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실에서 자연스럽게 분석 상담을 받고 있는 모습(영화 속에서 인용) 

 

 13년 동안 심리치료를 받은 Z: 치료 종결 3년 후에?

 

심리치료사 그리고 심리상담사들이 가장 고통스러울 때는 그들이 지극정성으로 도와주었던 손님(치료사인 필자는 환자를 치료사를 방문한 손님으로 호칭)들이 상당한 기간(최소 2)이 지나간 이후에 치료를 받기 이전의 상대로 되돌아갔다(증세의 재발)라는 말을 듣게 될 때 그리고 그들의 입에서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시간과 돈을 낭비를 했다 라는 말을 듣게 될 때 가장 고통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바로 그 치료사가 그 손님을 치료를 하면서 쏟아부었던 치료적인 이론들과 기법들이 바로 무용지물이었다 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치료자 한데서 가장 치료를 오래 동안 받은 사람은 13년 동안 치료를 받는 Z이다. 치료 종결 후에 3년이 지나간 후 2022, 6, 23일에 그는 치료자를 방문해서 그의 아버지가 지난 주일 2022, 6, 13일에 사망 그리고 동시에 어머니가 심장마비 증세로 병원에 입원으로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이 두개의 대형 사건이 동시에 발발했지만 Z씨는 흔들리지 않고 그리고 잠을 잘 자고 있고 또한 어머니에 대한 분노는 거의 없다(1달에 한번 정도로 가볍게 분노를 느낄 경도)치료자에게 감사를 전했다.

Z씨의 치료 사례는 블로그에서 여러 번 소개가 되었다. 치료 10년 때 Z씨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치료자를 방문해서 특별히 아버지가 선생님 고맙습니다. 이제 내가 안심하고 눈을 감을 수 있겠습니다라고 인사를 한 사례로 여러 번 블로그에서 치료의 과정을 소개를 했었다.

이번 블로그에서는 Z씨의 치료의 삐대치료 과정의 핵심 구조를 밝히고자 한다. 첫 번째 환자가 이야기를 하는 것일반적 현실이다. 이것을 반드시 심리적 현실로 바꿔야 한다(Moor, 1999: 주㈜: 참고) . 두 번째 반드시 감정을 다뤄야 한다. 분노와 적대감정을 빼내야 한다(Kernberg, 1999: 주㈜: 참고), 감정을 다루지 않으면 그 감정이 어디로 흘러갈지 모른다(환자에게 살해당한 정신건강의학과의 의사들의 경우를 보라), 세 번째 그 환자의 삶을 재구성해야 한다(Spence, 1982: 주㈜: 참고), 상처를 많이 받을수록 고통스럽기 때문에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 기억을 억압하게 된다. 환자는 과거의 기억이 거의 없다, 환자의 이야기를 통해서 가족구원성들을 통해서 그리고 꿈들의 조각들을 모아서 분석을 통해서 그 환자의 지나간 삶을 복원한다. 네 번째, 의존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환자들은 불안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의존할 사람을 찾게 된다(Ogden, 2005: 주㈜: 참고). 특별히 심리치료사는 환자가 치료사의 말을 잘 듣고 수용적이고 부응적인 환자를 좋아하게 된다(치료사와 부모와 유사점을 보라) 이것이 함정이다 그리고 다섯 번째로 자아를 성장시켜야 한다. 혼자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힘을 길러주어야 한다. 이것은 부모와 친구들과 관계를 단절하고 혼자 세상을 살아간다는 말이 아니다. 단절된 관계를 복원시키고 그리고 자아의 힘으로 세상을 살아 가도록 도와주어야 한다(Kohut, 1984: 주㈜: 참고).

위의 5개의 단계를 따로 떼어서 단계별로 치료를 하는 것은 아니다. 위의 5개는 서로 뒤엉켜져서 순서 없이 다뤄지지만 핵심에는 이것을 중심으로 치료가 진행된다는 말이다.

이제 그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심리치료는 약물을 사용하지 않는다. 최소 45-50분의 치료 회기(치료자는 120분으로)로써 이야기를 통해서 그 환자의 내면의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가? 를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역동심리학에 근거를 두고 있다(Tuttman, 1981: 주㈜: 참고). 모든 정보는 환자가 가가지고 있다. 치료사는 환자의 이야기를 듣고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 그러나 범죄를 수사하는 수사관과는 다르다(Giovacchini, 1995: 주㈜: 참고). 잘못하면 질문과 대답으로 환자를 지루하게 만들게 되면 치료는 끝나게 된다. 환자는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이야기에 정신이 팔리게 되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즐겁고 재미있다 지루하지 않고 시간이 지나가는 줄을 모른다고 이야기를 하도록 만들어 한다(Bollas, 1992: 주㈜: 참고). 영국의 소아과 의사로써 세계적인 정신분석의 대가가 된 위니코트(Winnicott)심리치료를 어린이들의 놀이에 비유를 했다. 어린이들이 놀이를 할 때 그 어린이가 이야기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 어떤 이야기들 해도 가능하다 즉 귀신이야기, 천사 이야기, 상상 이야기들도 그들은 막힘이 없이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그 이야기를 하면서 웃고 떠들고 장난을 치는 것이다. 놀이에서 어린이들은 자신의 놀이에만 집중하게 되기 때문에 즐겁고 시간이 지나가는 것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Seinfeld, 1991: 주㈜: 참고). 환자들은 자아 의식이 강하다, 바른 사람들의 비판과 비난에 늘 신경을 쓰고 있기 때문에 매사에 조심하고 자신의 자아를 스스로 관찰해서 외부의 비난과 비판을 막으려고 하고 있기 때문에 과도한 긴장 상태에 있다. 이러한 자아 의식이 치료사와 함께 이야기를 하면서 그 이야기에 집중이 되어진다 고로 생리적 흐림이 자율신경의 컨트롤에 맡겨지게 된다(Stern, 1997: 주㈜ 참고). 고로 긴장이 풀리고 내면의 생리적 작동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져서 소화기관이 정상으로 돌아간다, 여기에서 환자들은 과도한 불안과 긴장으로 스스로 심장과 소화기관의 어려움을 컨트롤하려고 하는 특징들이 바로 자아의 의식적인 관찰이다. , 심장, 호흡이 이상하기 때문에 내가 신경을 쓰는 것은 바로 내가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컨트롤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 바로 심리치료의 핵심으로 치료자가 도입하게 된 것이다. 이야기를 할 때 미주알고주알 소상하게 이야기를 하게 되면서 그 이야기의 맥락이 단절되어 지지 않도록 마음대로 이야기를 하도록 도와주는 방법이 바로 최면의 기법이다. 환자는 최면사와 마음과 몸이 하나가 되면서 최면사의 이야기를 환자 자신의 마음 속에서 신제적으로 생리적으로 호흡과 맥박이 일치되면서 과거로 자연스럽게 퇴행(어린시절)을 하게 되는 것이다.

상담 심리학의 개척자인 칼 로저스(Carl Rogers)내담자의 이야기는 무조건 긍정으로 수용해주어야 한다 라는 유명한 말을 했다. 환자가 하는 말은 모두가 옳다 라고 수용하고 지원을 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모순이 생기게 된다. 환자는 치료사에게 와서 불평을 호소한다, 선생님 xx군이 나를 괴롭힙니다. Zz군이 내 뒷담을 합니다. 내가 그 놈들을 죽이고 싶습니다. 부모님이 학교에 찾아가서 그들을 고발하고 학교폭력 위원회가 열리게 된다 그런데 그러한 사건이 일어나고 난 후에는 동료들을 그들을 고발한 그 학생을 가까이 오지 않게 된다 그를 건드리게 되면 엄청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Masterson, 1988: 주㈜: 참고). 고로 그 학생은 고립되고 외톨이가 된다 혹은 동료들의 괴롭힘에서 다른 학교로 전학을 하게 된다. 그렇게 된다고 해서 그 문제가 해결되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 문제의 핵심은 그 학생이 대인관계인간관계에서 갈등을 해결하는 능력의 부족에 있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자녀의 이야기만 듣고 괴롭히는 동료들을 제거하거나 처벌을 하려고 한다. 그러한 자녀들은 혼자 있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고로 집에서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학교 갈 때만 되면 심각한 경우에는 두통, 복통, 메스꺼움, 어지러움을 호소한다(아래서서 Z씨의 사례를 보라). 학교에서 동료들을 처벌하게 되면 동료들을 옆에 오지 않는다 고로 고립과 외로움을 호소하게 된다(대인관계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대인 공포증 혹은 사회 공포증을 보라)

또 다른 예를 들면 부부 문제로 상담을 받으러 오는 부인 혹은 남편은 이구동성으로 내 남편 때문에 죽을 지경입니다 내 남편을 바꿔주세요 혹은 내 부인 때문에 미치겠습니다. 내 부인을 고쳐주세요 라고 호소를 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100% 공감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구동성으로 자신은 문제가 전혀 없다고 말을 한다. 어떻게 결혼을 했는가? 를 물어보면 하도 내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면서 결혼해 달라고 졸랐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결혼을 했는데 내가 눈이 삐었습니다 라고 대답을 한다. 여기에서 모순이 생긴다. 부인 혹은 남편의 이야기를 100% 수용하고 들어주어서 그 배우자를 바꾸겠다고 하는 내담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치료실에 나오지 않는 배우자를 어떻게 바꿀 수 있겠는가? 결국은 치료사는 그 부인 혹은 그 남편에게 그렇게 싫어하는 사람과 어떻게 같이 사는가? 이혼을 하라고 종종하게 되면 치료를 받으러 와서 이혼으로 연결되어져서 문제는 더욱 더 커지게 된다. 그렇다면 이 모순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청소년들의 경우에는 그들의 동료들과 갈등의 해결의 근본적인 문제가 그리고 부부의 문제의 경우에는 부부 관계의 결함들이 어린시절의 양육과정의 문제들과 서로 뒤엉켜져서 물고 물려 있다 라는 것을 해결해주어야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Framo, 1982: 주㈜: 참고).

여기에서 등장하는 것이 환자가 이야기를 하는 일반적인 현실은 그 환자가 불평을 하는 이야기들이고 그리고 그들의 결함을 고치는 것이 바로 심리적 현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현실을 심리적 현실로 바꾸지 않으면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가면 다시 재발하는 것이다 치료의 효과는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모순은 치료의 초반기에 환자의 단점과 결함을 지적하면 치료를 끝이 난다, 환자의 이야기를 100% 수용하고 인정하고 지원을 해 주면서도 치료사는 그들의 관계의 결함과 자아의 결함들을 파악을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치료 동맹의 형성이다. 치료 동맹(therapeutic alliance)라는 말은 보스턴 정신분석학교의 교수였던 엘리자베드 제트젤(Elizabeth Zetzel)이 만든 신조어이다(Gunderson, 2001: 주㈜: 참고). 그녀는 뉴욕의 변호사의 딸로 태어나서 여성대학인 스미스 대학(Smith Collage)을 졸업하고 영국의 런던 대학의 정신과의사 출신으로 정신분석가로 활동하다가 1949년에 보스턴 정신분석학교 교수로 와서 환자들을 치료를 한 미국의 정신분석의 초반기 개척자이다. 정신분석가들이 최면이론에서 사용하던 환자와 최면사 사이에 심리적인 유대 관계를 표현하는 용어로 라포, 레포(rapport)라는 말(최면을 발견한 메즈머(Mesmer)가 환자에게 최면사의 자장의 힘(자석 치료)을 전달하는 구리 막대기에서 유래한 용어)을 사용하다가 제트젤의 정신분석학적인 전문용어치료 동맹이라는 신조어로 대신하게 된다(Ellenberger, 1970: 주㈜: 참고).

치료 동맹의 형성은 치료시와 환자 사이에 언제 형성되는가? 는 다양하다 환자와 치료사 사이에 유대관계에 달려 있다. Z씨의 경우에는 1.5년의 시점에서 확고한 치료 동맹이 형성되었다(아래의 치료 사례를 보라).

감정을 다루는 것이 정신분석의 핵심이다. 감정은 에너지이다. 신경학에서 신경의 방출은 전기의 흐름처럼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신경세포가 일정한 양의 수준을 넘어갈 때 정보를 방출하게 된다. 프로이트는 구조이론에서 자아는 타고나는 원초자아(id), 그리고 선과 악을 구분하는 초자아(ego) 그리고 현실적 자아인 ego로 구성된다는 마음의 구조이론을 발표를 했다. 원초자아의 기능은 즉각적인 욕구 충족이다 욕구의 충족은 즐거움이다 반대로 욕구의 불만족은 불쾌감으로 보았다. 다시 말해서 긴장의 방출은 즐거움이고 긴장의 누적인 불쾌감이다. 원초자아는 즐거움의 원리를 따르고 ego는 현실의 원리를 따르게 된다. 0-1세는 원초자아의 원리로 즉각즉각 욕구 충동이 따라와야 한다. 아기는 울음으로 긴장의 누적을 표현하게 된다 1세 -3세 사이에 대소년을 컨트롤하고 주변 환경을 컨트롤하면서 현실적 자아인 ego가 자라나기 시작한다. 19년의 세월이 흘러가면서 ego가 세상의 주도권을 잡게 된다 즉 자아 주체성(identity)이 형성이 자리를 잡게 된다. 3-5세의 오디프스 기간에 선(좋은 것)과 악(나쁜 것)을 구분한다. 사랑과 미움을 구분한다. 자녀들은 부모님에게 사랑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데, 분노, 미움은 흘러가지 못하고 내면 속에 쌓이게 된다 즉 억압하게 된다 부모님에게 복종으로 부응하고 수용하게 되면서 분노, 미움, 적대감정은 숨기고 감추게 된다.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은 억압되어져 있다가 한계점을 넘어가면 폭발하거나 폭력으로 연결되기가 쉽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억압된 노여움, 분노를 말로써 표현하지 못하고 폭발하거나 마음 속에 억압되어 묻혀져 있다. 어린이들이 이것을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이 바로 성질 부리기이다. 울고 불고 뒹굴고 난리를 치는 것이다. 정신분석에서는 감정을 중요시한다. 반드시 치료의 초반기에 감정을 말로써 표현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고로 사랑과 미움을 원래 한 개인데 이것을 쪼개서(분열) 사랑은 흘러가고 미움을 억압되어져서 내면에 남는 것이다. 이것을 그리스 신화의 야누스의 두 얼굴로 표현을 한다. 부모님, 배우자, 친밀한 관계에서 반드시 부정적 감정이 말로써 표현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분노를 행동으로 표현하지 말도록 한다. 언어 폭력, 몸싸움, 물건들을 집어 던지는 것, 눈맞추기를 피하는 것, 말을 하지 않는 것, 대답이 없는 것, 관계를 피하는 것, 두문불출하는 것, 가출하는 것 등은 분노를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갈등을 해결하는 데는 이러한 것을 말로써 표현하고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이야기를 해서 상대방을 이해시키는 과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의사소통이다(아래의 Z씨의 의사소통 훈련을 보라).

환자의 과거의 삶을 복원하는 것이다. 이것은 프로이트가 강조하는 부분이다. 프로이트는 인류학과 고고학을 도입을 해서 진화적으로 인간의 발달을 설명하고 있다. 정신분석에서 그리스 신화의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을 한다, 랑과 미움이 얼굴의 앞 쪽과 뒤쪽이 한 사람으로 붙은 야누스, 오디프스의 왕의 이야기에서 따온 오디프스 콤플렉스, 나르시우스 소년의 이야기에서 따온 나르시즘의 이야기들 등등이 바로 정신분석의 핵심들이다.

프로이트는 여름 휴가(6, 7, 8)에는 늘 그리스와 로마를 찾았다. 생전에 그는 7차레나 방문을 했다. 그의 취미가 골동품 수집으로 모았던 그리스, 로마의 골통품들을 제제자들에게 선물을 했다(어네스트 존(Ernest Jones)의 프로이트의 삶과 업적: 1 (1953) 2(1955), 3(1957)를 보라).

프로이트는 그리스의 신전들을 방문을 하면서 지금은 흔적으로 남아 있는 유물 조각들을 수집해서 원형들을 복원해 내는 고고학을 정신분석에 도입을 했다. 환자들의 어린시절의 기억은 무의식 속에 묻혀 있다. 기억의 흔적들을 찾아가는 것이다. 여기에 꿈들을 분석해서 과거의 파편들을 모아서 그 환자의 과거의 모습을 복원하는 것이다(아래의 Z씨의 사례를 보라).

의존에서 벗어나서 자아의 성장으로 자신감을 세우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도와주는 과정은 위에서 충분히 설명이 되었다(Z의 경우를 아래의 사례에서 보라).

위의 치료의 과정들은 이미 여러 차례 다른 블로그의 글들 안에서 다뤄졌다. 여기에서는 이 블로그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죽은 엄마 증후군을 충분히 이해를 해야 위의 5개의 과정을 다루는데 이해가 될 것이다(Green, 1999: 주㈜: 참고). Z씨의 어머니는 죽은 엄마 증후군에 지극히 가까운 사람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죽은 엄마 증후군은 엄마의 심리적인 문제가 자녀에게 영향을 미쳐서 자녀가 정신적으로 심각하게 문제가 생긴다는 이야기는 이미 오래전에 알고 몇번의 글로써 밝힌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구체적으로 좀 더 세부적인 이야기를 새롭게 소개하고자 한다.

죽은 엄마 증후군의 신조어를 만든 사람은 1973년에 프랑스의 정신분석가인 앙드레 그린(Andre Green)이다. 그는 이집트 카이로에서 태어난 유태인으로 프랑스 파리 의과대학 정신과를 졸업하고 프랑스에서 정신병원으로 가장 이름이 높은 성 앤(St. Anne) 정신병원에서 레지던트 과정을 거쳤다. 이 병원은 프랑스에서 유명한 정신병원으로 라깡(Lacan)과 엘렌버그(Ellenberger)(무의식의 역사의 저자)가 이 병원에서 같은 기간에 함께 레지던트 과정을 거쳤다.

 그린(Green)은 라깡 밑에서 10년동안 라깡의 정신분석학을 연구하고 치료를 하다가 라깡의 이론이 무의식이 언어로 구성되어져 있다 라는 말에 그리고 그가 감정을 무시한 것에 반대해서 라깡의 정신분석을 탈퇴하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으로 방향을 돌렸다.

프랑스에서 정신분석은 프로이트의 특명을 받는 루돌프 로웬스테인(Rudolph Loewenstein)이 폴란드의 유태인으로 독일에서 의과대학에서 신경학과 정신의학을 전공한 후에 스위스의 부르고졸리(Burgholzli) 대학병원에서 유진 블루러(Eugen Bleuler) 밑에서 레지던트 시절에 융(Jung)과 함께 정신분석가가 되었다(Green, 2005): 사적인 미침을 보라).

프로이트가 특별히 프랑스에서 정신분석학교를 세우기 위해서 그와 하트만(Hartmann)를 프랑스에 보냈다. 그들이 1927년에 프랑스 정신분석학교를 세우고 하트만의 귀국후에도 로웬스테인은 그곳에 거주하면서 프랑스 국적을 얻어서 프랑스에서 제 1세대 정신분석가들을 양성하게 된다. 그의 제자들이 바로 장자크 라깡(Jacques Lacan), 마리아 보나파르트(Marie Bonaparte)(나폴레옹의 증손녀), 레이몬드 소쉬르(Raymond Saussure)(구조주의 언어학자인 페드란드 소쉬르의 아들)들이다. 그는 1942년에 뉴욕으로 이주를 해서 뉴욕정신분석 학교에서 교수가 된다.

 라깡1953년에 프랑스 정신분석 학회에서 탈퇴를 해서 독립적인 라깡 학파를 창설하게 된다 그는 스위스의 출신의 프랑스의 구조주의 언어학을 창설한 페르디난트 소쉬르(Ferdinand Saussure)구조주의 언어학과 기호주의 언어학을 프로이트의 리비도 이론인 섹스 심리학을 통합해서 라깡 학파를 창설하게 된다. 라깡은 무의식이 언어로 구성되어져 있다 라는 이론을 전개했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은 이미지상으로 시간과 공간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천명을 했었다. 그린(Green)라깡 학파들이 정신분석을 다시 해석해서 본질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을 감지를 하고 10년 동안 라깡의 추종자로써 탈피하고 영국의 정신분석가 특별히 위니코트(Winnicott)비용(Bion)영향을 받았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Green, 1999, 죽은 엄마를 보라).

치료자는 앙드레 그린(Andre Green)3권의 저서로 에로스의 체인(Chains of the Eros, 2002), 그리고 죽음 엄마(The Dead Mother Syndrome, 1999) 그리고 사적인 미침(Private Madness, 2005) 3권의 저서를 정리를 하면서 그의 죽음 엄마 증후군에 대해서 설명을 함으로써 Z군의 어머니가 아들 Z군에게 미친 영향을 설명하고자 한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은 섹스심리학으로 리비도 이론으로 욕구(drives)이론이다. 어린시절에 욕구에 고착이 일어나서 그 욕구가 성장하지 못하고 유아기로 머물러 있다 여기에서 사랑에 고착(사랑에 한미 맺힌 사람들), 학업에 고착(공부에 한이 맺힌 사람들), 돈에 고착(돈에 한이 맺힌 사람들) 등등의 유명한 분석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은 수없이 언급을 했다. 그들은 성인이 되어서 그 욕구에 집착하게 되고 모드 에너지를 그곳에 흡수해서 결국은 파멸로 연결되어지게 지게 된다. 환자로 하여금 이 욕구를 깨닫게 하고 그 욕구를 블레이크를 걸어서 컨트롤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로 프로이트의 신경증이론의 핵심이다 그런데 프로이트는 전이 신경증과 나르시즘 신경증으로 구분을 했다 전이 신경증은 전이가 형성되어 치료가 가능하지만 나르시즘 신경증은 전이가 형성되어지지 않기 때문에(자연스럽게 자유연상을 하는 대화의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치료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를 했다.

 프로이트의 제자들은 프로이트의 이론을 수정하고 보완을 해서 보드라인 장애(심각한 정격장애와 자아분열장애들(걸어 다니는 정신분열증) 그리고 정신증(편집증, 조울증, 정신분열증(조현병))에 도전하게 된다는 것은 수없이 밝혔다.

