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동성애(레즈비언)

 

동성애를 엄격하게 말하면 남자 동성애와 여자 동성애로 나눌 수 있다. 남자 동성애는 호모섹스(Homosexuality)라고 부르고 여자 동성애는 레즈비언(Lesbian)이라고 부른다. 남자 동성애와 여자 동성애를 통합해서 보통 게이(gay)라고 부른다. 동성애는 주로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등장하게 된다. 사춘기의 시작은 제 2 차 성적 징후들이 등장하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 남성은 여성으로 여성은 남성으로 호기심과 성적인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 자연스런 발달의 과정이다(동성애의 역사와 학자들의 이론에 대한 상세한 것은 치료자의 동성애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세요).

2 차 성적 징후 즉 2차 성징이 시작되면서 남자들은 섹스에 대한 호기심이 증가하고, 성기가 커지고, 음모가 나오고, 근육 골격이 튼튼해지고 그리고 변성기가 오고, 섹스 욕구가 생기고 이성에 대한 섹스 욕구가 커지면서 몽정(꿈 속에서 사정)하게 된다. 여자들은 엉덩이와 골반이 커지고, 음모가 나오고, 유방이 커지고, 남자들에 대한 호기심과 섹스 욕구가 생기게 되면서 초경(첫 생리- 월경)을 시작하게 된다. 나이별로는 영어의 teen 글자가 붙은 나이인 13(thirteenth)에서 19(nineteenth)까지로 틴 에이즈(teen age)라고 부르는 사이의 나이이다 그러나 신체적인 특징으로 남성의 몽정과 여성의 초경을 사춘기의 시작으로 보면 남녀가 12.5(동양과 서양이 거의 일치)로 보기 때문에 신체적인 시작과 나이별로 구분은 약간의 차이가 있다(김종만, 1999, “”(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

사춘기 시점에서 일반적으로 건강한 남성은 여성에게 호기심과 관심과 섹스 욕구를 느끼고 여성은 남성에게 호기심과 관심과 섹스 욕구를 느끼면서 서로 가까워지고 친밀감을 형성해서 사랑과 연인 관계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 정상적인 발달과정 인데 반해서 동성애는 이성에 무관심 한 반면에 같은 섹스 즉 동성에게 위와 같은 똑 같은 섹스 욕구와 호기심을 가지게 되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서 많은 청소년들이 우정을 동성애로 착각해서 질문을 많이 하게 된다. 남학생이 그의 남자 친구를 좋아하고 사랑하는데, 여학생이 그녀의 여자 친구를 좋아하고 사랑하는데 이것이 동성애가 아닌가? 라고 두려워하는데 이것은 만약에 그 남자 친구에게 그리고 그 여자 친구에게 섹스 욕구를 느끼고 성관계를 가지고 싶고 대신에 이성에 관심이 없다면 그것을 동성애가 맞다. 다시 말해서 남자는 남자에게 여자는 여자에게 섹스 욕구를 느끼고 섹스 호기심을 가지는 것을 말한다. 이 시점에서 자신이 동성애라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

동성애는 적극적인 동성애와 잠재적인 동성애로 간단하게 구분을 하기로 한다. 사춘기 시점에서 자신이 동성애임을 알게 되는 청소년들을 적극적 동성애자로 부르는 반면에 사춘기 시점을 통과하면서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잘 모르지만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동성애로 느끼면서 어떤 특정한 사건을 계기로 동성애로 나타나는 사람들을 잠재적 동성애로 부르게 된다. 동성애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잠재적 동성애로 부르게 되는데 이것은 외부 환경적인 조건에 달려 있다고 본다. 환경에 따라서 묻혀 지나갈 수도 있고 특정한 사건으로 동성애로 발전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적극적 동성애가 약 3만 명으로 잠재적인 동성애가 약 10만 명으로 보고 있지만 다른 변태성욕들이 점점 증가하는 추세인 것을 감안하면 동성애도 점점 증가 하는 것으로 본다(김종만, 1999, “”(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

동성애의 원인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다. 유전적인 쪽으로 보면 학자들도 있지만 대부분이 후천적으로 보는 학자들이 많다. 프로이트는 100년 전에 정신분석을 창안하면서 동성애에 대한 연구와 치료를 한 최초의 학자로써 그는 섹스 욕구는 본능적으로 타고 나지만 행동과 대상의 선택은 배운 행동으로 보았다. 대부분의 정신분석가들은 남성이 남성화, 남자다움의 발달과정에서 그리고 여성은 여성화, 여성다움이 발달 과정에서 자아의 상처와 결함으로 생겨난 것으로 본다, 프로이트는 변태성욕 거꾸로 된 신경증으로 보았기 때문에 변태성욕이라는 perversion 이라는 용어 대신에 inversion(동성애)으로 사용을 했다(Stoller, 1999: 주㈜: 참고).

남자 동성애에 대해서는 블로그에서 여러 차례 글을 썼기 때문에 이번에는 여자 동성애에 대해서 논의해 보고자 한다.

먼저 여자 동성애를 레즈비언(Lesbian)으로 부르는 용어의 어원을 살펴 보자. 동성애의 치료로 40년간 평생을 보낸 찰스 소카로이드(Charles Socarides)는 고교 시절에 프로이트의 삶과 업적이라는 프로이트의 전기를 읽고 정신분석가가 되기 위해서 하버드 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컬럼비아 의과대학의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가 된 동성애의 연구와 치료에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는 그의 저서 동성애: 정신분석 치료”(1989)에서 레즈비언의 어원은 그리스 시대에 사포(Sapo)라는 시인이 레스보(Lesbo)에 사는 여성들이 여성들과 성관계를 하고 여성들 만 사는 세계를 그린 것에서 따온 어원으로 보고하고 있다. 레즈비언이라는 말은 레스보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뜻이다. 이 용어는 아마존 지역에 살고 이는 신화적인 여성들의 세계인 아마조네스(Amanons)와는 다르다. 아마조네스는 아마존의 열대 지역에 사는 여성 전사라는 뜻으로 신화적으로 사용된 용어로써 그들은 딸들만 양육해서 여성들의 세계를 만들어서 여성 전사들을 키우고 여성의 왕국을 건설한 신화의 이야기로써 그들은 강한 씨받이 남성과 섹스를 해서 딸을 낳아서 양육한다(2018, 7, 7, 위키피아 참고)는 것으로 섹스관계를 정상적으로 남자들과 한다는 점에서 레스보에 사는 사람들인 레즈비언과는 다르다.

레스비언이라는 영어의 용어 대신에 여성 동성애라는 이름으로 사용하고자 한다. 여성 동성애를 최초로 치료를 한 사람은 프로이트이다. 그는 16세의 소녀가 그녀보다 몇 살 많은 한 여성을 사랑했다가 그녀로부터 거부로 버림받음에 대한 상처로 자살 시도를 했다가 그녀의 아버지에 의해서 프로이트에게 이첩된 소녀였다. 프로이트가 그녀를 치료를 하면서 그녀의 동성의 사랑은 그녀의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그녀는 오디프스의 기간인 3-5세를 통과하면서 엄마와 라이벌 관계로부터 엄마에 대한 적대 감정으로 시작된 것을 밝혔다 그러나 분석 치료의 과정에서 그녀는 동성의 섹스 관계에서 느끼는 즐거움이 이성섹스 보다 강하다는 것과 치료의 핵심인 능동적인 참가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프로이트는 그녀를 여성 분석가에게 치료를 받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을 해주었다(Ernest Jones, 1957).

