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 본 갑()

 

() 질을 다음(Daum) 어학 사전에서 찾아 보면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자가 상대방에게 오만 무례하게 행동하거나 이래라저래라 하며 제멋대로 구는 짓으로 정의되어있다. 또한 위키백과에서는 갑질은 계약 권리상 쌍방을 의미하는 갑을(甲乙) 관계에서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에 특정 행동을 폄하해 일컷는 ‘-이라는 접미사를 붙여 부정직인 어감이 강조된 신조어로 정의되어있다. 갑질은 정신분석학에서는 갑질 이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지만 대인관계에서 불편하고 갈등적인 관계의 의미로써 오래 전부터 사용되어져 왔다. 갑질은 단순하지 않다. 먼저 갑질이 어떻게 대인관계에서 어려움, 불편함으로 등장했는가?를 사회문화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그리고 을에 해당되는 피해자와 갑에 해당되는 가해자로 나누어서 그 근본적인 문제점을 분석해보고 마지막으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쌍방 상호관계로 연결해서 분석해 보면서 치료 사례에서 어떻게 치료 되어지는지?를 살펴 보고자 한다.

특별히 갑질은 우리나라 만의 특이한 용어로써 우리나라의 사회문화적인 현상들과 깊이 관계되어져 있다. 우리는 중국의 유교에 영향을 받아서 옛날부터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라고 일컬어 왔다. 여기에서 가장 강조되는 것이 효()의 사상이다. 임금과 신하, 부모와 자녀, 스승과 제자의 사이에서 항상 부응하고 따르고 존경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인정할 것이다. 어른을 존경하고 부모에게 효도 한다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만약에 어른과 부모가 부당하게 느껴지고 강압과 강제가 따른다면 문제가 생기는 것이 바로 갑질의 핵심이 아닌가?  결국 갑질은 대인관계의 문제가 아닌가? 대인관계에서 생긴 갈등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폭력으로 결과한 것이 갑질이 아닌가! 여기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최근에 심리적인 문제들 즉 정신과 적인 장애들의 핵심에는 대인관계의 문제가 걸려 있다는 것을 치료자(필자)는 여러 번의 블로그 글들에서 그리고 치료자의 홈 페이지에서 밝혔다. 치료자는 36년 동안 심리과학과 정신분석학을 연구하고 치료를 해 오면서 모든 정신과적인 장애의 핵심에는 제 1 차적으로 대인관계의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정신분열증(조현병), 불안장애, 우울증, 편집증 그리고 최근에 치료에서 강조점으로 등장한 인격장애(성격장애) 자아장애(21세기에 들어와서 성격장애 대신에 자아 장애로 유행)의 그 핵심에는 바로 갑질의 문제 즉 대인관계의 문제가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직장에서 상사가 이야기를 할 때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이야기를 하는 부하들을 상사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불평불만을 이야기를 하라고 해 놓고 실제로 이야기를 하게 되면 윽박지르거나, 강압을 하는 상사들이 많다. 특별히 자신의 불만과 불평을 이야기를 하게 되면 반항적인 부하로 그리고 말이 많은 부하로 낙인을 찍히게 된다. 사회생활에서 상사에게 낙인이 찍히면 왕 따를 당하게 십상이기 때문에 부하들은 전전긍긍하게 된다. 즉 상사의 눈치, 비위를 맞추게 되고 이것이 쌓이게 되면 불평불만으로 확대되어지기 쉽다. 이것이 대인관계에서 상대방의 눈치, 비위를 맞추는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이것이 과속화되고 누적되면 결국은 한계점에 도달하게 되고 폭발하게 된다. 너 죽고 나 죽자는 게임이 되어버린다. 결국은 두 사람이 다 파괴되어버리는 것이 갑질이 아닌가?

우리 사회에서 만연해 있는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는 누가 나서서 상대의 불평 부당함을 이야기를 해 줄 사람을 찾는다. 스스로 그 문제를 직면하기 싫어한다. 먼저 나가서 이야기를 하게 되면 자신이 불이익을 당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냥 참고 지내게 된다. 그 상사가 강압적으로 권위적이고 지시 명령적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으면서 누가 해결해 주기를 기대하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실정이 아닌가?  이것은 우리가 상대방의 비위, 눈치를 맞추고 말을 잘 듣고 따라야 찍히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 여기에서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하지 않고 순종해야 한다는 자아 보호가 걸려 있기 때문이 아닌가?

여기에서 모든 상사들이 다 갑질을 하고 윽박지르고 부하를 강압하는 상사들은 아니다, 특별히 이런 상사들은 어린 시절에 부모님과 관계에서 양육 환경과 관계가 있다는 것은 갑()인 가해자의 분석에서 소상하게 이야기가 소개되어질 것이다.

상대방이 나이 많은 상사 혹은 부모님인 경우에는 무조건 인정하고 존경해야 하고 불평불만이 없이 따라야 한다는 조선시대적인 고정관념이 21세기에도 여전이 자리잡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수용하고 대화를 통해서 문제 해결을 해 나가야 하는 21세기의 대인관계의 핵심에는 어린 시절에 부모님과 소통 문제와 의사 소통에 자아 결함 문제로 귀결이 된다는 것을 알리고자 하는 것이 필자의 이 글의 핵심이다.

 최근에 대중 가요에서 한 때 유행을 했던 백세인생(가수 이애란)에서 그 가사를 보라, “60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젊어서 못 간다고 전해라, 70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할 일이 남아서 못 간다고 전해라 ----“이 가사를 보면 내가 직접 이야기를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간접적으로 나를 대신해서 이야기를 하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자신이 직접 이야기를 하게 되면 피해를 당하고 낙인이 찍힐 염려불안 때문에 나 대신 제 3자를 통해서 이야기를 전하라고 하는 것이 바로 우리 사회의 자화상(自畵像)이 아닌가?

우리는 껄끄러운 이야기를 하기를 피하고 곤란한 이야기를 내가 아닌 제 3 자를 통해서 이야기를 해서 직접적인 피해를 당하지 않고 해결하려는 것을 볼 수 있다. 내가 직면해서 직접적으로 갈등을 풀고 문제 해결을 해야 하는데 그러한 자신감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통해서 문제 해결을 하려고 하는 것은 어린 시절에 부모님과 자녀 관계에서도 볼 수 있다. 아버지에게 직접 이야기를 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자녀는 어머니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현상들이 그것을 말해준다. 어린 시절부터 이것이 누적되어지면 자아 표현 능력이 부실하게 개발되어질 수 박에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 아닌가?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게 되어 의존이 심하게 되면 결국은 자치심이 줄어들고 자기 표현이 감소되어 그 사람의 지시, 명령에 순종할 수 밖에 없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 되는 문제가 또 하나 있다. 상사,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할 때 누적되어져 오던 불평 불만이 쌓여서 한계점에 갔을 때 그 때서야 참을 수가 없어서 이야기를 하다가 보니 상사, 부모, 상대방에게 얼굴을 붉히고 화를 내서 맞장을 떠는 형식의 대화가 된다는 것이다. 상사가 화를 내서 폭언과 폭력적이 되면 지금까지 참아왔던 불평과 분노가 터져 나와서 서로 폭언이나 폭발적으로 번진다는 것이 대화의 핵심 문제이다. 특별히 부부 갈등에서 남편과 부인은 불화와 갈등이 쌓이게 되면 참을 수 없는 한계점에 도달했을 때 한꺼번에 폭발적으로 불평과 불만이 터져 나온다. 고로 상대방에 화풀이가 되어버린다. 대화가 화풀이가 되면 자기 방어 때문에 상대방의 불평과 불만을 듣지 않는다. 자신의 쌓인 감정들이 상대방의 약점을 물고 늘어져서 공격적이 되기 때문에 당하는 사람은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지 않기 때문에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게 된다. 어린 시절에 부모님의 갈등과 폭력에 익숙해 있는 어린이들은 상대방에게 대화를 할 때 폭력적이 되거나 폭발적이 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아를 억제하고 참고 무조건 견디어내야 한다는 것을 배운 것이다. 이것이 갑질의 핵심임을 알아야 한다.

