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살인마?

 

인간의 마음 속에 선천적인 공격 욕구가 있다는 말을 처음으로 학계에 보고를 한 사람은 정신분석학자인 알프레드 에들러(Alfred Adler)였다. 프로이트가 인간의 공격 본능을 초반기에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후반기에 에들러의 공격 본능을 수용해서 인간의 2개의 본능을 에로스(Eros)의 사랑의 본능과 타나토스(Thanatos)의 죽음의 본능으로 구분을 했다. 사랑의 본능은 리비도(그의 유명한 리비도 이론)로 그리고 죽음의 본능은 공격, 파괴 본능으로 구분을 해서 마침내 프로이트는 그의 유명한 삶의 본능과 죽음의 본능으로 이론화 했다(Ellenberger, 1970).

동양에서는 인간을 선하게 태어난다고 한 맹자의 성선설(性善說)과 인간은 악하게 태어난다고 한 순자의 성악설(性惡說)이 있다. 어느 것이 맞는가? 라고 논쟁을 많이 한다. 이 세상에는 한가지가 100%로 완벽한 것은 없다. 모든 만물은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다. 고로 서로서로 보완으로 생겨난 것이 아닌가? 성선설과 성악설은 어느 한가지가 틀린 것은 아니다. 서로의 약점을 보완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경험론자들의 주장은 인간은 백지상태로 태어난다고 본다. 성장해 가면서 부모와 자녀의 상호작용이 머리 속에 입력되어 새겨진다는 이론으로 성선설과 일맥상통하다. 반대로 인간은 동물에 속한다. 모든 동물들은 선천적으로 타고 나는 본능적인 욕구에 의해서 움직인다 라고 보는 관점은 성악설에 가깝다. 정신분석에서는 이 두 개의 이론을 수용해서 통합으로 본다. 동물적으로 태어난 인간이 어떻게 부모와 상호작용을 통한 사랑과 돌봄과 도움으로 마음의 상처에서 벗어나서 건강한 성숙한 자아를 가지 사람으로 성장하는가?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인간을 본능적으로 욕구를 타고 나는 것으로 동물적으로 보았다. 그의 유명한 욕구(drive) 이론이 정신분석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신생아는 태어나면서 욕구들을 가지고 태어난다. 이것을 원초자아(id)라고 불렀다. 이 욕구 자아는 무의식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생명의 근원으로 에너지의 공급처로 보았다. 3-5세의 나이에 어린이는 부모님의 목소리를 입사를 해서 선과 악을 구분하는 양심이 생긴다. 이것을 초자아(superego)라고 불렀다. 현실의 원리를 깨우쳐서 세상을 살아가는 현실적인 자아인 ego의 기능은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부모님의 보호 아래에 있는 ego는 미성숙(부모님이 보조 ego 역할)하다. 고로 우리는 미성년자로 불린다. 20세 이후가 되면 우리는 스스로 결정하고 판단하고 선택하는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으로 혼자서 세상을 날아갈 능력이 있다고 해서 법적인 성숙한 인간으로 인정을 받는다.

정신분석학자인 에릭슨(Erikson, 1950: 주㈜: 참고) 0-3세의 인간은 동물들과 다를 바가 없다고 보았다. 이 동물적인 인간이 3-5세가 되면서 문명인으로 바뀌기 때문에 이 짧은 기간 동안에 다양한 심리적인 문제점들이 발생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뉴욕의 코넬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컨버그(Kernberg, 1999: 주㈜: 참고)는 파괴적, 공격 욕구가 부모님의 사랑을 받아서 혼합으로 중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무디어지고 성숙하고 건강한 자아로 순화된다고 기술하고 있다.

동물적인 욕구가 사랑으로 중화되어 공격 욕구가 무디어지는 것이 바로 성숙의 과정이고 이 과정이 바로 부모님의 자녀 양육이 아닌가? 정신분석에서는 이 양육의 과정 즉 발달의 단계들을 거치면서 통과하는 과정을 다룬다. 발달의 과정에서 어떻게 박탈과 처벌과 학대가 일어나서 성숙하고 건강한 자아로 성장해 나가는데 장애물이 생겨났는가?를 연구하고 치료를 한다. 이 장애물을 제거해서 계속해서 자아가 성장과 발달을 계속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정신분석이 아닌가?

본능적인 공격적인 파괴적인 욕구가 부모님의 사랑으로 중화되어 성숙한 건강한 인간으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부모 혹은 양육자의 학대, 처벌, 박탈의 상처를 받아서 이 욕구가 성숙으로 성장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추어버린 것을 고착(fization)이라고 부른다. 욕구의 자아가 고착되어버리면 원시적인 파괴적인 자아가 그대로 남게 되어 어른이 되어서도 그 욕구가 언제든지 상처 받은 그 시점과 유사한 상황이 되면 뛰쳐나와서 전체 자아를 좌지우지 한다고 본다.

지금까지는 어린 시절에 박탈과 학대와 처벌로써 망가진 자아를 가진 정신적인 장애자들에 대한 연구와 치료에 대한 이야기를 해 왔다. 지금부터 이 글에서는 범죄인들과 살인범들에 대한 이야기로 방향을 바꾸어보자. 정신과적인 장애들을 가진 사람들과 범죄인, 살인범, 연쇄 살인범들의 차이점은 전자는 정신 병원에 들락날락 하지만 후자는 교도소, 형무소, 감옥소를 들락날락한다. 그러나 공통점은 둘 다 어린 시절의 성장과 발달의 과정에서 심리적인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전자는 분노, 노여움, 적대 감정을 자아의 탓으로 돌리는 죄의식이 강한 즉 초자아가 강한 사람들이어서 자아를 공격해서 자아가 망가진 사람들이고 후자는 자신의 분노, 증오, 적대 감정을 다른 사람의 탓, 혹은 사회의 탓으로 돌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복수하고 사회를 파괴시키고 공격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대부분이 초자아가 오염된 양심이 없는 죄의식이 없는 사람들이다.

 범죄 정신분석가인 하드버 대학 제임즈 길리간(James Gilligan, 1996: 주㈜: 참고) 교수는 평생을 교도소에서 범죄인들의 정신분석적인 연구와 치료로써 40년을 보낸 사람으로 그의 저서 폭력(1996)에서 인간이 자유와 여유를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일이 잘못 되었을 때 자아를 비난하는 경향이 있고 자살 비율이 높은 대신에 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자신을 컨트롤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태에서 자라난 사람들은 타인을 비난하고 처벌하는 경향 높고 살인 비율이 높다고 보고 하고 있다. 정신장애자들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부모님들의 과잉보호로 부모에 의존적, 복종적인 부응적인 자아, 순종적인 자아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 고로 부모님의 목소리를 입사를 한 죄의식(초자아)이 강해서 사랑과 미움을 쪼개서 사랑은 부모님 한데로 흘러가게 해서 부모님을 보호하고 미움은 자아 안에서 남아서 자아를 처벌하는 사람들이다. 대신에 범죄자, 살인자, 연쇄 살인범들은 경제적인 박탈과 부모의 학대로써 양심이 부패한 사람들로써 죄의식(초자아)이 없다, 공감 능력이 없다. 감정적인 학대로 인한 상처 때문에 영혼이 죽어버린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제 그들에 대한 연구와 치료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 보기로 한다. 범죄인들에 대한 연구가 시작된 것은 1950년대에 뉴욕의 경찰청에서 연속되는 살인범들을 수사하면서 수사관들이 범죄인들의 머리를 따라갈 수가 없다고 인식하면서 과학적인 범죄 수사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면서였다. 그 이전까지는 영국의 범죄 소설가인 아더 코난 도일(Aithur Conan Doyle)의 범죄수사 소설이 인기가 있었다. 사이록 홈스와 왓트슨 박사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소설이었다.

뉴욕 경찰청에서 수사관 하워드 테텐(Howard Teten)은 페트릭 멜라니(Patrick Mullany)와 함께 8년 동안 뉴욕에 32개의 폭발물 꾸러미를 남겼던 미친 폭파범을 잡기 위해서 뉴욕의 저명한 한 정신분석가이자 정신병리학자인 제임즈 브랏셀(James Brussel) 박사를 찾아갔다. 정신분석가들이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치료를 하면서 그들의 성격적인 장애가 어떤 행동으로 어떤 증세들로 나타나는가?를 잘 알고 그들의 성격 결함들과 증세들을 치료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두 수사관은 범죄의 흔적들과 증거들을 모아서 그에게 제시를 하면서 범죄인이 어떤 인물인가?를 유추하면 범죄인의 윤곽을 파악해서 수사의 범위를 좁혀나갈 수 있는 것이라는 아이디어에서 였다. 범인이 남긴 흔적과 증거들을 보면서 브랏셀 박사는 그 증거들을 분석해서 그가 이민자일 것이고 40대 초반으로 정신과적인 장애를 가진 외톨이 청년으로 교외에서 엄마와 함께 살고 있는 사람으로 옷차림과 용모에 관심이 없는 사람으로 그의 승용차는 지저분하고 그의 상위의 첫 단추가 잘못 잠겨있는 사람으로 분석을 했다. 두 수사관이 그 범인을 체포했을 때 그 정신분석가의 추측은 엄마가 아니고 누나와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정확했다. 심지어 그의 상위 셔츠의 단추가 잘못 잠긴 것까지 정확한 것에 놀랬다(Ressler, 1993).

이후에 이 두 사람은 범인의 증거들을 종합해서 범죄인의 성격의 윤곽을 만들어내는 범인 인상 분석(증거들로써 범죄인의 성격(인물)의 윤곽을 파악)을 처음으로 시도를 했다. 그들이 FBI 행동과학 팀을 조직해서 수사관들에게 범죄수사를 본격적으로 가르치기 시작했다. 심리학과 법학을 통합해서 버지니아 대학 대학원에서 범죄심리학 전문 과정을 개설을 해서 후배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들의 10년 동안의 연구의 결실이 1970년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 바로 FBI의 행동 과학 수사관들의 배출이었다. 그들의 지도 밑에서 제 1 세대 FBI의 행동과학 수사관으로 활동하다가 은퇴해서 괴물과 싸우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저서를 출판한 사람이 바로 로버트 레슬러(Robert Ressler, 1993: 주㈜: 참고)이다. 레슬러는 연쇄살인 serial killer 라는 신조어를 만든 사람이다. 그와 동료들은 본격적으로 살인범의 심리를 연구하기 시작을 했다.