치료자(필자)13년 전에 28세의 여자 동성애 P양을 치료한 경험이 있다. 그러나 그녀는 적극적인 여자 동성애자는 아니었다. 그녀는 우울증과 대인관계의 어려움 때문에 인터넷으로 치료자의 홈 페이지를 보고 치료자를 찾아와서 1년 동안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그녀의 동성애 관계가 드러난 것이었다. P양은 부모님과 갈등으로 자살 시도를 했다가 친구의 도움으로 깨어나서 종합 병원의 정신과 병동에 1년 동안 입원 중에 만난 30대 초반의 한 여성과 동성애 관계를 시작하게 되었다. P양과 여성 언니의 동성애적인 행동이 그녀의 병동에서 알려지게 되면서 두 사람이 병원으로부터 추방을 당했다고 털어 놓았다. 그녀는 그 언니와 6개월 동안 동성애로 동거 생활을 했지만 이후에 그녀와 잦은 갈등으로 서로 헤어졌다. 치료의 과정에서 그녀가 스스로 동성애임을 부인했고 동성애를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동성애 치료 보다는 우울증과 대인관계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서 치료를 받았다.

P양이 동성애 관계를 가지게 된 것은 그 언니라는 여성의 적극적인 동성애적인 구애와 사랑 때문이었다고 털어 놓았다. 그녀에게 접근해서 지극정성으로 보살펴주는 것에 감동해서 그녀와 섹스 관계를 가지게 되었다고 고백을 했다. 그녀가 언니라고 부르는 그 여성 동성애자는 사춘기 시점에서 그녀가 남성들에게 흥미와 관심이 없고 같은 동성 여성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토로 했다. P양의 파트너는 아버지에 대한 적대 감정이 심했다는 것과 그리고 섹스관계 시에 적극적으로 P양의 섹스 욕구 만족과 서비스에 매혹 때문에 동성애 관계에 빠지게 되었다고 고백을 했다. P양은 파트너와 초반기 만남에서 그 파트너 언니가 P양 자신의 발을 씻어주고 그녀를 따뜻하게 감싸주는 지극정성에 감동되었다고 분석 치료 과정에서 털어 놓았다. P양의 파트너의 여성 동성애의 특징들과 비교해서 아래에서 소개하는 여자 동성애자의 발달과 진화의 과정이 다음의 글에서 상세하게 소개되어진다.

여성 동성애자들의 치료는 많은 정신분석학자들의 개인 사례 연구들에서 자주 접하고 그들의 특징들을 연구하면서 알게 되었다. 특별히 동성애 치료에서 세계적인 권위자인 소카로이트(Socaride, 1989) 10명의 남녀 동성애자들의 치료의 과정과 동성애자로써의 발달 과정을 소상하게 소개하면서 그들 중에서 3명의 여성 동서애자들의 치료 과정과 회복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치료자가 최근에 UCLA 의과대학의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학자로써 변태성욕의 치료와 연구에서 세계적인 인물인 스톨러(Stoller)의 저서들 중에서(그는 변태성욕에 대한 5권의 저서를 썼다) 한 권을 최근까지 미루어 오다가 몇 개월 전에 읽게 된 쪼갬: 여성의 남성다움의 한 사례”(1999)로부터 여성 동성애자를 7년 동안 치료를 하고 연구를 하면서 한 여성 환자 한 사람을 치료한 치료 사례로써 440페이지의 책을 쓴 것을 읽고 연구를 하면서 그 여성의 동성애의 진화 과정과 치료과정으로부터 여성 동성애자들의 특징들과 성공적인 치료의 과정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 여성 환자는 G 부인이라는 가명으로 스톨려가 소개를 하고 있다. G 부인을 만나게 된 계기는 스톨러가 UCLA의 의과 대학에서 레지던트 들을 교육과 훈련을 하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필름 촬영기법을 도입하게 되면서 그가 한 지방 카운티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G 부인을 영화 필름 촬영기법으로 인터뷰 촬영을 하면서 만나게 된 것이었다. UCLA 의과 대학에는 신경정신의학 학과와 정신의학 학과가 두 개로 운영되고 있는데 신경정신의학 학과는 오늘 날 우리나라에서 신경정신과 의사들을 배출하는 학과로 정신장애들을 뇌의 신경전달 물질의 이상으로 보고 약물로써 치료를 하는 의사들이고 정신의학 학과는 정신장애들을 역동적인 심리적인 관점에서 치료를 하는 것으로 프로이트의 후예들로써 심리치료와 정신분석으로 치료를 하는 의사들을 교육하고 훈련을 한다.

심리상담과 심리치료에서는 약물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고 순수한 심리요법으로 심리적인 상처의 원인과 자아 결함을 찾아내서 치료를 한다. 프로이트가 정신분석을 창안한 시점에서는 자유연상의 방법으로 무의식적인 과정을 찾아가는 방법이 유일했다. 그러나 1950년에 이후에 컴퓨터와 과학의 발달로써 심리치료와 정신분석 치료에도 과학적인 도구들이 도우미로 첨가되기 시작했다.

이것을 시도한 첫 번째 사람이 바로 심리 상담에서 인간중심 심리상담과 내담자 중심 심리치료를 고안한 칼 로져스(Carl Rogers)이다. 그는 녹음기를 동원해서 상담자와 내담자의 대화의 과정을 녹음으로 분석해서 대화의 과정과 상담의 과정에 초점을 맞추게 하는 획기적인 방법에 대한 공로로 1956년에 미국 심리학회로부터 심리치료에 대한 과학 공헌상을 받았다. 칼 로져스는 프로이트의 제자(프로이트의 비밀 조직 핵심 5인 방을 보라)로써 미국에 이민한 오토 랭크(Otto Rank)로부터 정신분석을 전수 받았고 이후에 마슬로우(Maslow)와 함께 인본주의 심리학을 창설했다(2018, 7, 7, 위키피아 참고).

 녹음기와 더불어 과학적인 기재로써 심리치료와 정신분석에 도입된 것이 바로 비디오이다. 말과 영상을 함께 찍어서 이것을 상담자와 내담자의 상호작용을 보고 듣고 직접으로 진행과정을 분석으로 알 수 있게 도입된 것이다. 치료자가 미국에서 심리학 전공으로 치료 심리학을 공부할 시점에서 비디오 기법들이 도입이 되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롱비치 대학에 심리학과는 직사각형으로 된 5층의 별채 건물을 단독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여기에는 교수가 68명이고 시간 강사들을 합치면 100명이 넘었다. 이 건물에는 상담실이 소(내담자와 상담자 두 명), (4-5명 정도의 그룹), (30-40)의 크기를 가진 상담실들과 비디오 분석실과 강의실들이 여러 개가 있었다. 내담자와 상담자들은 상담 진행 과정을 상담실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게 시설이 된 비디오로 녹화 시설이 장치되어져 있어서 상담 후에 이것을 학생들에게 분석으로 개인적인 상담 기술들을 전수 받고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디지털이 도입되기 이전이어서 비디오 녹화는 1시간 혹은 2시간으로 제한이 있었다. 이 시점에서 UCLA의 스톨러가 L.A.의 할리우드의 영향을 받아서 영화 필름으로 몇 시간의 분석가와 분석을 받는 사람의 대화의 과정을 촬영기법으로 도입하게 된 것이었다. 그는 영화필름으로 촬영된 수시간의 녹화를 일일이 분석가와 분석을 받는 사람과의 대화 체로 쓴 저서가 바로 쪼갬: 여성의 남성다움의 한 치료 사례였다. 환자인 G 부인은 30대의 여성으로 스톨러가 지방의 한 카운티 정신병원에서 레지던트 학생들에게 교육과 실습을 위한 영화촬영 필름의 기법을 사용해서 인터뷰를 하게 되었는데 그 때 그녀와 인터뷰가 끝나고 그녀가 지금 입원하고 있는 R 정신분석은 치료 프로그램이 없고 약물 치료만 하고 있다는 것을 들어서 스톨러에서 UCLA의 대학병원으로 이송해줄 것을 요청하게 되면서 서로 알게 되었다. 스톨러는 그녀가 30대 초반의 백인 여성으로 슬픔의 감정이 살아 있다는 것과 그리고 유머 감각이 있는 정신분열증(조현병) 환자라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고 노트하고 있다.

