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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담실에서 자연스럽게 분석 상담을 받고 있는 모습(영화 속에서 인용) 

 

 심리상담과 심리치료에 대해서

  

정신의학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신경정신의학(neuropsychiatry) 이고 다른 하나는 역동학적 정신의학(dynamic psychiatry)이다. 신경정신의학의 뿌리는 독일에서 낭만주의에 반발로써 시작되었고 역동정신의학은 프랑스에서 계몽주의에 뿌리로써 시작되었다. 독일에서 중심이 된 낭만주의 1800-1850사이에 독일에서 유행해서 전세계로 확산되었다. , 상상, 직관, 감정, 과거, 로맨틱, 비합리주의, 개인숭배, 신비주의가 중심이 되는 움직임으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파우스트의 작가인 독일의 세계적인 문호 괴테와 철학자 헤겔(Hegel), 쉘링(Schelling)이 있다. 반면에 17세기와 18세기에 프랑스가 중심이 되어 세계적으로 확산된 계몽주의는 이성, 논리, 합리주의, 맹목적인 믿음에서 탈피 등으로 시작되었다.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데카르트(Descartes)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와 독일의 철학자인 칸트(Kant)순수이성비판 철학이 있다.

계몽주의의 반발로 시작된 낭만주의 시대에 독일의 의사, 생리학자, 물리학자, 심리학자인 헤몰츠(Helmholtz, 1821-1894)가 독일의 과학화를 외치면서 몇몇 동료들과 함께 모든 학문을 물리, 화학, 수학으로 연구되어져야 한다는 헤몰츠 클럽이 독일의 물리학회가 되어 독일의 과학이 세계의 선두주자가 된다. 헤몰츠는 시각의 컬러비전으로(눈의 색깔) 심리학에 공헌을 했다. 여기에서 독일의 신경정신의학의 발달이 시작된다(Ernest Jones, 1953, 1955, 1957: 주㈜: 참고).

반면에 프랑스에서 계몽주의의 아들로 의사인 메즈머(Mesmer)가 고대와 중세의 귀신 이론 즉 빙의(憑依)현상정신병으로 정의하고 그리스시대의 정신병인 히스테리아를 부활시켜서 자석으로 치료를 하기 시작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약 50년 이후에 자석의 힘이 아닌 최면(잠과 유사)학으로 환자와 치료사 사이에 심리적인 소통 즉 레포(rapport)라는 것이 밝혀짐으로써 최면학이 유럽을 휩쓸게 된다.

최면치료들의 사례를 인용하면서도 미래의 정신병의 연구가 뇌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정신의학 교과서를 쓴 사람이 바로 세계 최초로 스위스의 쥬리히에서 현대적 대학정신병원인 부르고졸리(Burgholzli)의 설립자로 제 1 대 총장인 독일의 내과의사이자, 신경학자, 정신과의사인 윌헬름 그리싱어(Wilhelm Griesinger)이다. 그는 이집트 국왕의 주치의로 그리고 의료장관을 하다가 스위스의 쥬리히에서 대학정신병원(1860-1870)을 세우고 정신병의 현대적인 치료와 연구를 위한 개척자가 된다. 과거의 정신병원은 정신요양원(lunatic asylum)으로 감금과 감시와 심한 경우에 손발을 묶어서 충동과 폭력을 막기 위한 사회적 고립이었다. 그는 1845년에 정신의학 교과서를 썼다. 그 책에서 앞으로 정신병은 뇌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천명을 했다. 그는 1867년에 두 번째 개정판(정신병의 병리학과 치료)을 출판을 했다. 이것이 독일 정신의학 교과서로 연결되어진다(Ellenberger, 1970: 주㈜: 참고).

 그의 뒤를 이은 사람이 바로 헤몰츠의 제자로 정신과의사인 에밀 크레펠린(Emil Kraepllin)이다. 그는 독일의 정신의학의 교과서를 9번째 개정판(1927)을 냈다. 1896년에 조울증과 조발성 치매(dementia praecox)(조현병의 첫 이름)를 분리시켰다. 조울증은 감정장애이고 조발성 치매는 사고장애로 구분을 했다. 조발성 치매는 네이버 영어사전에 젊은이(praecox)의 치매(dementia)로 번역되어져 있다 그러나 이 용어는 정신의 이상이라는 용어로 젊은이의 뇌의 질병으로 번역하는 것이 정확하다고 본다. 이 용어는 1853년에 프랑스의 내과 의사이자 정신과의사인 베네틱 모렐(Benedict Morel)이 교과서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demence precoce)로 그 당시에는 학자들의 주의관심을 끌지 못했다. 43년 후에 크레펠린에 의해서 학계에서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Bernhelm, 1979: 주㈜: 참고).

독일의 신경정신의학(2011년에 우리나라에서는 정신건강의학으로 개칭: 다음백과 참고)정신병을 뇌의 질병으로 신경생리학적인 문제로 보고 약물로써 치료를 한다. 의과대학에서 정신과를 전공한 의사들로써 심리검사결과의 진단에 따른 정확한 약물 치료로써 환자들을 정확한 용량의 약물을 정확한 시간에 복용하고 있는가? 그리고 부작용을 체크를 하는 것으로 진료가 3-5분 정도로 끝이 난다. 환자는 의사의 정확한 지시에 따르면 된다. 일반적으로 미국에서 신경정신과 의사들은 하루에 최소 45명에서 최고 55명의 환자들을 치료를 한다(Stadter, 1996: 주㈜: 참고).

프랑스에서 최면학의 세계적인 대가인 가르코트(Charcot) 1883년부터1893년까지 10년 동안 최면치료가 정신병의 치료로써 세계적인 중심지가 파리가 되었다. 프로이트가 비엔나 의과대학 레지던트 4학년 때1885 10월에 6개월간 파리의 가르코트로부터 최면학을 배워서 최면학으로 정신병 환자를 치료하게 된 것을 여러 차례 밝혔다.

최면학 정신병의 기원을 어린시절의 심리적인 상처가 정신병이 된다 라는 이론은 프로이트에 의해서 최면에 걸리지 않는 사람들을 치료 할 수 있는 온전한 치료로써 탄생한 정신분석이 최면학을 포기하고 욕구이론으로 오디프스 콤플렉스 이론으로 발전하게 된다. 약물 치료가 아닌 대화치료이. 어린시절에 상처받은 환자의 상처 기억을 찾아내고 그들의 깨달음을 통해서 증세에서 벗어나는 치료로써 환자는 40분-50분 동안 카우치에 누워서 혹은 마주보고 앉아서 머리 속의 연상. 생각, 상상, 감각, 지각 등을 분석해서 그 원인을 찾아내서 깨달음으로써 증세에서 빠져 나오는 치료역동학적 정신의학이다.

정신병 치료는 약물 치료를 하는 정신건강의학심리치료를 하는 역동학적 정신의학의 역사로 정리가 되었다. 역동학적인 정신의학의 중심은 프로이트에서 시작된다. 부르고졸리의 대학정신병원에서 많은 정신과의사들이 프로이트의 꿈 분석(1900)에 매료되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회에 가입하게 된다. 치료국장이었던 스위스의 정신과의사인 (Jung), 독일의 정신과의사인 아브라함(Abraham), 미국의 정신과의사인 브릴(Brill), 오브레홀츠(Oberholzer)들이 그들이다. 이들이 프로이트와 함께 정신분석학을 정신병의 치료의 개척지로 만들게 된다. 이들에 의해서 역동학적 정신의학이 순수한 심리치료를 하는 심리치료로 파생되어져서 심리치료와 상담심리로 형태 변화가이루어지게 되었다.

역동학적 정신의학은 크게 4갈래로 나누어지게 된다. 첫 번째가 정신분석학, 두 번째가 인지-행동치료학, 세 번째가 가족치료학 그리고 네 번째가 심리상담학 이다.

여기에서 역동학이라는 용어인 dynamics 에 대해서 약간의 설명을 해보자. 이 용어는 물리학의 전문용어에서 시작된다. 1807년에 영국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토마스 영(Thomas Young)에너지(energy)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물리학에서 에너지의 개념이 등장한 것이다. 여기에 1843년에 영국의 수학자, 물리학자인 제임즈 프레스코 줄(James Prescott Joule)이 전기의 흐르는 양과 저항의 제곱이 바로 ()(thermo)(줄의 법칙)이라는 용어로써 열역학(Thermo-dynamics)이라는 학문이 탄생하게 된다. 열의 힘과 방향에 대한 연구이다. 이 용어에 심리라는 그리스어 psych 라는 용어가 접목이 되어 dynamic psychiatry으로 역동학적 정신의학, psychodynamics으로 정신역동학, 심리역동학이 된 것이다(동양에서 숫자와 출생 날짜를 바탕으로 인간의 성격과 미래를 예견하는 심리역학(易學)과 구분으로 역동학으로 번역).

정신분석가들은 마음을 에너지로 본다, 이것은 신경의 최소단위인 뉴런(neuron)이 정보를 전달할 때 모든 정보를 전기의 흐름처럼 전달하는 것이 아니고 최소의 한계점을 넘어가면 정보를 전달한다는 것이 밝혀지게 되었다. 여기에서 신경전달이 에너지의 흐름이다 그리고 마음, 정신, 심리는 벡터(vector)로써 힘과 방향을 가진 에너지로 연구되어지게 된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E = MC 제곱은 인간에게도 적용이 된다. 인간은 에너지의 덩어리로 본다. 마음의 내면(뇌 속)에서 에너지의 힘과 방향을 연구하는 것이다.

첫 번째 파생인 정신분석학은 이미 여러 차례 소상하게 설명이 되었다. 여기에서는 특별히 프로이트가 의과대학에서 철저하게 헤몰츠의 동료인 부케(Bruke)생리학 연구소에서 8년 그리고 메이너트(Meynert)뇌 과학 연구소에서 3년 연구조교로 일한 부케와 메이너트는 역시 헤몰츠의 동료로써 그들로부터 철저하게 과학적인 교육을 받았다 동시에 그는 어린시절부터 책벌레로 수많은 책들을 읽었다. 특별히 낭만주의의 핵심, 상상, 연상, 감정과거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의 바탕이 되었다. 그는 메이너트 뇌 연구소에서 3년 동안 연구조교로 연구할 때 메이너트의 뇌 연구가 사이버적인 연구로 영혼이 없다는 것을 직감하고 뇌의 영혼을 되살리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Ernest Jones의 프로이트의 전기 참고), 그는 비차트(Bichat, 1795)의 명언인점성술을 별들의 생리학이 아닌 것처럼 생물학은 동물의 물리학이 아니다라는 경구에 깊이 감동을 했었다. 그는 생리학대화 치료의 원리에너지의 원리로 과학적으로 설명해나갔다. 여기에서 그가 뇌의 해부학은 존재하지만 생리학적인 설명이 빠진 사이버 과학이다 라는 것에서 이들 생리학적인 용어들을 심리학적인 용어로 설명한 것이 정신분석학이 된 것이다(Moor, 1999: 주㈜: 참고).

