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실에서 자연스럽게 분석 상담을 받고 있는 모습(영화 속에서 인용) 

 

 마음의 상처?

 

사람은 마음으로 되어있다. 몸의 상처는 병원을 찾는다 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마음의 상처? 라는 말은 원지 낯설게 느껴진다! 마음이 상처를 받는가? 라는 궁금증이 등장하게 되는 것은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존재한다 라는 것을 유치원 어린이도 알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바람이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히 존재한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인 월리엄 워즈워드(William Wordworth)누가 바람을 보았는가? 바람을 보았다 라는 사람이 아무도 없네! 바람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나뭇잎이 살랑거릴 때 바람이 지나감을 안다 라는 시를 남겼다. 바람인 태풍은 엄청난 힘과 방향을 가지고 있지 않는가? 정신병 마음의 상처 심리적인 상처로써 생기는 병이다. 정신병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는 불과 200 밖에 되지 않는다(Arieti, 1974: 주㈜: 참고). 마음 즉 심리적 상처인 정신장애들의 등장을 추적해 가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인간의 역사를 살펴보면 세계적인 거대한 사건들 이후에 사람들의 마음이 병든다 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가 있다. 이제 그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이 블로그에서는 역사적 사건들 이후에 등장하는 정신장애들 그리고 마음의 연구에 흥미와 관심의 대폭발을 불러 일으킨 프로이트의 꿈 해석의 저서 그리고 20세기 100년사에 인간에 가장 큰 공헌을 남긴 첫 번째 인물이 된 프로이트의 심리신경증상처신경증진화의 과정 그리고 상처 신경증에서 등장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2013년(DSM-)불안장애에서 독립된 장애로 진화의 과정이 순서대로 전개되어질 것이다.

첫 번째 세계적인 대사건이 바로 1789년에 등장한 프랑스 역명이다. 4년 동안 진행된 이 혁명의 직전과 직후의 사회적인 혼란이 사람들의 마음의 상처들로 이어져서 정신의학의 등장과 연결되어진다. 프랑스 혁명 직전에 1775년에 의사인 프란츠 메즈머(Franz Mesmer: 1734-1815))중세의 1000년 동안의 빙의 현상(귀신, 악령, 악마)이 아니고 정신병이다 라고 천명하고 이것을 과학적인 자석과 자장의 이론으로 설명유체 이론으로 등장한 것이 정신의학의 등장으로 본다(Ellenberger, 1977: 주㈜: 참고). 메즈머는 그것이 최면인 줄 모르고 죽었다. 그의 등장 100년 이후에 1843년영국의 외과의사 제임즈 브레이드(James Braid: 1795-1860)최면(그리스의 잠 여신 Hypo의 이름을 따서 hypnosis)으로 바뀌면서 프랑스에서 히스테리아(hysteria)(정신병의 총칭)최면치료가 등장하게 된다. 프랑스의 의과대학 교수이자, 내과의사, 진 마틴 가르코트(Jean Martin Charcot(1825-1893))3번이나 거부당한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4번 째로 인정을 받아서 몽유병에 최면 치료의 접근이라는 발표로써 프랑스에서 최면이 과학으로 인정받고 최면학교를 세우고 병원에서 최면치료가 시작된다. 그는 히스테리아의 최면치료의 세계적인 대가히스테리아의 나폴레옹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다시 말해서 프랑스가 세계적인 히스테리아의 최면치료의 메카 된다(Ellenberger, 1970), 비엔나 의과대학 신경과 레지던트 4학년이었던 프로이트의과대학에서 최초로 3명의 우수한 레지던트를 선발해서 6개월 해외 유학을 보내는 시험에 합격해서 1885년 9에 프랑스의 가르코트 학교에 최면 유학을 가게 된다 라는 것은 여러 번 소개를 했다(Ernest Jones, 1953, 1955, 1957: 프로이트의 삶과 업적을 보라: 주㈜: 참고).

두 번째 세계적인 대사건이 바로 미국의 남북전쟁이다, 1861년에 시작해서 4년간 지속된 남북 전쟁65만병(남군이 29만명 + 북군이 365천명)이 희생되었다(2023, 12, 16: 위키피디아). 이 시점에서 첫 번째 신경증이 등장한다. 1869년미국의 정신과 의사인 죠지 비어더(George Beard:1839-1883)신경쇠약증(neurasthenia)을 의학계에 보고한다. 이어서 1871년미국의 정신과의사인 야곱 다 코스타(Jacob Da Costa: 1833 -1900)에 의해서 300명의 군인들이 가슴이 뛰고 숨이 차는 삼장 발작증(공황 장애의 전신)을 의학계에 보고한다. 같은 해인 1871년독일의 정신과의사인 칼 오토 웨스트팔(Karl Otto Westphal: 1833-1890)에 의해서 광장 공포증이 등장한다. 이후에 프로이트에 의해서 불안증불안공격(공황장애의 전신) 그리고 1903년프랑스의 정신과의사인 피에르 장(Pierre Janet)에 의해서 강박증이 소개된다(Barlow, 2001: 주㈜: 참고).

여기에서 세 번째로 1914-1918년까지에서 4년 동안의 1 차 세계 대전에서 남북전쟁의 희생의 10800만명이 희생된다(2023, 12, 16: 위키피디아). 이 후에 1938년미국의 정신과의사이자 정신분석가인 아돌프 스턴(Adolph Stern)에 의해서 프로이트의 신경증보다 심각하고 정신증(조울증, 편집증, 조현병(정신분열증) 보다 약한 보드라인 장애(경계선 장애)가 등장하게 된다.

네 번째로 2차 세계대전 발발(1939-1945)6년 동안에 1차 세계대전의 10배의 8천만명의 희생이 따라왔다(2023, 12, 16: 위키피디아). 이 전쟁 동안에 1943년존 홉킨스 의과대학 소아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가인 레오 케너(Leo Kanner)에 의해서 11명의 이상한 어린이들의 장애로써 자폐증이 등장하게 된다.

세계적인 대사건들로 인한 대혼란 직후정신병들의 등장들이 바로 사람들의 마음이 심리적인 상처를 받게 된다 라는 것을 여실이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충분히 이해가 될 것이다.

 이제 정신의학 특별히 약물치료가 아닌 심리치료의 대폭발로 들어가보자. 정신과 의사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 즉 심리치료에 관심과 흥미의 대폭발로 연결되어지는 사건이 바로 20세기 첫해인 1900년에 등장한 프로이트의 꿈 해석이다.