 G부인은 UCLA 대학 병원으로 이송 후에 신경정신과 의사들에 의해서 7년 동안 약물 치료를 받았으나 진전이 없다는 것을 알고 그녀 스스로 스톨러에게 정신분석 치료를 요청을 했고 그가 수용하게 되면서 7년 동안의 그녀의 치료의 과정과 그녀의 사례를 책으로 출판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분석의 과정에서 G 부인은 증세 백화점으로 불릴 정도로 가지지 않는 증세가 없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먼저 그녀는 뇌가 썩어가고 있고 윙윙 그리는 소리가 들리는 환각과 환청을 가진 정신분열증(조현병) 환자였다. 여기에서 그녀는 6세부터 섹스 행각을 벌리고 4명의 사생아를 낳고 4번의 결혼을 한 여성으로 심각한 섹스 문제를 가진 사람이었다. 더 붙여서 G 부인은 권총으로 무장 강도와 주유소를 습격하고 돈을 강탈하고 붙잡혀서 감옥에 간 범죄자였고 운전 면허증도 없이 승용차를 훔쳐서 다른 주로 도망을 갔다가 붙잡혀 일찍부터 소년원과 재건학교(대안학교, 재활학교)에 보내졌고 그곳에서 소녀들과 어울려서 섹스를 가지고 그리고 나이 많은 여성들과 동성애 생활을 계속하면서도 남자들과 여러 번 결혼으로 몇 명의 자녀를 둔 엄마였다. 그녀는 부도 수표를 남발해서 체포되었고 살인을 시도하고 자살을 시도한 전과자였다. 여기에다 그녀는 페니스를 가진 찰리라는 남자와 카리에 라는 여성이 그녀의 몸 안에서 살고 있다는 다중성격의 환자였다.

 G부인의 7년 동안의 치료 과정의 분석가와 분석을 받는 사람과의 일대 일의 대화체의 치료 과정의 소개해서 치료자(필자)는 여성의 동성애의 부분만 국한 시켜서 그녀의 동성애의 진화 과정과 여성 동성애의 특징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G 부인의 삶의 역사

 G 부인은 한 백인 멕시코게 여성과 백인 남성 사이에 태어난 30대 초반의 한 백인 여성으로 그녀가 4살 때 이미 아버지는 직업 군인으로 집에서 거의 없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이혼을 한 상태였다. 어머니는 이전의 남편과 결혼에서 몇 명의 자녀들이 있었다. G부인이 4살 때(최초의 기억이 4살쯤) 엄마는 나는 아들을 원한다, 딸을 원하지 않는다라고 습관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말을 들으면서 자란 G 부인은 그녀가 아들이 되고 싶었다, 고로 그녀는 페니스를 가진 남자로써 상상하게 되었다. 그녀는 여성이 되는 것을 싫어하고 미워했다. 어머니는 딸을 원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딸을 좋아했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집에 없었다.

G부인의 아버지: 그녀의 아버지는 한국 전쟁에 참전한 직업 군인으로 6.25 때 포로로 잡혔다가 풀려 나왔고 그 상처로 이후에 30년간의 군대 생활에서 전역을 하면서 상처 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으로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어머니로부터 이혼을 당했다. 이혼 후에 그는 다른 여성과 재혼을 해서 딸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G부인이 이후에 알게 되었다. 그녀는 아버지에 대한 갈구와 아버지 사랑을 갈망하면서도 아버지가 일찍 떠났기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적대 감정이 심했다는 것이 분석으로 밝혀졌다. 아버지는 끝내 G부인과 연결 되어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자살을 했고 그의 시체는 찾지를 못했다. 그녀는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을 했다. 아버지는 자살 후에 시체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시체가 없는 빈 관으로 국립 묘지에 안장될 때 약 300명의 재향군인들이 참석해서 장례를 치르게 한 기억들을 분석의 과정에서 G부인이 토로 했다. 이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미움이 이후에 동성애 관계에서 크다란 역할을 한 것이 밝혀지게 된다.

G 부인의 어머니: 그녀의 어머니는 충동적이고 여러 명의 씨 다른 자녀들을 가진 여성으로 딸인 G 부인을 미워하고 학대를 했다. 그녀는 빈민가의 변두리 지역에서 노동으로 일을 하면서 여러 명의 자녀와 함께 먹고 살기에 급급해서 자녀 양육에는 자녀의 심리적인 문제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녀는 무식했고 교양이 없었다. 자녀들의 양육은 똥 기저기를 갈아주고 배를 굶기지 않고 배부르게 먹여주고 학교에 보내주는 것이 전부였다. 말투와 언어 표현은 거칠고 욕설적인 표현이 대화의 전부였다. G 부인이 어린 시절부터 말썽꾸러기로 문제아가 되면서 엄마는 차리리 그녀가 죽었으면 하는 죽음 소망이 G 부인에게 투사되어 G 부인은 여러 번 자살 시도를 했고 어린 시절부터 엄마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끝없이 청개구리의 행동을 했다고 분석가인 스톨러에게 고백을 했다.

G 부인의 어린 시절: G 부인의 이름은 아버지의 이름에다 설탕(Sugar)라는 이름에서 어려움이 시작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녀의 이름은 제인(Jane)이라는 이름이 있었지만 그녀는 그것이 여성의 이름이라고 거부했다. 그녀가 유치원에 갔을 때 첫날 유치원 선생님이 어린이들을 자기 소개를 시켰을 때 그녀가 내 이름은 설탕(Sugar) 입니다라고 소개를 했을 때 반 아이들과 선생님이 웃었다. 이후에 그녀는 유치원에 가지 않았다. 유치원에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그리고 공원에서 숨어서 놀다가 유치원 어린이들이 귀가하면 유치원을 다녀왔다고 엄마에게 거짓말을 했다. 한 학기가 지나가고 나서 통지표를 받고 나서 엄마가 알 되었다. G 부인은 한때 공부를 잘 했으나 항상 선생님들과 엄마는 오빠는 이것을 잘 했는데 너는 이 모양이냐? 오빠는 저것을 잘 했는데 너는 이 모양이냐? 라는 오빠와 비교에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을 했다. 이후부터 그녀의 학교 생활은 무단 결석에다 공부에 흥미가 없었다. 학교에는 가능 둥 마는 둥으로 학업에 관심이 없었다. 이후에 그녀는 정규 학교에서 유급되어 재건학교(재활 학교, 대안 학교)로 전전했다.