두 번째 인지-행동치료학은 정신분석과 계통이 완전히 다르다. 이것은 독일의 물리학계의 전통에서 실험실에서 시작된 심리과학의 탄생과 연결되어져 있다. 분트는 독일의 최고 오래된 하이델베르그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로써 헤몰츠의 제자로써 그의 조수로 있다가 독일의 두 번째 오래된 대학인 라이프니츠(Leibnitz) 대학에서 철학교수가 된다 그는 그 대학의 스승인 구스타브 페커너(Gustave Fechner) 밑에서 철학을 강의하게 된다. 페크너는 라이프니츠 대학에서 법학, 의학을 전공해서 의사가 되었다가 그만두고 물리학을 전공한 철저한 실험물리학자가 된 사람이었다. 페크너의 스승인 웨버(Weber) 역시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로 철학자가 된 사람이었다. 위의 세 사람은 모두가 청교도 목사의 아들로 의과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었다. 웨버가 쓴 심리생물학퍼크너가 쓴 심리물리학의 저서로부터 독립된 심리학의 교과서가 탄생하게 된다. 이것이 1879년에 라이프찌그 대학 실험실에서 심리과학이 등장하게 된다(상세한 것은 3대에 걸쳐서 심리과학이 등장을 보라). 분트는 실험실에서 감각을 수학적인 데이트로 측정을 하는 실험으로 심리학을 독립된 학문으로 발전시켰다(오늘날 감각과 지각 심리학 분야이다). 그는 1875년부터 1919년까지 약 35년 동안 184명의 심리학 박사들을 배출 시켰다. 그 중에서 70여명이 독일 이외의 국가들의 학생들로써 23명이 러시아와 동구 유럽출신들이고 18명이 미국출신이었다. 그들 중에서 한 사람이 제임즈 카텔(James Cattel)1889년에 심리학 박사학위를 가지고 펜실바나아 대학에서 강의를 하게 된다. 그는 미국 심리학 교수 1가 되었다. 그 밑에서 실험심리학을 공부를 하던 대학원 학생이 카텔 교수가 컬럼비아 대학으로 이직하면서 그의 추천으로 독일의 분트 한데 유학을 가게 된다. 그가 바로 라이터 휘티머(Lightner Witmer)이다. 그가 박사학위를 가지고 1896년에 펜실바니아 대학에서 심리학 강의를 하면서 심리치료 센터(psychological clinic)을 설립하게 된다. 학습에 어려운 학생을 치료하게 되었다. 1907년에 그가 논문집으로 치료 심리학, 임상심리학(clinical psychology) 출판하게 됨으로써 미국에서 처음으로 치료 심리학, 임상심리학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1914년에 미국의 26개 대학에서 심리치료 센터가 설립되어졌다(2021, 3, 27, 위키피아 참고). 치료 심리학(임상 심리학)은 미국 심리학회의 제 12 분과로 소속되어져 있다.

한편으로 분트 밑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영국인 에드워더 티치너(Edward Tichener) 1895년에 뉴욕의 코넬대학에서 분트의 실험 심리학을 강의하게 된다. 그의 심리학은 구조주의 심리학으로 순수 심리학이 된다. 그의 제자인 미국여성 제1호 심리학박사인 마가레트 와시분(Margaret Washbun)이 탄생하게 된다.

반면에 하버드 대학의 심리학자인 미국의 심리학의 아버지인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의 제자들인 시행착오설의 에드워드 숀다이크(Edward Thorndike), 실용주의존듀이(John Dewey), 그리고 상징적 상호주의 조오지 미드(George Mead), 예일대학 총장이 된 제임즈 엔젤(James Angell), 시카고 대학 심리학 학과장이 된 하비 카(Harvey Carr) 그리고 존 비 와트슨(J. B.Watson) 등이 소속되어있는 시카고 대학의 심리학기능주의 심리학으로 응용심리학이 된다.  

그러나 치료 심리학이 본격적인 환자들의 치료에 인지-행동 치료로서 등장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게 된다. 분트의 심리학이 미국에 정착하게 되면서 실험 심리학에 또 하나의 실험 연구가 첨가되어진다. 1904년에 러시아의 생리학자인 파브로프(Pavlov)가 개의 위에 구멍을 뚫어서 고기 덩어리와 침의 량과 소화액의 량을 측정함으로써 1904년 세계 의학 총회에서 발표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조건학습이다. 그는 이 공로로1904년에 노벨 의학상을 받게 된다. 학습, 배움은 뇌에서 신경회로가 서로 호박덩굴처럼 연결되어져서 새로운 배움이 일어난다는 것을 실험으로 증명한 것이다. 과거에는 연상의 법칙으로 서로 유사한 혹은 반대의 낱말들이 연결되어 학습이 일어난다 즉 책상 - 걸상 혹은 불 - 물 등으로 배움을 통해서 알게 된다 라는 연상의 법칙이 실험실에서 실험으로 증명된 것이다.

조건 학습이 미국으로 들어가서 S-R, 자극반응 심리학이 된다. 1900년부터 1950년까지 미국의 심리학은 실험심리학이 점령하게 된다. 이것은 바로 S-    -R 심리학으로      안에 있는 것은 즉 머리 속의 상상, 연상, 지각, 감각의 느낌들과 감정들은 추상적인 것으로 측정하고 관찰하고 데이터화 할 수 없는 것은 심리학에서 제외시켰다. 심리학과는 S-R의 실험심리학이 그리고 치료는 정신분석학이 대세를 이루게 된다.

시카고 대학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존 비 왓트슨(J.B.Watson)1913년에 컬럼비아 대학에서 행동주의자가 본 심리학이라는 강의에서 드디어 행동주의(behaviorism) 이르는 용어가 등장하게 된다. 행동주의가 실험심리학의 대명사가 된다. 그는 1920년에 리틀 엘버트(Little Albert)라는 9개월 된 어린이에게 장난감 인형을 보여주면서 꽝 하고 소리를 냈다. 여러 번 연속에서 엘버트는 흰색 인형 쥐에 공포증을 개발하게 되었다. 파브로프의 조건학습으로 공포증이 형성된 것을 실험으로 증명한 것이었다.

이 실험은 1905년에 프로이트의 5세 된 남자 어린이의 말() 공포증을 그 소년의 아버지가 프로이트의 제자로써 그의 아들을 엄마에 대한 오디프스 콤플렉스로 아버지에 대한 거세불안으로 말에 대한 공포증을 정신분석학적인 치료로 성공한 공포증 치료를 프로이트가 논문에 출판한 리들 한스(Little Hans)공포증의 정신분석 치료에 대조로써 조건학습 즉 공포증이 학습되어진 것으로 상처들은 어린시절에 잘못된 배움이라는 새로운 가설을 등장시킨 것이었다.

이 발표를 본 여대생인 마리 코버(Mary Cover)가 왓트슨의 제의로 컬럼비아 사범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하게 되면서 와트슨과 협력으로써 3세된 어린이 피터(Peter)의 흰쥐와 흰 토끼 공포증 치료에서 조건학습을 꺼꾸로 해서 너무 예민한 피터가 좋아하는 스넥을 제공하면서 흰색 장난감 쥐와 토끼가 보이지 않게 해서 부드러움과 따뜻함과 연결시켜서 점차적으로 흰색의 쥐와 토끼를 두려워하지 되면서 실제 토끼와 쥐에 두려움을 제거하는 감각박탈, 혹은 탈감각(desensitization)이라는 요법으로 1924년에 리틀 피터(Little Peter)공포증의 치료라는 논물을 발표를 했다. 마리 코버는 이후에 버클리 대학 교수가 되어 어린이 발달심리학에 공헌을 했다. 그녀는 발달 심리학회의 초대 회장으로 봉사를 했다. 그러나 그녀의 논문은 크게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러나 이후에 행동치료학을 치료에 응용남아공화국의 정신과의사인 조셉 울(Joseph Wolpe)에 의해서 새로운 각광을 받게 된다.

울프는 정신과의사로써 프로이트의 열렬한 추종자였다 그는 군의관으로써 포탄 쇼크 군인들 즉 전쟁신경증 환자(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치료하면서 정신분석에 실망해서 조건학습 이론으로 돌아갔다 그는 불안긴장 이완은 서로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바탕으로 쌍방 억제적인 방법으로 서로 반대로 조정을 해서 불안으로 공포증이 증가하면 긴장 이완으로 불안을 감소시키는 방법을 교대로 사용해서 공포증 치료에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쌍방억제, 감각박탈, 자기주장, 홍수요법, 모델링, 조련(Shaping) 등으로 직접적인 행동수정 방법으로 행동치료의 효과를 인정받게 되었다. 그는 미국으로 귀화해서 버지니아 의과대학에서 환자들을 행동수정이 방법으로 치료를 하면서 마리코버 존을 행동주의 치료의 어머니로 격찬을 했다 울프는 행동치료에 대한 논문들과 책을 출판을 했다. 대표적인 저서로 행동주의 치료(1986)가 있다,

1946년대에 예일의과대학을 졸업하고 펜실바니아 의과대학에서 정신과 교수로써 정신분석 특별히 ego 심리학을 연구하다가 내면보다 외부 환경의 영향력에 대한 생각에 대한 연구로 정신분석학에서 인지치료를 개척한 사람이 펜실바니아 대학의 아론 백(Aron Beck)이 있다. 그는 행동주의 심리학이 머리 속의 생각에 반대한 것에 대해서 생각을 간접적으로 데이터화 할 수 있다 라는 논리로써 인지치료의 과학화에 앞장을 섰다. 우울증 환자는 그 환자의 얼굴 표정, 울음, 말 등으로써 데이트화 할 수 있다. 환자들의 생각을 수정하는 기법에 초점을 맞춰서 그는 생각을 매개변수를 통해서 측정할 수 있다는 주장으로 인지치료를 개발했다. 그는 인지치료와 감정장애(1979), 우울증의 인지치료(1979), 인지치료와 불안장애(2010), 사랑만으로 충분하지 못하다(2009), 불안장애와 공포증(1976), 성격장애의 인지치료(2003) 의 저서들이 있다. 행동주의 치료와 인지 치료가 통합으로 인지-행동치료(CBT), 변증법적 행동치료(DBT)(씨에틀에 워싱턴 대학에서 Marsga Linehan) 등장하게 된다.

세 번째 가족 치료는 정신분석가들이 프로이트가 거부한 가족구성원들을 치료에 끌어드림으로써 정신분열증 치료에서 획기적인 치료의 결과를 가져오게 되면서 그들이 모여서 그들의 공통된 치료기법을 가족치료로 1957 5월에 미국 정신의학학회 안에서 가족치료 학회가 창설 되었다(Bowen, 1989: 가족치료의 역사 참고).

네 번째로 상담심리학은 치료심리학과 계통이 다르게 등장하게 된다. 1940년대에 정신분석가인 오토 랭크(Otto Rank)의 영향을 받은 인본주의 심리학자인 칼 로저스(Calr Rogers)가 의과대학 출신이 아니면서 심리치료를 시작하면서 이름을 붙인 용어에서 상담 심리학(counseling psychology)이 시작되었다. 그는 시카고 대학에서 카운슬링 센터(counseling center)를 세우고 학생들의 심리적인 문제를 상담 치료를 하면서 시작되었다. 이것이 미국의 전 대학에서 카운슬링 센터가 세워지고 미네소타 대학, 오하이오 주립대학, 메릴랜드 대학, 컬럼비아 사범 대학 등에서 상담심리학 박사들을 배출하면서 학생들을 상담 및 치료를 하게 된 것이다. 상담(카운슬링) 심리학은 미국의 심리학회의 제 17 분과로 소속되어져 있다. 미국에서 초, , , 대학에서 카운슬링 센트에서 카운슬러들이 학생들의 문제들을 상담과 치료를 하면서 초반기에는 주로 학습장애들을 도와주었다. 일반적으로 학생들이 어른들보다 문제가 덜하다라고 생각되지만 지금은 학생과 어른들의 문제들이 구분이 없어졌다. 학생들의 문제가 심각하게 되면서 카운슬러들의 자격들도 강화되어졌다.

특별히 치료심리학은 심리학과에서 소속되어져 있다. 상담 심리학은 교육학과에 소속되어져 있다. 고로 치료심리학을 전공하려는 학생들은 반드시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심리치료 대학원에서 치료 심리학 박사를 취득하게 된다, 반면에 상담심리학은 교육대학원에서 상담심리학 박사를 취득하게 된다.

정신분석학은 각 대학에서 많은 정신분석가들이 교수로써 활동을 한다. 그러나 정신분석가는 종합대학에서 정신분석가를 배출하는 대학뉴욕대학컬럼비아 대학이 유일한 종합대학 안에 정신분석학과가 설치되어져 있다. 양쪽은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들이 정신분석과 심리치료를 위해서 정신분석학을 공부하기 위해서 입학(postdoctoral program) 허가 된다. 나머지는 대도시에 정신분석학교들이 미니학교로 운영되어진다. 이것은 의과대학을 졸업한 정신과의사들이 정신분석학교를 졸업하고 정신분석가가 된 프로이트의 전통을 따른 것이다.