 그린(Green)은 보드라인 환자들을 치료를 하다가 프로이트의 이론을 수정한 위니코트의 이론에서 정신증 치료를 위한 새로운 이론을 개발하게 된다. 위니코트는 유아가 1-2세의 기간에 엄마의 이미지를 마음 속에 생기게 되는 과정대리 대상 혹은 과도기 대상, 일시적 대상(transitional object)이라고 부르는 이론을 개발을 했다. 엄마를 상징하는 물건들 즉 담요, 인형, 곰인형, 엄마의 안경, 잭 들을 통해서 엄마의 이미지를 머리 속에 형성하게 된다. 그것을 통해서 엄마를 상상하면서 엄마의 부재를 견딜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주관적인 생각으로 엄마를 상징하는 이미지이다. 이 이미지가 점차로 객관화되면서 확고한 엄마의 이미지가 마음 속에서 생겨나게 된다. 아기는 7개월-9개월의 시점에서 엄마와 낯선 사람들을 구분하게 된다. 이것을 분리 불안이라고 부른다. 낯선 사람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고 엄마를 찾게 된다.  분리 불안은 엄마의 이미지가 과도기적인 형성으로 확고한 어미지가 생겨나지 않았기 때문에 엄마의 실체를 찾는 것이다. 이것이 3-5세로 이어지면서 객관적인 엄마의 이미지가 마음속에서 생겨나게 될 때 어린이들은 엄마가 옆에 없어도 엄마의 이미지를 가지고 세상의 불안과 두려움을 헤쳐 나가게 된다.

 아기는 엄마가 충족시켜주는 욕구 만족에서 이 세상에서 자신이 최고가 된다 이것을 착각적인 전지전능함(나르시즘의 피크 기간)이라고 부른다. 아기는 엄마, 아빠가 자신이 즉각적으로 원하는 것을 다 충족시켜주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자신이 안 되는 것이 없는 전지전능한 존재임을 착각하게 된다. 이러한 착각은 건강한 것으로 자신의 몸의 컨트롤로부터 주변 주변환경의 컨트롤로 이동을 하게 된다. 주변의 사물들이 모두가 생명이 있는 물활론으로써 보게 된다. 그들을 다루면서 좌절과 두려움은 엄마에게 호소를 한다 엄마는 그 물건들을 처벌하고 아기를 보호해준다. 마음의 에너지가 주변 환경의 사물들에게 로 향하게 되면서 만지고 찢고 부시고 마음대로 그들을 컨트롤하게 되면서 마음 속에서 사물들의 이미지가 형성하게 된다. 차가운 것, 뜨거운 것, 단단한 것, 위험한 것 등등이 마음 속에서 이미지상으로 상상으로 새겨지게 된다. 3세-5세의 나이에서 어린이들을 대상들에 대한 영속성 즉 엄마의 이미지가 마음속에서 확고하게 형성되어지면서 엄마가 없어도 두려움과 불안을 엄마의 이미지로 컨트롤 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건강한 엄마와 아기 사이에 상호작용에 의해서 형성되어지는 것이다.

 엄마가 아기의 출생 이전에 유산 혹은 엄마의 아버지 혹은 어머니의 죽음으로 상실을 경험했을 때 엄마가 애도의 과정을 충분하게 통과하지 못한 엄마들은 우울함으로 아기의 마음 속에 거울반사를 무시하거나 엄마 자신의 내면의 상처 속으로 빠지게 된다. 아기는 왜 엄마가 자신의 욕구를 무시하는지 왜 어떤 때는 사랑을 또 어떤 때는 무관심으로 반응행동을 하는지를 이해할 수가 없게 된다. 아기는 물건으로부터 이미지화의 과정을 통과할 수 없게 된다 즉 상징화에 실패하게 된다 그렇게 될 때 아기는 세상의 물건들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심 그리고 불안을 컨트롤할 수가 없게 된다. 그린(Green)은 이것을 정신병리학의 원천으로 이론화 했다.

물건들의 이미지화의 실패 즉 가장 핵심적인 엄마의 이미지가 머리속에서 형성되어 지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 물건들의 물활론의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게 된다엄마가 실제로 실물로 옆에 없을 때는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모든 사물들의 이미지화가 형성되지 못하고 그들을 두려워해서(물활론의 지속) 그들을 피하고 두려워하고 불안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아기의 머리 속에는 물건들의 이미지상이 없다, 아기의 마음 속에는 상상이 없다 그린(Green)은 이러한 아기의 머리 속을 핵심이 텅 빈, 공허감. 전지전능의 부재로 설명을 하고 있다(Seinfeld, 1991, 핵심이 텅 빈 자아를 보라). 아기의 머리 속에는 불안으로 가득 차 있다. 이것을 존재의 불안이라고 불렀다. 존재의 불안은 프로이트의 거세 불안과 다르다, 거세 불안은 상실과 처벌의 두려움이다 고로 내면의 상상 속에서 자신의 잘, 잘못을 안식하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이다 고로 아기들은 그것을 억압해서 무의식 속으로 집어넣어버리기 때문이다. 무의식속에서 저장되어져 있기 때문에 신경증 환자들은 분석가와 편안한 상황에서 그들의 끄집어 낼 수 있다 그것을 무의식으로부터 의식으로 끄집어내고 직면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존재의 불안은 망상과 죽음 뿐이다. 기억도 없고 상상도 없고 실체의 실물들만 있는 자아가 텅 비어 버린 공허감으로 이 속에는 불안으로 가득 차게 된다.

 이러한 사람들은 성인이 된 이후에 주변의 상황들에 너무나 예민하게 된다, 경제심이 심하고 침투를 두려워하게 된다. 앙드레 그린(Andre Green)은 기존의 분리 불안에 또 한 각지 침투 불안을 신조어로 만들어냈다. 외부의 사물들이 자아의 영역 속으로 간섭을 해서 자신의 불안을 과중 시키고 자아를 소멸시키려고 하는 것에 극도로 예민하게 된다. 이것은 바로 심리적 영역에 침범을 의미한다. 이러한 엄마들은 자녀들의 눈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과 두려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불안 속에 갇혀서 부들부들 떨게 된다. 이것을 얇은 껍질 심리적 영역이라고 부른다. 이러란 사람들은 조그만 변화에 참을 수가 없다. 늘 하는 것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불안과 두려움에 떨게 된다. 예를 들어서 침대에서 조금 일찍 일어나거나 혹은 조금 늦게 일어나면, 기온 탓으로 공기의 온도가 변한 것이라고 두려워하게 된다 기온을 체크하고 조바심으로 안절부절 못하게 된다. 물건들이 제자리에 놓여져 있지 않으면 두려움에 경련을 일으키게 된다.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갇혀 있는 것이다, 반대로 외부의 접촉에 경련을 일으킨다(Green, 1999: 앙드레 그린의 족은 엄마를 보라).

 건강한 사람은 성장과 발달이 교대로 변증법적으로 통합이 된다. 안정과 성장은 반대이다 한쪽은 제자리로 안전하게 머물러 있는 것이고 다른 한쪽의 성장은 변화를 거치는 것이다. 이것이 안정된 상태에서 변호를 수용해서 개체가 커지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과도하게 불안한 사람들은 늘 안정된 틀 속에 있어야 편안하다 조그만 변화에 참을 수가 없다 프로이트가 이러한 사람을 성공을 두려워하는 사림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직장에서 승진이나 성공을 두려워해서 만년 말단으로 평생을 보내는 사람들이다, 승진이나 성공은 새로운 책임과 임무가 따라온다 고로 어떻게 대응하고 처리할지 모르기 때문에 불안하게 된다. 외부의 변화나 새로운 경험을 수용을 거부한다 고로 변화를 두려워하게 된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안정된 마음을 죽은 정지된 것으로 인식해서 계속해서 문제를 일으키면서 새로운 환경의 스트레스에 직면해서 살아있음을 느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안정과 반대로 끝없이 성공과 성취에 목말라 하기 때문에 긴장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 습관화되어 잇기 때문에 과도한 신체적인 무리로 건강을 다치게 된다. 이들을 자신들을 모른다. 어느 쪽도 문제가 된다.

프로이트는 나르시즘 용어를 확대시켜서 외부 대상으로 에너지 투자 대신에 내면으로 에너지가 철수하는 것을 나르시즘적이라고 불렀다(Otto Fenichel, 1945)의 정신분석학에서 신경증을 보라). 그린(Green)은 이것을 탈에너지투자(de-cathexis)라고 불렀다. 프로이트의 독일어에서 정신집중이라는 용어가 영어에 없는 단어이기 때문에 독일어 정신분석을 영어로 번역하면서 제임스 스트라취(James Strachey)가 에너지투자 라는 영어의 신조어로 cathexis라는 용어(영어사전에 잘 나오지 않는 용어)를 만든 것이다. 그린(Green)은 나르시즘이라는 개념이 측정할 수 없는 비과학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이 개념을 과학적인 용어로 decathexis라는 개념으로 반대에너지투자 혹은 탈에너지투자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고로 외부로 에너지투사가 되지 않기 때문에 외부 사물들에 흥미가 없어지고 상상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내면의 공간에는 빈 공간공허감으로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이 된 것이다.

이러한 엄마들은 두개의 자아로 쪼개져서 분열되어 시도 때도 없이 교체되어진다. 얇은 심리적 영역과 그리고 두꺼운 심리적 영역이 나란히 교체로 등장하게 된다. 한쪽에는 박해적인 침투적인 엄마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착한 그리고 뚫고 들어갈 수 없음, 접촉 불가가 함께 나란히 존재한다. 이런 엄마들은 증세가 없다, 환각이나 환청이 없다 겉으로 보면 정상으로 보인다 그러나 마음 속에는 공포감으로 두려움으로 불안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자녀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늘 자녀들을 간섭하고 다그치고 간섭을 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로 확인을 해야 한다 그래서 안전함을 느끼게 된다 그 결과로 자녀들의 심리적 영역을 질식시킨다. 필자는 이러한 사람들을 치료의 과정에서 많이 보았다.

조현병 환자인 A군은 24세로 명문대학에 4학년에 재학중이었다. 그가 군대생활 도중에 엄마가 중대장에게 전화를 해서 아들 A군과 통화를 원했다. 이후에 두번이나 이러한 전화에 놀란 A군은 엄마의 전화를 예상하고 미리 토요일 일요일에 전화를 해서 엄마를 인심시켰다. 그는 그 부대에서 군대생활을 하면서 부모가 자녀에게 전화를 해서 확신을 한 것이 그가 처음이라고 실토를 했다. 그가 조현병으로 치료자에게 1년 동안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후반기에 그가 지방에 있는 어머니에게 매일 저녁 8시에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안부를 전한다고 했다 물론 이러한 것일 분석으로 밝혀짐으로써 전화를 하지 못하게 하고 A군의 자아의 확신을 시켜서 엄마의 불안의 전염을 막도록 하고 엄마의 동일시를 차단하도록 한 것이다. 그가 치료의 첫 시간에 한 말이 인상적이다. 선생님 나는 엄마를 위해서 치료를 받으러 왔습니다 라고 이야기를 했다. 치료자가 손님은 누구를 위해서 세상을 살아가는가? 라고 질문을 했을 때 그는 망설이지 않고 나는 엄마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치료자가 퍼센트로 이야기를 해 보라 라고 말을 했을 때 그는 엄마를 위해서가 80% 이고 나를 위한 것이 20% 입니다 라고 대답을 해서 치료자가 깜짝 놀랬다.

이런 사람들은 변화를 갈구하지만 생산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치료사를 쇼핑을 한다 그러나 변화가 거의 없기 때문에 분석가와 치료사를 찾아다닌다 그러나 치료를 중단하고 자신의 내면 속으로 들어가버리는 것이 특징이다. A군은 환청이 사리지면서 조변병에서는 벗어났으나 치료를 계속(조현병과 동성애의 치료)하도록 하는 치료자의 권유를 무시하고 치료를 종결했다 일주일 후에 다시 전화로 치료를 재개를 애원했다. 자아가 분열에서 한쪽은 치료의 무용론으로 다른 한쪽은 치료의 재개를 보였다. 엄마의 얇은 심리적 영역(눈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과 접촉불가의 두꺼운 심리적 영역(변화의 수용불가)을 그대로 동일시한 것으로 밝혀졌다.

 Z씨의 엄마는 그녀의 엄마(외할머니)를 똑 같이 동일시했기 때문에 그녀는 그녀 자신의 엄마에 대한 분노가 없다(Z씨의 분서 과정을 보라).

 Z씨는 2007, 4, 7일에 치료가 시작된지 16개월의 시점까지는 치료의 과정은 아래에서 소상하게 기술되어져 잇다. 여기에서 위에서 언급한 몇 가지 내용을 유의해서 참고로 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16개월의 지점에서 치료 동맹이 확고하게 형성되었다. Z씨의 핵심 문제는 엄마와 Z씨 사이에 편애와 학대(언어폭력)였다는 것이 밝혀지게 된다. 엄마는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아들 선호사상 때문에 엄마의 분노가 Z씨 한데로 흘러간다는 것으로 심리적 현실 나타났다. 이것이 1자 적 가설이었다. Z씨의 과거의 삶의 과정은 윤곽(과거의 삶의 복원)이 드러나고 있다. 여기에서 의사소통 훈련이 시작되었다(아래에서 보라).

부모님에게 원룸의 요구가 거부되었기 때문에 고시방으로 이사를 할 때 치료자의 의존에서 독립을 하는 훈련이 시작되었다. 즉 치료자는 치료실에서 대화 훈련을 도와주지만 치료실 밖에서는 자아의 힘으로 직면해야 한다, 치료실 안에서 배운 대화 훈련을 직접 실천을 강조했다. 치료자는 골절 환자의 지팡이와 같다 혼자서 걸어 다닐 수 있게 되면 지팡이는 필요가 없다 고로 자아의 성장에 초점을 맞춘다 이것은 아래의 치료 사례 기술에서 잘 나타나 있다.

Z씨는 치료자로부터 먼저 자신이 살고 싶어하는 지역을 선정해서 인터넷(Z씨는 인터넷을 잘 사용했다)에서 10곳 정도 고시원을 선택을 했다. 두번째 부동산 114에 연락으로 그 중에서 3개 정도를 선택해서 중개소를 직접 찾아가서 현장을 확인하고 그 중에서 마지막 한곳을 선택하는 과정을 훈련을 했다. 이 훈련으로 Z씨는 처음으로 부모님에게 의사를 표현하게 되었다 그리고 혼자의 힘으로 이사를 할 수 있었다(자아의 성장이 상당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증거). 자아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또 한가지는 Z씨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는 것에 대한 문제를 도와주기 위해서 인지-행동 치료의 대가인 아론 백(Aron Beck)의 의사결정 훈련을 도입을 했다(Beck,1985: 주㈜: 참고)

 모든 세상의 일들은 항상 장점과 단점이 있다(100% 장점만 가진 것은 없다) Z씨는 물건을 사려고 하면 짝퉁이 아닌가? 가격에 바가지를 쓰는 것이 아닌가? 라고 불안해한다 사지 않으면 가지고 싶어서 안달이다(MP 3를 사는데 7개월의 우유부단을 아래에서 보라).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인지 치료의 기법을 도입을 했다 먼저 그 물건 살 때 혹은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장점과 다점을 대차 대조표(왼쪽에는 장점 오른 쪽에는 단점)을 모두 있는 대로 기술하게 한다 그리고 장점이 많은 쪽을 선택하게 한다. 선택 이후에는 자신의 자아가 선택한 것을 적대적으로 지원해주게 하는 것이다. 내가 선택한 것을 이후에 후회하게 되면 내가 도끼로 내 발등을 찍은 것과 갔다 고로 내 자아 존경심 즉 자신감이 파괴된다는 것을 깨닫게 한 것이다. 이 훈련을 통해서 Z씨는 결정을 내리거나 물건을 살 때 망설이는 불안이 감소되었다.

 부모님으로부터 떨어져 나와서 독립(의존에서 자아의 독립심)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부모님과 단절은 아니다, 부모님의 집은 설과 추석 그리고 기제사(아버지가 장손)에 참가하게 된다 고로 2개월에 한번 정도는 부모님을 방문하게 된다.

여기에서 부모님 집에서 함께 생활하다가 독립해서 나오는 것이 쉬워 보이지만 어렵다. 왜냐하면 이것은 반드시 치료자와 환자가 서로 의논으로 철저한 계획 하에서 단계적으로 밝아가야 한다.

하루의 일과건강 챙기기 건강한 음식의 섭취 철저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실패하기가 쉽다. 치료자는 청소년들의 경우에는 믹성년자 이기 때문에 부모님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대학생 이상의 경우는 독립을 권장한다.

혼자서 살아가야 자아의 성장을 과속화 할 수 있다. 치료실에게 감정을 빼내고 분노를 표현한 것이 집에 가서 가족구성원들의 한 마디에 산산조각이 나는 것을 수없이 보았다 고로 치료실에서 치료는 집에 가서 반감되어 그 치료 효과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것을 인식시키고 독립된 홀로서기 그리고 세상에 대한 자아의 자신감을 길러 주어야 한다.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으면서 2명의 조현병 환자가 치료자의 이러한 제의를 거부하고 치를 중단하고 혼자서 떼를 써서 부모님 집에서 독립해서 나왔다가 1달 이후에 다시 조현병의 재발로 입원한 사례가 2개가 있었다.

그들은 혼자가 됨으로써 자유가 된 것이다. 간섭과 잔소리로부터 해방된 것은 좋은데 하고싶은 대로 욕망에 노예가 되어 끌려 다니면서(원초자아에 항복: 즐거움의 원리가 우세하고 현실의 원리인 ego의 약화) 식사 시간이 규칙적이지 않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쉬고 싶을 때 쉬는 자유가 되면서 결국에는 밤과 밤이 거꾸로 바뀌고 게임에 빠지게 되어 다시 병원에 입원을 한 사례가 2건이 있었다.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서 나오는 문제는 혼자서 해결하기 어렵다. 시간 계획을 세우고 음식과 운동을 규칙적으로 그리고 스스로 취미생활을 찾아서 규칙적으로 몸과 마음을 컨트롤하는 훈련을 치료자와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Z씨의 경우는 이러한 독립적 자아의 정장의 단계에서 홀로서기에 성공한 사례이다.

부모님으로부터 떨어져 나와서 독립(의존에서 자아의 독립심)을 하게 된 것이다. 부모님 집에서 함께 생활하다가 독립해서 나오는 것이 쉬워 보이지만 어렵다. 왜냐하면 이것은 반드시 치료자와 환자가 서로 의논으로 철저한 계획 하에서 단계적으로 밝아가야 한다.

하루의 일과건강 챙기기 건강한 음식의 섭취 철저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실패하기가 쉽다. 치료자는 청소년들의 경우에는 믹성년자 이기 때문에 부모님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대학생 이상의 경우는 독립을 권장한다.

혼자서 살아가야 자아의 성장을 과속화 할 수 있다. 치료실에게 감정을 빼내고 분노를 표현한 것이 집에 가서 가족구성원들의 한 마디에 산산조각이 나는 것을 수없이 보았다 고로 치료실에서 치료는 집에 가서 반감되어 그 치료 효과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것을 인식시키고 독립된 홀로서기 그리고 세상에 대한 자아의 자신감을 길러 주어야 한다.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으면서 2명의 조현병 환자가 치료자의 이러한 제의를 거부하고 치를 중단하고 혼자서 떼를 써서 부모님 집에서 독립해서 나왔다가 1달 이후에 다시 조현병의 재발로 입원한 사례가 2개가 있었다.

그들은 혼자가 됨으로써 자유가 되는 것이다. 간섭과 잔소리로부터 해방된 것은 좋은데 하고싶은 대로 욕망에 노예가 되어 끌려 다니면서(원초자아에 항복: 즐거움의 원리가 우세하고 현실의 원리인 ego의 약화) 식사 시간이 규칙적이지 않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쉬고 싶을 때 쉬는 자유가 되면서 결국에는 밤과 밤이 거꾸로 바뀌고 게임에 빠지게 되어 다시 병원에 입원을 한 사례가 있었다.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서 나오는 문제는 혼자서 해결하기 어렵다. 시간 계획을 세우고 음식과 운동을 규칙적으로 그리고 스스로 취미생활을 찾아서 규칙적으로 몸과 마음을 컨트롤하는 훈련을 치료자와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Z씨의 경우는 이러한 독립적 자아의 정장의 단계에서 홀로서기에 성공한 사례이다.

Z씨는 2007, 417일에 치료자와 심리치료를 시작한 이후에 16개월의 기간 동안에 Z씨의 분석의 과정을 보면서 다시 Z씨와 엄마의 관계를 분석해 보기로 하자.

 

심한 불안(일반화된 불안장애)

대상:  심하게 불안한 27세의 남자 Z씨

증세: 불안해서 물건을 사기 어렵고 어떤 결정을 내리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걸기가 어렵고 특히 부모님에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 어렵다. 머리 속에 어린 시절에 상처받은 잡다한 생각들 때문에 새벽 2시-3시까지 잠을 잘 잘 수가 없음

접촉: 치료자의 저서 "나"(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을 보고 치료자의 홈페이지(http://www.psychlinic.pe.kr)에 접촉한 후에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겠다고 연락이 옴

진단명심한 불안장애, 대인공포증, 자아가 너무 약한 자아 장애

치료 기간: 1주일에 1회 2시간씩 1년 6개월간 치료를 받고 있음

치료 결과: 자아가 점점 자라나고 있고 부모님에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해서 분가해서 독립된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혼자서 물건을 살 수 있게 되었고 결정을 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게 되었고 머리 속에 떠오르는 어린 시절의 상처들은 1주일에 1회-2회 정도로 많이 감소되었으나 아직도 대형 백화점에서 가서 물건을 사는 데는 망설임이 많다.

 

치료의 과정

 Z씨는 부모님으로부터 어린 시절부터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아서 자아가 거의 없었다. 밤에 잠을 자려고 하면 떠오르는 잡념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했다. MP 3를 사려고 마음을 먹었으나 이것을 정작 사는 데는 7개월이 걸렸다고 했다. 어떤 것을 최종 결정을 내리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학교 시절에는 친구를 거의 사귀지 못해서 외로웠다고 했다.

 Z씨는 장남으로 그의 부모님은 아버지가 공무원으로 명예퇴직을 해서 지금은 개인 사업을 하고 계시고 어머니는 교사로써 명예 퇴직을 하시고 지금은 집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아래로는 결혼해서 출가한 여동생이 한 분이 있고 둘째 여동생은 몇 개월 전에 결혼해서 출가를 했고 지금 막내 여동생이 직장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그는 특별히 부모님 중에서도 어머니로부터 많은 상처를 받아서 지금도 어린 시절에 받은 언어 폭력들이 마음 속에 떠올라서 잠에 잠자리에 들면 계속해서 그 생각들이 침투를 해서 잠을 이룰 수가 없다고 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바보 같은 놈이라고 놀릴 것 같아서 얼굴을 똑 바로 들도 다닐 수가 없고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은 피하고 싶다고 했다.