G 부인은 6살 때부터 난잡한 섹스 행동이 시작되었다. 그녀의 난잡한 섹스는 틀림없이 오디팔 기간인 3-5세 사이에 부모님의 섹스 관계의 장면이 G 부인에게 노출이 되면서 그녀가 섹스 자극에 대한 상처로 시작된 것이 틀림이 없었다. 그녀는 6살 때부터 소년들과 섹스를 가지면서 이후에 남녀 노소를 가리지 않고 섹스를 가졌다. 20세 이전에 4명의 사생아를 낳고 입양을 보내고 한 정신과 의사와 섹스로 쌍둥이를 임신해서 그녀가 스스로 키우게 되었고 그녀는 4번이나 결혼을 하면서 여러 곳의 정신병원을 전전했다. R 정신병원에 있을 때 엄마가 처음으로 면화를 왔던 것에 반가웠으나 그것은 엄마가 그녀의 난관을 묶어서 임신을 차단시키기 위한 거세적인 조치임을 나중에 하고 분기탱천했다. 그녀는 치료의 과정에서 임신을 했을 때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함을 느꼈다고 실토를 했다.

G 부인의 동성애적인 행동의 시작: G 부인은 남자가 되기를 원했다. 그녀는 페니스가 자라고 있다고 상상으로 확실하게 믿었다. 그녀는 남자로써 행동을 했다. 남자 어린이들과 어울려 놀고 남자처럼 행동을 했다. 여성의 옷을 입기를 거부했다. 항상 청바지를 입고 머리를 남자처럼 짧게 깎고, 화장을 하지 않았다. 목소리도 남자 목소리로 말을 했다. 거칠고 과격한 남자들의 운동을 좋아했다. 그녀가 12-13살 쯤에 자동차를 훔쳐서 운전 면허가 없이 운전을 하다가 붙잡혀서 유치장에 갔다. 이후에 그녀는 부도 수표 남발로 체포되었다. 그녀는 부랑배들과 어울려서 총기를 가지고 주유소를 여러 번 강탈 했다가 체포되어 소년원에 들락거리게 되었다. 소년원에서 소녀들의 생황 그룹에서 그녀는 서로 부부(남편과 부인)로 짝이 지어지고 섹스행동을 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그녀의 동성애 관계가 시작되었다. 이후에 그녀는 소녀들과 동거 생활을 하거나 혹은 나이 많은 여성의 결혼 생활에서 부인들을 유혹해서 동성애 관계를 나누었다. G 부인은 자신이 동성애라는 것을 엄마에게 자랑을 했다. 어머니는 그녀의 동성애 관계를 미워하고 싫어하고 인정을 하지 않았다. 고로 G부인은 그녀 스스로 적극적인 동성애를 부인했다. 그녀는 엄마의 관심을 끌어내기 위해서 동성애를 하고 있다고 스스로 실토를 했다. G 부인은 동성애를 가지고 여성들과 동거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스스로 동성애자 라고 인정하지 않고 파트너가 적극적인 동성애인 경우에는 관계를 끊어버리고 폭력으로 대응을 했다.

G부인의 동성애 분석: 스톨러는 G 부인의 동성애를 치료 하면서 그녀가 어린 시절에 아버지를 기원하면서 아버지를 동일시한 것을 노트하고 있다. 딸은 3-5세의 오디프스 기간에 그녀 자신이 페니스가 없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면서 아버지와 가까워지고 페니스가 없는 딸을 낳은 어머니를 미워하게 된다, 그러나 동생의 출산으로 그녀는 부모님의 방에서 쫓겨나게 되면서 어머니가 아버지와 함께 잠을 자고 아버지의 사랑은 딸인 그녀가 아니고 엄마라는 것을 의식하게 되면서 아버지가 좋아하는 것은 엄마인 여성임을 깨닫게 되면서 여성스러워져야 아버지의 사랑을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엄마를 동일시해서 여성다움으로 여성화의 길을 걷게 된다. 여기에서 사춘기가 되면서 아버지를 포기하고 아버지를 닮은 이성 쪽으로 방향이 바뀌면서 딸은 가족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서 더 넓은 사회라는 새로운 세계로 향하게 된다. 이것이 정상적인 여성다움이 발달과정이다.

 그런데 G 부인은 엄마가 아들을 원하고, 딸을 원하지 않는다는 기대에 부응해서 그녀는 아들이 되기를 원했다. 페니스를 가진 여성이 된 것이다. 고로 여성다움을 거부했다. 그녀는 톰보이(Tom Boy)가 된 것이다. 여성이면서 남자처럼 행동하고 남자들과 어울리고 여성다움을 거부하고 미워하게 된 것이다. 엄마에 대한 분노, 적대 감정과 미움으로 같은 여성인 엄마와 경쟁을 하게 되었다. 누가 남자들 즉 아버지를 만족시켜주는 사람이냐?를 놓고 자신의 몸은 여자이면서도 엄마보다 우수한 엄마를 능가하는 엄마보다 더 남자들에게 충족을 주는 여성이 되기 위한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아버지를 놓고 엄마와 경쟁을 하는 것이다. 자신은 엄마보다 월등하게 남자들을 욕구 만족을 제공해줄 수 있다는 무의식 때문에 섹스 관계에서 남성적인 여성이 되는 것이다.

G부인의 동성 여성과 섹스 관계: 분석의 과정에서 G 부인은 어떤 남성보다도 여성 파트너를 유혹하는데 뛰어나다는 자신감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그녀가 매력적으로 보인다고 생각하는 여성들을 유혹하는데 유능하고 파트너인 여성의 환심을 사고 매력을 끌어올 수 있는데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특별히 적극적인 동성애자를 싫어했고 이성적인 결혼한 이성애의 여성들을 유혹해서 잠자리를 가졌다. 침실에서 G 부인은 파트너가 그녀 자신의 몸을 애무하거나 만지지 못하게 하고 그녀가 파트너를 애무하고 빨아주고 핥아주어서 상대 파트너가 욕구 만족을 할 때까지 지극정성을 보여주었다. 파트너가 오르가슴을 여러 번 가지고 충분한 욕구 만족을 할 때까지 그녀는 오르가슴을 가지지 않았다.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치료자가 1년 동안 심리치료를 한 P양이 그녀의 동성애 파트너의 언니와 유사하다.

 그녀가 동성애를 가지는 목적은 그녀 스스로 밝혔다. 그녀 자신이 어머니보다 모든 섹스 면에서 능가한다는 욕구 만족이 그녀를 기쁘게 한다고 스스로 고백을 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섹스 욕구를 만족시켜주지 못했기 때문에 아버지를 떠나게 한 것으로 생각하고 그녀는 그녀가 무의식적인 대상은 아버지(동성 여성)를 섹스 만족을 충분하게 제공하는 것이라고 했다. 고로 그녀는 어머니에게 승리를 하는 것이다. 어머니와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라는 말들을 공공연하게 했다. 그런데 그녀는 스스로 동성애임을 부인했다. 그녀는 남성보다 뛰어나다고 생각을 했다. 즉 여성으로써 남성이 되었기 때문에 어떤 남성보다 뛰어나고 여성보다 우월한 것은 그녀는 페니스를 가진 여성이기 때문에 다른 어떤 여성들보다 우수하다고 생각했다.