프로이트는 이미 1895년에 그의 비엔나 의과대학의 선배이자 스승이자 그리고 친구로서 프로이트에게 최면학을 소개함으로써 프로이트의 삶이 완전히 바뀌게 된다. 신경과의사에서 최면학으로 심리치료의 길을 열어주게 한 장본인이 바로 프로이트보다 14살 많은 브로이어(Breuer)이다. 그와 함께 공동으로 저술한 히스테리아의 연구”(1895)심리치료의 첫 탄생이다. 이 책은 브로이어가 최면으로 치료한 안나 오(Anna O) 그리고 프로이트가 4명의 여성 환자를 치료하면서 2명은 최면치료 그리고 2명은 최면에 걸리지 않았기 때문에 최면과 유사한 방법으로 카우치에 눕게 하고 자유연상으로 머리속에 떠 오르는 이야기를 하도록 유도해서 치료한 사례가 소개되어져 있다. 이 책이 정신분석의 탄생으로 본다(Ernes Jones의 프로이트의 삶과 업적, 1953).

 프로이트는 꿈 해석을 집필하기 이전에 이미 10년 동안 꿈의 분석을 통해서 환자를 치료를 하고 있었다. 꿈 해석에서 보면 프로이트가 꿈들을 분석해서 그 환자의 상처의 원천을 분석해 나아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이 말해주는 것은 이미 이 책을 쓰기 이전에 프로이트가 꿈에 대해서 완전히 파악하고 이해하고 있었다 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프로이트는 40세에 시작해서 5년 동안에 꿈 해석을 집필을 했다. 그가 1895, 7, 24일에 오스트리아 그린징(Grinzing)에서 꿈 해석을 집필하다 라는 비문이 제자들에 의해서 세워져 있다(2023, 12, 16: 위키피디아). 그는 그리스시대부터 1900까지 모든 꿈에 대한 책과 논문들 약 70여편을 읽었다. 그 중에서도 필자가 꿈해석을 정리하면서 카운터 해 본 결과 그의 책에서 한 학자가 5회 이상 등장하는 이름들이 약 20이 넘었다 그리고 그는 그의 책에서 스스로 1000개 이상의 꿈을 분석했다고 노트하고 있다. 특별히 동양인들의 꿈에 대한 서적이 10(일본 2, 중국 1, 인도 1, 아랍인 2, 유태인 4)이 포함되어져 있었다. 그리스의 철학자들 그리고 중세의 예언가 해몽가 그리고 성경에서 소계 되는 꿈들 그리고 꿈에 대한 의사들, 과학자들, 철학자들 등등의 저서들을 읽고 그 저서들과 논문들을 일일이 논평을 한 것이 꿈 해석의 전반부에 실려 있다. 특별히 그는 독일의 헤몰츠 학파들(독일의 물리학회의 전신)물리, 화학, 수학을 통한 과학적인 방법으로 철저하게 학문을 연구하도록 과학적인 교육을 철저히 받았. 그는 각각의 저서들의 인용을 하면서 그 서적의 페이지들을 일일이 표기를 했다. 필자가 꿈 해석을 다시 정리면서 꿈 해석에 나오는 꿈들의 숫자(꿈을 분석학 때 흘려 쓰기를 했기 때문에 카운트할 수 있다)를 계산해 볼 결과 프로이트 자신의 꿈44개 그리고 환자들의 꿈70개였다.

 그는 그의 40년 동안의 자신의 삶의 경험들을 꿈들의 분석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을 현미경처럼 소상하게 분석으로써 그 자신의 행동과 동기들이 인간의 삶의 과정에서 경험한 경험의 결과임을 보여주었다. 이 책으로 전 세계의 지식인들이 인간의 탄생 이후에 마음 속에 경험들이 기억속에 저장되어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지만 사라진 것이 아니다망각으로 소멸된 것이 아니고 우리의 기억 속에 저장해서 있어서 우리의 행동의 동기가 된다 라는 것을 그의 무의식 이론으로 보여주게 된다. 그는 인간은 기억하고 사고할 수 있는 경험이 10분의 1이고 나머지 10분이의 9무의식 속에 감춰져 있다 그것을 그는 빙산으로 설명한다. 물 위에 보이는 빙산은 의식이고 물 밑에 보이지 않는 부분이 무의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는 그가 가지고 있던 신경증을 그의 꿈 분석으로 해결하게 된다. 그가 직접적으로 어떤 신경증을 가지고 있었는가? 는 밝히지 않았다 그의 제자인 어네스트 존(Ernest Jones)이 쓴 프로이트의 삶과 업적의 전기책에서 프로이트가 3살 때 모라비아의 프레이스버그(지금의 체코)에서 비엔나로 이사를 올 때 그가 비행기 꼬리에서 나오는 불꽃을 보고 놀래서 기차 공포증이 있었다고 추측하고 있다.

그는 인간이 성장해 가면서 삶에서 어려움들을 만나고 부딪치고 해결해 나가면서 인간의 추상적인 상징적인 상상들이 기억 속에 저장되어져 있고 이것이 꿈으로 만들어진다 라는 것을 생생하게 분석으로 보어 준다 고로 꿈들이 만들어질 때 그 추상적인, 상징적인 모자이크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이것을 해체해서 경험으로 밝혀낼 상징과 은유와 추상적인 면들이 하나씩 껍질을 벗겨내고 그것의 의미를 해석하는 방법을 소개한 것이 바로 꿈 해석이라는 책이다. 그는 한 개의 꿈이 만들어진 것을 분해할 때 한 개의 간단한 꿈의 문장에 최소한 10페이지-20페이의 분량으로 분해되어진다 라는 것을 스스로 밝히고 있다. 그 자신의 꿈의 첫 번째 분석인 일마(Ilma)의 주사의 꿈32페이지의 분량으로 그리고 그의 두 번째 꿈인 노랑수염을 가진 삼촌 요셉의 꿈분석하면서 62페이의 분량으로 퍼즐처럼 얽힌 꿈 조각들을 분해시켜서 그의 어린시절의 삶의 40년의 경험들을 소상하게 찾아내서 소개를 하고 있다.

꿈의 해석은 1899년에 집필이 완료되었다 그러나 출판을 1900으로 출판했다. 20세기의 시작을 알리는 첫해에 출판을 한 것이다. 꿈의 해석은 인간의 마음의 탐색에 대해서 폭풍을 불러 일으켰다. 전 세계의 지식인들이 출생 이후에 우리가 경험한 삶의 경험들이 뇌의 기억 속에 저장되어져 있다 라는 것과 꿈을 통해서 그들을 끄집어내고 그들을 분석해서 마음의 상처들을 연구하고 치료를 할 수 있다 라는 길을 열러 놓은 것에 깜짝 놀랬다. 정신병에 접근의 통로를 열어 놓게 된 것이다.

그 영향은 바로 프로이트가 하루 아침에 세계적인 명사가 된 것이다. 그는 20세기를 이끌고 나갈 대표적인 3사람으로 마르크스, 니체 그리고 프로이트가 선정되었다 이후에 100년이 지나가면서 1999, 3, 28TINE 잡지사에서 세계의 석학들에게 20세기 100년 동안에 인간에 가장 공헌을 남긴 100명의 인물들의 선정에서 프로이트가 1, 아인슈타인이 2로 선정되어 TIME 잡지의 표지에 아인슈타인이 카우치에 누워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치료를 받는 그림으로 등장하게 된다(1999, 3, 28TIME 표지 참조).