미국에서 최초의 정신분석학교는 1913에 프로이트의 제자인 아브라함 브릴(Abraham Brill)에 의해서 뉴욕에서 첫 정신분석학교가 설립되었다. 이후에 1920년 시카고 정신분석학교, 1921년에 보스톤 정신분석학교 그리고 1933년에 캔자스시티에 메닝거 치료센터에서 부설 정신분석학교가 설립되어진다. 유럽의 정신분석학교는 의과대학졸업이 아닌 일반대학 졸업생들이 정신분석 학교에 입학이 허용되어졌다. 그들은 일반 분석가(lay analyst) 로 호칭이 되었다. 유럽의 정신분석가의 40%가 일반 정신분석가로 구성되어져 있다(Ernest Jones, 1953, 1955 1957). 미국에서는 정신분석학교에 의사들만 입학할 수 있다는 규정에 반대해서 심리학자들이 소송을 걸어서 승소함으로써 1980년대부터 정신분석학교에는 의과대학을 졸업한 정신과의사, 심리학과를 졸업한 임상심리학자, 사회학과를 졸업한 임상사회복지학자, 그리고 간호학과를 졸업한 5년 이상 임상간호학에 종사한 임상간호사 등의 입학이 허용되어지고 있다.

1976년에 가족치료사인 제이 헬리(Jay Haley, 1984: 주㈜: 참고)에게 학생들이 어느 쪽에서 전공을 해야 유능한 심리 치료사가 될 수 있는가? 라고 질문을 했을 때 위에서 그는 대답을 하기를 위에서 언급한 분야가 어느 쪽으로 전공을 하든지 간에 공부를 하는 내용은거의 유사하다, 단지 직책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고 전문가의 능력은 비슷하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분야를 선택하면 된다고 한 것에서 전문가의 능력은 실제 종사한 경험을 제외하면 배우는 과정은 거의 비슷하다. 심리상담과 심리치료 과목에서 20 여 개의 치료이론과 기법들이 소개되어진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융의 분석심리학, 에들러의 개인심리학, 인지-행동치료학(CBT), 가족치료학, 케스탈트치료학, 교류분석, 이성과 감정치료학(REM), 이미지영상학, 싸이코드라마, 현실 치료학 등등이 소개되어진다. 여기에 발달 심리학, 성격 심리학, 감정 심리학, 인지 심리학, 행동 심리학, 심리상담과 치료심리학, 측정심리학 그리고 병리심리학(이상 심리학), 심리학의 역사 등의 과목이 부과되어진다.

이제 심리상담과 심리치료 안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서 최근에 심각한 정신적인 문제를 가진 사람들을 치료를 하게 된 지금 현재의 과정으로 발전을 했는가? 를 소개하면서 최근의 미국의 역동학적인 정신의학과 심리치료의 현주소를 소개하고자 한다.

프로이트에 의해서 시작된 1895년에 탄생한 정신분석학에서 20세기의 현대적인 심리치료가 시작되었다. 1주일에 5회씩 1회기 당 40-50분의 시간으로 카우치에 누워서 눈을 감고 환자는 자신의 머리 속에 떠 오르는 모든 것을 치료사에게 이야기를 하도록 하는 자유연상의 기법이 현대의 역동학적 심리치료로써 시작되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은 신경증 환자의 치료이다. 환자들의 치료를 통해서 정신분석학 이라는 새로운 학문이 탄생을 하게 된다. 그의 환자들은 대부분이 온전한 가정 출신의 중, 상류층 환자들이었다. 신경증에 대한 치료가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면서 귀족들(러시아 귀족의 치료가 바로 늑대인간(Wolfman)의 사례)과 부유층(미국의 재벌 티파니(Tiffany & Co)의 손녀 도토리 버밍험(Dorothy Burlingham)의 자녀들의 치료) 그리고 부유층 부인들이 치료를 받기 위해서 비엔나로 몰려들게 되었다. 그녀들이 데리 온 자녀들을 위한 미니 초등학교가 설립되었다(에릭슨이 그 초등학교의 교사 도우미로 시작).

프로이트의 환자들은 성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이후에 프로이트의 막내 딸인 안나 프로이트소아정신분석학을 개발하게 된다. 안나 프로이트는 초등학교 교사출신으로 아버지를 이어받아서 의과대학 출신이 아닌 평범한 정신분석가(lay analyst)가 되었다. 그녀의 어린이 정신분석은 교육학자이자 정신분석가인 휴그 헬무스(Hug-Hellmuth)(비엔나 대학 물리학 박사 출신으로 교사로써 정신분석가 된 여성)의 영향으로 어린이들의 문제해결에 정신분석을 교육에 응용하게 되었다.

반면에 멜라니 크레인(Melanie Klein)이 어린이 정신분석으로 소개한 놀이치료가 분석가들의 주목을 끌게 된다. 그녀는 비엔나 대학 인문학부 3학년 때 결혼으로 학업을 포기했다. 3명의 자녀들을 양육하다가 남편이 엔지니어로 잦은 해외 출장으로 결혼이 파경으로 이혼으로 연결되었다. 우울증 때문에 그녀가 항가리 정신분석학회 회장인 샌도르 프렌치(Sandor Ferenczi)한데서 정신분석 치료를 받다가 프로이트의 꿈 해석에 매료 되어 13년 동안 프렌치 한데서 개인분석을 받아서 정신분석가가 되었다. 1917년에 처음으로 프로이트를 만나게 되었다. 프렌치의 수련을 받으면서 정신분석을 공부하다가 1920년에 헤이그에서 열린 국제정신분석학 총회가 때 놀이 치료를 발표하면서 독일의 정신분석학회 회장인 아브라함(Karl Abraham)의 눈에 띄어 항가리에서 베를린으로 이사를 하고 베를린 정신분석학회에 가입해서 아브라함 한데서 개인 수련을 계속해서 받으면서 어린이 정신분석에서 꿈 분석 대신에 놀이치료로써 새로운 소아정신분석으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1925년에 살츠부르그에서 열린 국제 정신분석학 총회에서 영국의 정신분석학 회장인 에네스트 존(Ernest Jones)을 만나게 된다. 그 시점에서 아브라함의 사망으로 존과 존의 분석으로 영국에서 여성 정신분석가의 제 1호가 된 죠안 리비에(Joan Riviere)의 권유로 1926년에 영국으로 이동 정착하게 된다(Hana Segal의 멜라니 크레인의 전기를 보라, 1979를 보라).

그녀에 의해서 개발되어진 어린이 정신분석은 프로이트가 개발한 어른 정신분석과는 다른 길을 개척하게 된다. 어린이들은 꿈 분석으로 자유연상으로 치료를 할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녀는 놀이 기구들, 장난감들, 모래, 진흙, 인형들을 사용해서 어린이의 놀이를 통해서 어린이들의 내면 심리역동학을 개척하게 된다 즉 프로이트의 어른 환자 한 사람의 심리학, 3-5세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오디프스 콤플렉스와 대조적으로 엄마-아기의 관계로써 두 사람 정신분석, 0세-3세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엄마와 아기의 상호작용이라는 새로운 정신분석이 등장하게 된다 그녀는 정신분석이라는 마음의 현미경을 통해서 엄마-아기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유아들의 자아의 형성 과정의 역동학의 길이 열리게 된다.

다시 말해서 놀이를 통한 상징적인 해석으로 심각한 문제를 가진 어린이들을 정신분석으로 치료를 하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게 된다.

이 시점에서 에딘버러에서 정신의학을 전공한 페비안(Fairbairn)이 프로이트의 환자와 전혀 다른 고아원 출신들, 그리고 빈민가 출신들의 젊은이들을 치료를 하면서 가족의 붕괴와 어린시절에 심각하게 상처를 받은 걸어다니는 정신분열증을 치료를 하게 되었다. 즉 너무 일찍 상처받은 청소년들의 심각한 장애들을 치료할 수 있는 새로운 이론인 쪼갬 방어와 분열이라는 새로운 이론으로 소개가 되면서 프로이트의 오디프스 콤플렉스(프로이트는 초반기 실제 상처의 유혹 이론에서 상상에 의한 심리적인 상처로 이동)에 반대로 부모로부터 혹은 양육자들로부터 받은 실제 심리적인 상처유혹이론의 강조를 들고 나오면서 멜라니 크레인이 그녀의 이론과 유사한 것에서 서로 통합된 새로운 정신분석학인 대상관계 이론(Object Relations theory)영국에서 등장하게 된다.

프로이트의 어른 신경증환자의 정신분석 이론은 크레인의 0-3세의 어린이 환자들의 정신분석의 이론으로 그리고 페비안의 고아원, 빈민가 출신의 심각한 청소년 환자들의 정신분석으로 확대되어졌다. 프로이트는 신경증에만 정신분석을 국한시켰다. 어린이들과 심각한 정신증 장애들은 전이가 형성되어지지 않기 때문에(대화를 통한 자유연상의 결함) 치료에서 제외시켰다. 크레인이 놀이 치료를 통해서 유아들의 정신분열증과 자폐증의 치료를 위한 마음의 역동학을 개척했고 그리고 페비안에 의해서 쪼갬과 분열의 통합된 치료이론으로 걸어다니는 정신분열증을 치료할 수 있는 길에 열리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강조점을 환자들 즉 온건한 가정 출신의 환자, 유아와 어린이 환자들 그리고 심각하게 상처를 입은 걸어 다니는 정신분열증(조현병)을 치료할 때 적용되는 정신분석 치료기법이 다르게 적용되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환자들이 다를 때에는 다른 치료 기법의 적용이 효과적이다 라는 새로운 정신분석인 대상관계 정신분석이 등장함으로써 정신분석 치료의 범위가 확대되어진 것이다.

한편 미국에서는 영국과 달리 새로운 정신분석의 개척이 이어지게 된다. 정신과의사이자 정신분석가인 아돌프 스턴(Adolf Stern)이 신경증환자들을 치료하면서 늘 치료를 해 오던 신경증 환자와 다른 환자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 환자는 분명히 신경증보다는 심각했다 그러나 정신증(편집증, 조울증, 정신분열증(조현병))은 아니었다. 그는 신경증의 보드라인 그룹 안에서 정신분석적인 탐색이라는 논문을 정신분석 학회에 제출을 했다. 신경증 환자보다 심각하다 그러나 정신증 환자는 아니다 라는 말로써 그 경계선에 있는 환자 라는 뜻으로 보드라인 장애라는 이름을 신조어로 등장시킨 것이다.

같은 해인 1938년에 프랑스의 작가이자 실존주의 철학자장볼 싸르트(Jean-Paul Sartre)구토(Nausea)라는 작품을 출판을 했다. 그 작품의 주인공인 A군은 3년 동안 혼자 살고 있는 모험가로써 친구들과 가족들로부터 소외되어있었다. 그는 다른 사람의 대화를 엿듣거나 멀리서 그들의 행동을 관찰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가 늘 갔던 그 카페에 갔을 때 익숙했던 카페가 이상하게 낯설어 보이고(derealization: 이현증) 구토가 나오면서 현기증으로 비틀거리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고(depersonalization: 이인증) 자신이 미친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 아닌가? 의심(craziness)을 하게 되면서 방향 감각을 상실, 삶에서 텅 빈 공허감, 삶의 의미 상실, 존재의 허무, 살아 있음의 감각이 없는 사으로 느끼는 내용이 소개되어져 있다(Wolf, 1988: 주㈜: 참고). 싸르트르는 이미 그의 대표작인 소설 구토에서 신경증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신증도 아닌 병명을 붙일 수 없새로운 장애의 등장을 선포한 것이다.

미국에서는 영국의 대상관계 이론과는 다른 새로운 정신분석학의 실험 연구가 등장하게 된다. 독일의 문헨 의과대학을 졸업한 소아과 의사인 마가레트 몰러(Margaret Mahler, 1975: 주㈜: 참고)가 우울증 때문에 샌도로 프렌치에 의해서 치료를 받으면서 프로이트를 소개받아서 정신분석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녀는 독일의 문헨 의과대학에서 여성 정신과의사로, 정신분석가가 된 헬렌 도이치(Helene Deutsch)(그녀는 미국에 이민으로 보스톤 정신분석학교 교수)에게 개인분석을 받아서 소아 정신분석가가 되었다.