 Z씨의 마음의 상처는 어린 시절에 유치원 시절로 거슬려 올라갔다. Z씨는 태어날 때부터 몸이 왜소하고 허약해서 항상 어머니의 걱정과 불안의 대상이 되었다고 했다. 유치원에 다닐 때는 유치원에서 점심 시간에 빵과 우유를 주었는데 그는 그것을 다 먹지 못하고 집에 가져와서 먹고 있으면 어머니가 "너는 그것도 빨리 먹지 못하느냐, 그렇게 해서 몸이 건강해지겠느냐?"고 빈잔을 주었다고 했다. 유치원에 같이 다니는 2살 어린 여동생은 항상 자신의 몫을 먼저 먹고 오빠의 빵과 우유를 빼앗아 먹었다고 했다. 유치원 때 그가 좋아하던 이웃집 여자 어린이가 있었는데 그 여자 어린이가 좋아서 뒤에 졸졸 따라다니다가 그 여학생이 왜 자꾸 따라다니느냐? 에 빈잔을 주자 말로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냥 뒤에 따라다녔다고 했다. 속으로는 "너가 좋아서 같이 친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떠 올랐으나 차마 입밖으로 말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Z씨가 7살이 되었을 때 하루는 어머니가 그에게 종이 쪽지에 메모를 해서 어머니 친구에게 심부름을 시켰다고 했다. 그는 심부름을 가다가 길 모퉁이에서 약장사가 원숭이를 데리고 재주를 부리면서 약 선전을 하고 있는 것이 신기해서 보고 있다가 원숭이가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 중에 여자 어린이의 손을 할퀴어 손에 피가 나는 것을 보고 어머니에게 이야기하기 위해서 심부름 쪽지를 잊어버리고 집으로 오다가 어머니를 만났고 어머니에게 원숭이가 여자 어린이 손을 할퀴어 손에 피가 났다는 말을 하기도 전에 어머니는 심부름을 잊어버리고 온 아들을 보고 "야이 썩발이 자식아! (어머니의 상투적인 표현) 너는 심부름도 제대로 하지 못하느냐?"라고 심하게 야단을 치는 것을 보고 이웃에 사는 아주머니가 아들에게 그렇게 심하게 야단을 치느냐? 라고 하며 나무라자 "저 자식 때문에 내가 내 명대로 살지 못할 것이야"는 무서운 소리를 듣게 되었다고 했다. Z씨는 그 말이 지금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종종 희상이 된다고 했다.(엄마의 언어 폭력)

 Z씨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어느 날 어머니는 3명의 여동생들을 모아 놓고 "너희 오빠는 나중에 혼자 살아가기 어려울 것인데 너희들이 도와주어야 한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어머니의 이런 말은 이후에 여러 번 계속되었다고 했다. 그는 어머니의 그 말을 듣고 나서 자신이 어른이 되면 혼자서 살아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늘 마음 속에서 불안해했다고 했다. 이 불안이 점점 커져서 나중에는 "나는 크면 거지가 될 것이야, 나는 거지가 되어서 남에게 얻어먹고 살아야 돼!"라면서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불안에 떨면서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그 불안한 "거지 공포증"(Z씨의 표현) 때문에 얼마나 고통스러워했는지 지금도 괴로워했다.

 Z씨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오줌을 싸는 오줌싸개였다고 했다. 그러나 부모님에게 정작 그런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항상 부모님의 처벌이 두려웠다고 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즘에 집에서 친척들이 모이는 행사가 있었는데 먼 친척 아주머니가 그와 이웃 친구와 둘이서 놀고 있는데 들어와서 친구의 바지를 벗기고 꼬치를 만지며 놀리자 친구가 울면서 자기 집으로 가 버려 그가 화가 나서 그 아주머니에게 왜 내 친구를 화나게 해서 집으로 쫓아 버렸느냐고 따지자 그 아주머니가 잠시 후에 혼자서 놀고 있는 방에 찾아와서 "너의 어머니가 너 때문에 얼마나 힘들어 하시는 데 너는 태어나서 그렇게 너의 어머니를 고생하게 만드느냐?"라고 하면서 질책하는 바람에 자신이 태어나서는 안될 사람이었다고 지금까지도 어머니를 원망하고 있다고 했다. 어머니가 그 먼 친척 아주머니한데 그런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그에게 그런 언어 폭력을 한 것이 아니겠느냐? 라고 한숨을 쉬었다.

 Z씨는 그 초등학교 4학년 즘에 어느 날 그가 길거리에서 팔고 있던 병아리를 세 마리를 사서 집에 가지고 와서 키우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Z에게 병아리는 병이 들어 살 수가 없으니 내다 버려라 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부지런히 키우기 시작했고 한 마리는 얼마 후에 죽었고 두 마리는 잘 자라나서 알을 낳은 암탉으로 성장을 하게 되었다. 그는 시간이 있으면 닭을 품에 안고 친구처럼 지내면서 학교에서 방과 후에 집에 오면 닭을 제일 먼저 챙겼다. 어느 날 가족들의 계 모임에서 먼 친척 고모가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해서 그 닭을 잡아먹자고 해서 Z에게 허락을 받지도 않고 몇 푼의 돈을 주면서 그 닭을 잡아먹기로 했다고 했다. Z군은 어머니에게 항의를 할 수 없었다. 그날 그 닭을 잡아서 닭 죽을 가족들이 나누어 먹는 것을 보고 자신을 그 닭 죽을 먹지 않았다고 했다. 그 이후에 Z씨는 지금까지도 닭 죽을 절대로 먹지 않는다고 했다. 닭 죽을 보면 그가 애지중지 키우던 닭 생각이 나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다고 했다.

 Z씨가 중학교 2학년 때 즘에 어느 날 길거리에서 버림받아서 돌아다니는 개가 한 마리 Z씨를 졸졸 따라오는 것을 데리고 와서 집 안에 줄을 메어 두었으나 찾는 사람이 없어서 그냥 그 개를 키우기로 했다. 방과 후에 집에 오면 그는 늘 개와 함께 쓰다듬어 주고 같이 노는 친구가 되었다. 어느 날 먼 친척 고모가 와서 그 개를 잡아먹겠다고 끌고 갔다고 했다. 지금도 그 고모는 제사를 지내려 Z씨의 집에 자주 드나들지만 그 고모를 미워하고 원망한다고 했다. 그 고모만 보면 욕심쟁이로 Z씨의 집에 오면 어떤 것을 가지고 갈 것만 찾는다고 했다.

 Z씨가 중학교 1학년 때 즘에 여동생이 걸 스카우트로 단체 야영을 갔다 와서 어머니가 그 여동생의 야영 훈련에 따라가서 찍은 사진을 집에서 보면서 그에게 "너는 이런 수련회에 갈 수 있겠느냐? 고 빈잔을 주면서 여동생이 얼마나 사진이 잘 나왔는지 예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 것을 보고 Z씨 자신에게는 한마디도 칭찬을 하지 않는 어머니가 여동생들은 자신과 다르게 대우를 하는 것에 분노를 느꼈다고 했다. 이후에도 그는 어머니가 유별나게 아들인 자신만 차별 대우를 하는 것을 자신보다 여동생들에게는 어떤 것이든지 칭찬을 하면서 왜 Z씨 자신에게는 그렇게 항상 험한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다.

 Z씨를 차별 대우를 하는 것은 어머니뿐만 아니었다. 아버지도 언제나 Z씨를 보면 항상 비난이나 못한다는 말만 늘어 놓았다고 했다. 대학 때 아버지와 함께 일찍 성당에 같이 가면서 아버지는 Z씨에게 아침 일찍 우유 배달을 하는 사람을 보고 "저런 사람들은 저렇게 일찍 일어나서 부지런히 일하는데 너는 그렇게 할 수 있겠니?" 또 신문 배달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너는 저렇게 할 수 있겠니?" 언제나 아버지는 "너는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가 입에 따라 다녔다 라고 했다.

 Z씨의 아버지는 강박증이 있었다. 집에 오면 항상 물건이 제자리에 가지런히 있으냐 하고 비가 오면 우산들 한데서 떨어진 빗물들을 Z씨에게 걸레로 깨끗이 닦아라 라고 시켰다. 타월이 가지런지 놓여있지 않으면 Z씨에게 바로 놓아라 라고 호출이 떨어졌다. 여동생을 시키면 콧방귀를 끼고 하지 않으니까 Z씨의 몫이 되었다. 한번은 화장실에 타일 바닥이 더럽다고 아버지가 걸레로 깨끗하게 닦으면서 Z씨에게 같이 닦자고 했다. 여동생들은 모두가 아버지가 "결백증"이라고 빈정대고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지만 Z씨는 거절을 할 수 없다고 했다. 부모님이 시키면 두 말하지 않고 하지만 속으로는 분노와 적대감정으로 부글부글 끓어오른다고 했다.

 

이론적 근거

 Z씨는 부모님으로부터 심한 학대와 편애를 받았다. 부모님은 두 사람 다 심한 불안증이 틀림없었다. 아버지는 결백증 즉 강박증을 가지고 있었고 이것은 불안장애에 속한다. 어머니는 IMF 때 명퇴하실 때까지 교사로 근무를 했다.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특히 Z씨에게 아껴 쓰고 절약해야 한다고 강조를 했다. 특이하게 어머니는 교사로 명퇴하실 때까지 "누룽지만 먹고 살았다"고 했다.

무슨 뜻인지 치료자가 물었을 때 그는 어머니는 식구들이 밤을 남기면 아깝다고 늘 혼자서 밥을 먹을 때는 다른 식구들이 남긴 밥만 먹었기 때문에 평생동안 누룽지만 먹고 산 셈이었다고 했다. 자녀들이 어머니에게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렸지만 어머니는 막무가내로 반찬이 남거나 밥이 남으면 절대로 버리지 않고 모아서 끓인 다음 먹었다, 그래서 별명이 누룽지였다고 했다.

 초등학교 때 어느 날 백원짜리 동전으로 껌을 한 개 사서 씹다가 어머니에게 들키게 되자 어머니는 Z씨에게 "땅을 파 보아라 100원짜리가 나오느냐? 나는 한 푼이라도 절약하는데 너는 절약할 줄 모르느냐"고 야단을 첬다고 했다. 어머니는 늘 Z군에 걸핏하면 "너는 돈 먹는 기계이다" 라고 언어 폭력을 했다. Z씨는 어린 시절부터 몸이 약해서 늘 약을 먹고 지냈고 또 자주 병원에 드나들면서 어머니가 돈을 너무 많이 들어간다고 항상 너는 돈 먹는 기계이다 라는 말을 자주 했기 때문에 지금도 물건을 사거나 돈을 쓸 때 자신이 돈을 쓸 만한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서 꼼꼼하게 생각하다가 보니까 물건을 제대로 살 수 없다고 했다.

 어머니의 편애는 Z씨의 외가집에 대한 어머니의 하시는 말씀들을 모아서 분석해 본 결과 Z씨의 어머니가 아들을 미워하고 딸을 편애하는 이유를 알 수가 있었다. 보통 어머니들은 아들 하나에 딸이 셋이면 아들을 편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것은 어머니와 아들 관계는 본능적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딸을 더 좋아하고 어머니는 아들을 좋아하게 되어있다. 그러나 Z씨의 가족은 달랐다. 하나뿐인 아들을 내내 미워하고 딸을 예뻐하는 어머니를 Z씨는 이해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왜 나만 특히 아들인 나만 엄마가 미워할까 하는 것을 알고 싶다고 했다. 어머니의 어린 시절을 Z씨를 통해서 분석해 본 결과 어머니는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아들 한사람과 딸 4명을 두고 있었고 외아들인 큰 외삼촌만 편애해서 학교에 다닐 때도 언제나 오빠인 큰 외삼촌을 도시락을 쌀 때 달걀과 맛있는 쌀밥을 그리고 나머지 딸들에게는 멸치 볶음이나 콩나물만 넣어 주었다고 불평을 했고 재산도 큰 아들에게만 물러 주는 사람이 오빠를 미워해왔으며 지금도 오빠 가족들과는 내왕이 거의 없다고 했다. 어머니가 자라면서 아들에 대한 편애를 당한 것에 대한 부모님에 대한 적대감정과 분노와 노여움이 지금은 자신의 아들 한데로 흘러가고 있음을 어머니는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의 부모님의 문제가 자신의 자식에게 대물림을 하고 있는 것이다.

 Z씨의 부모님은 둘 다 불안장애를 가진 사람으로 항상 불안한 마음을 마음이 불안한 아들인 Z에게 방출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부모님은 항상 "엄마, 아빠는 너 때문에 죽을 때 제대로 편하게 눈을 감을 수 없다"는 말을 늘 해 왔다고 했다. Z씨가 불안해서 세상을 살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 때문에 아들만 보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다고 늘 말하고 있다는 것에서 알 수 있었다. 어머니는 자신이 "너만 보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다"고 지금도 이 말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내 때문에 부모님이 걱정을 하고 있구나! 나는 태어나서는 안될 사람이었는데" 라고 자신을 질책한다고 했다. 부모님은 자신들의 분노와 불안을 즉 스트레스를 Z씨에게 풀어온 것이다. Z씨가 부모님의 분노와 적개심을 방출시키는 피뢰침 역할을 해 온 것임을 부모님과 Z씨도 모르고 있었다.

 Z씨는 대학에 다닐 때 아버지의 강요 때문에 자신이 하고 싶어했던 것을 전공으로 하지 못하고 경영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자신의 취미에 맞지 않고 재미가 없어서 대학 1학년 때부터 자신은 고등학교 때부터 좋아해오던 만화 그리기 동아리에 가입해서 대학 4년 내내 만화를 그려왔고 동료들로부터 많은 칭찬을 받았다고 했다. 학교 졸업 후에 본격적으로 만화 그리기에 몰두하게 되었을 때 부모님은 만화를 그려서 밥 먹고 살 수 없으니 다른 것으로 바꾸어라고 강압을 해서 제대로 마음 놓고 만화를 그릴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는 부모님이 만화를 그리는 것만 보면 분노해서 처벌적인 언어 폭력 때문에 부모님이 다 주무실 때 혼자서 밤새도록 만화를 그렸다고 했다. 그러나 아침에 조금 늦게 일어나면 부모님이 노발대발하시면서 일찍 일어나서 할 일을 해야 한다고 재촉 때문에 괴로웠다고 했다.

그는 졸업 후에 만화를 전문으로 그리는 회사에 약 1년 동안 다녔으나 IMF로 인해 만화 회사가 문을 닫았기 때문에 결국 집에서 프리랜스로 만화를 그리기로 하고 학원을 다니면서 본격적으로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으나 부모님의 간섭과 강압 때문에 아버지의 권유로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 인터넷 강의를 듣고 실습을 1달 동안 하려고 하든 시점에서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기 위해서 찾아온 것이었다.

 

치료 결과

 Z씨는 자아가 너무 약해서 거의 자아가 자라질 못했다. 치료자는 Z씨가 어린 시절에 학대받은 상처의 말 때문에 늘 생각이 침투해서 잠을 제대로 이룰 수가 없음을 알고 마음대로 어린 시절의 상처받은 말들을 머리 속에 떠오르는 대로 이야기하도록 했다. 내면 속에 묻혀 있는 상처들을 토해내게 했다. 그는 학교 시절에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서 집에 오면 부모님에게 학교에 가기 싫어요, 동무들이 나와 놀아주지 않아요? 라고 하소연을 했으나 부모님은 "네가 참아라,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했지 해결책을 주거나 도움을 주지 못했다.

학교에서 늘 혼자서 상상 속에 살았다고 했다. 한번은 학교 조회 시간에 운동장에서 아침 조회를 하면서 자신은 하늘의 구름을 쳐다보면서 신기해하고 있을 때 선생님이 등을 치는 바람에 정신을 차려보니 운동장에 혼자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 있었던 일이었다. 부모님의 말씀이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으러 오기 전까지는 부모님이 자신을 사랑해서 하시는 말씀으로 알아들었으나 그러나 마음 속에 한가지는 늘 "이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서점에서 치료자가 쓴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이라는 책을 읽고 나서 부모님이 잘못된 것을 알 게 되었고 치료자에게 치료를 요청한 것이었다.

 Z씨는 부모님의 화풀이 대상이었다. 언제나 짜증 분노, 노여움, 스트레스를 Z씨에 방출시켜온 것을 알 게 이제는 부모님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게 했다. 부모님에게 어린 시절의 상처들을 치료 시간에 재연시키면서 부모님에게 잘못되었음을 말로써 표현하게 했다. 어린 시절의 상처 재연이 8개월쯤 계속되었을 때 Z씨는 밤에 잠을 편안하게 잘 수 있게 되었다. 부모님 한데서 독립하고 싶다고 했다. 방을 얻어서 나오기로 했다. 문제는 Z씨가 부모님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한번도 이야기한 적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부모님에게 직접 이야기하는 훈련을 시작했다.

 부모님에게 방을 하나 얻어 달라고 논리적으로 이야기하는 연습을 몇 개월 한 후에 드디어 Z씨가 어느 날 부모님에게 오피스텔 하나를 얻어서 혼자 살겠으니 돈을 지원해달라고 했다. Z씨가 독립을 원하는 밑바탕에는 자신이 원하는 만화를 그리고 싶어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고 이제 더 이상 부모님 밑에서 자신을 위축시키고 학대받으며 살지 말고 자아를 성장시키는 것이 급선무임을 알 게 했기 때문이었다. 부모님은 승낙을 하면서 한 달에 생활비를 지원해주기로 했다.

 Z씨는 한 단계씩 일을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먼저 원하는 지역에서 오피스텔을 확인하고 가격을 알고 보고 자신이 살고 싶어하는 장소를 물색하도록 했다. 중개소를 방문하는 연습과 중개소 직원에게 이야기를 하는 연습을 한 다음에 실행에 옮겨졌고 자신이 원하는 오피스텔을 점찍어 놓게 되었다. 가격은 5천만원 정도가 되었고 한 달에 50만원 정도 생활비용을 필요로 하게 되었고 이것을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하게 했을 때 부모님은 거절했다. 그만한 돈이 없다고 했다.

사실은 부모님은 아버지가 공무원으로 근무를 해왔고 어머니가 교사로 맞벌이 부부로 경제적으로는 부족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틈틈이 부동산에 투자를 해서 몇 개의 부동산을 가지고 있었고 아버지 앞으로 어머니 앞으로 Z씨 앞으로 몇 개씩 등기로 이전을 해 두고 있었다는 것을 Z씨도 알고 있었다. 부모님은 생활비용도 줄 수 없으니 네가 돈을 벌어 이사를 가라고 했다. 처음에 했던 말과 다르다는 것을 강조해서 이야기했으나 먹혀 들어가지 않았다.

다시 2단계로 전략을 바꾸었다. 이번에는 고시방을 구하기로 했다. 마음에 드는 고시방의 위치를 알아본 후에 4개 정도 점을 찍어서 다시 직접 현장을 확인하게 했다. Z씨는 그 중에 제일 마음에 드는 고시방으로 최근에 지은 건물로 내부 시설도 마음에 든다고 했다. 한달에 37만원에 밥은 늘 제공해주고 부식도 한 두가지는 제공해준다고 했다. 에어컨과 히터가 가동되고 책상과 TV도 제공된다고 했다. 37만원과 한달에 약 40만원의 생활비용을 조달하면 되겠다고 했다.

다시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했다. 다음 주일에 집을 나가겠다고 폭탄 선언을 했다. 돈을 아버지가 세를 준 점포에서 Z씨의 통장으로 한달에 약 70만원이 입금이 되고 있기 때문에 아버지도 그것을 사용하라고 인정을 했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Z씨는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둘째 여동생 자가용으로 집을 옮겨서 혼자서 독립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Z씨는 이제 독립된 생활을 혼자서 하게 된지 6개월 정도 세월이 흘러갔다. 처음에 부모님은 혼자 나가서 한달도 못되셔 짐을 싸돌고 집에 들어올 것이라고 했으나 Z씨는 혼자서 사는 것을 치료자로부터 한가지씩 배워가면서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매일 같이 운동을 1시간-2시간 하면서 체력을 다니고 남은 시간에는 만화를 그리면서 실력을 높이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을 배우면서 1주일에 1 2시간씩 치료자에게 분석 치료를 받으면서 자아를 키우는 것을 한지 1년이 지나가면서 이제는 매일 밤마다 침투되는 어린 시절의 마음의 상처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어 하던 것이 이제는 1주일에 1회 혹은 2회 꼴로 줄어들었고 지금은 깊은 수면을 취할 수 있게 되었고 마음도 편해졌다.

그는 최근에 자신이 사고 싶은 옷 몇 가지를 혼자서 쇼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도 물건을 살 때 내가 이 물건을 살 자격이 있는가? 부모님에게 야단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이 들고 있지만 강도는 희미해져가고 있었다. 이제 혼자서 살 수 있게 되어가고 있었다.

 얼마 전에 지금까지 6개월간 지내온 고시 방에서 여자 분들만 거주하는 고시방으로 만든다고 나가 달라는 요청에 다시 인근에 고시방을 구해서 이사짐을 혼자서 용달차를 불러서 이사를 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잘해 나가고 있음에 칭찬을 많이 해주었다. 이제 자신이 원하는 만화 그리기로 경제적인 문제만 해결이 되면 나머지는 혼자서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고 했다. 그러나 아직도 심리치료를 끝내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다.

 아래의 치료 사례는 두 번째 기간인 2년 6개월의 시점에서 요약을 정리한 것이다. 여기에서 한가지 눈에 띄는 것은 Z씨가 꿈을 가지고 온 것이었다. 꿈의 분석을 아래헤서 참고하기 바란다.

꿈의 분석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흔히 하는 꿈해몽을 하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프로이트의 최고의 명작이자 대학생들이 읽어야 할 100선에 들러가 있는 책으로 꿈해석을 읽어보아야 프로이트의 꿈을 분석학 수 있다.

꿈은 사고의 조각들이 흩어져서 무의식 속에서 감춰저 있는 것최근의 자극으로 그 조작들이 상징어인 이미지상으로 우리의 자아 속에서 활동하는 것을 내 자아가 보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 조각들의 상징들을 분해해서 꿈 사고를 찾아가는 것꿈의 해석이다.

치료자는 반드시 그 꿈을 꾸기 전에 그 꿈과 연결되는 외부의 자극들을 물어 보게 된다(꿈의 전재 조건). Z씨는 그 꿈을 꾸지 이전에 카톨릭청년부 모임에서 회식으로 통닭은 주문하려고할 때 Z씨가 나는 통닭에 알르레기가 있기 때문에 먹지 않습니다 라고 말을 했기 때문에 통닭주문이 취소된 것을 이야기를 했다. 그 다음 날에 도로 인근의 통닭집을 지나가다가 통닭구이들을 보면서 나도 한번 먹어 볼까?라고 생각을 했다고 털어 놓았다. 아래의 Z씨의 꿈을 유심히 살펴보기 바란다.

아래의 분석에서 또 한가지의 핵심은 Z씨의 자아의 지속적인 성장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치료자는 위에서 5개의 조건 하에서 치료를 진행하다고 이미 밝혔다. Z씨의 자아의 목소리를 내도록 자아의 성장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라는 것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점에서 Z씨는 과거에는 부모님이 Z씨에게 하는 비판, 비난, 결함들이 지적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한마디를 하면 10마디가 따라와서 자신이 고통스러워진다는 것을 일찍 감치 깨달았기 때문에 입을 다물고 있었다.