미국 연방 교도소에서 그리고 각 주의 교도소에서 사형 혹은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복역중인 살인범들을 인터뷰를 시작한 것이다. 그들이 교도소의 허락을 받아서 미국 전역에서 약 300여명의 사형수와 무기수들을 인터뷰를 했다. 그 죄수들을 상담을 하면서 그들의 어린 시절의 성장 과정을 분석해서 살인범들의 특징들을 컴퓨터 프로그램의 데이터 베이스로 조직화 했다. 즉 범죄인들의 프로파일을 만들어서 수사관들에게 가르치는 교재로 사용을 했다. 여기에서 배출된 범죄 행동 과학 수사관들이 바로 오늘날 프로파일러로 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영화 양들의 침묵“CSI” 행동과학 수사팀 혹은 크리미널 마인드라는 TV 프로그램들이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 아이디어를 응용했다고 레슬러는 노트하고 있다.

레슬러는 범죄인들이 어린 시절에 상처를 받는 공통점들을 노트하고 있다. 20세 이전에 제대로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 한 사람도 없었다고 노트하고 있다. 그들은 어린 시절에 신체적 학대(매질과 처벌과 감금), 섹스적인 학대(성폭행과 성추행과 성희롱으로 인한 섹스 욕구에 상처) 그리고 감정적인 학대(갈등, 폭언들로 인한 언어 폭력, 사랑의 착취와 박탈)를 당한 사람들로써 어린 시절의 발달 과정에서 인간다움을 박탈당한 사람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우리 나라에서도 이러한 연쇄 살인범들이 오래 전부터 등장을 했다. 5명을 연쇄 살인한 지존 파들이 그들이다. 그들 중에 김현양은 처형당하기 이전에 내가 우리 엄마를 죽이지 못하고 죽은 것이 한()이 맺힌다라고 이야기를 했다. 어린 시절에 그를 고아원에 팽개치고 도망간 엄마에 대한 한을 직접적으로 표현을 했다. 2명을 살해한 연쇄 살인범인 온보현이 남긴 말도 유사하다. “우리 아버지의 얼굴에 똥칠을 하는 것이 내 범죄의 목적이었다.”라는 말로써 어린 시절에 가정을 버리고 도망한 아버지 때문에 자살한 엄마에 대한 원한을 증오심을 표현을 했다. 버지니아 공대의 살인범인 조승희는 초등학교 시절에 왕따를 당하고 대인관계가 망가진 체 이민을 가서 미국 사회에서 적응을 하지 못하고 외톨이도로 그들로부터 받은 멸시, 조롱, 모욕, 수치심들 그리고 그를 비웃었던 동료들에 대한 적대감정, 증오를 같은 학교의 동료 대학생들에게 돌려서 총기 난사로 32명의 살해를 했다. 20여명의 사람을 살인한 유영철 역시 어린 시절에 학대와 박탈과 사랑의 결여가 원인이 된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레슬러와 길리건은 둘 다 가정 폭력이 모든 범죄인들의 온상으로 보고 있다. 정신분석가들이 신생아들의 양육의 과정에서 자아가 성장하고 발달하면서 발달 단계에서 심리적인 상처가 정신자애의 근본원인으로 보고 있는 것처럼 살인자들과 폭력 범죄자 혹은 연쇄 살인범들은 하나 같이 가정에서 그 기원이 시작된다고 보았다. 폭력은 가정에서 자란다, 부모가 갈등의 해결 수단으로 폭력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자라거나 직접 폭력의 피해자가 된 사람들이 범죄자들이라고 밝혔다. 즉 가족구성원들과의 관계에서 시작된다고 보았다. 관계는 인간 행동의 시작이고 끝이다. 인간은 관계로부터 벗어나서 살 수가 없다. 어린이는 관계를 시작하는 양육자의 손에 달려 있다. 어린 시절에 학대와 폭력의 피해자가 어른이 되어서 폭력의 가해자가 된다고 보았다. 범죄인들의 어린 시절의 발달 과정을 분석하면서 어린 시절에 엄마, 아빠로부터 매질을 당한 사람들, 뼈가 부러지고, 다락방에 갇히고, 빈 아이스 박스에 처박히고, 목이 조여 질식 당하고 등등의 학대와 신체적인 폭력이 신체적인 불구자를 만들지 않았다고 해도 마음의 불구자, 영혼이 죽어버린 사람들로 양육되어진 사람들이 범죄자, 살인범 그리고 연쇄 살인범이 된다고 노트하고 있다.

유아는 엄마의 사랑으로 내 자아를 사랑할 수 있고 그리고 너를 사랑할 수가 있게 된다. 사랑이 없이는 살아 남을 수가 없다. 너의 사랑이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만들고 그리고 너를 사랑할 수 있게 만든다. 사랑에 굶주림은 자아의 죽음으로 몸은 살아 있지만 자아가 죽은 사람이라고 본다. 자신의 사랑이 자기 존경심, 자존감, 자긍심이 되고 너를 사랑할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이다. 자아 사랑의 부재는 수치심, 차가움이고 고통스러움이 된다. 고통스러움이 극단적이 되면 무감각이 된다. 무감각은 죽은 감각이 된다. 살아서도 죽은 사람이 된다.

자해를 하는, 칼로써 자신의 손목을 끄는 행위 혹은 담배 불로 자신을 지지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죄의식 때문에 자해를 하는 것이 아니고 무감각으로 죽은 영혼이 살아 있는지? 재 확인을 하기 위해서 자아에 고통을 가해서 몸에서 피가 나오거나 혹은 고통스런 감각을 느낄 때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낀다고 노트하고 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칼로 손목을 긋거나 혹은 담배불로 지질 때 무감각하다고 말하고 있다. 수치심과 모욕감과 경멸과 멸시와 조롱은 마음 속에 고통을 동반한다. 사람들은 고통을 잊어버리고 피하기 위해서 감각을 무디게 한다. 고로 극단의 경우에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무감각으로 만들어버린다. 고통에 둔감하게 되어 고통을 느끼지 못하도록 마음이 죽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무감각으로 죽은 영혼이 되는 것보다 칼로 자해, 담배불로 찌여서 고통을 느끼는 것이 더 좋다, 자아가 없는 것보다 나쁜 자아가 더 좋은 것과 같다. 아무 것도 없는 것보다 나쁜 것이 더 좋다가 된다.

폭력의 가면 뒤에는 감추어진 연약한 자아가 있다. 비웃음, 경멸, 무관심, 거부로 인해서 파손된 자아가 있다. 범죄자들은 도시라는 정글 속에서 배고픔, 집이 없음, 모욕감에 견딜 수 없어서 스스로 도발을 해서 감옥으로 들어가서 음식과 잠자리와 돌봄을 받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어린 시절의 양육의 과정에서 자신을 돌볼 수 있는 능력을 박탈당한 사람들이다. 의존적으로 성장한 사람들이다. 거칠고 의심이 많고 경계심이 많은 사람들이다. 부적당함, 놀람, 절망, 무능함을 느끼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사람들이다. 부인이 집을 떠나는 것에서 버림받음과 의존 욕구의 붕괴로 어린 시절에 억압된 미움과 분노가 촉매작용으로 화약고에 성냥불이 붙여진 것으로 수치심을 자극해서 부인을 컨트롤하고 의존욕구를 감추고 상대를 떠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들은 열등감, 거부감, 겸연쩍음, 모욕감으로 자신감이 바닥을 치고 자아존경심이 없는 사람들이다. 폭력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것은 단기간에 즉각적인 복종과 문제 해결을 하는데 편리함에 익숙해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말로써 감정을 표현할 자아의 능력이 결여된 사람들로써 행동으로 표현을 하는 사람들이다. 전지전능한 욕구를 가진 사람들은 무능력함에 비례한다. 건강한 사람들은 고통스러울 때 자아를 달래는 능력이 있다. 자아를 달래는 사랑의 원천을 가지고 있다. 폭력, 범죄자적인 사람들은 고통스러울 때 자아를 달래는 능력이 결여된 사람들이다. 감정의 질식으로 자신을 보호할 수단이 없는 사람들이다. 공허함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다. 현재의 참을 수 없는 고통의 원천은 어린 시절의 마음 속에 과거의 상처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언어 폭력, 모욕, 수치심은 자신감을 찢어 놓는다 영혼을 말살 시킨다.

폭력의 행동에 이유는 극히 사소한 것에서 출발한다. 새 신발을 밟았다, 자동차가 앞에서 길을 비켜주지 않는다, 내 아버지, 내 어머니를 모욕을 했다, 술집에서 떠 밀렸다, 배우자가 어떤 사람에게 희롱을 당했다. 어떤 사람이 내 자리를 찾지 했다 등등의 극히 사소한 것이 발단이 된다. 그러나 그 뒤에는 어린 시절에 받은 수치심과 모욕이 촉매가 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이러한 촉진 요소가 어린 시절의 수치심, 모욕감정에 불을 당기는 순간에 그는 감정인 분노의 화신이 되어 폭발하게 된다. 고로 폭력적인 사람의 치료는 충동에 제동을 걸게 하는 생각하는 능력과 감정을 말로써 표현하도록 하는 어린 시절에 성장이 중지된 자아를 되 살리는 것이다라고 하버드 대학의 범죄 심리학 교수인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인 길리건이 노트를 하고 있다.

치료자는 범죄자들의 심리치료를 한 사례의 경험이 없다. 그러나 범죄자들이 어린 시절에 심리적인 학대와 상처의 피해자들이라는 것은 레슬러(Ressler, 1995, 주㈜: 참고)의 괴물과 싸우는 사람들과 그의 후배로써 은퇴한 FBI 행동 과학 팀의 멤버인 존 다글러스(John Douglas, 1995: 주㈜: 참고)의 저서 마음사냥군(Mindhunter)이라는 저서를 통해서 범죄인들의 어린 시절과 그들의 범죄 수사의 사례들을 읽고 숙독한 경험이 있다.