전 세계의 의사, 정신과의사, 혹은 전문가들이 프로이트에게 정신분석을 공부하기 위해서 몰려들게 된다. 대표적인 사람이 정신과의사인 칼 융(Carl Jung), 그리고 내과 의사인 알프레드 에들러(Alfred Adler)이다. 그들이 꿈 해석을 읽고 프로이트에게 편지를 함으로써 이후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회의 회원으로 등장하게 된다. 프로이트는 의과대학 출신뿐만 아니라 전문가들에게 문호를 개방했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공부하기 위해서 몰려들게 된다. 1902년에 프로이트의 집에서 4명의 의사들(에들러(Adler), 스타켈(Stekel), 카하니(Kahane), 레이텔러(Reitler)이 모여서 스터디 그룹을 만들게 된다. 이것이 확대되어져서 드디어 국제적인 정신분석 학회가 탄생하게 된다. 1908년1차 국제 정신분석학 총회가 독일의 찰스부르그에서 열리게 된다. 전 세계에서 42명이 참가하게 된다. 뉴욕에서 브릴(Brill) 1명, 비엔나에서 에들러와 23명, 런던에서 어네스트 존과 2명, 베를린에서 아브라함과 5명, 헝가리에서 프렌치와 2명, 스위스에서 융과 6명이었다. 회장에 융이 선출되었다, 융과 에네스트 존을 제외하면 모두가 유태인이었다. 고로 프로이트가 의도적으로 유태인이 아닌 융을 회장으로 밀었다. 이후 3년마다 국제 정신분석학회가 열리게 되고 융이 연달아 3번이나 회장을 맞게 된다.

꿈의 해석은 프로이트의 삶에서 8번 수정보완을 하게 된다. 마지막이 1929년이었다. 미국의 정신과의사인 아브라함 브릴(Abraham Brill)이 프로이트에게 독일어의 번역을 영어로 번역을 허락받아서 1913년에 영어로 출판된다. 이어서 러시아어(1913), 스페인어(1922), 프랑스어(1926), 스웨덴어(1927), 체코어(1928), 일본어(1930) 그리고 헝가리어(1934) 출판이 따라왔다. 이후에 1929년에 최종 수정본은 첫번째 출판 내용과 크게 달라진 내용은 별로 없었다(Brill, 1951: 주㈜: 참고). 필자가 소지한 책은 1951년에 브릴이 번역한 영어본이다(Brill, 1951: N.Y.: The MacMillian Company).

 프로이트의 첫 저서인 히스테리아의 연구(1895)최면학을 응용한 정신분석학이다. 이 책에서 그는 신경증 환자들의 원인심리적인 상처근친상간, 강간, 신체적 폭력과 학대로 보았다. 가르코트가 히스테아 환자들을 최면을 걸어서 심리적 상처를 호소하는 것을 보면서 정신병의 원인은 심리적 상처임눈으로 확신을 했다 그리고 가르코트로부터 그 심리적 상처의 과정을 설명하도록 격려를 받고 나서 그가 그의 저서에서 그것을 철저한 과학적인 방법으로 설명을 한 것이 히스테리아의 연구였다.  이것을 유혹 이론이라고 불렀다. 어른들이 어린이들을 유혹에서 섹스학대와 근친상간 혹은 강간의 상처를 가한 것으로 보았다. 어린이들은 3-5세의 나이에 섹스의 욕구가 표면화된다. 고로 어른들의 유휴에 어린이들이 반응을 하게 되어 일어나는 상처로써 생긴 정신장애가 바로 신경증으로 본 것이다. 그러나 그의 환자들은 어른들이다 어른들의 상처들을 꿈으로 분석해 나가면서 어른들의 어린시절의 상처 기억이 오리지널인가? 라는 과학적인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그는 기억 학자들의 연구들을 통해서 상처의 기억들이 가공되고 첨가되어진다 라는 것을 알게 된다 또 한가지는 많은 환자들의 이야기를 듣고나서 그들이 실체 상처가 아니고 상상에 의해서 등장했다 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고로 1900년에 그의 저서인 꿈의 해석에서 오디프스 콤플렉스 이론으로 등장하게 된다 즉 상상들이 상처가 된다 라는 것으로 수정을 하게 된다. 꿈의 해석은 최면학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정신분석이 독립하는 계기가 된다. 이후에 이 상상적인 상처가 프로이트의 대명사가 된 오디프스 콤플렉스 이론이다. 프로이트의 제자들은 유혹이론에서 오디프스 콤플렉스 이론으로 따라갔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수제자였던 샌도르 프렌치(Sandor Ferenczi)유혹이론을 포기하지 말고 오디프스 콤플렉스병행을 주장했지만 프로이트는 오디프스로 돌아갔다. 그러나 몇몇 제자들은 유혹 이론을 계속하게 된다. 그들 중에 한 사람이 바로 미국의 정신과 의사로써 프로이트 밑에서 정신분석을 공부하고 자격증을 얻어서 정신분석가가 된 아브라함 카디너(Abram Kardiner)로서 이후에 그는 뉴욕 컬럼비아 의과대학 교수로써 대학원에 정신분석과 심리치료 박사후 프로그램의 공동 설립자가 된다. 그는 1차 세계대전 때 군인들의 심리적 상처를 치료하고 연구를 하면서 1941년전쟁의 상처 신경증이라는 저서를 출판하게 된다. 또 한 사람이 로이 크린크(Roy Grinker)로 역시 프로이트 밑에서 정신분석학을 공부하고 이후에 시카고 의과대학의 정신과 학과장이 된다. 크린크는 1946년스트레스 하에 인간이라는 저서에서 실제 상처들의 치료와 연구에 매진하게 된다. 카디너와 크린크는 둘 다 심리신체적인 장애들을 정신분석으로 연구한 사람들로써 오디프스 콤플렉스 보다상처 신경증의 치료와 연구에 매진하게 된다(Herman, 1997: 주㈜: 참고).

