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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담실에서 자연스럽게 분석 상담을 받고 있는 모습(영화 속에서 인용) 

 

 왜 한 쪽은 우등생 다른 쪽은 문제아?

 

똑 같은 집에서 똑 같은 부모님과 24시간 365일을 10년 이상 함께 살아온 자녀들 중에서 왜 한쪽은 우등생이 그리고 다른 쪽은 문제아(정신과)가 되는가? 라는 질문을 많이 받게 된다. 외형적으로 보면 두 자녀는 같은 부모, 같은 집에서, 같은 식사를 하고, 같은 생활 환경에서 함께 생활을 수십 년 동안 해 왔기 때문에 차이점을 설명할 길이 없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타고난 기질, 타고난 운명으로 설명을 했다. 문제를 가진 자녀가 급성으로 심각한 경우(환각, 환청 등)에는 과거에 멀쩡하던 자녀가 이상한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서 악령, 귀신이 몸에 들어와서 해코지를 한다고 생각했다. 고대(그리스를 제외), 중세, 근대(18세기)까지 우리 조상들은 빙의 현상(귀신)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굿을 하는 퇴마의식(退魔儀式)을 했다. 굿을 하는 사람들을 샤만(무당)이라고 불렀다. 세계 어디에서나 샤만은 존재를 했다. 지금도 문명과 동 떨어진 남 태평양의 외딴 섬에 사는 부족(삼비아 족)은 샤만이 귀신을 쫓는 굿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인류학자이자 정신분석가가 쓴 친밀한 커뮤니케이션: Herdt & Stollor, 1990: 주㈜: 참고),

고대시대에는 샤만들은 추장 혹은 족장이 정치와 제사의식을 함께 수행을 했다(제정일치). 전문화가 되면서 샤만들은 그 지역에서 신뢰를 받는 사람들이 담당을 했다. 그들은 귀신을 볼 수 있다 혹은 귀신과 소통을 할 수 있다고 자청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세계 각 지역에서 존재하는 샤만들을 연구한 문화인류학자들의 글들을 (원시적인 심리치료를 보라: Ellenberger, 1970: 주㈜: 참고)에 의하면 영혼의 상실(영혼을 잃어버림)의 경우에는 길을 잃어버린 영혼을 데리고 온다 악령의 침입으로 본 경우에는 굿을 통해서 악령을 쫓아낸다, 악령과 거래를 한다, 왜 이 사람의 몸에 침투를 했는가? 언제 이 사람의 몸에서 떠날 것인가?  악령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파악해서 그들의 소원을 들어준다, 원한의 경우에는 그 가해자의 모형을 만들어서 그 모형에 복수를 하도록 한다.

한 아메리카 인디언의 샤만은 그 부족 안에서 소외, 고립된 환자를 치료하면서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축제를 해서 그에게 관심과 사랑을 제공함으로써 소속감을 회복하는 축제의식을 했다. 이러한 샤만들의 퇴마의식은 미신적이 것도 있지만 건강한 것들도 있었다. 일부는 지금의 정신의학에서 사용하는 건강한 예들로서 고해성사가 대표적인 것이다. 개인의 억압된 비밀을 익명으로 들어주고 용서해주는 것으로 오늘날의 심리치료심리상담의 핵심(비밀을 숨기면 병이 된다: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의 우화) 이 된 것들도 있다.

삼국지의 드라마(최후의 승자: 사마의)에서 조비가 죽었을 때 장례절차 직전에 여러 명의 가면을 쓴 무당들이 귀신이 접근하지 못하게 춤을 추는 의식을 보여준다. 원나라를 세운 쿠비라이 칸의 부모님의 사망 시에 여러 명의 샤만들이 가면을 쓰고 퇴마의식을 하는 장면들을 볼 수 있었다(징기스칸의 후예들).

좀 더 열악한 경우에는 귀신들이 어떤 사람의 몸에 안주해서 살고 있다고 생각해서 그 귀신을 추방하기 위해서 몸에 고통, 처벌을 가해서 그 귀신이 그 사람의 몸에서 편안하게 안주하지 못하게 고문, 처벌을 하는 경우들을 볼 수 있다. 그들이 사용하는 고문틀, 고문장치들을 정신의학의 역사 교과서에서 볼 수 있다. 때리거나 찌르거나 고통을 가해서 그 사람의 몸에서 안주하지 못하게 해서 쫓아내려고 하는 시도들을 종종 볼 수 있다. 2021년의 초반기에 이러한 사고들이 등장한 사건들을 언론 매체를 통해서 보도된 것을 소개하고자 한다.

조카 물고 살이모는 무속인으로 귀신을 쫓아야 한다

경기 용인에서 양육하던 10살 조카를 학대하고 물고문까지 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이모 부부가 재판에 넘겨졌다. 무속인 이모는 조카에게 들린 귀신을 쫓겠다며 배설물까지 먹이기 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또 딸에게 들린 귀신을 쫓는데 쓰라며 복숭아 나뭇가지를 건넨 친모를 상대로 방임 혐의를 수사하고 있다(MBN 뉴스: 2021, 3, 7)

귀신 들었다-아들 구타 사망

경북에 있는 한 절에서 60대 어머니가 자신의 30대 아들을 2시간 반 동안 폭행하고 1시간까지 방치해 숨지게 한 사건이 있었다. 숨진 남성은 이 절에서 두 달 전부터 숙식하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35살 권 모씨였다. 경찰이 CCTV를 살펴보니 이미 몇 시간 전부터 어머니는 아들이 생활 하던 거실 한복판에서 길이 1미터짜리 대나무로 2시간40분 동안 아들을 때렸다. 도망가면 붙잡아 또 때리고 아들이 쓰러졌는데도 50분 동안 지켜만 봤다. 공무원 시험에 4 차례나 낙방한 권씨를 이 절도 데리고 간 사람은 어머니였다. 숨진 아들의 아버지는 주지 스님이 아내에게 귀신이 7명이 있다고 그랬어요, 귀산 한 명을 떼어내는데 두 당 1백만 원으로 7백만 원을 받겠다고 했습니다”(MBC, 2021, 1, 28).

악령 쫓아내다”24세의 휴가 군인 죽음 부른 안수 기도”- 법원: 폭행치사 혐의 목사에게 징역 4년 선고

 지난해 2 7일 새벽 1시쯤, 경기도의 한 교회 예배당, 한모(24)씨가 스스로 몸부림을 치고 구역질을 하면서 기도를 하고 있었다. 이 교회 목사 A(43)씨는 한씨의 등과 배를 쳤다. 그의 아내B(39)씨도 나무 십자가로 한씨의 뒷머리와 등, 가슴을 때리면서 거들었다. 이른바 악령을 퇴치하기 위한 안수기도였다.

휴가를 나온 군인 한씨는 하루 뒤인 8일 부대 복귀를 앞두고 있었다. A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안수기도를 계속했다. 그는 이제 까마귀가 나오려고 한다. 오늘 반드시 귀신을 빼내야 한다며 한씨를 바닥에 눕히고 배를 때렸다. 배 위에 올라타 양손으로 목을 조르는 등 강도를 높여갔다.  아픔을 참지 못한 한씨가 도망쳤지만 곧 끌려왔다. A씨 부부는 까마귀가 나가려고 마지막 발악을 한다, 못나가게 붙잡아라며 안수기도에 동참을 한 다른 교회 목사 C(49)와 그의 아내 D(45)씨의 손도 빌렸다. C씨 부부와 16, 9살 두 딸은 한씨 두 팔을 붙잡고 두 다리를 밟아서 일어나지 못하게 제압을 했다. 안수 기도는 극단으로 치달았다.

A씨는 한씨의 배 위에 올라타고 두 손으로 목부터 턱까지 붙잡고 쓸어 올리듯 목을 졸랐다. 숨이 막힌 한씨는 몸부림을 치고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구역질을 했다 그러나 이들은 한씨를 풀어주기는커녕 까마귀가 오물을 뱉어 성전을 더럽히고 있다며 비닐 봉지로 한씨의 침을 받아 냈다. 이들의 폭행은 10여분 동안 계속됐다. 결말은 한씨의 죽음이었다(조선일보, 2021, 2, 6).

 이와 유사한 사건들은 자주 언론과 TV에 보도가 되고 있다. 21세기 2021년에 불과 3개월 만에 3건의 사례가 그 증거이다.

 우리나라의 속담에 열길 물속은 알 수 있지만 한길 사람 속은 알 수가 없다라는 말이 있다. 물속은 들어가서 직접 볼 수 있지만 사람의 마음 속은 들어가 볼 수가 없다. 뚜껑을 열어 볼 수가 없지 않는가?  일반적으로 마음은 눈으로 볼 수가 없다. 고로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생각하기 쉽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유치원 어린이도 알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라고 질문을 하면 사람들은 대답을 잘 하지 못한다. 그것이 바로 바람(wind, )이 아닌가?  그리스어로 바람을 psych(Ψ)라고 불렀다. 이것이 심리가 되었다. 심리학의 상징은 그리스어로 Ψ(싸이)이다 이것이 싸이코 즉 심리의 상징어가 된다(Basch, 1980: 주㈜: 참고).

 바람을 노래한 시인이 있다 그가 바로 영국의 낭만주의 계관 시인(월계관 시인)인 윌리엄 워즈워드(William, Wordsworth)이다. 그는 누가 바람을 보았는가? 라는 시에서 누가 바람을 보았는가? 바람 본 사람이 아무도 없네, 바람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나뭇잎이 살랑거릴 때 바람이 지나간 것을 안다바람은 엄청난 힘과 방향 가지고 있다 이러한 물리학적인 개념이 정신분석학에 도입되어지게 된다(아래에 정신분석가가 된 물리학자들을 보라).

드디어 19세기 말에 의과대학을 졸업한 신경과 의사로써 프로이트뇌와 해부학과 신경생리학을 심리학적인 용어로 설명을 한 정신분석을 창조함으로써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직접 눈으로 마음을 들어다 본다는 뜻이 아니고 마음을 물리, 화학, 수학적으로 설명함으로써 우리의 내면의 마음 속을 현미경처럼(은유) 들어볼 수 있도록 하는 설명을 통해서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고로 정신분석을 마음의 현미경이라고 부른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마음의 움직임(자아)을 통해서 어떻게 똑 같은 부모님과 똑 같은 환경에서 성장한 자녀가 한 사람은 우등생이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정신장애가 되는가? 자아의 움직임을 통해서 그들의 차이점을 설명해보기로 한다.

먼저 이것에 대한 설명에 들어가기 이전에 우리가 이해를 해야 쉽게 알 수 있는 설명의 과정이 필요하다. 프로이트는 1895년에 정신분석을 창조했다. 그가 정신장애인 신경증을 치료하는 수단으로써 정신분석을 만들어냈다 라는 것은 이미 다 알고 있다. 그는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이다. 의사들이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정신분석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초반기에 대부분의 의사 혹은 정신과 의사들이었다.

20세기 초반기에 정신분석의 바람이 불면서 많은 사이비(엉터리) 분석가들이 등장하면서 프로이트는 정신분석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는 논물을 썼다 그러나 반드시 의과대학을 졸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을 했다. (Jung)의 권유로 정신분석 학교가 창설되었고 그 학교를 졸업하고 일정한 수련을 받게 되는 정신분석의 전문가를 양성하는 과정이 등장하게 된다.

1911년에 쓴 논문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정신분석을 개방 한다고 선포를 했다.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분석가가 된 사람들을 정신분석가(psychoanalyst)라고 부르고 동시에 의과대학을 졸업하지 않고 분석가가 된 사람들 일반 분석가(lay analyst)라고 불렀다. 프로이트의 막내 딸인 안나 프로이트(Anna Freud)는 초등학교 교사로 정신분석을 공부해서 아버지의 전통을 이여 받아서 정신분석가가 된 사람이다. 얼핏 보기에는 자신의 딸을 정신분석을 공부하도록 하기 위해서 길을 열어주게 된 것이 그것의 원인이 아닌가? 라고 생각하는 의심을 하는 사람들로 있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100년 앞을 내다보고 정신분석을 개방을 했다. 그는 정신분석이 의학 안에 잡아 먹히게 되어 의학에 흡수 통합되어 사라지는 것을 반대했다(2021, 4, 24: 위키피아). 정신분석이 독립된 학문으로 발전하기 위해서 정신과 의사들뿐만 아니라 일반 전문가들에게 개방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의과대학을 졸업하지 않는 사람들이 정신분석가가 된 유명인들이 많다. 어네스트 크리스(Ernest Kris)는 비엔나 대학에서 예술학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으로 정신분석가가 되어 예술적인 분야와 정신분석을 통합시키는데 앞장을 섰다. 수많은 문학 작가, 예술인, 창작을 하는 사람들이 정신분석을 전공해서 정신분석의 범위를 확대 시켰다.

영문학을 전공한 사람이 정신분석가가 된 사람으로 도날드 스펜스(Donald Spence)가 있다. 그는 하버드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후에 컬럼비아대학 정신분석학교를 졸업하고 정신분석가가 되었다. 그들은 작가들의 어린시절과 그들의 문학 작품의 주인공들을 정신분석적으로 분석해서 평론으로 연구를 한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언어학 박사를 가진 사람이 정신분석가가 되어 언어정신분석을 탄생시킨 사람들이 있다. 대표적인 사람이 스위스의 제네바 대학에서 언어학을 전공해서 프랑스의 구조주의 언어학의 대부(代父)인 소슈르(Saussure) 밑에서 구조주의 언어학을 연구를 하다가 정신분석학자가 된 마구아리트 세계하에(Marguerite Sechehaye)가 있다. 그녀는 정신분열증 환자를 직접 치료하면서 일기 형식으로 쓴 연구 논문인 르레(Renee)의 일기로 정신분열증 환자의 내면의 세계를 연구해서 정신분열증의 연구를 위한 길을 열어주게 된다. 언어학과 정신분석의 통합으로 새로운 언어정신분석의 분야로 확대의 길을 열게 된다. 대표적인 사람인 프랑스의 장자크 라깡(Jacques Lacan)으로 그는 구조주의 언어학과 정신분석과 마르크스를 혼합한 정신분석을 탄생시켰다(2021, 4, 24: 위키피아).

비엔나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해서 변호사로 있다가 정신분석가가 된 사람이 바로 한스 샤크(Hanns Sachs)이다. 그는 프로이트의 비밀 5인방 중에 한 사람으로 미국에 이민 가서 보스톤 정신분석학교(1932)를 설립하고 정신분석의 길을 닦았다. 이들에 의해서 정신분석과 법학이 통합된 범죄심리학의 길을 열어놓게 된다. 하버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컬럼비아대학 정신분석학교를 졸업한 제임즈 길리건(James Gilligan, 1996: 주㈜: 참고)이 교도소에 직접 들어가서 폭력을 정신분석학으로 해부하는 범죄 심리학(법의학, forensic psychiatry)의 선구자가 된다.

비엔나 대학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가지고 정신분석가가 된 사람이 바로 세이그프라이 번스필트(Siegfried Bernfeld)이다. 그가 정신분석가가 되어 사회학과 정신분석학을 연결시켰. 그는 제 1 차 세계대전에서 오스트리아가 패배하면서 300명의 폴란드 유태인 어린이들을 구제해서 거주지를 제공하고 그들을 치료하는데 공헌을 했다. 미국에 이민 후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정신분석학교를 설립하고 교육가로 활동을 했다. 1920년대에 번스필드가 소비에트(소련)의 철학자인 유리네트(Yurinet)와 함께 논쟁으로 프로이트-마르크스(Freudo-Marx)를 출판했다. 이것이 이후에 러시아의 언어학자인 벨렌틴 브로보스키(Valentin Voloshinov)에 의해서 1925년에 사회주의를 넘어서 라는 논문에서 정신분석과 마르크스주의자의 논평을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프로이트-마르크스의 철학으로 이어지게 된다. 번스필드는 정신분석가들 중에서 사회주의자를 모아서 사회주의 정신분석가 그룹을 만들었다. 그들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명망 있는 정신분석가 윌헬름 레이크(Wilhelm Reich), 오토 페이넬(Otto Fenichel), 에릭 프롬(Erich Fromm), 어네스트 심멜(Ernest Simmel), 그리고 프란시스 델리(Frances Deli) 등이다(2021, 4, 24: 위키피아).

 레이크는 비엔나 의과대학을 졸업한 정신과의사로 프로이트의 2세대 분석가이다 그는 과격한 정신의학으로 혁신적인 개혁가였다. 1933년에 정신분석에서 처음으로 인격분석(Character Analysis)의 저서, 1933년에 파시즘과 군중 심리학 그리고 1936년에 섹스 혁명을 출판해서 폭풍을 일으켰다. 정신분석이 중, 상류층환자들이 중심이 된다는 비판에 반대해서 그는 독일에서 노동자의 통원치료 정신분석 센터를 설립하고 노동자들과 농민들을 치료를 했다. 독일에서 유태인 박해가 시작되면서 그는 뉴욕으로 이민을 가서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가 멕카시즘(공산주의 소탕에 앞장선 미국 상원위원이 만든 법)으로 투옥되어 감옥에서 사망했다.

 오토 페니첼은 비엔나 의과대학을 졸업한 정신과 의사로 정신분석가가 되어 사회주의와 정신분석의 통합을 시도했다 그는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공산주의 운동에서 벗어나서 어네스트 심멜과 함께 L.A.정신분석학교를 세우고 정신분석 치료를 했다. 그의 저서인 신경증에 대한 정신분석 이론은 의과대학 정신과 교과서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Fenichel, 1945: 주㈜: 참고).

 에릭 프롬은 독일의 최고 오래된 대학인 하이델베르그 대학에서 사회학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다가 정신분석에 매료되어 독일에서 정신과의사이자 정신분석가가 된 프리다 에릭크만(Freida Reichmann)에게 개인 수련을 받다가 서로 사랑해서 결혼을 하게 된다. 그는 개인분석의 중단으로 한스 샤크에게 개인분석을 완료하고 정신분석가가 되었다. 레이크만과 프롬은 16년 결혼 생활에서 프롬이 폐결핵으로 격리생활에 들어가면서 그것이 이혼으로 이어졌다. 이후에 프롬이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그가 레이크만을 미국 이민으로 초청을 했다. 미국에 온 그녀는 체스트낫 롯지(120 그루의 밤나무골 정신병원)에서 평생을 정신분열증 환자들과 치료로써 보냈다.

