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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내면에 있는 여러 개의 자아들이

응집력으로 통합되어 있는 것이 자아 주체성이다

-정신분석학-

 프로이트는 마음의 3두 마차 즉 마음은 3개의 구조로 되어있다고 가설화 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부터 신경생리학, 발달 심리학, 학습 심리학 등의 실험에서 나온 연구 결과들이 정신분석학과 통합되어지면서 마음은 3개의 자아 즉 원초자아, 자아, 초자아로 되어있는 것이 아니고 여러 개의 수 많은 자아들이 서로 응집력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이론들이 나오게 되었다. 

 출생 이후부터 지금까지 경험의 총합이 내 자아가 된다. 고로 이러한 경험들이 서로 강하게 연결되어있는 것이 자아의 핵심 즉 자아 주체성이다 라고 본다. 이러한 주장들은 뇌의 연구에서 나온 결과들과 정신분석학과 발달 심리학에서 이야기는 내용과 일치했다. 경험이 재가동되는 것이 의식이고 이 의식은 수많은 경험들이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다. 이렇게 서로 연결이 잘 되어 있는 것이 자아 응집력이고 응집력이 강하면 기억이 잘 된다고 본다. 뇌 속에 경험들은 서로 가장 가까운 것들끼리 분류되어 저장되고 같은 분류에 속하는 경험들은 다른 경험들보다 서로 연결이 잘 되어있다. 이것을 자아 응집력이라고 부른다.

 즉 섹스 자아는 섹스에 대한 경험과 지식들이 서로 잘 연결되어 응집력이 높아서 섹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될 때 섹스 경험들이 서로 연결되어진다는 것이다. 신경 생리학이나 발달 심리학에서는 자아를 신체적 자아, 사회적 자아, 목적적 자아, 의도적 자아, 자동자서전적 자아로 구분하고 사회학에서는 자아를 개인적 자아, 관계 자아, 가족적 자아, 그룹 자아 등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또 어떤 정신분석 학자들은 구순기 자아, 항문기 자아, 오디팔 자아, 잠재기 자아, 사춘기 자아, 성인기 자아로 분류하기도 하고 또 다른 정신분석학자들은 유아기적 자아, 어린이 자아, 사춘기 자아, 청년기 자아, 성인기 자아, 중년기 자아, 노년기 자아로 구분하기도 한다. 자아에 대한 학자들의 주장이 다양하지만 공통적인 것은 자아가 3개 이상으로 여러개로 되어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어떻게 배우게 되는가? 라는 물음은 그리스 시대부터 제기되어온 문제이다. 이 문제에 도전해서 실험으로 증면한 사람이 바로 러시아의 생리학자 파브로프(Pavlov)이다. 그는 1904년에 배움에 대한 이론으로 노벨상을 받았다. 파브로프는 개의 입과 위에 구명을 뚫어서 개가 흘리는 침의 양을 측정하였다. 개가 고기를 보면 침을 흘리게 된다. 이것은 본능적으로 음식을 보면 소화액인 침이 나오게 된다. 입과 위에 고무 호스를 연결해서 침이 나오는 양을 측정한 것이다. 음식을 보면 침을 흘리는 것을 파브로브는 음식은 자극(stimulus)으로 침은 반응(response)으로 보고 이것을 자극을 주면 반응을 보인다는 뜻으로 S --- R 로 표시하였다.

 이후에 음식을 주기 직전에 종소리나 벨 소리를 들려주고 나서 음식을 주는 것을 반복하게 되면 개는 종소리나 벨소리가 나오면 음식이 나온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그래서 종소리나, 벨소리만 들어도 침을 흘리게 되었다. 이것은 종소리, 벨소리가 침으로 연결된 것이다. 개에게 종소리, 벨소리가 음식으로 짝이 되어 되어 침으로 연결이 된 것이다. 즉 종소리, 벨소리가 침으로 새로 연결이 일어난 것이다. 즉 배움이 일어난 것이다. 이러한 연결을 association 즉 연상이라고 부른다. 파브로브는 이것을 조건화 자극이라고 불렀다. 음식과 종소리, 벨소리가 조건화로 서로 짝이 되어 이것이 반응인 침으로 다시 연결이 된 것이다. 즉  조건화 자극을 conditioned stimulus로 조건화된 반응을 conditoned response로 부른다. CS--->CR이 된 것이다.