여기에서 치료자는 또 한가지를 예를 들어서 설명하고자 한다. 즉 불평과 불만은 화를 내서 화풀이로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내 자신의 부당함과 억울함과 불편함을 말로써 소상하게 조용하게 상대방에게 이해를 시키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나의 고민과 갈등을 이해하도록 만들어서 그 갈등 관계를 풀어내서 문제 해결로 나가야 하는 것의 핵심에는 의사 소통과 자아 주장이 걸려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 즉 대화를 하거나 자신의 의견 혹은 불평 불만을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내가 느끼고 있는 자아의 갈등, 감정, 상상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지 싸우고 대들고 항의하고 삿대질을 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치료자는 미국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공부를 했다. 미국의 사회는 전 세계의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나라이다, 고로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에서 갈등들이 단일 민족보다는 많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고로 미국을 멜팅 폿트(melting port)의 나라 즉 용광로의 나라라고 부른다. 전 세계의 사람들을 한 곳에 모아서 하나된 미국을 만들어낸다는 뜻이었다. 이것에 바탕을 둔 미국의 교육(특별히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은 대학에서 교양 필수과목으로 3 과목을 이수를 해야 했다. 도서관학, 논술학 그리고 토론학이었다 이 3 과목은 가장 힘든 과목들이었다. 치료자는 논술과 토론학을 울면서 이수를 했다 왜냐하면 외국인 학생으로써 언어 능력의 한계점 때문이었다. 그러나 울면서 몇 년 동안 씨름해서 통과한 논술은 그 때 치료자가 글쓰기를 똑 바로 배웠기 때문에 지금은 치료자의 삶에서 살과 피가 되었고 글쓰기를 그 때 제대로 배운 것으로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또 한 과목은 바로 토론학 이었다. 이 과목은 책의 내용을 읽고 이해를 하고 시험을 치는 과목이 아니고 6-7명으로 그룹을 만들어서 직접 토론을 하게 하고 그 토론의 결과를 점수로 직접 매겨서 그 토론 시간 끝에 개인에게 나누어는 형식의 특이한 강의였다.

첫 강의 시간은 전체의 과목의 과정을 설명해주는 시간으로 그 설명이 끝나고 학생들은 6명 혹은 7명으로 조별이 나누어졌다. 그 지도 교수는 1주일에 3시간의 강의를 1시간 30분씩 나누어서 2회기로 나누어서 한 회기에 적어도 3개의 그룹들이 토론을 하도록 하고 나머지 학생들은 그 토론을 참관하고 관찰해서 그 토론이 끝나고 나면 그 그룹들에게 질문을 해서 토의를 하는 과목이라는 것을 설명해주었다. 치료자는 외국인 학생이어서 언어 능력이 미국 학생들에게 비해서 부진할 수 밖에 없었다. 다른 과목의 필기 시험은 미리 준비를 해서 대응해 나갈 수 있지만 즉석에서 실천하는 토론의 과목에는 치명적일 수 밖에 없었다. 고로 적당하게 다른 토론자들에게 부응해서 동의합니다. 혹은 찬성하지 않습니다. 라는 간단한 의견을 첨부하는 형식으로 첫 토론에 임하게 되었다. 지도 교수는 몇 주일 전에 토론의 제목을 알려주어서 학생들이 스스로 토론의 제목에 서로 찬성 그룹과 반대 그룹으로 편을 나누어서 미리 준비하고 공부를 하도록 했다. 치료자 그룹의 첫 논제는 진화론과 창조론이었다. 치료자는 첫 토론이 끝나고 그 지도 교수가 건네주는 성적표에는 점수가 0점이었다. 그 지도 교수에게 왜 점수가 0점인가? 물어 보았을 때 그 지도 교수는 자네는 토론을 하지 않았지 않는가?”라고 지적을 했다. 자네의 의견을 느낌을 생각을 배운 지식을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고 남의 의견에 따라서 찬성한다, 혹은 반대 한다 로 이야기를 한 것은 토론이 아니다 라고 따끔하게 지적을 해주었다. 치료자는 수긍하고 그 다음 시간부터는 죽자고 공부를 했다. 찬성 쪽이라면 찬성에 대한 지도 교수의 자료집을 보고 도서관에서 참고 문헌을 읽고 자료를 준비를 하고 대안과 대응 준비를 했다. 그 다음 시간에는 치료자가 최고의 점수를 받고 지도 교수의 칭찬을 받았다. 그러한 토론이 한 학기를 거치면서 각 그룹이 3회 혹은 4회의 토론을 할 수 있었다. 치료자는 그 토론학 과목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모든 사회의 가치 문제는 정답이 없다는 것과 그리고 토론은 이기고 지는 게임이 아니고 내 생각과 느낌과 아는 지식을 근거로써 정확하게 상대방의 의견을 들어보고 그 의견에 대한 내 의견을 상대방에게 전달하고 이해시키고 조율을 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배우게 된 것이었다.

이 과목은 이후에 내가 가족 치료학으로부터 정신분석학으로 이동하게 되면서 정신분석 치료의 핵심이 약물 치료가 아니고 대화 치료이기 때문에 의사소통과 갈등해결과 문제 해결에서 바로 이러한 대화 기법의 핵심이 바로 내 생각과 느낌과 상상과 지각과 감각과 사고를 상대방에게 전달하고 이해시키고 오해를 풀고 갈등을 해결하는 것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정신분석학에서는 특별이 부모와 자녀관계가 중요시 된다. 그 이유는 어린 시절 즉 0-5, 6세의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성격의 뼈대의 형성에 영향을 미쳐서 이후에 사춘기, 청년기와 성인기의 행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수용되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의술이 발달하지 않았고 산아 제한이 없었기 때문에 부모님은 자녀를 생기는 대로 낳았다. 여성이 일찍 결혼(빠르면 18,19에서 늦어도 21)을 해서 폐경기까지 평생 동안 자녀를 생기는 대로 낳는다면 약 10명의 자녀들을 낳을 수 있었다(Stoller, 1999: ():참고). 과거에는 자녀들이 병으로 사망하는 비율이 높았기 때문에 1명 혹은 2명의 자녀들이 병으로 사망한다고 해도 대부분의 가정들이 자녀가 7, 8명 혹은 많으면 10명의 자녀들이 많았다. 형제자매가 많았기 때문에 자녀들은 서로 부딪치면서 관계하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을 했다. 갈등과 불화는 서로 조율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해결이 되었다. 고로 대인관계 문제가 크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자녀들이 1, 2명으로 줄어들면서 형제자매의 숫자가 줄어들고 놀이 문화가 사라지면서 자녀들은 부모님의 의도대로 양육하려고 하는 현상들과 어린 시절부터 자녀들은 각종 특별 학습들(음악, 미술, 피아노, 태권도, 논술, 다양한 학습지들)과 부모님의 맞벌이로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지면서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서 대화들이 수직관계로 변질되어가는 현상과 관계되어져 있다.

자녀들은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고, 부응하는 자녀들이 좋은 자녀들로써 갈등이 없는 현상을 문제가 없는 좋은 관계로써 강조하게 되면서 자녀들을 자신의 의견, 생각, 감정, 지각, 상상, 사고를 마음대로 표현하지 못하게 되고 그 결과 순응적인 복종적인 자녀가 되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다. 맞벌이 부모님은 시간관계로 자녀들의 불평과 불만들을 들어주는 것보다 부모님의 지시, 지적을 순종하는 것을 강조하다 보니까? 자녀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길게 하려고 하면 바쁘니 요점만 이야기를 해라라고 다그친다. 자연스럽게 자녀들은 부모님의 말을 따르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자신의 표현과 대화의 능력과 갈등 해결의 능력은 발달이 지연되거나 결함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서 또 한가지는 자녀들이 동료들과 갈등이 생기고 불화가 생기면 부모님들은 나쁜 친구들과 사귀지 말라라고 일러준다. 즉 갈등이 생기면 피하라고 일어준다. 고로 갈등 해결의 기술을 배우지 못하고 스스로 포기하게 된다. 혹은 어떤 부모는 갈등이 생기는 그 친구를 네가 먼저 때려 주어서 그 놈에게 복수하라고 가르쳐준다. “왜 질질 짜고 울고 다니는가?” “네가 먼저 때려 눕히지 않고 바보 같이 울고 다니는가?”와 같은 교육을 부모가 하고 있다는 것을 부모는 모르고 있다.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말로써 표현하게 하는 것을 가르치지 않고 폭력으로 해결하거나 갈등을 피하라고 가르치고 있는 부모님 자신을 보라!

이것이 사춘기로 접어들어서 추상적인 능력이 가속화 되면서 자신의 부모님과 친구, 동료들의 부모님과 비교되어지면서 부모님에게 불평, 불만들을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부모님은 대뜸 먹여주고 입혀주었더니 이제 눈을 딱 부리고 대들려고 하는가?”라고 자녀들의 입을 막아버린다. 말대꾸를 하는 것을 좋지 않는 것으로 자녀들에게 각인되어지면서 자기 표현이 줄어들게 된다. 특별히 학교 선생님들은 조용하고 말썽을 부리지 않는 어린이들을 좋아한다. 선생님의 말을 잘 듣고 순종하는 학생들을 좋은 학생으로 평가를 한다.