1950년데 포드재단의 후원으로 인류학자, 사회학자, 언어학자인 베이트슨(Bateson)과 정신과의사 젝슨(Jackson), 인류학자인 위클랜드(Weakland), 정신분석가인 위즐위크(Waltzlawick) 그리고 심리치료사 헬리(Haley)가 캘리포니아의 팔로 알토(Palo Alto)에서 포드 재단의 후원으로 정신건강 연구소를 세우고 정신분열증 환자들의 가족구성원들을 연구한 결과 1956년에 커뮤니케이션에서 결함이 있다는 이중구족, 이중속박(double bind) 이론을 발표를 했다.

그들의 초빙 교수로 유일하게 대학교수가 아닌 사람으로 레이크만이 초대를 받았다 그녀는 아버지의 성()인 레이크만과 남편의 성()인 프롬을 함께 사용해서 그녀의 이름이 프리다-프롬-레이크만(Frieda – Fromm-Reichmann)으로 사용하고 있다(서양에서는 결혼 후에 부인은 아버지의 성을 버리고 남편의 성을 따라간다 그러나 프리다는 남편과 아버지의 성을 같이 사용), 정신분열증 환자로써 그녀의 치료를 받아서 회복한 사례의 작가인 조안 그린베르그(Joanne Greenberg)의 자서전 소설인 나는 너에게 장미의 정원을 약속하지 않았다의 작품이 영화로써 제작되어 정신분열증의 정신분석 치료를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녀의 개인분석을 받은 유명인사가 바로 스텐포드 대학의 석좌 교수인 정신분석가 이자 실존 철학자인 롤로 메이(Rollo May, 1953, 1996: 주㈜: 참고)가 있다.

그녀의 공헌은 약물을 사용하지 않고 정신분열증을 정신분석으로 치료한 미국에서 제 1 세대 분석가로써 그 공로로 그녀의 사망 후에 미국 정부에서 밤나무골 정신병원을 매입을 해서 그 지역 역사 박물관으로 보호하게 되었다(2021, 4, 24: 위키피아).

에릭 프롬은 사회학을 정신분석에 접목시켰다. 독일에서 정신과의사가 된 카렌 호르니(Karl Horney)가 프롬에게 사회학을 프롬이 그녀로부터 정신분석을 서로 교환함으로써 프로이트의 이론에 사회, 문화적인 요소가 빠진 것을 보충하게 되면서 신프로이트(Neo-Freudian) 학파가 탄생하게 된다. 셀리번(Sullivan), 에릭 프롬(Fromm), 프롬-레이크만 그리고 호르니(Horney)가 신프로이트 학파로 대인관계 정신분석을 탄생시키게 된다. 호르니는 이후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 반대해서 페미니스트 정신분석가가 되어 그녀 자신의 정신분석 학교를 세우고 독립된 정신분석의 길을 개척하게 된다.

프롬-레이크만은 셀리번, 프롬, 클라라 톰슨(Clara Thompson)과 함께 뉴욕에서 1943년에 윌리엄 화이트 올슨 정신분석학교(William Alanson White Institute)를 설립해서 대인관계 정신분석학교를 창립하게 된다. 이 학교가 뉴욕대학원 정신분석학교가 된다. 컬럼비아 대학원에 정신분석 학교와 함께 유일하게 미국에서 종합대학에 정신분석학교가 설립된 2개의 학교가 된다.

에릭 프롬은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웨버(Max Weber)의 플랑크푸르트 학파로 사회주의 운동에 참가했다가 탈퇴하고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가 똑 같이 인간을 소외시킨다 라고 거부하고 민주적인 사회주의를 표방을 했다 그는 로져스(Rogers)와 마슬로우(Malsow)와 함께 인본주의 심리학을 창설하게 된다.

Ego 심리학은 이들 사회학자들이 정신분석에 뛰어들어서 정신분석에 문화, 사회학적인 요소로 정신분석이 확대되어지는 길을 걷게 된다. 에릭슨과 안나 프로이트 그리고 하트만(Hartmann) 등에 의해서 정신분석의 범위가 확대되어지게 되어 새로운 정신분석의 한 갈래가 바로 ego 정신분석학이다.

 여기에서 끝난 것이 아니고 프로이트와 마르크스의 철학으로 이어져서 프랑스에서 프로이트와 마르크스의 철학이 꽃을 피우게 된다. 프로이트와 마르크스둘 다 유태인으로 종교를 비판을 했다. 둘 다 무신론자이다. 둘 다 영국에서 사망했다. 한쪽은 유물론으로 그리고 다른 쪽은 유심론(정신), 한쪽은 평생동안 물질에 집착한 물질주의 페티시즘이고 그리고 다른 쪽은 평생동안 섹스에 집착한 섹스 페티시즘으로 구분되어 비교 연구되어지고 있다. 그들의 연구는 프랑스에서 번창했던, 구조주의 언어학, 마르스크 그리고 후기 구조주의, 포스트 모던 등에서 활약하던 철학자들과 연결되어진다(2021, 4, 24: 위키피아).

대표적인 철학자로써 프로이트와 철학: 해석학에서 논문을 쓴 파울 리코에르(Paul Ricoeur), 파리의 솔본 대학에서 철학과 심리학의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으로 철학, 인류학, 사회학, 심리학, 범죄학, 문학평론가인 미첼 푸코(Michel Foucault)의 미침의 역사(1961), 심리치료소의 탄생(1963) 등이 있다, 또한 프랑스에서 정신분석, 인류학, 언어학, 정치학, 문학 평론가인 장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가 있다. 데리다는 보스톤 정신분석학교 교수인 마구아레트 어카운테르(Marguerite Aucouturier)와 결혼해서 정신분석가가 되었다. 그들의 프로이트와 마르크스 철학에서 시작한 사회학과 정신분석의 통합이  언어와 구조주의 결합으로 번창하고 있다(2021, 4 , 24: 위키피아).

이제 물리학으로 방향을 돌려보자, 내면의 마음 속을 들려다 보기 위해서 물리학과 정신분석의 접목에서 시작된다. 프로이트가 정신분석을 탄생시키는 배경에는 물리학자들의 연구가 정신분석의 탄생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프로이트 보다 16년 먼저 심리과학을 탄생시킨 라이프지그 대학의 분트(Wundt)의 스승인 구스타브 페크너(Gustave Fechner)는 라이프지그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물리학을 전공해서 실험물리학 박사로 라이프지그 대학의 교수가 된 6년 후에 조울증으로 3년 동안 두문불출하고 칩거하다가 문을 열고 나오면서 세상을 참 아름답다 라고 환호성을 지르면서 몸과 마음의 연구를 수학적으로 10년 동안 계산을 해서 R분의 ∆R은 비례상수 K라는 공식으로 자신의 스승으로 의과대학 졸업 후에 철학자가 된 웨버(Werber)의 공로로 돌리면서 이름을 붙인 심리물리학 저서를 쓴 사람이다(상세한 것은 3대에 걸친 심리과학의 탄생을 보라).

프로이트가 페크너를 만난 적은 없지만 그는 페크너를 스승으로 불렀다. 그의 물리학적인 이론이 프로이트에 의해서 그대로 흡수되었다. 페크너의 저서인 쾌락의 원리, 안정과 반복의 원리, 위크와 조크는 프로이트의 즐거움의 원리를 넘어서, 반복의 원리, 위트와 무의식으로 그리고 프로이트의 의식, 전의식, 무의식, 즐거움과 불쾌감의 원리, 계수의 원리, 현실의 원리 등은 프로이트가 페크너로부터 따온 내용들로 사용하게 된다. 역동학적 정신의학을 쓴 엘렌버그(Ellenberger, 1970)는 그의 저서에서 페크너가 없이는 정신분석의 탄생이 불가능했을 것이 다고 노트하고 있다(김종만, 1999, : 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 pp. 622-623).

프로이트의 제자로써 비엔나 대학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한 데이비드 라파포드(David Rapaport)가 정신분석학자가 되어 물리학적인 이론들이 정신분석에 포함되어 정신분석을 확대 시켰다.

19세기 영국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토마스 영(Thomas Young) 1807년에 에너지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영국의 물리학자인 윌리엄 톰슨(William Thomson)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그리고 1843년에 영국의 수학자, 물리학자인 제임즈 프레스코 줄(James Prescott Joule)전기의 흐름에 저항의 제곱이 열(Thermo) 이라는 공식을 발표했다(줄의 법칙). 열의 량을 측정하고 방향을 수학적으로 측정하는 학문으로 열역학(Thermodynamics)이 등장하게 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열을 수학적으로 계산할 수 있게 되면서 이것이 (thermo) 대신에 심리라는 psych가 접목을 해서 psychodynamics 심리역동학 혹은 역동학적 정신의학(dynamic psychiatry) 으로 연결된다.

물리학자들이 심리학에 공헌한 사람들이 많다. 하버드 대학에서 수학과 물리학 석박사를 한 토마스 쿤(Thomas Kuhn)1962년에 쓴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그가 신조어로 패러다임 전환 (paradigm shift) 이라는 용어는 인식체제의 변화로써 정신분석학이 환자의 과거의 상처를 찾아내어 치료를 하면서 그들의 기억을 지울 수는 없지만 습관화 된 생각하는 방법을 전환함으로써 세상을 보는 시각의 변화로 인간의 마음을 수정하고 고치는 정신분석의 핵심 기법으로 자리잡게 된다.

 또 한 사람은 양자 역학이론으로 1932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독일의 워너 헤이젠베르그(Werner Heisenberg)로써 그의 불확실성의 원리는 정신분석에서 많이 인용된다, 그는 불확실함이 창의성의 근원으로 우리가 애매한 불안과 의심이 바로 더욱 더 그것을 탐색하고 연구를 함으로써 새로운 것을 학습하게 된다는 것을 노트하고 있다. 알고 있는 것은 호기심을 유발하지 않는다. 마음에 안정을 제공한다 그러나 애매하고 잘 모르는 것이 인간에게 불안을 창조한다 특별히 낯선 곳은 항상 불안과 긴장을 동반한다. 그러나 새로운 곳에 감으로써 우리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불안과 두려움은 새로움의 창조하는 근원으로 정신분석에서 단골메뉴로 사용하고 있다(Stern, 1997: 주㈜: 참고).

영국의 천체 물리학자인 스테판 호킹(Stephen Hawking)은 우주물리학은 실험할 수 없는 이론물리학이라고 천명을 했다. 양자구조를 발견해서 1922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덴마크의 코펜하겐 대학교수인 닐 보어(Niels Bohr) 그리고 하이벤베르그, 쿤 등은 물리학자이면서 철학자들로써 모든 사물들이 실험실에서 실험으로 증명되어지지 않는다 라는 것을 주장하는 학자들이다. 그들의 물리학의 이론들이 정신분석에서 자주 인용되어지는 것은 위와 같은 이유들 때문이다.

물리학자들의 이론을 바탕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내면을 연구하고 추적하는 정신분석을 통해서 똑 같은 가족 환경 안에서 성장한 자녀가 왜 한쪽은 우등생으로 다른 한쪽은 문제아(정신자애)로 등장하게 되는가?마음의 현미경으로 관찰해 보자.

결혼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하면서 시작된다. 결혼식을 하기 이전에 양가의 가족들이 함께 만나서 서로를 확인하고 인정을 하는 “상견례를 시작으로 결혼이 시작된다. 가장 좋은 결혼은 양가의 가족들이 서로 O.K.로써 축복해주는 결혼일 것이다. 자녀들은 가족구성원들의 지원아래서 결혼식을 홀리고 새로운 가정을 이루게 된다. 그런데 어느 한쪽 가족이 결혼을 반대하는 경우에는 한쪽 가족구성원의 지원을 상실하게 되면 신랑과 신부가 받는 심리적인 흐림 즉 스트레스가 신부 혹은 신랑의 마음 속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러한 영향은 태어나는 자녀들 즉 임신 중에 혹은 출산 후에 자녀의 심리학적인 성장과 발달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치료자에게 약 300시간의 정신분석 치료를 받은 A씨는 미국에 7년 동안 유학으로 박사학위를 가지고 귀국해서 대학교수로써 출발하면서 그가 사귀게 된 여자 친구와 결혼을 하게 되었을 때 A씨의 아버지가 반대를 했다. 더 좋은 신부감을 구해서 신분과 재산이 많은 여성과 결혼을 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반대였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써 여자 친구가 이미 임신 3개월로 태아를 유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허락을 요구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신부를 선택하든지 혹은 아버지를 선택하든지 양자 택일을 하라고 해서 신부를 선택하기로 했다. 어머니를 제외한 친가 가족구성원은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A씨가 고교생 때 이혼으로 갈라섰다. 이러한 스트레스 때문에 A씨는 4번째 입시에서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유학을 했었다.

결혼식 날에 가족들이 참석하지 않는 것은 예외로 해도 그날 A씨의 형님이 A씨의 결혼 식장에 뛰어들어오면서결혼은 무효이다 라고 외치면서 들어와서 A씨와 형님이 난투극을 벌리게 되었다. 결혼 이후에 A씨는 친가 가족과 관계를 단절했다. 대신에 처가 가족과 밀접하게 관계를 했다.

자녀가 태어나고 4살이 되었을 때 부인으로부터 이혼을 당하게 되었다. 결혼 7년 만에 친가와 처가와 단절로 외톨이가 된 A는 자살을 결심하고 자동차를 몰고 사고사()로 죽겠다고 자살생각을 하고 있다가 부인이 치료자의 홈페이지에 보드라인 장애의 치료를 보고 남편에게 소개로써 추천해주었고 그가 7년의 대학 교수로써 안식년(1년 동안 유급휴가)에서 1주일에 5 1회당 2시간으로1 주일에 10시간씩 집중적으로 1.5 년 동안 심리치료를 받게 되었다.

그 결과 부모님과 형제들과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고 동료 교수들과 단절된 관계의 회복 그리고 부인과 관계를 회복했으나 부인은 재결합을 거부했다. 자녀와 만남은 허용되었다. 여기에서 어느 한쪽의 단절과 스트레스가 눈에 보이지 않지만 A씨의 마음에 영향을 미쳐서 정신분열증 직전에서 구제된 사례이다.

또 다른 한쪽은 50대의 B 부인이 10년 동안 정신분열증(조현병)으로 약물을 복용해 오다가 더 이상 약물이 효과가 나타나지 않게 되면서 심한 불면증으로 잠을 잘 수 없게 되면서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받은 그녀의 아들의 소개로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받게 되었다.

그녀는 4살 때 아버지가 폐결핵으로 사망하면서 재혼한 어머니가 외할머니 한데 양육을 맡김으로써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큰 어려움이 없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B씨는 어머니의 요구에 의해서 어머니가 재혼하게 된 가족들과 합류하게 되었다. B 부인은 어머니의 가족과 합류로써 계부와 관계 그리고 4명의 이복형제들을 돌보아주게 되었다. 그녀는 이후에 여자상업 고교를 졸업하고 2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하다가 결혼을 하게 되었다. 재혼한 남편은 경제력이 거의 없었다. B씨의 어머니는 남편인 B부인의 계부의 무능력 때문에 B부인의 어머니가 생계 유지를 위해서 B부인을 본가로 소환해서 첫 번째를 제외하고 3명의 동생들을 양육하고 집안 살림을 하기 위해서 그녀를 소환한 것을 분석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B 부인이 불평하지 못하도록 엄마의 말을 들으면 이후에 좋은 신랑감을 찾아서 결혼시켜주겠다고 엄마를 믿고 반항하거나 거부하지 못하게 했다(분석 치료 과정에서 밝혀졌다). B부인은 여상을 졸업하고 취업으로 월급봉투를 계부에게 전달했다. 그러나 계부는 B부인에게 용돈조차 주지 않았다. 이것을 알고 어머니가 그녀에게 점심값과 교통비를 제공해주었다.

결혼이 다가오면서 B부인은 3살 아래 여동생이 남자 친구를 사귀게 되면서 언니(B부인)가 미혼으로 있게 되면 딸 결혼에 방해가 된다는 점에서 B부인을 서둘러 결혼식을 올리게 된 것이 분석을 통해서 밝혀졌다. B부인은 회사에서 경리사원으로 2년 동안 근무할 때 펜팔로(서신으로 편지를 주고 받는 남녀 사귐) 육군 소위와 사귀고 있었다. 남자 친구가 B 부인의 집에 와서 B부인과 결혼을 허락해 달라고 했을 때 계부와 어머니가 무슨 연애질로 사고를 쳤느냐? 라고 노발대발해서 관계가 끊어졌다. 그런데 그 다음 해에 B부인으로 하여금 서둘러 선을 보게 하고 남녀가 선을 보는 문깐방(사랑방)에 두 사람을 마주하게 하고 밖에서 문을 잠가버린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은 결혼을 했는데 알고 보니 부인은 고졸이고 남편은 중학교 중퇴자로 직업이 없다는 것을 알고 대경실색을 하게 되었다(어머니에게 배신감).

결혼 후에 어머니는 산골짜기에 산자락을 사 놓은 곳에 B씨 부부가 그곳에서 농사를 짓고 농토를 일구도록 하면서 젖소를 한 마리 사준 것을 시작으로 여기에 B부인이 젖소 한 마리를 사서 모두 2마리로 농지 개발을 시작했다.

부인과 남편은 죽자고 열심히 일을 하면서 아들과 딸이 태어나게 되었다. 어머니는 B 부인에게 이 농지를 개간해서 절반씩 나누자 라고 약속을 하면서 B부인을 타일러서 농장 개간을 하도록 했다. 수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젖소가 10마리로 불어났다. 그 동안에 어머니는 마음대로 젖소를 한 마리씩 팔아서 친딸(B 부인의 이복 여동생)의 대학 학비로 사용한다는 것을 B 부인이 알고 있었지만 불평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니가 B씨 부부에게 농장을 팔겠다고 하면서 당장 집을 비우라고 했다. 청천벽력이었다. 적어도 1달 이전에 통고를 해서 나갈 곳을 구하게 하지 않고 어머니는 돈 5천만 원을 B부인의 손에 쥐어주면서 당장 이사를 가라고 했다. B부인의 분노가 폭발을 했다.

 처음에 이곳에 올 때 이 산지를 개간을 해서 절반씩 나누자고 했던 약속을 상기 시키면서 이 개간지가 팔렸으니 당장 떠나라 라고 하는 어머니에게 얼마나 팔렸는지? 계약서를 보자고 했다가 폭발이 일어났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칼을 들고 나와서 B부인을 죽이겠다고 했. 남편이 말리자 어머니는 분노해서 목을 매 죽을 것이라고 하면서 뒷산으로 올라가고 남편이 되 쫓아가서 장모님을 데리고 왔다.