 파브로프는 이러한 실험을 수 없이 계속해서 종소리와 벨소리가 0.5초 때 가장 침을 많이 흘린다는 것과 종소리 후에 음식을 주지 않으면 배운 것이 소멸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또 종소리, 벨소리 대신에 빛과같은 다른 자극으로도 가능하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것을 자극 일반화라고 부른다. 이러한 배움을 "고전적 조건화 학습"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실험실에서 배움에 대한 연구는 미국으로 들어가서 실험 심리학의 바탕이 되어 20세기 초반에 미국을 휩쓸었다. 이것을 S--R 심리학이라고 부른다. 실험 심리학은 관찰하고 측정하고 데이터할 수 없는 것은 심리학에서 제외 시켰다. 실험 심리학인 학습 심리학, 배움 심리학을 learning psychology라고 부른다. 이러한 배움 심리학, 학습 심리학은 학교에서 교육 심리학으로 응용되어 나타났다.

 유치원 어린이와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들이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 주로 줄끗기, 서로 연결하기 공부가 바로 그것이다. 소방차라는 글자와 그림으로 그린 불 자동차를 서로 연결 시킴으로서, 공이라는 글자와 그림으로 그린 공을 서로 연결 시키는 것이 바로 배움의 시작 때 서로 연결 즉 연상(association)으로 배운다는 것이다. 배움은 서로 연결되어지는 부분이 강하면 강할수록 기억에서 오래간다는 것이 응집력을 말해준다. 10번 반복 학습한 것과 100번 반복 학습한 것이 후자가 기억이 잘되고 오래 간다는 것은 바로 서로 연결이 강하게 되어 있다는 것 즉 응집력이 강한 것을 말해준다. 응집력이 약하면 쉽게 잊어 버린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자아 이론도 한층더 힘을 얻게된 것이다.

 자아는 작은 수많은 경험의 집합으로 되어있고  작은 수많은 경험들이 큰 경험 속에 집합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자아이고 이 자아가 서로 응집력으로 연결되어 전체적으로 통합되어 있는 것이 자아 주체성이 된다.

 건강한 사람은 이러한 경험들이 서로 잘 연결이 되어있어서 기억이 잘 되고 어린 시절의 경험들의 회상이 잘 된다. 즉 자아 응집력이 높다. 자아 응집력이 높으면 자신감이 높아진다. 이것은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배울 수 있기 때문에 선택하고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는데 과거의 경험이 잘 활용이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상처를 받거나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은 고통스러운 기억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즉 자신이 보고 싶지 않는 것을, 자신이 알고 싶어하지 않는 것을 보지 못하게 된다. 기억 속에서 지워 버리게 된다. 고통스러운 것은 잊어 버리려고 하는 것과 같다.

 그 결과 그 기억은 마음 속에 억압이 된다. 무의식 속에 집어 넣어 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고통이나 상처를 받은 경험들은 기억으로부터 연결이 끊어진다. 프로이트는 이것을 억압(repression)이라고 부른다. 억압되어진 기억은 기억으로부터 사라진 것은 아니다. 무의식 속에 숨어있는 것이다. 이러한 무의식 속에 묻혀있는 경험들은 자신이 모르게 그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환자는 이것을 모른다. 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서로 기억을 연결 시키는 것 즉 연상으로 서로 끊어진 부분을 연결 시켜서 과거의 상처 기억을 회복하는 과정이 자유 연상 기법이다. 과거에 경험되어진 것은 상처와 상실 때문에 생긴 고통을 피하려고 기억의 연결을 끊어 버린 것이다. 프로이트가 최면학에 실망해서 최면학에서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는 방법을 버리고 자유롭게 끊어진 기억을 연결시켜서 기억을 회복하는 방법을 고안해낸 것이 바로 자유연상이다.