이들의 연구들과 치료의 사례들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어서 범죄인들의 내면의 세계와 어린 시절의 학대와 처벌이 어떤 촉매적인 과정을 통해서 연쇄 살인범으로 만들어지는가?를 보여주는 두 편의 영화가 있다. 한 개는 내 안의 살인마라는 영화이고 그 다음 한 개의 영화는 지난 달에 상영된너는 거기에 없었다라는 영화이다. 후자의 영화는 올해 간 영화제에서 주연남우상과 작품상을 받은 영화로서 연쇄 살인범의 심리적인 묘사가 뛰어난 작품으로 치료자가 2018 10 16일 날에 CGV의 압구정동 아트 홀에서 특별히 상영하는 것을 보았다. 킬러 인사이드 미의 영화는 2010, 7, 7일에 개봉된 영화로 스탠리 큐브릭의 극찬을 받은 소설로 마이클 원드버텀 감독이 영화로 만들었다. 그 영화의 주인공의 심리분석으로 들어가 보자.

인터넷에서 찾은 "내 안의 살인마"라는 작품()의 평론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치료자의 영화 속의 주인공의 심리분석 홈 페이지에서 인용).

"친절한 얼굴 뒤에 숨은 냉혹한 살인마! ---미국 스릴러 소설의 거장 짐 톰슨의 작품『내 안의 살인마』. 주인공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 작품은 내면의 악마를 누르지 못한 이중인격 살인마의 행각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다. 베스트셀러 소설가 스티븐 킹과 영화감독 스탠리 큐브릭의 극찬을 받은 소설이다. 1976년에 영화로 제작되었으며, 현재 2010년 개봉을 목표로 리메이크 작업이 진행 중이다."

인터넷에서 찾은 영화 제목인 "킬러 인사이드 미"(The Killer inside me)에 대한 평론은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있다.

"텍사스 작은 마을의 부 보안관인 루 포드는 잘생긴 얼굴과 친절한 행동으로 마을 사람들의 신뢰를 한 몸에 받고 있다. 마을에서 가장 예쁜 약혼녀 에이미와 의사인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집까지 갖춘 그는 남부러울 것이 없다. 하지만 그에게는 남들이 모르는 병이 있다. 어릴 적 그를 지배할 뻔 했던 그 병은 다시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루는 창녀 조이스와 마을 유지의 아들인 엘머를 복수라는 이름으로 동시에 살해하고, 사람들은 그들이 말다툼 끝에 서로를 죽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점차 드러나는 증거가 루를 조여오고, 루는 그 살인을 은폐하기 위해 또 다른 살인을 저지르는데…. 추리, 서스펜스, 스릴러, 호러 등 다양한 장르 문학을 소개하는「밀리언셀러 클럽」시리즈의 103번째 책이다."

"치명적인 매력의 그녀에게 빠지다. 텍사스 주 소도시의 부보안관 ‘루 포드’(케이시 애플렉)는 의사 가문의 명망 있는 집안 출신에 우아한 약혼녀 ‘에이미’(케이트 허드슨)까지, 모두가 부러워할만한 완벽한 조건을 가진 남자이다. 어느 날 상부의 지시로 매춘을 하고 있는 콜걸 ‘조이스’(제시카 알바)를 추방하라는 명령을 받고 출동한 ‘루’는 그녀와 직면하는 순간,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인 매력에 빠져든다. 그 날 이후 ‘루’는 매일 ‘에이.."

  간단하게 책과 영화에 대한 평론가들의 일반적인 서평에서 잠깐 소개를 한 것처럼 영화의 원제목인 "The Killer inside me"라는 영화는 우리말로 하면 "내 마음 속에 있는 살인마" 혹은 글자 그래도 "내 안에 있는 살인마"라는 말로 번역되어질 수 있다. 이 영화는 제목이 시사하는 것처럼 한 인간의 악마적인 본성을 잘 그린 영화로써 정신분석적인 지식이 없으면 이해할 수 없는 영화이다.

 모처럼 필자는 심리적인 바탕이 배경으로 깔려 있는 영화들을 찾고 있는 중에 이 영화 "내 마음 속에 있는 살인마"라는 영화를 발견하고 그 영화를 보려고 영화관에 갔었다. 예상 했던 대로 영화는 흥행에는 실패했는지 나를 포함해서 단지 2명이 이 영화를 보러 왔었다. 이 영화는 제목이 암시를 하는 것처럼 사람의 심리적인 면 특이 정신분석적인 면을 바탕에 깔고 있어서 그냥 내용면에서 만 이 영화를 보면 이해를 할 수가 없게 되어있다.

 영화의 주인공인 젊은 경찰관(루 포드)은 표면적으로 보면 다른 경찰관들과 다름이 없는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으로 특별히 경찰관으로써도 모범적이고 순진한 새내기 경찰관으로써 경찰 생활을 시작했음이 얼마 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에서 경찰관이 별로 필요하지 않는 곳이라서 그런지 단지 나이 많은 선배 경찰관 한 사람과 주인공인 루 포드, 두 사람이 그 시골 지역 전역의 치안을 맡고 있는 것에서 지금까지 별로 사건이라고 해도 가벼운 주먹 다짐이나 절도 등 언제나 지역 사회에서 흔히 있는 가벼운 몸 싸움도 별로 없는 시골 지역임을 알 수 있다. 서로 얼굴을 잘 알고 친밀하게 지내기 때문에 대문을 열어 놓고도 안심하고 지낼 수 있는 시골의 지역에 개발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시작된다.

 그 지역에 어떤 개발 회사의 사장으로 있는 주인공의 어린 시절 학동기 시절부터 친한 친구인 엘머의 아버지가 개발이라는 핑계로 돈벌이를 하게 되면서 회사와 노조 사이에 불거진 갈등이 커지면서 문제가 등장하게 된다. 고용인과 피고용인 사이에 갈등 즉 회사와 노조 사이에 갈등이 그것이다. 그 회사에 고용되어 일을 하고 있는 노조의 책임자가 짠돌이인 그 회사 사장에게 직접 항의를 하는 대신에 그는 주인공의 형님이 그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사고로 사망한 사건을 들추어내면서 그 회사의 부실한 안전 관리 때문에 사망한 것이라고 주인공을 부추기면서 주인공의 어린 시절에 내면에 묻혀 있는 그 주인공의 분노, 적대 감정을 부채질해서 그 주인공의 심층에 깔려 있는 노여움, 적대 감정 그리고 특별히 변태성욕을 끄집어 내면서 살인적인 충동이 밖으로 끌려 나오게 된다.

 정신분석에서는 어린 시절의 상처를 중요시한다. 어린 시절의 상처는 무의식 속에서 묻혀 있다가 언제든지 자아가 약한 틈이 있거나 그 상처가 자극을 받으면 시도 때도 없시 뛰쳐나와서 그 사람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전략시키는 것으로 정신분석에서는 "우리들 자신들의 내면 속에 묻혀 있는 위험한 지뢰의 뇌관"을 찾을 것을 권유한다.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일찍이 "너 자신을 알아라"라고 했고 현대 철학의 대표자인 니체의 유명한 경귀인 "네가 심연을 들여다 보고 있으면 심연 역시 너를 들여다보고 있다"는 말이 이러한 것들을 잘 설명해준다. 내가 내 자신의 취약점, 함정을 모른다면 언제 내가 파멸의 길로 들어설지 모른다는 내 어린 시절의 상처 받은 욕구의 위험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주인공인 루 포드는 노조 대표자의 부추김을 별로 달갑지 않게 고려 조차하지 않고 있었지만 그러나 그의 내면 속에서 무의식 속에서 묻혀서 잠을 자고 있던 그 상처가 꿈틀거리기 시작함을 엿 볼 수 있다. 그는 그 지역에 우연히 개발의 바람을 타고 돈벌이가 되면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돈 많은 고객들을 찾아서 들어온 매춘부가 거주를 하면서 그 주인공의 심층의 문제의 뇌관에 불을 당기게 된다. 개발 회사의 사장의 난봉꾼인 아들인 엘머가 그 매춘부한데 빠져서 섹스와 술로 세월을 보내게 되자 그 사장이 주인공인 경찰관 루 포드를 불러서 봉투에 거액을 넣어주면서 그에게 그 매춘부를 지역 사회에서 추방시켜 줄 것은 간곡히 부탁을 하게 된다. 그 주인공은 그것은 그의 의무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 지역 유지가 하는 말에도 일리가 있어서 마침내 마음에 내키지 않게 그 매춘부가 살고 있는 집을 방문하게 된다.

 그 매춘부는 처음에 사복을 한 그 주인공 경찰관인 루 포드를 그녀에게 섹스를 사러 온 고객으로 보고 옷차림이 별로인 시골 총각으로 생각해서 별볼일 없는 젊은이로 거래를 하고 싶은 생각이 없으니 그냥 돌아가라고 다그친다. 그녀는 그 주인공을 섹스를 잘 모르는 순진한 시골 총각으로 알고 보고 멸시 천대하는 비하적 발언으로 그 경찰관에게 돈이 없어 보이니 그냥 돌아가라고 다그친다. 주인공은 그가 사복을 한 그 지역을 관할하는 담당 경찰관으로 자기 소개를 하고 이 지역 사람들이 매춘부를 떠나달라고 요구를 한다면서 빠른 시일 내에 그냥 떠나줄 것을 요구한다.

 화가 난 매춘부가 그 주인공을 비하, 모욕하면서 그의 뺨을 갈긴 것에서 그 주인공의 뇌관을 건드리게 되어 폭발을 하게 된다. 그 주인공이 분노가 폭발하면서 그 매춘부를 두들겨 패기 시작하면서 두 사람의 섹스 욕구에 불이 붙게 된다. 온 몸을 얻어맞은 매춘부는 섹스 욕구가 발동해서 극도로 흥분하게 되어 그 주인공을 유혹하게 되고 그 주인공은 파트너에게 폭력을 행사하면서 섹스 욕구에 불이 붙게 된다. 즉 두 사람은 한 사람은 마소키스트 이고 다른 한 사람은 새디스트임을 알 수 있다. 전자는 폭행, 모욕 등을 받으면 섹스 욕구가 불이 붙어 흥분하게 된다. 파트너로부터 비하, 처벌, 모욕, 학대, 멸시 등을 받거나 목이 졸리거나, 손발이 묶이거나, 물어 뜯거나 하는 신체적 폭력 때문에 섹스 흥분을 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섹스 흥분을 할 수 없는 비정상적인 섹스를 가지는 변태성욕자으로 마소키스트라고 부른다. 후자는 섹스 상대의 파트너를 두들겨 패거나 목을 조르거나 손발을 묶거나 물어 뜯거나 하는 폭력적 행동 때문에 섹스 욕구에 불이 붙어 흥분하게 되는 비정상적인 변태성욕으로 이들을 새디스트라고 부른다. 변태성욕 중에 하나인 새디즘과 마소키즘에 대해서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신 분은 다음과 같은 변태성욕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세요.