그녀가 미국 뉴욕에 정착해서 1950년 대에 뉴욕 맨해턴에서 마스트 어린이 센터를 설립하고 동료연구진과 함께 미국 국립정신건강연소로의 지원으로 출생 후 4개월 된 5명의 어린이와 엄마가 함께 어린이 센터에서 생활하면서 그들의 상호관계를 3년 동안 기록하고 연구를 했다. 이 실험실 연구를 통해서 10년 동안 정리를 해서 엄마와 아기의 상호관계를 통한 어린이의 성장과 발달1975년에 인간 어린이의 심리적 탄생이라는 책을 출판하게 된다. 그녀는 실험실에서 직접 유아와 엄마와 상호작용을 통해서 관찰 기록을 통한 실험 연구를 통해서 프로이트의 삼두마차 모델을 실험으로 증명을 했다.

출생 직후에 신생아는 정상적 자폐기간으로 내면의 세계에서 안주하게 된다 프로이트의 제 1 차 나르시즘이다(병아리는 달걀 안에서 생존). 자아가 유아의 내면 속에서 안착해 있는 기간으로 본다. 출생 3개월(100일 사진) 시점에서 유아는 인간과 사물을 구분한다 인간의 얼굴로 향하게 된다. 이 기간을 그녀는 생물학적인 용어로써 공생기간(symbiotic phase)으로 명명을 했다. 엄마의 마음이 아기의 마음이 되고 아기의 마음이 엄마의 마음이 된. 이것을 정신분석학적인 용어로 엄마와 아기의 하나됨으로 부른다. 이 시기는 3개월에서 9개월까지 지속된다. 7개월-9개월의 시점에서 아기는 엄마의 얼굴을 인식하게 된다. 낯가림으로 분리불안의 등장한다. 이 시점에서 아기의 분리와 개인화의 발달 기간(separation – individualization phase)이 시작된다. 이것을 분리-개인화로 신조어로 만들어냈다. 아래와 같은 단계들을 거치면서 어린이는 내면의 마음 속에서 자아가 형성되고 자치적인 어린이로 성장과 발달을 하게 된다.

부화기 단계에서 아기는 엄마를 인식하게 된다. 엄마의 얼굴과 낯선 사람의 얼굴을 구분한다.

연습기 단계에서는 9개월에서 16개월로 주변환경의 탐색으로 엄마에서 분리되어 주변 환경에 흥미와 관심을 보이게 된다. 기고 서고 걷게 된다. 어린이는 항상 주변을 탐색하면서 엄마를 찾는다, 환경의 탐색에서 두려우면 엄마의 품으로 달려간다 이 시점에서 엄마가 어린이에게 감정의 지원으로 전진지지 역할을 해 주어야 한다. 아기의 불안을 흡수하고 다시 주변 탐색으로 이어지게 도와주어야 한다.

애매기 단계에서는 16개월에서 24개월로 엄마로부터 분리해서 스스로 마음대로 하는 자치심의 개발 동안에 불안하면 엄마에 매달린다. 매달림과 떨어져 나옴이 연속에서 수천 번 되풀이 되는 기간이다. 이 기간이 위기의 기간으로 부른다. 너무 빨리 분리를 강압 받게 되면 분리불안으로 사회환경에서 과도하게 예민한 불안한 사람이 된다 반대로 엄마에 매달림으로 떨어져 나오지 못하게 되면 즉 과도한 과잉보호는 자치심에 문제가 되어 의존적인 사람이 된다.

대상의 영속성의 단계에서는 3세 이후에 어린이는 마음 속에 엄마의 이미지가 확고하게 형성되어져서 엄마가 옆에 없어도 엄마의 이미지로 대처할 수 있게 된다. 고로 엄마보다 친구들과 잘 어울릴 수 있게 된다.

여기에서 다시 보드라인 장애에 대한 미국의 정신분석학자들의 연구 두 가지 방향으로 이어지게 된다. 한 쪽에서는 자아 이론으로 그리고 다른 한 쪽에서는 보드라인 연구로 이어지게 된다. 정신분석학은 프로이트가 환자들의 연구에서 등장한 것처럼 정신분석가들의 환자들의 치료와 연구에서 새로운 이론들이 등장하게 된다.

에릭슨(Erikson)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서 사회, 문화적인 요소가 빠진 것을 감안해서 스스로 인디언의 마을에 들어가서 그들의 어린이 양육을 직접 관찰하고 기록을 하면서 심리학과 사회학을 접목시킴으로써 정신분석에 사회학을 첨가해서 psychosocial 이론을 들고 나오게 된다. 그는 1963년에 어린이와 사회로 그리고 1968년에 주체성의 위기라는 저서에서 청소년의 주체성 형성과 주체성 혼란으로 신경증보다 심각한 청소년의 자아 문제를 진단하고 분류 하는 치료의 길을 열어놓게 된다.

또 한 사람은 시카고 대학과 시카고 정신분석학교 교수인 코호트(Kohut)나르시즘 환자의 치료와 연구로 등장하게 된다. 그는 프로이트가 치료 불가라고 천명을 했던 나르시즘의 연구로써 나르시즘 환자들이 전이를 형성할 수 있고 공감을 통해서 프로이트의 이론을 수정 변경해서 나르시즘 환자의 치료에 새로운 길을 열어놓게 된다.

한편으로 보드라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서 이론과 치료를 개척해 나간 사람들이 있다. 1953년에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학자인 로버트 나이트(Robert Knight)에 의해서 더욱 더 상세하게 기술되어졌다. 치료에서 어려움들이 이 때 등장을 했다. 신경증이라고 생각한 환자들인데 정신분석 치료로 잘 치료 되는 환자들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치료가 잘 되지 않아서 "거짓 신경증"으로 이름이 붙여졌다. 병원 치료에서 환자들은 피상적으로 겉으로는 건강하게 보이지만 심한 정신증적 퇴행을 하게 되어 "잠재적 정신분열증" 혹은 "거짓 정신분열증" 혹은 "거짓 신경증적 정신분열증" 등으로 기술되어졌다(Gunderson, 1984). 이 장애가 학자들에 의해서 많은 유사한 이름으로 불리어지게 된 것이 이 장애가 얼마나 광범위하고 다양한가?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이후에 1960년대에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학자인 프로스크(Frosch) 1차 사고 과정이 특징인 점을 밝혀냈다. 말로써 구두어로써 잘 표현을 잘 하지 못하고 충동적이고 앞뒤 생각 없이 행동으로 감정을 표현한다(acting out)는 것을 밝혀냈다. 화가 나면 삐져서 말을 하지 않거나 문을 닫아 잠가 버리고 침묵으로 지내거나 물건을 집어 던지거나 언어 폭력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정신분석학적 전문 용어로 acting out으로 불리운다. 그들의 사고 과정이 비구두어(말로써 표현을 하지 못하는)적 특징을 띄고 치료 과정에서 집중적인 퇴행 현상을 보인다. 자주 습관적으로 느낌들을 자아-파괴적 행동으로 acting out을 하고 때때로 폭력적 행동을 사용, 자살 위협을 사용, 이유없이 보챈다. 치료자를 양육자의 역할, 부모의 역할 박해자의 역할로 만들어 버린다. 반 전이 행동을 도발한다. 심한 경우에는 담배 불로 몸을 찌지거나, 면도날로 자신의 몸을 끗거나, 머리를 벽에 대고 방방 박아대는 자해,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보인다. 치료사는 빈번히 이런 환자에 의해서 에너지가 고갈되어 버린다. 치료의 불합리한 파괴가 흔하다(Gunderson, 2001).

이들에 더 붙여서 눈에 띄는 보드라인 연구를 이어나가 개척자들이 있다. 첫 번째는 남미의 칠레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정신과의사이자 정신분석가가된 오토 컨버그(Otto Kernberg)가 미국에 귀화해서 메닝거 클리닉에서 치료 국장으로 그리고 뉴욕의 코넬 의과대학에 교수가 된다. 그가 멜라니 크레인과 페비안의 대상관계 이론과 그리고 미국의 마가레트 몰러의 분리-개인화 이론을 통합해서 보드라인 연구와 치료의 새로운 길을 열게 된다. 그는 신경증과 정신증의 중간에 새로운 장애를 보드라인으로 구분을 하면서 이것을 1967년에 신경증 그룹, 보드라인 그룹 그리고 정신증 그룹으로 3개의 그룹으로 구분을 했다.

그는 보드라인 이라는 이름은 진단 용어가 아니고 신경증보다는 심각하고 정신증보다는 덜 심한 이 두 개의 장애 근처에 있는, 경계선 상에 있는 장애라는 이름이 보여주듯이 진단적인 이름으로 보드라인 성격장애라는 말을 쓰는 것 그 자체를 극구 반대하고 있다. 그는 보드라인 그룹에다 나르시즘 장애, 거식증, 폭식증 장애, 변태성욕 장애, 음주, 마약 중독 장애, 도박 중독, 게임 중독 장애, 심인성 질환 장애, 심한 공포증 등 신경증과 정신증에 소속되지 않는 모든 장애들을 보드라인 그룹에다 포함시키고 있다.

그는 보드라인의 핵심 특징을 충독적이고 원시적인 분노 공격적인 면을 들고 있다. 사랑과 미움이 중화되어 공격이 완화되어지는 건강한 사람에 비해서 보드라인 그룹은 쪼갬 방어로 good bad를 쪼개 버린다. 왜냐하면 모순은 참을 수 없는 불안을 몰고와서 불안 속에 휩쓸려들어가 버리기 때문에 유아들이 쪼갬으로 분리시켜리게 된다. 그는 특히 보드라인에서 쪼갬 방어를 강조한다. 그 외에도 원시적인 방어들전지전능함, 이상화, 평가절하, 부인, 투사 등의 유아기적인 방어들을 사용하기 때문에 ego가 연약하게 되고 조그만 스트레스에도 자신감이 바닥으로 냉동댕이 친다. 자기 파괴적인 행동으로 acting out로 그리고 거부, 버림받음, 좌절에 참을성이 없고 폭발적 폭력적으로 반응한다는 보드라인의 특징들을 밝혀냈다.

또 한사람은 뉴욕의 코넬의과대학의 정신과의사이자 정신분석가인 제임즈 마스트슨(James Masterson)이다. 마스트슨(Masterson, 1989) 1960년에서 1990년 사이에 보드라인의 원인과 치료기법으로 5권의 저서를 출판했다. 자아 장애가 주로 청소년기에 등장을 한다는 점을 고려해서 그는 청소년들의 무단결석, 가출, 음주, 마약 복용, 도벽, 범법 행위 등 부모와 학교에서 컨트롤을 벗어난 병원에 입원한 청소년들을 치료와 연구를 하면서 그들이 바로 "자아 장애" " "보드라인 장애"라는 것을 치료로써 증명을 했다. 그는 1967년에 "청소년들의 정신과적인 딜레마"라는 저서를 출판해서 그들의 자아 장애 문제를 정신분석적인 정신역동적인 이론으로 분석하고 치료 기법을 제시를 했다. 1971년에 "보드라인 증후군을 가진 청소년들의 치료" 라는 책으로 1972년에 "보드라인 청소년들의 치료", 1974년에 "보드라인 증후군을 가진 청소년들의 집중적인 심리치료" 그리고 1976년에 "보드라인 어른들의 치료" 1988년에 "참 자아를 찾아서: 우리 시대의 성격 장애의 가면을 벗긴다"라는 제목으로 책을 출판을 했다.

마스트슨(Masterson, 1972)은 사춘기 청소년들이 자아를 찾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에릭슨(Erikson)의 주장과는 달리 이들 청소년들이 그들의 유아기 때 자치심, 자기 주장을 표현하는 참 자아가 나타날 시점에서 부모님들이 강압하고 처벌에 의한 무조건적인 부모에 순응, 부응으로써 자아-활동, 자아-표현을 막아 버려서 내면 속에 성장이 중지되어 고착으로 남아 있는 참 자아에 대한 분노, 버림받음의 우울증을 막기 위한 연막 전술이 그들의 증세임을 심리역동적으로 설명을 하고 있다.

그는 보드라인의 핵심을 출생 후 1 6개월에서 3살 사이에 분리 개인화 단계에서 버림받음의 우울증을 막기위한 방어로써 쪼갬 방어, 부인, 투사, 전지전능, 이상화 등의 방어를 사용해서 자아를 보호하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유아기에 부모의 돌봄의 부족과 부모의 강압된 순응, 부응으로 부모에게 가까이 가면 갈수록 잡아 먹힘, 질식이 되는 고통들을 막기 위해서 자아는 거리감을 두는 방어를 사용하지만 반대로 거리감이 주는 외로움, 버림받음의 우울증에 발목이 잡히게 된다. 고로 가까이 가면 질식, 잡아 먹힘 그리고 거리를 두면 버림받음의 우울함으로 두 개가 쪼개져서 그 사이를 왔다 갔다 반복하는 것이 보드라인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그 원인과 치료 기법을 고안해 냈다.