 반면에 프랑스의 심리학자인 피에르 장(Pierre Janet)은 이것을 프로이트와 다르게 설명한다. 즉 기억의 연결을 끊어 버리는 것을 dis-association이라고 불렀다. dis는 끊어 버린다와 association은 연상으로 이것을 합성하여 dissociation이라고 불렀다. 즉 해체되어 분리된 기억으로 해리라고 부른다.

 억압은 수평 분열이고 해리는 수직 분열이다. 해리된 기억은 서로 연결이 끊어져 버린다. 그래서 기억이 되지 않는다. 이것을 자아와 연결해보자. 유아기 자아, 어린시절의 자아, 사춘기 자아, 청년기 자아, 성인기 자아 등으로 자아가 분류되어지는데 이 자아들이 서로 응집력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건강한 사람의 자아 주체성이다. 고로 건강한 사람은 어린 시절의 경험들과 사춘기의 경험들이 서로 잘 연결되어 기억 회상이 잘 된다.

 그러나 어린 시절에 심각한 상처를 받은 사람이 심하게 고통스러운 경험 일 때는 어린 시절의 자아와 다른 자아들과의 연결을 끊어 버리게 된다. 그런 경우에 본인도 모르게 어떤 때는 어린 시절의 자아가 다른 자아들과 단절되어 어린 시절의 자아만 나타난다. 이런 경우에 어른이 갑자기 어린이 목소리를 내고 자신이 다른 사람인 것처럼 행동을 보인다. 어린 시절에 상처 자극과 유사한 자극에 놀래서 다른 자아들과의 연결이 끊어지면서 어린 시절의 자아가 나타나는 경우가 된 셈이다. 또 어떤 때는 어린 시절의 자아는 숨어 버리고 어른 시절의 자아가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어떤 때는 늘 보아오던 그 사람의 자아가 아닌 어린이 자아가 나타났다가 또 어떤 때는 어른의 자아가 나타나는 경우를 해리장애라고 부른다. 해리 장애를 경험하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다른 자아가 나타나기 때문에 본인은 그것을 모른다.

 치료에서는 서로 분리된 자아들을 본인이 알 게 하고 통합하는 과정을 거친다. 연결이 끊어진 자아들이 서로를 알도록 만들어서 의식적으로 통합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끊어진 어린 시절의 상처 기억을 받아들이고 해체 시켜서 분리된 자아를 자신이 싫어하는 자아를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해리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이 박해, 상처, 근친상간, 성폭행 등의 피해자였음이 밝혀졌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 자아를 쪼개고 단절시켜 분리시켜 버린 것이 밝혀졌다.

 해리장애는 1994년 제 4차 DSM 개정 때 다중 성격장애가 해리 장애로 이름을 바꾸었다. 해리 장애에는 내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장애 즉 depersonalization 과 늘 보던 익숙한 것들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지는 현상 즉 현실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derealization과 어떤 부분의 기억이 전혀 나기 않는 기억 상실증과 주체성 해리장애인 다중성격이 있다.

 몇 년전에 인기를 모았던 연속극 "왕꽃 선녀님"에서 주인공인 초원이가 갑자기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내고 다른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바로 해리장애에 속한다. 주인공인 초원이는 어린 시절에 버림받았음이 드러났다. 친모 역시 어린 시절에 초원이와 비슷한 상처 기억을 가지고 있었고 그 상처를 피하려고 한 것이 자신의 자녀가 태어나자 자신이 받았던 상처 기억 때문에 자신의 자식을 버리게 된 것이었다. 즉 초원이는 이중의 상처를 받았다. 엄마 자신의 버림받음과 초원이 자신이 버림받음이 이중으로 겹쳐진 것이다. 초원이는 버림받음을 의식하고 기억하지는 못해도 자신의 무의식 속에서 버림받음의 감각적 기억은 가지고 있었다.