치료의 과정에서 치료자는 자신의 느낌,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게 했다. 자아를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자아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즉 자기 주장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Z씨가 확도한 치료 동맹으로 이것을 이해했기 때문에 치료의 과정에서 이것을 직면을 하게 된 것이었다.

3시간의 아버지와 직면에서 아버지의 비 논리적인 주장에 조목조목 반론으로 화를 내지 않고(화를 내면 대화의 중단과 파괴) 정면으로 대응한 결과 아버지가 대화를 하다가 자리를 피하게 된 것이다. 어머니가 이것을 보고 Z씨에게 네가 이겼다. 아버지는 너의 이야기레 반박을 하지 못하고 자리를 피했다. 그 동안 심리치료가 헛대지 않았구나!라고 한 이야기를 아래해서 보라.

대상: 27세의 미혼 남성 Z

증세: 초등학교 때 4년간 거지 공포증으로 중학교 때는 성모 마리아 상의 눈에 대한 6개월 간의 공포증, 야뇨증으로 대학 때까지 고통을 받았음

진단명: 거지 공포증시선 공포증불안장애 속에 들어가고 야뇨증심인성질환 속에 포함

치료 기간: 1주일에 1 2시간 분석 상담 치료를 2 6개월째 받고 있음

치료의 결과: 야뇨증, 거지 공포증, 시선 공포증 등은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어린 시절의 상처를 다루면서 자연스럽게 등장을 했으나 점자로 줄어들어서 강도가 약해져가고 있다. 이제 문제는 방향이 바뀌어 불면증과 심한 불안증과 강박증, 공포증 등으로 바뀌었고 2 6개월 간의 치료 과정을 통해서 문제들은 거의 해결 단계로 접어들고 있음

 

치료의 과정

 Z씨는 처음에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으러 왔을 때는 불면증으로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밤에 잠자리에 누웠을 때 머리 속에서 계속해서 어린 시절의 상처 기억들이 침투를 해서 끝없이 끌려 다니면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치료가 1년이 지나가면서 밤에 잠을 못 자는 불면증은 해결이 되었다. 침투적인 강박증도 점점 감소되어갔다.

 Z씨의 분석 치료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밝혀지게 된 것은 성모 마리아의 눈을 보고 6개월 동안 시선 공포증으로 고통을 받았다고 했다. Z씨는 부모님이 카톨릭 신자여서 초등학교 시절부터 성당에 나가게 되었고 지금도 성당에 계속해서 나가고 있었다. 어느 날 집 안방에 모셔 놓은 성모 마리아 상의 눈을 보고 피 빛으로 보이는 것에 깜짝 놀라서 6개월 동안 부모님의 안 방에 모셔 놓은 성모 마리아 상을 피해서 안 방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했다. 또 그가 밝힌 것은 그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야뇨증으로 시달린 것을 이야기를 했다.

어머니에게 야뇨증을 이야기를 했으나 어머니는 처음에 신경정신과에서 약물을 복용하도록 했으나 이후에 효과가 없자 그대로 방치를 해서 그는 1주일에 2-3회의 야뇨증으로 대학 때까지 고통을 받았다고 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야뇨증을 아예 포기하고 그의 방 안에 포개진 담요가 젖어서 말리지도 않고 그대로 그 위에 누워서 지냈다고 했다. 다행히도 야뇨증은 대학에 들어가면서 사라져서 지금까지는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미 초등학교 2학년 때 어머니가 여동생 3명을 모아 놓고 "너희 오빠는 커서 세상을 살아가기 어려울 것이니 너희들이 잘 돌보아 주어야 한다"고 하는 말 때문에 "거지 공포증"(Z씨의 표현)에 걸려서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공포 속에서 살았고 지나가다가 거지가 동냥을 하고 있으면 거지가 어떻게 동냥을 하고 있는지를 관찰해서 자신도 커서 거지가 될 것인데 어떻게 거지가 살아가고 있는지를 관찰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이런 고통은 부모님에게 지금까지도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살아왔다고 했다.

 Z씨는 치료의 과정에 꿈을 자주 가지고 왔다. 최근에 꾼 꿈은 다음과 같다.

 "그가 길거리를 가고 있는데 길가에서 들여다 보이는 창문 넘으로 발가벗은 사람들의 시체를 프라이 팬 위에 튀김으로 굽고 있었고 그 옆 집의 창문 넘으로는 타조처럼 큰 새가 깃털을 뽑지 않는 채로 포개 지고 있었다."

꿈을 꾸기 전에 꿈 자극으로 생각나는 연상을 이야기해 보라고 하자 며칠 전에 성당에서 미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통 닭 집 앞을 지나가다가 퇴김으로 된 통 닭이 걸려 있는 것을 보고 한번 먹어 볼까 하고 생각이 들었고 전 날에 성당 동료들의 모임이 끝나고 동료들이 통 닭을 시켜 먹자고 하다가 Z씨가 통 닭은 먹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취소한 이야기를 했다.

이 꿈 자극이 과거 어린 시절의 Z씨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Z씨는 초등학교 4학년 시점에 학교 앞 길거리에서 파는 병아리를 세 마리 사와서 혼자서 기르게 되었다. 할머니의 도움으로 병아리 집을 마분지로 만들고 정성을 들인 공으로 병아리는 죽지 않고 잘라서 6개월 정도 지나서 어미 닭이 되었다. 어미 닭이 알을 낳게 되면서 가족들에게 달걀을 제공해주게 되었다. 사실 이 닭은 Z씨에게는 친구와 다름이 없었다. 그는 어린 시절에 학교에서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외톨이로 생활을 했다. 집에 오면 친구가 없어서 이 닭을 안고 친구처럼 이야기를 하면서 쓰다듬어 주면서 같이 놀았다. 이러한 과정이 6개월 정도 지나가면서 어미 닭으로 알을 낳게 된 것이었다. 사실은 걸거리에서 파는 병아들은 부화장에서 건강하지 못산 병든 병아리들로써 어린이들의 감성을 자극해서 팔고 있었던 그 병아리들을 지극정성으로 돌보아주었기 때문에 이제는 어미 닭이 된 것이었다.

어느 날 고모 할머니가 (먼 친척으로 설과 명절이나 제사 일에는 빠짐없이 참석) 와서 Z씨의 닭은 잡아먹자고 했다. 어머니가 Z씨에게 돈 5천원을 던져 주면서 닭은 팔았다고 해라고 하고 닭의 목을 비틀고 죽은 닭을 빨래줄에 걸어 놓았던 것을 보고 나서 Z씨는 지금까지도 닭고기나 닭죽은 절대로 먹지 않는 금기의 식품이 된 것을 이야기했다. Z씨는 어머니에게 그 닭은 절대로 안 된다고 매달렸으나 역부족(자녀의 의견을 무시)이었다. 고모 할머니는 시장에서 파는 닭보다 집에서 기르는 토종 닭이 맛이 좋다고 했다.

어머니와 고모 할머니에 대한 분노는 Z씨의 가슴 속에 남아서 닭 죽에 대한 금기 식품으로 남아있었다. 미움과 분노를 표현하게 하는 치료의 과정을 거쳐서 지금까지 중간에 간간히 다루어 온 것이지만 최근에 자극으로 꿈으로 등장하게 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Z씨는 다시 이 꿈을 자료로 해서 그 꿈을 다루기로 했다.

그는 고모 할머니와 어머니에게 "그 닭은 일반 닭이 아니고 나에게는 친구이자 동료입니다. 바로 사람처럼 나에게는 친한 내 친구를 어머니와 고모 할머니가 잡아먹은 것은 바로 인간을 티킴으로 요리를 해서 먹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라는 것을 표현하게 했다.

꿈 속에서 인간을 발가벗겨서 튀김 요리를 하는 것이 바로 그의 내면의 심리적인 상징 즉 그 닭은 나에게 친구이자 동료로서 내가 가장 친한 친구였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말을 해주고 있다. 그 다음에 타조처럼 큰 새들을 깃털을 뽑지 않고 요리를 하기 위해서 포기 놓은 것의 은유는 병아리를 사와서 어미 닭으로 키운 Z씨의 지극정성이 타조차럼 큰 새로 성장시킬 수 있었다 라는 것을 이 꿈이 Z씨의 무의식을 이야기해주고 있다는 것을 Z씨가 이해하게 되었다.

그는 눈물을 머금고 그 닭은 나에게는 친구 이상으로 나에게는 인간과 같은 닭이었음을 어머니와 고모 할머니에게 이야기를 하고 그 닭에 대한 죄의식 즉 그 친구를 끝까지 보호해주지 못한 섭섭한 죄의식을 말로써 표현하게 했다. 성당에서 동료들과 통닭 이야기가 어린 시절의 닭으로 인한 심리적 상처를 건드린 것이었다.

 Z씨는 최근에 본가(부모님 집-Z씨는 부모님 집에서 나와서 혼자서 생활을 하고 있음)에 갔다가 결혼한 첫째 여동생의 7살 난 아들과 5살 난 아들이 함께 와서 할머니와 같이 있는 것을 보았다. 할머니(Z씨의 어머니) 7살 난 손자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을 보면서 물었다. 그 장난감이 얼마 짜리인가? 하고 물었을 때 그 손자가 7500원짜리라고 했다. 비슷한 장난감을 5개나 가지고 있는 것을 본 할머니가 손자에게 그 장난감을 모두 합치면 돈이 약 2 5천원 정도 되겠는데 너가 아버지의 구두를 닦든지 심부름을 하든지 해서 너의 돈으로 장난감을 사야지 엄마, 아빠의 돈으로 장난감을 사면 되겠느냐! 라고 비난을 하는 말을 듣고 가슴이 찌르르 하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그는 어머니(손자에게 할머니)에게 "어머니 어린 애가 무슨 돈을 벌어 온다는 말입니까? 요즘은 부모들이 어린이들에게 전자 장난감으로 20만원-30만 원짜리 장난감도 마다하고 사 주는데 2 5천원 정도 되는 장난감을 가지고 어린 애에게 너가 스스로 돈을 벌어서 장난감을 사라고 말을 하십니까?"하고 이야기를 했을 때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그 이벤트와 연결해서 과거에 자신의 상처 기억이 떠 올랐다. 초등학교 4학년 시점에 어느 날 어머니가 이유도 모르게 노발대발해서 "다른 자식들은 신문 배달이나 구두닦이 등을 해서 돈을 벌어 오는데 너는 부모님에 뼈빠지게 번 돈을 쓰기만 하니! 너도 나가서 돈을 벌어 오라"라는 말로 등을 떠밀어서 집에서 쫓아낸 기억이 떠 올라 분노했다.

그는 이 상처 기억을 치료에서 다루게 되었다. 상식적으로 어떻게 초등학교 4학년이 돈을 벌어 온다는 말인가? 소년 소녀 가장이 아닌 정상적인 부모 밑에서 자라고 있는 자녀들이 초등학교 4학년 어린이들이 돈을 벌려고 신문배달, 구두 닦이는 하는 어린이들은 6.25 사변 직후도 아닌 요즘 세상에 몇 명이나 있겠는가! 를 반문하면서 어머니에게 분노를 토해내게 했다. 그는 그러한 분노를 지금까지 가슴에 담아 두고 한번도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

 최근에 Z씨는 작년에 결혼을 해서 10개월짜리 딸을 가진 둘째 여동생의 방문으로 둘째 여동생이 직접 오빠를 찾아와서 어머니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지금까지 한번도 3명의 여동생들과 대화를 해 본 적이 없었다. 여동생이 오빠에게 지금도 심리치료를 계속해서 받고 있는지를 물었다. 오빠는 아직도 치료를 받고 있다고 대답을 했다.

여동생은 자신도 어머니 한데서 상처를 받아서 많이 힘들었다고 하면서 우리 가족 중에서 오빠가 가장 많이 상처를 받았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10개월 된 딸이 엄마를 피하는 것 같아서 여동생 자신도 치료를 받아야할 것 같다고 이야기를 했다. 오빠에게 엄마, 아빠가 집에 다시 복귀를 하라고 자주 권유를 하고 있는데 절대로 집에 다시 복귀하지 말고 혼자서 독립해서 살아가야 한다고 조언을 했다고 했다.

여동생은 오빠가 치료를 받고 있는 치료자 선생님이 쓴 책이 있는지 물어보았고 오빠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라는 치료자의 저서(: 정신분석학적인 관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를 주면서 보라고 했다. 여동생은 첫째 여동생인 언니도 심리적인 상처를 가지고 있어서 어려움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두 사람이 처음으로 서로가 마음을 터 놓고 어머니에게 대해서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이었다.

 Z씨의 최근의 고민은 이제 부모님으로부터 집을 나간지 2 6개월이 되어가면서 부모님에 집에 복귀하라고 재촉을 하는 바람에 밤에 잠이 잘 안 온다고 했다. 치료자에게 치료 비용과 고시 방에 한 달에 월세가 35만원 정도 소요되는 돈 때문에 부모님은 집으로 복귀하라고 종용하고 있다고 했다.

 Z씨는 부모가 말로는 혼자 살아가는 독립심을 키워야 한다고 입 버릇처럼 이야기를 하면서 정작 부모님 집에 들어와서 부모님에게 복종하면서 살기를 원하는 모순적인 태도에 분노한다고 했다.

자신이 왜 부모님 집에 들어가기를 싫어하는지 부모님과 같이 살 게 되면 또 다시 과거처럼 간섭을 받아서 자아가 위축되고 부모님의 비난과 화풀이 대상이 지금까지 되어왔는지를 다루면서 자기 자신의 주장을 끝까지 펴도록 하는 커뮤니케이션 훈련을 하고 있다.

부모님은 조그만 부동산을 몇 개 가지고 있어서 경제적으로 크게 어려움은 없다고 했다. 부모님은 한달에 월세 35만원이 아까워서 Z씨가 집을 나온 후에 2 6개월이 되어가면서 집을 나와서 잘 생활을 하고 있고 건강이 오히려 집에 부모님과 같이 있을 때보다 더 좋아졌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고려하지 않고 돈 걱정만 하는 부모님에게 분노했다.

돈이 아까우냐? 자식이 더 소중하냐? 즉 자식의 정신건강이 더 소중한지를 부모님에게 직접 말로써 표현할 수 있게 훈련을 하고 있다. 그는 집에 다시 복귀하면 지옥으로 느끼진다는 것을 말로써 표현을 하게 했다.

지금의 고시방은 비록 환경은 좋지 않지만 Z씨에게는 천국으로 느껴질 정도로 마음이 편안함을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게 했다. 모든 자연 세계의 동물들로 성장을 하면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서 떨어져 나오는 것이 순리이고 인간도 어른이 되면 결혼해서 독립해서 떨어져 나오는 것이 순리인데 자식이 부모님 한데서 떨어져 나와서 잘 지내고 있는데 다시 복귀해서 부모님의 간섭과 비난, 질책 속으로 들어오라는 것은 다시 과거로 회귀에서 부모님의 스트레스를 받는 피뢰침의 역할을 하라는 무의식적인 욕구가 아닌가! 를 깨닫게 하고 있다.

 Z씨는 2 6개월의 치료 이후에 다시 1년간 치료를 재 계약을 하고 치료를 받고 있으면 이후의 3 6개월 동안 계속된 치료의 과정을 아래에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치료 기간: 1주일에 1 2시간 분석 상담 치료를 3 6개월째 받고 있음

치료의 결과: 치료가 3 6개월을 지나가면서 Z씨에게 많은 긍정적 변화들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아래의 치료 과정은 2 6개월부터 3 6개월까지의 치료 과정이 소개되어지고 있다.

 

치료의 과정:  

 Z씨는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서 집을 나와서 혼자서 살 게 된 지가 3년이 넘어가고 있다.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기 시작한 후에 6개월 시점에서 치료자는 Z씨에게 집에서 나와서 독립을 할 것을 조언을 했다. 부모님 밑에서 간섭과 침투로부터 벗어나고 독립심을 기르기 위해서였다. 어차피 사람은 부모로부터 독립을 해야 한다. 부모로부터 독립은 부모님과의 관계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부모님과 관계를 계속 좋게 만들어 가면서 자치심을 기르는 것이었다.

 부모님 집에는 한 달에 한번 정도 방문을 했다. 가족 행사나 제사 등에 장남으로써 빠질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집을 방문할 때마다 부모님 특히 어머니는 Z씨에게 언제 집에 들어올 것인가를 물었다. 알토란 같은 돈이 한달에 35만원씩 들어가는데 집에 들어오면 그 돈이 절약되지 않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Z씨는 절대로 집에 들어갈 생각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로써 표현하게 했다. 비록 한 달에 고시 방에 월세가 35만원씩 들어가지만 내가 받은 심리적 위안을 350만원 이상 된다고 당당하게 이야기를 하게 했다. 돈이 중요한지 아들의 심리적 건강이 더 중요한지를 깨닫게 했다. 집에 들어와서 부모님에게 늘 긴장하고 간섭을 받고 침투적으로 느끼는 것에서 느끼는 심리적인 질식에서 해방된다는 것을 분명히 표현을 하도록 했다.

2009년 설날에 집을 방문했을 때 아버지는 Z씨에게 집에 들어오라고 최후의 명령을 했다. 집을 나가서 혼자서 식사를 하니 건강도 좋지 않고 돈도 절약이 된다는 이유를 붙였다. Z씨는 단호하게 자기 주장으로 거부를 했다. 논리적으로 아버지에게 당당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었다.

"아버지께서 어린 시절부터 늘 나에게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을 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어머니는 여동생들에게 "너희 오빠는 혼자 살아가기 어려우니까 너희들이 돌보아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 뜻이 바로 내가 혼자 독립하기 어렵기 때문에 독립하라는 말이 아닙니까?

내가 집으로 나온 지 2년이 넘어갑니다. 그러나 나는 내 건강이 여러 면에서 좋아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주일에 정기 건강 검진에서 내 몸무게가 8kg이 늘어났고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왔고 그리고 갑상선이 정상으로 회복되었다고 의사 선생님이 놀래면서 칭찬을 해 주었습니다. 내가 혼자 살면서 그 만큼 심리적으로 편안해졌다는 뜻이지요.

이제 집에 다시 들어올 생각은 없습니다. 어머니는 어린 시절부터 내 건강이 좋지 않아서 일부러 밥을 많이 먹어야 한다고 식사 때마다 나에게 강제로 밥을 먹게 했습니다. 어떤 때는 밥을 억지로 먹어서 속이 꽉 차서 더 이상 먹을 수 없을 때 화장실에 가서 토해 내고 다시 밥을 계속해서 먹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내가 집을 나가면 몇 개월이 되지 못해서 짐을 싸들고 집에 다시 되돌아 들어올 것이라고 어머니가 말씀을 했지만 이제 2년이 넘어서 3년으로 가고 있습니다. 고시원에서 생활로 이제는 더욱 더 건강이 좋아졌습니다. 내가 마음 편하게 식사를 만들어 먹고 내가 하고 싶은 그림 공부를 하게 되었으니 내 몸이 이렇게 좋아진 것입니다.

한 달에 고시원 비용으로 35만원이 들어가지만 그 돈은 나에게는 350만원 아니 3500만원의 가치가 있습니다. 내가 얻는 심리적 도움은 돈으로 가치를 따질 수 없습니다. 이제 다시는 나에게 집에 들어 오라는 말을 하지 마십시요."

그는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 느낌, 지각, 상상 등을 소신 있게 당당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모습을 옆에서 보고 계신 어머니는 아들 Z씨와 논쟁으로 말이 막히게 되자 아버지가 화를 내며 밖으로 나가시는 것을 보고 남편에게 "이야기를 하다가 왜 피해서 밖으로 나가느냐!"고 핀잔을 주었다.

이후에 아버지는 다시 집으로 들어오라는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조용해 진 이후에 어머니는 Z씨에게 "네가 심리치료를 받은 것이 헛돈을 쓴 것이 아니었구나아버지와 다툼에서 밀리지 않고 끝까지 너의 자리를 지키는 것을 보고 내가 마음이 놓이는 것을 느꼈다"라고 표현을 했다.

 이 이벤트 직후에 Z씨는 치료자에게 그 다음 치료 회기 시간에 이제는 아버지를 쳐다볼 수 없는 불효자가 되었다고 두려워했다. 이유는 아버지에게 반항하고 대들고 아버지의 말을 거부했다는 이유 때문이라고 했다.

대부분의 자녀들은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착한 사람이다 라는 말을 듣고 자라왔다(Winnicott의 거짓자아). 그러나 사춘기가 지나가게 되면 자녀들을 자신의 부모님이 다른 부모님과는 다르다 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부모님의 하는 말과 행동이 모두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라는 판단을 할 수 있게 된다.

이 시점에서 자녀들을 부모님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부모님이 자녀의 목소리를 들어주고 자녀의 의견이 옳다면 수용을 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자녀들이 목소리를 내면 "지금까지 먹여주고 입혀주었더니 이제는 머리가 크다고 부모님에게 눈을 부라리고 달려들어 이놈아!" 라고 표현을 해서 자녀들의 목소리를 막아 버린다.

심하게 처벌을 하면 자녀들을 목소리를 내지 않고 반대행동으로 반항을 하게 된다. 부모는 자녀의 행동을 처벌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자녀는 부모를 처벌을 할 수가 없다. 패륜아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녀들도 부모님을 직접적으로는 할 수 없지만 간접적으로 처벌을 할 수 있다. 그것은 부모님이 원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다. 부모님이 원하는 것을 거꾸로 해서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공부를 강조하는 부모님에게 자녀는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이다. 착한 행동을 하지 않고 불량 행동과 나쁜 행동을 골라서 하는 것이다.

Z씨는 부모님에게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했다. 그리고 나서 두려워했다. 이제는 부모님의 얼굴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두려워했다.

치료자는 Z 씨의 자아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도록 했다. 부모님에게 자신의 느낌, 지각, 상상, 생각을 말로써 표현하는 것을 반항이 아니다. 부모님과 의견 일치를 보이지 않는 자녀의 의견은 반항이 아니고 서로 자신의 주장을 내 세우고 논쟁을 하는 것이다.

부모님이 신이 아닌 이상 언제나 100% 옳다고 할 수 있는가! 자녀의 의견이 옳을 수도 있다. 부모님에게 내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를 하는 것은 불효가 아니다. 부모님 앞에서 내 소신을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사람은 사회에서 직장에서 상사에게 소신을 이야기를 할 수 없다. 부모님 앞에서 내 의사를 밝힐 수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의 소신을 밝힐 수 없다.

Z씨는 이후에 부모님을 만났을 때 미안해 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했다. 부모님에게 당당하게 소신을 이야기한 것을 자랑스러움을 받아들이도록 했다.