또 한 사람이 시카코 의과 대학 정신과 학과장으로 있던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학자인 로이 크린크(Roy Grinker)이다. 그는 이 "새로운 장애"의 등장을 "20세기 산업 사회의 부산물"이라고 불렀다(Gunderson, 1984). 그는 프로이드(Freud) 밑에서 간단한 개인 정신분석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 사람으로 1968년에 "보드라인 증후군"이라는 책을 출판함으로 보드라인 환자의 실험 연구를 한 최초의 학자로 기록되어져있다(Gunderson, 1989). 그는 보드라인의 특징을 자아 주체성의 실패(자아가 연약해서 방향 감각이 없고 불안에 휩쓸림), 왜곡된 대인관계(지각의 왜곡으로 대인관계에서 갈등 초래), 외로움에 근거를 둔 우울증(혼자 있는 것에 참을 수 없음), 분노의 표현이 우세(충동적이고 살인적인 적대적 분노 공격)으로 발표를 했다. 그는 보드라인의 연구 이외에도 우울증과 후기 외상 스트레스 장애의 연구로 공적을 남긴 사람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또 한 사람으로 등장하는 학자가 케티(Kety)이다. 그는 "보드라인 정신분열증"이라는 용어를 개발을 했다. 이 새로운 자아는 신경증보다는 오히려 정신분열증의 범주에 들어가는 정신증이 아닌 정신증의 사촌들을 분류해 냈다(Gunderson, 1989). 오늘 날 보드라인의 분류에서 하위 보드라인 수준에 해당되는 사람들로써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일시적으로 정신증으로 퇴행을 보이고 면도날로 손목을 긋는, 담배불로 몸을 찌찌는, 머리를 벽대 대고 방방 박는 자아 파괴적인 사람들이 이 분류에 속하는 사람이다.

또 한 사람으로 하버드 의과 대학 교수이자 정신분석 학자인 건드선(Gunderson)이다. 그는 1960년 그 당시에 하버드 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다양한 치료 기법의 능력을 가진 심리치료 전문가가 200명 이상이 근무를 하는 심리치료 전문 병원으로 유명한 하버드 의과대학 부속 병원인 멕클린 병원(McLean Hospital)에서 레지던트로 있으면서 "쓰레기 통 환자"로 불리우던 보드라인 환자들의 연구에 정신분석적 연구와 실험 연구, 통계적 연구 등에 뛰어들었다. 1975년에 그는 "보드라인의 평가"라는 책을 출판하고 그 시점에서 출판되는 보드라인 연구 서적들을 평가를 하고 분석을 했다. 그의 연구의 공적으로 케티(Kety) "걸어다니는 정신분열증", "거짓 정신분열증" 등이 말해주는 정신분열증적인 요소로부터 보드라인을 구분해서 정신분열증과 보드라인을 구분, 분리 시키는 공로를 남겼다. 케티(Kety)의 거짓 정신분열증은 지금은 성격장애로 분류되어 "자아분열 타입 성격장애"로 남아있다(Gunderson, 2001). 이후 건드선(Gunderson) 1980년에 출판된 정신장애에 대한 통계와 진단 분류지침서인 DSM-Ⅲ에서 처음으로 축 Ⅱ(성격장애 항목)에서 10개의 성격장애 속에 보드라인의 진단과 정의를 그리고 그 이후에 1994년에 개정판 DSM-Ⅳ의 축 Ⅱ부분에서 성격장애에서 보드라인 장애의 진단과 한정에 공로를 남겼다.

 건드선(Gunderson, 1987)에 의하면 1970년대부터 1995년까지 보드라인에 대한 연구는 산불처럼 번져서 전 미국에서 그 당시에 출판되는 정신분석 논문의 93%가 보드라인 치료에 대한 논문이었고, 이 시점에서 보드라인 치료에 대한 연구 논문이 보드라인 실험 연구에 대한 논문보다 10%가 많았다고 보고하고 있다. 1995년에서 1999년 사이에는 정신분석 논문에서 보드라인의 치료 연구 논문이 23%로 격감한 것(미국 국회 도서관에 등록되는 연구 논문 혹은 서적들을 평가 분류)으로 보아서 이제 보드라인에 대한 정신분석적인 연구는 나올 것이 거의 다 나왔다고 말하고 있다.

자아 장애" "보드라인 장애"의 지금까지 학자들의 연구와 분류 그리고 한정을 간단하게 요약해서 정리를 해 보자. 이 장애의 특징은

과도한 분노 공격이 특징이다(Kernberg, 1975). 좌절에 참을성이 없다. 거부에 원시적인 살인적 분노 공격. 건강한 사람들은 사랑과 미움의 통합으로 분노가 완화되어져 있지만 보드라인은 사랑과 미움이 쪼갬 방어로 원시적인 분노가 대상에게 투사되어진다.

혼자 있거나 외로움에 참을 수 없어한(Gunderson, 1989). 끊임없이 인정을 받으려하고 주의 관심을 얻으려고 한다. 거부에 폭력적인 반응을 보인다.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의 반복된 관계(Masterson, 1974). 가까이 가면 잡아먹힘, 질식으로 거리감을 두려고 하고 거리감을 두면 버림받음의 우울증으로 깜짝 놀랜다. 서로 통합되지 못하고 쪼개져있다.

천국에서 지옥으로 무드가 갑자기 바뀐다. 감정 규제에 결함(Linehan, 1993). 극에서 극으로 무드의 이동. 무드가 쪼개져 있다.

무력감, 절망, 우울하고 자신감이 없다(ego의 힘이 빈약). 에고(ego)의 영역이 희미하다(침투를 당하거나, 침범, 간섭을 한다).

현실 문제들의 직면을 피하고 상상 속에서 살고 있다. 현실 지각이 왜곡, 현실 감각이 빈약하다(Masterson, 1974).

즉각적인 욕구 만족을 찾는다(Kernberg, 1975). 충동에 참을성이 없어서 즉각적인 긴장 방출을 찾는다. 분노를 말로써 표현하지 않고 행동으로 주로 표현한다(acting out). 삐지거나, 폭력, 폭언을 사용하거나, 말을 하지 않거나, 문을 쾅하고 닫아 버리거나, 집을 나가 버린다.

자아 파괴적이다(Chissick, 1983). 분노 공격이 자아로 흘러간다. 자해, 자상, 자살. 심한 경우에는 면도날로 손목 긋기, 담배불로 찌지기, 머리를 벽에대고 방방 박아대기.

모순에 참을 수 없어한다(Gunderson, 2001). 모순에 직면하면 엄청난 불안에 휩쓸려 압도되어 버린다. 대상으로부터 관심, 돌봄을 받으면 그 대상을 이상화하고 조그만 거부에 대상을 평가절하로 반응한다. 전부(100%) 아니면 전무(0%), 흑 아니면 백(흑백 사고),

원시적인 방어기재들을 사용. 쪼갬, 부인, 투사, 투사 동일시, 이상화, 전지전능함, 평가절하 등. 유아들이 주로 사용하는 방어. 자아의 일부가 유아기 상황에서 성장이 중되어있다는 증거.

여기에다 마스터슨(Masterson, 1988)은 자신의 직장 일에 만족이 없고, 고통을 잊어 버리기 위해서 일에 몰두(일 벌레) 그리고 이성관계, 연인 관계, 부부 관계에서 끊임없는 갈등으로 붙었다 떨어졌다를 반복하는 사람들, 오랜 연인, 부부 관계에서 항상 2%가 부족함으로 느끼는 젊은이들은 친밀 관계에 결함을 가진 "자아 장애"로 분류를 하고 있다.

뉴욕의 코넬 대학의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 학자인 마스트슨(Masterson, 1988)은 그의 저서 "참 자아를 찾아서: 우리 시대의 성격장애들의 가면을 벗긴다"라는 저서에서 심리치료를 단기 치료와 장기 치료로 나누었다.

단기 치료는 1주일에 1회기 혹은 2회기--- 6개월-1 6개월의 기간으로 주로 에고(ego)의 힘 즉 자신감을 높이고 현재의 증세들의 해결을 중심으로 하는 치료를 단기 치료라고 이름을 붙였다.

  장기 치료를 그는 집중적 심리치료 혹은 정신분석적인 심리치료의 이름을 붙이고 1주일에 2회 혹은 3 --- 3- 5 혹은 그 이상의 치료를 장기 치료로 이름을 붙였다. 장기 치료는 자아 결함의 수정에 치료의 초점을 맞추는 치료라고 소개를 했다.

하버드 대학의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학자인 건드슨(Gunderson, 1987)은 하버드 의과 대학 병원인 멕클린 병원(McLean Hospital)에서 선발된 보드라인 환자들을 5(4 명은 여성 - 1명은 남성 그리고 치료 시작 때 3명은 병원에 입원 환자, 2명은 통원 치료 환자)을 선발해서 5명의 전문 정신분석 치료사들이 1주일에 2회 이상--- 평균 7년 동안 치료를 해서 보드라인 환자들을 성공적으로 치료한 치료 사례집을 출판을 했다. 치료 초기에 환자들은 모두가 20대 초반으로 직장과 일상 생활에서 기능부진으로 하버드 의과대학 건드슨(Gunderson)이 개발한 보드라인 진단 인터뷰 기준에 통과된 환자들이었다.

이제 정리를 해보자. 보드라인 환자경계선 장애자들성격장애들을 말한다. 그들의 치료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치료 기법을 수정 보완해서 추상적인 언어능력의 결함과 상징적 은유적인 언어 능력의 개발에 초점이 맞춰진다 이들이 장기간의 치료 과정을 통해서 그들의 언어 수준을 신경증의 수준으로 끌어올리게 되면 그 다음에 프로이트의 신경증 정신분석 치료로 이동하게 된다. 샌프란시스코의 정신분석학교 교수이자 샌프란시스코 의과대학 교수인 토마스 오가덴(Thomas Ogden)은 심각한 정신분열증 환자(10년 이상 조현병 환자)의 치료를 순수한 약물치료가 아닌 정신분석 치료로써 수정된 정신분석 기법을 적용해서 신경증 수준의 단계로 끌어올려서 그 다음에 프로이트의 신경증 치료로 연결하는 치료 기법을 사용해서 성공적인 조현병 치료를 소개하고 있다.

컨버그가 멜라니 크레인의 이론과 몰러의 이론을 통합해서 자신의 보드라인 환자의 치료 기법을 소개할 때 영국의 페비안의 쪼갬과 자아분열 이론을 미국에 소개하면서 영국의 대상관계 이론이 미국에서 확대되어 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게 되었다. 지금은 대상관계의 이론몰러의 분리-개인화 이론이 첨가되어 쪼갬과 투사 동일시로써 혹은 보드라인과 나르시즘의 치료 이론의 응용으로써 신경증 환자로부터 그리고 성격장애 환자들 그리고 정신증 환자들(편집증, 조울증, 정신분열증(조현병)의 치료까지 역동적 정신의학이 약물이 없이도 모든 정신장애들이 성공적으로 치료되어질 수 있다는 좋은 치료 결과들이 보고되고 있다.