 왜 하필 초원이의 이러한 해리 장애가 대학생이 되어 성인이 된 시기에 나타난 것일까? 그 이전에는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는가? 이유는 초원이는 양부모의 사랑을 듬뿍받고 행복하게 양육되었으나 자신의 좋아하는 남자 친구를 만나게 되었고 부모가 그 남자와 사귀는 것을 반대하였고 자신이 좋아하는 않는 다른 남자에게 결혼을 강압 받으면서 생긴 심리적 고통과 갈등 때문에 심리적 혼란 속에 빠지게 된다. 이 심리적 혼란이 무의식 속에 숨어있는 과거의 버림받음의 감각적 기억에 연결이 되었고 과거의 상처가 힘을 얻게되어 자아가 약해진 틈을 타서 표면에 노출이된 것이다.

 초원이는 가족 간의 갈등이나 남자 친구와의 갈등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써 병적인 행동으로써 즉 병으로써 해결하려고 무의식적으로 시도한 것이다. 원하는 남자와 결혼이 이루어지면서 이러한 이상한 행동은 잠잠해진다. 그러나 이후에 또 다른 갈등이 생길 때마다 해리 행동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이것은 친모가 문제 해결을 한 것과 초원이가 문제 해결을 시도하는 것이 유사함을 볼 수 있다. 위기 때마다 친모 역시 이러한 해리 행동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간 것이 초원이가 갈등이나 위기 때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법과 닮아있다는 것을 유심히 연결해서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것을 모르는 일반 사람들은 지금까지 멀쩡하던 사람이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내고 행동이 달라지는 것을 보면서 귀신이 그 사람의 마음 속에 들어간 것으로 보는 것은 당연하다.

 귀신이나 악령이 그 사람의 마음 속에 침범해서 이런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고 극심한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 고통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무의식적으로 만들어낸 해리 현상 때문임을 규명해낸 사람이 바로 피에르 장이다. 가르코트 밑에서 최면학을 공부한 의사로써 프로이트와 동시대에 살면서 해리장애를 연구해서 발표했지만 프로이트의 명성에 묻혀서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가 최근에 100년 전에 그가 쓴 논문들이 빛을 보게되면서 해리장애로 재 조명을 받게 된 것이다.

 1960년대에 정신분석학자인 Kohut가 자아 이론으로 고전적 정신분석으로부터 독립해 나오면서 자아 심리학이라는 새로운 정신분석 학문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는 성격장애 환자를 치료 하면서 고통이나 상처 경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사람은 상실과 상처 경험을 마음 속에서 쪼개 버린다, 연결을 끊어서 분열시켜 버린다는 이론을 내 놓았다. 프로이드의 억압 이론과 다른 이론이다. 고통스러운 경험을 따로 떼어놓아 버린다. 마음을 칸막이로 나누어버린다. 고로 그 경험은 따로 저장이 되어진다. 전체 경험에서 분리되어 있다.

 이러한 이론은 뇌의 연구에서 나온 이론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뇌 연구를 바탕으로 깔고 있다. 연결의 끊어짐이 많을수록 칸막이 자아가 많을수록 쪼개진 자아가 많을수록 사람은 그 빈 공간 때문에 공허해지고 무가치함을 느끼게 된다.

 자아들이 서로 연결이 끊어진 것을 자아 분열이라고 부른다. 자아들 사이에 경험들이 서로 연결이 안 되는 것이다.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것이다. 고로 끝없이 과거를 되풀이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현재가 재 창조되는 것이 아니고 과거를 되풀이하고 있음을 본인은 모르고 있다. 연결이 끊어진 자아는 죽은 자아가 되는 것이다. 식물이나 나무 가지들을 보면 죽은 가지들이 많이 있다. 삭정이가 바로 죽은 가지이고 인간으로 말하면 죽은 자아가 많을수록 자아 소멸을 느끼게 된다. 존재의 소멸을 느끼는 것이다. 죽은 자아가 많을수록 빈 자리가 많아진다. 이 빈 자리에서 공허감, 외로움, 무가치함, 무감각을 느끼게 되는 것이 자아 분열를 가진 사람들이 느끼는 특징이다.