B씨 부부는 할 수 없이 5천만 원으로 수년 동안 일군 개간지를 포기하고 도시로 나와서 남편은 공장에 취업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이후에 알게 된 것은 B 부인의 어머니가 첫 째 딸을 결혼을 시키면서 딸의 아파트를 사주기 위해서 B 부인의 농장을 팔았다는 것을 B부인이 알게 되었다.

세월이 10년이 흘러가면서 예기치 못하게 IMF가 터졌다. 딸과 아들이 대학생이 된 B부인은 학비조달로 사채를 빌려 쓰다가 돌려 막기로 높은 이자를 대부 업체로부터 빌려 쓰다가 빚 독촉으로 사면초가로 자아가 붕괴되면서 정신분열증(조현병)이 발발한 것이었다.

B부인은 결혼 후에 친정 가족과 단절을 했다. 어머니의 배신을 스스로 알게 된 것이었다. 10년 동안 세 번의 정신병원 입원으로 약물치료는 급한 상황을 모면하는데 도움이 되었지만 조현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약물을 복용하면서 버티면서 지금까지 온 것이었다. 그녀의 결혼한 아들이 4년 전에 치료자에게 불안증으로 심리치료를 받았던 것을 어머니에게 소개를 해서 B 부인이 6개월 동안 분석 치료를 받으면서 위와 같은 친모의 학대, 계부와 관계, 3살 어린 여동생과 관례, 친모의 박탈의 심리적 상처를 알게 된 것이었다.

분석치료 과정에서 이러한 친정 엄마의 학대로 그녀가 개돼지처럼 사육 당했다 라고 스스로 평가하면서 분노했다. 그러한 감정을 말로써 표현하면서 치료를 계속해 나갔다. 그녀는 6개월 치료 후에 약물을 복용하지 않고 정상적인 생활로 회복되어질 수 있었다.

위의 두 개의 사례는 결혼에서 한쪽 가족의 감정 지원에서 단절이 남편과 부인에게 어떤 심리적인 영향을 미치는지를 소개한 것이다. 이제 결혼 후에 태어나는 자녀들의 이야기로 되돌아가 보자.

옛날 우리 조상들은 임신 중에 태아 교육으로 태교를 중요시 했다. 임신 중에는 상가집(초상난 집)에 가지 않는다. 슬픈 감정이 태아에게 영향을 미친다라는 것을 감안한 것이다. 임신 중에 불결한 음식을 먹지 말라(돼지 족발은 발이 갈라진 아기를 출산- 미신)고 했다. 출생 직후에 동네 사람들의 호기심에 대답하기 위해서 새끼줄에 아들을 낳은 산모는 고추를 그리고 딸을 낳은 산모에게는 작은 칼을 꽃아 정보를 제공하고 산후에 집을 방문을 금시 시켰다. 이러한 태교들은 오늘날 발달 심리학에서 실험실에서 증명된 과학 이론으로 뒷바침 하고 있다. 하버드 대학과 피츠버그 대학이 공동으로 연구한 태아의 지능의 연구에서 과거에는 지능은 타고 나는 유전으로 생각했지만 49%는 자궁 안에서 지능이 형성된다는 논문이 발표 되었다. 임신 3개월 동안에 태아의 손과 발의 인체의 모든 장기들이 형성되는 기간으로 이 기간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임산부는 기형아 출산이 7배가 높다 라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임신 7개월이면 태아가 엄마의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로써 오늘날 태아의 이름이 태명(胎名)으로 지어지고 태아와 대화를 하게 된 것도 그 이유이다.

자녀의 출생 이후에 자녀들의 양육 문제로 이야기를 돌아가보자. 인간이 엄마의 자궁에서 태어날 때 백지 상태로 태어난다. 컴퓨터의 하드디스크처럼 5감각이 통합되어 태어나기 때문에 출생 이후에는 엄마와 아빠와 아기의 상호관계가 프로그램으로 머리에 입력이 되어지게 된다(자폐아는 예외: 자폐증은 5감각의 통합실패의 결과: 정신분석가로써 세계적인 자폐아의 연구의 치료의 대가인 영국의 정신분석가인 프란시스 투스틴(Frances Tustin, 1972, 1987: 주㈜: 참고)의 연구를 보라).

버컬리 대학의 뇌 과학자인 다이아몬드(Diamond, 1999: 주㈜: 참고)와 시카고 대학의 뇌 과학자인 엘리옷(Eliot, 2000: 주㈜: 참고)은 그들의 저서에서(마음의 마술의 나무(다이아몬드), 뇌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엘리옷) 에서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뇌는 조각가의 칼 끝, 재봉사의 가위 끝에 달려 있다 라고 했다. 어떤 프로그램을 입력하느냐?에 따라서 뇌가 달라진다는 뜻으로 엄마와 아기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기억에 흔적이 생기고 그것이 경험으로 누적되어 자아가 형성되어지기 시작한다는 정신분석의 이론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출생 직후에 엄마와 아기는 너와 나의 하나됨으로 엄마의 마음이 아기의 마음이 되고 아기의 마음이 엄마의 마음이 된다. 이것을 정신분석에서는 너와나의 하나됨(symbiotic relation)(Mahler의 분리와 개인화: Mahler, 1975. 인간유아의 마음의 탄생) 혹은 나의 self와 너의 object가 서로 연결되어 너와나의 하나(selfobect)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Kohut의 자아 심리학: Wolf, 1988: 치료되는 자아).

여기에서 불안한 엄마의 마음이 아기의 불안한 마음이 된다. 양육 지식에 부족은 유아양육에 엄마의 불안이 가중되어져서 아기의 불안이 된다. 그러나 둘째 자녀는 첫 번째 자녀의 양육의 경험이 뒷받침이 되어 둘 째는 심리적인 안정감이 아기의 마음이 되어 첫 번째 자녀와 둘 째 자녀는 심리적인 흐름이 달라진다. 첫 번째 자녀는 태어나서 혼자였지만 둘 째 자녀는 형, 누나와 있기 때문에 심리적인 어려움이 반감되어질 수 있다. 마음 속에서 흘러가는 심리적인 에너지의 힘과 방향을 고려해보라.

여기에서 잠깐 쌍생아의 경우를 보자. 일란성(난자가 한 개) 쌍생아는 한 개의 난자로 수정된 수정란이 쪼개진 것으로 복제인간을 말한다. 한 사람이 둘로 나누어진 경우를 말한다. 쌍둥이의 양육은 부모가 똑 같은 옷, 똑 같은 가방, 똑 같은 스타일로 양육을 하는 것은 그들에게 똑 같은 차별이 없는 사랑을 제공하기 위함이 아닌가? 똑 같은 환경에서 성장한 일란성 쌍둥이의 경우에도 두 사람의 마음이 많이 차이가 난다는 것의 예를 들어보자.

미국에서 한 사람이 4명으로 일란성 4 쌍둥이가 태어나서 화제가 되었다. 아버지는 잦은 실직, 대인관계의 어려움, 짜증, 분노, 감정철회적이고 말이 없었다. 아버지의 친가는 정신병 환자가 많았다. 어머니는 과잉보호적이고 자녀들에게 엄격하고 처벌적인 성격으로 강박증 환자였다. 부모님은 자녀들에게 학교에 등하교 시에는 다른 동료들과 접촉을 막았다. 그들이 동료들을 집으로 초대하지 못하게 했다. 식사 때는 항상 같이 모여서 식사를 하게 했다. 독립된 생활을 하지 못하게 했다. 결국 4명의 쌍둥이는 청소년기에 정신분열증 환자(조현병)가 되었다.

미국국립정신건강 연구소(NMHI)에서 그들을 치료해주기로 하고 정신병원에 입원을 시켜서 연구를 했다. 1963년에 제나인(Genians) 가족으로 연구 결과가 출판되었다. 제나인 가족이라는 뜻은 그리스어로 끔찍한 탄생이라는 뜻으로 15억 분의 1의 확률을 가진 탄생으로 3년 동안 정신과치료를 받았다. 4명의 자녀들 중에서 어머니가 착한 딸로 인정한 2명의 자녀들 중에서 한 사람은 결혼을 해서 정상적인 사람으로 복귀를 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은 무용 교사의 직업으로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다. 그러나 심각한 자위행위로 나쁜 딸로 지목된 2명의 자녀들은 정신병원에서 퇴원하지 못하고 병원에 입원 치료를 계속하게 되었다(Bernheim, 1979). 이 연구는 복제인간으로 인정하는 일란성 쌍둥이 조차도 부모의 심리적인 영향의 결과로 다른 성격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부모님의 심리적 흐름은 자녀들에게 똑같이 흘러가지 않는다. 한쪽 자녀가 부모님의 단점을 많이 가진 경우에는 부모님은 자신의 단점을 가진 자녀를 보면 고통스러워진다 고로 그것에 신경을 쓰게 되면자녀는 자신의 단점에 불안과 긴장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서 피아노에 한이 맺힌 엄마가 자녀에게 피아노를 레슨 받게 할 때 피아노 연주에 과도하게 신경을 쓰게 되면 그 자녀는 피아노를 칠 때 긴장하고 불안해지게 되면서 피아노 연주에 과도하게 긴장으로 실수를 많이 하게 되고 결국은 피아노에 어려움을 경험하게 된다.. 수학에 어려움이 있는 아버지는 자녀에게 수학을 잘해야 한다고 강조하게 되면 그 자녀는 수학에 예민하게 되고 긴장하게 되면서 수학에 어려움을 가지게 된다. 대신에 부모의 장점을 많이 가진 자녀는 부모님의 인정을 더 많이 받게 되면서 자신감이 성격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부부 사이에 갈등은 가족구성원들에게 긴장과 불안을 유발하게 된다. 남편에게 실망한 엄마는 아들과 더욱더 가까워지게 되면, 아들은 엄마의 과잉보호로 아버지를 싫어하게 된다. 아버지는 소외되고 고립되어진다. 여러 명의 자녀들의 경우에는 아버지는 딸과 가까워지고 어머니는 아들과 가까워지면서 가족구성원들이 엄마 쪽과 아빠 쪽으로 양분되어질 수 있다. 예일 의과대학 정신과교수이자 정신분석가로 가족치료사로 명망 있는 리즈(Lidz, 1985:주㈜: 참고)는 한 가족 안에서 한쪽으로 기울어진 가족(skew)으로 그리고 양쪽으로 엄마파, 아빠파가 갈린 가족은 분열가족(schizoid)가족으로 분류를 했다. 이러한 가족 구조가 자녀들의 성격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치료자에게 컨설팅을 한 40대 중반의 엄마는 일란성 쌍둥이 아들을 한쪽을 먼저 입학시켰고 다른 한쪽은 1년 늦게 입학을 시켰다. 엄마는 쌍둥이 엄마라는 말에 부끄러워서 두 쌍둥이를 차별화 한 것이라고 실토를 했다. 결국 인정을 받은 쌍둥이는 정상적인 발달 단계를 거치면서 성장을 했는데 차별을 받은 쌍둥이는 심리적인 문제를 가지게 된 것이었다. 모든 자녀들이 한쪽이 우등생이 되고 다른 쪽이 문제아가 된다는 말은 아니다. 부부 관계가 건강한 부부 그리고 자녀관계가 정상적인 부모들의 자녀들은 큰 어려움이 없다.

가족 치료사들은 가족구성원들과 문제아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상호작용의 거미줄을 분석하면서 문제를 가진 자녀는 가족구성원 중에서 가장 예민한 자녀들로써 부모의 문제를 흡수해서 스스로 부모를 보호하려고 하는 희생양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들을 환자(patient)로 보는 것이 아니고 가족구성원이 만들어낸 희생양으로 본다. 표면적으로 나타난 환자(identified patient)라고 부르는 이유가 그것이다. 가족 구성원들의 심리적인 문제를 스스로 짐을 지고 자신의 자아를 희생한 사람들이라고 본다.

하버드 의과대학을 졸업한 정신과 의사로써 정신분석가가 된 하놀드 실(Harlod Seales)은 체스트낫트 롯지 정신병원(밤나무골 병원)에서 15년 동안 약물 없이 정신분열증을 치료하면서 수많은 논문과 저서에서 환자들은 무의식적으로 부모의 어려움을 대신해서 짐을 짊어진 사람으로 보았다.

아래에서 소개되는 6명의 환자들은 치료자가 여러 번 소개를 한 사례들로써 그들의 형제들이 한쪽은 우등생이고 다른 한쪽은 문제아가 된 사람들이다. 그들의 가족구성원들 사이(부모와 자녀들)에서 어떻게 심리적인 흐름의 양과 방향이 다르게 흘러가는가?심리적인 역동학(마음은 힘과 방향을 가진 벡터)으로 설명해보고자 한다.

첫 번째 사례는 여고 1학년인 도벽 소녀 A양의 치료 과정이다. 그녀는 친척과 이웃 사람들의 돈을 수백만 원씩 훔치는 소녀로 조만간 경찰에 의해서 감옥으로 갈 것이다 라는 부모님의 불안 때문에 지인으로부터 치료자를 소개받고 딸의 치료를 의뢰한 것이었다. 부모님은 전화가 오면 혹시 딸 때문에 경찰서에서 오는 전화가 아닌가? 하고 가슴이 철렁하게 내려 않는다고 고백을 했다. 부모님에게 딸의 상황을 물어보았다. 딸은 약 6년 전부터 돈을 훔치고 있다고 했다. 1년에 1회 혹은 2회로 빈도수가 잦아진다고 했다.

최근에는 이웃집 할머니가 자녀들로부터 받은 돈을 은행에 입금 시키지 않고 장롱 속에 넣어둔 돈과 금반지가 어느 날 금반지가 방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장롱 속에 함께 넣어둔 약 200만원의 돈이 생각나서 체크한 결과 돈만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듣게 된 부모님은 틀림없이 오래 전부터 딸의 소행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의심을 해서 딸에게 물어 보았을 때 절대 자신은 아니다 라고 시침을 뗐다. 부모님이 번갈아 가면서 회초리로 딸을 때리기 시작을 했다. 실토하라 라고 다그치면서 새벽 1시까지 처벌했을 때 그녀가 가져갔다고 실토를 했다. 다행히도 전액의 돈은 회수되어 돌려주었다.

두 번째 사건은 얼마 전에 삼촌 내외가 호프집을 운영하면서 은행에 입금할 300만원을 장롱의 옷들 사이에 눈에 보이게 쌓아놓았다. 삼촌 내외가 여행으로 2 3일 동안 집을 비우게 되면서 딸이 집에 혼자 있게 되면서 사촌인 A양과 함께 지내도록 했다. 삼촌은 돈을 은행금고 속에 보관하려고 하다가 딸을 믿을 수 없어 금고에 넣는다 라는 의심은 나쁘다 라는 생각으로 그냥 눈에 띄게 옷장의 옷들 사이에 쌓아놓았다고 했다. 그런데 여행 후에 집에 와서 보니 중에서 약 100만원이 빠져나간 것을 알게 되었. 딸에게 물어 보았을 때 그녀는 손을 대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같은 나이의 A양이 집에서 함께 지낸 것 이외에는 아무도 집에 온 사람이 없다는 것 알게 되었고 그것이 A양의 부모님의 귀에 들어갔다. 이번에도 부모님이 A양을 실토 하라고 매질을 시작 했다. 처음에는 완강하게 부인을 했다가 새벽 1시쯤에 실토를 했다. 돈은 전액 환수가 되어 삼촌에게 되돌려 주었다.

같은 또래 친구인 조카와 옆 반에서 수업을 하던 A양이 토요일 날에 2시간 먼저 조퇴를 하고 열쇠를 복사해서 100만원을 슬쩍 한 것이라고 고백을 했다. 부모님에게 치료사가 A양이 언제부터 도벽이 시작되었는가? 라고 물어 보았을 때 6년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했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이 된다는 말처럼 처음에는 돈의 액수가 적었다가 점점 액수가 커지고 빈도수가 잦아진다고 했다.

부모님은 이 이야기를 치료자에게 하면서 딸을 차마 부모님의 손으로 그녀를 소년원으로 보낼 수가 없어 고민을 하든 중에 한 지인으로부터 미국에서 심리치료학을 공부한 대학교수가 있다는 말에 치료자를 찾아온 것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부모님은 치료자에게 딸의 도벽을 고칠 수 있는지?를 물어 보았다. 치료자는 부모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부모님이 딸을 약 3시간 동안 고문을 하고 처벌을 해도 딸의 행동이 고쳐지지 않는데 치료자가 설득, 설교, 강의를 한다고 도벽이 고쳐지겠는가? 라고 반문을 했을 때 부모님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방안을 알려달라고 애걸복걸했다.치료자는 분석으로 문제의 원인 찾아내면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고 이야기를 했을 때 치료를 해 달라고 요청을 했다. 치료자는 그렇다면 부모님이 치료자에게 각서를 써 줄 수 있는가? 라고 물었다. 부모님은 딸을 치료하는데 왜 각서가 필요한가? 라고 질문을 했다. 치료자는 그냥 딸을 교육적으로 설득하는 것이 아니고 부모님과 자녀 사이에 관계를 분석해서 원인을 찾아내야 하기 때문에 부모님이 치료자의 요청과 요구에 100% 협력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협력을 하겠다는 약속을 해야 치료가 가능하다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부모님은 기꺼이 각서를 썼다. 치료자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이유 없이 응하겠다는 약속을 서면으로 받고 나서 치료자가 농담 쪼고 이제 치료자가 요구하는 대로 하겠다고 약속을 했으니 치료자가 부모님에게 죽어라 라고 이야기를 하면 죽을 수 있겠는가? 라고 물었을 때 죽지는 못하지만 죽은 시늉은 하겠다고 했다. 치료자는 그 정도의 정신적으로 각오가 되어있다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부모님에게 치료자가 A양은 당분간 나오지 말고 어머니와 아버지가 교대로 1주일에 1회씩 치료를 받아야 한다 라고 했을 때 부모님이 사색이 되어 펄쩍 뛰었다. 선생님! 딸을 치료하지 않고 왜 부모를 치료를 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치료자는 방금 쓴 각서를 내 보이면서 치료자와 약속을 하지 않았는가? 부모와 자녀 사이에 관계의 분석이 먼저 필요하다 라고 했을 때 부모님은 수긍을 했다. 3개월 동안 부모님과 분석 상담을 통해서 A양과 가족 관계가 분석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여기에서는 마음의 흐름(자아의 방향과 움직임의 흐름)에 초점을 맞추기로 한다.