 여성이면서도 남성이 되고 싶어하고 여성의 성별 자체를 거부하고 남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하는 여성의 주어진 성을 부인하고 수술을 해서 페니스를 붙여서 남성으로 돌아가는 여성들 혹은 남성인데 주어진 남성을 거부하고 수술을 해서 페니스를 제거하고 여성으로 돌아가는 남성들이 바로 성전환증 환자들이다. 그들과 동성애자들이 다른 점은 동성애자들과 성 전환증 환자들이 어린 시절에 성별의 발달 과정에서 서로 유사한 행동을 보이지만 동성애자들은 부모님이 동성애 자체를 거부했기 때문에 주어진 성 그 자체는 거부하지 않고 수용한다는 점에서 여성 동성애자들은 그들이 여성임을 수용하는 것이다, 반대로 성전환증 환자들은 부모님이 딸이 남자처럼 행동하고 남자가 되는 것을 즐거워하고 좋아하는 기대에 여성들이 부응하기 때문에 그녀에게 주어진 성별 자체를 거부하고 남성으로 수술을 해서 페니스를 달고 남자가 되는 것이라고 스톨러(Stoller, 1999)가 그들의 차이점을 지적을 하고 있다.

 G 부인은 그녀가 스스로 동성애자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고 그리고 그녀는 적극적인 동성애자를 싫어하고 섹스 시에 적극적인 동성애자로 드러나면 폭력으로 반응행동을 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 이유는 그녀의 엄마가 동성애자들을 미워하고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G 부인은 그녀의 섹스 행동에서 동성애를 즐기는 것은 섹스 시에 여성과 오르가슴을 가지는 것에 포인트가 있는 것이 아니고 그녀는 오르가슴 보다 섹스가 끝나고 나서 그녀가 파트너의 품에 안겨서 따뜻하게 포근하게 위로를 받는 것에 있다고 스스로 강조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어린 시절에 엄마의 따뜻한 사랑의 갈구를 의미하는 것으로 스톨러는 지적을 하고 있다. 엄마로부터 아들만 좋아한다, 딸을 필요 없다고 냉대하고 학대한 그 욕구의 상처가 동성애로 남자가 되어야 엄마의 사랑을 얻을 수 있다고 아들로 행세를 하면서 즉 엄마를 동일시 한 것이 아니고 아버지를 동일시한다는 프로이트의 이론을 스톨러가 강조를 하고 있다. 반면에 아버지가 일찍 떠난 것에 대한 미움과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음의 분노가 깔려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동시에 엄마와 경쟁하고 엄마보다 뛰어난 사람이 되겠다는 무의식적인 생각에서 엄마가 하지 못하는 행동들을 스스로 골라서 어린 시절에 섹스행동에서부터 시작해서 범죄자가 되고 다중성격자가 되고 그리고 살인적이고 자살적인 위험한 인물이 되고 각종 사기행각, 도둑 그리고 거짓말쟁이가 된 것은 어머니로부터 무시당해서 존재의 소멸을 느끼는 것 보다 부정적이지만 엄마의 분노, 미움과 화의 불을 당기는 반사회적 성격장애(범죄와 폭력과 반항아)가 된 것으로 G 부인이 스스로 스톨러에게 분석으로 밝혔다.

G 부인의 치료의 결과: G 부인은 위기 때마다 자살과 살인의 위험을 느낄 때다 UCLA의 정신병원에 입원을 했다 그리고 안정이 되면 퇴원을 했다. 그녀는 빌(Bill)이라는 남편이 있었고 쌍둥이 아들을 가지고 있었고 거짓으로 임신을 했다고 속이고 미혼녀가 출산한 자녀를 입양으로 그녀가 스스로 낳았다고 거짓임신으로 속이고 입양을 했으나 그 아기가 정박아에다 벙어리로 청색증 환자로 그리고 자폐아로써 그 아기에 집착으로 매달리다가 입양을 포기하고 국가기관에 입양으로 보내주었다. 7년 동안의 정신분석을 받아서 그녀의 수 많은 장애들은 한가지씩 해결이 되어갔다. 스톨러는 그녀의 분열된 여러 개의 자아들을 서로 소통하도록 해서 자아 통합으로 그리고 정신분열증의 환청과 환각은 그녀가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들의 기원을 찾아서 환청과 환각의 퍼즐 조각들을 맞추어 나가면서 그녀가 그것을 깨닫게 함으로써 환청과 환각은 사라지고 정신분열증(조현병)에서 벗어났다. 그녀의 청개구리적인 반사회적 행동들은 분석가의 분석으로 그녀 자신이 비정상적인 행동으로 엄마의 사랑을 받고 인정을 받겠다는 무의식적인 욕구를 깨닫고 브레이크를 걸어서 자아를 건강한 방법으로 사랑을 주고 받도록 하는 과정을 새로 배우게 함으로 그녀를 정신병원에서 퇴원으로 집으로 되돌아갈 수 있었다.

스톨러는 카운티 정신병원에 수감되어 있는 G 부인과 인터뷰에서 그녀가 몇 군데의 정신병원을 드나들면서도 고질적인 다른 정신분열증(조현병) 환자와 달리 그녀의 유머 감각과 재치와 슬픔을 느낄 수 있는 환자임을 직감하고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을 스스로 노트하고 있다. 그는 G 부인을 정신분석 치료를 위한 환자로 선택을 하게 된 동기는 G 부인은 그녀가 스스로 선택한 정신분열증(조현병)으로 그녀 자신의 자아 감각의 소멸을 막기 위해서 각종 정신장애를 선택해서 스스로 컨트롤하고 있는 환자이기 때문에 극한적인 상황으로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감지를 했고 그녀를 선택해서 7년 동안 치료를 진행하면서 결국은 그의 직감이 옳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고 노트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정신분열증(조현병) 환자들은 장기간 약물에 찌들려 서 수년간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게 되면 감정이 죽어버리고 무기력한 사람이 되어 무감각, 무기력, 무능력하게 되는 것이 보통인데 비해서 G 부인은 극단적인 상황을 스스로 컨트롤해서 더 이상 악화시키지 않고 있다는 것을 스톨러가 발견하고 치료를 하게 된 것이었다.

스톨러는 G 부인을 치료하면서 스스로 과거의 상처들을 이야기를 통해서 말로써 표현을 하게 하는 자유연상의 기법을 영화 촬영기법으로 찍어서 분석으로 치료를 진행하면서 G 부인이 스스로 어린 시절의 상처들을 말로써 표현하고 그 상처들에 관계되어진 감정들을 말로써 표현하게 해서 장장 7년 동안 치료를 진행함으로써 그녀 스스로 자신의 자아 결함과 갈등들을 표현하고 잘못된 결함들을 고치고 새로 배움으로써 수많은 증세들의 백화점적인 장애들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었다. 스톨러는 이것을 백일몽의 분석으로 이름을 붙였다. 즉 상상들을 분석으로 밝혀내는 프로이트의 자유연상의 기법이 정신증 환자들 즉 정신분열증(조현병) 환자, 편집증, 조울증 환자들의 치료에 효과적이고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을 실험적으로 그리고 그의 사례 분석을 통해서 증명한 유명한 사례로 분석가와 심리치료사들에게 인기 있는 분석 사례로써 사랑을 받고 있다.