 이후에 두 사람의 만남은 이어지게 되고 마소키즘과 새디즘의 사랑이 펼쳐지게 된다. 이러한 비밀의 낌새가 탄로 나면서 매춘부의 정부인 그 회사의 사장 아들인 엘머가 이 사실의 낌새를 맡게 되면서 주인공 루 포드는 그의 어린 시절의 친한 친구인 사장의 아들인 엘머와 매춘부인 조이스를 살해하고 두 사람이 갈등으로 서로를 총으로 쏘아 죽인 것처럼 변장을 하게 된다.

 조용한 시골 지역에서 처음으로 살인 사건이 펴져 나오게 되자 지역 사회가 바짝 긴장을 하게 되고 수사관들의 관심을 받게 된다. 그러나 아무도 그 주인공 경찰관이 연쇄 살인범인 줄을 까맣게 모르고 있다.

  그 주인공이 어떻게 해서 연쇄 살인범이 되어가는가? 하는 것은 연쇄 살인범의 수사관이 그의 과거 어린 시절의 성장 과정을 더듬어 가면서 하나씩 밝혀지게 된다.

 루 포드는 어린 시절에 불행하게 성장한 것이 하나씩 밝혀진다. 그의 아버지는 의사로써 그 지역에서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의 어머니가 일찍 죽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재혼을 하게 되었고 그의 형인 이복 형제와 달리 루 포드는 일찍 엄마를 잃고 외톨이가 되면서 아버지로부터 혹은 양모로부터 별로 사랑을 받지 못했음이 밝혀진다. 특별히 그는 사춘기에 들어가면서 사춘기 초반기에 양모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것이 밝혀진다. 양모는 사춘기인 그 주인공에게 알몸을 보여주면서 "네 아버지도 나에게 매질이나 손으로 엉덩이나 유방을 때렸으니 너도 그렇게 해 보아라"라고 하며 부추겼고 마지못해서 그러한 섹스 폭력을 행사하면서 그의 섹스 욕구에 상처를 입은 것이 밝혀졌다. 그는 양모의 섹스 유혹에 걸려들어서 새디즘적인 행동을 통해서 섹스 흥분, 섹스 욕구를 느끼게 된 것이었다.

 그의 불행한 어린 시절의 상처 받은 섹스 욕구와 양모와 아버지에 대한 분노, 노여움, 적대 감정은 고스란히 무의식 속에 묻혀져서 잊혀져 갔다. 루 포드는 성장을 해서 어린 시절의 불행한 과거를 깨끗이 씻은 듯이 아버지가 죽은 후에 아버지의 재산을 고스란히 물러 받아서 시골에 지역 경찰관이 된 것이었다. 형이 공사장 인부로써 일을 하다가 사망했기 때문에 아버지의 재산을 그의 몫이 된 것이었다. 경제적으로 별로 어려움이 없고 그리고 약혼녀까지 두고 얼마 후에 결혼을 할 유망한 시골 순진한 청년에게 어느 날 느닷없이 등장한 매춘부가 그의 내면에 묻힌 섹스 욕구인 새디즘을 자극하게 된 것이었다.

 사실은 그의 살해적인 분노는 어린 시절에 그에게 성폭행을 가한 그 양모와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새디스트였다는 것은 양모를 통해서 알 게 된다. 아버지가 변태성욕자로써 변태적인 섹스를 즐겼다는 것이 양모를 통해서 아들에게 대물림이 된 것이다. 여기에서 정신적인 상처는 자녀에게 대물림이 된다는 정신분석학적 이론이 다시 등장하게 된다. 루 포드는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가 가진 변태성욕을 유산과 함께 물러 받게 된 것이 아닌가!

 루 포드는 이후에 약혼자와 섹스가 재미, 흥미가 없음을 발견하고 약혼자 한데서 섹스 흥분을 얻기 위해서 새디스트적인 행동을 하게 되고 이것이 도를 넘어가면서 약혼자를 살해하게 된다. 이제는 그의 내면에 묻혀 있는 살해적 분노, 살인적 노여움에 브레이크를 걸 수 없게 된 것이었다.

 사실 루 포드가 살해를 한 매춘부인 조이스나 약혼자인 에미미는 무의식적으로 어린 시절에 상처를 준 양모를 상징한다. 양모가 매춘부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던가? 아버지의 처로서 그리고 사춘기 아들인 루 포드를 유혹하고 그로 하여금 양모를 새디스트로 매질하게 하고 두들겨 패게 하라고 시킨 장본인이 아닌가? 루 포드의 심층에는 여자들은 모두 매춘부이다라는 공식이 새겨져 있었다. 일찍 사랑한 엄마에 대한 분노와 사랑을 제대로 주고 돌보아주지 못한 아버지에 대한 노여움이 폭발하면서 매춘부와 같은 여성들에게로 방향이 바뀐 것이 아닌가?

 결국 그는 수사망이 좁혀 오면서 그의 연쇄 살인이 탈로 나게 됨을 알고 죽은 줄 알았던 과거의 매춘부가 살아서 돌아왔음을 보고 마침내 그녀와 함께 스스로 자살을 하게 되어 생을 마감하게 된다.

 특이한 것은 마지막 자살 직전에 죽은 줄 알았던 매춘부가 살아서 다시 루 포드에게 되돌아 와서 보인 행동이 걸작이 아닌가! 그녀는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그 파트너인 루 포드에게 안겨서 사랑을 구걸하고 있는 모습이 아닌가! 그녀는 루 포드 이외의 남자 한데서는 사랑을 느껴보지 못했던 것을 알 수 있다. 마소키스트의 실상을 엿볼 수 있는 행동이 마지막 장면에서 나왔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이나 에피소드들은 영화이고 소설이지 실제로는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 정신분석학자들의 견해이다. 이유는 마소키스트들은 학대, 신체적 폭력으로 섹스 욕구 즉 흥분해서 섹스를 가지게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무작정의 폭력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소키스트들은 파트너에게 자신이 원하는 폭력만큼 제공해주기를 의식적으로 갈망하기 때문이다. 무작정 무차별의 폭력에서 섹스 욕구를 느끼는 것은 아니다. 상대로 하여금 마소키스트가 원하는 정도만큼만 폭력이나 신체적 학대를 가하게 조종을 조작을 한다는 것이 최근의 연구 결과가 밝히고 있다.

 즉 마소키스트는 새디스트보다 한 수 위에 있는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상대를 가지고 논다는 점이 새디스트들과는 다르다. 고로 무작정 폭력을 가해서 섹스 흥분과 섹스 오르가즘을 얻는 새디스트들은 마소키스트와 파트너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새디스트들은 자신의 욕구에 걸려들어서 무작정 상대를 모욕하고 폭력을 행사함으로써 섹스 욕구를 만족하고 오르가즘을 얻어야 한다. 그러나 마소시스트들은 자신의 파트너로 하여금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제공해달라고 원하는 것만큼의 모욕과 수치심만 원하고 그 시점에서 섹스 오르가즘을 얻는다는 것 때문에 새디스트와 마소키스트는 착떡 궁합으로 보이지만 절대로 같이 살 수가 없는 것임을 정신분석 학자들이 밝혀낸 것으로 볼 때 이 영화는 소설이나 영화로써는 이해가 되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새디스트와 마소키스트는 같이 잘 수 없고 사랑을 나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새디즘의 원인과 마소키즘의 심층적 원인에 대해서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은 사람은 다음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세요.

 주인공인 루 포드는 자신의 내면에서 웅크리고 앉아 있는 어린 시절의 자아를 몰랐기 때문에 그 자아의 통제에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가 만약에 그의 유아기의 내면의 변태성욕과 쌓여있는 분노, 적대감정을 알았더라면 그의 충동적 살해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 아닌가! 정신분석이나 심리치료에서 다루고 있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임을 독자들로 하여금 알 게 해주는 좋은 영화였다. 나폴레옹이 한 말 "너 자신을 정복해야 세계를 정복할 수 있다"는 말이 다시금 생각나게 하는 영화였다.

두 번째 영화인 너는 여기에 없었다의 주인공의 심리분석에 들어가 보자. 이 영화는 2017년에 제작되어 우리 나라에서는 2018, 10, 4 일에 개봉이 된 영화였다. 칸 영화제에서 주연 남우상과 각본상을 받았다는 것과 미국의 저명한 언론들의 영화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고 있다는 논평을 보았다 그러나 흥행에는 실패해서 치료자(필자)가 우연히 영화 소개의 평론을 읽으면서 이 작품이 인간의 내면 심리를 다루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일반 영화관에서 영화의 상연이 끝난 뒤여서 간신히 인터넷의 영화관들을 체크해본 결과 유일하게 압구정동 아트 홀에서 상영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2018, 10, 30일에 오후 4시에 그곳에 달려가서 관람객 6명과 함께 그 영화를 볼 수 있었다. 그 영화의 팜프랫 소개서에는 다음과 같은 논평의 소개가 있었다.

끔찍한 유년기와 전쟁 트라우마로 늘 자살을 꿈꾸는 청부업자 ‘조’.
유력 인사들의 비밀스러운 뒷일을 해결해주며
고통으로 얼룩진 하루하루를 버텨내던 어느 날,

상원 의원의 딸 ‘니나’를 찾아 달라는 의뢰를 받고
소녀를 찾아내지만 납치사건에 연루된 거물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그렇게 다시 사라진 소녀를 구하기 위해 나서는데…

죽어도 아쉬울 것 없는
살아있는 유령 같은 인생에
조용히 나를 깨우는 목소리 “Wake up, Joe!