필자는 39년 동안 가족 치료와 정신분석학을 연구와 치료를 하면서 심리치료사는 어느 한 학파의 이론으로는 모든 환자들을 다루기에는 역부족이다 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정신분석가들 혹은 가족 치료사들 혹은 다른 치료 기법을 사용하는 약물이 아닌 심리치료를 사용하는 치료사들은 어느 한 사람의 치료 기법을 답습한다고 해도 우리가 그 사람이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심리치료는 환자와 치료사 사이에 심리적인 흐름이고 상호작용을 통해서 너와나의 하나됨에서 치료가 시작된다 고로 치료사가 아무리 그 이론가의 이론과 기법을 답습한다고 해도 그 사람이 될 수는 없다. 그것은 그 사람의 마음과 일치될 수 없기 때문이다 고로 수많은 분석가들은 학자들의 이론을 배운다고 해도 그들의 이론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기법을 개발하고 이론화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고로 정신분석 혹은 심리치료를 그 사람의 독특한 이론과 기법이기 때문에 예술이라고 부른다. 수많은 학자들의 치료 기법을 배우고 그리고 자신의 기법으로 만들어내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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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참고

 엘렌버그(Ellenberger, 1970). 무의식의 역사

 어네스트 존(Ernest Jones). 프로이트의 삶과 업적 제 1 (1953), 2(1955), 3(1957)

 베른헤임(Bernheim, 1979). 정신분열증의 원인들, 증세들, 치료들

 스타드트(Stater, 1996). 단기 대상관계 치료

 (Beck). 인지치료와 감정장애(1979), 우울증의 인지치료(1979), 인지치료와 불안장애(1976), 사랑만으로 충분하지못하다(2010), 불안장애와 공포증(1976). 성격장애와 인지치료(2003)

 헬리(Haley). 시련의 치료(1984), 문제해결 치료(1991), 전략적 가족치료(1991), 밀턴 에릭슨과대화 1, 2, 3(1985), 분가(1988)

울프(Wolf, 1988). 치료되는 자아

마스트슨(Masterson). 보드라인 어른의 치료(1976), 참 자아를 찾아서(1988), 나르시즘과 보드라인 장애(1981), 자아 장애들(1995), 청소년의 정신의학적 딜레마(1967)

컨버그(Kernberg). 보드라인 심리치료(1998), 보드라인성격장애의 전이중심 심리치료(1998), 보드라인 장애와 나르시즘 치료(1975), 보드라인 환자의 역동적 심리치료(1989), 심한 성격장애 치료(1984), 대상관계 이론과 치료적인 정신분석(1989)

세갈(Segal). 멜라니 크레인(1979). 치료적 정신분석(2004), , 상상 예술(1993)

오가덴(Ogden). 투사동일시와 치료적 기법(1982), 마음의 모체(1986), 경험의 원시적인 끝지점(1989), 분석의 주체(1994), 몽상과 해석(1997), 꿈 원천에서 대화(2001), 정신분석의 예술(2005)

건드선(Gunderson). 보드라인환자의 치료 사례(1989), 보드라인 성격자애(1984), 보드라인 환자의 치료 안내서(2001)

에릭슨(Erikson). 어린이와 사회(1963), 주체성의 위기(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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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저서들은 우리나라 말로 번역되어 있으니 치료자정신분석 심리치료 홈페이지전문서적 안내에 들어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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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의 치료 사례는 치료자가 2000년도에 부산교육대학 대학원에서 상담 교사들에게 가족 치료 과목과 상담 실습을 담당하면서 3개월 동안 교사들이 자신의 반 어린이를 1명 혹은2 명을 선정해서 3개월 동한 행동수정을 해서 사례 보고 연구논문을 작성하는 상담 사례 과목에서 담임 선생님이 초등학교 한 3 학년 학생의 솔방울 공포증을 가진 한 학생을 행동수정 기업으로 조직적 감각박탈의 기법을 사용하도록 슈퍼비전을 통해서 치료한 18년 전(2003)의 성공 사례의 상담교사 연구 논문을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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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치료자는 1999년부터 2004년까지 5년 동안 부산 교육대학원에서 가족 치료상담 실습 과목을 담당했었다. 마지막 이수 과목인 "상담 실습" 과목에서 각 학생들(초등학교 교사들)은 마지막 학기에 한 학기 동안 자신의 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심리적인 문제가 있는 학생을 한 사람 선택을 해서 그 학생을 한 학기( 3개월) 동안 상담 치료를 통해서 심리적인 문제 행동을 수정하도록 하는 상담 실습을 모두가 이수해서 이 과정을 통과를 하도록 지도를 하고 있었다.

참고로 각 상담자들은(초등학교 교사들) 내담자(문제 학생)의 선택의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주의 사항을 철칙으로 준수해야 한다.

 1. 자신의 반 어린이 중에서 심리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는 학생들을 후보자로 3명을 선정한다,

 2. 슈퍼바이져인 본 치료자와 논의를 통해서 각 상담자는 그 3 명 중에 가장 적당한 한 학생을 선정한다.

 3. 선정된 학생의 부모님에게 반드시 내담자로 한 학기 동안 문제 행동의 수정에 대한 내용을 알리고 반드시 허락을 얻는다.

 4. 만약에 부모님이 거부를 하면 위와 같은 똑같은 과정을 통해서 그 다음의 차선자로 내담자를 선정한다.

 5. 부모님이 허락을 하면 3개월 동안의 상담 과정에서 반드시 부모님의 적극적인 동참과 자녀의 문제 행동의 수정에 같이 참가한다는 확인을 받아둔다.

 

부모님에게 자녀의 내담자 선정시에 다음과 같은 절차로써 허락을 받도록 한다.

 1. 내담자로 선정되는 것은 그 부모님의 자녀가 특별한 문제 아동이기 때문이 아니다. 인간은 모두가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고 그 내담자로 선정된 아동은 지금의 단점만 수정이 되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아동임을 강조한다.

2. 내담자로 선정된 그 아동은 상담 실습의 실험용으로 사용되어지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상담에 사용되는 심리적인 기법들은 이미 수 많은 학자들과 치료사들에 의해서 효과 검정된 이론들로써 시행착오로써 사용되어지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3. 상담자인 담임 교사는 마음대로 시행착오적인 상담 치료를 하는 것이 아니고 엄격한 훈련과 전문성을 갖춘 지도 감독을 하는 교수 밑에서 지도와 감독을 받는다. 그 지도 교수는 미국에서 전문 교육과 훈련을 받은 유능한 심리 치료사로써 대학에서 강의와 그리고 환자들을 직접 심리치료를 하고 있는 사람으로써 그 사람의 지도와 감독 아래서 내담자로 선정된 학생들의 단점들을 고치도록 도와주는 과정임을 강조한다.

4. 만약에 그 지도 교수인 치료사(치료자인 본인을 말함)에게 직접 상담 치료를 받게 되면 1시간에 xxx 치료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러나 반드시 6개월의 치료 계약을 해야 하며, 6개월의 치료 계약으로 6개월의 총 치료 비용이 xxxx 라는 엉청난 큰 돈이 지불되어야 한다.

5. 상담 교사들은 1주일 동안 내담자와 상담한 내용과 상담 과정을 1주일에 1회씩 슈퍼바이져인 지도 교수와 만나서 2시간 동안 보고를 하고 그 다음 주일에 1주일 동안 내담자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를 지도를 받고 지도 받은 내용을 점금하고 실행 결과들을 논의를 한다.

5. 내담자로 선정된 아동은 실제로 그 지도 교수인 슈버이져에게 치료를 받는 것과 같다. 그 지도 교수의 지도 아래서 모든 이론과 치료 기법들이 그 선정된 내담자에게 소개되어지기 때문에 직접 치료를 받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위와 같은 지도로써 학부모들은 서로 자신의 자녀를 내담자로 선정해 달라고 요구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서 내담자의 선정에는 큰 어려움은 생기지 않았다.

 상담자(초등학교 교사)

 내담자가 고학년인 경우 즉 4학년, 5학년, 6학년인 경우에는 한시간에 적어도 50 분 정도로 1주일에 2-3회 이상의 치료 회기를 가져야 한다.

 내담자가 저학년인 경우 즉 1학년, 2학년, 3학년인 경우에는 한 시간에 30-40분 정도로 1주일에 적어도 4-5회 이상의 치료 회기를 가져야 한다.

위와 같은 상담 실습 후에 상담을 한 과정과 상담 결과를 본 치료자가 지도한 심리학의 논문의 서식에 맞추어서 졸업 논문으로 제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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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의 사례 연구는 그 학기에서 우수 논문으로 선정된 논문으로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이 야외 학습을 갔을 때 솔방울에 대한 공포증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된 담임 선생님이 그 학생의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서 3개월 동안 그 학생의 공포증을 성공적으로 치료를 한 사례이다. 치료자는 그 상담자에게 행동 수정의 기법으로 "체계적 감각 발탈"(systemic desensitization)이라는 치료 기법을 사용해서 3개월 동안 공포증의 치료를 지도를 했고 그 치료 결과는 솔방울에 대한 공포증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할 수 있었다(학교와 상담 교사 이름은 익명으로 처리).

 

체계적 둔감법을 이용한 특수 공포증 어린이의 치료

xx초등학교

xxx  

1 . 서론

 교육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매우 다양하며 그 중에서 특히 마음이 쓰

이는 부분들은 교사라는 직분으로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본 사례의 아동

도 지극히 우연한 기회에 문제점이 발견되었고 그때부터 나름대로의 해결책

을 찾아 보았지만 뚜렷한 방법도 효과도 없었다. 그러던 중 상담 전문 교사

양성 과정에서 교수님을 볍게 되었다. 당시로는 그 아동의 문제를 본인 힘으

로 해결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생각되어 의논 드렸는데 도와 주신다는 교

수님 말씀에 용기를 얻어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 본인은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으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없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1. 문제의 발견

2000 4 26 일은 학교 현장 학습 일이라 아동들을 인솔하여 산을 오

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산 중턱쯤에 이르러 아이들이 더 나아가지 못한

채 누군가를 둘러싸고 웅성대고 있었고 그 중앙에는 K군이 큰소리로 울며

서 있었다. 산길에 떨어져 있는 솔방울 때문에 도저히 걸어갈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상한 생각이 들긴 했지만 아무리 설득해도 걸음을 떼려고 하

질 않아 솔방울을 다 치운 뒤 걷게 했더니 그제서야 따라왔다 . 하산한 뒤

집으로 전화를 해 아이와 솔방울에 대해 물어 봤으나 부모도 이유는 알지

못하고 그저 무서워한다는 것만 알고 있다고 하였다. 본인은 이 일로 몹시

당황했었지만 상담 연수 과정을 통해 그것이특수 공포증이라는 것을 알

게 되었다.

 

2 행동 수정에 적용한 이론적 배경

행동주의 이론에서 사용되고 있는 체계적 둔감법을 이용하였으며 그것은

처음 연상되는 것들을 떠올리게 한 후 두려움의 원인이 되는 것을 Small

Step으로 제거해 가는 것이었다 유의했던 것은 실물 접근도를 크게 잡는

것이 아니라 거리가 먼데서 가까운 곳으로 아주 조금씩 옮겨 오게 한 뒤 두

려움을 거의 느끼지 않을 만큼 견딜 수 있을 때 더 가까이 가져오게 하였다.

즉 작은 행동 하나 하나를 진행하면서 목표 행동에 이르지 못했을 땐 다시

피드백시켜 학습이 이루어 진 뒤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하는 기법이었다.

 

3. 특수공포증의 진단

 미국의 정신장애에 대한 진단과 통계 분류집인 DSM-N 에 의하면 특수

공포증에 대한 진단 항목으로

 

A. 어떤 특수한 물체나 특수한 물체의 예견으로 인하여 과도하고 이유없

이 지속적으로 두려움을 보인다.

B. 공포적 자극에 노출은 즉각 불안 반응을 일으킨다. 공황 공격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다. c. 본인은 두려움이 이유가 없고 과도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D. 집중적 불안 때문에 공포적 상황을 피하려고 한다.

E. 회피 , 불안의 예견, 두려운 상황에서 불쾌감 등이 그 사람의 일상생활

이나, 학습활동을 간섭한다 18세 이하 일 때는 지속기간이 6개월 이 상 된

.

G. 이 불안, 공황 공격은 다른 정신장애 즉 강박증, 후기 외상 스트레스

장애 분리 불안 장애, 대인 공포증 , 광장 공포증 등과는 관계가 없다.

K군은 솔방울에 대해서 위의 항목 중에 모든 항목에 해당함으로 특수 공

포증(솔방울 공포증)으로 진단되었다.

 

4. K군의 문제점 및 정보 수집

 

1) K문의 문제접

K군은 xx 초등학교 3 학년에 재학 중이며 학업 성취 수준은 중하위권이

. 내성적인 성격으로 급우들과 쉽게 어울려 놀지 못하고 매사에 의욕이

부족하나 글씨체가 바르고 그림 그리기를 즐겨 한다.