위와 같은 어린 시절의 양육의 문화들이 성장하는 자녀들에게 자연스럽게 부모의 말에 순종하고 따르고 결과적으로 부응해서 나쁘게 말하면 복종적인 자녀들로 성장하게 된다. 어린 시절에 부모님과의 관계는 어른이 되면서 대인관계의 기초가 된다는 것을 정신분석학에서 기초적인 것이다. 아들과 어머니 관계는 아들과 여성관계로 딸과 아버지 관계는 딸과 남성 관계의 확대가 된다.

이것이 성인이 되어서 상사의 부당함에도 그리고 미운 털이 박혀서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눈치, 비위를 맞추려고 하고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부당함에 맞장을 뜨는 것이 아니고 고통스러움과 부당함과 억울함을 소상하게 상대방에게 이해시키고 갈등을 줄이고 완화시켜야 하는데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먼저 갑()질의 피해자가 되는 사람의 문제점에 대해서 소상하게 이야기를 해 보자. ()질의 피해자들은 대부분이 눈치, 비위를 맞추는데 천재적인 사람으로 눈치, 코치가 몇 단이 되는 사람들로 예민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상대방이 알아서 모든 것을 다 해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이다. 항상 대인관계에서는 상대방의 비위를 맞추고 자신의 억울함과 부당함을 참고 견디는 대는 귀신 같은 사람들이다. 그 이유를 물어 보면 한결같이 내가 부당하게 불평을 혹은 상대방에게 기분 나쁜 이야기를 하면 상대방이 나를 싫어하고 도망을 갈 것이기 때문이라고 대답을 한다. 상대방에게 좋게 보여야 상대방이 나를 좋아하고 나와 관계를 지속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대인관계에서 갈등은 피할 수가 없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서도 갈등이 생기고 연인과 관계에서도 갈등이 생기고 그리고 부부 관계에서도 갈등이 생긴다. 갈등은 인간관계에서 피할 수가 없다는 것을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갈등을 싫어하고 피하려고 하고 갈등이 생기면 도망가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어린 시절에 부모님과 양육 관계에서 자녀들이 부모님의 문제 해결 방식을 배운 것이다. 부부 갈등이 생겼을 때 부모님이 서로 어떻게 그 갈등을 해결해 나가는가?를 자녀들이 무의식적으로 배운 것이다. 갈등을 싫어하는 부모들은 갈등이 쌓이면 화가 나고 짜증이 나고 분노하게 되면서 이것이 누적되면 서로 눈맞추기를 피하거나, 말을 하지 않거나, 등을 돌리고 잠을 잔다 이러한 관계가 심하게 되면 심지어는 몇 주일과 몇 개월간 혹은 몇 년간을 서로 말을 하지 않고 사는 부부들이 있다. 이런 부부는 초반기에는 잠자리의 거부 즉 섹스 단절, 그 다음 단계는 한 사람은 안방에서 다른 사람은 거실에서 거주, 그 다음 단계는 한 사람은 집에 들어오지 않고 외도로 상대방에게 복수를 한다. 이러한 관계는 가족의 분위기를 질식시킨다. 자녀들은 부모의 행동들로부터 숨을 쉴 수 없게 되고 가족의 분위기는 촉발 직전의 화약고처럼 느껴지면 자녀들은 관계를 닫아버린다. 한쪽 부모가 자녀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여서 자기 편으로 만들고 상대 배우자를 비난하고 분노하게 만들어버린다. 이런 관계가 지속되면서 자녀들은 부모님의 문제 해결방식을 무의식적으로 배운다.

또 다른 부부들은 무조건 남편 혹은 부인에게 복종으로 따라게 된다. 갈등이 없는 것이 좋고, 좋은 것이 좋다는 식으로 갈들을 일으키는 것을 싫어하고 피하게 된다 즉 한 사람은 무조건 참고 그리고 다른 사람은 강압적이고 폭력적이 되기 쉽다. 말을 듣지 않으면 주먹이 날아오고 집기들 즉 밥그릇과 밥상이 날아가는 경우에는 갈등을 피하고 줄이기 위해서 무조건 참게 된다. 즉 나 한 사람이 참으면 만사가 O.K 이다, 좋은 것이 좋다 로 끝나게 된다 그러나 갈등은 해결된 것이 아니고 누적되어져서 계속 쌓이게 되고 그것이 도화선에 불이 붙게 되면 드디어 폭발하게 된다. 자녀들이 이러한 장면을 자주 목격하게 되면 심한 경우에는 감정은 나쁜 것이라고 생각해서 억압해서 감정이 없는 사람이 된다. 이것을 정신분석에서는 감정이 없는 사람 즉 alexithymia라고 불리는 용어가 된다. 그리스어로 A는 없다(not), lexi는 말(speech)이고 thym (emotion)이란 감정이고 i는 병이라는 뜻으로 감정을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사람의 뜻이다.

 또 다른 경우에는 갈등을 쌓아 놓았다가 한꺼번에 폭발시키는 타입의 부모들이다. 그들은 한 가지 두 가지씩 쌓아둔다, 두고 보자 로 시작해서 이번에, 이번에는 하는 씩으로 차곡차곡 쌓아서 이제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게 될 때 폭발해서 터뜨리는 부부들이다. 이런 경우에 많이 누적될수록 폭발력은 커진다. 자녀들은 이러한 경우가 잦으면 갈등은 위험한 것으로 피하게 되고 갈등을 피해서 쌓아두는 방식을 배우게 된다. ()질에서 차곡차곡 쌓이게 되면 그것이 한계점에 도달했을 때 폭발해서 서로가 파괴되어버린다.

위와 같은 부모님의 문제 해결 방식과 갈등 해결 방식은 자녀들이 무의식적으로 그대로 배우게 되어 건강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배우지 못하고 무조건 상대방의 눈치를 보고 비위를 맞추면서 자신의 고민과 어려움을 이해하고 해결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관계를 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의 머리를 열고 들여다볼 수가 없다. 고통을 고민을 말로써 표현하지 않으면 우리는 상대방의 생각과 느낌을 알 수가 없다. 피해자들이 주장하는 내 고통, 어려움과 고민들을 알아 주고 이해해주고 해결해 달라는 요구는 상대방이 그것을 모르는데 어떻게 해결해주고 도와줄 수가 있는가?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를 하고 호소를 해야 한다는 것이 필수적인 것이 아닌가?

 문제는 이야기를 할 때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하는가?가 핵심 문제로 떠오르게 된다. 대화의 기술이 없는 사람들은 무조건 울면서 호소 하거나 불평 불만을 두덜거리면서 상대방의 비난, 비판 조로 이야기를 함으로써 상대방의 분노를 자극하는 것은 불화를 조장하는 것이 된다. 상대방의 약점을 공격하는 방식이 아니고 상대방의 직위 혹은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고 그 직위와 권위를 인정하면서 내 고민과 갈등을 상대방에게 이해를 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어린 시절에 부모님과 관계에서 지금 상사와 관계가 연결되어져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것을 이해시키는 것이다. 고로 상사의 강압과 권위가 피해자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  이해하게 만들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 현재를 강조한다. 과거는 지나간 것인데 왜 자꾸 과거를 들먹이는가? 과거를 들먹인다고 해서 과거로 우리가 돌아갈 수 있는가? 과거는 지나간 것이고 지금 현재가 중요한 것이고 미래가 중요한 것이 아닌가?라고 항변을 한다. 그 말 자체는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의 산물이다, 즉 우리의 양육 환경의 산물이다. 양육은 단순히 먹여주고 입혀주고 학교에 보내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굶기기 않고 배부르게 하고 장난감들을 사주고 학교에 보내주고 좋아하는 옷들을(명품) 사주고 학원에 가외 시켜주고 학교에 보내준 것으로 부모의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부모와 자녀의 상호작용의 결과로 자녀의 머리 속에 그 상호작용이 입력이 되어서 자아가 된다는 것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자녀의 자아는 저절로 우연히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어린 시절에 자녀와 같이 놀아주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자녀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어서 그들의 말을 지원해주고 그들의 표현을 지지해주어야 자녀들을 자신의 목소리를 강하게 낼 수 있다는 것은 상식이 아닌가? 어린 시절에 자아의 표현이 대인관계의 자아의 목소리가 된다. 자신의 생각과 느낌과 상상과 사고와 지각과 감각들은 스스로 자기 표현을 하도록 장려 함으로써 자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지원해줌으로써 자신의 자아를 지원받게 될 때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 있게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능력 즉 자신감이 되는 것이다.