위의 소개 글을 읽고 나서 이 영화가 폭력범의 내면 심리를 다루고 있다는 것을 알고 이 심리적인 영화를 놓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서 정신분석을 공부를 한 치료자도 이 영화의 줄거리를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난해한 영화였다.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로 들어가기 전에 이 영화가 영국에서 만들어졌다는 것과 감독이 여성 감독(린 랜지 감독)이라는 점과 그녀가 2011년에 만든 영화 케빈에 대하여라는 작품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왜 영국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영국은 정신분석이 세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발달된 나라이다. 프로이트는 오스트리아 사람으로 독일어로 정신분석학을 썼다. 그런데 프로이트가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그리고 정신분석을 연구하고 치료하는 정신분석가들이 99%가 유태인(1912, 3차 국제 정신분석학회에서 55명의 회원 중에서 단 3명을 제회한 회원 모두가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독일의 나치 정부가 정신분석학 서적들을 모두 모아서 불태우고 금지령을 내렸다. 나치의 추방으로 제자들에 의해서 구사일생으로 프로이트의 직계 가족과 주치의와 가정부만 영국으로 망명을 할 수 있었다. 프로이트가 추방 이후 제 2차 세계 대전 발발 1주일 전에 사망했다는 글은 이미 여러 차례 밝혔다(프로이트에 대해서 우리가 모르고 있는 사실들 1-19의 글을 보라). 프로이트의 독일어는 영국에서 영어로 번역이 되었고 이후에 영국에서 정신분석의 대가들이 탄생하게 된다. 독일어의 정신분석학은 영어가 정본이 되었고 독일어에는 없는 용어들 즉 원초자아(id), 초자아(superego), 자아(ego)라는 낱말들이 신조어로 등장해서 이 용어가 정신분석의 핵심 용어가 되었다.

고로 사실은 독일에는 융(Jung)의 분석심리학은 잘 발달되어져 있지만 정신분석은 볼모 지대가 되었다. 독일에서 정신분석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영어의 정신분석을 다시 독일어로 번역해서 사용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고 있다는 글을 보았다. 미국에 정신분석가들의 숫자는 많지만 정신분석의 대가들은 영국인들이 많다. 영국에 귀화한 멜라니 크레인(Melanie Klein), 위니코트(Winnicott), 볼비(Bowlby), 비용(Bion), 세갈(Segal), 로젠필드(Rosenfeld) 등의 대가들이 영국인이다. 여기에서 이 작품의 감독인 린 랜지 감독은 철저한 정신분석적인 이론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녀의 유명한 작품인 캐빈에 대해서는 내가 그 영화를 상영하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보지 못했다. 그러나 평론에서 어린 시절에 어머니로부터 학대, 박탈과 처벌을 받은 어린이가 청년이 되면서 연쇄 살인범이 되는 과정을 그린 작품으로 된 평론의 읽으면서 그녀가 철저하게 정신분석적인 바탕을 깔고 영화를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더 붙여서 또 한가지는 이 영화가 폭력의 테마를 다루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 내가 15년 전에 정리해 둔 폭력이라는 제목의 하버드 대학의 범죄 정신분석가인 길리간(Gilligan, 1996)의 저서의 핵심 요약을 다시 읽고 나서 이 영화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이 작품인 너는 여기에 없었다”(You are really never here)로 들어가보자. 이 영화는 상상을 다루고 있다. 현실 세계에서 청부업자로써 의뢰 받은 사건을 해결해 나가면서도 영화의 4분의 3이 주인공 죠의 상상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어서 정신분석과 폭력 그리고 상상을 이해하지 못하면 줄거리를 따라가지가 어렵다는 점이었다. 정신분석은 현실을 다루지 않는다. 분석을 받는 사람의 상상, 백일몽을 주로 다룬다. 물리적인 시간보다 사이클 적인 시간인 상상을 다룬다는 점이다. 자아는 과거, 현재, 미리로 언제든지 상상 속에서 드나들 수 있다는 점을 먼저 알아야 한다. 죠는 어린 시절에 아버지의 폭력을 보면서 자라났다. 아버지로부터 직접적인 신체적 폭력은 받지 않았지만 아버지가 엄마를 폭행하고 폭언하고 신체적인 상처를 가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자랐다. 이후에 그는 군대에서 특수부대 그리고 FBI의 수사관으로 이어지는 그의 삶의 여정은 전부 폭력과 연결되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가 청부업자 혹은 현실에서 살아가면서 그는 현실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고 과거의 상상의 상처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죠가 현실에 살고 있다는 것을 사건 해결 장면을 보고 있지만 죠는 과거의 상처의 경험의 연상으로 유아기에서 청년기로 그리고 어린이 시절로 그리고 지금 현재 50대 중반으로 그리고 엄마와 어린 시절에 관계로 그리고 인신 매매를 당하는 소녀들의 살해된 장면으로 이리저리 자아가 상상 속에서 과거의 상처 속에서 헤매고 다니고 있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에 줄거리의 연결을 붙잡을 수가 없다. 이것은 죠가 현재를 살고 있지만 그는 과거의 상처의 자아 속에서 과거를 살고 있는 것임을 보여준다. 어린 시절의 심리적인 상처가 현재의 죠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영화 소개의 포스터에서 끔찍한 유년기와 전쟁 트라우마로 늘 자살을 꿈꾸는 청부업자를 보라).

죠는 늘 자살을 꿈꾼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자살을 하려고 비닐 봉지를 뒤집어 쓰는 것을 평생 동안 반복한다. 자신의 입게 칼을 물고 자살하려고 하거나, 철로에 떨어져 죽으려고 하는 것은 죽어버린 영혼에 대해서 무감각적인 느낌을 칼, 망치, 입에 칼을 물고 그리고 물에 빠져 죽으려고 하면서 그가 자신의 자해를 통해서 살아 있는 감각을 느끼려고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즐거움의 감각과 살아 있음을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의 삶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으로 볼 수 있다(영화 소개의 포스터에서 죽어도 아쉬울 것 없는 살아있는 유령 같은 인생을 보라).

죠는 다행히도 엄마로부터 사랑과 보호를 받았다. 고로 그는 자살 직전에 어린 시절부터 조 일어나라(Wake up, Joe!)라는 엄마의 목소리에 상상의 꿈의 세계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자신을 발견한다. 엄마의 이 목소리가 그의 유일한 삶의 끄나풀이 되고 있다(영화 소개의 포스터에서 조용히 나를 깨우는 목소리 “Wake up, Joe!”를 보라). 더 붙여서 그의 어린 시절의 상처의 연상이 현실의 청부업을 수행하려는 그의 행동에 하나하나 연결되어진 것을 볼 수 있다. 그가 살인을 하려고 할 그 순간에는 반드시 과거의 상처의 기억이 연상으로 연결 되면서 그는 임무를 수행한다. 즉 과거의 상처 받은 자아가 현실의 자아를 대신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실이 과거의 상처와 유사한 장면으로 연결되면 현실의 자아가 아니고 과거의 상처받은 자아가 등장해서 그의 현재의 살해가 과거의 상처의 복수를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고로 살해에서 그는 참회가 없다. 죽어주어야 할 사람을 죽이기 때문에 그는 선한 일인 살인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청부업자의 일 자체에서 살인에 대한 죄의식은 없다.

이 영화를 다른 논평가들은 영화의 제목인 너는 여기에 없었다라는 것에 대해서 너를 신으로 대체 시켜서 신에 대한 구원을 갈구하지만 신은 거기에 없었다 로 혹은 신조차 구원을 외면한 혹은 너는 신으로부터 버림받은 용서받지 못할 자! 라는 의미로 해석을 많이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이 영화가 정신분석적인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어린 시절에 상처를 받아서 경험이 쪼개지고 자아가 분열되어 통합되어지지 못한 사람들이 현실에서 과거의 상처와 연결되면 과거의 상처 받은 자아가 등장해서 현재의 자아를 좌지우지 한다는 정신분석가들의 단골 메뉴가 여기에서 발견된다는 점이다. 죠가 현재에 저질러는 살인 청부업의 임무는 현재의 자아가 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모르고 있는 내 과거의 현재와 단절된 내가 모르는 무의식 속에 숨어 있는 내 자아가 살인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독자에게 알리는 것으로 본다. 실제 지금 현재의 내 자아가 작동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저지르는 폭력과 살인은 내가 모르는 과거의 상처받은 내 자아가 저지르고 있기 때문에 나는 현실에서 없는 것이다. 내 영혼은 현실에서 죽은 영혼이다. 살아 있는 내 실체가 아니다. 나는 인간이 아닌 좀비로 살고 있고 그리고 살인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죠가  청부업자를 살해하고 옆에 같이 누워있을 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나는 낙원을 만났어, 그러나 나는 나를 만나지는 못했지의 구절을 보라).

이러한 주장은 40년 동안 교도소의 폭력 범죄자들을 연구하고 상담을 한 하버드 대학의 범죄 정신분석가인 길리건의 저서 폭력에서 잘 설명되어지고 있다. 살인자들은 일상 생활에서는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지만 감정을 느낄 수 없는 무감각함과, 공감이 없기 때문에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나갈 수가 없다. 무감각을 피하기 위해서 끝임 없이 자해로써 그리고 살인 청부업을 맞아서 직업으로 살아간다. 피를 보거나 자해적인 행동에서 그는 고통을 느끼면서 살아 있음을 재 확인하고 있다. 반복된 의미 없는 영혼이 죽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는 현재의 삶에서 의미와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 살아 있어도 죽은 사람이다. 마음이 죽은 사람이다. 그는 친한 친구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친밀감을 형성할 수가 없어 보인다. 유일하게 그가 맞는 임무를 철저히 수행하는 것으로 살아 가고 있다.

여기에서 또 한 가지는 폭력에 찌들 린 삶에서 탈출하지 않고 왜 폭력을 반복하고 있는가? 는 과거의 상처의 삶을 현재에서 반복하고 있다는 것에서 그리고 폭력으로 스스로 벗어나기 위해서 강박증적인 행동을 보이는 사람과 유사하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계속 문제를 반복하게 되는 것이 바로 강박증이라고 프로이트가 말을 했다. 참회가 없다. 공감이 없다. 고로 후회가 없다. 잔인한 살인 사건만 계속 반복하게 된다. 이것은 어린 시절에 받은 폭력에 대한 공포심을 극복하기 위한 그 자신만의 치유적인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그의 폭력에 대한 두려움과 죄의식(양심 그는 일부 양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가 FBI 수사관 시절에 동양인 소녀들의 인신매매를 구원해주지 못하고 실패한 죄의식 그리고 이락크 파병에서 소년에게 쵸코 마이를 건네준 그 소년이 동료 소년에게 살해되는 것을 보면서 막아주지 못한 죄의식) 때문이다. 그는 계속해서 살인을 저질러 왔기 때문에 양심과 죄의식으로부터 악몽처럼 과거의 살인 장면들의 연상에 시달리게 된다. 그런데 그 폭력의 두려움과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스스로 폭력에 뛰어들어가는 것이다. 결국은 폭력적인 행동은 반복이 된다.