아버지는 6년 전까지 외항 선원으로 배를 탔다, 어머니는 전업주부로써 남편의 돈을 저축을 했다. 그 때까지 A양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아버지는 배에서 내려서 모아온 돈으로 식당을 개업을 했다. 그것이 A양이 초등학교 4학년 시점이었다. A양의 언니는 3살이 많은 장녀로 그 때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자녀들은 3명의 딸들이 있었다. 지금은 A양은 여고 1학년이고 언니는 여고 3학년이고 그리고 여동생은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식당은 가족들이 운영을 하고 있었다. A양의 언니는 우등생으로 모범적인 장녀였다. A양은 도벽소녀였다. 막내 여동생은 문제가 없었다. 식당의 운영으로 A양이 도벽이 시작되었다는 단초가 등장한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식당 운영과 관계되어있다는 것을 치료자가 직감한 것이다.

 식당의 운영을 체크해 보았다. 외부인의 고용이 없이 어머니가 주방에서 주방장으로 아버지는 음식의 배달과 주문을 맡고 있었다. 그런데 A양이 방과 후에 주방에 들어와서 어머니와 교대로 주방장을 하고 어머니와 아버지가 주문과 배달을 하고 음식 자재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오전에 시장을 보고 준비를 해서 12에 점심부터 저녁 10시까지 식당을 운영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언니와 여동생은 빠져있었다.

 A양이 초등학교 4학년 때 식당 시작 때부터 A양이 식당 일에 관계를 했다. 그 때 언니는 초등학교 6학년으로 중학교 입시 때문에 바쁘다고 빠졌다. A양이 중학교 1학년 때 언니는 중학교 3학년으로 고입 때문에 빠졌다. A양이 지금 고교 1학년 때 언니는 3으로 대학 입시 준비로 빠졌다 라는 것이 분석으로 밝혀졌다.

 여기에서 잠깐 치료자의 치료의 기법을 약간 알아야 치료자가 사용하는 치료의 과정이 이해가 되어질 것이다. 치료자는 미국에서 심리치료학으로 심리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가족 치료학을 전공했다. 귀국해서 2년 동안 부산 교육대학 학생생활 연구소에서 상담실장으로 학생들을 상담 하면서 그리고 부산 수산대학에서 심리학 강사로 심리학을 강의하고 있었다. 인턴 시험을 공부하기 위해서 2년 동안 공부를 하면서 실제 상담치료를 경험하고 있었다. 인턴 시험에 합격해서 미국으로 다시 2년 동안 인턴으로 떠나기 직전에 A양의 사례(1989)를 다루게 되었다.

 치료자의 치료 기법은 제이 헬리(Jay Haley: 1985: 주㈜: 참고)전략적 가족치료 기법이다. 헬리는 캘리포니아 팔로 알토의 정신건강 연구소에서 베이트슨(Bateson)과 함께 정신분열증 환자 가족구성원들을 함께 모아서 그들의 상호관계 연구에서 커뮤니케이션 결함인 이중 구속, 이중 속박(double bind)의 이론을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그의 전략적 가족 치료기법은 미국의 정신과의사로 최면학에 세계적인 권위자인 밀런 에릭슨(Milton Erikson)(정신분석가 에렉 에릭슨(Erik Erikson)과는 다른 사람)의 연구로써 그의 치료기법을 가족치료 기법으로 응용한 사람이다. 그는 총 8권의 저서를 썼다.

 그의 치료 기법의 핵심은 가족구성원들과 상호작용의 관계를 세밀하게 분석해서 환자로 하여금 변하지 않을 수 없는 상항에 집어넣어서 스스로 변화를 하도록 만들어내는 전략을 세우는 것이다. 그 결과 그 환자는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변화를 하게 된다. 변화 후에 자신의 행동을 깨닫게 된 환자는 그의 함정을 스스로 알게 되면서 다시는 그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는 치료 기법이다. 치료자는 이 전략을 계획하기 위해서 부모님과 자녀의 상호관계를 분석하고 있는 것이다.

 부모님과 상담을 통해서 A양이 온 가족의 스트레스를 스스로 짊어지고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부모님은 A양을 제대로 하는 것이 하나도 없는 자녀로 보고 있었다(부모님의 부정적 시각이 부모님의 스트레스가 A양에게 흘러가고 있다). A양은 주방에서 늘 그릇들을 깬다, 신중하지 못하다(실수를 많이 한다), 청결하지 못하다(목욕을 자주 하지 않고 불결하다), 공부는 꼴찌이다(머리가 나쁘다), 돈이 손에 들어오면 먹거리로 소비한다, 정리정돈이 안 된다. 뒤죽박죽이다(빨지 않는 양말들과 팬티들을 그녀의 설합에 처박아 놓는 일이 자주 있다). 대신에 언니는 정 반대로 모범생이고 우등생이다. 돈을 저축하고 모은다. 깨끗하고 정리정돈을 잘 한다 등등이 부모님의 A양에 대한 평가이다. 여기에서 유명한 정신과의사이다 정신분석가인 셀리번(Sullivan)부모의 평가가 자녀의 자아가 된다 를 보라. 부모님은 A양을 완전히 문제아로 보는 시선이 고정되어져 있다.

치료자가 부모님이 따로 자녀들에게 용돈을 주지 않고 있다 라는 것을 알고 이웃에 살고 있는 고교 생에게 용돈을 얼마나 주는지?를 알아보라고 했을 때 부모님은 1달에 3만원씩 주고 있다는 말에 한 달에 큰딸에게는 3 5천원을 A양에게 3만원을 주라고 했을 때 어머니가 딸에게 돈을 주면 즉각 먹거리로 사용하기 때문에 난색을 표현했다 그리고 큰 딸은 용돈을 주면 저축을 하기 때문에 통장에 돈이 있기 때문에 돈을 주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치료자는 그 문제는 자녀들이 알아서 하도록 하고 부모님은 용돈을 주면서 자녀의 용돈 관리에 신경 쓰지 말도록 했다.

가족들이 식당 일을 하는데 어떻게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가?를 분석해 볼 결과 부모님은 설과 추석을 제외하는 쉬는 날이 없었다. 아침에 10시에 부모님은 일어나서 시장에 가서 음식 자료를 구입해서 12시에 점심부터 일을 시작해서 저녁 10시까지 식당을 운명하고 11시에 문을 닫고 청소를 마치고 12시에 아버지, 어머니, A양이 함께 차를 타고 귀가한다는 것이었다. 부모님은 오전 10시까지 잠을 자지만 A양은 아침 7시에 일어나서 학교 갈 준비를 하고 그리고 아침 식사 후에 8시에 도시락을 가지고 학교에 간다(그때는 학교 급식이 없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오후 5시에 식당으로 직행을 해서 엄마 대신에 주방으로 들어가서 음식을 만들고 주문을 받고 요리를 한다. 2개월 동안 가족 구성원들에 대한 관계의 분석에서 A양이 식당 일에 갇혀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A양은 이러한 작업을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6년째 일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유로운 시간이 없었다. 하루 24시간 동안에 그녀의 시간은 학교 공부 시간 이외에는 자유가 없었다. 치료자는 A양이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는 함정에 빠져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3개월의 시점에서 치료자는 부모님에게 A양을 식당 일에서 제외시킬 것을 요구를 했다. 부모님은 펄쩍 뛰었다. A양이 주방일을 하는데 제외되면 주방장을 구해야 하는데 월 2백만 원 정도의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그 시점에서 주방장이 월급으로 약 2백만 원). 치료자가 먹고 사는 것이 어려울 경제적으로 어려운가?를 물었을 때 아버지는 6년 동안 열심히 식당을 해서 크게 어렵지 않다고 했다. 그렇다면 돈을 아끼지 말도록 하고 A양을 일을 시키지 말도록 했다.

치료자는 부모님이 쓴 각서를 보여주었다. 부모님은 할 수 없이 치료자의 제안을 수용하면서 풀 타임으로 주방장을 구하기 보다 A양이 일을 했던 오후 5-저녁10씨까지의 그 시간에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는 사람을 구하게 되었다.

A양이 식당 일에서 해방되면서 1주일에 1회씩 회기당 2시간으로 심리치료가 시작되었다. 치료자는 이미 엄마를 통해서 여성의 도벽이 생리 중에 있는가?를 체크하게 되면서(생리 때 도벽은 생리전 증후군으로 호르몬 때문에 도벽이 있다는 것을 치료자가 알고 도벽이 생리적인 문제 때문인가?를 체크하기 위해서) 어머니에게 A양이 생리를 체크해보라고 했을 때 어머니는 딸이 생리가 있는지? 없는지? 를 모르고 있었다. 그 다음 주일 치료 회기에서 어머니는 A양이 초등학교 6학년 시점에서 생리가 비쳤다가 지금까지 생리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병원에서 체크한 결과 생리적인 문제는 없었기 때문에 생리문제는 심리적인 것이다 라는 것을 치료자가 알게 있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치료자가 월 3만원의 용돈을 부모가 A양에게 지불하고 주방에서 해방하도록 했을 때 어머니가 펄쩍 뛰면서 돈과 자유로운 휴식이 제공되면 딸은 지금 몸무게가 93kg으로 100kg에 되는 것은 시간문제로 부정적으로 반응을 했다. 치료자는 비만을 치료할 것인가? 도벽을 치료할 것인가? 를 요구하면서 2개를 한꺼번에 치료가 어렵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각서를 보여주었을 때 아버지가 도벽을 해결해서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라고 해서 도벽 치료를 요구를 했다. 그렇다면 치료자는 먹는 것과 쉬는 것을 부모님이 간섭하지 말고 A양에게 맡길 것을 요청했고 부모님은 수용을 했다. 이 시점에서 3개월이 흘러갔고 치료자가 A양을 치료실에 나오게 한 것이었다. 이미 A양은 도벽생리가 없음 그리고 93kg의 비만3개의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가족 구성원들 중에서 아무도 비만은 없었기 때문에 스트레스성 비만인 것을 치료자가 알 수 있었다.

A 양에게 용돈 3만원과 휴식이 제공되고 1달이 지나가면서 부모님이 깜짝 놀랜 것은 A양의 몸무게가 93kg에서 멈춘 것이었다. 그 때 부모님은 심리치료의 효과를 스스로 인정을 했다. 먹고 마시는 것이 허용되면서 100kg을 걱정했는데 몸무게가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 라는 것이었다. 이어서 A양이 치료가 시작된 후에 2개월 만에 생리가 시작된 것이었다. A양은 치료자가 생리에 대해서 물어 보았을 때 생리가 없으면 편리하고 좋다고 했다. 동료들이 생리가 나온다는 것은 알고 있는가? 라고 물어 보았을 때 알고 있다고 했다. 치료자가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고 싶은가? 라고 물어 보았을 때 결혼을 하고 출산을 원한다고 했다. 치료자가 생리는 임신과 출산에 관계되어져 있다 라고 생리학적으로 생리와 섹스와 임신에 대해서 상세하게 이야기를 듣고 나서 A양의 생각이 잘못되었다 라는 것을 알고 건강한 생각으로 바뀐 후에 그 다음 달에 생리가 나오기 시작을 했다. 두 가지의 변화에 부모님이 치료자의 말을 100% 신뢰하게 된 것이다.

치료자는 A양과 치료를 시작하면서 A양이 부모님의 문제에 끼어들지 말도록 했다. 부모님이 문제는 부모님의 몫이기 때문에 부모님에게 맡겨야 한. 대신에 A양의 문제는 A양이 스스로 해결하도록 했다. A양에게 친구들과 관계를 물어 보았을 A양은 토요일, 일요일에 친구들과 약속을 해도 부모님이 주말에는 음식점의 손님들이 많아서 친구들과 약속으로 부모님의 식당 일을 거부할 수 없었기 때문에 친구들과 멀어지고 친구가 없어지게 되었다고 실를 했다. 친구들의 생일날에 부모님에게 생일 선물을 위해서 돈을 요구하면 부모님은 친구생일 날에 무슨 선물을 하는가? 해서 거부당했기 때문에 생일 낢에 선물을 주지 못했기(용돈을 받기 이전) 때문에 A양 자신의 생일에는 선물을 받을 수가 없고 자연스럽게 친구가 사라지게 된 것이라고 실토를 했다. 치료자는 용돈으로 친구들에게 선물을 사주고 그리고 그들과 주말에 만나서 마음대로 친구들과 만나고 대화를 하도록 했다.

부모님은 교대로 2주일에 한번씩 계속해서 치료를 그리고 A양은 1주일에 1회로 치료가 계속되고 있었다. 친구 관계가 개선되고 A양은 부모님의 식당 일에서 완전히 해방되면서 여기에서 A양의 변화들이 나타났다. 그녀는 목욕을 하고 몸이 깨끗해졌다. 그리고 양말과 팬티들이 스스로 빨아서 청결하게 되었다. 이 시점에서 A양의 성적이 30등으로 상승을 했다(그 당시에 한 학급에 학생수가 60명 정도).

치료자는 분석에서 부모님의 쉬는 날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년 중에 추석과 설날에 며칠 쉬는 것이 전부였다. 어머니는 이미 과로로 온 몸이 성한 곳이 없었. 관절통, 두통, 허리통 등등 그리고 아버지도 온 몸이 아프고 과로를 하고 있다고 스스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돈 때문에 문을 다들 수가 없다고 고백을 했다. 치료자는 식당을 언제 그만둘 것인가? 라고 물었을 때 부모님은 우리는 기술이 없기 때문에 평생을 해야 합니다 라고 했다. 치료자는 앞으로 이런 식으로 계속하면 몇 년 못 가서 부모님이 병들게 된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부모님에게 1주일에 1회로 식당 문을 닫고 휴식 하도록 했다. 부모님을 펄쩍 뛰었다 그러나 치료자의 지적에 수긍을 하고 2주일에 한번으로 수요일에는 식당 문을 닫고 휴식을 가지게 되었다.

 A양은 30등을 뛰어넘은 선물로써 아버지가 사 준 기타로 여름 방학으로 기타 학원에 가서 기타를 공부하게 되었다. 치료자는 여름 휴가로 식당 문을 닫고 해수욕장에 가서 2 3일 캠핑을 하도록 권장을 했고 부모님이 수용해서 삶에서 처음으로 자녀들과 여름 휴가를 갔다. 6개월의 치료 과정을 끝으로 부모님은 A양이 이제는 도벽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확신으로 치료를 종결했다.

치료자는 2년간 미국 캘리포니아 가족치료 연구소에서 인턴십을 완료하고 귀국했을 때 전화를 했을 때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2년 후에 추적 연구에서 A양은 생리는 잘 나오고 있고 몸무게는 지금도 93kg으로 그리고 도벽은 그 후에 다시 등장하지 않았다고 고마움을 표현을 했다.

 심리치료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거미줄을 찾아내서 그들의 방향과 흐름을 정상적으로 바로 잡는 것이다. 이와 같은 수정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일시적 긴장 방출은 위기를 넘기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재발하게 되고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인간의 마음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얼마나 복잡한가? 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사례는 13년 동안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받은 B씨의 이야기다. 그는 4명의 자녀들의 장남으로 3명의 여동생들첫째와 둘째는 우등생으로 졸업 후에 공무원이 되었다. 세 번째는 그림을 공부해서 직장생활로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물론 B씨가 치료사에 치료를 받으러 왔을 때 첫 째는 결혼을 해서 자녀들이 있었지만 둘째는 직장 생활 그리고 셋째는 대학생이었고 이후에 그들은 결혼을 했고 자녀들을 가지게 되었다.

A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애니메이션 회사에 8개월 다니다가 회가 문을 닫는 바람에 일자리를 잃고 우울증으로 자살을 결심하고 자살 준비를 하고 있다가 우연히 서점에서 치료자가 쓴 ”(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이라는 책을 보고 마지막 희망으로 치료자를 찾아온 것이었다. 그는 회사에서 월급으로 받은 300만원의 저축한 돈을 다 쓰지 못하고 자살하게 되면 부모님과 가족들이 돈을 쓰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나갔다 라는 비아냥에 마지막으로 이 돈으로 심리치료를 받겠다고 결심을 하고 치료자를 찾아왔다고 실토를 했다. 1주일에 1 2시간으로 분석심리가 시작(2004년에 시작)되었다.

 B씨는 부모님이 맞벌이를 했기 때문에 어린시절에 할머니의 손에서 성장을 했다. 할머니가 B씨가 고교생 때까지 살아있었기 때문에 B씨를 도와주었다.

 그의 분석을 통해서 B씨의 어머니가 3명의 딸들과 관계 방식B씨의 관계 방식에서 차이점을 발견을 했다. 여동생들에게 관계하는 방식이 B씨와 관계하는 방식이 달랐다. 만약에 엄마의 관계 방식이 B씨와 여동생들이 똑 같다고 하면 그것은 어머니의 성격으로 문제가 될 것이 없다. 성격이 좋거나 나쁘거나 간에 그것은 어머니의 성격스타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유독 하나뿐인 아들에 대한 관계는 모두가 부정적이었다.

 일반적으로 3명의 딸에 아들이 1사람이라고 하면 아들 편애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하나뿐인 아들에 대한 편견은 어머니가 문제가 있다 라는 것을 설명해준다. 어머니는 아들 B씨에게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비판, 비난, 처벌적이었다. B씨가 초등학교 2학년 때 3살 혹은 6살의 딸들을 불러 모아놓고 너의 오빠는 어른이 되면 혼자 살아가기 어려울 것이다. 너희들이 오빠를 도와주어야 한다 라고 훈계를 여러 번 했다고 회고를 했다. 어른이 되면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나서 B씨는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거지 공포증에 시달렸다고 했다. 거지로 얻어 먹으면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서 길거리에서 거지들이 어떻게 동냥을 하는가?를 유심히 살펴 보았다고 했다.

 B씨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비난, 비판에 치료가 시작될 때까지 한마디로 대답을 한 적이 없었다. 대답을 하면 10마디 되돌아오기 때문에 좋은 것이 좋다 라고 해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치료자는 B씨의 신체적 자아는 성장을 했지만 심리적인 자아는 유아기 때로 머물러 있다 즉 성장을 하지 못하고 있다 라고 분석을 했다. 치료실 안에서 자아를 성장시키는 훈련이 첨가 되었다.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서 부모님의 부당한 강압에 말을 하지 않게 되면 대화를 하는 자아가 성장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도록 하는 것이다. 부모님 앞에서 마음 대로 표현을 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 앞에서도 표현할 수 없다라는 것을 깨닫게 했다.