 

2) 가족 상황

(46 ) : 법무사. 36세 결혼 대학중퇴

(42 ) : 가정 주부. 고졸.

남동생 ( 8 ) : 초등학교 1 학년

엄마, 아빠 만흔으로 외가와 친가에서 첫 손주로 몹시 귀여움을 받고 자

랐고. 현재는 아빠와의 친밀감이 엄마보다 좋음

 

ll. 본론

1. 상담진행

 

-상담활동 1 -

일시 : 2000. 9. 4. 15:00 - 16:00

장소: 3 5교실

상담목표 - K군의 공포증의 원인 탐색

() 32세때 K군 출생

 

생후 3개월 정도에 신경성 장염으로 아동 병원에 1 주일간 입원 . 퇴원 후

목욕을 시킨 뒤 감기에 걸려 재입원 하였음. 그러한 이유에선지 약은 잘 먹으

나 주사 맞는 것을 몹시 싫어하고 병원 가는 것을 유난히 무서워 했음 K

임신 중 집안 장식장이 바닥 쪽으로 넘어와 몹시 놀랐었고 다친 적이 있으며

결혼 후 남편의 늦은 귀가와 타향에서의 외로움으로 많이 울었다고 했음.

가정에서는 아동이 초등학교 1 학년 때 가족과 함께 해운대 솔밭에 놀러

갔을 때 솔방울을 보고 몹시 놀라며 무서워 하는 것을 보고 솔방울을 싫어하

는 것을 알았지만 크면 괜찮을 거란 생각으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했음.

 

-상담활동 2-

일시 : 2000 9 6 14 :40 ~ 15:00

상담목표 : 상담자와의 친근감 형성 및 무서운 물체 찾아내기

C: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니?

K : 아빠입니다.

C: 그 다음으로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니?

K. 외할머니입니다.

C: 그 다음은 누구니 ?

K : 엄마이고 그 다음은 동생입니다.

C: 선생님에 대해선 어떤 생각이 드니?

K: 좋을 때도 있고 무서울 때도 있습니다 ..

C: 선생님은 너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나?

K : 저를 좋아합니다

C: 우리 반에 있는 물건 중에서 무서운 물건은 무엇이니?

K: 없습니다.

C: 집안에서 무서운 것이 있는지 생각해 보자

K: 바퀴벌레가 나올 때 무섭습니다

 

-상담활동 3-

일시 : 2000 9 9 일 수요일 14:40 ~ 15:00

상담 목표 : 솔방울을 보면 연상 되는 것 찾기

C: 솔방울을 보면 생각나는 것은 무엇이니?

K: 바퀴벌레 , 옥수수가 생각납니다

C: 옥수수는 어디서 보았나?

K: 시골에서 보았습니다

C: 언제 보았나?

 

K: 잘 모르겠습니다.

C: 누가 보여줬나?

K : 사촌 형님이 보여줬습니다.

C: 사촌형님이 어떻게 했나?

K; 귀신이라고 했습니다.

 

-상담활동 4 -

일시 : 2000 9 15 14:40 ~ 15:00

C: 무서운 것을 모두 적어 보자

K: 바퀴벌레,솔방울,옥수수,귀신

C: 귀신을 본 적이 있나?

K· 텔레비견에서 보았습니다

C: 장면이 보이면 어떻게 했었니?

K. 눈을 감고 보지 않습니다.

C: 보고 있으면 어떻게 될 것 같아서 눈을 감았니?

K: 잡으러 올 것 같습니다.

C: 귀신이 더 무섭나, 솔방울이 더 무섭나?

K: . .. (침묵)

C: 똑같이 무섭나?

K: 고개 끄덕거림

 

상담활동 5-

일시 : 2000 9 19 14:40 - 15:00

목표 . 이미지 박탈법

C: 소나무에 달려 있는 솔방울이 몇 개 있는지 생각해 보라

K : 눈감고 있음

C: 소나무 밑에 떨어져 있는 솔방울이 있는 곳을 머리 속에서 생각해 보라

K: 눈감고 있음

C: 솔방울이 달려 있는 소나무 밑에 서 있는 것을 생각해 보라

K군: 말없이 앉아 있음

 

- 611 -

C: 솔방울이 있는 곳을 걸 어가는 것을 생각해 보자

K : 말없이 앉아 있음

C: 소나무에서 솔방울을 따는 것을 생각해 보자

K군 말없이 앉아 있음

 

-상담활동 6-

일시 : 2000 9 25 14:40 ~ 15 :00

C: 솔방울이 복도에 많이 있다고 생각하고 복도까지 걸어 가 보자

K : 복도까지 걸어 갔다옴

C: 기분이 좋았니, 나쨌니?

K :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습니다.

C: 그럼 교실 바닥에 솔방울이 많이 깔려 있다고 생각하고 눈을 감고 뛰

어 다녀보자.

K. 처음엔 천천히 걷다가 빨리 뛰어다님

C: 솔방울이 정말로 있어도 다닐 수 있겠니?

K군: 침묵

C: 한 번만 더 뛰어보자.

K: 열심히 뛰어다님

C: 자기 자리에 앉히고 학용품을 꺼내 놓게 하고 눈을 감아라고 하여 학

용품이 솔방울이라고 생각하고 한 가지씩 만지게 함,솔방울 받아라

하면서 지우개 를 던져 줌

K: 받지 않고 떨어뜨럼

C: 학용품은 진짜 솔방울이 아님을 강조한 뒤 다시 지우개를 던져 줌

K: 손을 내어 받음

C : 삼각자를 던져 주면서 솔방울이니 받으라고 함

K: 쉽게 손을 내밀어 받음

C: 눈을 감고 학용품이 솔방울이라 생각하고 만져보라고 함

K: 잘 만짐

C : 진짜 솔방울이라면 만질 수 있겠니?

K군침묵

 

C: 솔방울은 지우개나 삼각자와 같이 움직일 줄도 모르고 사람을 헤칠 줄

도 모르는데 왜 무서울까?

K : 그냥 무섭습니다.

C “나는 솔방울 같은 것은 무서워하지 않는다를 자꾸 외쳐 보라고 함

K- 나는 솔방울이 무섭지 않다. 나는 솔방울이 무섭지 않다 . 나는 솔방

울이 무섭지 않다 . 나는 솔방울이 무섭지 않다 . ..

 

- 상담활동 7-

일시 : 2000 9 27 14:40 ~ 15 :40

C: 솔방울 그리기를 한 번 해 보자꾸나 할 수 있겠니?

K: 그렬 수 있습니다.

C: 도화지를 한 장 줌

K: 열심히 그리고 있음

C: 무섭지 않니 ?

K:

C: 그러면 솔방울을 가져와서 보고 그릴까?

K군: 침묵

C: 무서울 것 같니 ?

K :

C: 그래 아직까지 무서우면 그림만 열심히 그려보자.

K: 큰 솔방울, 작은 솔방울을 열심히 그림 -

 

-상담활동 8-

일시 : 2000 9 29 14:40~ 15 :40

K군은 원래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여 생각보다 쉽게 솔방울을 그려내어

많이 칭찬해 줌.

C: 오늘은 솔방울로 어떤 모양을 나타내어 보자.

K군: 침묵

C: 무엇을 나타내어 볼까?

K: 사람을 그려보겠습니다

C: 좋은 생각이구나.

K: (아주 열심히 솔방울을 그림. 굉장히 잘 그림)

C: 누구를 그렸니?

K군: 침묵

C: 솔방울로 된 사람은 눈도 코도 없는 것 같구나.

 

K : 있습니다.

C: 어디에 있니?

K: (눈의 위치를 가리키며 눈이라고 글로 적으며) 여기에 있습니다.

C: 솔방울 사람은 화가 났나?

K: 아닙니다 기뽑니다.

C: K군도 기쁘니?

K:

C: 무엇 때문에 기쁘니 ?

K : 선생님과 함께 그림 그리기를 해서 기뽑니다.

C: (많이 칭찬해 줌)

 

- 상담활동 10-

일시 : 2000 10 4 14 :40 ~ 15 :00

학교에 있는 소나무 근처에 함께 가 보자고 하니 가겠다고 해서 데려갔

.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기피해 멀리서 쳐다보는 것은 할 수 있겠

 

느냐고 했더니 잠시 쳐다보다가는 고개를 숙여버렸다. 아직도 쳐다보기가

싫으냐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 그림은 다시 그릴 수 있겠느냐고 하니

괜찮다고 해서 다시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상담활동 11-

일시 : 2000 10 6 14:40 ~ 15:00

C: 오늘도 솔방울 그리기를 한 번 해볼까?

K:

C: 솔방울 그리기는 잘 하는데 왜 솔방울을 쳐다보면 무섭지?

K군침묵

C: 오늘은 솔방울을 그릴 때 진짜 솔방울도 만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려보자.

K: (열심히 그렸으며 다양한 내용을 나타냄)

C: 네가 그린 솔방울이나 진짜 솔방울이나 모두 너를 해치지 못한단다.

가 그린 솔방울이 무엇인지 한 번 말해 보렴.

K: (자기가 그린 솔방울 하나 하나에 이름을 붙여서 설명함)

 

상담왈동 12 -

일시 : 2000 10 9 14:40 ~ 15: 00

C: 오늘 소나무 밑에 한 번 가볼까?

K: 침묵

C: 아직 못 가겠니?

K: 고개를 끄덕임.

C: 언제 갈 수 있겠니?

K: 가만히 있음

C: 선생님은 네가 솔방울보다 몇 만 배 더 힘이 세다고 생각하는데 넌 그

렇게 생각 하지 않니?

K : 가만히 있음

C: 오늘은 어떤 솔방울을 그릴까?

K: 아주 큰 왕솔방울을 그리겠습니다.

C: 그래 , 참 잘 생각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왕솔방울을 그려보렴.

K: (도화지 1 장 가득찬 솔방울을 그림)

C: ! 아주 큰 솔방울이구나. 무섭지 않니?

K :

C: 이제 진짜 솔방울 같은 것도 무섭지 않겠구나?

K : 침묵

C: 넌 틀 림없이 솔방울을 만질 수 있을 거다.

 

- 상담활동 13 -

일시 : 2000 10 13 14 :40 ~ 15:00

C: 오늘은 솔방울을 쳐 다보러 한 번 가볼까?

K: (가만히 있음)

C: 아직 못 가겠니?

K군:

C: 그럼 뭐하지?

K : 오늘도 솔방울 그려보겠습니다.

C: 날마다 그리면 뭐하니? 쳐다보거나 만질 수 있어야지.

K군: 침묵

C: 오늘 한 번만 더 그려보면 쳐다볼 수 있다고 약속하렴

K: (마지못해)

C 그럼 네가 그리고 싶은 모양으로 한 번 그려보렴 .

K군열심히 그리며 솔방울 사람이 왕솔방울을 밟아서 이기고 있다고 표

현함)

C: 굉장히 잘 그렸구나 .K군도 이길 수 있을 거야.

 

- 상담활동 14 -

일시 : 2000 10 16 9:00 - 14:30 쉬는 시간, 점심 시간 쳐다보기

솔방울이 무섭지 않느냐고 했더니 가만히 앉아 았기에옛날처럼 아직도

쳐다보는 것이 싫으냐고 물었다 .K군은 대답이 없었다. 상담자는 K군이 그

런 그림 들을 보여 주면서 이렇게 많은 솔방울을 그렸는데도 무섭겠냐고 물

었더니 몸을 조금 움직이면서전보다는 무섭지 않습니다고 대답하였다.

상담자는 매우 격려해주며 솔방울을 상자에 담아서 교실에 두고 쳐다보자고

했더니 그렇게 하겠다고 하였다

C: 어디에 둘까?

K : (대답이 없음)

C: 처음에는 멀리 두고 보면 되겠지?

K :

C: 저 뒤 진열대 위 에 둘까?

K:

C: ( 솔방울이 든 상자를 교실 맨 뒤쪽 진열대 위에 둠 5m 거리)

K : (쉬는 시간마다 도우미인 짝과 함께 쳐다 봄)

 

- 상담활동 15 -

일시 : 2000 10 18 9:00 - 14:30

C: 이제 장소를 옮기자

K: (눈이 동그래짐)

C: 그저께부터 내내 쳐다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잖니?