다시 치료자의 여성 동성애의 이야기로 되돌아가보자. 치료자는 남자 동성애자들로부터 치료자의 위치와 비용과 치료의 과정과 그리고 동성애가 과연 치료될 수 있는가?하는 메일과 전화를 많이 받는다.그리고 한 남성 동성애자의 용기 있는 치료 제의로써 그는 지금 2 6개월간 동성애 치료를 받아서 지금은 목표지점이 눈에 보이는 지검까지 와 있다. 그는 치료자의 정신분석 이론의 스폰지처럼 수용을 해서 즉각적으로 현실에서 적용함으로써 문제를 직면으로 뚫고 나감으로써 동성애 문제는 단순히 이성 대상을 선택하는데 생긴 문제가 아니고 어린 시절에 남성화의 남성다움의 과정에서 발달과정의 어려움에서 자아가 살아남기 위해서 부모님과 관계 즉 아들과 엄마와 관계 아들과 아버지와 관계 그리고 어머니와 아버지와 관계에서 생겨난 문제로써 이 관계 문제들을 풀어 나가면서 여기에 섹스 대상의 선택 문제가 하나 더 포함된 것으로 일반적인 인격장애, 성격장애의 문제에다 섹스 문제가 하나 더 첨가된 문제라는 것이 남성 동성애자인 J군을 통해서 치료자가 정신분석 학자들의 동성애의 이론과 치료에 대한 확신을 하게 되었다. J군은 이제 여성들에 대한 두려움이 감소되고 자연스럽게 이성들에 대한 섹스 욕구가 싹이 트고 성장하게 되어 많은 여성들과 건강한 관계에 진입했다는 확신이 들어서 이제 동성애의 성공적인 치료가 눈앞에 보이고 있다.

반면에 여성 동성애 문제는 치료자에게 메일이나 전화로 문의를 하는 경우의 빈도수가 적었다. 그 이유로 여성 동성애가 남성 동성애보다 적다는 뜻이 아니고 여성들이 수줍어하고 부끄러워서 말을 끄집어내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남성 동성애는 수십 통의 치료 문의 메일과 전화를 받았고 컨설팅을 요청한 남성 동성애가 4 명이나 되었지만 여성 동성애는 컨설팅을 요청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점이다.

사춘기의 청소년들이 자신이 동성애자 임을 알게 되면 가장 먼저 자신이 동성애임을 누가 혹시 알지나 않을까? 해서 감추고 비밀로 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고로 친구관계가 단절된다. 친구들이 동성애라는 것을 알면 모두 도망을 갈 것이라고 생각해서 숨기려고 한다. 고로 고민과 갈등과 상상 속에 빠져들게 되어 다양한 정신적인 문제들이 첨가된다. 고로 자신의 섹스 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아래의 기본상황을 지켜야 만 문제 해결이 가능하게 된다.

1)  부모님에게 알리고 부모님의 지원을 요청 받아야 한다. 동성애적인 문제는 혼자서 해결할 수가 없다. 개인이 혼자서 해결하려고 온갖 상상을 하는 과정에서 문제는 더욱 더 커지고 일상생활들이 간섭을 받게 된다.

2)  치료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필요하다. 동성애는 치료될 수 있다. 많은 치료 사례들이 외국의 유명한 정신분석가들의 이론들과 치료 사례를 통해서 밝혀지고 있다. 치료자 역시 남자 동성애를 2 6개월 동안 치료를 하면서 이제 동성애의 치료에 밝은 희망이 생기게 되었다.

3)  치료자의 정신분석 치료 이론과 치료 사례들을 숙지하고 용감하게 치료에 뛰어들만한 용기가 필요하다. 어떤 일이 어떤 장애물이 있다고 해도 꼭 치료해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강한 치료 동기는 이미 프로이트가 100년 전에 밝혔다. 동성애뿐만 아니라 모든 정신장애는 치료를 하겠다는 강한 의지에 달려 있다. 그것이 정신분열증(조현병)이라고 해도 자신의 발로 치료실에 걸어 들어온 사람들은 치료에서 회복될 수 있다는 확신을 치료자가 가지고 있다. 단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말이다.

4)  지식화로 위안을 삼지 말아야 한다. 프로이트는 책을 읽어 보거나 치료 사례를 읽어보고 위로는 얻을 수 있지만 그것으로 치료를 할 수는 없다고 밝히고 있다. 정신과적인 문제를 가지게 되면 심리학 서적들과 정신 의학 서적들을 찾아서 수십 권을 읽고 스스로를 이해하려고 하는 현상을 많이 본다. 이것은 자살 행위와 마찬가지다. 일부 유사한 치료 사례와 이론을 보고 약간의 불안이 감소되고 안심이 되지만 사람마다 치료사 마다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치료자는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고 있을 동안에는 치료자의 저서와 치료 이론들을 가능하지만 다른 사람의 이론들과 치료들은 혼란과 갈등과 의심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에 금지시킨다. 심리적인 문제 즉 동성애 문제는 삶의 좌우하는 중대한 문제이고 단기간 몇 개월의 문제로 해결되어지지 않는 문제임을 명심하고 빨리 고통과 고민과 갈등에서 벗어나는 것이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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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참고: UCLA의 의과대학 교수이자 정신분석가인 로버트 스톨러(Robert Stoller)가 쓴 5권의 저서들 변태성욕(1986), 고통과 열정(1998), 섹스의 흥분(1979), 친밀감의 커뮤니케이션(1990), 쪼갬: 여성의 남성다움의 사례(1997)5

           : 어네스트 존(Ernest Jones)의 프로이트의 삶과 업적 제 1 (1953), 2 (1955), 3(1957)의 저서들

           : 찰스 소카로이트(Charles Socarides, 1989)의 동성애: 정신분석 치료의 저서

      위의 서적들은 우리나라 말로 번역이 되어 있으니 치료자의 홈 페이지에 있는 전문 서적 안내에 들어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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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치료 사례는 적극적인 여성 동성애자가 아니고 잠재적인 여성동성애자로 몇 살 연상인 언니 되는 여성과 6개월 동안 동거 생활로 섹스 관계를 가진 28세의 P양의 치료사례를 소개한 것이다.

카우치에 누워서 정신분석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과 분석가

 

대상: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는 28세의 우울증 여성 환자 P

증세: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지 않고 부모님과의 갈등으로 정신과 약물을 과다 복용으로 자살을 시도 했으나 친구의 도움으로 병원에 입원해서 회복

진단: 대인공포증, 회피적 성격장애, 우울증

연결: 인터넷으로 치료자의 홈페이지에 접촉한 후에 치료를 받고 싶다고 치료자에게 메일로 연락이 옴

치료 기간: 1주일에 2회 씩 1 2시간 분석 상담으로 1년동안 치료를 받았음

치료의 결과: 마음을 안정시키고 충동적 관계에서 회복되어 지금은 방송 통신대학에서 영문과에 재학중이고 어학 연수를 준비중

 