 이후에 이 문제는 깨끗하게 해결되었다. 다음에 만났을 때 아버지는 태도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자녀인 Z씨를 이제는 성인으로 어른으로 대우를 해 주었고 이후 부터는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는 명령어는 사라지고 Z씨의 의견을 물어보는 쪽으로 대화의 패턴이 바뀌었음을 알 수 있었다.

 Z씨는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기 시작했을 때 2007 4월에 자신이 좋아하던 그림 그리기(만화, 일러스트레이터)를 포기하고 사회복지사 자격증 공부를 1 6개월째 하고 있었다. 그 때 마지막으로 복지사의 마지막 과목인 "복지 실습"에 들어가고 있었다.

그는 부모님께서 그림을 그리면 먹고 살기가 어려우니 복지사 자격증을 따서 취직을 해라고 강압을 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싫어하는 것을 하고 있었다. 그는 복지사 실습으로 어떤 복지회에 아침 7 30분에 도착을 해서 저녁 9시까지 일을 하고 있었다. 복지사의 일들은 노인들의 식사와 빨래, 노인들을 돌보아주는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는 신체적으로도 연약해서 에너지의 고갈을 느꼈다. 하루 종일 일을 하고 나면 저녁에는 파김치가 되었다. 노인들이 짜증을 내거가 화를 내면 그것을 받아주어야 했다. 그의 성격이나 취향에 맞지 않았다고 치료자에게 푸념을 했다. 그러나 부모님 때문에 거부를 할 수 없었다.

치료자는 단호하게 부모님에게 거부하도록 했다. 내가 좋아하는 내가 하고 싶어하는 것을 하도록 했다.(Winnicott의 참 자아). 내가 싫어하는 것을 평생동안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는 부모님에게 No라고 말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부모님에게 언제나 복종을 강요 받았기 때문이었다(Winnicott의 거짓 자아).

 Z씨는 사회 복지사 실습을 끝내고 자격증을 받고 사회 복지사는 포기를 했다. 적성에 맞지 않고 에너지 고갈을 느낀다고 부모님에게 말씀드리고 집을 나오면서 독립된 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그림 공부, 만화 그리기와 일러스트레이션을 마음껏 하게 된 것이었다. 그는 생활에 리듬 감각을 기르기 위해서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고 음식 메뉴를 짜고 수면을 컨트롤하기 시작해서 이제 2년이 지나가면서 건강을 회복하게 된 것이었다.

 Z씨는 한번씩 저녁에 잠들 시간이 되면 과거에 부모님 특히 어머니께서 언어 폭력에 시달린 것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가 사회 복지사를 하기 전에 그는 대학 1학년 때 전공인 경영학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대학 만화 동아리에 들어갔다. 그 만화 동아리가 지나치게 이념적이고 데모를 선동하는 내용을 강요하는 바람에 대학 동아리에서 탈퇴하고 스스로 자발작으로 모인 만화 동아리를 다른 대학에 연결해서 만들었다. 동아리에서 활동을 하면서 만화 학원에 다녔다. 그는 만화 학원 비용으로 3개월 동안은 어머니로부터 지원을 받았으나 이후에는 어머니가 만화를 그리면 밥굶어 죽는다는 말에 더 이상 비용의 지원을 포기하고 스스로 차비 점심값을 아껴서 충당을 했다. 만화 학원에서 아침 일찍 출근을 해서 저녁 마지막 퇴원시까지 원장 선생님과 함께 해서 시간 가는줄 모르고 몰두를 했다.

그 시절이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했다. 그는 만화 그리기에서 우수하게 수료를 했고 그 다음에 xxx신문이 지원하는 일러스트레이션의 그림에 1년 동안 습작 과정을 수료했다. 거기에서 모인 동료들과 1년 넘게 서로 교류를 하면서 동아리를 유지하다가 몇 년 전에 비용 문제가 그 서클의 해체되면서 서로 뿔뿔이 흩어졌다. Z씨는 만화를 그리는 회사에 취직을 했다가 1년 만에 회사가 망하는 바람에 일자리를 잃었다. 이후에 어떤 출판사로부터 100만원의 계약으로 어린이 용 서적에 일러스트레이션은 100장을 그리는 일을 얻게 되었다.

 그는 만화 그리기를 전공해서 처음으로 100만원짜리 그림 그리기 일감을 따 왔다며 어머니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까짓 100마원짜리 일감을 따 왔다고 유세냐! 라고 빈잔을 했다.

오히려 그 당시에 첫째 여동생이 결혼해서 낳은 둘 째를 데리고 와서 외삼촌이 어린 아이들을 돌보아 주어야 이후에 조카들이 커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큰 아이 5살 짜리와 3살 짜리 둘 째를 대리고 와서 Z 씨에게 맡겼다.

낮에 데리고 와서 어머니는 외출을 하고 Z 씨가 두 아이들을 돌보아주도록 했다. Z씨는 기가 막혔다. 출판사와 계약을 체결할 때 1달 안에 그림을 그리기를 완료하지 못하면 위약금으로 2배를 물어야 한다고 싸인을 했다. 그가 15일이 지나갔을 때 40% 정도밖에 완료되지 않았다. 울면서 겨자 먹기로 그는 낮에는 조카 둘을 보고 할 수 없이 부모님에 밤에 잠을 잘 때 밤샘으로 그 출판사에서 위탁을 받은 그림을 그렸다.

부모님은 한번씩 화장실에 가면서 Z씨의 방에 불이 켜진 것을 보고 노발대발하면서 전기세가 많이 나간다고 호통을 쳤. 그는 할 수 없이 전기불을 끄고 촛불을 켜고 창문을 이불로 가렸다. 이렇게 해서 밤샘을 하고 나니 에너지 고갈로 이어졌다.

낮에는 조카들을 돌보고 밤에 밤샘을 하는 15일 동안의 고역으로 겨우 100장을 정해진 기간 내에 완성할 수 있었다. 이런 심리적 상처로 받은 고통 때문에 밤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 사건이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으러 오기 전에 약 3년 전에 있었던 일들이었다.

 치료에서 이러한 고통, 분노, 노여움 들을 말로써 표현하게 했다. 지금까지 이러한 심리적 상처나 고통을 부모님이나 친구나 가족들에게 누구에게도 표현을 한 적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가면서 이러한 과거의 상처들이 하나씩 다루어지면서 점점 잠을 잘 잘 수 있게 되어갔다. 마음이 안정을 가져와서 그림 그리기에 몰두 할 수 있었다. 그는 한번씩 그림을 그리다 가도 이러한 잡 생각에 빠지면 몇 시간 동안 그림 그리기에 몰두를 할 수가 없었다.

 치료가 3년에 접어 들어가면서 지금까지 한번도 Z씨가 이사를 나온 후에 어머니가 한번도 그의 고시방에 들린 적이 없었다. 그러나 어느 날 어머니가 Z씨를 방문하겠다고 연략이 왔다. 그는 방을 청소하고 정리 정돈을 했다. 어머니가 찾아와서 고시방을 둘러보면서 여러 가지 질문들을 했다. 혼자 살기에 어려움이 없는지, 그리고 식사를 잘 챙겨 먹는지, 건강을 잘 지키는지 등에 대해서 Z씨는 과거와는 달리 자신의 생각, 느낌, 지각, 상상 들을 소상하게 논리적으로 상세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어머니가 3년 동안이나 한번도 이사 후에 지금까지 Z씨를 찾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섭섭함, 그리고 막내 여동생이 출가하고 난 후예야 이제 서야 Z씨를 찾아온 점들을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식사는 고시원에서 밥과 김치와 달걀을 제공해주고 자신은 먹고 싶은 몇 가지 반찬을 준비해서 잘 먹고 있으며 몸무게가 8kg이 늘어났고 혈압과 갑상선 수치가 정상으로 회복되었다고 담당 의사 선생님께서 칭찬을 해 주셨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했다. 앞으로 만화, 그림 그리기, 일러스트레이션의 전망에 대해서 물어보았을 때 만화, 애니메이션 등에서 우리나라가 많은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고 이 분야에서 판타지 영화 등이 출편하는 것으로 앞으로 전망이 밝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엄마와 직면으로 자신 있게 자기 주장을 한 이후엄마의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전에는 엄마는 Z씨를 항상 불안하고 보았고 늘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Z 씨를 걱정해 왔었다. 그러나 이 이벤트 이후에는 Z씨는 한 성인으로 대우를 해 주었다는 점이다.

이제는 Z씨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명령 형의 대화가 아니라 Z씨의 의견을 물어보는 일대 일의 성인관계로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이후에 엄마는 아버지에게 다시 아들 Z씨를 집으로 들어와서 살아라 라는 말을 지원해 주지 않았고 오히려 고시방이 너무 왜소해서 작업하기에 불편하니 원 룸으로 이사를 가야 한다고 아버지에게 원 룸을 추천해주게 되었다.

 결정적인 변화가 지난 여름에 왔다. Z씨가 지금까지 자신의 그림들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리게 되면서 이 그림이 그 달의 대표 그림으로 선정되어진 것이었다. 일러스트레이션 전문 잡지에서 Z씨의 그림을 그 달의 대표 작으로 선정해서 올리게 되었고 몇 개의 출판사에게 연락이 왔다. 한 출판사는 Z씨에게 어린이 동화를 그려주면 그 작품을 그 회사가 인터넷에 게시를 해서 유료로 어린이들이 접근해서 얻는 수익을 6: 4로 그에게 돌려 주겠다고 했고 Z씨는 승낙을 하고 어린이 동화 중에서 "금도끼와 은도끼"를 그림으로 그려서 그 출판사의 감독 교수의 심사에 통과한 마지막 12장을 출판사에 제출하게 되었다.

또 다른 한 출판사에서 회사 광고 용으로 Z씨가 그린 일러스트레이션을 제출해 줄 것을 제의를 받고 허락을 했다.

또 한 군데 출판사에서 그림을 그려줄 수 있는지 연락이 왔다. 회사는 3년 전에 100만원의 그림 계약을 준 그 회사였다. Z씨는 지금 아이들 동화그림을 그리고 있으니 이것이 끝나는 10 중순에 다시 연락을 하겠다고 허락을 했다.

 그는 지금 경제적 독립만 하면 이제는 부모님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부모님은 이제 Z 씨가 집을 방문하면 과거처럼 불안하게 Z씨를 취급하지 않고 독립된 성인으로 대우를 해준다고 기뻐했다. 그리고 이제는 부모님과 일대일로 대화에 참가를 하고 자신의 의견을 상세하게 표현을 할 수 있게 되었다(Z씨의 자아의 성장)

 얼마 전에 부모님에 매년 마다 고향의 시골에서 열리는 가을 시제(조상에게 음식으로 제사를 지내는 추수 감사절 풍습)에 참석하지 않겠느냐? 라고 전화로 물어 왔다. Z씨는 초, , , 대학 그리고 어른인 최근까지(치료자에게 치료를 받기 시작한 그 해까지) 아버지와 어머니를 따라서 고향 시골에서 개최되는 시제에 참석을 해 왔다고 했다. 그러나 갈 때마다 시제에 참석하고 오면 그 후유증으로 고통을 몇 주일 씩 당했다는 것이 분석 되어졌다.

시제에 참석으로 부모님을 따라가면 부모님은 언제나 빨리 걸어갔다. 어린 Z씨는 부모님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부모님은 특히 어머니는 Z씨에게 "이 병신 같은 놈아 사내가 되어서 부모님보다 빨리 앞서 가야지 뒤에서 따라오면 어떻하냐!"라고 빈잔으로 Z씨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

시제에는 Z씨의 또래는 없고 모두가 나이 많은 어른들이어서 그는 할 일이 없이 멍하니 쳐다 보고만 있었다. 어머니는 가는 곳마다 저애 때문에 내가 골병이 들어 죽을 지경이다 라고 푸념을 했다. 나이가 어려서 짐을 들지 못하면 너는 왜 짐도 제대로 들고가지 못하냐고 빈잔과 비난이 따라왔다. 고향으로 내려갈 때 대형 버스 안에서 언제나 Z씨는 외톨이로 혼자 앉아 있었다.

 한번은 아버지가 고향에서 술을 많이 마시고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 안에서 만취해서 노래를 부르자 버스 운전수와 승객들이 아버지에게 조용히 해 달라고 요구를 하자 미안해진 어머니는 다른 자리로 도망을 가고 Z씨가 아버지 옆에서 아버지를 돌보아주게 했다. 아버지는 막무가내로 고성방가를 했다. 모두가 얼굴을 찌푸리고 야유를 했고 아버지는 마침내 버스 안에서 토해냈고 차장 아가씨가 불평을 하면서 신문지로 닦아 냈다. 그러한 버스 안의 모든 승객들의 야유와 수모를 아버지 옆에서 Z씨가 고스란히 당했다.

어머니는 도망을 갔고 Z씨를 어머니 자리에 밀어 넣은 것에 분노했다. 이러한 과거의 상처 기억들을 재연해서 감정을 말로써 표현하게 했다. 그의 내면에 쌓인 적대 감정의 한 실오라기가 또 다시 풀리어져 나왔다.

 이 이벤트를 상기하면서 Z씨는 아버지에게 이제 시제(가을에 시골에서 조상에 추수 감사로 제사를 올리는 풍습) 참가는 지금까지 많이 참석했으니 유보하겠다고 자신있게 소신 것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까지 한번도 빠지지 않고 초, , , 대학 이후에 몇 년 전까지 아버지가 요구하는 시제에 참석을 했고 시제 이후에는 그 후유증으로 몇 주일 동안 자신감의 저하로 고통을 받아 왔다는 것을 아버지에게 이야기를 하도록 했다.

아버지는 Z씨가 장손이기 때문에 참가를 해서 아버지가 죽고 나면 대를 이어 받아야 한다고 늘 강조해 왔다. 그러나 Z씨는 이제까지 수십번을 참가하고 보아왔기 때문에 이제 그 문제는 혼자서 시제를 컨트롤할 수 있다고 아버지에게 자신있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고 이번 시제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이 이벤트에서 다시 과거의 이벤트가 줄줄이 꼬리를 물고 나왔다. Z 씨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엄마로부터 용돈을 받아서 그의 회상으로 약 2천원-3천원 정도를 받았으나 한번은 그 돈으로 껌을 하나 사서 씹고 있는 것을 어머니가 보고 돈이 어디에서 나왔으냐 엄마는 죽도록 돈을 벌고 있는데 너는 돈을 아낄 줄도 모르고 껌을 사서 씹고 있느냐노발대발해서 그 용돈을 도로 빼앗아 갔다.

이후에 중학교 시절에 또 한번은 용돈으로 과자를 사 먹었다가 들켜서 용돈을 도로 빼앗겼다. 엄마는 늘 "땅을 파보아라 돈 100원이 나오느냐!"고 빈잔을 주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3천원 정도의 용돈을 받았다가 한번은 Z씨가 좋아하는 비디오를 1000원을 주고 빌려보다가 어머니에게 들켜서 용돈을 도로 빼앗겼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있었던 이 이벤트 이후부터 엄마는 교통비와 점심값을 계산해서 그 돈만 주었다. 대학교 3학년 때까지 이런 생활이 계속되었다. 그는 대학 시절에 전공학과 모임이나 동아리 모임 때면 서로 몇 푼씩 돈을 각출하는 곳에는 피하게 되었다. 돈을 각출당하고 나면 차비나 점심값에서 제외되어 굶거나 걸어서 다녀야 했다.

이런 생활 때문에 사회적 모임이나 대인관계를 극구 피하게 되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 이런 고통이나 고충을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대학 3학년 때 어머니는 자녀들의 돈을 혼자서 관리를 포기했고 아버지에게 맡기게 되었고 아버지께서 한달에 용돈으로 10만원을 받았 것이 기억이 난다고 했다.

 이러한 이벤트를 다시 재연해서 Z씨로 하여금 감정을 표현하는 훈련을 지속적으로 해 왔다.

 "어머니 용돈은 내 개인적인 소유입니다. 내게 용돈으로 주었으면 내 권리를 인정하셔야 지요. 내가 그 돈으로 낭비를 했습니까? 껌 한 개 사 먹고 과자 한 개 사 먹었다고 그 돈을 빼앗아 갑니까?

그리고 내가 보고 싶어서 비디오 테이프를 한 개 빌려서 보았는데 내가 용돈을 낭비를 했습니까? 그렇다면 왜 용돈을 주셨나요? 나는 대학 생활에서 용돈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 돈은 교통비와 점심값을 계산해서 정확하게 주셨기 때문에 나는 동료들과 모임이나 회식 등에 참석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유는 각자가 돈을 각출해서 분담을 하면 나는 굶거나 차를 타지 못하고 걸어 다녀야 했습니다. 어머니는 나에게 용돈을 준 것이 아니고 나에게 어머니의 스트레스를 풀었던 것이지요. 내가 엄마의 화풀이 대상이 된 것이 아닙니까?"

이러한 표현을 자연스럽게 하도록 했다.

 

이론적 근거

 Z씨는 부모님의 말씀은 무조건 들어야 착한 사람이다 라는 인식으로 부모님에게 No라는 말을 해 본적이 없었다. 부모님은 자신들의 불안을 Z씨에게 화풀이를 해 왔다. 그들이 불안할 때는 언제나 만만한 Z 씨에게 퍼부었다. 3명의 여동생들은 Z씨와 달랐다.

그들은 부모님이 강압적으로 청소를 강요할 때 부모님의 요구를 무시했다. 아버지를 강박증 환자라고 그들 스스로가 이야기를 하면서 아버지가 시키는 과도한 요구를 거절했다. Z씨가 미술, 그림 그리기, 만화를 하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그가 고등학교 때 만화 그리기를 하고 싶었으나 포기했다고 했다. 만화를 그렸다면 밥을 굶었을 것이고 지금같이 공무원으로 그리고 세무가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라고 Z씨를 막아서 고등학교 시절에 만화를 그리겠다는 Z씨를 막았다.

 아버지는 만약에 만화가가 되려면 정식 미술을 전공해야 하는데 Z씨는 전공하지 않아서 전문가가 될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그러나 막내 여동생은 예술 고등학교를 나와서 미대를 졸업을 하고 일본에 1년간 연수를 하고 돌아와서 결국은 만화 회사에 다니고 있고 올해 5월 달에 같은 만화 회사에 근무를 하는 남자 친구와 결혼을 했다.

결국 그렇게 싫어하는 만화가 사위를 보았고 미대를 나온 딸이 만화가로써 생업을 유지하고 있는 것에 Z 씨는 분노했다. 왜 자신이 그렇게 원했을 때 전공을 미술을 하지 않았다고 반대를 해 놓고 정작 막내 여동생은 만화를 하게 허락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부모님에게 우리는 양면 감정을 가지는 것이 정상이다. 부모님을 사랑할 수 있다면 부모님에게 미움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분열되어 쪼개져 있는 것이 Z였다. 부모님에게 는 좋은 긍정적 감정을 Z 씨 자신에게는 부모님의 비난, 비판, 비하 등으로 나쁜 감정들은 Z씨 자신의 자아로 향해 왔음을 깨닫게 했다.

 양면 감정을 통합하는 과정을 심리치료에서 거쳐야 한다는 것을 알 게 했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에게 복종을 강요하면 Z씨처럼 자신감이 없고 자치심이 없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부모님에게 설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해야 한다. 이러한 사례는 이미 Z씨의 여동생들은 자신의 주장을 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냈다.

그 결과 여동생들은 세명이 모두 결혼을 했고 Z 씨는 아직도 힘들어 하고 있고 결혼을 하지도 못하고 이성 교제도 아직은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게 했다. 부모님에게 부정적 감정을 표현하면 불효 자식이라고 일찍부터 각인이 된 Z씨는 너무 큰 양심 (초자아--정신분석) 때문에 부모님에게 자신의 생각, 느낌, 상상, 지각을 표현을 하지 못한 것이었다. 이것은 어머니가 어린 시절부터 Z씨를 처벌의 대상으로 엄마의 화풀이 대상으로 엄마의 불안감의 방출 대상으로 삼아왔기 때문임을 Z씨가 깨닫게 되면서 Z씨의 감정 표현 능력은 성장을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치료의 결과

 Z씨는 처음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으러 왔을 때 서점에서 치료자사 쓴 저서 ""(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을 읽고 치료자에게 마지막으로 치료를 받기로 마음 속에 결심을 했다.

그는 이번에 마지막으로 심리치료가 실패하면 자살을 결심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고통과 불안과 분노 속에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고 마지막 선택으로 심리치료를 선택을 했고 치료 시작 4년이 가까워 오면서 이제는 잠을 숙면으로 잘 수 있게 되었고 부모님의 집을 나와서 독립해서 살아가고 있고 건강 관리와 자신의 생활을 컨트롤할 수 있고 자신이 그렇게 원하는 그림을 마음대로 그릴 수 있게 되었고 그의 그림 실력은 이제 점점 향상 되어가고 있음을 기뻐하고 치료자를 만난 것을 천만 다행으로 생각하며 열심히 치료를 받고 있다.

 여기에서 특이한 것은 Z씨의 심리치료 비용은 아버지가 부담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Z씨는 아직까지 경제적인 독립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매달마다 생활 비용과 치료 비용을 부모님으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다. 그런데 아버지, 어머니는 지금까지 4년 동안 한 번도 심리치료는 효과가 없는 것 같으니 이제 그만 받는 것이 어떠하냐? 라고 치료비 지불을 거부한 적이 한번도 없다는 점이다. 심리치료에서 아들 Z씨의 치료 효과를 아버지, 어머니가 인정을 하고 있다는 뜻이 아닌가!

어머니는 아버지와의 논쟁에서 Z씨가 끝까지 밀리지 않고 자기 주장을 하는 것을 보고 대견해 하고 아들에 대한 미래의 불안이 감소했다고 이미 앞에서 이야기를 했다. 엄마는 "네가 아버지와 논쟁에서 밀리지 않고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것을 보고 심리치료를 받은 것이 헛대지 않았음을 느꼈다"라고 말을 것이 회상되었다.

지금도 Z씨는 매주 금요일 오후에 자신의 심리치료 시간에 한번도 빠짐이 없이 3 6개월의 마지막까지 약 4년 동안 열심히 치료를 받고 있다.

 Z씨가 계속해서 치료를 받아서 그가 5년 6개월의 치료 계약이 시작되면서 그의 변화의 과정을 통해서. 그의 자아는 계속해서 성장을 하고 있어서 치료 시작 때의 초반기 문제들은 거의 해결 단계에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아래해서 확인할 수 있다. 56개월 이후에서 13년까지의 7년동안의 치료 회기의 전체는 각각의 치료 회기의 핵심을 요약해서 치료자가 요점을 정리한 것이 아래에서 소개되어진다.