  과거의 상처가 많은 환자들은 과거의 기억 회상이 적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별로 없는 것이 공통점이다. 이유는 과거가 고통스럽기 때문에 과거의 연결을 끊어 버린 것이다. 자아 분열을 가진 사람들의 특징이 자해, 자상을 자주 시도한다. 자신의 몸을 담배불로 찌지거나 면도날로 자신의 손목을 끗는 자해 행동을 많이 보인다. 자신의 신체에 고통을 가하는 것을 자해, 자상이라고 부른다. 자신의 몸을 자해할 때 그들은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하는 사실이 최근에 밝혀졌다. 자해 후에 나오는 피나 고통을 통해서 자신이 살아 있음을 확인한다는 것이다. 자아의 존재 가치를 다시 확인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우리가 갑자기 어떤 믿어지지 않는 일을 당하거나 복권에 당첨되었을 때 꿈이냐 생시냐를 확인하기 위해서 우리의 몸을 꼬집어 보거나 뺨을 때리는 것에서 볼 수 있다. 자아 분열 환자들은 자신이 느끼는 자아 소멸에서 탈출하기 위해서 자신의 몸을 면도날로 끗는 것이다. 그 순간에는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피가 나오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함을 느낀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 때 몸안에서는 8mg의 엔돌핀이 방출된다는 것이 실험으로 입증되었다.

 즉 인체가 고통을 받을 때 우리 몸은 자연 마취제인 엔돌핀을 방출한다는 것이다. 엔돌핀은 내분비의 글자인 엔도르에다 몰핀의 합성어가 엔돌핀이다. 피가 흘러내리는 순간에 자신의 자아 감각을 느끼게 되고 위안, 위로, 편안함을 얻게 되는 자아 규제 행동이 바로 자해, 자상임이 밝혀진 것이다.

 자아 분열에 대한 이론들은 프랑스의 실존주의자들이 이미 내놓은 철학적 이론을 바탕으로 하여 이것이 이후에 다양한 학문들을 거치면서 실험으로 입증되고 정신분석학에서 도입해서 자아 분열로 이어진 것이다. 프랑스의 작가이자 실존철학자인 싸르트르는 그의 작품 "구토"에서 자신의 존재를 잃어 버린 주인공이 공허해지고 늘 가던 까폐가 갑자기 낯설 게 느껴지고 현기증이 나고 구토를 느끼게된다. 자아 해체, 조각난 자아를 구토 증세로 상징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는 혼자라고 말한다. 완전히 혼자라고 말한다. 행복한 목소리를 듣고 있을 때라도 혼자 있음을 느낀다.

 사르트르에게 혼자라는 말은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비록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있다고 해도 너와 나의 하나된 관계 경험이 없는 것을 말한다. 사르트르는 내면 자아의 해체 경험을 기술하고 있다. 갑자기 몸뚱이와 움직임이 불합리하게 느껴지고 감각 지각의 상실, 근육의 움직임 상실이 느껴진다. 사과와 포크를 잡은 손이 갑자기 덜커덩거리게 된다. 조각난 자아들이 외부 세계로 투사되어 생긴 현상이다. 자아가 방향 감각을 상실한 것이다. 주인공은 자아가 마비됨을 느낀다. 스스로를 표현할 수가 없다. 공허감을 느낀다. 더 이상 명쾌하게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세상이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의미를 상실한다. 자아의 영역이 상실되어 시작도 끝도 없이 이야기 속에 빠져들어간다. 지속성이 없다. 확실함이 없다. 서로 모순되지 않고 동의도 없다. 자아 응집력이 상실되어 조각난 자아 때문에 자신의 자아 이해는 파괴된다.

 자아 분열은 정신분열증과는 다르다. 정신분열증은 성격이 분열된 경우를 말한다. 성격은 그 사람을 나타내는 지속적이고 변함이 없는 그 사람의 독특한 됨됨이를 말한다. 즉 자아 이론에서는 통합된 자아 주체성을 말한다. 자아 주체성이 분열되기 때문에 정신분열증 환자는 너와 나를 구분하지 못한다. 현실과 상상을 구분하지 못한다. 너의 자아 이미지인지 나의 자아 이미지인지 너의 대상 이미지인지 나의 대상이미지인지를 구분하지 못한다. 너가 내가 되고 내가 너가 된다. 꿈이 현실인지 현실이 꿈인지를 구분하기 어렵다.