 다시 우리가 과거를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과거의 영향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 즉 자아의 문제를 과거의 잘못된 양육, 잘못된 상처 그리고 배우지 못한 자아 결함으로 비롯된 것이라면 그것을 고치고 그것을 수정하고 새로 배우는 것이 정상이 아닌가?  그것을 새로 배우기 위해서는 우리는 과거에 어떻게 우리가 양육이 되었는가?를 알고 어디에서 결함이 생겼는가?를 알아야 정확하게 배울 수가 있고 결함을 수정하고 배우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정신분석에서 과거를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자아의 결함, 상처와 수리 때문이다.

 () 질의 피해자들은 대부분이 어린 시절에 순종적이고 복종적인 자녀들이다. 그들은 어른이 되어서 지금은 상사가 된 가해자를 어려워하고 불편해하고 껄끄럽게 관계를 하고 있다는데 그 상사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눈치, 비위를 맞추려고 하고 상사의 말을 잘 듣게 되면 언젠가는 자신을 이해해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고 초반기에는 상사와 밀착관계가 되거나 복종적인 관계가 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가면서 그 상사는 점점 강압적이 되고 억압적이 되어가면서 불평불만이 누적되어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면 피해자는 갈등을 피해서 떠나거나 관계가 단절되어버리게 된다. 그러나 참을 수 없게 되면서 너 죽고 나 죽자는 관계가 되면 폭발해서 서로 만신창이가 된다. 여기에서 미워하는 증오하는 적대적인 그 상사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어린 시절의 부모님을 닮았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이번에는 가해자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보자. 문제는 모든 상사가 다 강압적이고 폭력적이고 이해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라는 점이다. 그러한 사람들은 틀림없이 어린 시절에 부모님이 권위적이고 난폭하고 강압적인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다 라는 점이다. 그러한 부모님 밑에서 자라난 자녀들은 부모님에게 몇 번 항의나 반항이나 도전을 했다가 폭력으로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이 살아 남을 수 없다는 것을 일찍부터 알았기 때문에 자아가 살아 남기 위해서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이고 지시, 명령, 감시 감독적인 부모님에게 순종하는 것을 배운 사람들이다, 그러나 마음 속에서는 항상 그것이 부당하고 잘못되었다고 분노의 감정을 억압해 놓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한쪽의 마음 속에는 그러한 상황에 적응하는 것을 배우면서도 다른 쪽의 마음 속에서는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었던 사람들이다.

 이것을 대변해 주는 것이 바로 정신의학에서 자주 사용하는 폭력의 피해자는 이후에 폭력의 가해자가 된다, 왕따의 피해자는 왕따의 가해자가 된다. 어린 시절의 섹스 폭력의 피해자가 나중에 섹스 폭력의 가해자 즉 변태성욕자가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치료자의 다른 글들을 보라(Stoller, 1986: 주㈜: 참고).

 이런 피해자들이 어른이 되어서 자신의 행동에 저항하거나 도전하거나 이유를 달거나 하면 폭발하게 된다, 부하들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깔아 뭉개고 짓밟아서 절대로 자신에게 도전하지 못하게 하고 입을 막아버리는 난폭한 상사 혹은 공감이 없는 상사 혹은 부하들에게 가혹한 상사다 되기 쉽다. 그들은 대부분이 어린 시절에 상처받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어린 시절에 받은 유아기의 자아가 항상 내면 속에 억압되어져 자리잡고 있어서 유사한 자신의 어린 시절의 상처와 유사한 상황이 반복되어 등장하면 그 시점에서 받았던 억울함, 분노, 노여움, 적대 감정이 터져 나와서 피해자인 자신이 이번에는 가해자가 되어서 승리자가 되는 것임을 스스로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Stoller, 1986: 주㈜: 참고).

 이번에는 가해자인 갑과 피해자인 을의 상호관계를 분석해 보자, 이것은 상사와 부하 혹은 스승과 제자 혹은 선배와 후배 혹은 동료들 중에서도 보호하고 안내하는 선임과 후임의 친밀관계에서 자주 발생을 하게 된다. ()질의 관계는 우연한 관계에서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두 사람의 관계는 초반기에는 한 사람은 보호자로 안내인으로 부모의 역할을 하고 다른 한 사람은 보호를 받는 안내를 받는 의존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의존적인 보호를 받는 사람은 자아가 약해서 상대방이 모든 것을 다 알아서 자신의 마음을 잘 헤아려서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켜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눈치, 비위를 맞추면서 서로 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지속되어져 오다가 점점 갑의 부당함에 분노하고 노여워하고 화가 쌓이면서 그에게 실망해서 관계를 끊어버리려고 하는 상황에서 두 사람의 보호자와 도우미의 관계는 점점 악화되어가게 된다. 처음에 돌봄이로 등장한 가해자는 피해자가 이유 없이 자신을 피하려고 하는 것에서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게 된다. 여기에서 어린 시절에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재 반복되어 등장하게 된다.

 피해자는 계속되는 관계에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게 된다. 계속해서 손해를 보고 있고 가해자의 강압과 강제적인 요구에 더 이상 부응을 한다는 것은 자신이 손해를 보고 있다는 생각에서 반항적이 되거나 항변으로 맞서게 되면 폭발하게 된다. 지금까지 내가 너를 돌보아주고 보살펴 주었는데 너는 나를 배신할 수 있는가?로 반대로 피해자는 더 이상 나는 너의 피해자로 너의 밥으로 너의 먹이 감으로 지낼 수가 없다고 맞서게 된다. 결국은 폭발해서 둘 다 패배자가 되어버린다.

 가해자는 어린 시절에 자신의 부모와 관계에서 권위적이고 강제적이고 명령적인 관계를 미워하고 싫어하면서도 어떻게 해결하는가?를 배우지 못한 것이다. 그것은 부모님이 그러한 문제 해결방식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머리 속에는 그러한 문제 해결 방식이 입력되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가해자는 부모님의 폭력과 강압과 처벌을 배운 것이다, 고로 그 자신이 그것을 싫어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부모님을 닮아서 자신의 돌봄과 보호를 벗어나려고 하는 사람을 배신자로 용서할 수가 없게 되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피해자는 처음에는 가해자가 돌봄이로 도우미로 등장해서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했지만 자신의 불편함과 불만족스러움을 표현하는 것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쌓아두었다가 한계점에 왔을 때 폭발적으로 터뜨리려고 하기 때문에 이것이 서로 도화선이 되어 폭발하게 된 것이다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위와 같은 관계가 서로 맞물리게 되면 극단적인 경우에는 살인으로 혹은 자살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은 신문과 TV 등의 뉴스들을 통해서 자주 접하게 된다. 제자에게 똥물을 먹인 대학 교수와 제자와 관계 그리고 출판사의 사장이 자신이 위임해 주었던 출판사를 서로 손해를 끼쳤다고 맞소송을 하고 있는 사건들 왕따의 가해자와 피해자들의 관계에서 자살로 끝내버린 중학교 한 학생의 사건 등에서 볼 수 있다.

 심리치료나 정신분석 치료를 호소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이러한 사람들을 자주 본다. 그들은 친한 친구인데 갑()질을 당하고 있다고 호소하거나 직장에서 꼴 보기 싫은 상사와 한 사무실에서 근무하게 되었는데 직장을 그만두고 싶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여기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떻게 도와주어야 하는지?를 논의해보고자 한다.

 치료자는 직접 치료실 밖에서 치료를 받는 사람을 대신해서 해결해주지 않는다. 치료를 호소하는 사람들의 자아의 결함인 대인관계의 결함을 분석으로 찾아내고 소통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새로 배우게 한다. 물론 이것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러나 치료자가 그 문제를 해결해준다면 한번으로 끝날 수 있지만 그 문제를 가진 사람은 영영 문제 해결을 하는 것을 배울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 부모님들이 자녀의 문제들을 직접 해결해 주었기 때문에 그 자녀는 문제 해결 방법을 지금까지 부모님에게 의존해서 배우지 못한 것과 같다.

 피해자는 처음에 가해자를 만났을 때 자신을 보살펴주고 돌보아주는 도우미 격으로 서로 좋아해서 친밀한 관계가 된 것은 사실이 아닌가? 그러나 그에게 의존했기 때문에 그는 결국은 갑()질의 피해자가 된 것이 아닌가? 고로 스스로 자신의 자아 결함을 찾아서 자아의 문제 해결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 최선이다. 물론 시간이 걸리는 것은 당연하다.