치료의 과정

 P양은 어린 시절에 아버지와 아버지의 보살핌의 부족 때문에 대인관계를 제대로 배우지를 못했다고 했다. 부모님은 서울에서 만나서 행상을 하다가 힘들어져서 부인이 사는 고향으로 낙향을 해서 결혼 초반기에는 농사를 짓고 살았으나 소작농으로 힘들어서 자녀들을 제대로 양육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P양은 위로 오빠가 한사람이 있고 여동생과 남동생이 한명씩 있었다. 부모님은 돈을 모아서 이후에 과수원을 경영하게 되면서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나 젊은 시절에 아버지는 늘 술에 찌들려 살았고 아버지의 음주 때문에 어머니와 잦은 가정 불화들이 자녀들의 성장에 영향을 미쳤다. 부모님은 자녀들을 돌볼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그냥 먹는 것과 입는 것 학교에 보내는 것에만 신경을 썼다고 했다. 자녀들과 이야기를 하거나 자녀들과 놀이를 한느 미주알 고주알 의견을 나누는 것을 제대로 해 본적이 없다고 했다. P양의 오빠는 장남으로 부모님의 관심과 보살핌을 받아서 P양이 어린 눈으로 볼 때도 오빠는 아들이고 장남으로 무엇이든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 가졌으나 P양은 부모님에게 제대로 요구를 해 본적이 없다고 했다. 착한 딸로 자라나서 부모님이 알아서 모든 것을 다 주실 것으로 믿었고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하는 착한 딸이었다. P양은 두 남동생과 여동생에게는 어머니 대신 엄마 노릇을 했다고 했다. 어머니는 바빠서 P양에게 자녀들을 대인 맞기고 엄마는 일을 해서 돈을 벌기에 신경을 썼다. 고로 P양은 동생들을 돌보는데 자신의 어린 시절을 다 보냈다고 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오빠는 종교 모임의 한 가족이 이민을 뉴질랜드로 가는 바람에 그곳에 가서 1년 동안 유학생활을 했다고 했다. 오빠는 뉴질랜드에서 1년 동안 유학을 했다. 그 때문에 부모님은 재정적으로 많이 힘들어했고 이후에 오빠는 고등학교는 검정 고시로 대학 영문과에 합격해서 졸업 후에 미국 시민권을 가진 미국 여성과 결혼을 해서 5년 동안 한국에 생활하다가 지금은 미국에 다시 들어갔다고 했다.

 P양은 초, , 고등학교 때는 그런대로 공부를 잘 해서 부모님의 인정을 받았다고 했다. 그 당시에 아버지는 매일 술로 세월을 보냈고 가족 구성원들을 괴롭히기도 했다. 특히 어머니와 많이 싸웠으나 몇 년 전부터 건강 때문에 술을 끊고 지금은 종교 생활을 하면서 과수원 일에 몰두 하고 있다고 했다. P양은 고등학교 시절에 아버지의 술마시는 행동과 가족들을 괴롭히는 행동 때문에 아버지를 경멸하고 미워했다고 했다. 어머니와 P양이 아버지를 공격해서 아버지의 술마시는 버릇을 고칠려고 많이 노력을 했으나 갈등만 양산했다고 했다.

 고등학교는 인문학교에 갈 성적이 되었으나 굳지 인문학교를 고집하지 않고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자 회사에 2년 정도 다닌 후에 개인 사업을 하는데 사원으로 일을 하면서 문제가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전자 회사에 다니면서도 문제가 된 것은 친구관계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그만두었다고 했다. 개인사업체에서 경리 사원으로 있으면서도 동료들이나 주인과의 갈등을 제대로 뚫고 나가지 못해서 1 6개월 정도 하다가 그만 두고 부모님의 과수원 농사일을 하게 되면서 부모님과의 잦은 충돌로 끊임없는 고통에 시달리게 된 것이었다.

 부모님은 P양이 학교 시절에는 온순하고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고 인정을 해주었으나 P양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서 직장 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얼마 후에 그만 두게 되자 P양의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하고 "왜 다른 사람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면서 돈도 많이 벌고 결혼도 잘 하는데 너는 왜 그 모양이냐? 라고 구박과 압력을 넣게 되면서 P양이 부모님과 갈등이 계속되게 되었다. 그녀는 부모님의 과수원에서 농사를 짓는 것은 죽어도 하지 못하겠다고 끊임없는 불평을 했다. 부모님은 사회에 나가서 돈을 벌어오지 못하면 농사일을 조용하게 하든지 아니면 직장 생활을 해서 독립해서 나가든지 하라고 요구를 했으나 P양은 사실은 사회생활에서 두려움을 가지게 되었다. 사람들과의 대인관계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어떻게 사람들과의 갈등을 해결해 나가는가?를 어린 시절에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이었다.

 부모님은 농번기 때는 P양을 데리고 과수원일을 시켰으나 P양을 가만히 내 버려두지 않았다. 언제나 옆에서 잔소리를 늘어 놓거나 일을 이렇게 하라 저렇게하라 간섭을 했다. 고로 그렇지 않아도 하기 싫은 농사일에 진절머리가 나서 그녀는 몇 번을 가출 아닌 가출을 했다. 일을 하다가 잔소리를 하면 그대로 집에 돌아와서 자가용 차를 몰고 드라이버를 했다고 몇 일씩 외박을 하고 들어오기도 했다. 인터넷에 빠져서 밤새도록 전자 오락을 하다가 너무 늦게 전자 오락을 하는 아버지와 갈등으로 아버지에게 죽도록 폭력을 당한 것도 여러번 있었다.

 P양은 처음에는 자신이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를 잘 몰랐다. 왜 사람들은 자신만 보면 피하고 자신을 뒤에서 욕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관계를 가지는 사람마다 결국에는 서로 적으로 원수처럼 되어가는 것을 자신의 문제 때문이 아닌 상대방의 문제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한 곳에 오래 정착을 할 수 없었다. 친밀감정이 생기면 오히려 그녀에게 불편해졌다. 상대방의 눈치만 보고 좋은 말만 가려서 하고 절대로 상대방의 기분을 다치게 않게 하다고 보니 정작은 자신이 잘못한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나중에는 모두가 자신이 잘못된 것으로 만들지게 된 것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 약 5년 동안 끊임없이 몸부림을 친 것이 분석 결과 밝혀졌다. 그녀는 집에서 탈출하기 위해서 인터넷으로 알 게 된 남자들을 찾아 만나기도 하고 데이트도 하고 편지를 주고 받기도 했으나 편지를 주고 받을 때는 그런대로 서로 잘 통하는 면이 있었는데 막상 만나고 보면 갈등이 생겨서 해어지고 마는 패턴이 계속되었다.

 자살 시도 후에 할 수 없이 그녀는 종합 병원에 정신과에 입원을 했다. 그곳에서 몇 개월간 모범 환자로 병원의 스텝들에게 인정을 받고 병원에서 도우미로 잘 해나가다가 40대 중반의 언니 뻘 되는 알콜 중독자와 친밀하게 되면서 레스비언 관계로 발전해서 병원에서 쫒겨나게 되고 이 사실이 부모님에게 알려지게 되고 부모님의 멸시와 학대를 받게 되면서 레스비언 언니와 함께 가출해서 약 1년 동안 집에 들어가지 않고 돌아다니다가 레스비언 언니와 헤어지고 갈곳이 없어 집에 전화를 걸어서 부모님이 자동차를 가지고 서울에서 P양을 집으로 데리고 온 것이 P양의 5년 동안의 고통스런 세상 경험을 한 그녀의 오디세이의 끝이었다.

 이후에 부모님 집에 같이 지내면서 갈등을 계속하고 있던 중에 치료자의 홈페이지를 인터넷에서 접하고 난후에 심리치료를 요청한 것이었다.