치료자는 어린 시절에 성폭행을 당한 소녀들이 사춘기가 다가 오면서 순결을 잃어 버렸다, 처녀가 아니다 라는 고통과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스스로 매춘부가 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매춘부의 70%가 성폭행의 피해자들). 또 다른 예로써 두려움이 많은 사람들이 비행기 낙화 훈련에 참가해서 스스로 고공의 비행기에서 뛰어내리기 직전의 두려움의 공포가 가장 크지만 직접 뛰어 내리면서 그 두려움을 이겼다는 희열 감정을 느낀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앉았던 테이블의 자리가 마지막 장면을 환 하게 비추어준다. 인간은 관계에서 시작해서 관계에서 끝난다는 정신분석의 관계 이론이 바로 대상관계 이론이다. 대상이라는 말은 마음 속에서 이미지 상상을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관계는 바로 인간의 삶의 시작이 관계에서 시작하고 죽을 때는 마음 속의 상상 즉 엄마를 부르면서 죽는다는 인간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으로 보였다. 대상관계 이론들은 앞에서 언급한 영국의 정신분석가들이 창조한 프로이트의 정통 정신분석에서 새롭게 가지가 난 치료 이론으로써 지금  미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가 있는 정신분석적인 치료 이론이다.

또 한가지는 죠의 삶에서 유일하게 죠의 상상 속에서 자살 생각을 하고 있을 동안에 상상 속에서 벗어나도록 죠 일어나라!”라고 일깨워주던 엄마가 죽음으로써 죠에게는 마지막 희망이 사라졌다 고로 엄마의 시신을 안고 호수 속에서 같이 자살을 시도했던 죠에게 니나가 연상이 된 것이다. 니나의 카운트 다운이 죠의 깨어나라 라는 엄마의 구원의 목소리로 대체 된다. 그 순간 죠는 자살에서 깨어나서 현실로 돌아온다. 니나는 주 지사의 딸로 어린 시절에 행복하게 자라란 영혼이 맑은 상처받지 않는 소녀이다. 반대로 죠의 심리적인 상처는 그의 어린 시절의 영혼을 파괴 시켰다. 서로 대조가 된다. 그런데 니나가 인신매매 범인들에게 인질로 잡혀 가면서 심리적인 상처를 받게 된다. 고로 두 사람은 서로 심리적인 상처의 공통 분모가 생긴 것이다 고로 공감이 생긴 것이다. 죠는 50대초반의 나이지만 그의 영혼은 어린 시절에 상처 받은 어린 소년의 자아에서 고착되어 성장하지 못하고 머물러 있다. 소녀의 사랑과 따뜻함과 맑은 영혼이 쇼의 어린 시절의 상처받은 영혼에 공감대를 형성해서 니나는 죠의 죽은 엄마의 자리를 대신에서 죠의 구원자가 된다는 것을 마지막 장면에서 볼 수 있었다.

다시 이 글의 제목의 내 안에 살인마로 되돌아가 보자. 우리는 과거의 상처로부터 100% 깨끗한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부모의 양육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를 잊어버리고 산다. 내 자신의 과거의 상처가 현재의 내 자아에게 어떻게 작동을 하고 있는가?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몇 개월 전에 PC 방에서 1000원의 시비로 한 청년을 살해한 사건으로 떠들썩 하다. 사람들은 그가 정신이상 상태에서 살인을 했다고 주장해서 심신미약으로 형을 감면 받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을 하고 있다. 그의 살인에 대해서 많은 페널리스트 들과 범죄 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는 온전한 정신상태에서 살인을 한 것이 확실하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가 정신분열증(조현병)으로 인한 환각 상태에서 살인을 한 것은 분명히 아니다. 그가 정신장애에서 망상과 환각 상태에서 정신이상 상태에서 살인을 하려고 하면 적어도 6개월 이상 그러한 증세들이 등장해야 한다는 DSM-Ⅴ의 조건들을 충족해서 망상 혹은 조현병으로 진단되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치료자는 폭력에 대한 학자들의 글과 정신분석가들의 이론과 치료의 근거에서 볼 때 사소한 자극들이 폭력의 행동에 뇌관으로 작동한다는 것이 이번 사건에서도 촉매 역할을 했다고 본다.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사소한 사건으로 보이지만 그 자극이 그 사람의 무의식 속에 있는 수치심, 모욕, 멸시, 조롱으로 연결되어 폭력의 촉매가 되어 화약고를 폭발시킨 것으로 본다. 살인자인 xx 군은 어린 시절에 수치심이 미움으로 남아 있다가 폭력으로 방아쇠가 당겨진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 경제는 신상이 공개된 xx 군의 동창생과의 인터뷰를 기사화 했다. 이에 따르면 “xx군은 평소에 조용한 성격이었고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동창생은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었다, 쉬는 시간마다 만화책을 봤고 노는 시간에는 생각이 좀 많았던 것 같다라고 밝히기도 했다(인터넷에서 인용). 그는 수줍고 거부감에 예민하고 우울증 약물을 복용하고 있다는 것으로 보아서 자신감이 없고 말로써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의사 소통 능력의 결함을 가진 평범한 청년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소한 자극이 수치심으로 연결 되면서 억압되어진 과거의 모욕감의 순간에서 현실의 자아가 과거의 수치심의 자아로 대체 되면서 자아의 통제 능력을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피해자와 말다툼을 한 그 순간에 그는 과거의 수치심을, 모욕감을 받은 자아가 뛰어나면서 현재의 자아를 좌지우지 한 것으로 보인다. 이성의 힘이 감정의 힘에 압도당해서 폭발의 뇌관을 당긴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누구나 과거의 상처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단지 우리가 우리의 자아를 알고 내 자아의 결함을 알면 내가 함정으로부터 피할 수가 있다는 것이 정신분석 심리치료사들과 범죄 정신분석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그리스 시대에 아폴로 신전에 새겨져서 지금까지도 전해 내려오는 유명한 경구인 너 자신을 알아야그리고 니체가 100전에 말한 유명한 경구인 내가 심연을 들어다 보고 있으면 심연도 너를 들어다 보고 있다는 말로써 내 안의 살인적인 충동적 상처가 무의식 속에서 숨어서 내가 어린 시절의 수치심의 유사한 자극이 나타나지를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것을 이런 영화들이 등장해서 우리에게 경고를 주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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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참고 : 길리건(Gilligan, 1996). 폭력

            : 레슬러(Resseler, 1993). 괴물과 싸우고 있는 사람들의 요약

            : 다글러스(Douglas, 1997). 마음사냥꾼

            : 엘렌버그(Ellenberger, 1970). 무의식의 세계: 역동적 정신의학의 진화와 역사

            : 에릭슨(Erikson, 1950). 어린이와 사회

            : 컨버그(Kernberg), 보드라인 성격장애(1999), 보드라인 성격장애을 위한  전이 중심심리치료(1998), 보드라인 조건과 병적인 나르시즘(1975), 보드라인 조건과 임상적 정신분석(1975),                 심한 성격장애, 치료적 전략(1984), 보드라인 환자를 위한 심리역동적 치료(1989), 보드라인 환자: 치료적인 제한을 확대(2000).

위의 저서들은 치료자가 우리 나라말로 번역해서 소장하고 있으니 치료자의 홈 페이지에 있는 전문 서적 안내에 들어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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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치료 사례는 조울증을 가진29세의 미혼 여성이 치료자에게 2 6개월 동안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는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카우치에 누워서 정신분석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과 분석가

대상: 29세의 물리치료사 Y

증세: 7년 동안 불안증과 가벼운 우울증에 시달림

진단: 불안증, 대인공포증, 조울증

연결: 심리적 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던 중에 여성의 전화에 전화 상담을 하면서 그 상담원으로부터 치료자를 소개 받고 치료를 받으러 찾아오게 되었음

치료 기간: 1주일에 1회로 2시간씩 2 6개월 동안 심리분석 치료를 받음

치료 결과: 처음에는 정신분열증(조현병)으로 진단을 받았으나 나중에 조울증으로 판명이 났고 치료자의 치료 결과 조울증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파트 타임으로 일하던 것을 풀 타임으로 일하게 되었고 동료들과의 갈등이 줄어들어 사회생활에 잘 적응해나가게 되었음

치료의 과정

치료의 초반기: Y양은 대학을 졸업 후 3년 동안에 직장을 무려 6번이나 옮겨 다니고 있었고 한 직장에서 일한 기간은 불과 2개월 3개월에 불과 했다. 가장 많이 근무한 기간이 고작 8개월이었다. 직장은 풀 타임 직장으로 하루 8시간을 근무한 것이 아니고 파트 타임 직장으로 하루에 3시간 4시간 정도로 오전이나 오후에 근무를 해 온 것이었다. 중간에 직장 생활에서 지속적인 근무를 할 수 없게 되자 몇 개월씩 일을 하지 않고 쉬었다가 또 근무를 했다가 를 반복하고 있었다.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게 되면서 직장에 근무할 수 없게 된 동기들이 하나씩 밝혀지기 시작했다.