 정신분석 치료자는 치료실 안에서 분석을 받는 사람의 어린 시절의 상처로 되돌아가서 재연하면서 엄마의 역할을 대신한다. 끝없이 이야기를 하고 표현을 하게 하고 자신의 느낌과 생각과 상상과 지각과 감각을 말로써 표현하게 하고(행동으로 표현하지 못하게 한다) 그 표현을 지지해주고 고쳐주고 훈련을 통해서 대화를 하는 능력을 배양하도록 하는 것이다. 과거의 갈등들을 치료실 안에서 재연해서 그것을 다시 새롭게 풀어가는 방법을 배우게 하고 훈련으로 익히게 하도록 해서 자아의 능력을 개선하고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최근에 미국에서 인기가 있는 심리치료의 한가지 방법으로 자기 주장 훈련(assertive training)있다. 자아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갈등을 피하고 갈등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남의 눈치를 보고 비위를 맞추려고 하는 대인관계가 아니고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말로써 표현하는 자아의 능력을 키우고 생각과 느낌을 당당하게 말로써 표현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린 시절에 부모님이 자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어떤 내용의 이야기든지 간에 표현하도록 장려해서 말을 많이 하도록 도와주는 것에서 시작되는 연장 선상으로 보면 된다. 끝없이 자신의 고통과 갈등과 고민들을 이야기를 함으로써 우리는 서로 마음의 문이 열리고 상대방을 받아들이고 서로의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공감의 능력이 길러지게 된다는 대화의 핵심을 자아 표현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치료자가 심리치료와 정신분석에 갈등관계를 해결한 치료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A군은 고교 2학년으로 동료들과 갈등에서 어려움으로 즉 대인관계의 어려움으로 검정고시를 위해서 스스로 자퇴한 학생이었다. 그는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호소하면서 약 1년 동안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그의 형님이 의과대학 입학 때 전체 수석을 한 재원으로 1학년 말기에서 유급을 당해서 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후에 그의 형님을 1년 동안 심리치료를 하면서 이 두 명의 형제는 어린 시절인 5학년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자주 아버지에게 존경스런 태도를 보이지 않고 아버지를 무시한다는 이유로 3시간 동안 무릎을 꿇게 하고 일장 연설을 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것이 과거에는 1달에 한번씩 일어나다가 점점 빈도수가 늘어나서 1주일에 한번 꼴로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치료자가 이 형제들에게 아버지의 행동이 부당하지 않는가? 라고 물었을 때 그 두 형제는 부당합니다. 그러나 아버지이기 때문에 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를 존경하고 아버지 말에 순종해야 하기 때문에 시키는 대로 할 수 박에 없습니다라고 했다. 문제는 이러한 습관이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계속되어져 오면서 빈도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치료자는 아버지가 두 명의 아들에게 주로 어떤 말을 하는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이야기를 하는가?를 분석하면서 아버지가 하는 말들은 늘 똑 같은 내용의 말들 이라고 했다. “너희들은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는다, 너희들은 아버지를 무시한다, 너희들이 보이는 태도는 아버지를 좋게 보지 않고 있다는 증거이다라고 늘 비슷한 말을 되풀이 한다는 것과 그리고 아버지가 주로 술을 마시고 오면 이러한 현상이 많아진다는 것을 분석으로 밝혀냈다. 즉 아버지가 두 명의 아들에게 아버지 자신의 화풀이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었다.

치료자는 여기에서 자기 주장을 하도록 했다, 자아가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 주장 훈련을 하기로 했다. 단지 가장으로써의 아버지의 권위를 인정해주면서 아버지에게 자녀로써 고통을 이야기를 하는 것임을 강조했다. 초반기에 두 명의 형제는 만약에 아버지에게 그러한 말을 했다가는 맞아서 죽을 것이라고 치료자의 제의를 거부를 했다. 아버지에게 말대꾸를 하거나 아버지에게 항의를 한다면 아버지가 가만있지 않고 폭력으로 몇 십 배의 보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두려웠다. 그래서 좋은 것이 좋다, 내가 참으면 온 가족이 조용하고 편안하다고 어머니가 늘 이야기를 해 왔다고 했다. 참고 아버지의 말을 그대로 순종하라고 이야기를 해 왔다고 했다.

치료자는 두 명의 형제들에게(치료를 각자가 따로 시간을 내어서 받는다, 두 사람이 함께 같은 시간에 치료를 받지 않는다) 아버지의 그러한 태도와 행동에 부당함을 느끼지 않는가? 분노를 느끼지 않는가?라고 물어보았을 때 당연히 아버지를 죽이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내 아버지이기 때문에 할 수 없다고 했다. 여기에서 치료자는 첫 시작이 초등학교 5학년이었기 때문에 어린 시절의 자아가 아버지에게 저항할 수 없었던 어린 시절임을 지적을 하면서 그것이 지금은 형님이 대학 2학년이고 동생이 고교 2학년이기 때문에 세월이 4년에서 5년이 흘렀고 자녀들은 사춘기를 통과해서 청년기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다시 말해서 두 형제는 어린 시절에 아버지에게 처벌과 부당함을 당했기 때문에 그 시점에서 자아가 충분히 대응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청소년이 되었고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다. 아버지가 폭력으로 위협하면 두 명의 자아는 어린 시절에 폭력을 당하던 그 시점으로 되돌아서 그 시점의 자아로 퇴행해버린다는 것을 지적을 했을 때 두 형제는 시인을 했다.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오면 두 아들을 불러 내서 무릎을 꿇리게 할 때 자신도 모르게 초등학교 5학년의 시절에 되돌아가버린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아버지는 직장이 없고 일을 하지 않아서 놀고 술로써 세월을 보내면서 어머니가 경제적인 짊을 지고 있었다 고로 아버지는 자신의 열등감을 자식들에게 화풀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을 했을 때 두 형제는 시인을 했다. 그러나 아버지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고 했다. 아버지와 싸울 수도 없고 아버지를 폭력으로 때릴 수고 없다고 하소연을 했다.

치료자는 아버지의 가장으로써 권위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의 부당함을 말로써 표현을 해야 한다고 지적을 했을 때 두 명의 형제는 거부를 했다. 치료자는 아버지와 싸우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의 권위에 도전을 하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와 대화를 하는 것임을 깨닫게 했다. 즉 만약에 아버지가 폭력으로 대항하거나 매질을 하거나 때리거나 할 때는 절대로 맞거나 당하지 말 것을 주문을 했다. 대신에 절대로 아버지와 몸싸움을 하거나 아버지를 때리거나 밀치거나 넘어뜨리거나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지적을 했다. 그렇게 하게 될 경우에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아버지의 폭력을 막아라 라고 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하도록 했다. “아버지 이것은 부당합니다. 우리고 이제는 어린이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제 대학생이고 고교 2학년으로 청소년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것은 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우리에게 이렇게 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고 부당한 것임을 우리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만약에 우리에게 훈육을 하고 싶을 때는 술을 드시지 말고 맨 정신에서 이야기를 하면 언제든지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우리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으로 늘 하는 이야기를 똑 같습니다. 아버지를 존경하라, 아버지를 무시하지 말라 입니다. 아버지 앞으로 이러한 것에는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이렇게 강압으로 언어 폭력으로 우리를 양육했기 때문에 우리는 집 밖에서 폭력적이거나 강압적인 선배 혹은 동료들에게 주눅이 들어서 늘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이런 대화 훈련을 치료실에서 계속 하게 되면서 두 형제는 자신감을 얻어서 표현 능력이 항상 되었다. 그러나 치료자는 내일 하라, 다음 주일에 하라 라고 강압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하게 될 것이고 그것은 자아가 성장을 해서 자신감을 가지게 될 때 하는 것이다. 그것이 내일이 될지 1달 후가 될 때 1년 후가 될지는 나는 모른다. 언젠가는 해야 하고 하게 될 것이다 라고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그러한 훈련을 하고 나서 1개월쯤 지난 후 어느 치료 회기에서 두 형제는 드디어 아버지에게 그 말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아버지의 반응에 깜짝 놀랬다고 실토를 했다. 위의 이야기를 아버지에게 했을 때 아버지는 폭력으로 폭언으로 처벌로 나온 것이 아니고 고맙다, 나는 너희들이 집 밖에서 늘 주눅이 들어서 당하고 오는 것에서 불만족해서 너희들을 훈육을 하려고 해 왔는데 이제 너희들이 집 밖에서 당당하게 맞설 수 있게 되었으니 잘 했다라고 칭찬을 했다. 물론 이 이후에는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그러한 행동을 하는 것을 사라졌고 두 형제는 자신감을 가지고 자신이 문제들을 풀어나갈 수가 있었다.