대인관계에서 갈등이 생기면 싸우거나 욕설을 하거나 입을 다물어버리거나 삐치거나 눈맞추기를 피하거나 관계를 단절하지 않는다, 즉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고 말로써 표현하도록 하는 훈련이었다. 이것을 자기 주장 훈련이라고 부른다.

 일상에서 어머니가 B씨에게 하는 이야기들은 늘 고정적이었다. 너는 그렇게 해서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갈 것인가? 너는 병든 병아리 같다. 너는 돈 먹은 기계이다(B씨는 초등학교 입학에 99cm로 키가 제일 작았다, 그래서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키가 크는 호르몬 주사를 맞기 시작했다. 그 호르몬 주사는 보험처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엄청난 돈이 들어갔다), 너는 돈을 벌 궁리는 하지 않고 돈을 쓸 궁리한 한다. 다른 어린이들을 돈을 벌기 위해서 구두닦이, 신문팔이를 하는데 너는 왜 하지 않는가? 등등 이었다.

  3개월의 시점에서 부모님의 집에서 독립해서 나오기로 했다. B씨가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게 되면서 치료실에서 2시간 동안 자아를 달래고 위로해서 자신감을 올려 놓으면 집에 가서 부모님과 상호작용에서 붕괴되어 박살이 나는 것이 반복되면서 치료 효과가 반감이 되는 것 때문에 집에서 나오게 했다. 그러나 B씨는 부모님에게 그러한 말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부모님 앞에서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치료실에서 부모님에게 말을 하는 훈련을 했다. 아버지, 어머니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이제 나도 독립을 해야 하겠습니다. 사람은 언젠가는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라고 부모님의 허락을 얻도록 했다. 1달 가량 훈련 후에 B씨가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원룸을 얻어달라고 했을 때 부모님은 반대를 했다. 부모님이 돈이 없었기 때문에 거부한 것이 아니고, B씨가 집을 나가서 독립을 하면 1달 만에 집으로 되돌아올 것이라고 예견을 했기 때문이었다. B씨는 한 달 용돈으로 열악한 고시원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35만원으로 김치, 달걀 1개 그리고 밥은 무료로 제공을 받았다. 전기 요금과 수도 요금은 없었다(2004년도). 그는 독립해서 나오면서 치료자로부터 혼자서 생활해 나가는 방법을 배웠다. 운동과 식사와 공부와 일상의 활동을 구분해서 규칙적으로 생활 습관을 만들고 자아 투자에 집중(그는 그림 그리기가 취미)했다. 부모님과 관계를 단절하는 것이 아니고 복원하는 것이 치료의 목적이다 설날과 추석에는 본가에서 부모님과 함께 하고 그리고 부모님의 생일날과 기제사에는 참가해서 활동을 하도록 했다. 고로 2개월에 한번씩은 부모님과 만나게 되었다.

 치료에서는 B씨의 자신감과 자아 표현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그림 그리기를 지속하는 것이었다. 다행히도 아버지가 백화점에 공동 투사와 오피스텔에 투자한 것에서 나오는 한 달에 180만원의 월세를 B씨의 통장에 들어오도록 했기 때문에 삶에서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는 그 돈으로 매월 치료 비용을 지불하고 그리고 그림 그리는 학원에 다니고 생활 비용으로 사용할 수가 있었다.

 여기에서는 어머니의 부정적인 시각의 원인을 분석으로 찾아내는데 초점이 맞춰질 것이다. 어머니의 형제들은 장남인 오빠가 1명이고 4명의 딸들이 있었다. 세 번째가 B씨의 어머니였다. 그런데 유독 어머니와 오빠와 사이가 원수지간 이라고 했다. 어머니는 그녀의 어머니가 아들만 편애하고 딸들을 무시했다고 비판적이라고 했다. 그녀는 학교 시절에 오빠의 도시락에는 달걀을 넣어주면서 엄마의 도시락에는 김치가 전부였다고 불평을 한다고 했다.

치료 초반기에 엄마가 친정 엄마의 아들 편애로 오빠에게 분노한다고 추측을 했다. 그런데 많은 문제점들이 등장하게 된다. B씨의 이모들은 완전히 엄마와 다르다 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큰 이모는 사망했고 둘 째 이모와 막내 이모는 엄마와 달리 자상하고 친절하고 사랑이 넘친다고 했다. B씨는 중학교 입학 때 막내 이모로부터 만년필을 선물 받아서 애지중지하다가 고장을 내서 엄마로부터 호되게 야단을 들었다고 회상을 했다. 치료자는 다른 이모들은 자상하고 사랑이 넘치는데 유독 엄마는 냉정하고 부정적인 사고방식이 유독 아들인 B씨에게 흘러간다는 것을 알고 나서 엄마를 블랙십(black sheep)이라고 보았다. 양들은 색깔이 희다 그런데 검은 양이라는 뜻은 돌연변이를 의미한다.

 엄마와 이모들과 사이는 좋았다. 엄마와 이모 두 사람이 큰 이모가 운전하는 승용차를 타고 가면서 엄마가 막내 이모에서 내가 너를 업고 키울 때 네가 내 머리카락을 쥐어 뜯어서 내 머리카락이 따 빠졌다 라고 농담을 하면 막내 이모는 한번 더 들으면 100번째 이다 라고 농담을 하는 것을 B씨가 들었다고 회고를 했다.

 B씨는 어린시절에 외갓집에 간 기억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외갓집에 갔을 때 한번은 외갓집에 있는 피아노를 만지다가 외할머니로부터 혼이 난 것을 회고를 했다. 그 때 엄마가 그것에 분노해서 아들 B씨를 데리고 집에 온 것을 회상을 했다. 외할머니는 피아노를 만지다가 고장이 날 수 있다고 만지지 못하게 한 것이었다.

 외할머니는 B씨의 기억에 한번도 딸의 집에 와서 하루 밤을 묶고 간 적이 없었다. 한번은 B씨가4살쯤에 부모님이 부부싸움을 해서 1주일 동안 말이 없었다. 이혼을 두려워한 할머니가 B씨에게 전화기의 다이얼을 돌리게 했다. 사돈집의 전화 번호를 수첩에 적어 놓았기 때문에 B씨가 전화를 걸게 되었다. 할머니와 사돈 할머니인 엄마의 친정 어머니와 전화 통화에서 할머니는 며느리가 남편과 부부싸움으로 이혼을 하게 되었으니 집에 와서 말려달라고 부탁을 했다.

얼마 후에 대문의 초인종이 울리고 외할머니가 왔다는 것을 알고 어머니가 대문 밖으로 나가서 외할머니와 논쟁을 한 이후에 외할머니는 집에 들어오지 않고 되돌아갔다고 했다. 할머니가 왜 오래간 만에 사돈 어른이 방문을 했는데 집에 모시고 와서 차를 한잔 대접하지 못하고 보냈는가? 라는 말에 어머니는 화를 내면서 왜 쓸데 없이 친정에 전화를 해서 어머니를 이곳에 오게 했는가? 라고 화를 냈다는 것을 B씨가 기억을 했다.

 또 한가지는 B씨가 대학 졸업 앨범 사진을 촬영하면서 신사복에 넥타이를 맨 모습을 거울 앞에서 보고 있을 때 엄마와 그리고 첫 째 여동생B씨가 외삼촌과 붕어빵이라고 했다. 외삼촌과 B씨가 닮았다라는 것은 오래 전부터 B씨가 알고 있었다.

 또 다른 이벤트들은 B씨가 초, , 고교 시절에 어머니에게 학용품을 살 돈을 요구했을 때 어머니가 하는 말이 너는 나에게 돈을 달라고 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앞으로는 너는 절대로 돈을 달라고 하지 말아라 하고 했다. 이것은 어머니가 늘 너는 돈 먹은 기계이다 너의 호르몬 주사로 적금을 든 것을 깨서 너의 병원 비용으로 들어갔다 라는 말고 그리고 평소에 어머니에게 돈을 요구하면 너는 돈을 벌 생각은 하지 않고 돈을 쓸 궁리만 한다 라고 하면서 화를 내면서 돈을 방바닥에 던져버리자 그 돈을 주어서 가져가면서 그 이후에 어머니에게 지금까지 절대로 돈을 요구하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이 시점에서 어머니가 아들 B씨에게 하는 말들이 모두가 계모가 친자식이 아닌 자녀에게 하는 말의 특징이라는 것을 치료자가 분석으로 알 수 있었다. B씨는 이미 초등학교 졸업 후에 중학교 입학 시점에서 호적 등본을 제출하면서 혹시 B씨의 엄마가 계모가 아닌가? 하고 체크를 해 보았을 때 친모가 확실했다고 했다.

 어머니가 B씨에게 하는 말들은 모두가 너는 부모님의 돌봄이 없다면 고아원에서 자라났을 것이다. 부모님의 돌봄에 감사해야 한다. 어머니가 맞벌이를 하면서 고등학교, 대학생이 된 B씨에게 오후에 시간이 있으면 세탁기를 돌리고 그리고 빨래를 널고 그리고 집안 청소를 해야 한다고 일과표를 적어주었다. 그러나 여동생들 한데는 그러한 심부름을 시키지 않았다.

 아버지는 B씨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일요일에는 집안 대청소를 하는데 여동생들은 약속이 있다고 해서 모두 도망을 하고 B씨는 끝까지 남아서 3시간 -4시간 동안 방과 마루를 닦고 쓸고 청소를 했다(아버지는 결백증). 그는 부모님에게 한마디도 No라고 말을 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항상 너는 부모님의 은혜를 모르는 불효자식이다 라고 말을 했다. 다른 집 자녀들은 부모님의 생일날에 부모님의 생일 선물을 잊지 않는데 너는 부모님과 형제들의 생일에 아무런 선물이 없다라고 질책을 했다.

 치료자는 어머니가 심각하게 불안한 사람으로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것이 아들 B씨에게 유아기 시절부터 전이가 된 것을 분석으로 밝혀냈다. B씨는 4살의 시점에서 유치원에 다닐 때 유치원에서 주는 방과 우유를 다 먹지 못하고 집에 가져오면 너는 그것도 먹지 못하는가? 하고 구박을 했다. 한번은 엄마의 심부름을 가다가 약물을 파는 곡예사가 원숭이 재롱을 보여주면서 원숭이가 할퀸 손에서 피가 나는 것을 보고 놀래서 집으로 달려와서 엄마에게 원숭이가 위험하다고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 엄마가 화를 내면서 너는 심부름을 가지 않고 되돌아왔는가? 라고 노발대발한 것을 기억을 했다. B씨는 초등학교 3학년까지 늘 질병 때문에 출석보다 결석이 많았다.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종합병원으로 데리고 갔지만 생리적인 이상이 없었다 고로 안수기도로 교회에 나갔다 그리고 점쟁이로부터 부적을 받아서 B씨의 가방에 넣었던 것들을 회상을 했다.

 어머니는 B씨에게 너와나의 하나됨으로 지금까지 모든 것을 간섭하고 지시,명령으로 B씨의 자아가 엄마에게 의존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B씨가 심리적인 공간이 없다는 것을 밝혀내고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으로 혼자서 독립적인 행동과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지도록 하는 치료를 지속해 갔다.치료 7년의 시점에서 B씨는 대학병원의 종합 검사에서 혈압, 갑상선, 호르몬, 몸무게가 8kg이 증가해서 정상으로 회복된 것을 담담 의사가 깜짝 놀랬다.

 부모님 역시 B씨의 건강 증진에 기뻐했다. 치료 10년 때 부모님이 치료자에게 찾아와서 감사를 전했다. 아버지는 이제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습니다 라고 고마움을 표현했다. 치료자는 아버지 혹은 어머니가 서로 너무 밀착관계로 심리적 공간이 없다는 것을 지적하고 치료를 받아서 부부 사이에 심리적 공간을 만들지 않으면 서로물귀신처럼 노년기에 붕괴될 수 있다고 경고를 했다. 치료자는 아버지가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어머니가 이모부의 사망으로 혼자 살고 있는 이모네 집에 약 3개월간 집을 비우고 아들 B씨가 어머니 대신에 아버지를 심리치료 보조로써 아버지를 도와주면서 알코올 중독과 노후에 삶을 바로 세우도록 프로그램을 짜서 아버지의 알코올 중독을 치료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서 아버지가 심리치료를 받겠다고 약속을 하고 약속 시간을 정해놓고 이빨 때문에 치과에 가는 바람이 심리치료를 시작되지 못했다.

 시점에서 매일 같이 아버지가 탁주 2병을 마시는 것에 대해서 어머니가 예민과대 반응으로 치매와 알코올 중독에 경고로써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못하게 하면서 부부싸움이 잦았다. 하루는 아버지가 탁주 2병을 사가지고 아파트로 들어오는 것에 화가 난 어머니가 그 2병의 탁주를 계수대에 쏟아버렸다. 아버지는 다시 편의점에 가서 탁주 2병을 사가지고 아파트에 들어왔을 때 이번에도 어머니가 아버지의 탁주 2병을 빼앗아서 계수대에 쏟아버렸다. 화가 난 아버지가 이번에는 외출해서 술을 과도하게 만취해서 길거리에 쓰러지면서 머리를 부딪치게 되면서 쓰러졌다. 주변 사람들이 119 에 연락해서 응급실에 실려갔다 지금까지 4번이나 아버지는 비슷한 사고로 응급실에서 간단한 머리 꿰매기로 퇴원을 했지만 이번에는 뇌에 출혈로 피가 고였기 때문에 피를 뽑아내기 위해서 수술을 하게 되었고 수술 결과 아버지는 1살 된 어린이처럼 손과 발을 사용하지 못하고 말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몇 번의 수술 후에 아버지는 뇌에 피가 고여서 뇌의 일부가 파손되어 장기입원 치료를 받게 되었다.

 그 시점에서 어머니가 아버지의 병간호에 뛰어들었지만 아버지의 똥오줌을 24시간 갈아주는 병수발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24시간 간병인을 고용하게 되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노후 자금으로 현금 10억을 손에 쥐고 있었지만 몇 년 만에 돈은 고갈되고 노후가 지옥으로 변하게 된 것이었다.

 여기에서 B씨를 위한 결정적인 증거가 드러나게 되었다. 아버지가 병원 입원으로 응급실에 거주하게 되면서 가족들이 병문안을 오게 되었다. 둘 째 이모가 병문안을 와서 그 때 어머니가 이모와 함께 점심 식사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B씨가 이모와 함께 식당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이모는 B씨가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네가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라고 했는데 효과가 있는가? 라고 물었고 B씨가 지금도 치료를 잘 받고 있다고 대답하면서 이모에게 한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고 했다.

이모가 무엇이든지 물어 보라고 했을 때 B씨가 이모에게 내가 외할아버지와 많이 닮았는지?를 물어 보았을 때 이모는 성격의 스타일이 붕어빵이라고 했다. 여기에서 B씨가 어머니와 외할머니와 관계를 물어 보았을 때 이모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파랗게 질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모는 한 동안 말을 하지 않고 있다가 너의 엄마는 참 불행하게 성장을 했다 라고 말을 했다. 그 이후에는 B씨는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엄마는 친 엄마가 아니고 계모 밑에서 성장한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외할아버지가 바람을 피웠고 딸이 태어난 것이 바로 B씨의 엄마였다. 엄마는 7살 혹은 8살 경에 엄마의 엄마가 딸을 남편인 외할아버지에게 맡기고 떠나갔다. 외할아버지는 할 수 없이 부인인 외할머니에게 딸을 데리고 왔다 그리고 외할머니는 3명의 딸에다 또 한 사람의 딸을 키우게 되면서 화풀이를 B씨의 엄마에게 한 것이었다. 이모들은 배가 다른 형제였지만 구박받고 성장한 엄마에게 따뜻하게 대해주었다. 엄마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직접적인 분노를 표현할 수 없었다 고로 아버지와 닮은 외삼촌을 미워했다. 왜냐하면 계모가 자신을 구박한 장본인으로 계모가 애지중지한 오빠에게 적대감정이 흘러간 것이었다. 아버지는 외도로 낳은 엄마 자신을 계모로부터 보호해주지 못하고 계모에게 맡기고 B씨의 엄마를 무시하고 모르는 체 한 것에 대한 분노와 적대감정이 엄마 자신의 아버지와 계모에게 흘러가지 못하고 아버지를 닮은 B씨 한데로 흘러간 것을 분석으로 밝혀낼 수 있었다.

 물론 어머니는 그것을 모르고 있다 그냥 아들 B씨에게 아버지와 어머니인 계모에 대한 분노가 흘러간 것이었다. B씨는 엄마의 분노가 자신에게로 향해서 자신의 자아가 붕괴된 것을 깨닫게 된 것이었다. 이제 왜 어머니가 자신의 행동의 일거수일투족에 비판과 처벌을 했는가? 를 알게 되었다. 고로 B씨는 자아가 자라나지 못하고 고착되어진 것이었다. 이 자아를 다시 회복 시키고 성장하도록 하는데 13년의 세월이 흘러간 것이었다.

세 번째 사례는 부모님도 모르게 1년 동안 대학에 강의실에 들어가지 않고 만화방에서 보낸 여자대학생 C이다. 그녀의 지도 교수가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추천해서 어머니가 그녀를 데리고 치료를 받게 되었다(2005). 그녀의 아버지는 지방의 명문대학에 교수였고 어머니는 고교 교사였다. C양은 장녀로 그리고 2살 아래의 남동생은 치료자와 치료를 시작한 시점에서 의과대학에 입학을 했다.

1년 동안 치료과정에서 C양은 맞벌이 부모 때문에 어린시절에 아주머니 혹은 가정부의 손으로 전전하면서 성장을 했다. 먹여주고 입혀주는 것은 문제가 없었지만 어린시절에 엄마와 편안하게 서로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나누는 친밀관계가 부재한 것을 밝혀낼 수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몇몇 남학생들로부터 심하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러나 부모님에게 말을 하지 않았다. 선생님에게도 말을 하지 않고 혼자서 참고 있었다 다행히도 초등학교 졸업으로 그들과 관계는 해결되었다.