 정신분석은 한 인간 개인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라고 에릭슨(Erikson, 1965)이 노트를 하고 있다. Z씨의 삶의 역사는 그의 치료 과정을 통해서 소상하게 밝혀지게 되었다. 여기에서 앞에서 강조를 한 Z씨의 과정의 삶의 역사가 재구성되어진다. 그의 삶의 과정은 그와 어머니, 그리고 그와 아버지상호관계의 분석을 통해서 그리고 그의 꿈들의 분석(아래를 보라)을 통해서 Z씨의 과거의 기억들의 조각들을 모아서 그가 태어나서 (3세정도의 기억이 생생함) 지금까지 그의 삶의 전체의 재구성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특별히 아래의 기술은 Z씨의 아버지, 어머니의 결혼 이전과 이후에 삶이 Z씨의 서술을 통해서 재건축되어진 것이다.

여기에서 Z씨의 부모님의 부부 관계가 소상하게 분석되어진다 여기에 주목하기 바란다. 특별히 연인관계, 부부관계, 자녀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친밀감의 갈등의 핵심 요인이 소개되어진다 즉 그 개인의 심리적인 영역이 침해를 당할 때 어떤 일이 발생하는가? 를 아래에서 잘 보기 바란다. (침투불안의 결과)

A씨는 옛날에 사범학교 출신으로 머리가 명석한 사람이었다그는 그 당시에 교사 생활이 박봉인 것 때문에 공무원 시험을 쳐서 고급 공무원으로 출발한 사람이었다그는 40대 중반에는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4층짜리 집을 소유했던 사람이고 그리고 지하층에 있던 가내 수공업을 하는 사장의 경리 사원이 돈을 인출해서 잠적하는 바람에사장이 아버지에게 넘겨주고 간 수공업을 운영하다가 실패하고 그 집을 처분하고 2층 슬라브 집을 설계하고 손수 건축한 사람으로 부지런하고 능력 있는 사람으로 장남인 Z씨와 3명의 딸을 둔 가장이었다. 40대 중반에 의사의 권유로 술과 담배를 끊었고 국기도라는 체육관에서 10년 이상 운동으로 건강을 유지한 사람이었다그는 매일 같이 이빨을 칫솔뿐만 아니라 치실으로 이빨 사이를 닦아 내는 사람으로 70대 중반까지 이빨이 한 개를 제외하고 건강한 이빨을 유지한 사람으로 모든 면에서 완벽한 사람이었다.

그의 부인인 Z씨의 어머니는 맞벌이로 직장 생활을 한 사람으로 IMF 이후에 직장 생활을 그만 두고 연금을 받고 있는 사람이었다두 사람은 노후 걱정을 준비하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업도록 철저하게 노후 준비를 한 사람들이었다아버지는 공무원에서 정년 퇴직을 하고 그가 젊은 시절에 공무원을 하면서 쌓아온 전문적인 지식으로 xx관리사의 자격증을 얻어서 10년 동안 4명의 직원을 두고 개인 사무실을 운영하다가 은퇴하고 나서 노후를 맞이하게 된 사람이었다.

이 때까지는 A씨의 삶은 그야 말로 어려움이 없는 완벽한 삶이었다. A씨가 직장에서 은퇴해서 개인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던 시점에서 아들 Z씨가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받게 되었다. Z씨의 어린 시절의 삶의 과정과 발달 단계를 다루면서 A씨의 삶의 과정을 치료자가 소상하게 알게 된 것이었다.

A씨는 고교 시절에 미술부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장래 희망으로 미술을 전공하려고 했다가 A씨의 아버지(Z씨의 할아버지)가 일찍 작고하는 바람에 그림 그리기를 포기하고 공무원으로 출발한 사람이었다그는 어머니(Z씨의 할머니)가 그림을 그리면 밥 먹고 살기 어렵다는 하소연에 그림 그리기를 포기하고 안정된 일자리를 찾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림을 그리고 싶은 간절한 소망 때문에 Z씨가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토요일 오후(그 당시에 토요일은 오후 1시까지 근무혹은 일요일에 아들 Z씨와 부인과 그리고 3명의 딸들을 데리고 화구들을 가지고 교외로 나가서 그림을 그렸다고 Z씨가 회상을 했다. 아들 Z씨와 여동생들은 들판에서 이리저리 뛰어 놀면서 아버지가 그리는 그림들을 구경을 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회상을 했다.

그러나 A씨는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것을 포기를 했다. 그런데 그 시점에서 한가지 A씨의 습관이 저녁 퇴근 시에는 늘 탁주 2병을 사가지고 와서 저녁에 혼자서 직장에서 있었던 상사들에게 욕설로 화풀이를 하면서 술을 마시는 습관을 Z씨가 지켜 보았던 것을 회상을 했다. Z씨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그러한 습관에 전혀 관계하지 않았다아버지는 탁주 이외에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지금도 아버지는 탁주를 항상 2명을 마시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술은 입에 데지 않는다

아버지는 늘 언제나 기본적으로 탁주를 2병을 사가지고 왔다그리고 그 술을 마시고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경우에는 아들 Z씨를 불러서 술 심부름을 시켰다인근에 상점에 가서 탁주 2병 사가지고 오라고 했다이러한 술 심부름을 하면서 Z씨는 아버지를 지켜 보면서 성장을 했다아버지는 점점 술을 밤새도록 마시는 경우가 많았다어떤 때는 아침에 출근을 할 때 일요일에 마신 술이 들 깬 상태로 직장에 나가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고 회고를 했다그러나 아버지는 40대 중반에 의사의 권유로 술과 담배를 완전히 끊고 생활을 할 수가 있었다는 것은 이미 앞에서 소개를 했다.

40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아버지는 그림 그리기를 다시 새롭게 여러 번 시도를 했지만 결국은 그 취미 생활을 다시 살리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Z씨가 대학에 들어가면서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부모님이 그림을 그리면 밥 먹고 살기 어려우니 공무원 시험을 쳐서 공무원이 되어야 한다고 강압처벌에도 불구하고 Z씨는 지금은 만화를 포기했지만 방향을 일러스트레이션(삽화 그리기) 14년 동안 지금도 동화 책에 필요한 삽화 그림을 그리고 있다.

Z씨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신들의 노후 준비를 철저하게 한 것뿐만 아니라 아들 Z씨가 대인관계가 어려워서 사회생활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원룸과 백화점에 투자를 해서 점포 세를 받아서 한 달에 180만원씩의 월세를 받아서 Z씨가 그 돈으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 주었기 때문에 Z씨는 일을 하지 않고서도 180만원으로 각종 세금과 연금들을 지불하고 치료자에게 매달 xxx 원의 치료 비용과 생활비로 사용하고 있다이렇게 아버지가 준비를 해준 덕분에 큰 어려움이 없이 Z씨는 xxx 동양화 학원에서 6년 동안 다니면서 삽화 그림을 응용한 공부를 하고 있고 그리고 지금도 생활에는 어려움이 없이 생활을 하고 있다.

문제는 아버지가 정년 퇴직 이후에 10년 동안 운영했던 개인 사무실을 접고 집에서 지내면서 시작되었다처음에 아버지는 밤에 잠이 오지 않아서 쉽게 잠을 잘 수 없다는 어려움 때문에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고 어머니가 Z씨에게 이야기를 하면서 문제가 시작된 것을 알 수 있었다아버지는 10년 동안에 끊었던 술과 담배를 다시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술은 하루에 탁주 2병을 주로 저녁 시간에 마셨다 그리고 담배는 하루에 1.5갑으로 매일 같이 피우게 되었다이러한 문제가 시작된 것은 Z씨가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시작한 후에 약 5년 전쯤에서 시작되었다아버지가 모든 일에서 은퇴한지 5년 정도 되면서 술과 담배의 시작으로 문제가 등장하게 된 것이었다.

아버지가 담배를 하루에 1.5갑을 피우게 되면서 이웃 사람들의 원성을 듣게 된 것이었다이웃 사람들이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 담배를 삼가 해주세요 라고 광고문을 붙이고 아파트 입구에 금연이라는 인쇄물들이 등장하게 되면서 이웃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게 된 어머니가 아버지의 담배를 피우는 것에 제동을 걸게 되었다이러한 부부의 갈등 관계가 시작되면서 아버지가 홧김에 술을 더욱 더 많이 마시게 된 것이었다어머니의 잔 소리에 아버지는 보복으로 평균 2병의 탁주가 4병으로 6병으로 마시면서 부부 사이에 문제가 확대 되어진 것이었다.

A씨의 부부 사이에 문제는 치료자가 Z씨를 통해서 분석이 가능하게 된 것이었다왜냐하면 Z씨는 본가의 집을 방문하고 고시원으로 돌아오면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를 눈으로 보고 듣고 그리고 그들로부터 받는 심리적인 영향력을 치료 회기 시작에 토해 내면서 치료자가 저절로 분석이 가능하게 된 것이었다.

A씨의 부부 문제가 노후에 재등장 하게 됨으로써 모든 일에서 은퇴하기 이전에는 완벽했던 A씨가 노후로 은퇴하게 되면서 앞으로 A씨가 어떠한 어려움을 가지게 되었는가?를 분석으로 기술되어지게 될 것이다.

2017 1월 달에 부모님이 치료자와 면담을 했다먼저 아버지와 단독 컨설팅을 하게 되었다치료자는 혹시 부모님이 10년 동안 심리치료를 했는데 변화가 된 것이 하나도 없으니 사기꾼이 아닌가아들을 최면을 걸어서 치료비용을 빼먹은 사기꾼으로 매도를 하지 않을까염려를 했다그런데 아버지와 면담에서 아버지의 첫 마디가 걸작이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이제 내가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치료자가 지금까지 10년 동안의 아들 Z씨의 자아가 미성숙하고 제대로 개발이 되지 않았다는 것과 대인관계 때문에 초대학 시절에 어려움들을 이야기를 해 주었고 지금은 개선되어 지금 4년째 다니고 있는 동양화 학원에서는 대인관계를 잘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노후 경제적인 면에서는 완벽하게 대비를 해 놓았는데 부부갈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아들 Z씨를 통해서 잘 알고 있으니 심리치료를 받아 볼 것을 권유를 했고 아버지고 수긍을 했다

치료자는 아버지가 어머니와 관계에서 질식되어 숨이 막힐 것이라는 지적에 동의를 했다부모님의 아파트 위층에 살고 있는 첫째 딸 내외가 밥과 반찬을 준비해주면 아버지가 혼자서 밥과 반찬으로 건강을 유지하고 어머니를 해방시켜줄 것을 이야기를 했을 때 아버지가 식사 문제만 해결된다면 O.K.이다 라고 수긍을 했다

두 시간의 컨설팅을 끝내고 어머니와 컨설팅이 시작되었다치료자가 어머니에게 아들 Z씨가 10년 동안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데 많이 개선된 것이 눈에 띄입니까가?” 라고 물었을 때 어머니가 이제 아들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안심이 된다고 했다아들이 마음이 편안해진 것을 느낄 수 있다고 감사한다고 고마움을 표현을 했다어머니는 2시간의 컨설팅으로 부모님의 면담이 끝이 났다.

 치룍자는 Z씨에게 아버지와 어머니의 문제의 핵심을 요약해주었다.

아버지는 지금 현재로 알코올 중독으로 심리치료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다만약에 아버지가 계속해서 어머니와 갈등으로 술을 마시게 되면 아버지가 언젠가는 머리를 다쳐서 불구자가 되거나 혹은 팔다리를 골절해서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로 아버지가 자진해서 심리치료를 받든지 아니면 아버지를 알코올 중독 병원에 입원을 시켜서 알코올 중독을 치료받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의견을 내 놓았다

여기에서 아버지보다 더 심한 문제를 가진 사람이 Z씨의 어머니임을 지적을 했다어머니가 아버지의 하루에 2병의 탁주를 마시도록 허용해서 간섭하지 않게 되면 더 이상 술을 마시지 않고 스스로 탁주 2병으로 넘어갈 수 있는데 문제는 어머니가 간섭하고 지시하고 명령하는 것 때문에 아버지가 보복으로 술로써 어머니에게 복수를 한다는 것을 지적을 했다

남편과 부인의 물고 물리는 뒤엉킴이 핵심 문제임을 지적을 했다해결책은 두 사람의 심리적 공간에 산소를 공급하는 일이라고 여러 번 제안을 했다.

치료자는 Z씨의 어머니가 Z씨와 딸들을 호출을 해서 가족 회의를 하면서 이제는 아버지를 더 이상 어머니가 컨트롤할 수 없으니 알코올 중독 병원에 입원을 시키는 것이 좋겠다고 이야기를 했고 그리고 가족 회의에서 아버지를 강제로 알코올 중독 병원에 입원을 시키기로 합의를 했다그런데 어머니가 계속 실행을 미루게 되면서 이것이 약 1년 이상을 넘어가게 되었다

어머니는 울면서 아버지를 잡고 외출을 허용해주지 않게 되면서 점점 더 아버지의 심기를 건드리게 되었고 아버지는 이제는 주로 저녁 때 탁주 2병을 마시던 것을 이제는 밤중에도 새벽 2 3 4시에도 탁주를 마시게 되었다. 편의점들이 들어서면서 24시간 영업을 하게 된 것도 한 몫 하게 된 것이었다(참고로 조그만 탁주 1병에는 알코올이 6%).

치료자는 A씨의 부부가 노후의 준비를 완벽하게 해서 지금은 모든 일에서 두 사람이 은퇴를 해서 여행을 다니거나 친구들과 어울리고 그리고 취미 생활을 해서 남은 여생을 행복하게 할 시간만 남았는데 지금의 A씨의 부부가 하고 있는 형세를 보면 이것이 노후가 천국이 아니고 지옥이 아닌가라고 Z씨에게 지적을 했을 때 Z씨는 인정을 했다.

Z씨가 아버지의 문제를 강하게 지적을 하면서 어머니가 아버지 문제로 치료자에게 2시간 컨설팅을 받도록 간청을 해서 어머니가 수용을 해서 첫 번째 여동생을 대동하고 치료자가  만나게 되었다치료자가 30대 후반에 결혼한 첫 번째 여동생을 동반하도록 요청을 한 것은 어머니는 구식이고 옛날 사람이어서 심리치료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30대 후반의 결혼한 딸은 신세대 여성으로 심리치료의 중요성을 알고 어머니를 설득시켜서 심리치료를 받도록 하기 위함에서였다.

Z씨의 어머니를 만났을 때 치료자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는 남편과 부인의 부부 관계가 아니고 엄마와 아들 관계임을 지적을 했다그 증거로써 남편인 A씨는 부인에게 지금까지 한번도 손찌검을 하거나 폭력을 행사한 적이 없다는 점과 그리고 청소년들이 부모님에게 분노해서 청개구리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을 예를 들어서 아버지가 무의식적으로 어머니에게(부인항의와 분노로 술을 마심으로써 복수를 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을 했다그 증거로써 화가 나면 아버지가 탁주 2병에서 4병으로 그리고 6병으로 무질서하게 마시고 24시간 술을 마심으로써 보복을 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을 했을 때 어머니가 시인을 했다

치료자는 노후 준비를 완벽하게 해서 노년이 이제 행복한 천국이 되도록 준비를 해 놓고 지금은 거의 매일 같이 서로 물고 뜯고 싸우는 것은 서로가 물고 물리는 물귀신 작전으로 서로를 놓아주지 않고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상호관계가 문제가 된 것이니 이것을 풀어내지 않고 있기 때문에 노년이 더욱 더 지옥으로 변할 수 있다경고를 했다그래서 4가지 방안을 제시를 했다.

첫 번째는 아버지가 치료자에게 6개월 이상 심리치료를 받도록 하는 것이다이것은 아버지의 어린 시절에 어머니 관계(Z씨의 할머니)를 분석으로 풀어 내서 지금의 부인과의 관계에서 엄마와 아들의 역할을 풀어서 아버지가 독립심을 키우는 것에 있다는 것을 설명을 했다. 

두 번째는 아버지 대신에 어머니가 심리치료를 받는 것이다어머니의 어린 시절의 성장 과정을 분석해서 어머니가 지금의 남편과 밀착관계를 풀어내서 스스로 물고 물리는 관계에서 풀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 방안은 아버지를 알코올 중독 병원에 입원을 시키는 것이다이미 Z씨가 주변에 이름 있고 시설이 좋은 xxx 알코올 중독 병원을 인터넷으로 알아보았고 어머니와 결혼한 딸들이 가족 회의에서 이미 그 병원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알코올 중독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 회복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지적을 해 주었다.

 알코올 중독 병원은 3개월 프로그램으로 3개월 동안 입원해서 외출 금지와 초반기 가족 면회 금지 그리고 술을 마시지 않고 미술치료음악치료가족 치료 등의 프로그램과 알코올 중독 강연회 참석 등의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도 어머니와 가족 구성원들이 다 잘 알고 있었다

네 번째 방안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제안이 수용되어지지 않는다면 어머니를 아버지와 분리 시키고 어머니가 근처에 혼자 살고 있는 이모네 집에서 3개월 동안 지내도록 해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물고 물리는 관계를 떼어내어서 분리 시키고 아버지를 혼자서 일어날 수 있도록 독립심을 기르게 한다는 조건이었다

어머니의 빈 자리는 Z씨가 본가에 들어와서 어머니 대신에 아버지를 3개월 동안 보조 치료사의 역할을 하면서 아버지와 대화를 해 나가면서 아버지가 어머니 없이도 혼자서 생활을 하도록 지원하면 약 3 개월 정도 시간이 지나가면 아버지가 어머니와 아들의 도움이 없이도 혼자서 식사를 챙기고 준비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지적을 했다.

치료자가 이전에 아버지와 컨설팅 시간에 이 조건을 제시를 하면서 전기 밥통에 자동으로 밥 문제를 해결하고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첫 번째 딸이 저녁 때 퇴근할 때 부식을 사서 아버지의 집에 냉장고에 넣어 두도록 해서 식사 시간에 아버지가 밥과 반찬을 챙 켜서 먹도록 하고 아버지는 자신의 취미인 신문 보기와 책 읽기를 하면서 하도 싶은 취미 생활을 하도록 권유를 했을 때 아버지는 O.K.라고 승낙을 한 것을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해 주었다.

핵심 문제는 어머니가 아버지를 어린이로 만들려고 하지 말고 아버지가 혼자서 식사 문제를 해결하도록 해 주고 어머니는 아버지로부터 떨어져서 혼자서 여행도 가고 취미 생활을 하도록 서로 밀착된 관계를 떼어내야 한다(사적인 심리적 공간을 확보)는 것을 강조를 하면서 네 번째 제안을 설명을 해 주었다.

어머니와 딸은 치료자의 이야기를 듣고 집으로 돌아갔다치료자는 Z씨와 협력 하에서 아버지로부터 1주일에 1회씩 심리치료를 받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그러나 그 날에 아버지가 이빨 때문에 치과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보내는 바람에 치료자와 심리치료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후에도 첫 번째와 두 번째 세 번째는 지켜지지 않았다.

 아버지의 알코올 중독 문제는 이미 몇 년 전부터 가족 회의에서 결정이 되었다어머니가 볼멘 소리로 도저히 아버지를 감당할 수 없다는 호소에서 아들과 딸들과 사위들이 결정을 했고 아들 Z씨가 인터넷에서 가장 적당한 알코올 중독 병원을 물색을 했고 그곳이 시설과 치료 프로그램을 알고 소개를 해주어서 가족들이 다 알고 있었다. 3개월 프로그램으로 입원치료를 원칙으로 하고 있고 그리고 그 병원에서 운영하는 가족치료미술치료음악 치료 등과 각종 가족구성원들을 외한 세미나도 개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미 그 이전의 해에 어머니가 알코올 중독 병원에 입원할 때 가족구성원의 2명의 대표가 사인으로 허락한다는 서류를 만들어 가지고 다니면서도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아버지가 기분이 좋거나 마음이 안정되면 하루에 2병으로 만족하고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기 때문에 어머니가 이번에든 그리고 또 이번에는 혹시나 하고 아버지가 술을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인다가족들이 여러 번 왜 입원시키지 않는가?라고 지적을 해도 어머니가 실천을 하지 못하고 미루어 온 것이었다.

아버지는 2017년에 3 1일 날에 부부가 12시간 부부 싸움 후에 새벽 4시에 아버지가 집을 나가서 홧김에 술을 계속해서 마시고 길거리에 넘어져서 잠을 자고 있는 것에 분노해서 어머니가 119를 불러서 알코올 중독 병원에 입원을 시키게 되었고 이 때 Z씨가 호출을 받고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를 모시고 xx 알코올 중독 병원으로 가게 되었다.

 알코올 중독 병원에 입원은 아버지가 반항하지 않았다아들과 119 대원에 순수하게 반응해서 큰 문제없이 입원을 했다입원 당일 날 남자 간호사가 아버지의 소지품과 옷들을 병원 복으로 가라 입게 하고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담배들을 몰수를 했다병원 안에서는 금연이라는 것과 그리고 담배는 지정된 장소에서 하루에 1개피로 정해진 규정을 이야기를 하고 아버지의 담배와 가지고 있는 현금과 카드 등을 몰수 해서 보관하면서 필요할 때 제공해준다고 했다

입원 1주일 후에 가족들이 면회를 갔을 때 아버지의 분노가 폭발했다어머니가 아버지에게 1주일만 입원하면 퇴원시켜주겠다는 거짓말과 병원에서 남자 간호사들이 병원의 규칙을 강압하면서 아버지와 갈등을 하고 있다는 Z씨의 아버지 면회의 소식을 들으면서 치료자는 아버지의 알코올 중독 치료를 이미 끝났다고 단언을 해주었다. Z씨는 눈이 둥그래져서 그 이유를 물었다

치료자는 집에서 아버지는 어머니의 지나친 간섭에 반발해서 분노로 어머니에게 복수를 한 것이 조용할 때는 하루에 2병의 술로 스스로 컨트롤을 했지만 어머니가 너무 간섭으로 화가 치밀어 올라와서 참을 수 없는 분노에 24시간 술로써 새벽이나 낮이나 관계 없이 편의점(24시간 개방)에 가서 탁주를 마셔온 것을 지적하면서 알코올 중독 병원에서는 어머니 대신에 남자 간호사가 간섭(담배를 몰수)하고 통제하고 행동을 억제하라고 하는 것이 바로 집에서 어머니가 하던 것을 병원에서 남자 간호사가 하고 있으니 아버지는 그 반달로 반기를 들고 청개구리 행동을 할 것이라고 예고를 했다

입원 2주일 3주일이 흘러가면서 아버지는 시도 때도 없이 어머니에게 그리고 가족들에게 전화를 해서 퇴원시켜달라고 전화를 빗발쳤다더 붙여서 아버지는 병원에서 금기시 된 행동을 마구잡이로 했다. 방에서 오줌을 지리거나 밤에 오줌을 싸거나 혹은 옷을 홀랑 벗고 알몸으로 걸어 다니거나 아무데나 드러누워서 간호사들이 힘들어 하게 했다아버지는 치료 프로그램에 일체 참석하지 않았다병원을 감옥보다 더 한곳으로 표현을 했다의사와 간호사들을 불신하고 욕설을 했다병원에서 더 이상 견디지 못해서 퇴원을 했고 입원 2개월 만에 집에 귀가 하게 되었다.