 그러나 자아 분열은 내면의 대상 이미지가 분열되어 있는 것을 말한다. 자아 분열의 극단적인 경우가 정신분열의 시작이 된다. 수많은 경험들이 모여 자아가 되고 이 자아들이 모여서 통합되어 자아 주체성이 된다. 즉 경험의 축적이 자아이다. 이 자아 속에 있는 작은 경험들이 서로 연결이 끊어져있거나 응집력이 약화되어 있는 것을 말한다. 경험들 사이가 아교풀처럼 연결이 잘 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서로 연결이 희미하거나 끊어져있다. 자아 분열은 자아 주체성은 온전하다. 고로 너와 나를 구분할 수 있고 현실 검증 능력 즉 현실 감각은 있다. 현실과 상상을 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 어린 시절에 박탈이나 상처, 근친상간, 성폭행 등으로 가까운 친밀관계 대상으로부터 혼란과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대상과 거리감을 두고 대상을 멀리하고 대상을 동일시하는 것을 피해온 것이다. 이유는 대상의 말과 행동이 모순되고 고통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고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외부 대상을 믿지 않게 되고 외부 대상을 동일시하는 것을 피해온 것이다.

  건강한 사람은 부모님, 선생님, 전문가 등으로부터 항상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임으로써 끊임없이 외부 환경과 피드백이 일어나서 내 자아 경험이 풍부해지고 자아 수정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전체의 자아 주체성은 별로 변함이 없지만 간접적으로 수많은 경험들을 통해서 내 자아는 항상 변한다. 자아 경험이 풍부하게 된다.

 그러나 자아 분열를 가진 사람은 외부 대상으로부터 피드백을 위험으로 경험했기 때문에 외부 대상으로부터 정보를 받아들이기를 꺼린다. 고로 내면의 세계가 빈곤해지게 된다. 끊임없는 피드백을 통한 외부 대상으로부터의 경험의 입력이 없기 때문에 어린 시절의 원시적인 내면 세계 이외에는 별로 변화가 없다. 고로 어린 시절에 형성된 내면의 자아 이미지와 대상 이미지의 세계는 똘똘 뭉쳐져서 응집력이 있다. 대신에 외부 대상 세계와는 단절되어 있어서 자아의 형태 변화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어린 시절의 원시적인 자아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나이에 비해서 항상 미성숙한 면을 보인다. 외부 환경과 피드백에 의한 경험의 축적이 빈약하게 된 것이다. 외부 대상으로부터 경험은 차단되어 버린다. 혼자 있기를 좋아한다. 혼자 있는 것이 편안함을 주기 때문이다. 친밀감으로 가까워지면 자아 소멸의 위기를 느낀다. 그래서 거리감을 두려고 한다. 그 결과 내면의 자아는 빈곤하게 되고 공허하게 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얻는 경험들이 내면 자아에 연결이 끊어져있기 때문에 경험으로부터 배우지 못한다. 실패를 끊임없이 반복하게 된다.

 자아분열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고립감, 공허감으로 가득차 있어서 외톨이가 된다. 대상에 의존하려고 하지만 애착이 자아 상실을 위협하기 때문에 자아 분열을 가진 사람을 놀라게 한다. 개인은 감정 철회, 감정적 고립으로써 자아의 불안정한 면을 보호하려고 한다. 감정적으로 의미 깊은 관계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삶이 무의미하고 목적 의식이 없음을 느낀다. 친구가 없다, 수줍어하고 괴팍하다. 이런 성격이 사회활동을 위축시킨다. 사회성이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관계를 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역할을 하고 있지만, 충분한 관계를 하고 있지 않다. 피상적인 관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이 역할을 싫어한다.

 이것을 위니코트는 거짓 자아라고 부른다. 불평 불만이 많고 대상과 긴밀한 접촉으로부터 연약한 내면적 자치심과 개인화를 방어하기 위해서 보호적인 방어를 취한다. 주관성과 활동력을 잃지 않으려고 거짓 자아가 참 자아를 보호한다. 피상적인 관계로 진실한 따뜻함이 없는 관계이다. 감정이 억제적이다. 외부 대상과의 관계에서 오는 갈등 때문에 내면 생활에 집착해서 외부 세계로부터 철수해 버린다. 고로 외롭고 공허감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삶에 즐거움이 없다. 지루하고 똑 같은 생활의 반복이고 다른 사람과 친밀관계를 지속할 수 없다. 이러한 공허감, 우울함, 무기력함을 채우기 위해서 난잡한 섹스 행동에 빠지거나 마약, 음주 등으로 일시적인 충족감을 채우려고 한다.