이론적 근거

 P양은 어린 시절에 부모님과 대화가 별로 없고 부모님의 눈치만 보고 자랐다. 초등학교 시절에도 친한 친구가 별로 없었다. 늘 외톨이었고 학교에 가기가 싫어졌다고 했다. 그러나 부모님에게는 그런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고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부모님이 이해를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는 하루는 학교에 가지 않고 도중에서 놀다가 집에 되돌아온 일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동료들과의 큰 갈등은 없었다. 부모님의 체벌이나 폭력은 없었다. 오빠는 유치원 때부터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다 했다고 했다. 어떤 것을 사고 싶어면 사달라고 해서 가졌으나 P양은 부모님이 사주면 받았지 스스로 이것을 해 달라고 한 적이 없다고 했다. 오빠는 유치원에 다녔으나 P양은 유치원에 보내달라고 하지 않았고 부모님은 그런 요청이 없는 P양을 보내주지 않았다. P양은 오빠는 유치원에 다니는데 왜 자신을 다니지 않았느나고 물어보았을 때 "나는 딸이니까 그런가 보다"라고 늘 생각해 왔다고 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때에도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지 못했다. 그렇다고 학교 생활이 안된 것은 아니었다. 성적은 그래도 상위권이었고 따돌림은 받지 않았다고 했다.

 가족들이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가르치지 못한 것이다. 동료들과 어울리면서 생기는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선택하지 못하고 갈등이 생기면 피하는 방법을 선택해서 항상 다른 사람들과 갈등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근본적인 이유는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욕구를 전달하는 것을 배우지 못한 것이었다. 자신이 불쾌하면 상대에게 알리고 이것을 하지 말라고 당당하게 요구를 하지 못하고 항상 마음 속으로는 상대를 비난하고 상대와 관계를 끊어 버리게 되면서 사춘기를 지나면서 외톨이로 굳어진 것이었다. P양은 대인관계를 갈등이 없고 너와 나의 하나된 마음의 관계가 되기를 기대한 것이었다. 그러나 인간 관계는 갈등이 없을 수 없기 때문에 갈등이 생기면 그것을 피하지 말고 뚫고 해결해나가게 되면 친밀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치료에서는 과거에 그녀가 갈등을 일으켜서 상처를 받은 이벤트들을 한가지 한가지씩 끄집어 내어서 재연하면서 그것을 말로써 표현하게 하고 연결된 감정들을 표현하게 하는 치료의 과정을 계속해 나갔다. 그녀는 치료 시간에 늘 울었다. 울면서 마음 속에 쌓인 마음의 독소들을 뽑아냈다. 옛날에는 학교 시절에는 그런대로 다른 동료들보다 못하지 않았으나 지금은 사회생활이 제대로 되지 않고 다른 동료들은 결혼을 해서 아기도 가지고 남편과 결혼 생활로 독립된 생활을 해나가는 것을 보면서 자존심이 상한다고 고통스러워했다.

 P양은 자신감과 자가 존중감이 낮았다. 그녀는 자신의 자아를 60점 정도 주겠다고 했다. 늘 부모님에게 잔소리를 듣고 핀잔을 들어서 자기 자신을 비하시키고 자신을 처벌해 온 것이 밝혀졌다. 특히 고등학교 졸업 후에 사회생활에서 갈등을 일으키면서 대인관계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그녀는 자신을 미워하고 자기 학대를 일삼았다. 그녀는 자신의 종교를 기독교라는 것은 밝혔지만 그녀 자신의 종교 이름을 끝내 치료자에게 밝히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끝내는 밝히지 않고 가명을 썼다. 이유는 이 세상에는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데 있었다. 처음에는 믿었던 사람들 한데서 발등을 찍히고 나니까 이제를 아무도 절대로 믿어서는 안된다고 자신에게 늘 타일러 왔다고 했다.

 치료의 과정에서 자신의 대인관계의 문제점은 부모님의 양육의 결함에서 온 것임을 깨닫고 자신의 분노를 마음 속에 담아 놓지 말고 표현하게 했다. 그녀는 특히 어머니를 미워했다. 어머니가 어린 시절에 양육을 제대로 알지 못했고 그냥 밥 굶기지 않고 헐벗지 않고 학교에 다니게 학비를 대 준 것만으로 부모의 구실을 다했다고 큰 소리를 치는 부모님이 미워죽겠다고 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어린시절에 양육에서 상처를 많이 입었던 사람들이었다. 아버지는 사춘기 때 공부를 하겠다고 머리를 싸매고 공부를 하려고 시도했으나 자신의 아버지가 학비를 대주지 않았고 공부를 하는 것에 반대해서 제대로 하고 싶은 공부를 하지 못했다고 했다. 어머니 역시 성장 과정에서 자신의 어머니와 갈등이 많아 늘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했다. 어머니에게 왜 자신과 동생들을 그렇게 제대로 돌보아주지 않했느냐고 항의를 했을 때 어머니는 "나도 그렇게 양육하는 것이 문제가 될 줄을 몰랐다"고 시인을 했다고 했다. 이러한 분노들이 빠져 나오면서 점차로 마음의 안정을 찾아갔다. 이제 조용히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공부를 하지 못했으니 공부를 해서 반드시 전문가가 되겠다고 했다. 노동자로 노동만 하다고 평생을 허송 세월하며 보내지 않겠다고 했다. 아동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가 되겠다고 결심을 하고 집에서 공부를 하기로 했다. 공부를 하고 있던 방송통신 대학 중국어 학과에서  방송 통신 대학 영문과에 전과를 했다.

치료의 결과

 P양은 치료를 해 나가면서 대인관계의 갈등은 좋은 사람을 선택함으로써 해결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갈등을 해결하지 위해서는 자신의 욕구, 바람, 기대를 상대방에게 명료하게 전달하고 상대방의 불쾌감을 말로써 표현해서 다시는 그렇게 자신을 대하지 않도록 만들어나가는 것이 대인관계임을 알 게 되었다. 대인관계는 생각, 느낌, 상상 등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치료는 1주일에 2회씩 계속되었다. 거리가 멀어서 서울에 와서 저녁 때 치료를 받고 인근에서 잠을 자고 그 다음 날에 다시 2시간을 받고 집으로 귀가하는 것으로 약 1년을 계속하면서 치료 시간에 많이 울고 자신의 기대와 소망을 일깨우고 스스로 자아를 일으켜 세우고 자신감을 기르게 하는 과정을 계속해 나갔다. 1년의 치료 기간이 지나가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치료를 계속해서 더 받아야 한다는 치료자의 권유에 집에서 치료 비용 문제로 갈등을 겪으면서 조금 쉬면서 휴식을 취하고 싶다고 했다. 자신의 여동생이 심한 대인공포증으로 가족 구성원들과도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며 부모님에게 심리치료를 받도록 알선해 준 후에 동생의 치료 비용 때문에 6개월 정도 쉬기로 했다.

 P양은 이후에 다시 치료를 재개하고 싶다고 했다. 이후에 자신의 여동생을 통해서 치료가 중지 되고 난 후에 6개월 동안 부모님과의 갈등은 많이 해소되어 지금은 부모님에게 반항적인 행동을 하지 않고 있으며 지금은 방송 통신 대학 영문과에 입학에서 집에서 영어 공부에 몰두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딸이 공부를 하고 싶어하는 것을 대견스럽게 받아들여서 일체 과수원 농사일을 시키지 않기로 했으며 앞으로 6개월 후에 외국 어학 연수를 시켜주겠다고 약속을 했다고 했다. P양은 이제 공부를 해서 자신감을 쌓아서 자신을 자학하고 자해하는 자기 파괴적 행동에서 벗어난 것으로 확인이 되었다. 아직도 대인관계는 원만하게 되지 않고 있으나 자신의 충동 욕구를 컨트롤하게 된 것은 고무적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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