두 번째 사례는 직장에서 상사와 갈등의 사례이다. 30대 중반의 E씨는 치료자에게 2 6개월 동안 정신분석 치료를 받으면서 7년 동안 우울증의 약물 복용으로 효과가 없었던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있는 도중에 치료가 약 2 년을 지나가면서 상사와 갈등 관계가 등장하게 된 것이었다.  지난 주일에 인사 이동에서 자신의 직장에서 가장 악명으로 이름이 높은 상사가 E씨와 같은 방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다고 하소연을 했다. 그 직장 상사는 성질이 고약하고 신경질적인 사람으로 소문난 사람으로 모든 직장 동료들이 그와 함께 일하는 것을 싫어하고 피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E씨는 지금의 심정으로는 직장에 나가는 것이 소가 도살장에 가는 것처럼 싫어지고 온 몸에 가려움과 두드러기가 생기고 몸이 아프고 소화가 되지 않고 죽을 맛이라고 했다. 직장을 그만 두고 산속에 들어가서 소와 가축을 기르면서 혼자서 살고 싶다고 늘 이야기를 해 왔었다. 치료자는 그 직장 상사에 대해서 먼저 분석을 해 보기로 했다. 그는 성격이 고약하고 예민해서 화를 잘 내고 폭발적이고 강압적이고 자신의 말을 즉각 실행하지 않으면 폭력과 폭언이 따라온다고 했다. E씨는 치료자에게 약 2년 동안 치료를 받으면서 E씨가 어린 시절인 초등학교 2학년 때 공수부대 출신의 아버지로부터 폭력을 당했던 것을 분석으로 잘 알고 있었다. E씨는 상사 혹은 선배가 폭력적인 말투를 쓰거나 혹은 위협이 느껴지면 초등학교 2학년이 시점으로 되돌아가서 무조건 잘 하겠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앞으로 잘 하겠습니다라고 습관적으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밝혀낼 수 있었다. 아버지는 공수부대에서 모범 군인으로 참모총장 상을 받는 모범 군인이고 사격 대회에서 명사수로 상을 받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전역 후에는 아버지가 열등감으로 매일 같이 술을 마시고 가족들에게 화풀이를 한다고 했다. 특별히 어머니가 그 대상이었고 아들인 E씨가 7살에 시골에 할머니와 같이 살다가 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부모님과 함께 살게 되면서 아버지의 분노가 아들인 E씨에게 옮겨간 것을 분석으로 잘 알고 있었다.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처벌을 받을 때마다 어머니는 옆에서 무조건 잘못했다고 하라, 그래야 한대라고 덜 맞을 수 있다.”라고 말을 한 것 때문에 E씨는 무조건 상사, 선배가 위협적이면 잘못하지 않았지만 잘못했다고 한다고 했다. 치료자는 왜 잘못하지 않았는데 잘못했다고 시인을 하고 스스로 죄를 뒤집어 쓰는가? 라고 물었을 때 자아가 살아남기 위해서라고 했다. 치료자는 이제 E씨는 초등학교 2학년이 아니고 성장해서 30대 중반의 어른이 되었으니 자신이 자아를 30대 중반에 걸맞게 성장시켜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를 하면서 폭력적인 위협 시에 과거의 초등학교 2 학년의 시점으로 되돌아가지 않도록 자아에게 브레이크를 걸어왔던 치료 과정을 지적을 하면서 그 상사와 문제 해결 방법을 찾도록 했다.

이것을 바탕으로 새로 부임한 상사와 갈등 문제를 정면 돌파를 하도록 했다. 즉 상사에게 업무 시간 이후에 저녁에 시간을 충분히 마련해 주도록 예약을 한 후에 상사와 적어도 2 시간 혹은 3시간 정도로 마음의 문을 열고 이야기를 하도록 했다. 상사에게 이야기를 할 때 나는 차장님을 무시하고 비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차장님에게 하고 싶고 호소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니 제 이야기를 중간에 끊지 말고 끝까지 들어 주세요, 나중에 내가 차장님에게 충분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드리겠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서두를 꺼내라고 의사 소통 훈련을 했다. 그 다음에 내가 어린 시절에 아버지로부터 받은 폭력과 그 폭력으로 인해서 대인관계에서 선배 혹은 상사가 고성을 지르거나 위협을 느끼면 내가 초등학교 2학년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버리기 때문에 내가 그 순간에는 어쩔 줄을 모르게 된다고 솔직하게 실토하고 E 씨 자신의 대인관계의 어려움 때문에 7년 동안 우울증 약물을 복용하다가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는 것을 실토 하도록 했다. 대인관계에서 정직해져야 한다는 것과 나를 포장하고 좋게 보이려고 하면 긴장하게 되고 긴장이 관계를 껄끄럽고 부자연스럽게 한다는 것을 이미 2년 동안 치료를 받았기 때문에 E씨는 잘 알고 있었다. 이러한 훈련은 얼마 동안 시간이 지나가지 않아서 E 씨가 그 상사와 직면으로 해결을 할 수 있었다.

그 다음 주일에 E씨가 그 직장의 상사와 만나서 실토를 하고 자신의 어려움을 밝혔을 때 그 상사도 스스로 자신의 어린 시절의 어려움을 실토를 하면서 서로 마음의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은 서로 내면의 문제들을 소통을 하게 되었고 이후에 두 사람은 서로 격이 없이 대화를 하는 친밀한 관계로 발전하게 되었다. 내가 먼저 마음의 문을 열고 상대방에게 다가갈 때 상대방도 역시 마음의 문을 연다는 것과 대인관계를 상대적으로 서로 내면을 밝히게 되면 상대방 역시 밝힌 것만큼 밝히게 되는 것이 대인관계임을 입증하고 실감하게 된 것이다. 그 다음에는 마음 속에 불안과 갈등이 사라졌고 상사와 같이 근무를 하는 것이 즐겁고 어려움이 없어졌다. 주변에서 동료들은 틀림없이 그 상사와 같이 근무를 했던 사람들이 그 상사를 거부하고 뛰쳐나올 것으로 예상을 했는데 두 사람은 찰떡 궁합으로 변한 것을 보고 눈이 둥그래져서 E씨를 쳐다 본 것은 말할 필요가 없었다. 이후에 그 상사는 오히려 다른 사람들로부터 E씨를 보호해주고 바람막이가 되어주고 서로 친밀한 관계가 된 것을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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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참고: UCLA의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스톨러(Stoller) 1986년의 저서 변태성욕: 미움의 에로틱한 형태 1999년의 저서인 친밀한 커뮤니케이션의 저서

위의 저서는 치료자가 우리나라 말로 번역이 되어 소장하고 있으니 치료자의 홈 페이지인 전문서적 안내에 들어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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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의 치료 사례는 E씨의 초반기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요청한 치료 사례를 소개한 것이다.

 

카우치에 누워서 정신분석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과 분석가

 

대상: 30대 초반의 회사원 D

증세: 지난 7년 동안에 우울증으로 고통을 받아오면서 약물로써 견디어 오다가 초반기에 약물 효과에 비해서 점점 약물 효과가 떨어지는 것 같아서(약물은 내구성이 있기 때문에 초반기에 사용량은 시간이 지나갈수록 초반기 약물 효가가 줄어들 게 되어 약물을 지속해서 사용하게되면 약물의 양을 높여야 똑 같은 효과를 얻게 된다신경 정신과 의사에게 이야기를 했으나 약물 과다 복용의 부작용을 우려해서 인지 신경을 써주지 않았음. 그래서 약물을 규칙적으로 복용하지 않았고 중간 중간에 복용 중에 있음

접촉: 인터넷에 정신분석 심리치료 홈페이지에서 치료자의 우울증에 대한 설명과 치료 사례를 읽고 종합적 심리 검사인 프로파일링을 요청해서 심리 검사에서 심한 우울증으로 먼저 자신의 분석을 해 보고 나서 치료를 결심 하게 됨

진단: 심한 우울증, 대인공포증, 회피적 성격장애

치료 기간: 6개월 간 치료 계약을 하고 1주일에 1회씩 (1회기에 1주일에 2시간) 치료 회기로 심리치료를 받게 됨

치료 결과: 아래의 치료 과정은 D씨가 치료를 시작한지 첫 2 시간의 치료에서 드러난 그의 문제점들을 분석한 것이다.

치료의 과정:

 D씨는 인터넷에서 치료자의 우울증 홈페이지를 접하고 나서 치료자에게 그가 우울증으로 고통을 받고 있으며 어린 시절에 아버지의 폭력으로 가족들과 자신이 심하게 상처를 입었고 이후에 대학 시절에 초반기에는 유머도 있고 인기도 많은 매력있는 남자로써 여학생들에게 많은 인기를 끌었으나 시간이 지나가면서 동료들로부터 외면을 당하는 것을 경험을 했고 군대 복무 중에 후반기에는 후임들에게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태도 때문에 무시를 당하는 고통을 받았으며 현재 직장 생활에서도 상사나 후배들과의 관계가 어렵다고 호소를 해 왔다. 그는 치료자의 홈페이지에서 종합적인 심리검사를 받아 보고 싶다는 메일을 보내왔다.