 2004년에 노벨상을 받은 오스트리아의 작가 엘프리데 엘리네크의 작품 "피아노를 치는 여자"에서 주인공 코후트는 자아 분열을 가진 자아 장애 환자로 잘 묘사되어 있다. 그녀는 섹스와 사랑이 쪼개져서 사랑을 할 수 없는 여자가 되어 버린다. 어린 시절의 엄마로부터 침투와 간섭으로 자아가 분열되어 버린 것이었다.

 그녀의 섹스는 사랑이 통합되어지지 않은 변태성욕자가 되었다. 관음증, 새디즘, 마소키즘 등의 섹스 장애를 보인다. 정신분석학자들은 변태성욕을 "섹스 신경증"이라고 부른다. 작품의 초반부, 중반부, 후반부에 자해하는 장면들이 묘사되어있다. 자신의 몸을 칼로 자해하면서도 감각을 느끼지 못한다. 피가 흐르는 것에서 편안함, 안정된 마음을 느낀다. 자신보다 10살이나 나이가 적은 자신에게 피아노를 배우는 제자를 유혹해서 사랑을 시도하지만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변태적 섹스 행동으로 사랑의 빈 공간을 채우려고 한다.

 코후트의 자아 중에 죽은 자아가 너무 많아서 마음의 죽음, 존재의 상실을 느낀다. 마음의 지속성 유연성이 없다. 똑 같은 행동만 되풀이 한다. 과거의 반복이다. 일상이 너무 지루하도록 똑 같다. 삶의 의미가 없다. 마음이 불안으로 가득차 있다. 행동이 경직되어 유연성이 없다. 어머니의 침투와 간섭을 싫어하면서도 익숙해져있어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 고립과 거리감으로 자아가 텅 비어있음을 느낀다. 코후트의 어린 시절은 상처의 연속이었다. 엄마의 섹스의 대상이 되어 근친상간의 상처, 학대, 박해, 과잉보호 속에서 일관성 있는 사랑의 감정을 받지 못했다. 엄마의 잔인하리만치 냉혹한 주입식 가르침과 처벌은 자아를 쪼개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공부에 매진하게 하기 위해서  어린 시절부터 철저하게 동료들과의 관계 단절을 당한 것이 대인관계를 차단시켜 버린다.

  마지막 장면은 인상적이다. 연인과 관계를 연결하기 위해서 연인이 있는 대학에 찾아갔지만 연인이 다른 여성들과 행복하게 장난을 치며 즐거워하는 모습에 놀래서 자신의 어깨에 칼를 꽂고는 다시 어머니가 사는 집으로 과거가 반복되는 일상으로 되돌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삶의 의미를 잃어 버린 주인공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작품 "피아노를 치는 여자"는 20세기 후반의 방황하는 현대인의 모습, 방향 감각을 상실한 현대인의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다. 친밀관계를 하지 못하고 사랑을 하지 못하고 지루한 과거의 일상을 반복하는 자아 장애자의 모습을 그린 현대인의 자화상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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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에서 설명한 자아 장애의 모습이 극단의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에는 성격장애로 분류된다. 이러한 성격장애가 자아분열 성격장애가 된다. 자아분열 성격장애 중에서도 정신분열증의 요소가 다분이 있는 자아분열을 자아분열 타입 성격장애로 분류된다. 후자는 정신분열증에서 분리되어나온 자아분열을 따로 모아둔 것이다. 고로 "걸어다니는 정신분열증" "잠재적 정신분열증" 이라고도 부른다. DSM-Ⅳ에서 구체적으로 진단되어진 자아분열 성격장애와 자아분열 타입 성격장애에 들어가보고 싶으신 분은 다음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보세요.

자아 분열 성격장애

자아 분열 타입 성격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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