 여기에서 프로이트가 스스로 개발한 이론이 두 가지로 나누어지게 된다 한쪽은 유혹이론실제 상처 이론 그리고 다른 한쪽은 오디프스 콤플렉스의 상상의 상처 이론이다. 여기에서 좀 더 오디프스 콤플렉스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프로이트는 철저하게 인간의 내면심리학적인 현상을 절묘하게 밝혀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은 정상적인 가족들의 심리적인 흐름을 기술한 이론이다 즉 아버지가 가장으로써 일을 하고 그리고 어머니는 전업주부로 자녀들을 양육하는 전통적인 가정으로 자녀들이 7명 혹은 8명의 산아제한이 없던 시절의 가족 안에서 개인의 심리적인 현상과 흐름에서 등장하는 신경증 이론이다. 실제로 프로이트의 가족은 이복 형제가 2이고 아버지가 본처의 사망으로 40대 중반의 아버지가 21세의 프로이트의 어머니와 재혼으로 7명의 프로이트의 형제들이 태어나게 된다 고로 형제들이 9이다. 프로이트는 꿈의 분석에서 그의 어머니가 21살로 40대 중반의 아버지와 결혼을 할 시점에서 그의 이복 큰 형님, 아브라함은 21살로 이미 결혼을 해서 프로이트 보다 1살이 많은 존(John)이 있었다. 그리고 둘째 이복 형님인 필립은 17이었다. 어린시절에 프로이트는 21살 어머니와 17살 이복 형님인 필립과 사이에서 자신이 태어난 것으로 상상하면서 아버지를 제거하고 엄마와 형님 사이에 자신을 등장시켜서 질투와 시기를 했던 그의 수치스러운 생각들을 꿈의 분석을 통해서 생생하게 밝히고 있다. 실제로 프로이트가 결혼으로 7명의 자녀들을 출산하게 된다. 이러한 가족관계가 프로이트의 오디프스 콤플렉스 이론이 등장한 배경이 된다(Ernest Jones, 1953).

 아들은 어머니를 사이에 두고 아버지와 경쟁을 한다. 딸은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으려고 어머니와 경쟁을 한다. 동생들은 형님, 오빠들이 자신보다 더욱 더 사랑을 독점하고 편애를 한다고 생각을 한다 그리고 형제들 사이에서 라이벌로서 서로 사랑을 많이 받으려고 시기. 질투 경쟁을 한다. 이러한 양육의 과정에서 복잡한 심리적인 거미줄이 뒤엉키면서 혼자서 상상 혹에 빠져서 다양한 종류의 상상들을 개발하면서 왜곡된 생각으로 흐르게 되면 이것이 첫 단추가 되어서 신경증으로 연결되어 지게 된다 라는 것을 설명한 이론과 치료가 프로이트의 오디프스 콤플렉스 이론이다.

 그른데 이러한 프로이트의 정상적인 가족 생활의 관계는 세월이 흘러가면서 문화와 문명의 발달과 과학의 발달로 가족의 구조들이 변하게 되면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 어떻게 사회적 변화에 어떻게 도전을 받게 되는가? 의 설명이 이어질 것이다.

 1 차 세계 대전의 초반기에 미국은 중립을 선언하고 전쟁에 참가하지 않았다. 종전의 1년 전인 1917년에 독일의 무차별 잠수함 공격에 미국의 상선들이 손상을 입게 되면서 분노한 미국이 독일에 선전 포고를 하고 전쟁에 가담해서 1년 후에 1918년에 제 1차 세계 대전이 끝나게 된다.

 여기에서 앞에서 언급한 1938년에 등장한 보드라인 장애에 대한 추가 설명이 필요하다. 왜 하필 미국에서 제 1차 세계 대전에 깊숙이 관계하지 않는 미국에서 보드라인 즉 프로이트의 신경증보다 심각한 신경증들이 정신의학계에 등장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에 대한 궁금증에 대한 추가 설명이다.

 미국은 종교의 자유를 찾았던 청교도들이 세운 나라이다. 특별히 19세기 중반, 20세기 초반에 유럽의 이민자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가지고 미국의 관문인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을 보면서 뉴욕으로 입항하게 된다. 유럽에서 이민을 온 사람들은 데부분이 중, 상류층 사람들이 아니었다. 새로운 나라에 희망을 가지고 온 이민자들이었다. 그들은 미국에 도착하면서 먹고 살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맞벌이 부부가 되어야 했다. 아버지가 일을 하고 어머니가 자녀를 양육하는 전통적인 가족의 틀에서 벗어나게 된다. 자녀들은 2명 혹은 3명으로 제한이 되고 자녀들은 인친척의 부재의 경우에는 어린이들을 돌보아줄 영아원, 유아원이 등장하게 되면서 어린이들을 그곳에 맡겨지게 된다. 이것이 어린이의 양육이 엄마 손을 떠나서 먹여주고 입혀주고 돌보아주는 유아원, 영아원으로 맡겨지게 된다. 이러한 양육에서 자녀들의 어린시절에 엄마와 관계에서 감정지원으로 이한 안전함과 마음의 안정됨부족함정신적인 문제의 취약점으로 등장하게 된다. 이러한 실제의 현상들은 심리치료의 대가가 된 사람들의 자서전들을 통해서 유추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람이 앨버트 엘리스(Albert Ellis)이다. 그는 인지치료의 혁명을 일으킨 사람이다 그는 1913년러시아의 이민자인 유태인 부모님 한데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블로크로 사업 때문에 늘 집에 없었다 그가 사춘기 직전에 부모님의 이혼으로 아버지는 떠났다. 어머니 혼자서 3명의 자녀들을 양육을 했다. 어머니는 조울증으로 그리고 밤 늦게까지 일을 했기 때문에 어머니의 얼굴을 본적이 거의 없었다. 피곤해서 아침에 어머니가 일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그가 자명종을 사서 남동생과 여동생을 깨우고 간단한 식사 후에 학교에 보냈다. 저녁에는 밤 늦게 일을 하고 귀가했을 때 자녀들은 모두가 잠들었기 때문에 엄마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그는 5살과 7살에 8번이나 병원에 입원을 했다. 한번은 1년 동안 병원에 입원을 했지만 부모님이 그에게 감정 지원이 없었다 그리고 병원에 입원해 있는 그를 찾아온 적이 없었다. 그의 심리적인 병약함 때문에 컬럼비아대학 치료심리학을 공부해서 심리학 박사로써 그리고 정신분석학교를 졸업하고 심리치료사가 된다. 폭발하는 환자들 그리고 이민가정의 자녀들의 심각보드라인, 정신증 환자들 급증 때문에 정신분석에서 인지치료로 방향이 바뀌게 된다.