 D씨는 치료자의 우울증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우울증에 대한 정보를 얻은 뒤에 치료자의 홈페이지에 있는 종합 심리 검사인 프로파일링을 신청에 왔다. 그는 프로파일링의 신청 시에 우울증으로 7년 동안 고통을 받고 있고 신경 정신과의 약물을 복용하고 있으나 효가가 없는 것 같다고 호소를 해 왔다. 치료자는 7년 동안 우울증 약물에도 지금까지 우울증을 앓고 있으니 약물 치료를 그만두고 심리치료를 받을 것을 권유했다. 그는 우선 종합 심리검사를 해 보고 나서 치료를 받을 것인지를 결정하기로 하고 심리검사 비용을 지불하고 종합 심리검사(여기에는 우울증 검사로써 외부 환경적 스트레스 검사, 내면 심리 갈등적 검사, 우울증 검사, 1주일 동안의 우울증 검사, 외로움 검사에다 불안 장애 검사로써 불안증 검사,공황 장애 검사, 일반화된 불안장애 검사, 대인 공포증 검사 그리고 성격 장애 검사로써 친밀감 검사, 낙관성 검사, 부부 관계의 질 검사, 자아 검사로써 총 13개의 검사를 받은 후에 여기에서 나온 데이터에다 어린 시절의 성장 과정에서 겪었던 상처나 양육의 과정을 상세히 기록을 한 내용들을 종합해서 A4용지로 글자 크기 10으로 총 8페이지-10페이지의 심리검사의 종합적인 해석이 포함되는 종합 심리검사를 통해서 "자신의 자아()"를 분석한 것을 프로파일링 검사로고 부른다 --- 더욱 더 상세하게 심리검사를 알고 싶은 사람은 다음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세요 http://www.depressed119.pe.kr/images/newfile58_html_smartbutton2.gif). 종합 심리검사를 한 결과에서 그는 우울증 검사들의 결과는 심한 우울증으로 이미 자살 충동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고 심한 불안에다 대인관계에서 문제점들과 자아 검사에서 자신감이 낮고 친밀관계를 만들어 가는데 결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종합 심리검사의 결과를 통보를 받고 그는 그 자신의 많은 문제점들에 꼬집어서 정확하게 밝혀준 심리검사의 정확성에 감동을 받았다고 이후에 치료 시간에 솔찍하게 털어 놓았다.

 그는 심리치료를 받을 것을 결심을 하고 치료자에게 6개월 간의 치료 비용을 지불하고 1주일에 2시간씩 심리치료를 받기로 계약을 했다. 치료자는 6개월 이하의 치료를 원하는 사람들을 받아주지 않는다. 이유는 심리치료는 최하 6개월 정도 받아야 치료 효과가 나타난다고 보기 때문에 미리 6개월분의 치료 비용을 받고 6개월간 치료 계약을 한다. 이러한 방식에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다. 심리치료는 유아기 때 받은 부모님의 양육 과정에서 그리고 형제들과의 관계에서 받은 심리적 상처나 심리적 결함들을 찾아내고 그리고 유치원원, , 고등학교 시절에서 동료들과 친구들의 관계에서 생긴 갈등들을 어떻게 풀어 냈는가? 등을 분석한다. 그리고 치료를 받는 사람의 감정의 표면 방식(분노, 미움, 갈등들을 말로써 표현을 하는가? 행동으로써 표현을 하는가?), 대인관계에서 생긴 갈등을 어떻게 풀어가는가?(갈등을 풀어가는데 결함이 있는가?) 그리고 의사 소통(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방법 - 갈등이 생기면 회피하는가? 직면을 하는가? 어떤 방식으로 갈등을 해결해 나가는가?)에서 대화의 패턴 등을 분석해서 여기에다 성장 과정과 발달의 과정에서 생긴 자아 결함들을 찾아내어 분석해서 생각과 행동을 바꾸고 부모로부터 받은 사랑의 부족들을 어떻게 대인관계에서 보상을 받으려고 하는가? 등을 분석해서 고쳐 나가는 복잡한 과정이 심리치료의 과정이다. 고로 여기에서 먼저 치료 비용을 6개월을 지불하면 치료 비용을 냈기 때문에 적어도 5개월-6개월은 나오게 되고 그 시즘이면 심리치료의 효과가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심리치료를 시작하게 되면 치료의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치료사와 환자 사이에 갈등이 생기게 되어 있고 이 갈등을 풀어나가는 것을 먼저 배우면서 대인관계의 갈등들의 해결로 일반화 시켜 나가게 된다. 그러므로 치료 비용을 그 때 그 때 치료를 받을 때마다 내게 되면 환자들은 2개월-3개월 정도 치료 시간이 지나가면서 치료 효과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치료를 그만 두게 된다. 또한 매번 올 때 마다 치료 비용에 신경을 쓰게 되고 이것이 3개월 정도 넘어가면 부담으로 작용하게 되어 치료를 그만 두게 된다. 그리고 치료사와 갈등이 생기면 관계를 끊어 버리거나 회피해 버리는 환자 자신의 대인관계 갈등을 풀어나가려고 하지 않는다. 고로 분노하거나 실망해서 치료사와 관계를 끊어 버리는 것을 막기 위한 치료 기법으로 치료자는 반드시 치료를 시작할 때 6개월분의 치료 비용을 먼저 지불하게 한다. 동시에 치료 비용은 절대로 되돌려 주지 않음을 이야기를 한다. 치료 비용을 6개월을 미리 받는 것을 위와 같은 갈등과 실망으로 치료를 중단하지 못하게 하는 한 개의 치료 기법임을 미리 이야기를 해 둔다.

 D씨는 외면적으로는 신체 건강하고 미남형으로 보이는 외모를 가진 사람이었으나 그는 7년 전부터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치료를 시작했을 때가 결혼을 한지 꼭 1년이 되었고 5개월 된 아들이 있었다. 그의 부인은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었고 자녀는 인근에 살고 있는 장모님이 돌보아주고 있어서 큰 문제는 없었다. 그는 부인과 결혼 전에 약 8개월간 연애 기간으로 사귄 후에 결혼을 했다고 했다. 그는 8개월의 연애 기간 중에 그리고 결혼 1년이 지나가면서도 그 자신이 우울증이 있다는 것을 부인에게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우울증이 밝혀지면 부인으로부터 평가절하를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8개월의 연애 기간 중에 그가 우울하면 절대로 그의 파트너에게 연락을 하지 않고 피해 버렸고 그가 기분이 좋으면 연락을 하는 방식을 취했다. 고로 그가 부인과 결혼 전에 사귀던 관계 스타일이 불규칙적이어서 이후에 부인으로부터 이러한 관계 패턴에 대해서 부인이 감지를 하고 있었음이 밝혀졌다.

 그는 치료자를 만나기 직전에 메일에서 치료를 받게 되면 치료 비용은 그가 스스로 부인이 눈치채지 못하게 마련할 수는 있지만 1주일 마다 치료자에게 오는데 4시간 그리고 되돌아 가는데 4시간이 걸리고 그리고 치료를 받는데 2시간 총 10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하루가 완전히 날라가 버린다고 했다. 고로 부인에게 첫 번 1회 정도는 비밀로 할 수 있겠지만 1주일에 1회 치료 회기를 가지게 되면 곧 들통이 날 것을 걱정을 했다. 치료자는 D씨의 부부관계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이미 종합 검사에서 나온 데이터가 암시를 하고 있음을 지적을 했다. 친밀감 형성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고 부부 관계의 의사 소통에서 심한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이 문제를 고치지 않으면 부부 관계는 곧 문제점이 드러날 것이라고 프로파일링에서 데이터의 해석 때 강조를 했음을 상기 시키면서 심리 검사의 종합적인 테이터의 결과를 먼저 부인에게 알리고 그가 우울증을 앓고 있으면 심리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부인의 전폭적인지지가 필요하다고 고백을 해야할 것을 강조를 했다.

 그는 치료자와 첫 치료 회기를 가지기 전에 보낸 메일에서 부인에게 며칠 전에 우울증 검사를 해 보고 나서 우울증이 심각하다고 고백을 하고 지금 심리치료를 받지 않으면 앞으로 결혼 생활에서 그리고 몇 개월 전에 태어난 아들에게도 나쁜 영향을 줄 것 같으니 치료를 받게 허락해 달라고 처음으로 자신이 우울증이 있음을 부인에게 고백을 했고 그리고 부인이 치료를 허락해 주었다고 메일을 보내왔다.