Y양의 생육사: Y양은 초, 중등학교 시절에 전교에서 1 2 등을 다투어 온 수재였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어머니가 학교를 드나들며 Y양의 교육에 관심을 보이는 바람에 Y양은 학급에서 지도 위원을 역임했고 성적도 언제나 1등을 차지 했다. 친구들도 많아 어려움이 없었다. 문제는 어머니가 과도하게 Y양에게 공부를 강요하면서 고학년에 올라갈수록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되면서 문제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중학교 때 Y양이 전교에서 3등을 했으나 어머니는 친구의 딸이 전교에서 2등을 한 것을 보고 너는 왜 1등을 하지 못했느냐?고 비교를 당하고 3등에 만족하지 않는 어머니의 성격에 심한 상처를 입었다고 Y양은 그 때의 고통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문제는 아버지와 어머니와의 갈등에서 항상 집안에 바람 잘 날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부부 싸움에서 자주 구타가 있었고 어머니의 불평과 불만은 점점 쌓여 갔다.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어머니가 조용하게 집안에서 살림만 하고 바깥에 출입을 자주하는 것을 싫어했고 어머니는 집안에서 조용하게 있는 것을 싫어하는 스타일로 끝임 없이 치마 바람을 일으키며 Y양의 학교 일에 열성을 보이면서 Y양의 공부에 간섭하는 것을 아버지는 못 마땅하게 생각했다. 어머니는 살림을 하는 스타일이 아니고 사회 활동을 왕성하게 해야 하는 스타일이었다고 회상 했다. Y양은 어린시절에 아버지에게 심한 구타를 당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고 기억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의 폭행으로 옷을 발가벗기고 집에서 매를 맞고 쫓겨난 것을 기억하고 가슴 아파하고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와 어머니는 심하게 싸운 후에 어머니의 가출로 가정은 박살이 났다.

 어머니는 그 후에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어머니의 공백으로 Y양이 2명의 남동생에게 어머니의 역할을, 아버지에게는 부인의 역할을 해 왔음이 밝혀졌다. 발을 짓고, 빨래를 하고, 동생들을 챙기는 일을 하나 둘씩 맡게 되면서 Y양의 학업 성적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학교 공부에 전념해야 하는데 정신 집중이 되지 않았다. 내면에 억압되어 있던 불안이 서서히 표면화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시험에 지나치게 불안함을 보이기 시작했고 그 때부터 성적은 아무리 공부를 해도 올라가지 않게 되었다. Y양의 공부가 밀리면서 동료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기 시작했다. 중학교 2학년 때까지는 가만히 있어도 친구들이 서로 접근을 하며 몰려 왔으나 성적이 하락하면서 동료들을 피하기 시작했고 친구들이 Y양의 성적하락을 수군거리는 모습에 자존심이 상했고 또 어머니의 가출을 친구들이 알게 될까 봐서 일부러 친구들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모든 문제는 그 때부터 서서히 시작된 것이었음이 분석 결과 밝혀졌다.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아버지의 결벽증에 시달리면서 성적을 점점 하락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식사에서부터 집안 청소, 빨래에 이르기까지 자녀들을 못살게 했다. 조그만 일에도 간섭을 했고 항상 방안이나 부엌이 깨끗하게 않으면 잔소리가 흘러 나왔다. 행주를 매일 뜨거운 물에 삶아서 소독을 해야 하였고 책상 위에는 항상 정리 정돈이 되어 있어야 야단을 면할 수 있었다. 공부에 신경 쓰랴, 가정 일에 신경을 쓰랴, 동생들을 신경 쓰랴, 있는 힘을 다해서 노력을 해도 아버지의 마음에는 차지 못했다. 결국 고등학교 성적은 상위권이었으나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는 갈 수가 없었고 1년 동안 재수를 해야 했다.

아버지와 면담: 아버지와 4시간 동안 면담이 있었다. Y양을 위해서 치료자가 아버지와의 면담을 요청했고 아버지는 기꺼이 응해 주었다. 아버지는 어린시절에 홀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형님과 자신이 외롭게 자랐다고 했다. 어머니가 헌신적으로 아버지를 뒷바라지를 해 주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서 일찍이 사회에 나왔다고 했다. 아버지는 고등학교 때 눈을 다쳐 한쪽 눈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부인을 중매로 만나고 결혼을 하면서 서로간에 갈등 때문에 부부 생활에 바람잘 날이 없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부동산을 하면서 상당한 돈을 모았다고 했다. 직장에서는 동료들이 직업이 공무원인지 부동산인지 빈정대는 일도 여러 번 있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이러한 돈을 사업한다고 치마바람을 일으켜 다 날려 버렸다고 아쉬워했다. 부인은 통이 크고 동료들에게 과시적이어서 항상 돈이 많은 사람으로 행세했고 학교에서도 육성회 이사 등으로 남편과 늘 마찰을 일으켰다. 남편의 불안증과 강박증 즉 결벽증이 부인을 더욱 어렵게 한 것이 틀림없었다. 결국 잦은 마찰은 부인이 남편과 더 이상 같이 살 수 없다며 집을 나가면서 끝이 난 것이었다. 이후 이혼으로 법정까지 갔고 남편은 이혼을 해 주지 않았다고 했다. 남편의 반대로 지금까지고 법적으로 이혼은 되지 않고 있었다. 아버지는 지금도 어머니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 오기를 기대하고 있었으나 어머니는 그 후에 다시는 집에 연락이 없었다고 했다.

분석 및 해결 과정

조울증의 발발: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으러 오면서 Y양은 가벼운 우울증의 상태에 있었다. 사회 생활의 출발에서 삐끄덕거리기 시작했고 직장 생활을 할 수 없었고 아버지와 동생들과의 마찰도 심각했다.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었다. 직장에서 자꾸만 자아를 意識하기 때문에 상대방이 자신에게 욕을 한다거나 상대방이 자신을 비웃는다거나 자신을 해코지 한다는 생각 때문에 대인관계를 해 나갈 수가 없었다. 자연히 미래가 우울해지고 과거의 화려 했던 초, 중등학교 시절이 대비되어 과거 속에서 살게  되어갔다. 과거에 상처 받은 생각에 몰입이 잦고 현재가 발이 묶이고 미래가 암담하게 느껴지면서 점점 우울증으로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치료 3개월 만에 Y양이 어느날부터 이상한 소리를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갑자기 자신감이 회복되어졌다고 기뻐했다. 이제는 회복되었으니 치료를 받을 필요성이 없어졌다며 하느님의 계시를 받은 것 같다고 했다. Y양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어머니의 가출 직후부터 친구들의 소개로 가족 구성원들 중에서 유일하게 교회에 다니고 있었다. 치료자는 치료를 계속할 것을 권유했으나 회복되었다는 말을 남기고 더 이상 치료실에 나타나지 않았다. 치료가 중단 되었다. 그 후에 1달이 지나면서 Y양의 아버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Y양이 이상한 행동을 한다는 것이었다. 치료자가 Y양의 집을 방문한 결과 Y양은 조증 상태를 보이고 있었다. 흥분해서 안절부절 하면서도 자신은 내일 하늘로 승천하는 휴거를 한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제 곁에 오지 마세요! 불에 타 죽습니다. 선생님 저는 내일 저녁 9시에 하늘 나라로 휴거를 합니다. 예수님이 저에게 내가 이 나라 백성들을 구제하라고 하는 계시를 들었습니다. 그것에 나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지금 내가 밖에 나가서 사람들을 구원해서 내일 휴거 할 때 데리고 가야 합니다. 나를 집 밖으로 나가게 해 주세요! Y양은 가족들이 자신을 집안에 감금하는 통에 심하게 몸싸움을 하고 있었다. 치료자는 Y양이 계속 저런 행동을 보이면 내일 병원에 입원 시키는 것이 좋겠다고 아버지에게 이야기를 하고 동생들에게는 누나가 밖에 나돌아 다니지 못하게 하고 방안에서 휴식을 취하도록 했다. 그날 저녁 10시 경에 동생으로부터 치료자에게 전화가 왔다. 누나가 3층에서 문을 열고 탈출하려고 뛰어내려 골절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을 했다고 했다. 다음 날 치료자가 병원을 방문했을 때 Y양은 기부스를 하고 정신병원의 폐쇄 병동에 입원을 해 있었다. 약물을 투입하면서 Y양은 곧 안정을 되찾았다. 그 후에 병원에서 3개월 동안 입원해 있다가 퇴원을 하면서 본격적인 심리 분석 치료가 시작되었다.

치료의 중반기

 Y양은 약물을 복용하면서 심리분석 치료를 받게 되었다. 병원에서 퇴원 후에 정신과 의사들 그리고 대학병원의 저명한 교수들을 면담하고 조울증에 대해서 상상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아는 것 만으로 행동을 바꾸기는 어렵다는 치료자의 말에 수긍을 했다. 원인을 찾아서 제거하고 마음 속에 쌓인 적대감정에서 빠져 나와야 하고,성격의 결함을 수정해야 함에 동의를 하고 치료를 다시 재개 하였다. 우울증에서 조증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분석 되어졌다. Y양은 어느날 갑자기 자신이 대학생 이었을 때 친구의 소개로 미팅을 하여 만난 파트너의 얼굴이 떠 올랐고 그 후에 자주 만나서 차를 마셨던 생각이 떠올랐다고 했다. 교회에서 자주 그 남자를 만났고 그 남자는 결혼을 해서 xx시에서 살고 있는 것이 생각이 나면서 갑자기 그 남자의 부인이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연결 되었다고 했다. 이유는 이것이 하느님의 계시이다 라는 생각이 나면서 그 남자를 만나서 자신이 부인이 되어야 한다는 하느님의 계시를 말하면 그 남자가 자신을 인정하고 수용해줄 것이다라는 생각에 집착하게 되었고 그 남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전형적인 조증의 증세가 나타난 것이었다. 그 남자 친구는 Y양의 전화를 받고 행설 수설 하는 전화에 놀라서 전화를 끊어버리고 말았다고 했다. 당장 Y양은 다급해져서 그 남자를 찾아가야겠다고 생각을 했고 이것이 하느님의 계시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직장에 출근하지 않고 그 남자가 살고 있는 xx시로 가는 기차를 집어 탔다. 기차는 xx시로 가는 기차가 아니었으나 하느님이 시키는 계시라고 생각해서 그 곳에 가면 다시 xx시로 가는 길을 인도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무작정 기차를 탔다고 했다. 종착역에 내려서 다시 xx시로 가는 기차를 물었고 택시를 타고 가면서 택시 기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택시 기사가 Y양이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을 알고 Y양의 집 전화 번화를 물었고 아버지에게 연락이 된 것이었다. 아버지가 택시 기사에게 집으로 데려다 달라는 요청에 무사히 집에 도착하게 된 것이었다. 치료자의 방문 후에 Y양은 밖으로 나가서 자신이 휴거 하는 것을 세상에 알리고 믿는 사람들과 함께 휴거 하겠다는 생각에서 밖으로 나가려다가 동생과 아버지가 현관 문을 지키고 있는 통에 창문을 열고 탈출하려고 시도했다는 것이었다. Y양은 왜 자신이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를 자신도 모르겠다고 했다.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어 심리로써 반대행동 형성이 된 것임을 알게 했다. 마술적인 생각에서 오는 즐거움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그러한 생각을 차단 시키는 인지치료를 병행 하기로 했다. 자신의 병든 자아에 그러한 마술적인 생각이 떠 오르면 그 생각을 차단 시키는 훈련을 하면서 과거의 상처를 하나씩 들추어 내어 재연을 하기 시작했다.

