임을 하고 믿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심리치료에서 B군의 문제들이 쉽게 해결이 될 수 있겠다는 희망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의 홈 페이지에서는 6개월의 치료 계약을 하고 제 1회 치료 회기 2시간의 분석 치료를 한 내용이 요약되어져 있다. 다음의 홈 페이지에 들어가 보세요(치료자의 전화: 010-4512-1275, 김종만. e-메일: jongmankim@hanmail.net)

https://blog.naver.com/psychclinic/2221506176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