치료자는 Z씨에게 집에 귀가하면 아버지가 24시간 탁주 화풀이를 할 것이다 라고 예고를 했다왜냐하면 어머니에 대한 화풀이를 술로써 복수를 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을 했다아버지가 퇴원해서 집에 왔을 때 아버지는 24시간 밤 중에 혹은 새벽 2 3시에 편의점에 가서 술을 사서 마셨다인사불성이 되어 길거리에 쓰러져 잠을 자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서 어머니는 아버지를 아파트 도어문을 나가지 못하게 막았다아버지의 다리를 붙잡고 울면서 외출을 하지 못하게 하고 아버지는 밖으로 바람을 쏘이려 나간다고 하는 힘겨루기가 SOS로 온 가족 구성원들이 호출이 되었고 스트레스에 가족 구성원들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둘째 딸이 인터넷에서 찾아본 인근에 다른 알코올 중독 병원에 다시 입원을 하게 되었다. 

두 번째 입원도 똑같았다아버지는 알코올 중독 병원을 감옥보다 더 악독한 것으로 나쁘게 비난을 했다면회를 가는 가족구성원들에게 나는 자유로워지고 싶다. 너희들이 아무리 나를 압박해도 나는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간섭을 받고 통제를 받는 것에 참을 수 없다.” “억압하면 할수록 나는 더욱 더 강해질 것이다. 등등의 말로써 치료 프로그램에 참석하지 않고 병원에서 지시 하는 룰을 따르지 않았다.

 치료자가 2시간 컨설팅 때 어머니와 첫째 여동생에게 왜 어머니가 몇 년 동안 아버지가 하루에 탁주 2병을 허용해주다가 갑자기 한 방울도 마시지 못하게 하고 있는가? 그 이유를 물어보았을 때 어머니는 알코올 중독 병원의 의사 선생님이 알코올을 계속 마시게 되면 치매로 급속도로 연결된다는 것과 알코올 중독 가족들을 위한 강연 그리고 책들을 통해서 알고 있다고 했다

치료자는 치료자가 미국에서 심리치료학을 공부하면서 알코올 중독과 마약 중독사 자격증을 딴 것을 보여주면서 알코올이 치매를 촉진시키는 것은 틀림없지만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못하게 금지하고 강압을 해서 서로 부부 싸움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치매에 알코 보다 몇 배 치명적이라는 것을 이야기를 해 주었다.

 치료자는 예를 들어서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고 조용하게 될 때는 아버지가 하루에 2병의 탁주로 스스로 컨트롤을 하고 잘 지낸다고 어머니가 아버지가 이제는 알코올을 컨트롤하게 되었으니 온 가족이 축하 파티를 하자” 라고 해서 자녀들을 모이게 하고 식사를 한 적이 있지 않는가? 라고 지적을 했을 때 시인을 했다

문제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갈등이 어머니가 화를 내고 분노하고 짜증이 나서 아버지를 공격하게 되면 아버지가 분노로 화풀이로 어머니가 가장 싫어하는 술 마시는 행동으로 복수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를 해 주었다.

 두 번째 알코올 중독 병원에서 주치의 의사는 알코올 중독 치료가 실패했으니 더 이상 입원은 시간 낭비와 돈 낭비라고 지적하면서 퇴원을 허락해 주었다아버지는 집에 돌아왔다치료자는 Z씨에게 아버지와 어머니가 물귀신 작전으로 서로 물고 물리는 관계어머니가 아버지를 컨트롤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더 숨통이 조이면서 관계가 악화 될 것이라고 지적을 하면서 아버지에게 면화를 갈 때 Z씨가 심리치료사 선생님이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복수로 화풀이를 하는데 그렇게 하면 아버지가 복수는 할 수 있지만 아버지가 요양원에 강제 입원하거나 혹은 치매 병원에 강제로 입원해서 자유가 없는 완전이 구속과 쇠고랑을 찰 수도 있으니 아버지자 그 점을 깨닫게 하도록 했다.

 첫째 여동생과 어머니는 만약에 아버지가 계속해서 가족들이 감당을 하지 못하게 되면 이제는 할 수 없이 본가를 매매 처분하고 아버지는 영구적으로 치매 병원 혹은 요양병원에 강제로 입원시켜서 나오지 못하게 할 수 박에 없다는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Z씨가 듣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아버지가 두 번째 알코올 중독 병원에서 퇴원을 하는 날 어머니와 첫째 여동생이 의논을 해서 이번에는 암 환자들 혹은 임종을 앞둔 환자들이 편안하게 요양을 할 수 있는 자연치유 마을로 옮기기로 했다한 달에 150만원을 주고 아버지를 알코올 중독 병원에서 직행으로 자연 치유 마을로 승용차로 이동을 시켰다아버지는 몰랐다 그곳에 가서 온 가족 구성원이 모여서 아버지가 자유롭게 행동하고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곳이라고 축하해주었다. 물론 술을 그곳에서 팔지 않는 것으로 담배를 지정된 장소에서 피울 수 있도록 했다그곳에 입원한 사람들은 의사의 도움이 없이 자유롭게 휴식과 쉴 수 있도록 한 곳으로 개인이 생활 하도록 설계되어져 있었다아버지의 소지품들을 넣어주고 온 가족들이 인사를 하고 나왔는데 나중에 아버지가 뒤에서 걸어서 나와서 따라오는 것을 발견하고 할 수 없이 아버지가 본가로 귀가를 하게 되었다.

여기까지는 지금까지 A씨가 4년 전부터 부부 싸움으로 탁주 2병을 마시면서 서로 힘겨루기를 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큰 문제는 없었다그러나 문제는 혹독하게 더운 그해 여름에 터지게 되었다.

최근에 어머니는 2층 슬라브 주책을 매매를 해서 돈을 많이 가지고 있었고 또 경제적으로 매달 마다 들어오는 연금과 어머니가 따로 가계에 투자를 해서 월세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10억 정도의 현금을 가지고 있었다

어머니는 Z씨가 독신으로 혼자 살고 있다는 것을 감안을 해서 지금 고시원에서 열악하게 살고 있는 아들을 위해서 약 25평 정도 되는 아파트를 사 주겠다고 호언장담하면서 그러한 아파트가 있는지 알아 보라고 1년 전부터 아들 Z씨에게 이야기를 해 왔지만 Z씨는 거부를 했다

만약에 Z씨는 그곳에 입주하게 되면 어머니의 간섭과 시도 때도 없이 방문을 해서 자신을 좌지우지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Z씨는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받게 되면서 어머니의 지나친 간섭과 지시 명령과 처벌 때문에 Z씨 자신의 자아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다(심리적 영역의 침해) 것을 치료자의 심리치료를 통해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시는 어머니의 간섭과 지시를 거부하고 독립심을 키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후에 아버지는 스스로 하루에 탁주를 2병으로 제한을 하고 남는 시간에 신문보고 책을 읽고 TV 뉴스를 보면서 잘 지내게 되었다어머니는 과거의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못하게 한 것에서 한발 후퇴해서 하루에 탁주 2병은 허용해주었고 냉장고에 탁주를 2병을 넣어 주어서 밖에서 술을 마시지 않고 집에서 조용하게 마시게 했다.

 2018년의 초반기의 6개월 -7개월이 잘 흘러 갔다그해 설날에 아버지는 여전히 술을 2병식 마셨지만 조용하게 마시고 어머니도 이제는 마음이 놓인다고 모처럼 방문한 아들 Z씨에게 아버지가 치매가 아니고 머리가 맑아졌으니 아버지에게 불쾌한 이야기 혹은 자극적인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주의를 했다.

 문제는 그해 여름에 터지게 되었다어머니가 게장(꽃게장)을 담가서 맛이 좋으니(어머니의 요리 장기온 가족들이 함께 모여서 식사를 하자고 연락이 와서 Z씨가 참석을 했다어머니는 이제 딸들은 결혼을 해서 안정되어 잘 살고 있는데 아들 Z씨는 아직도 고시원에서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있으니 25평 정도 되는 아파트를 사 줄 것이니 네가 좋아하는 아파트를 골라보아라 하고 졸랐다. 그리고 운전 면허를 따면 승용차를 사 줄 것이니 그 승용차로 엄마를 태우고 나들이를 가지고 요청도 하고 Z씨가 구식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고 고물 휴대폰을 버리고 새로 엄마가 최신형으로 사주겠다고 졸랐지만 Z씨는 완강하게 거부했다

처음에 독립해서 나올 때 원룸을 하나 얻어 달라고 했을 때 부모님은 거부했다어린 시절에 Z씨는 어머니에게 학용품 혹은 필요한 몇 가지를 요구 했다가 너는 어머니에게 돈 달라고 할 자격이 없다너 때문에 돈이 얼마나(보험이 안 되는 성장 호르몬 주사)덜어가는데 다른 자식들을 제외하고 너는 절대로 엄마에게 돈을 요구하지 말라”라는 말을 듣고 나서 지금까지 한번도 어머니에게 돈을 요구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Z씨는 만약에 아파트를 사면 시도 때도 없이 어머니가 와서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하고 간섭을 할 것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간섭보다 마음이 편안 고시원이 좋다고 해서 거부를 해 왔다(심리적 영역의 침해)

 그런데 이번 여름에 꽃 게장 음식 파티에서 어머니가 Z씨에게 폭탄선언을 했다네가 1주일에 한번씩 본가에 와서 집안 청소를 하고 그리고 아버지의 어깨와 팔을 주물러 주고 아버지를 위로해 주라는 것이었다. Z씨는 어머니가 그렇게 하고 싶다면 간병인 혹은 청소 아주머니를 불러서 1주일에 1회로 청소를 하도록 하세요 라고 대답을 하고 고시원에 와서 분노가 치밀어 올라와서 밤과 낮이 바뀌어버렸다고 치료실에서 호소를 했다

치료 초반기처럼 어머니의 분노가 치밀어 올라와서 밤에 새벽 5-6시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아침에 잠이 들면서 오후 2-3시에 깨어났고 낮 시간과 밤 시간이 바뀌어 몇 일 동안 고생하고 있다고 호소를 하게 된 것이었다.

이 시점에서 치료자가 치료 초반기에 어머니가 3명의 딸들과 관계를 하는 것장남인 Z씨에게 관계를 하는 것다른 이유가 외할머니의 아들 편애 때문에 그 분노가 아들 Z씨 한데로 흘러간다 라는 첫 번째의 가설이 수정된다는 이론이 아래에서 등장하게 된다. 이 부분은 Z씨의 엄마죽은 엄마 증후군이 핵심 단초를 체공하게 된다.

아래에서 분석의 과정에서 한가지씩 실마리들이 모이게 되면서 첫 번째의 가절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이 밝혀지게 된다.

 어머니가 유일하게 아들인 Z씨에게만 언어 폭력을 사용한다 것을 치료 초반기부터 잘 알고 있었다딸들에게는 절대로 그러한 언어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치료자는 어머니의 그러한 언어 폭력이 외할머니가 아들 1명에 딸이 4명이어서 어머니가 가장 싫어하고 미워하는 어머니의 오빠를 아들아들 하고 편애한 것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을 했다어머니는 늘 부모님이 아들 도시락에는 달걀을 넣어주면서 어머니의 도시락에는 김치와 콩나물이 전부였다는 말을 수없이 했기 때문에 아들에 대한 편애 때문으로 보았다

그런데 Z씨의 이야기를 통해서 3명의 이모들 중에 큰 이모는 사망을 했고 다른 두 명의 이모들은 어머니와 전혀 성격이나 행동이 완전히 다르다고 이야기를 했다일전에 막내 이모가 어머니와 함께 이모의 승용차를 타고 가면서 뒷좌석에서 Z씨가 듣고 있는데 어머니가 “내가 어린 너를 업고 키운다고 골병이 들었다네가 뒤에서 나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겨서 머리카락이 한 움큼 씩 빠졌다” 라고 이야기를 할 때 이모가 “이제 그만해라 한번 더 들으면 100번이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과거에 3명의 이모들을 만나면 한결 같이 성격들이 온순하고 친밀하고 따뜻해서 어머니와 정 반대라고 했다

어머니는 공격적이고 분노하고 짜증적이고 부정적이고 적대적이라고 했다그래서 치료자는 어머니는 다른 형제들과는 완전히 돌연변이로 블랙십(black sheep)검은 양으로 표현을 했다양들은 모두 흰색인데 검은색의 양이라는 표현은 다른 형제들과 완전히 다른 청개구리를 의미한다고 설명을 해 주었다.

 Z씨가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받기 시작한 이래 11이 되는 2018년의 2월 달 시점에서 치료 회기에서 한가지 실마리를 치료자가 포착을 했다. Z씨가 대학 졸업 반 때 졸업 사진 촬영을 위해서 신사복과 넥타이를 맨 차림으로 거울 앞에 서 있을 때 어머니가 뒤에서 Z씨를 보고 네가 외삼촌과 판박이 이다” 라고 이야기를 했고 첫째 여동생이 똑 같은 목소리 오빠는 외삼촌과 판박이이다” 라고 했다. Z씨는 자신이 외탁을 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치료자는 11년 전에 Z씨의 심리치료 초반기에 2개월 시점에서 어머니가 찾아와서 컨설팅을 한 것이 기억이 났다 그리고 2017 1월 달에 어머니가 치료자에게 감사의 말을 할 때 그리고 어머니와 첫째 여동생이 아버지의 음주 문제를 컨설팅 하면서 어머니를 3번째 만나서 컨설팅을 하면서 아들 Z씨가 아버지보다 어머니를 많이 닮았다는 것을 이야기를 했었다.

 Z씨로부터 외삼촌의 판박이라는 말과 그리고 어머니가 딸들에게는 하지 않는 언어 폭력을 아들 Z씨에게 하고 있다는 것에서 어머니가 Z씨에게 한 언어 폭력들은 정상적인 아들에게 하는 말들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치료 초반기에 알고 있었지만 치료자는 어머니의 친정 어머니의 아들(외삼촌)에 대한 편애 때문으로 해석하고 있었다

그런데 외삼촌과 판박이는 외할아버지와 판박이라는 뜻이고 외삼촌과 외할아버지에 대한 어머니의 분노가 아버지와 오빠를 닮은 Z씨에게 투사되어 흘러간다는 연결에서 치료자가 Z씨에게 이것을 지적을 했다. Z씨는 이미 치료 초반기에 딸들에게는 언어 폭력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아들인 자신에게 만 눈에 띄게 아들을 학대하는 것을 감지하고 초등학교 6학년 때 호적을 떼어본 결과 계모가 아니고 친 엄마라는 것을 확인했다고 털어 놓았던 것은 지금까지 수십 번이 되었다

여기에서 또 한가지의 실마리가 연결되었다둘째 여동생이 고교 2학년 때 엄마와 힘겨루기를 하면서 엄마에게 분풀이를 하면서 엄마는 언니들과 배다른 형제가 아닌가? 라고 화풀이를 할 때 어머니가 부들부들 떨었다는 것을 Z씨가 옆에서 본 것을 이야기를 해 주었다.

 여기에서 지금까지의 수수께끼의 퍼즐들이 들어맞았다어머니는 아버지가 바람을 피워서 낳아서 집에 데리고 온 자식으로 형제들과 배가 다른 사람으로 계모인 양모에게 언어 폭력을 당한 것으로 연결되어졌다그 증거로써 아버지와 결혼 후에 Z씨가 3-4살 때 아버지와 어머니가 부부싸움을 크게 해서 서로 말을 하지 않고 몇 주일이 지나가면서 할머니가 아들과 며느리가 이혼할 지경에 도달했다고 걱정을 해서 Z씨에게 어머니의 친정 사돈 어른에게 전화 다이얼을 돌려 달라고 해서 Z씨가 전화를 걸어서 할머니가 사돈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고 했다할머니가 아들과 며느리가 이혼하게 되었느니 와서 딸을 말려달라고 했고 사돈 어른이 O.K.를 해서 몇 시간 후에 귀부인 차림으로 어깨에 솔을 걸친 어머니의 친정 어머니가 대문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자 어머니가 벼락 같이 달려 나가서 왜 쓸데 없이 부부 싸움에 간섭하느냐?라고 따지면서 사돈 어른을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밖에서 되돌려 보낸 것을 기억을 했다

할머니는 사돈 어른이 집에 와서 커피라도 마시고 예의를 표시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라고 며느리인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했지만 어머니는 할머니가 왜 친정 어머니에게 쓸데없이 전화를 해서 문제를 더 꼬이게 만드는가? 라고 할머니를 매섭게 처벌을 하는 것을 Z씨가 지켜 보았다고 했다.

 이후에 Z씨는 외할머니가 한번도 Z씨의 집을 방문한 적이 없다는 것과 외갓집에 몇 번 갔을 때 어머니와 외할머니 사이에 관계가 좋지 않았고 외할머니 집에 있는 피아노를 Z씨가 호기심으로 만져보고 건반을 만지려고 했을 때 외할머니가 주의 경고를 하면서 만지지 못하게 한 것을 회상을 했다

이러한 정황들의 실마리들을 모아서 연결해 보면 어머니는 아버지의 외도로 태어났고 계모 밑에서 혹독하게 언어 폭력으로 가족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식모처럼 살아온 것으로 보였다어머니의 마음 속에는 성장의 과정에서 계모로부터 받은 언어 폭력이 기억으로 입력되어져 있었기 때문에 아들 Z씨가 어머니의 아버지와 오빠를 닮았기 때문에 자신을 낳아서 보호해주지 못하고 이복 형제들 사이에서 계모에게 학대 받은 것을 방치한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아버지를 닮은 오빠에 대한 분노와 적대감정어머니 자신도 모르게 Z씨에게 흘러간 것을 분석해 낼 수가 있었다.

 어머니가 Z씨에게 한 언어 폭력들 너는 밥값을 해야 한다” ”네가 밥을 먹고 살고 있는 것도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네가 지금 집 밖으로 쫓겨나면 고아원 밖에 갈 곳이 없지 않는가?” ”이 썩어빠질 놈아네가 그렇게 해서 어떻게 험한 세상을 살아갈 것인가?” “너는 돈을 벌줄 모르고 쓸 줄만 안다.” ”너는 돈 아까운 줄 모른다땅을 파 보아라 10원짜리 동전 하나 나오는가?

이러한 언어 폭력은 여동생들 한데서는 사용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치료자는 이러한 말들은 계모가 미운 털이 박힌 자녀에게 하는 말들이 아닌가? 는 이해가 되는데 자신의 배속에서 나온 아들에게 그것도 딸이 3명에 아들 한 명으로 보통 어머니들이 아들아들 하면서 편애하는 것이 보통인데 Z씨에게는 어머니의 그러한 표현들이 이해되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10년 동안 미스터리로 남아 있었다.

 어머니의 언어 폭력은 Z씨에게 각인으로 남아 있었다본가에 갔다 오면 Z씨는 분노하고 화가 치밀어 올라와서 밤에 잠을 자지 못하고 밤과 낮이 바뀌기 일 수였다.

 사건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그해의 여름에 터지게 되었다몇 개월 전에 어머니는 첫째 딸을 통해서 어머니가 아들 Z씨를 위해서 인근에 28평 아파트가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계약을 했으니 이사 갈 준비를 하라고 통고를 받았다

본가에 있는 Z씨의 책들과 물건들을 전부 치우고 이사 갈 준비를 해 놓아라 라고 했다어머니는 45평의 본가 아파트를 팔고 28평의 아파트로 이사를 간다고 했다그곳은 아파트의 제일 꼭대기 층으로 아버지가 담배를 피우면 이웃 사람들이 비난을 면할 수 있다는 것이 제일 큰 이유였다. Z씨가 치료자에게 어머니의 이사 준비와 28평 아파트로 아버지와 함께 이사를 간다는 말을 듣고 앞으로 태풍 급 폭풍이 몰아칠 것이라고 예고를 했다. Z씨는 이해하지 못했다

치료자는 작은 평수에서 큰 평수로 이사를 가면 확대와 성공의 심정으로 기분이 좋겠지만 45명에서 28평으로 이사를 가면 축소된 것에다 지금까지 장식물들과 가구들을 전부 버리고 가야 하는데 그것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대 폭발을 하게 될 것이라고 예고를 했다

어머니는 스트레스에 취약하고 심하게 불안한 사람이고 아버지 역시 불안한 강박증 환자(아버지는 결백증,  강박증을 가지고 있었다)이기 때문에 어머니는 모든 스트레스를 아버지에게 화풀이를 할 것이고 아버지를 그 보복으로 술을 마시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를 해주면서 어머니에게 돈이 궁해서 돈 때문에 이사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45평을 팔지 말고 28평을 사서 아버지가 그곳에 혼자서 독립해서 식사와 반찬을 지원해서 밥을 먹을 수 있도록 하고 어머니와 아버지를 떼어내서 아버지의 숨통을 열어주고 어머니의 노예생활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하도록 조언해 주었다.

 8월 달에 어머니의 생신으로 가족들이 모였을 때 어머니는 아직도 본가를 팔고 28평으로 이사하는 궁리를 하면서 집에 있던 고서들과 그림들을 많이 처분해서 서재가 텅 빈 것을 첫째와 사위가 보고 집이 텅 비게 되면 집을 구매하려고 오는 사람들도 집에 덩그러니 행하게 보이면 싫어할 서이니 집에 매매되고 나서 처분하라고 일러주었다어머니는 한 사람이 구입하겠다고 왔는데 취소를 해서 팔지 않았다고 했다

가족들이 모두 지금 아파트 값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는데 팔지 말고 28평만 사라고 조언을 했고 Z씨가 심리치료사 선생님이 45평을 가지고 있으면서 아버지가 28평에 왔다 갔다 가면서 담배를 피고 식사를 해결하도록 도와주면 아버지와 어머니가 노후를 부부 싸움에서 벗어나서 즐겁게 행복하게 보낼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한 것을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했을 때 어머니가 지금 우리 부부는 노년에 지옥을 경험하고 있다고 시인을 했다

아버지에게 당장 달려가서 당신이 28평 아파트에서 혼자 기거하면 되지 않는가? 라고 이야기를 했을 때 아버지가 No라고 반대를 하는 것을 지켜 보았다고 했다일단 45평의 본가 아파트는 팔지 않기로 어머니가 결정을 했다.

 그 시점의 날짜에서 2주일 전에 토요일에 어머니가 28평 아파트 잔금 치는 날이니 은행에 와서 Z씨의 이름으로 저축된 돈들을 옮기려 오라고 연락이 왔다. Z씨가 도착해서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Z씨가 인근 몇 군데 은행에 가서 돈들을 모아서 계약금으로 지불하도록 했고 28평의 아파트는 정리가 되었다. 그 때 어머니가 하는 말이 걸작이었다내가 그 동안에 이사와 28평 아파트 때문에 몇 주일 동안 걱정 근심 염려 불안으로 잠을 자지 못했는데 이제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다고 기뻐했다.