  어린시절에 아버지에게 옷을 발가벗기고 집에서 쫓겨난 장면을 다시 회상하도록 했다. 그 때 느낀 수치심과 분노를 표현하도록 했다. Y양은 울면서 아버지에게 하소연을 했다. 빈 의자에 아버지가 앉아 있다고 생각하고 아버지에게 분노를 표현하게 했다. 아버지 이럴 수가 있습니까? 초등학교 4학년인 저를 옷을 발가벗길 수 있습니까? 아버지에게 받은 수치심으로 제가 얼마나 고통을 받고 있는 줄을 아버지는 모르실 것입니다. 아무리 아버지의 딸이라고 해도 이럴 수는 없습니다. 제가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습니까? 아버지 너무 하십니다. 그냥 잘못을 이야기를 해 주면 제가 알아들을 수 있을 덴대 왜 옷을 발가벗기는지요? 울면서 Y양은 하소연을 했다. 아버지를 죽이고 싶다고 했다. 수없이 그 장면을 되풀이 하게 했다. Y양은 분석 과정에서 아버지 앞에만 서면 벌벌 떨고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증세가 그 사건 이후에 생긴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제 아버지에게 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버지 앞에서 NO라고 말을 못하면 다른 사람 앞에서도 NO라고 말을 못한다는 것을 알게 했다.

 직장에서 상대방이 자신에게 비웃거나 멸시를 하면 당당하게 자신의 의사 표현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것을 위해서는 먼저 아버지에게 자신의 의사 표현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직장에서 상대에게 무시를 당하거나 강압을 당하는 그 순간에 Y양은 아버지 앞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으로 되돌아 가는 것임을 알게 했다. 자신의 자아에게 이야기하는 자아와 대화의 훈련이 첨가 되었다. 나는 이제 초등학교 4학년 어린이가 아니냐, 지금 나는 대학을 졸업한 성인이야, 내가 어린이처럼 아버지 앞에 서 있어서는 안 돼! 나는 어른이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해라고 자신의 자아에게 이야기하게 했다. 내가 지금 대면하고 있는 이 사람은 내 아버지가 아니야! 옛날의 초등학교 4학년이 아니야!를 수없이 스스로 반복하게 됨으로써 Y양은 점차로 다른 사람들 즉 직장 동료들과의 관계에서 자기 표현이 늘어가면서 대인관계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 앞에서 당당해지기 시작했다. 치료를 시작한지 1년이 지나가면서 Y양은 파트 타임에서 풀 타임으로 하루 8시간 정상 근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직장 생활에서 대인관계에 자신감이 생기면서 자기 주장 훈련이 첨가 되었다.

 Y양이 치료자에게 오기 몇 년 전에 아버지에게 말대꾸를 하다가 아버지에게 머리채를 잡히고 벽에 쥐어 박힌 기억이 떠 올랐고 다시 그 장면이 재연 되었다. 이제 아버지에게 자신의 욕구와 자신의 소망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되어 갔다. 아버지 이제 저는 어린이가 아니에요. 아버지 저는 이제 성인이 되었어요. 제가 하는 이야기도 들어 주세요. 저를 치료하는 선생님이 아버지 앞에서 자신 있게 말을 못하면 다른 사람 앞에서도 말을 못한다고 했습니다. 제 이야기도 들어 주세요. 제 이야기를 들고 난 다음에 아버지의 의견을 말해 주세요. 저를 어른으로 대우해 주세요. 수 많은 연습과 훈련이 치료실에서 재개 되었다. 아버지, 제가 다른 사람 앞에서 주눅이 들어서 말한 마디 하지 못하고 비웃음을 당하거나 무시를 당하는 것을 보고 기분이 좋으세요? 아버지, 제가 당당하게 내 의사 표시를 하는 것을 보고 싶으면 아버지 앞에서 이야기할 수 있게 해 주세요. Y양은 울면서 아버지에게 말할 수 있을 때까지 6개월 정도 훈련을 하면서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조용하게 아버지에게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론적 근거

아버지로부터 분리 독립: 치료의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Y양은 이제 아버지가 무섭지 않게 되어갔다. 아버지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불안해 하지 않고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어갔다. Y양은 지금까지 직장 생활에서 봉급을 타면 모두 아버지에게 갖다 드리고 자신은 아버지가 주는 최소한의 용돈으로 생활을 해나간다고 했다. 항상 차비 정도만 주기 때문에 돈이 궁하면 가끔씩 아버지의 지갑에서 몇 만원을 살짝 끄집어 내 쓴다는 것이었다. 그 때 Y양은 자신에게 이것은 내 돈이야,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내 돈이야 라면서 자신의 양심을 달랜다는 것이었다. 풀 타임의 직장생활을 하면서 경제적 어려움도 하나씩 해소되어 갔다. 이제 아버지로부터 분리, 독립할 수 있게 된 시점이 왔음을 Y양이 알게 했다.  처음에 Y양은 그것을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아버지의 허락보다도 자신이 혼자서 살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자신감이 없었다. 방을 전세로 얻으려면 몇 천만원이 필요할 터인데 돈도 아버지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은 용돈 박에 없다고 했다.

 치료자는 아버지로부터 독립하는 것을 아버지와 관계를 단절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큰 대학교 주변에 있는 자치를 할 수 있는 방은 한 달에 20만원 30만원 정도이고 Y양이 직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와서 독립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학기말에 되면 큰 대학교 주변에 가서 스스로 방을 찾아 보라고 했다. Y양은 드디어 자신이 괜찮은 방을 찾았고 한 달에 23만원을 주기로 하고 방을 예약해 놓았다고 했다. 이제 아버지에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게 준비를 하나씩 해 나갔다. 아버지 저도 이제는 어린이가 아닙니다. 저의 삶은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언제까지나 아버지 밑에서 어린이 취급을 받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홀로서기를 해야 할 나이가 넘었습니다. 방을 얻어서 자취 생활을 하게해 주십시오. 이 말에 아버지는 더 이상 딸을 강제로 붙잡지는 않았다. 결혼 자금으로 저축을 해 주겠다며 매월 월급을 아버지에게 갖다 달라고 처음에는 딸을 설득하려고 하였으나 딸이 완강하게 나오자 아버지는 딸을 내 보내면서 어려우면 언제든지 집으로 다시 돌아 오너라고 위로해 주었다. Y양은 이제 아버지의 눈치를 보지 않은 자유인이 되었다. 대인관계도 눈에 띄게 좋아졌고 직장에서 갈등이 점점 줄어들어 갔다. 치료의 중간 단계에서 어머니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면서 대학울 졸업한 후에 어머니가 한번 찾아와서 다방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 때 어머니는 어느 절에서 식사를 도와주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다시는 아버지와 결합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자식들을 버리고 갈 수 있었느냐는 말에 어머니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Y양이 병원에서 퇴원해서 심리치료를 받고 혼자서 독립해서 집을 나와서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어머니가 Y양에게 같이 살면 어떻겠느냐? 고 연락을 해 왔으나 다시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자신들의 삶에 간섭하지 말고 부모님의 삶에 휩쓸리지 않겠다고 대답했다고 했다. 부모님의 문제는 부모님이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좋을 것임을 강조 했다.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어머니의 문제에 끌려들어가고 싶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러나 부모님과 연락은 끊지 말도록 했다.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지고 스스로 홀로서기를 할 수 있는 길 만이 재발을 막을 수 있는 길임을 깨닫게 했다. 근무 시간 이외에 남는 시간을 자아 개발에 투자 하도록 했다. 자신이 하고 싶어하던 영어 회화를 공부하기 위해서 영어 학원에 등록을 하고 학원에서 친구들을 사귀기 시작하였다. 동료들과 모임에도 참석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옛날에 끊어졌던 친구들과 관계도 회복하기 시작했다. 치료를 시작한지 2 6개월 만에 치료는 종결이 되었다. 아직도 남자 친구들과 친밀관계를 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었으나 혼자서 독립해서 살아가는 것에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아버지의 집에서 나온 이후로 아버지를 받아들이고 아버지를 이해하는 치료가 더 붙여 졌음은 말할 나이도 없다.

 치료는 끊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가족 구성원들과의 관계나 동료들과의 관계를 연결 시켜서 환자의 삶이 풍부해지도록 도와주는 것임을 알게 했다. 2 6개월 동안에 조울증이 재발은 없었다. 환자는 조울증을 글자 그대로 좋아졌다가 우울해지는 병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 간호원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즐거움을 가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치료자가 알게 되었고 이것이 잘못된 생각임을 고치게 하였다. 우울증은 스스로 즐거움을 만들지 못하는 사람들이 가지는 장애임을 깨닫게 하고 망상적인 생각이 떠오르면 단호하게 차단시키게 했다. 삶에서 스스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정상이고 이것은 망상적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했다. 가족들과 함께 하면서 가지는 즐거움, 직장에서 동료들과 함께 하면서 가지는 즐거움, 자신의 친구들과 함께 하면서 가지는 즐거움 그리고 삶을 살아가면서 희망을 성취하고 성장해 가는 즐거움이 삶에서 필수적임을 알게 하고 스스로 그러한 즐거움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했다.

치료 결과

치료 종결 1년 후에 치료자에게 한번 크리스마스 때 고맙다는 안부 전화가 왔었고 치료 종결 2년 후에 2년 동안 다니던 병원을 그만 두고 다른 병원으로 옮긴다는 전화가 왔었다. 병원이 문을 닫게 되어 다른 병원으로 옮긴다고 했다. 약간 불안을 느낀다는 말에 치료자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면 누구나 3개월 정도 적응기간이 걸린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새로운 환경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이이라고 위로해 주면서 Y양이 잘 해 나갈 것이라고 확신한다는 말을 해 주었고 만약 문제가 생기면 다시 찾아 오라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그 후에 Y양은 더 이상 전화가 없었고 새로운 직장에서 잘 적응해 나가고 있다는 메일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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