중학교 2학년 시점에서 아버지가 1년 동안 미국 콜로라도 대학에 교환 교수로 가면서 온 가족이 함께 1년 동안 미국에 가게 되었다. 중학교 3학년에 편입해서 2달 후에 여름 방학으로 9월이 신학교여서 자동적으로 1학년이 되었다. 미국에서 학교 생활에서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귀국 후에 새로 신설된 국제고등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학교는 시에서 특별히 영어를 잘 하는 인제들을 위해서 외국에서 재류하면서 공부한 자녀들을 위한 고등학교였다. 그녀는 미국에서 1년 동안 체류를 했기 때문에 영어를 썩 잘하지는 못했지만 졸업은 할 수 있었다. C양은 동물을 좋아해서 수의학과에 들어가고 싶어했지만 실력이 미달했다.

아버지의 추천으로 3시간 거리에 있는 xx 대학 수학교육학과에 입학을 했다. 수능 직후에 친지의 소개로 중국에서 한의학을 공부하기로 하고 중국에 유학으로 2개월 어학원을 다녔다 그리고 다음에 봄에 대학에 휴학계를 내고 3월 달에 다시 남경으로 가서 어학원에 다니다가 샤스의 파동으로 귀국했을 때 몸무게가 늘어난 것에 대해서 어머니의 추궁으로 중국에서 어학원에 다니지 않고 집에게 놀게 되었다고 실토를 했다.

유학을 포기하고 대학에 복학하려고 했을 때 2학년에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1학년도 하지 않았는데 2학년에 올라가야 한다는 말에 할 수 없이 2학년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다가 중간고사 실패 이후에 학교에 다니지 않고 만화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봄학기 성적표에 모두 F 학점이 나온 것에 놀래서 부모님이 그녀가 강의실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학기에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약속을 했지만 그녀는 또 다시 만화방에서 보내면서 기말성적표를 받아보고 나서 모두 F 학점을 부모님이 놀랬다. 어머니가 담당 과목교수들을 찾아 다니면서 통사정을 한 결과 유급은 면했지만 2번의 학사 경고로 한번 더 경고를 받으면 퇴출이라는 말에 1년간 휴학계를 내고 심리치료에 올인 하게 된 것이었다.

그녀의 삶은 그녀가 항상 그녀의 자아가 원한 것이 아니고 부모님의 지시 명령에 끌려 다닌 것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미국에 콜로라도 대학에 갈 때 그녀가 가고 싶지 않았다고 했지만 묵살 되었다. 미국에 가서 중학교 3학년 입학 후에 한달 만에 여름 방학으로 가을에 고1학년에 들어간 것이었다. 귀국에서 국제고교에도 부모님의 강압으로 미래의 전망 때문에 편입을 했다. 대학의 선택은 수학교수인 아버지의 추천으로 교사가 되면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으로 그리고 중국 유학도 친지의 소개로 억지로 떠밀려가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대학입학 후에 역시 1학년을 제대로 배우지 않고 2학년에 승급이 된 것이었다. 공부를 하면서 어려움에 처하게 되면서 그녀는 고통스러움을 말로써 표현하지 않고 행동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두 번째 C양은 아버지의 분노의 표적이 되어있었다. 그녀의 손등에는 시퍼런 피멍이 5백 원짜리 동전 2개의 크기로 나 있는 것에 대해서 물어 보았을 때 7년 전에 식사 매너가 나쁘다고 아버지가 던진 TV 리모콘에 손등을 맞아서 생긴 피멍이라고 했다. 7년에 지난 지금도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은 심리신체적인 증세로 보았다.

 P양은 자아가 없었다. 왜 사는지도 모르고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자신의 입에 맞지 않으면 하다가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대학에 가야 한다는 것 때문에 대학에 갔고 전공도 자신의 의지와 관계 없이 졸업 후 교사로 직장을 가지기 용이해서 인기가 있다는 부모님의 판단 때문에 갔다고 했다. 항상 끌려 다닌 결과였다. 스스로 판단을 내릴 줄도 모르고 심지어 대학 3학년인 대학생이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치료자의 치료실에 오는 것도 각종 핑계를 동원하여 어머니가 자동차로 데라다 주지 않으면 결석을 하기 일 수 였다. 먹는 것을 입에 달고 있어서 몸무게가 비만이었다. 보기 싫을 정도로 심한 비만이었다. C양의 말로는 몸무게가 68Kg이라고 했다. C양의 비만은 스트레스를 받아서 계속 먹게 된 것이 원인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C양은 언제나 과자나 단 음식을 사가지고 다니면서 먹고 있었다. 심지어는 치료 시간에도 식사를 하지 않았다는 핑계로 과자나 떡을 가져와서 먹으면서 치료를 진행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치료자는 C양의 이러한 행동을 저지하지 않았다. 이유는 치료자와 대면이 불안해서 어떻게 대인관계를 해야 할지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지를 몰라서 불안에서 오는 행동으로 점차로 치료자와의 대화가 자연스럽게 느껴지게 되면 해소되어질 것으로 보고 간섭을 하지 않기로 했다.

C양이 문제를 도발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서 치료실에 오는 시간이 11시에 도착하여 1시에 끝나는데 C양은 12 40분에 치료실에 들어선다는 점이었다. 이유는 각종 변명을 갖다 댄다. 치료자가 느끼는 감정은 그 순간에 분노가 폭발할 것 같다는 점이었다. 이 때 치료자는 치료자가 아버지처럼 C양에게 분노로 처벌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것은 C양이 무의식적으로 아버지에게 하는 반전이 행동임을 알 수 있었다.

또 한번은 어머니가 바빠서 C양을 치료실에 차로 대려다 주지 못하게 되어 혼자서 찾아가라고 약속을 한 다음에 치료실에 도착 시간쯤에 어머니가 C양에게 전화를 해서 지금 치료를 받으러 가고 있느냐고 물었을 때 C양은 치료실에 오지 않고 집에서 지금 치료자인 선생님과 이야기 중이니 전화를 끊어달라고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C양이 치료실에서 상담 치료를 받고 있는 줄 알고 있었으나 나중에 C양이 거짓말을 한 것을 알 게 되면서 C양에게 분노, 노여움이 처벌로 흘러간다는 것이 다반사였다.

부모님과 C양과의 사이에 상호관계가 전부 서로를 처벌하는 행동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나 부모님은 그것을 알지 못했다. 부모님은 C양을 때리거나 용돈을 주지 않거나 C양이 원하는 것을 조건을 걸어서 어떤 것을 하면 C양의 요구를 들어주는 식이었고 C양은 부모님이 조금만 자신을 기분 나쁘게 하면 부모님이 원하는 행동과는 거꾸로 행동을 한다는 점이었다.

아버지가 제일 중요시 하는 것은 공부였다. C양은 기분이 나쁘면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이었다. 강의실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었다. 물론 핵심에는 동료들과의 관계가 되지 않아서 그렇게 된 것이었지만 어린시절부터 부모님과의 상호관계가 그런 식으로 변질되어 동료들과의 관계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치료자는 C양의 문제를 분석해 나가면서 C양과 부모님과의 상호작용의 부정적 관계가 너무 밀착되어 치료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해서 C양을 부모님의 집에서 나와서 혼자서 자취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부모님으로부터 C양과 관계에 얽혀있는 스트레스를 차단 시켜 놓고 C양을 다루는 것이 효과가 훨씬 빠르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었다.

C양이 1주일에 2회씩 1회에 2시간씩 상담을 시작한지 6개월이 지나가면서 얼굴에 생기가 돌고 C양의 행동이 살아나는 느낌이 든다고 어머니가 말했다. 석가 탄생일에 독실한 불교 신자인 C양의 가족들이 절을 찾아 평소에 설법을 듣는 스님 앞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 스님이 C양의 얼굴에 생동감이 살아난다고 했다. 부모님의 집을 나와서 혼자서 생활한지 4개월이 지나면서 혼자서 식사를 준비하고 집의 가구를 정리하고 자고 일어나는 일상 생활을 규칙으로 찾아가고 있었다. 치료 시작 6개월 때 부모님에게 C양에게 금지 시켜 놓았던 컴퓨터를 되돌려 주고 C양에게 매일 같이 필요한 돈만 주었던 것을 용돈으로 한 달에 모아서 주도록 했. C양은 부모님으로부터 용돈으로 15만원을 받게 되었고 그것으로 자신의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었고 컴퓨터로 자신이 원하는 정보에 접할 수가 있었다.

그 만큼 부모님의 감시와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가 있게 되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치료 초반기에 매번 마다 치료실에 들어서서 치료를 시작하면 머리가 아프다, 몸이 아프다, 위가 안 좋다. 감기에 걸려서 약물을 복용했더니 피곤하다는 불평 불만으로 치료 시간에 이야기를 하지 싫어했었는데 6개월 후에는 머리가 아프다, 몸이 아프다는 말은 일제히 사라졌.

C양은 아버지에 대한 분노, 그리고 가족들에 대한 분노를 지난 한달 동안 토해내면서 2시간 치료 시간 내내 통곡하고 울었다. 감정이 폭포수처럼 토해져 방출 되어감에 따라 C양은 얼굴에 살이 많이 빠지고 몸무게가 2Kg이나 감소 되었다고 기뻐했다. 몇 주전에 외할아버지의 별세로 장례식에 참석하여 아버지로부터 비난을 받고 나서 일주일 동안 계속해서 분노를 참지 못해서 울분을 토해냈다. 지난 주에는 부모님 집에서 기르던 고양이가 사고로 죽었다는 연락을 받고 자신이 이사를 나올 때 고양이를 데리고 나왔으면 고양이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통곡을 하면서 2주일을 보냈다. 이제 고양이에 대해서 울먹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도 C양의 마음 속에 갇혀 있는 분노와 적대감정, 수치심, 모욕이 많이 쌓여 있어서 이것을 빼내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지만 이제 C양은 자신이 감정을 방출할수록 마음이 편안해지고 몸무게가 감소한다는 사실을 알 게 되어 치료에 빠지거나 도망가는 일이 없어졌. C양이치료자에 대한 신뢰 관계가 돈독해지면서 앞으로는 치료의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으로 예상되었다.

불행히도 C양은 갑자기 이빨이 부러지는 것 때문에 치과를 찾았을 때 심각한 당뇨병으로 당뇨병 치료를 위해서 심리치료가 중단되었다. 치료효과가 나타나는 시점에서 치료가 단절된 안타까움이 있었던 사례였다.

여기에서 다시 한번 정리를 해보자, 부모님의 부정적인 감정이 C양으로 향한다는 점이다. 그녀는 스스로 자아 희생으로 부모님의 스트레스를 해소시켜주는 속죄양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대신에 부모님의 명예욕 때문에 항상 너무 과도하게 자신의 능력 이상을 요구 받으면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말로써 표현하지 못하고 행동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부모님의 부정적인 스트레스가 어느 한 자녀에게로 흘러가면 그 자녀는 심리적인 거미줄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몸부림치면 칠수록 구속, 강압과 처벌이 따라오게 된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치료 사례였다.

네 번째 사례는 우리나라의 최고의 법과 대학에 1학년 입학 후에 첫 중간고사에서 실패 후 휴학계를 내고 3년 동안 대학 학생생활 연구소에서 심리상담을 받고 있는 D군의 사례이다. 그의 누나는 SKY 대학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사법고시에 합격해서 사법 연수원에 다니고 있었다. 아버지는 택시 운전사로 조울증을 가지고 있고 어머니는 심한 불안증으로 홈 플러스에서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D군은 치료자에게 2시간 컨설팅을 받으면서 그의 가족사를 이야기를 하면서 통곡하고 울었다.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부부싸움으로 분노한 엄마가 D군에게 하소연을 하게 되면서 엄마의 고통을 흡수해주는 피뢰침이 된 것을 알 수 있었다. 누나는 엄마의 그러한 하소연에 No라고 해서 거부를 했다. 누나는 친구들과 관계가 좋았다. 자신의 가족 문제들을 부끄러움이 없이 실토했기 때문에 그리고 공부를 잘 했기 때문에 동료들과 선생님들의 사랑을 얻을 수가 있었다. 대신에 D군은 어린시절부터 예민한 엄마의 불안이 D군의 마음에 반사되어 스스로 예민하고 과도하게 긴장 상태로 자신의 문제에 과도하게 예민해지면서 사춘기의 시작 때 자아-의식적이 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문제를 숨기고 감추었다. 그는 대인관계에 너무 예민해서 동료들과 관계를 피했기 때문에 중학교 1학년 때 그의 별명이 외계인이었다고 실토를 해다. 그는 머리가 좋았다. 동료들과 관계를 피하고 혼자서 공부에만 집중을 했다. 치료자가 D군에게 주의집중의 어려움을 물어 보았을 때 그는 20%밖에 주의집중을 할 수 없었다고 실토를 했다. 80%가 주변에 신경을 쓰면서 단지 20%로 최고의 법대에 합격한 D군의 천재, 수재, 영재를 칭찬해주었다.

3년 동안 학생생활 연구소에서 심리상담을 받으면서 왜 복학을 하지 못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도움이 되어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되지 않았다고 토로 했다. D군의 증세가 무엇이라고 하던가? 라고 물어 보았을 때 구체적인 병명은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고 했다. 치료자는 심각한 대인공포증 그리고 회피적 성격장애임을 이야기를 해 주었다. 어떻게 대인관계를 해야 하는가?를 모르기 때문에 동료들과 관계에서 긴장과 불안 때문에 스스로 관계를 피하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는 부모님의 부부 싸움에 희생양이 된 것이었다. 어머니의 하소연에 거부를 하지 못하고 들어주면서 사춘기에 자신의 문제도 감당을 하지 못하는데 엄마의 스트레스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있다는 점을 지적을 했다. 최근에 가족으로부터 독립해서 나와서 고시원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스스로 2명의 고교생들을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로 생활 비용을 벌고 있다고 실토를 했다. 그러나 고교생을 가르치는 알바 역시 대인관계이기 때문에 그들 고교 생들을 개인적으로 어떻게 관계를 해야 할지 몰라서 한곳에서는 잦은 결석으로 잘렸다고 호소했다. 책만 들면 심각한 두통 때문에 공부를 할 수 없다고 호소를 했다.

2시간의 컨설팅을 끝내면서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받고 싶은 생각이 몇 % 인가? 라고 물어 보았을 때 D군은100%라고 희망을 보였다. 그러나 어머니가 6개월의 치료 비용을 지원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치료를 계속하지 못했다.

 이 사례에서 한 가족 구성원들 중에서 부모와 갈등 속에서 친구들과 관계가 좋은 자녀들은 부모님의 어려움 속에서도 빠져나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누나를 부모님의 갈등에 빠져들지 않았다. 동료들에게 부모님의 문제들을 숨기지 않고 털어 놓았기 때문에 숨길 것이 없었다. 고로 친구들로부터 사랑과 선생님들로부터 사랑과 지원으로 가족들의 문제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누나는 가족들의 장애물을 뛰어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예민한 D군은 부모님 특별히 어머니의 표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어머니는 남편과 갈등을 어머니 자신이 친구 관계가 단절되었기 때문에 아들에게 호소하면서 아들을 희생양으로 삼고 엄마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게 되면서 엄마는 살아남았지만 아들 D군이 붕괴된 것이었다. 물론 어머니는 이러한 심리적인 마음의 거미줄을 모르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 사례는 조현병으로 치료가 시작된 E양의 사례(2014) 였다. E양은 전화로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받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치료 비용과 치료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후에 E양은 자신은 돈이 없어서 6개월 계약을 3개월로 해 줄 수 없느냐고 했다. 심리치료에서는 최소 기간이 6개월이라고 이야기를 했으나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서 그렇다고 했다. 치료자는 심리치료에서 3개월 동안의 치료는 치료 효과가 눈에 보이지 않으니 적어도 5개월-6개월 정도 시간이 지나야 치료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치료 계약을 6개월로 한다고 설명을 했다. 그러나 E양이 자신은 계속해서 치료를 받고 싶은데 먼저 3개월로 계약을 하고 그 후에 다시 계속해서 치료를 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보챔 때문에 일단 치료를 시작해보자고 허락을 했다.

E양은 약속 시간에 아버지와 함께 치료실에 나타났다. 아버지는 심리치료가 어떤 것인지 잘 몰라서 E양이 인터넷에 들어가서 치료자의 홈페이지를 발견하고 치료를 받고 싶다고 아버지에게 졸라서 찾아오게 되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E양이 정신분열증으로 3년 동안 시달리면서 정신병원에 계속해서 드나들고 있다고 소개를 했다. 치료자는 처음에 E양이 정신분열증(조현병)인줄 몰랐기 때문에 보통 6개월의 치료 계약 기간을 3개월로 하기로 했으나 정신분열증이면 3개월로는 효과가 없으니 6개월로 해야 한다고 했으나 아버지는 딸인 E양과 함께 막무가내로 졸랐다. 3개월 동안 치료를 받으면서 치료 비용을 마련해서 계속해서 치료를 받으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소연을 했다. 치료자는 정신분열증이면 1주일에 1회로는 다음 1주일 동안 참기 어렵다고 했으나 아버지와 딸의 요청에 그렇게 하기로 하고 3개월 동안에 1주일에 1회로 치료 계약서를 작성했다.

치료 제 1회기(Session 1): 치료자는 양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어떤 것이든지 좋으니 하고 싶은 이야기부터 먼저 해보라고 했다. 순서는 관계없이 논리적인 것에 신경 쓰지 말고 이야기를 해보라고 했다. E양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지금은 재활 치료 센터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재활 치료가 어떤 것인지 설명을 해보라고 했더니 약 34명의 환자들이 모여서 첫 시간에는 서로 아무나 만나서 서로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고 그 다음 시간에는 강의실에 모여서 치료를 하시는 선생님께서 대인관계 기술에 대해서 강의를 하신다고 했다. 언제부터 그곳에 다니게 되었느냐고 했더니 약 3개월 정도 되었고 하루에 6시간 정도로 재활 치료를 받고 있으며 아침 10시에 가서 오후 4시까지 모여서 같이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E양에게 어떤 문제가 제일 힘이 드느냐?라는 치료자의 물음에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있으면 무슨 이야기를 해야할지 모르겠고 다른 사람들에게 감정을 말로 잘 표현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어린시절의 성장 과정: E양은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기억이 나는 것은 엄마가 유흥업소에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보통 엄마는 새벽 1-2시 경에 집에 들어왔으며 아버지는 집에 늘 들어오지 않았고 아버지가 바람(외도)을 피운 적이 있다고 했다. 엄마도 바람을 피운적이 있고 지금도 부모님은 서로 말을 잘 하지 않고 지내며 사이가 좋지 않다고 했다. 어린 시절에 2살 아래인 남동생을 E양이 늘 보살펴주었으며 중학교 3학년 때까지 남동생과 E양이 늘 같이 붙여 다녔고 집에 같이 있었던 기억박애 없다고 했다. 남동생에게 언제나 모든 것을 다 챙겨주고 돌보아주었으나 남동생에게 화풀이를 하고 언제나 남동생을 자기 마음대로 했다고 눈물을 흘렸다. E양 자신이 남동생에게 권위적이고 위압적이고 처벌적이었고 남동생이 고등학교 학생이 되면서 남동생의 신체가 사춘기를 통과하면서 커지게 되고 힘이 E양보다도 강하게 되면서 남동생이 이래라 저래라 하는 E양의 말을 듣지 않게 되면서 남동생과 힘겨루기가 시작되었고 남동생을 자신의 마음대로 다루지 못하면 어떤 방법으로라도 남동생에게 화풀이를 해왔다고 했다.