 또 한 사람이 이반 욤(Irvan Yalom)으로 스탠포드 의과대학 석좌 교수로 그룹 심리치료의 대가가 된 사람이다. 그는 그의 저서 엄마와 삶의 의미에서 어린시절을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의 부모님은 러시아에서 이민 온 유태인이었다. 미국에 이민 후에 14년 후에 1931년에 그가 워싱턴 D.C.에서 태어났다. 3살 아래 여동생이 있다. 부모님은 구멍가계를 운영했다, 어머니는 늘 곁에 없었다. 아버지와 여동생을 제외하면 엄마는 늘 아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비판적이었다. 그가 엄마처럼 따랐던 고모에게 의지를 했다. 고모는 늘 따뜻했고 그의 어리광을 잘 받아주었다. 엄마는 고모를 게으른 사람으로 고모부를 놀고먹는 사람으로 비판을 했다. 그가 정신과의사 그리고 정신분석가 되었다. 그가 중년기가 되면서 프로이트의 0-6세의 중요성을 알고 엄마의 서운함을 직면하게 되었다. 엄마는 처음으로 중년이 된 아들에게 그녀의 고통을 털어 놓았다. 엄마는 한번도 쉬어 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와 교대로 토요일과 일요일도 없이 늘 가계를 돌보아야 했다. 특별히 친지들을 이민으로 초대를 했고 그들의 초반기 삶들을 돌보아주었다고 고백을 했다. 엄마는 아들이 쓴 저서들을 핸드백에 넣고 다녔다. 엄마는 영어를 몰랐다 그래서 왜 영어를 모르면서 들의 책을 가방 속에 넘어다니는가? 라는 질문에 엄마는 내 아들이 쓴 책이니 글자를 몰라도 가방 속에 넣어 다니면서 아들과 대화를 한다 라는 말에 처음으로 엄마에게 닫힌 감정의 문을 열게 되었다 라고 기술하고 있다. 그는 정신분석을 떠나서 실존주의 심리치료사로 이동을 한다. 왜 정신분석가들이 정신분석을 버리고 다른 심리치료 기법으로 전화했는가? 는 아래의 글을 보라.

또 한 사람은 크리스 가드너(Chris Gardner)영화 행복을 찾아서”(Pursuit of Happyness)(2006, 12 개봉)의 실제 주인공으로 그의 삶이 영화화된 것이다. 그는 1954년에 태어난다. 그의 엄마의 2 번째 결혼이었다. 엄마는 이미 1번째 결혼으로 딸이 있었다. 가더너가 3살 때 이혼으로 아버지는 떠나고 엄마는 3번째 결혼으로 2명의 여동생이 출생하게 된다. 그는 3명의 씨가 다른 이복 누나와 여동생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그의 계부의 고발로 감옥에 갔다 그리고 그의 형제들은 고아원에서 상당한 기간 동안 머물게 된다. 그는 외삼촌의 영향으로 비행청소년이 되지 않고 외삼촌처럼 고교를 졸업하고 일찍 해군에 입대해서 해군의무병으로 의학에 관심을 가지고 의사가 되려고 했으나 의과대학 졸업이 아니면 의사가 될 수 없다는 법의 개정(카트 대통령 시절)으로 의사를 포기하고 그는 주식에 관심을 가지고 브로커가 되기 위한 6개월 동안의 연수생으로 3.5세 아들을 데리고 투쟁하는 그의 1981년의 샌프란시스코의 실제 6개월의 생활인 삶이 영화로 만들어지게 된다. 그가 결혼해서 부인이 떠나고 3.5세의 아들을 데리고 6개월의 연수 과정에서 그가 지하철의 화장실에서 아들과 함께 하루 밤을 보내는 장면, 지각을 하지 않기 위해서 택시를 탔지만 비용이 없어서 한쪽 신발이 벗겨지고 도망을 가는 장면 등의 실생활들이 등장한다. 아들을 영아원에 맞질 돈이 없어서 그 영아원에 페인트를 대신해 주는 그 집의 간판이 행복을 찾아서 영어의 happiness의 글자가 잘못된 것은 그 집의 간판이 happyiess였기 때문에 그 영아원의 간판 그대로 그 영화의 제목을 만들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30명 중에 유일하게 1등으로 졸업하고 그 회사에 입사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그는 이후에 주식 블로크로 백만 장자로 성공을 해서 박애주의자로 고아원, 영아원에 지원을 한 유명인사로써 2006년의 그의 자전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그것이 영화가 된다(Will Smith가 가드너의 역할).

위에서 언급한 이민 가정에서 태어난 1913년에, 1931년, 1951년의 시간차가 있지만 이들 이민자 가정의 어린시절을 유추해볼 수 있다. 이들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유명 인사가 되었지만 그러나 프로이트의 0-6개월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시점으로 이 시점에서 성격의 골격이 다듬어지게 된다.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엄마가 돌보아주는 환경의 안전함과 마음의 안정됨이다. 어린시절에 이런 취약점들이 이후에 성장하면서 정신병의 원인이 된다 라는 것을 염두에 두면 아래의 글이 이해가 될 것이다.

 1900년 이전에 이미 미국의 뉴욕의 정신병원은 환자들로 만원이었다 라는 것을 아래에서 보여준다. 1885년에 설립된 뉴욕의 킹스 팍 주립 정신병원과 그리고 1889에 설립된 센트럴 주립 정신병원은 만원이었다. 1863에 설립된 맨하튼 정신병원(Manhattan Psychiatric Center) 그리고 1912에 등장한 크리즈무어(Creedmoor) 정신병원(브루클린 주립 정신병원)만원이었다. 뉴욕에서 가장 오래된 1824에 설립된 벨뷰병원(Bellevue)종합병원이었으나 이후에 정신병원으로 이름을 날리게 된다. 1900년에 위의 병원들이 만원이어서 뉴욕주에서 1931에 뉴욕주의 보건장관 이름을 딴 필그림(Pilgrim) 주립 정신병원을 설립하게 된다. 이 병원은 13, 835명의 환자 수용인원, 병원에서 일하는 스텝들이 5,000100명의 환자 당 1명의 정신과 의사50명의 정신과 의사들이 치료를 하는 미국에서 가장 큰 정신병원이 된다. 이 병원 안에는 경찰서, 소방서, 전신전화국, 우체국, 병원, 교회, 발전소, 수도국, 철도국(두개의 철도가 통과), 돼지 농장(환자들의 작업노동), 법원 등을 갖춘 소도시의 형태로써 이곳에 병동이 83로 각 병동은 번호가 붙여졌다. 이곳에 폐결핵 정신병 환자를 위한 또 한 개의 정신병원이 설립된다(2023, 12, 16: 위키피디아).

필자가 이 병원을 알게 된 것은 미국에서 처음으로 정신분열증 환자(조현병)를 사무실 치료를 한 정신과의사이자 정신분석가인 뉴욕 의과대학 교수인 실바노 아르에티(Silvano Ariet)(1914-1981)의 저서 정신분열증의 해석을 공부하면서 그가 바로 필그림 정신병원에서 1941-1946년까지 5년간 이 병원에서 정신과의사로서 치료하고 연구한 것을 알고 필그림 정신병원을 위키피디아에서 검색으로 알게 된 것이다.