 그 시점에서 Z씨는 어머니가 아파트 계약금 지불하는 날에 비가 폭우로 쏟아져서 어머니가 가져온 새 우산을 어떤 사람이 헌 우산으로 바꿔지기 한 것을 아버지에게 화를 내는 것을 보았다아버지는 자신의 우산을 잘 보관하고 있는데 어머니가 자신의 새 우산을 잃어버리고 화풀이를 아버지에게 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스트레스를 풀고 있다는 것을 지켜보았다.

 어머니는 자신의 생일 날에 둘째 딸 내외가 빠진 것에 대해서 둘째 딸에께 이사를 가지 위해서 둘째의 짐들을 모두 챙겨가라고 해서 둘째 딸이 친정을 방문했다가 어머니와 대판 싸움을 하고 다시는 이 집에 발들 들려놓지 않을 것이라고 막말을 하고 갔다고 했다둘째는 어머니에게 울면서 대학시절에 어머니는 늘 언니와 나를 비교를 했고 나를 비하라고 평가절하하지 않았느냐나는 인격적으로 매장당했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결혼 후에 내가 이 집 근처에 오지 않으려고 했는데 지금까지 참아 왔지만 앞으로 이 집에는 발을 끊어버리겠다고 막말을 하고 갔다고 했다.

 그 다음 주일이 가기 전에 Z씨가 치료자에게 휴대전화를 해서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넘어져서 응급실에 실려 갔다고 연락이 와서 급히 응급실로 달려간다고 했다갔다 와서 전화를 하겠다고 했다몇 시간 후에 다시 연락이 왔다아버지가 술에 취해서 길거리에서 넘어져서 머리에 피를 흘리는 것을 이웃 사람들이 보고 119에 연락을 해서 병원의 응급실로 옮기고 어머니에게 연락해서 어머니와 Z씨가 병원 응급실에 도착해서 주치의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아버지가 많이 다쳐서 머리에 출혈이 있어 MRT, CAT 등의 사진을 찍어 보고 있는데 수술은 내일 아침에 수술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응급실에서 가족들을 면회 시간 이외에는 들어올 수 없으니 집에 가서 내일 아침에 9시에 수술에 들어갈 것이니 그 때 오라고 했다의사로부터 수술에 동의서를 Z씨 보고 서명을 하라고 해서 어머니에게 물어 보니 어머니는 정신이 없어서 Z씨가 하는 것이 좋다고 해서 서명을 했다.

 그 다음 날에 9시에 아버지가 수술실에 들어갔고 3시간 후에 수술이 끝나고 응급실에 되돌아왔는데 수술은 잘 되었는데 아버지가 평소에 술을 많이 마셨기 때문에 간 기능이 좋지 않고 심한 흡연으로 폐의 기능이 좋지 않고 B형 간염으로 간이 좋지 않아서 뇌 이외의 다른 기능들 때문에 2차 수술이 필요하면 어려움이 있겠다는 말을 듣고 오후에 면회 시간에 다시 들리기로 했다. 아버지는 처음에 깨어나서 과거의 머리를 꿰맨 것처럼 생각하고 퇴원하겠다고 하는 것을 의사가 수면제를 주사를 해서 잠을 자고 있었다.

 오후에 온 가족들에게 연락이 가서 삼촌이 급히 달려와서 명 문안을 하고 나서 어머니에게 형님이 어떻게 된 것인가?라고 물었을 때 어머니가 아버지와 갈등을 소상하게 이야기를 해 주었다. 

아버지가 밖에서 탁주를 사가지고 오는 것을 어머니가 빼앗아서 술을 부어버리자 아버지가 다시 술을 사 가지고 들어오는 것을 어머니가 빼앗아가 다시 부어버리고 서로 다투다가 아버지가 다시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 어머니가 따라가지 않고 내버려 두었는데 아버지가 술에 만취되어 길거리에서 넘어져서 머리를 많이 다쳐 쓰러져 있는 것을 이웃 사람이 발견하고 119에 연락해서 아버지를 병원 응급실에 실어 보내고 어머니에게 연락이 와서 병원에 달려왔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 때 삼촌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떼어내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28평의 아파트에 Z씨가 고시원에서 짐을 싸서 28평으로 이사를 해서 아버지를 모시고 같이 사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Z씨가 알코올 중독인 아버지를 어머니도 감당하지 못하는데 아들인 내가 아버지를 감당할 수 있겠는가? 라고 난색을 표시를 했다. Z씨는 아버지를 며칠 동안은 간호를 할 수 있는데 영구적으로 아버지를 모시라고 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이야기를 했을 때 어머니가 나는 더 이상 너의 아버지와 함께 할 수 없으니 아들인 네가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다그쳤다

어머니는 작년에 네가 어머니와 아버지를 떼어놓아야 한다고 아이디어를 낸 것이 바로 네가 아닌가?라고 호통을 쳤다. Z씨는 즉각 치료자에서 전화로써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호소를 했다치료자는 그 문제는 아버지의 뇌의 상처 결과에 따라서 달라질 것이라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아버지의 뇌의 상처가 어느 쪽인가? 를 물어 보았을 때 왼쪽 머리의 뒤통수라고 했다치료자는 왼쪽 뇌 즉 좌뇌는 언어 지역이 있기 때문에 수술에서 잘못되면 언어를 상실할 수 있기 때문에 아버지가 퇴원을 할 시점에서 아버지의 간호 문제가 논의되어져야 함을 이야기를 하도록 했다

만약에 아버지가 뇌수술 이전처럼 언어와 행동에 아무런 이상이 없을 때는 작년에 치료자가 아이디어를 낸 것처럼 아버지를 자치적으로 생활하도록 하고 어머니를 떼어내서 아들이 약 3개월 동안 아버지를 도우면서 식사와 반찬을 가족들이 준비해주고 아버지가 밥과 반찬을 스스로 준비해서 식사하도록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아직도 유효하지만 만약에 아버지가 손과 발이 어눌하고 옆에서 도와주어야 한다면 간병인 혹은 요양원에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를 하면서 아버지의 경과를 지쳐보도록 조언을 했다.

 지난 주일에 Z씨가 어머니와 함께 주치의의 보고를 들었다아버지의 수술의 경과는 좋은데 문제는 실핏줄이 터져서 피가 고이기 때문에 뇌를 봉합할 수 없이 절개를 해 놓았는데 2차 수술을 하는 것보다 피를 제거하는 것이 더 좋겠다는 결론이 내려졌다고 했다간 수치와 폐 수치 심장 수치 등이 좋지 않아서 그냥 피를 제거하는 쪽으로 진행하는데 앞으로 3개월 정도 입원을 해야 퇴원할 수 있는데 그 결과는 팔다리를 잘 쓰지 못할 수도 있고 그리고 말을 사용하는데 어려움이 따를 수 있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아버지는 지금까지 5번째 머리를 꿰매는 수술을 했다그러나 이번에는 심각했다과거에는 머리를 몇 바늘 꿰매고 그냥 퇴원할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뇌를 크게 다쳐서 수술을 대기 중이라고 했다.

이후에 아버지는 뇌의 수술을 받았고 뇌에 피가 고여서 그것을 제거하는 수술을 기다리고 있으면서 아버지는 의식이 없는 수준으로 산소 호흡기를 코에 대고 그리고 음식을 호스로 지급하는 반쯤 의식이 없는 상황으로 변화된 것을 Z씨가 아버지의 병원 방문을 통해서 소상하게 알게 된 것이었다.

Z씨와 어머니는 아버지의 주치의로부터 3개월 정도 기다려 보아야 한다고 했던 이야기가 지난 주일에 그 주치의가 앞으로 1년을 더 기다려 보아야 한다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 절망적이 되었다고 토로했다아버지는 오줌과 똥을 가지지 못하고 음식도 호스를 통해서 공급을 해야 하고 호흡도 산소 호흡기를 달고 있었다아버지는 뇌의 상처 때문에 항문이 열려 있어서 코의 호스를 통해서 미음으로 공급하는 음식이 소화가 되어서 그대로 줄줄 흘러내리기 때문에 대변을 닦아 내야 하는 신세가 된 것을 지켜보는 Z씨는 분기탱천으로 그리고 절망적으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다.

Z씨의 삼촌이 아버지의 병실을 방문하고 왜 형님이 술을 많이 마시게 되었는가?를 어머니로부터 설명을 듣고 나서 형님과 형수가 따로 떨어져서 분리시켜야 한다고 이야기를 한 것을 어머니가 아들 Z씨에게 이야기를 하면서 이미 그 사건 발생의1 10개월 전에 심리치료사 선생님이 한 이야기를 이제서야 이해하게 되었다고 통탄을 했다어머니는 지금까지 노후에 돈 걱정을 하지 않고 지냈는데 24시간 전문 간병인의 도움으로 하루에 10만원씩의 간병 비용으로 한 달에 3백만 원과 병원 비용을 합치면 한 달에 5백만 원씩 돈이 나가기 때문에 이제 돈 걱정을 하게 되었다고 하소연을 하는 어머니에게 분노가 치밀어 올라와서 참을 수가 없었다고 토로 했다.

여기에서 치료자는 왜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화풀이를 해서 아버지가 홧김에 술을 과도하게 마시고 인사불성으로 길거리에서 넘어져서 이웃의 도움으로 1195번째로 실려 가서 이번에는 대 수술로 갓 태어난 신생아처럼 되었는가를 요약을 해 주었다.

 어머니가 약 2개월 동안 28평 아파트 구입과 45평짜리 매매와 이사 문제로 혼자서 고민을 하면서 그 불안과 긴장과 스트레스가 첫 번째로 아들 Z씨에게로 투사되어져서 Z씨가 약 2주일 동안 밤과 낮이 바뀌고 치료자에게 도움을 받아서 빠져나왔다는 것과 두 번째 둘째 여동생 한데로 흘러가서 둘째와 어머니가 대판 싸움을 벌리고 둘째는 다시는 찾아오지 않겠다고 막말을 하고 떠났고 마지막으로 아버지에게 화풀이를 해서 아버지가 평소대로 탁주 2병을 사가지고 들어오는 것을 빼앗아서 술을 엎질러버리자 아버지가 다시 술을 사가지고 집에 들어오는 것을 다시 빼앗아서 술을 폐기시킨 결과 아버지는 분노해서 밖에서 술을 무제한으로 퍼 마시고 넘어져서 뇌를 다친 것으로 해석을 해 주었을 때 Z씨는 100% 시인을 했다.

 이미 몇 년 전에 Z씨의 부모님 문제는 아버지의 알코올 중독 보다 어머니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은 3명의 딸들이다 인정을 했지만 누구도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를 시도하지 않았다는 것을 치료자가 이미 몇 년 전부터 지적을 했었다.

 오후에 면회 시간에 아버지의 병문안을 온 이모와 함께 아버지를 방문했다아버지는 수면제로 계속해서 잠을 자고 있었다병문안을 온 이모가 점심을 사주겠다고 식당에 나가자고 했다어머니는 피곤해서 그리고 식사를 했기 때문에 쉬겠다고 해서 Z씨와 이모가 인근에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면서 Z씨가 이모에게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80 대의 이모가 Z씨에게 네가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효과가 있는가?라고 물었고 Z씨가 마음이 많이 안정되어 도움이 되고 있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이모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말을 했다

이모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어떤 것이든지 해도 좋다고 했다. Z씨가 이모에게 이모님 내가 외삼촌과 외할아버지를 닮았는지심리치료 선생님이 궁금해 햅니다라고 말을 했을 때 이모는 외삼촌과 외할아버지의 풍채를 닮았다고 했다

외할아버지는 선비 스타일로 근엄하고 학문을 좋아하는 것과 너와 흡사하다고 했다 외삼촌도 비슷해서 너와 많이 닮았다고 했다. Z씨가 어머니와 외삼촌과 관계를 물어보았을 때 어머니는 외삼촌이 결혼하기 이전에는 어머니와 사이가 좋았다고 했다결혼 후에 외삼촌과 어머니가 사이가 나빠졌다고 했다. Z씨는 작년에 이모가 어머니와 함께 막내 이모 승용차를 타고 가면서 “아직도 오빠와 화해를 하지 않았느냐이제 화해를 하도록 해라”라는 말을 들었던 것을 지적하면서 어머니와 외삼촌과 사이에 관계를 물어 보았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Z씨가 이모에게 외할머니와 어머니와 관계를 물었을 때 이모의 얼굴이 찌그러지면서 한 동안 말이 없다가 이모가 느닷없이 너의 어머니는 참 불행하게 자라났다”라고 말을 했다. Z씨는 그 말이 무슨 뜻이기 이해를 하고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이모가 곤혹스러워 하는 표정을 보았기 때문이었다이모는 너의 둘째 여동생과 어머니가 대판 싸움을 하고 둘째가 막말을 하고 떠났다라는 것이 사실인가? 라고 물어 보았고 Z씨가 그렇다고 하자 아직도 너의 어머니가 너에게 언어 폭력적인 말을 하는가?라고 물었고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도 가끔씩 한다고 했을 때 이모는 다시 너의 어머니가 잘 불행하게 자랐다” 라고 여러 번 되풀이 해서 말을 했다.

식사 후에 이모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고 Z씨는 이모를 배웅하고 고시원으로 돌아왔다위의 이야기들은 Z씨가 치료 회기에서 스스로 털어 놓은 것을 치료자가 분석을 한 것이다.

 어머니는 계모 밑에서 자라난 것이 확인되었다어머니가 Z씨에게 사용하는 언어 폭력들은 어머니가 계모 밑에서 자라면서 계모로부터 받은 언어 폭력들이었다어머니의 경험 속에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자신을 낳아주었지만 계모로부터 보호해주지 못한 것아버지를 닮은 오빠에 대한 분노적대감정이 어머니의 아버지와 오빠를 닮은 아들 Z씨 한데로 투사되어져서 어머니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닮은 아들에게 흘러가서 아들의 자아가 붕괴되어버린 것을 어머니는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무의식적으로 어머니의 어린 시절부터 억압된 계모와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분노적대감정과 상처들이 어머니 자신도 모르게 평생 동안 아들 Z씨에게 흘러갔고 아들이 집을 나와서 독립해서 나가고 나서 그 분노가 남편에게 흘러갔고 남편이 부인한데서 받은 스트레스를 복수로 화풀이로 술로서 보복을 한 것이 확정이 된 것이다.

 치료자가 이미 그해 1월 달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서로 거리감을 주고 뒤엉켜서 물고 뜯는 관계를 바로 세우지 못하면 결국은 서로 파멸로 갈 것이라고 예고를 했는데 어머니와 첫째 딸은 그것을 무시했고 1 7 개월 후에 아버지가 뇌를 다쳐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고 있다치료자는 Z씨에게 아버지와 어머니가 젊은 시절에 열심히 노력해서 노년에 경제적인 면에서는 대책을 해서 어려움이 없는데 정작 노후에 부부 문제가 해결되어지지 않아서 결국은 노년이 지옥이 되고 있다는 것을 수 차례 지적을 했다그것이 결국은 예언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치료자는 수많은 정신분석가들이 평생 동안 심리적인 장애들을 치료하고 연구를 하면서 그들의 저서들을 읽고 치료자가 치료에 응용해 오면서 그들의 분석의 과정과 결과들이 정확하게 인간을 예측할 수 있다는 것에 깜짝 놀랄 때가 많다정신분석가는 예언을 하는 사람들은 아니다 그들의 성장 과정무의식적인 행동을 분석해 보면 그들의 현재의 행동과 앞으로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다.

 어머니는 어제 오후에 아버지의 병문안을 마친 한 후에 눈물을 흘리면서 아들 Z씨에게 “너의 아버지는 젊은 시절에 실수가 없고 완벽하게 노후를 준비해서 가장으로서 어머니의 남편으로써 그리고 자녀들의 아버지로써 훌륭한 삶을 살아왔는데 만년에 노후에 어머니인 내가 아버지를 닦달 하고 강압하고 들쑤시고 화풀이를 해서 아버지가 저렇게 되었다”라고 고백을 하고 앞으로 아버지가 온전하게 퇴원하면 아버지에게 잘 해 줄 것이라고 울면서 Z씨에게 고백을 하는 것을 보면서 Z씨는 이 사건이 발발하기 1 7개월 전에 심리치료 선생임이 어머니와 첫 째 여동생에게 아버지와 어머니를 떼어 놓아서 아버지를 자치적으로 일어서게 해서 노후를 행복하게 마지막으로 장식 하도록 도와주려고 했지만 어머니가 거부했기 때문에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분노했다고 털어 놓았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초등학교 1학년 학생처럼 일일이 잔소리를 하고 아버지를 감시하고 지시하고 명령하고 강제로 과잉보호로 아버지를 무력한 어린 아이로 만들었다는 것을 여러 번 지적을 했지만 어머니는 무시하고 이제 와서 뇌를 절개 해 놓고 치료를 받고 있는 아버지 앞에서 늘 훌쩍거리는 모습과 후회하는 모습에 오히려 분기탱천한다고 털어 놓았다.

 Z씨의 어머니는 어린 시절의 상처가 어머니 자신 뿐만 아니고 남편과 그리고 자식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고 그리고 앞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모르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웠다앞으로 3개월이 지나고 나서야 아버지가 다시 과거처럼 건강하게 일어날 것인지혹은 평생 동안 장애인으로 도움을 받으면서 살 것인지는 더 기다려 보아야 한다.

 치료자는 정신분석가들이 그리고 심리치료 전문가들이 하는 이야기 즉 부부의 무의식적인 공모라는 말을 이번처럼 실감한 적은 없었다

아버지는 중간에 Z씨가 아버지가 어머니로부터 떨어져 나와서 홀로 서기를 해야 노후에 행복하게 보낼 수 있다는 심리치료 선생님의 이야기를 자주 할 때마다 아버지는 오히려 거꾸로 너의 어머니가 나에게 잘 한다내가 혼자서 바구니 들고 시장 가는 것은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나는 혼자서는 살 수가 없다” 라고 거부하는 것을 보면서 부부의 문제는 남편과 부인이 어느 한쪽이 100%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고 서로 물로 물려 있어서 물귀신처럼 서로 물고 뜯고 싸움을 하고 있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욕구가 서로 뒤엉켜서 자신들은 그것을 모르고 그것이 사랑이라고 믿고 있지만 그것은 병든 사랑으로 서로를 죽이는 서로가 파멸로 가는 것임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웠다치료자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문제의 뿌리는 노후에 죽음에 대한 불안을 부부싸움으로 이동을 시켜서 죽음의 공포를 벗어나기 위한 한 개의 고육지책임을 지적을 했다. Z씨는 이것을 100% 전적으로 수용하고 시인을 했다.

Z씨는 2019년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치료를 종결하게 되었다 코로나 등장 이전에 이미 약 1년전부터 150명으 소액투자가들이 아버지와 함께 투사한 6층 건물의 백화점이 불경기로 입주자들이 월세금을 깍아달라 라는 항의에 몇차례 투자자들이 소임을 가졌으나 결론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1년 안에 폐업하겠다는 통고를 받게 되었다(Z씨가 아버지를 대신해서 참가했다). 고로 지금까지 매월 180만원의 월세 수입이 반토막 나게 되면 심리치료를 계속할 수 없다는 것을 감지하고 치료자와 Z씨는 치료 종결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터지면서 백화점이 문을 받아버렸기 때문에 20191월달에 치료를 종결하게 되었다. 치료자는 Z씨에게 응급 조치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치료자를 찾아온다는 약속을 했다.  그리고 치료 종결 6개월 후에 치료자가 Z씨에게 확신 전화를 했을 때 어려움이 없이 잘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3년 후에 2022, 6, 17에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바로 Z씨였다. 그는 치료자를 방문하고 싶다2022, 6, 23, 목요일 오후 4-6시로 시간 예약을 했다. Z씨는 치료자를 만나서 그 동안의 이야기를 소상하게 들려주었.

 치료자는 아버지의 음주사고로 뇌의 손상으로 1살의 어린이가 되었다는 것을 치료 종결 3년 전에 소상하게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Z씨를 통해서 1주일외 1120분의 치료 회기의 과정을 통해서 잘 알고 있었다.

 코로나-19 이전에 2 그리고 이후에 3년 동안 아버지는 몇몇 요약병원에서 옮겨다니면서 뇌의 치료를 받았다. 뇌의 치료는 약물치료가 아니고 물리치료였다(하나 대형 요양병원에는 물리치료사가 64명이 근무). 손과 발을 움직이고 그리고 언어의 사용을 배우는 0-3세까지의 양육의 과정과 비슷했다. 어머니가 노후자금으로 손에 들고 있던 현금 10억원은 아버지의 치료 비용으로 거의 소모가 되었다(1개월에 5백만원의 치료 비용)라는 것을 Z씨가 털어 놓았다. 5년의 치료 과정을 통해서 아버지는 이제 혼자서 걸어 다닐 수 있고 일반적인 의사소통을 정상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가 지난 주일 2022, 6, 13일에 사망 했다고 했다. 코로나-19 때문이 아니었다. 코로나-19는 제 4차 접종을 마쳤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만들어준 떡을 먹고 질식으로 응급실에 실려갔으나 사망을 했다고 했다. 그 시점에서 어머니 역시 심장에 통증으로 응급실에 실려 가서 관상동맥 경화증(심장마비 증세)으로 관상동맹을 확장하는 풍선 수술을 받고 1주일 동안 병원에 입원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같은 시간에 두 개의 거대한 이벤트에도 불구하고 Z씨는 흔들리지 않고 잘 지내고 있다고 감사를 전했다. 아버지의 장례는 삼촌의 도움으로 고향의 가족묘지에 안장을 했다고 했다. 13년 동안 늘 다뤄 왔던 Z씨의 고질병대인관계, 감정표현, 엄마에 대한 분노, 가족구성원들 관계 그리고 자아의 성장계속해서 성장을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Z씨는 두 개의 큰 사건에 흔들리지 않고 있다고 스스로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고로 지금 잠을 잘 자고 있었다(수면 문제는 없었다)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분노를 물어보았을 때 어머니에 대한 분노는 거의 없어졌다고 했다 한달에 1번 정도로 분노가 약간 느껴지는 정도라고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어머니와 함께 의존해서 Z씨 몫으로 사준 23평의 아파트에는 올해 12월달에 전세계약이 끝나기 때문에 이제 Z씨가 입주를 하게 될 것이라는 소식도 전해주었다.

 치료자가 40년 동안 심리치료를 연구하고 치료를 실행하면서 깊은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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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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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네스트 존(Ernest Jones). 프로이트의 삶과 업적 제 1 (1953), 2 (1955), 3(1957)

에릭슨(Erikson), 어린이와 사회(1967), 주체성의 위기(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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