남동생이 한번은 자살하고 싶다고 부모님에게 한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학교에서는 동료들과 관계가 늘 좋지 않아서 따돌림 비슷하게 괴로움을 당하고 있었고 집에서는 남동생과 신경전 때문에 늘 고통 속에 살아왔다고 했다. 남동생은 1년 전에 군 입대를 하게 되었고 부모님의 권유로 둘이 서로 말을 하지 않고 지내다가 남동생이 군 입대 직전에 화해를 하라는 부모님의 명령으로 진심이 아닌 피상적으로 작은 소리로 화해를 한 것이 후회스럽다고 눈물을 흘렸다.

어린 시절에 늘 집안에는 남동생과 자신 두 사람만이 웅크리고 부모님이 집에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던 기억이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한번은 할아버지가 집에 와서 C양과 남동생이 둘이서 있는 것을 보고 통곡하면서 울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는 과거에 공무원으로 있었으나 지금은 다른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어린 시절에 엄마와 함께 아버지가 근무하는 관청의 정문 앞에서 아버지를 기다리던 기억이 있고 한번은 아버지가 가구와 집기 등의 살림을 집안으로 가지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아버지가 다른 여자와 살림을 하다가 그 살림들을 집으로 가지고 오는 것이구나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E양은 대학 1학년 때 학교를 휴학하고 집에서 살림을 도우다가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고 그 때 편의점에서 1달 동안 일을 할 때 편의점 주인에게 일을 야무지게 잘 하지 못한다고 비난을 많이 받게 된 것에 문제가 표면화되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 일이 계기가 되어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는 시발점이 되었다고 회상을 했다. 그 후에 어머니와 함께 광고 전단지를 돌리는 일을 3개월 정도 하게 되었고 그 때 어머니와 의사 소통이 잘 되었고 가장 행복했던 기간이었다고 회상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머니와도 의사 소통이 잘 안되어 엄마와 대화를 기피하고 있다고 했다.

치료 제 2회기 (Session 2): 1주일에 1회씩 2시간 치료 시간을 약속하고 갔으나 그 다음날에 1주일에 2회로 늘리고 싶다고 다음날에 오면 되지 않겠느냐고 전화 연락이 왔다. 치료자는 시간을 정해서 좋다고 허락을 했다. 치료 시간에 올 때마다 아버지가 함께 동행을 한다는 것을 알 게 되었다. 왜 혼자 올 수 없느냐고 물었더니 E양은 불안해서 혼자 다닐 수가 없고 외출을 할 때는 반드시 어머니 혹은 아버지가 동행을 해야 한다고 했다. 불안으로 인한 공황 장애가 분명했다. E양은 재활 치료가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치료자에게 오겠다는 약속을 했기 때문에 약속 시간보다 약 30분 빨리 오게 되었고 치료자는 E양을 치료실로 안내해서 인터넷으로 컴류터 바이러스 치료하고 있으니 5분 정도 앉아서 기다리라고 했으나 치료실에 들어오자마자 "선생님 불안해서 미치겠습니다. 저에게 안락사할 수 있는 약을 주세요."라고 치료자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면서 끝없이 위의 말을 반복했다. 치료자는 컴퓨터를 끄고 E양을 치료실에 데리고 와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E양은 오늘 재활 치료 시간에 34명의 환자들 가운데 아무나 서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에 40대 중반의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아저씨가 "나하고 결혼할래" "나하고 사귀어 볼래?"라는 말에 불쾌감을 느끼고 그 감정 때문에 불안 속에 빠지게 되었다고 했다. 불안하면 견디기가 힘들고 심하게 불안이 오면 손 바닥으로 팔을 내리치고 머리를 벽에다 대고 방방 박거나 뒹군다고 했다.

지금 이대로는 집에 가면 또 불안에 휩싸이게 될 것이기 때문에 선생님이 저에게 어떤 조치를 취해달라고 했다. 불안 때문에 집에 갈 수 없다고 울면서 하소연을 했다. 치료자는 E양의 불안이 극도에 달해서 긴장감이 한계선에 도발해서 참을 수 없어하고 있음을 알 게 되었다. 최근에 극도의 불안 때문에 있었던 이야기를 해보라고 했다.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면 불안이 감소된다고 E양을 위로하면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라고 격려를 했다. E양은 지난 토요일에 할아버지 집에 가게 되었고 할아버지가 E양은 데리고 인근에 뒷동산으로 올라가서 E양에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하면서 잔소리를 했고 불쾌했다고 했다.

할아버지 집에 돌아와서 하루 밤을 자게 되었는데 밤에 한숨도 자지 못하고 불안 때문에 움직이지 않고 꼼짝하지 않고 그대로 날밤을 세우게 되었다고 했다. 그 후에 집에 와서 손목을 때리고 머리를 벽에다 찧고 몸을 뒹굴고 했다고 했다. 그렇게 하면 불안이 조금 감소하는 것 같아서 그렇게 하고 있다고 했다.

E양의 손목에는 멍든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전에 비슷한 이벤트가 있으면 이야기해 보라고 했다. E양은 2주일 전에 사촌 언니가 E양에게 시내에 나가서 맛있는 것도 사주고 외출을 하자고 해서 따라 나갔다고 불안이 오는 것 같아서 다시 집으로 되돌아오게 되었고 사촌 언니를 보내고 극도의 불안 상태에서 뒹굴고 머리를 찧고 손목을 때리고 했다고 했다. 심하면 구토가 나오고 위가 쓰리고 소변이 잦아진다고 했다.

또 재활 치료 1달 쯤에 같이 치료를 받고 있던 어떤 언니와 대화 시간에 이야기를 하다가 그 언니가 E양의 등을 때리고 도망을 가는 바람에 분노해서 말을 하지 못하고 끙끙거리다가 불안이 엄습해서 다른 환자들은 모두 강당에서 대인관계 기술에 대한 강의를 듣고 있는데 E양은 강의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복도를 걸어 다니다가 견딜 수가 없어서 양호실에 가서 누워있다가 정신병원의 응급실로 실려갔다고 했다.

정신병원에서 1주일간 입원한 후에 퇴원한 후에 지금까지 2개월 동안 재활 치료 센터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E양은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되었으나 집에 돌아가면 그 불안이 두려워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치료자에게 어떤 마술적인 방법을 요구했다. 치료자는 E양이 대인관계가 안되기 때문에 친척이나 동료들을 만나면 긴장하게 되고 그 긴장이 참을 수 있는 한계선을 넘어가면 극도의 불안에 휩싸여 몸을 뒹굴거나 손목을 때리거나 머리를 방방 찧는 행동을 한다는 것을 알 게 되었다.

또 극도로 불안에 휩싸이게 되면 E양은 부모님을 졸졸 따라다니면 "안락사 시켜주세요. 안락사하는 약물을 주세요."라며 부모님에게 보챈다는 것을 알 게 되었다. E양이 위기 시에 되풀이하는 행동 패턴임을 알 게 되었다.

E양은 몇 년 전에는 한 달에 한번 정도 이런 패턴이 진행되었으나 최근에는 사소한 일에도 이런 패턴이 연속되어 1주일에 한번 두 번 정도로 늘어났다고 어쩔 줄 몰라 했다. 치료자는 E양에게 불안에 대한 응급 처치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서 긴장 이완 훈련을 30분 동안 하기로 하고 눈을 감고 긴장을 풀고 팔과 다리를 펴고 호흡을 천천히 들어 쉬면서 마음 속에 잔잔한 호수만 생각하게 하였다. 30분 후에 E양은 긴장이 풀리고 안정을 되찾게 되었다.

이 훈련을 하면서 치료자는 E양에게 "손님은 긴장이 되면 거꾸로 하고 있습니다. 긴장이 되면 손목을 때리고 머리를 벽에다 방방 거리며 찧고 몸을 뒹구는 행동은 긴장을 증폭시키는 행동입니다. 긴장이 되면 온 몸이 극도로 근육에 힘이 들어가서 참을 수 없게 됩니다. 고로 호흡을 천천히 하고 몸에 긴장을 빼고 호수를 생각하면서 조용히 앉아서 긴장 이완 훈련을 해 보세요. 오늘부터 매일 같이 치료가 끝나는 시간 30분 전에 이 긴장 이완 훈련을 할 것입니다. 극도의 긴장 때문에 불안에 휩싸이게 되는 것이므로 생리적으로 긴장이 되면 소화가 안되고 구토가 나오고 소변이 잦아집니다. 긴장을 이완하게 되면 극도의 불안은 찾아오지 못하게 됩니다."라고 호흡에 맞추어서 조용히 일러주었다. 치료자는 E양에게 그 다음날에 시간을 내어 줄 터이니 치료를 받으러 오라고 했다. 극도의 긴장감에서 벗어나는 응급 초치가 시급함 때문이었다.

치료 제 3회기 (Session 3): 다음 날 치료 시간에 E양은 어머니와 함께 왔다고 했다. 어머니를 치료실 밖에서 기다리게 하고 E양과 분석 치료가 시작되었다. 치료자는 E양이 어떻게 정신병원에 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궁금하다고 했다. E양은 처음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된 것은 3년 전에 인터넷 채팅으로 어느 오빠를 알 게 되면서 그 오빠와 만나서 여관에 가서 성관계를 하게 되었고 그 오빠에게 자신의 문제점을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 완전히 자신의 성격과는 다른 사람의 흉내를 냈다고 했다. 어떻게 흉내를 냈느냐고 물었을 때 성격이 활발한 것처럼 보이려고 하고 자신의 대인관계 문제가 드러나지 않도록 애교를 떨고 그 오빠의 비위를 맞추려고 했다고 했다.

오빠가 군에 입대해서 서로 메일을 주고 받으며 지내다가 휴가를 왔을 때 만나서 3회에 걸쳐서 성관계를 했고 그 때 오빠가 옷을 선물로 사주겠다고 했을 때 극구 사양했다고 했다. 맛있는 음식을 사 주겠다고 했을 때 극구 사양했다고 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그 오빠가 돈을 쓰면 돈이 부족할 것이기 때문에 오빠를 배려해서 돈을 쓰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말로써 상세하게 그것을 표현하지 못했지만 오빠를 위해서 그런 행동을 했으나 오빠는 그 후에는 연락이 없었고 그 오빠와의 관계는 끝이 났다고 했다.

E양은 그 이후에 자신의 자아를 바꾸려고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행동했다고 했다. 방의 벽에 낙서를 하기도 하고 귀신이 E양을 쳐다보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고 했다. 실제로 귀신이 눈에 보였느냐는 치료자의 질문에 눈에 보이지는 않았으나 귀신이 천장에서 자신을 보고 있다는 상상이 들었다고 했다. 환청이 들리지는 않았으나 귀신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불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고 했다. 칼로 베개를 찌르고 방의 벽에 낙서를 하는 것을 보고 부모님이 인근 정신병원에 입원을 시켰고 정신분열증으로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그 후에 몇 번의 정신병원을 드나들 게 되었으나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부모님이 깨닫게 되었고 XX 대학병원 신경 정신과에 갔더니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E양은 환청이나 환각을 없고 지금은 약물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으니 대인관계 훈련을 받듯이 받아서 사람들과의 관계 개선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권유를 받았고 XX 동에 있는 재활 센터에 나가게 되었다고 했다.

E양은 재활 치료에 거부감을 많이 느끼고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게 되었으나 부모님은 정신과 의사 선생님의 말을 철썩 같이 믿고 있어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재활 센터에 나가야 한다고 매일 같이 그곳까지 데려다 준다고 했다.

치료자는 지금까지 E양의 정보를 분석해본 결과 재활 치료가 필수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대인관계를 하는 기술을 직접 가르침을 받지 않고 그냥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라는 것은 마치 수영을 하지 못하는 사람을 물에 풍덩 집어 던져 넣는 것과 같은 효과를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부모님에게 설명을 했다. 먼저 수영을 하는 방법을 알 게 한 다음에 물에 들어가도록 하는 것이 순서임을 강조하면서 대인관계가 되지 않는 사람을 다른 사람과 강제로 관계를 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E양은 더욱 긴장감을 유발하고 불안을 쌓는 것임을 알고 당분간 치료자로부터 어떻게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는가를 어느 정도 익숙함을 배울 때까지 재활 치료를 당분간 중지해줄 것을 같이 온 어머니에게 부탁을 하고 아버지에게 따로 전화를 걸어서 당분간 친척을 만나는 것도 친척 집을 방문하는 것도 재활 센터의 치료 등도 중지해줄 것을 부탁했다.

어느 정도 자기 표현을 할 수 있게 되어 대화 기술을 습득하게 되면 그 때 다시 대인관계를 시도하는 것이 E양에게 도움이 되고 우선 응급 조치로써 E양의 극도의 긴장 상태에 응급 조치를 하는 것이 우선임을 이야기했다. E양의 이런 패턴은 몇 년 전에 명절 때 친척 집에서 3일 정도 지내게 되었는데 그 때 나이 어린 동생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실제로는 따돌림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혼자서 따돌림을 당한 것처럼 괴로웠던 것에서 시작되었고 그 때 두 번째로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고 최근에는 몇 주일 전에 사촌 언니와 나들이가 가다가 껄끄러워서 되돌아 와서 극도의 긴장에서 오는 불안증세로 자해적 자기 패배적 행동을 되풀이 했고 그 다음에 재활 센터에서 치료를 시작한지 1달 만에 어떤 언니로부터 원하지 않는 불쾌한 공격을 받고 정신병원에 1주일 입원한 것 그리고 지난 주일에 할아버지 집에서 1박하면서 잠을 자지 못해서 집에 와서 극도의 긴장에 따른 신체적 불안으로 자해적이고 자기 패배적 행동을 한 등의 분석에서 이러한 조치를 취하게 된 것이었다. 치료자는 E양에게 주말인 토요일 오후에 치료 시간을 내어줄 터이니 우선 극도의 긴장에서 오는 불안을 완화 시키는 응급 조치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승낙을 받았다.

치료 제 4회기 (Session 4): 치료가 시작되면서 치료자는 E양에게 목요일, 금요일에 급성 신체적 긴장에서 오는 극도의 불안 때문에 자해적 행동 패턴이 있었느냐는 치료자의 질문에 그런 행동 패턴은 없었다고 했다. 어떻게 그런 패턴을 피할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E양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지난 3회기 동안에는 공감이 잘 형성되어 진행이 잘 되었으나 오늘 치료 4회기에는 분위기가 분노와 적대감정으로 가득차 있는 것을 치료자가 감지하고 치료자에 대한 분노, 불쾌감이 있는 것 같은데 불평이나 불만이 있으면 말로써 표현해보라고 했다. E양은 태도가 돌변해있었다. 이야기를 하기 싫다고 했다. 치료자는 목요일 저녁에 E양이 장문으로 메일로써 자신의 문제점등을 상세하게 보낸 것에 대답을 하지 않아 치료자가 미워졌고 금요일 새벽에 전화로써 자신이 견딜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럽다고 호소했을 때 치료자는 그 대답으로 아침에는 부모님과 산책을 가거나 저녁 때 부모님와 운동을 가는 방법으로 나들이를 하고 낮 시간에는 혼자서 밖에 나갈 수 없으면 긴장을 풀고 마음을 안정 시키는 긴장 이완 훈련을 해보라고 했다. 치료자에게 언제라고 전화를 해도 되느냐는 질문에는 치료자는 대학에 강의나 다른 사람을 치료하고 있을 동안에는 치료자에게 전화를 하지 말도록 했다. 이러한 것 때문에 E양이 자신의 원하는 것을 치료자가 허용해주지 않는 것에서 오는 불만 때문에 화가 났느냐고 했더니 시인을 했다.

메일을 보내면서 치료자가 돈 때문에 치료를 하는 것 같아서 불쾌하고 돈과 관계없이 진실되게 치료를 하지 않는 것 같다고 불평을 이야기한 것이 기억이 났다. 치료자는 지난 3일 동안은 치료가 잘 진행이 되었으나 치료 4회기에는 E양의 분노, 미움이 폭발해서 치료자를 처벌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더니 그렇다고 했다. E양은 말문을 닫아 버렸다. 더 이상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치료자는 E양이 요구하는 것들을 다 들어주면 치료자 되지 않는다고 조용해 이야기를 했다. 환자는 치료 비용을 지불하고 치료자는 정해진 그 시간에 환자에게 정성을 다해서 그 시간 동안에 주의 과심을 가지고 최선을 대해서 봉사하는 것이 치료의 과정 임을 이야기했다. 치료자가 대학에 강의를 하거나 다른 환자들과 치료를 하고 있을 동안에는 E양이 원하는 대로 모든 요구를 들어줄 수가 없음을 이야기했다.

치료가 끝날 시간이 되어서 치료자는 E양에게 "오늘처럼 이렇게 이야기를 하기 싫어서 침묵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치료에서 종종 발생합니다. 이러한 일은 다른 환자의 경우에는 1달에 1회 정도로 나타나서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E양의 경우에는 1주일에 1회씩 나타나면 치료 기간이 다른 사람들보다 2-3배로 기간이 늘어나기 때문에 치료 비용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만약 부모님이 그 치료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고 느껴지면 치료 초반기에 치료를 그만두는 것이 치료 비용 면에서나 시간적인 면에서 효과적일 것입니다. 오늘은 시간이 다 되었으니 집에 가서 다시 꼼꼼히 생각을 해보고 결정을 하세요. 만약 치료를 계속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월요일에 전화로 시간을 예약해 주세요"라고 이야기를 끝내고 그날 치료를 마감했다.