1900년대 초반에는 환청 혹은 환각 혹은 정신이상자들은 전부 정신병원에 입원이 전부였다. 1930년대 후반에 전기 쇼크치료(ECT)인슐린 쇼크치료 그리고 최악의 환자의 경우에는 심리외과수술 치료로써 전두엽 절재 수술이 유형을 했다. 1955년까지 약물치료가 등장 직전에 미국의 주립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들55만 9천명으로 그리고 뉴욕주9만 3천명으로 미국 전구의 6분의 1써 미국이 정신병 환자의 입원의 최악의 시점이었다. 1955년에 정신과 약물클로로프로마진(Chlorpromazine) (토라진 약물(Thorazine))이 미국에 소개되면서 미국의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의 3분의 2가 퇴원하게 되면서 미국의 정신병원의 확대는 멈추게 되고 이후에 각 병원들의 규모가 축소되어지게 된다)(Bernheim, 1979) (약물 치료와 전기쇼크 치료에 대한 것을 정신병과 약물치료의 블로그를 보라.

하나의 거대한 사건이 정신병의 발발과 프로이트의 고전적 정신분석에 장애로 등장하게 되면서 정신분석가들이 새롭게 등장하는 보드라인 그리고 정신증 환자들쓰나미어떻게 대체하게 되는가? 하는 이야기가 전개되어진다.

 2 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미국의 남자들이 전쟁에 동원으로 빈자리를 여성들이 채우게 되면서 또 하나의 거대한 정신장애의 원인 제공 문제들이 등장하게 된다.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본격화되면서 전통적인 가족 사회의 핵가족이 붕괴되기 시작한다.

1970년대 초반기여성 정신분석가들이 여성 환자들을 치료를 하면서 근친상간, 강간의 폭력과 학대의 문제들이 외부로 표면화되어 지지 않고 감춰져서 비밀로 숨겨지고 이것이 정신병원에 원인이 된다 라는 것에 분노하게 된다. 이들이 페미니스트들 운동을 전개하게 된다. 이 운동을 시작한 사람이 바로 페미니스트의 대부인 미국여성 연맹 회장베티 프레디안(Betty Friedan)이다. 그녀는 버클리대학에서 치료 심리학 박사로 에릭슨 밑에서 정신분석가가 된 사람이다. 그리고 다이아나 러셀(Diana Russell)남아공 대학에서 심리학 학사, 런던 대학에서 정치 경제한 석사 하버드 대학에서 사회학 박사로 정신분석가가 된 사람이다. 그녀는 여성들의 정신분석 심리치료에서 내면에 숨겨진 여성들의 학대와 강간과 폭력이 심각함에 분노하게 된다. 미국 전역의 900명의 건강한 여성들의 설문조사 연구에서 5명 중에 1명이 강간4명중에 1명이 성추행을 받았다 라는 연구 논문으로 미국을 흔들어 놓았다 또 한 사람은 하버드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로 정신분석가가 된 주디스 허만(Judith Herman)으로 그녀는 상처와 회복이라는 저서를 썼다 그녀는 프레디안과 러셀과 함께 여성폭로 운동을 주도하게 된다 드디어 1970년 말에 뉴욕 주에서 강간이라는 말을 사용하면 처벌하겠다 라는 법안을 통과하게 된다. 이것이 10년 안에 50대주를 통과하게 된다. 강간은 가해자들은 섹스이지만 피해사는 섹스가 아니고 폭력이다 이러한 움직임의 등장은 정신분석가들이 여성환자들을 치료하면서 강간의 상처 나는 순결을 잃었다. 나는 석녀이다. 나는 더러운 여자이다. 라는 마음의 각인 때문이었다. 여기에서 인지 치료의 혁명들이 등장하다 그리고 이것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성폭행이라는 용어가 강간을 대신해야 가능하다 라는 정신과의사들과 정신분석가들이 이구동성으로 동의가 법안으로 통과된 것이다. 여성 운동으로 뉴욕에서 폭로 운동이 벌어지고 비밀로 숨기고 감추면 심리적 상처는 회복할 수 없다 까발리고 폭로하고 떠드려야 사람들이 인식의 확대로 그 동안에 명맥만 유지해 오던 프로이트가 실제 상처 이론의 다시 부활하게 된다.

 핵가족의 붕괴의 결과로 미국이 이혼 비율이 치솟아 오르게 된다. 1990년대 후반미국의 이혼 비율뉴욕이 86% 그리고 L.A가 76%로 치솟게 되면서 핵가족은 치명타가 되었다. 재혼, 삼혼(3번째 결혼), 사혼(4번째 결혼)으로 이어지면서 결혼 10년 안에 이혼 비율이 46%를 넘어가면서 10살 이전에 한쪽 부모의 상실 그리고 재혼에 따른 계부, 계모의 슬하에서 어린이들의 학대와 섹스 학대가 도마 위에 오르게 된다. 미국의 청소년들의 5명 중의 1명이 섹스학대와 신체적 확대의 상처를 가진 연구 보고서가 쏟아지게 된다.

1980년대에 등장하면서 위의 문제로 정신건강 전문가들이 핵가족의 붕괴로 인한 연구들이 시작된다. 매맞는 여성, 매맞는 어린이 등의 신조어들이 쏟아져 나오게 된다. 가족의 해체와 부부 문제 청소년 문제들에 대한 연구와 치료가 급물살을 타게 되면서 이제 프로이트의 이론과 치료를 고전적 정신분석이 된다. 정신분석학 안에서도 프로이트의 신경증 환자들에 국한된 치료는 쏟아져 나오는 정신과 환자들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프로이트의 이론을 수정해서 6개의 정신분석학들이 등장하게 된다. 고전적 정신분석, 대인관계 정신분석, 대상관계 정신분석, ego심리학, 자아 심리학 그리고 관계의 정신분석이다.

 이제 프로이트의 신경증 환자는 희귀종이 된다. 환자들은 충동적, 폭력적이고 자해, 자학, 자살이 늘어나고 비행청소년들 그리고 청소년 범죄 여기에 약물과 마약 중독이 늘어나게 된다. 정신분석가들이 쓰나미로 밀려오는 정신병 환자들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없기 때문에 프로이트의 이론의 개선과 단점을 보완해서 수정된 심리치료들이 등장하게 된다 1990년에 미국에 등장한 심리치료가 32개로 폭발을 했다 모두가 정신분석가들로써 정신분석의 단점을 수정하고 보완한 것이었다. 인지치료. 행동치료, 인지행동치료, 가족치료, 게스탈트 치료, 그룹 치료, 실존치료, 교류 분석 치료, 현실치료 등등이 등장하게 된다.