 치료자는 D씨에게 그의 치료 동기를 높이 평가해 주었다.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기 위해서 먼 거리에서 하루를 희생해 가면서도 2시간 치료를 받겠다는 그 치료 의지 그리고 그의 7년 동안의 심한 우울증을 꼭 이번 기회에 해결하겠다는 결심과 그의 대인관계에서 생기는 갈등들 그리고 부부관계에서 문제점등을 해결하려는 그의 확고한 치료 동기를 높이 평가해서 칭찬을 해 주었다. 그러한 마음 속에 치료를 받아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결심만 있으면 심리치료는 어떤 문제들지 간에 해결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심리치료에는 단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알도록 여러 번 강조를 했다.

 첫 시간 대면에서 그는 심리치료를 받게 되면 정말로 그가 지금 가진 문제들을 꼭 해결할 수 있겠는지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치료자는 어떤 문제든지 간에 치료를 받으려고 하는 사람의 의지에 달려 있다는 것을 이야기를 하면서 D씨와 대화를 시작했다.

D씨의 과거의 역사

 D씨는 시골에서 자랐다, 그는 누나와 여동생이 한명씩 있었다. 그는 장손으로 태어나서 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 했다고 했다. 누나와 여동생은 유치원에 다니지 못했으나 그는 아들이라고 유일하게 유치원에 다닐 수 있었다고 했다. 그가 4 살 때 부모님은 막내인 여동생을 데리고 도시로 일자리를 구해서 떠났다. 그는 할머니의 손에서 사랑을 받으면서 자랐고 그 시절이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고 회고를 했다. 그는 유치원 시절에는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골목 대장 노릇을 하면서 자랐다고 했다. 그 시점에서 그는 누나와 할머니를 두고 부모님 곁으로 갔고 문제는 그 때부터 시작이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술을 자주 마시고 엄마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모습을 그 때부터 보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음주와 폭력은 자주 있었고 그는 늘 공포와 무서움 속에 살았다고 회고를 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폭력에도 불구하고 자식들 때문에 참고 살았다고 했다. 아버지의 음주와 폭력은 아버지의 형제들 사이에서도 불화로 작용을 했다. 명절 때만 되면 친척들에게 무섭게 대했기 때문에 친척들로 아버지를 피하고 싫어했다고 고통스럽게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그는 지금까지도 한번도 자신의 어린 시절의 가족들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털어 놓고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부인과 8개월의 연애 기간과 결혼 1년 동안에 그 자신의 우울증이나 어린시절의 가족이야기는 금기로써 부인에게 눈치도 채지 못하도록 일절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어린 시절부터 마음의 문을 닫아 버렸기 때문에 친구들 사이에 관계는 사춘기 시절로 들어가면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고 했다. 동료들과 초반기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으나 친밀감이 생길 무렵에는 자신감이 없고 따돌림을 느꼈다고 했다. 약간 폭력적인 한 친구에게 심하게 갈굼을 당했다고 했다. 그에게 똘 만이 역할을 한 것에 대해서 지금도 분노하고 있었다. 사춘기 시절에 그는 담배와 본드 흡입으로 잠깐 몰두했던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그의 사춘기 시절에 불행했던 과거에 대해서 후회와 고통스런 기억으로 남아 있다고 했다. 대학 시절의 초반기에는 인기가 있고 동료들도 많이 생겼으나 친밀감이 형성되어가는 장기적인 관계에서는 친구들이 한명씩 두 명씩 떨어져 나가는 것에 괴로워했다. 그 시점에서 D씨를 챙겨주고 다독거려주는 한 형을 만나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이후에 군대 생활에서는 고참이 되어가면서 더욱 더 힘들어졌다고 했다. 그는 후임병들에게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고참으로 인식되어지면서 그가 아버지의 폭력적인 관계를 그 자신의 피 속에서 흐르고 있다는 것을 그 시즘에서 알았다고 했다. 그는 제대 후에 대학에 복학을 한후에 후배 들에게 따돌림을 경험을 했다고 괴로웠다고 털어 놓았다. 그는 대학을 졸업을 하고 직장을 다니면서도 상사나 후배들에게 약간의 따돌림 비슷하게 D씨가 그들과 관계를 잘 하지 못하고 있다고 늘 생각을 하고 있다고 했다.

D씨의 현재의 문제점: 우울증 때문에 무기력하고 아무런 감정을 느낄 수 없다고 호소를 했다. 기쁘도 슬프도 그는 그냥 무감각해진 것 같다고 했다. 아무 의미 없는 인생을 살아서 무엇하냐? 아내와 아들을 보아도 그냥 무감각하고 좋지도 싫지도 않고 그냥 혼자서 쉬고 싶은 생각 뿐이라고 했다. 가장으로써 뭘 할지도 모르겠고 가정을 리더를 해 나가야 하는데 능력도 없는 것 같고 그냥 무감각한 것같다고 기술을 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그냥 겉도는 친구로써 스스로 느껴지고 존재 감각이 없고 여러 사람들 앞에서 주인공이되고 싶고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되고 싶지만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싶지만 그는 그러한 능력이 없는 것아 보인다고 고통스러워 했다. 현재 직장에서 후임들이 그를 따라주지 않고 그가 그들을 어떻게 리더를 할지를 모르겠다고 했다. 현재는 자살 생각 한번씩 나고 그냥 꽉 죽어 버릴 까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부인과 아들을 보면 힘을 내야지 하고 생각이 들어서 우울증이 심각한 것 같다고 하소연을 했다.

 치료가 시작되면서 치료자는 우선 D씨와 부인관계를 먼저 다루기로 했다. 동료들과의 관계는 우선 뒤로 미루고 먼저 부인과 관계를 다루어서 D씨의 부부관계를 먼저 고치는 것이 우선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유는 매일 같이 함께 살고 있는 부인과 관계는 동료들과의관계보다 다루기가 쉽고 부인과 관계가 바로 소통이 되어야 집이 안식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D씨는 부인과 심각한 의사 소통에 문제가 있었다. 이것은 D씨가 마음의 문을 열지 않고 마음의 문을 닫아놓고 있기 때문임을 강조 했다.

 며칠 전에 부인에게 우울증을 가지고 있다고 처음으로 고백을 한 후에 무엇을 느꼈느냐?고 치료자가 물었을 때 그는 부인이 그에게 그럼 결혼 전에 자신과 8개월간 사귀고 있을 때 한동안 그녀에게 연락을 하지 않는 것은 우울증 때문이었느냐?고 질문을 했다고했다. 그가 우울함을 그녀에게 보이기 싫어서 기분이 좋은 때만 만나고 심하게 우울할 때는 일부러 만나지 않았다고 실토를 했다. 또한 어저깨 그가 직장에서 상사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은 것을 부인에게 간단하게 이야기를 했고 부인과 대화를 가질 수 있었다고 했다. 그가 부인과 결혼을 해서 1년 동안 살아온 것을 분석하면서 치료자는 D씨가 부인과의 대화는 짧고 서로 자신의 내면의 마음 속을 털어 놓고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장모님이 5개월된 아들의 양육을 도 맡아서 돌보아주려고 D씨의 아파트에 늘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부인과 단독으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많지 않다고 했다. 그들의 의사 소통은 서로 일상 생활만 간단하고 이야기를 하고 있고 아들에 대한 이야기가 전부였다. D씨는 자신의 고통스러운 어린시절과 가족의 폭력에 대해서는 일체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었다. 치료자는 D씨와 부인과의 소통에 우선 치료의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첫 치료 회기를 끝내고 치료실을 나가면서 D씨는 정말로 자신의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을찌? 다시 한번 치료자에게 확인으로 물어보았다. 치료자는 그러한 심리적인 문제들은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를 하면서 단지 시간이 걸릴 것이니 너무 조급하게 서둘지 말고 한 걸음씩 천천히 내 마음을 들려다 보고 내 마음이 어떻게 작동을 하고 있는지를 알 게 될 것이고 내 자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알아가면서 자아 결함들과 갈등들을 해결해 나가는 것을 배우는 과정에서 자신감도 생기고 부부관계와 대인관계를 수정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를 했다.

 다음 홈페이지에서는 그의 부인과 인터뷰와 그의 상세한 과거의 상처들이 세부적으로 드러나면서 그의 핵심 문제의 본질들이 하나씩 밝혀지게 되면서 구체적인 치료의 윤곽들이 밝혀지게 되었다. 다음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세요.

https://blog.naver.com/psychclinic/221318926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