K:

C: 그럼 옮겨도 되겠지? 어디에 옮겨둘까?

K: 옆 진열대를 가리키면서 저기에 놓으라고 제안함 3m 거리

C: 참 용감해 졌구나. (옆 진열대로 옮겨서 쳐다보게 함)

K : 처음엔 힘들어하는 것 같았지만 감각이 점점 둔해지는 것 같았고 잘

쳐다봄

 

- 상담활동 16 -

일시 : 2000 10 20 9:00 ~ 14:30

C: 솔방울 상자를 옮기자 .

K . 어디로 옮길까요?

C: 어디가면 K군이 더 용감해 질까?

K: 가만히 있음

C: 어디로 옮길까? 선생님 옆에 옮길까 .K군 옆에 옮길까?

K: 가만히 있음

C: 솔방울을 교실에 두었는데 솔방울이 너를 무섭게 했니?

K. 아닙니다.

C: 그러면 어디로 옮길까?

K. 제 옆에 둘까요?

C: 괜찮겠니?

K: (가만히 있음)

C: 그래 .K군 자리 옆에 둬 보자. 솔방울이 K군을 힘들게 하는지 안하는

지 선생님도 지켜볼게 .

K : (처음엔 몹시 신경 쓰고 힘들어 했으나 점점 둔해지는 것 같았고 시

간이 흐를수록 둔감해졌음)

 

-상담활동 17 -

일시 : 2000 10 23 14:30 ~ 15:30

C: 많이 용감해졌다. 솔방울 상자 옆에 있어도 괜찮니?

K :

C: 오늘은 상자를 들어 보자꾸나. 들 수 있겠니?

K: (망설임)

C : 솔방울 상자를 옆에 두었는데도 아무 일도 없었잖니?

K·

C: 들고 다니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K· 가만히 있음

C: 한 번 들어볼래?

 

K. 예 상자를 들고 서 있음

C: 참 잘 하는구나. 천천히 한 번 걸어 가볼까?

K: 처음엔 아주 천천히 가다가 나중엔 아주 빨리 잘 움직임

C: 거리를 점점 멀게 해서 걸어갔다 오게 함

K. 신이 나서 갔다 왔으며 칭창 받고는 우쫓해 함

 

- 상담활동 18 -

일시 : 2000 10 25

17 차 상담시 한 일을 상기시키면서 솔방울 상자의 뚜껑을 열고 갔다와

보자고 하니 못하겠다고 하였다. 덮여 있는 솔방울이나 보이는 솔방울이나

모두 같은 것이며 아무 힘이 없고 움직일 수도 없음을 설명하여 두려워하지

않도록 노력했더니 한 번 해 보겠다고 하였다.

l. 교실 안에서 그냥 상자 들어보기

- 처음엔 힘들어 했으나 2분 정도 들고 있은 뒤 칭찬해 줬더니 기뻐함

2. 상자 가지고 교실 밖 10m 정도 걸어갔다 오기

- 힘든 듯 했으나 잘 견뎌 내고 우쫓해 함

3, 교실 밖 50m 정도까지 들고 갔다 오기

- 칭찬해 주며 솔방울을 손으로 만질 수 있겠느냐고 물으니 못하겠다

고함

 

- 상담활동 19 -

일시 : 2000 10 27

솔방울 상자를 들고 갈 때의 기분을 말해 보라고 했더니 처음엔 힘들었는

데 자꾸 하니 괜찮았다고 하였다. 상담자는 이제 솔방울을 만질 수도 있을

거라고 했더니 반응이 시원찮아 솔방울을 교실 바닥에 흩어 놓고 쳐다보도

록 하였다. 전에는 쳐다보지도 못하고 울었는데 이젠 잘 쳐다봤다. 상담자

는 칭찬을 많이 해 주면서 흩어진 솔방울을 발로 차게 하였더니 처음엔 망

설이다가 살금살금 다가가 한 번 차고는 되돌아 왔다 . 참 잘했다고 칭찬해

주며 더 많이 차 보게끔 했더니 몇 번 차보고는 되돌아 왔다. 오늘은 매우

잘 했다고 칭찬하고 돌려보내었다.

 

 

- 상담활동 20 -

일시 : 2000 10 30

솔방울로 놀이를 하자고 함

1. 솔방울을 공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를 차고 뒤에까지 갖다 오기

- 처음엔 천천히 갔다 왔으나 같은 행동을 반복했더니 점점 빨라짐

2. 솔방울 1 개를 차면서 교실 밖 10m까지 갔다 오기

3. 솔방울 2개를 가지고 솔방울과 솔방울을 부딪치게 하면서 교실 안에서

움직이게 했더니 처음엔 잘 못하다가 나중에는 2개가 부딪치면 매우

좋아하며 재미있어 함

4. 솔방울 여러 개를 발로서 부딪치게 하니 재미있어 했고 두려움 같은

것은 없어진 것처럼 보여서 칭찬을 많이 해 줌

 

- 상담활동 21 -

일시 : 2000 11 3

솔방울을 멀리 던져놓고 주워 오도록 했더니 처음엔 가지 않으려고 해서

K군의 행동 변화를 K군이 해내었던 일과 함께 상기시켜 잘 해내지 않았느

냐고 격려했더니 하겠다고 하였다. 솔방울 꼭지 부분을 살그머니 쥐고 들고

왔다. 잘했다고 칭찬하면서 여러 번 거둡했으나 손바닥으로 잡지는 못했다.

그래도 많이 용감해 졌다고 칭찬해 줬더니 우쫓해하면서 돌아갔다

 

- 상담활동 22 -

일시 : 2000 11 6 120

솔방울이 많은 곳에 현장 학습을 가게 되었다. 처음엔 솔방울을 디디게

될까 봐 몹시 움츠렸으나 교사와 함께 걸어가면서 발 아래를 보지 말고 가

자고 했더니 발 쪽을 자꾸 신경 쓰는 눈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감

각이 무디어지는 것 같았고 솔방울을 밟고 갔는데도 아무 반응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래서 솔방울이 많은 곳에서 잡기 놀이를 했고 처음엔 천천히 움

직였으나 나중엔 매우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 .

 

 

- 상담활동 23 -

일시 : 2000 11 7

솔방울을 비닐 팩에 넣어 책가방 속에 넣게 하여 집에 가져갈 수 있느냐

고 하니 가져가겠다고 하였다 집에 가서 그것을 꺼내어 책상에 둘 수 있느

냐고 물으니 할 수 있다고 해서 젊어지고 가게 하였다

 

- 상담활동 24 -

일시 : 2000 11 9

아침에 교실에 들어가니 아이들이 떠들썩거려 웬일인지 물었더니 K군이

솔방울을 잡을 줄 안다고 말해 주었으며 교실에는 K군이 솔방울을 손에 쥐

고 의기양양하게 앉아 있었다 . 칭찬해 주면서 용감해진 이유를 물었더니 아

빠의 지도가 있었고 가져갔던 솔방울을 아빠와 함께 만져보니 무섭지 않았

다고 대답하였다. 가정과의 연계지도가 효과적임을 절실히 알게 되었다.

 

- 상담활동 25 -

일시 2000 1 11 13

솔방울로 쌓아 올리기를 할 수 있겠느냐고 했더니 할 수 있겠다고 하여

쌓기 놀 이 를 했는데 공포증 증세는 이제 없는 것 같았고 두려움 없이 솔방

울을 자연스럽게 만졌다 .

 

 

- 상담활동 26 -

일시 2000 11 15

정말 신기한 일은 K군이 솔방울을 쥐고 돌아다니면서 스스로 아이들에게

솔방울을 갖다 대며 놀라게 하니 아이들이 웃으면서 놀라는 척 하는 모습들

이었다. 혼자 앉아서 친구와도 잘 어울리지 않던 아동이 이제는 솔방울 공

포증 치료 과정에서 친구들도 자기를 도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들과 친

하게 된 것을 보며 보람을 느꼈다.

 

ID . 논의 및 결론

아동의 문제는 문제의 발견과 동시에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얼마만큼

있느냐에 따라 해결의 결과가 달라진다 K군은 가정에서 오래 전에 문제를

발견했는데도 치료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그 문제로 인한 K

군의 행동과 학습은 많은 영향을 받았던 것이다 . 인간은 살아가면서 많은

기회가 주어지며 그 기회를 잘 포학함으로써 생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 .

특수 공포증이라는 하나의 문제가 모든 행동 장면에서 어둠의 그림자로 스

며들어 자신감이 없어지고 학력이 떨어지며 원만한 교우 관계를 맺지 못해

사회성이 결여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특수 공포증을 치료하기 위한 직

접적인 기법은 행동주의적 접근 방식인 체계적 둔감법을 투입하였으나 인간

 

의 능력은 대단하다는 자신감을 불어넣는데는 인본주의적 접근법도 투입하

였다 . 또한 치료 과정에 있어서 상담자가 끊임없이 내담자를 아끼고 있음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한 것이 행동 수정의 핵심이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양한 상황들 속에서 생활하는 교사는 항상 아동의 행동 하나 하나에 세심한

관심과 배려가 있어야 함을 절실히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

 

1. 잘된 점

K군은 솔방울을 쳐다보지도 못했고 솔방울이 떨어져 있는 곳을 지나가지

도 못할 만큼 공포증이 매우 심했다 . 그래서 행동주의적 기법인 체계적 둔

감법을 이용한 이미지 박탈법을 적용해 솔방울 상상하기에서 그림 그려보기

등의 과정에서 솔방울에 대한 공포가 점점 줄어들게 하였다 . K군은 자신감

을 갖게 되었고 솔방울을 멀리서 점점 가까운 곳으로 가져 옴으로써 두려웅

에 대한 적응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체계적 둔감법이 결국엔 솔방울에 대

한 공포에서 벗어나게 하여 자유자재로 만질 수 있게까지 한 것이다 . 또한

직접적인 공포증 치료 과정과 결과로 나타난 부수적인 소득은 학습 활동에

소극적이었던 K군이 학습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태도로 나타났다.

업 중엔 교사와 눈을 맞추려 하지도 않고 발표하는 것은 아예 생각도 못했

는데 치료 과정과 후엔 종종 손을 들어 발표할 만큼 태도 변화가 확실하였

.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늘 혼자 책상에 엎드려 낙서 내지 그림

그리기 를 했는데 솔방울을 들고 친구들을 놀래 주는 장난을 하고 다닐 만큼

친구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는 점이다. 급우들이 모두 자신을 도와

주었다는 신뢰감에서 일어난 행동 변화라고 생각된다.

 

2. 아쉬운 점

시간적 제약 때문에 솔방울 공포증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찾지 못한 점이

. 연상되는 것이 바퀴벌레, 옥수수 등인데 그것에 대한 치료를 하지 못한

점이다. 공포증이 생긴 원인까지 찾아냈더라면 더 개운한 치료가 되었을 댄

데 , 그러지 못한 것이 아쉽다 .

 

3. 끝내면서

이번 상담을 마무리하면서 교사라는 직업에 대해 다시 한 번 보람을 느끼

는 기회가 되었음이 가슴 뿌듯하다 . 1 학년과 2학년을 거쳐오면서도 가정에

서도 학교에서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K군의 솔방울 공포증이 여러 가

지 행동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으며 그러한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한 번 더 교수님께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다. 또한

전문적인 눈을 가진 것과 그렇지 못한 것 사이엔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알

게 되어 인간은 끝없이 배워야 한다는 것을 강하게 느꼈다. 아울러 이러한

치료 과정에서 느낀 것은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 혼자 힘으로 하

는 것 보단 학급 학생들의 도움을 받아 다 함께 하는 것이 효과를 몇 배로

늘리는 방법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어 내 학급에 맡겨진 반 아이들이 한충

더 사랑스러워졌다.

 

참고문헌

김유숙 (2000) 가족상담 학지사 .

박성주(1996) 문제 행동의 교육과 치료. 배영사 신서

이성진, 유효순(1995). 행동 수정의 기법(1) (2). 교육과학사

https://blog.naver.com/psychclinic/222297043993

 (): 참고:

치료자의 전화 번호: 010-4512-1275,

김종만, e-메일: jongmankim@hanmail.net.

홈페이지: http://www.psychclinic.pe.kr--정신분석 심리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