 여기에서 미국의 정신의학회에서 새로운 움직임이 태동하게 된다. 위의 정신적인 문제들에 새로운 관계의 대응책이 등장하게 된다. 세계보건 기구(WHO, UN의 소속)1948년에 ICD-6(6 차 국제 장애의 분류)에서 정신의학의 분류를 출판하게 되면서 미국의 정신의학회에서 1952년DSM-Ⅰ정신병들의 분류가 등장한다. 그 이전에는 정신과의사들, 정신분석가들이 개인별로 작가가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었기 때문에 체계적으로 정리가 되지 않았다. 1950년 대의 미국의 정신과적인 문제가 피할 수 없게 된 것이었다. 이후에 10년마다 한번씩 지국에서 전국의 정신과의사들이 약 300명의 전문가들이 모여서 정신장애의 분류를 하게 된 것이다.1967DSM-가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1980년에 DSM-에서 정신의학의 체계가 완전히 정리되어 지게 된다. 이후에는 새로운 등장 혹은 사라진 장애들의 수정으로 큰 줄거리의 변화는 없었다.

위와 같은 사회적인 대변화들의 결과로써 프로이트의 상처 신경증의 재부활이 확대되어지게 된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1 차 세계대전 그리고 2차 세계대전 그리고 1964년 8월에 시작해서 1973년에 미국의 철수 10년동안 지속된 베트남 전쟁에 참가한 군인들의 심리적 상처가 현실적인 문제로 보습을 드러내면서 재향군인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자15.2%라는 실제 상처 연구 조사들이 등장하게 된다. 여기에 제 2 차 세계 대전 때 나치의 홀로코스트 즉 아슈비츠들과 같은 여러 개의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보스턴 나이트클럽이 화재로 살아남은 사람들, 캘리포니아 스쿨버스 납치 사고로 살아남은 사람들, 강간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자동차 사고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그리고 자연재해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에 대한 실제 상처의 연구들이 터져 나오게 되었다. 이러한 실제 상처가 드디어 1980년에 등장한 DSM-Ⅲ에서 상처 신경증이 상처 후 스트레스 장애 즉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의 이름을 달고 공식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DSM-불안 장애의 태스크 포스의 팀장이었던 뉴욕 주립대학 다운스테이트 의과대학 교수데이비드 바알로우(David Barlow)뉴욕에서 불안장애 치료센터를 운영하면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는 공황 장애와 유사하다 라는 논쟁으로 PESD불안장애에 소속되어 지게 되었다.

이 시점에서 하버드 의과대학의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가인 주디스 허만(Judith Herman)의 지도 하에 상처신경증 스터디 그룹이 형성된다. 여기에서 벤 더 콜크(van der Kolk)가 중심 인물로서 등장하게 된다 그는 네덜란드 출신으로 시카고 의과대학 졸업 후하버드 의과대학에서 매사추세츠 종합병원(MGS)에서 레지던트 과정을 마치고 이후에 하버드 대학 교수재향군인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상처의 치료와 연구에 평생을 매진하게 된다. 그의 연구 그룹들이 공황장애와 PTSD를 다르다 라는 것을 하버드 의과대학의 실험실 안에서 다양한 실험과정의 연구들과 치료들을 통해서 밝혀내게 된다.

그는 호주의 상처 신경증의 연구의 세계적인 대가인 킹 엘리자베스 병원의 정신과의사인 알렉산더 맥팔레인(Alexander C. McFarlane)과 공동 작가로서 그들이 전 세계적으로 상처 신경증들을 학자들의 연결해서 1998년상처 스트레스 라는 저서를 출판하게 된다.

그는 1985년에 예일 의과대학 교수로써 신경 학자였던 파울 맥클린(Paul MacLean)3개의 뇌로 진화적으로 진화된 뇌를 설명하고 있다. 파충류의 뇌소뇌 뇌간 그리고 시상하부본능의 뇌 그리고 두 번째 포유동물의 뇌림빅 조직감정의 뇌본능환경사이에 양쪽으로 연결되어진 집단생활을 하는 포유동물로써 진화를 뇌이다. 세 번째가 고등동물이 뇌대뇌뇌 회백질로써 발견과 발명의 뇌이다. 추상적이고 은유적이고 상징적인 기능을 한다. 이러한 뇌들은 시 신경전달물질들과 호르몬으로 몸의 전체의 기능을 전달하면서 밀접하게 서로 연결되어 정보를 주고받는다.

 그는 삶의 과도한 압도적인 경험이 마음에 상처를 남기에 된다.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압도적인 경험자아-규제에 손상을 초래하게 되면 뇌의 회백질에 손상으로 뇌의 기능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먼저 회백질은 모든 정보가 시상으로 입력되고 이 정보가 각각의 뇌의 조직으로 연결되어져서 대뇌어떤 정보가 중요한가? 어떤 정보가 덜 중요한가? 등의 구분을 하게 된다 이것이 감정의 뇌에 연결되어 감정들을 구분하게 된다. 상처가 이런 기능에 영향을 미쳐서 감정의 구분화에 손상을 초래한다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어려움들을 예견하고 준비를 하는 기능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고로 추상적인, 상징적인, 상상적인 구분화에 문제를 일으키게 되면서 과거에 상처받은 유사한 기능에 유연성이 없어지고 상처를 받았던 똑 같은 기능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그 이상의 능력의 발전이 상처의 시점에서 멈추게 된다.

 그 결과 PTSD의 상처시간이 지나가면서 무디어 지거나 완화되어 지지 않고 유사한 압도적인 자극과거의 상처가 재발하게 된다 이것을 플레쉬백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서 전쟁에서 상처받은 사람은 2030년이 지나가도 헬기 소리가 들리면 벌벌 떨고 책상 밑에 숨거나 이불을 뒤집어쓰고 땀을 흘리고 죽음의 공포속에 벌벌 떤다. 자아에 공격 혹은 대상들에 공격으로 나타난다 자아에 공격은 자해, 자살로 그리고 무감각으로 기억이 없다. 자신의 손목을 면도날로 긋거나 혹은 담뱃불로 지진다 이러한 상처에서 그들은 안정됨을 느낀다. 살아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벤드 골크는 양전자 단층 촬영(PET)를 통해서 PTSD 환자들에게 상처와 유사한 자극을 보여주었을 때 그들의 뇌의 오른쪽 뇌의 공간지역, 추상적인 상징적인 상상적인 기능의 부분에 산소공급의 부족으로 그리고 왼쪽 뇌의 언어 지역에 산소 공급의 부족으로 나타났다. 심리적으로 상처받은 환자들 조현병 환자들이 추상적, 은유적, 상징적인 기능이 퇴화콘크리트한 언어 사용을 한다 즉 1차 사고로 언어 표현이 구식논리의 유아적인 사고와 유사하다 라는 것이 뇌의 실험으로 증명을 하고 있다.

 PTSD 환자들은 소리에 예민하다 시끄러운 소리에 깜짝 깜짝 놀랜다 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리고 과도하게 늘 흥분상태 즉 긴장 상태로 그들은 휴식이 없다. 이것은 뇌가 과도하게 상처 신호들을 구분하는 능력이 부족해서 조그만 신호들을 위험 신호로 보낸다 라는 것이 밝혀졌다.