치료 실패의 원인: E양은 월요일에 전화로 치료 예약을 하지 않았다. 대신에 E양의 아버지께서 전화가 왔다. E양이 더 이상 치료를 받고 싶지 않다는 말을 했다고 했다. 치료자는 상세하게 왜 E양이 치료자에게 분노하는가의 이유를 아버지에게 설명했다. C양이 원하는 대로 치료자가 들어주지 않는다는 분노 때문임을 지적했다. E양이 원할 때마다 전화를 받아 주지 않는다는 것과 E양에게 치료자는 치료 보다는 돈에 관심이 많게 느껴진다는 것 그리고 치료 시간에 맞추어서 와야하고 치료 시간이 끝나면 떠나야 하는 것이 기계처럼 느껴져서 너무 신경이 쓰인다는 것 등이었다. 후자의 경우에는 E양은 지금까지 3년 동안 집안에서 소일해서 시간 개념이 없다는 것과도 관계 있었다. E양은 정해진 치료 시간에 맞추어 오는 것이 돈과 관계되는 것 같다고 치료 3회기 때 불평을 한 적이 있었다.

치료 실패의 근본 원인은 치료의 룰을 위배한 것이라는 점이었다. 치료 초반기에 6개월간 치료 계약을 한다는 룰을 위배한 것 그리고 치료 비용이 3개월 분밖에 없어서 치료 기간을 3개월로 허락해준 것이 문제의 시발점임을 알 수 있었다. 치료 4회기 때 E양이 이야기를 하기를 거부했을 때 치료자의 마음 속에는 분노, 적대 감정이 느껴졌다. E양의 분노가 치료자에게 전달되어 투사 동일시로 느껴짐을 알 수 있었다. 전문 용어로 반전이를 느낄 수 있었다.

치료자는 E양을 달래고 어루만져서 이야기를 하게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 때 치료자는 만약 E양이 초반기부터 반전이를 느끼게 하면 치료 기간에 엄청나게 길어질 수 있음을 생각했다. 이미 1주일 만에 4회 치료 회기로써 총 24시간의 치료 시간 중에 이미 8시간을 사용했고 3주일 즉 한달이 안 되서 24시간이 다 사용되어 사라진다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3 주일 동안에 치료 효과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치료자는 알고 있었다. 만약 치료 효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부모님은 치료 비용은 지불했는데 치료 효과가 없다는 불평을 하게 될 것이고 치료자는 원망 불평을 당하게 되어있다.

그렇다고 계속해서 치료를 받아보라고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E양은 치료를 계속하면 확실하게 치료가 될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치료자는 환자와 치료자가 서로 마음이 맞아야 즉 공감이 형성되어야 치료가 잘 진행될 수 있지만 지금처럼 분노와 미움이 겹치면 치료 기간은 몇 배로 늘어난다는 것을 이야기해주었다. E양의 부모님이 치료 비용을 걱정하지 않도록 지원해준다면 반전이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른 환자들의 경우에는 반전이가 등장해도 잘 극복해나갈 수 있었지만 E양의 경우에는 치료 비용 문제가 걸려 있었다. 치료 비용을 6개월을 지불한 사람들은 1주일에 3회 정도로 6시간이나 4회로 8시간을 사용해도 적어도 2개월 내지 3개월은 견딜 수 있으니 그 때는 어느 정도의 치료 효과를 느낄 수 있게 된다. E양의 경우에는 48시간 정도 즉 6개월의 치료 비용을 지불했다면 극도의 긴장으로 인한 불안에 대한 응급 조치를 할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으나 한 달도 안 되는 3주일 동안은 별로 효과가 나타날 것 같지 않았고 그 와중에 반전이 즉 이야기를 하기 싫어하고 말 문을 닫아 버리면 3주일의 효과도 절반으로 감소한다는 것을 치료자는 알고 있었다.

E양 역시 부모님의 치료 비용 때문에 처음부터 6개월을 할 돈이 없어서 3개월만 하자고 했다. 치료자는 그 때 정신분열증이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허락을 한 것이었고 E양도 치료를 6개월까지 계속하면 부모님이 그 치료 비용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 고 있었다. 결국 치료자의 잘못된 치료 룰의 파괴와 E양이 치료자를 마음대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 다루겠다는 무의식적인 태도가 치료를 파괴 시킨 것임을 알 수 있었다. E은 자신이 부모님을 성질부리기로서 마음대로 컨트롤하고 있는 것처럼 치료자도 자신의 마음대로 컨트롤하려고 하는 부모님과의 관계 패턴이 재등장하고 있음을 모르고 있었으나 치료자는 이것을 해석하지 않았다. 이유는 치료가 이미 중단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E 양은 어린시절에 부모님이 E양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표현하도록 하는 언어 훈련을 통해서 E양 자신의 긴장과 불안과 분노를 말로써 표현하는 능력을 습득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춘기 이후에 동료들과 대인관계에서 갈등을 말로써 표현하는 기술의 결여로써 스스로 참고 견디고 눈치를 보면서 비위를 맞추려고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자신의 내면의 단점을 감추고 정상적으로 보이려고 하는 노력이 거꾸로 긴장을 유발해서 부자연스러움으로 나타난다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 인간의 내면의 긴장과 불안이 건강한 방법으로 방출되어지지 않으면 내면에 쌓여서 자신의 자아로 흘러갈 때 어떡한 현상이 나타나는가? 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또한 치료사가 치료의 룰에서 벗어나면 반전이로 치료가 실패로 끝난다는 좋은 교훈을 경험하게 된 사건이었다.

여섯 번째는 40대 초반의 심한 우울증 환자인 F씨의 치료 사례이다(2018). F씨의 형님은 은행원이었고 그리고 남동생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요양원을 운명하고 있는 의사였다. 아버지는 은행원으로 퇴직한 사람이고 어머니는 명문대학을 나온 여성이었다. 할아버지는 외과 의사로써 외도로 첩을 얻어서 두 집 살림을 하면서 할머니가 버림받았다. 큰 아버지 역시 외과 의사, 둘 째 큰아버지는 공군 파이럿으로 대령이었다 아버지는 막내로 어린시절에 골수염이란 불치병으로 중학교 시절에는 병원에서 생활 했기 때문에 학교에 거의 다니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회복이 되어 상업학교에 진학을 해서 주산과 암산에서 천재적인 능력을 인정받아서 전국 암산 대회에서 1등을 한 재원으로 졸업 후에 은행에 취직을 했다. 어머니의 외가는 국회의원을 한 가족으로 어머니의 형제들은 서울에서 명문여자 대학을 졸업한 재원들이 많았다. 어머니는 xx 대학을 나온 인텔리로 아버지와 결혼으로 부부생활이 좋지 못했다. 어머니는 전업주부보다 사교적인 생활을 좋아해서 전업주부로 조용히 살림을 하기를 원한 아버지와 충돌을 했다. 어머니가 제주도에 땅을 자서 투자를 하다가 실패를 해서 아파트가 날라가는 바람에 아버지가 퇴직금을 미리 대출로 막아주게 되면서 부부 싸움으로 F씨가 고교 1학년 때 부모님이 이혼을 했다.

남편에 대한 불만족과 외향적인 어머니의 성격에서 가정 불화가 F씨에게 흘러간 것이 분석으로 드러났다. F씨는 어린시절에 형님과 동생들보다 예민했다. 형님은 재수와 삼수를 하면서 집을 나갔다 결국은 원하는 대학에 진학에서 졸업 후에 은행원이 되었다, 남동생은 부모님의 부부싸움에 질려서 친구 집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고교 시절에 집에 거의 없었다. 친구 부모의 도움으로 남동생과 친구는 나란히 의과대학에 진학해서 부모님의 갈등을 피할 수 있었다.

F씨는 초등학교 4학년 시점에서 어머니에게 가르침을 받으면서 어머니가 가르쳐 준 문제를 빨리 해결하지 못한다고 화를 내면서 문제집을 발기발기 찢어버린 것을 회상을 했다. 초등학교 6학년 시점에서 부모님이 외국에 파견으로 근무하다 귀국한 A라는 친구와 친하게 지내게 되면서 그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중학교 1학년 때 그를 따라서 매춘부 집에 갔던 것을 어머니가 알게 되면서 학교에 찾아와서 A군과 F씨를 망신을 주면서 선생님에게 불려가서 학급동료들 앞에서 수모를 당한 것을 이야기를 했다. 그 이후에 A군과 헤어졌다.

중학교 3학년 때 친구와 함께 동대문 시장에서 흰색 운동복을 함께 사가지고 어머니에게 자랑을 했다가 어머니가 노발대발해서 가위로 운동복을 발기발기 찢어버린 사건을 회상을 했다. 이후에 어머니에게 왜 어머니가 그 운동복을 찢어버렸는가? 라고 물었을 때 어머니는 빨래하기가 귀찮아서 그렇게 했다라는 말에 기겁을 했다고 털어 놓았.

  1학년 때 영어 듣기를 하려고 녹음기를 털었는데 그 소리를 옆 반에서 들을 수학선생님에게 수업 방해로 수학 시간에 거의 1달 가량 자리에서 뒤로 돌아보고 벌을 서게 되면서 수학에 대한 흥미를 상실한 이야기를 떨어놓았다. 고교 1학년 시점에서 그는 독서실에서 한 선배로부터 컴퓨터 도둑으로 몰려서 옥상으로 끌려가서 선배들로부터 구타를 당했다 이후에 범인이 밝혀져서 F씨가 범인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그 선배를 사과를 하지 않았다. 위와 같은 사건들은 부모님에게 그리고 형제들에게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숨겨온 비밀들이었다.

아버지는 어린시절에 골수염으로 병원생활을 많이 했기 때문에 분노와 짜증이 많은 예민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진단을 했다. 한번은 아버지가 운전하는 승용차의 옆 자석에서 타고 가다가 비가 많이 와서 앞 유리창에 서리가 끼는 것을 아버지가 타올로 유리를 닦아라 라고 해서 유리를 닦으면서 아버지의 운전대의 유리를 닦지 않고 F씨의 앞쪽 유리를 닦는다고 아버지로부터 뺨을 얻어맞은 것을 회상을 했다. 분노해서 아버지 차에 내려서 돌로 아버지의 승용차에 던지고 도망을 친 사건을 기억을 했다.

F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한 친구가 하는 사업체에서 친구와 또 한 사람과 F씨가 3사람이 사업을 하는데 총무로 경리를 담당해서 일을 하는데 너무 많은 일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3년 후에 그만두고 직장을 나와버렸다고 했다. 그가 그만 두고 나올 때 친구가 왜 그만두려고 하는가?  하고 말렸지만 일이 너무 많아서 혼자서 처리할 수 없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개인사정으로 그만둔다고 했다. 그의 자리에는 3사람의 경리가 일을 맞아서 번창하는 것을 보고 후회를 했다고 했다.

그는 대학 졸업 직후에 아버지에게 부탁을 해서 미국 유학을 떠났다. 아버지의 퇴직금의 일부를 유학 등록비로 사용하면서 아버지가 이것이 마지막 도움이라고 하는 말을 듣고 뉴욕에서 어학 연수를 1달 가량 하다가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에 돈만 날릴 것 같아서 취소하고 귀국해서 아버지에게 돈을 되돌려주었다고 했다.

그는 40대 초반까지 결혼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일자리를 제대로 구할 수가 없었다. 부모님은 아버지의 은퇴 이후에 서로 화해를 해서 다시 재결합으로 함께 살고 있는데 F씨는 1년 전까지 부모님과 함께 살다가 작년에 다행히도 한 기독교 여성을 만나서 결혼을 하고 지금은 부인의 도움으로 명문대학의 대학원에서 1년을 공부하면서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부인의 도움으로 받게 된 것이었다.

F씨는 첫 번째 우울증의 재발에서 완전히 빠져 나와서 이제는 과거의 우울증의 반복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기뻐했다.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재발 패턴을 찾아서 수정하고 고치는 것은 물론이고 자아의 능력을 개발하고 결함을 수정해서 자신감을 성장시키는 것이 핵심임을 잘 알고 실천을 하고 있었다. 규칙적인 운동으로 헬스와 요가를 함께 병행하고 있고 그리고 지난 주일부터 3월 개학 때까지 정신분석에 대한 공부를 심도 있게 하기 위해서 sky 도서관에서 프로이트에 관련된 책을 5권이나 빌려와서 치료자에게 보여주면서 프로이트에 대한 흥미가 생겼다고 깊이 있게 공부할 목적이 생겼다 라고 기뻐했다.

F씨는 어린시절에 상처 기억들로부터 내면에 쌓인 부모님 특별히 어머니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지 못했고 대인관계에서 어려움들을 부모님 혹은 형님과 동생에게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혼자서 내면에 쌓아 놓고 억압으로 분노를 강압한 것이 우울증으로 자아를 공격한 것으로 분석으로 밝혀지면서 자아 표현 훈련으로 6개월의 심리치료 이후에 자신감이 회복으로 공부에 진전을 가져올 수 있었다. 그는 어머니에게 받은 어린시절의 상처들을 어머니에게 직면 표현하게 되면서 자아를 고양시키는 훈련을 하면서 대인관계에서 자아 표현으로 이어졌다. 어머니는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아들의 소통을 경청해주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요약에 들어가보자. 인간의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물리학적인 역동학의 관점에서 프로이트와 정신분석가들에 의해서 내면의 자아의 흐름이 밝혀지면서 출생직후에 백지상태로 태어난 신생아가 엄마의 품에서 엄마의 마음이 반사되어 아기의 마음으로 기억의 흔적이 생겨나면서 엄마를 인식하게 되고 나를 인식하게 되고 엄마와 아빠와 상호작용으로 머리 속에서 얼마나 복잡한 상호작용의 과정이 일어나고 그것이 1 365일 수십 년 동안 머리 속에서 자아의 경험으로 쌓이고 형성되면서 발달의 단계들을 거치면서 자아가 내면 속에서 작동하게 되는가?를 기술을 했다.

부부 사이가 원만하고 건강한 부모, 자녀 양육에 지식을 가진 부모님들은 그리고 그들의 부모님으로부터 사랑과 애착이 잘 형성된 부모님의 자녀들과 관계는 큰 어려움이 없다, 여기에 과거에 형제들이 많을 때는 형제들과 서로 부딪치고 관계를 하면서 어떻게 대인관계를 하는가?를 자연스럽게 배울 수가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도 선진국화 되면서 20세기 후반에 부모의 맞벌이로 어린이들을 유아방, 놀이방에 맡겨지고 자녀들은 1명 혹은 2명으로 부모님이 자녀들에 대한 기대와 소망들이 자녀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자녀들은 부모님의 마음의 결함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게 되어져 가고 있다.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심리적인 것에 무관심한 부모들은 눈에 보이는 것에만 신경을 쓰게 되면서 대소변 먹는 것 그리고 눈에 보이는 양육에 초점이 맞춰지게 되면서 부모님과 상호작용으로 각각 발달 단계를 거치면서 발달 기간에 요구되어지는 발달 과업에 결함들이 다양한 각종 정신장애를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는 것을 마음의 현미경을 통해서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마음의 역동학은 같은 똑 같은 부모님 밑에서 24시간 1 365일을 같은 가정환경에서 성장을 한다고 해도 마음의 흐름이 똑 같이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양한 치료 사례들을 기술하면서 눈으로 볼 수 있었다.

부모님은 이러한 인간의 내면의 심리적인 작동들을 이해하고 맞벌이로 결함이 생긴 양육을 자녀들에게 보상해주는 부모님은 자녀들의 어려움을 들어주고 건강하게 양육할 수가 있다. 전업주부의 경우라고 해도 부모님의 예민함과 신경증적인 결함들이 자녀들에게 영향을 어떻게 미치고 있는가?관심과 심리적인 지식이 자녀들의 어려움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이 필자가 이 글을 쓰고 소개하는 이유이다.

점점 과학화 되어가는 21세기의 우리 사회가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의 마음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는 세상으로 변화되어가면서 자녀들의 심리적인 문제들이 심각하게 선진국으로 따라가고 있다는 느낌을 피할 수가 없다.

 또 한가지는 최근에 일반의사들이 외과, 내과의 전문가들의 수가 줄어들고 성형외과의 의사들이 인기가 있다는 것이 바로 눈에 보이는 외형적인 모습에 주의집중이 높아지고 있다는 한 개가 증거라고 볼 수 있다. 인기 연예인들이 눈, , 입을 성형수술로 아름답게 보이려고 하는 인간의 욕망은 나무랄 수가 없다. 내면의 마음도 건강하고 동시에 외모에 신경을 쓴다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내면의 자아보다 외면의 신체적인 조건에 투자하는 것이 더 중요시되어간다는 느낌으로 자아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느낌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의 내면의 중요성이 감소되어져 가는 것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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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참고

 메이(May). 자아를 위한 탐색(1953), 불안의 의미(1996)

 엘렌버그(Ellenberg, 1970). 무의식의발견: 역동학적 정신의학의 역사와 진화

 투스틴(Tustin). 신경증 환자들안에서 자폐증적인 장애물들(1987), 자폐증과 어린시절의 정신증(1972)

 몰러(Mahler, 1976). 인간 유아의 마음의 탄생

 울프(Wolf, 1988). 치료되는 자아

 베른헤임(Bernheim, 1979). 정신분열증의 원인들, 증세들, 치료들

 리즈(Lidz, 1985). 정신분열증 환자의 가족

 헤드트(Herdt)와 스톨러(Stollor)(1990). 친밀한 커뮤니케이션

 스턴(Stern, 1997). 상처와해리장애

 다이아몬드(Diamond, 1999). 마음이라는 마술의 나무

 엘리옷트(Eliot, 1999). 뇌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헬리(Haley). 시련의 치료(1984), 문제해결치료(1991), 전략적 가족치료(1991), 분가(1993), 밀턴 에릭슨과 대화 1, 2, 3(1985). 정신과 의사인 밀턴 에릭슨의 특이한 치료 기법(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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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저서들은 우리나라 말로 번역되어 있으니 치료자정신분석 심리치료 홈페이지전문서적 안내에 들어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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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 참고:

치료자의 전화 번호: 010-4512-1275,

김종만, e-메일: jongmankim@hanmail.net.

http://www.psychclinic.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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