 PTSD 환자들은 악몽에 시달린다 그리고 불면증으로 휴식을 가질 수가 없다. 주변 상황들에 너무 과민해서 모든 신호들을 위험과 불안의 신호로 오판을 한다. 세상의 복잡한 자극들과 신호들을 구분해서 선별하는 기능이 퇴화해서 조그만 것과 중요한 것들을 구분을 하지 못하고 모든 것들에 에너지를 투자해서 에너지 고갈을 느낀다 그리고 주의집중이 주변의 상황으로 분산되어져서 한 곳에 집중을 할 수가 없다.

 위와 같은 특징들은 공황장애와 다른 점이다. 공황 장애는 호흡곤란으로 숨이 막히고 심장마비로 죽을지 모른다 라고 머리 속이 하얗게 되고 주변의 상황을 파악하지 못해서 경직되고 심하면 기절하게 된다 그러나 플레쉬백이 없다 그리고 자해와 자살 소동이 없다. 반복해서 과거의 상처와 유사한 자극에 재발하는 경우가 드물다 라는 점이 차이가 있다.

 벤더 콜크는 그의 저서 몸은 알고 있다: 몸과 마음과 뇌 라는 책을 2014년에 출판하게 된다. 이 책이 뉴욕 타임즈 베스트 셀러에 121주 동안 1로 오르게 되고 36개국어로 번역되어 출판되어 지게 된다. 그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실제 상처의 결과로 심리신정증(psychoneuroses)들과 다르고 그리고 공황장애질적으로 다르다 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2013년DSM-에서 PTSD불안장애로부터 독립해서 독립된 장애로 분류되어 지게 된다.

 필자가 40년 전인 1982, 8, 3일에 부산을 떠나서 미국 L.A.에서 10년 동안 공부를 하면서 그 때 보고 느낀 미국은 지금 오늘 우리나라와 유사했다. 자녀는 1, 2, 영아원, 유아원, 그리고 손에 생수병을 들고 다니고 현금 대신에 신용카드로 1달에 한번씩 결재를 하고, 애완견 동물들을 안고 다니고, 세콤이라는 방범 장치, 원룸에서 생활, 매일 같이 운동을 하고, 두 잡((job), 스리 잡(job)으로 일을 하고, 시내 버스의 이마에 대형 전광판, 1주일 혹은 1달에 먹거리 준비, 대형 마트로 승용차로 음식 구매, 대형 냉장고로 음식들의 준비 등등은 필자가 처음에 미국에서 느낀 모습이 40년 후에 지금 우리나라가 이제 미국과 같이 문화 선진국이 되었다 그런데 자녀양육에서 오는 정신병의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사회 문화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보라. 섹스 문제들, 이혼 문제들, 학교 폭력 문제들, 교사와 학부모 문제들, 청소년들의 범죄들, 마약과 알코올 문제들, 결혼 비율이 48% 이혼 비율이 47% 그리고 결혼 후에 10년 안에 이혼 비율이 50%자녀들이 10살 이전에 부모의 이혼으로 어린시절의 안전함과 안정이 위협으로 심리적 취약점이 등장한다.

 이러한 사회 문화적 현상들을 반영하는 것들이 최근에 TV에서 유형해는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금쪽 같은 내 새끼, 무엇이든지 물어 보살, 이혼 소송에 과거의 이론에 대한 손해배상 법률 문제 등등이 모두가 심리적인 문제들이 근본이 아닌가?

 필자가 마지막으로 강조를 하는 것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 고물이 되었기 때문에 필요가 없다 라는 말은 아니다. 지금은 32개의 심리치료들은 모두가 정신분석 학으로부터 파생된 치료들이다. 과학문명과 문화의 발달고전적 정신분석으로 대처해 나가기 어렵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그러나 모든 역동심리치료 즉 약물 치료가 아닌 대화 치료에는 프로이트의 기초가 숨어있기 때문에 먼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의 바탕 위에서 새롭게 등장한 심리치료들을 배우고 익히고 그들의 장점들을 흡수해서 수많은 치료 이론들로 무장을 해야 앞으로 더욱더 심각한 문제들의 치료에 대응해 나갈 수 있다 한가지 치료 이론과 기법으로는 다양한 문제점들을 다 다룰 수가 없다 라는 것을 내 발자국을 따라오는 심리치료사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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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참고.

베른헤임(Bernheim, 1979). 정신분열증 환자, 원인, 증세들, 치료들

스트라우스(Strauss et al., 1980). 정신분열증 환자의 심리치료

아르에티(Arieti). 정신분열증의 해석(1976), 창의성(1980), 심한 우울증과 가벼운 우울증(1979), 정신분열증 환자의 이해, 가족 안에서(1994)

워랜(Warren, 1996). 사춘기로의 여행

헨리(Henry, 1989). 사춘기 약물 치료에 실질적 접근

웩슬러(Wexler, 1991) 사춘기의 자아

카플란과 레보비시(Kaplan & Lebovici, 1969). 사춘기 -심리사회적 접근

바알로우(Barlow, 2001). 불안과 불안장애(2001), 공황장애와 공포증(1989)

엘렌버그(Ellenberger, 1970). 무의식의 세계: 역동적 정신의학의 진화와 역사

어네스트 존(Ernest Jones). 프로이트의 삶과 업적 제 1 (1953), 2 (1955), 3(1957)

(Beck). 인지치료와 감정장애(1979), 불안장애와 공포증(1985). 성격장애의 인지치료(1984)

바스크(Basch, 1990). 심리치료의 이해: 예술 위에 있는 과학

보웬(Bowen, 1985). 치료적인 실제 안에서 가족 치료

울프(Wolf, 2002). 치료되는 자아

건드슨(Gunderson). 치료되는 자아(보드라인 환자의 치료 효과)(1989), 보드라인 환자의 치료 안내(1994), 보드라인 성격장애(1984), 보드라인 환자의 치료 안내서(2001)

위치텔(Wachtel, 1997). 치료 커뮤니케이션

위클랜드(Weakland, 1982). 변화의 전술

체싱크(Chessick, 1985). 자아심리학과 나르시즘 치료

브렌들(Brendler et al., 1991). 미침, 혼란, 폭력

스펜스(Spence, 1982). 서술적 진실과 역사적 진실

허만(Herman, 1997). 상처와 회복

메이셀만(Meiselman, 1990). 근친상간의 상처의 해결

제니커(Jenikes et al., 1986). 강박사고-강박행동 장애

프로이트(1900). 꿈들의 해석

벤 더 콜크(van der Kolk)와 맥파래인(McFarlane)(1997). 상처적인 스트레스 Ⅰ: 마음, 몸 그리고 사회 위에 압도적인 경험의 효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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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저서들은 우리나라 말로 번역되어져 있으니 치료사의 홈 페이지에 있는 전문서적 에 들어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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